2012년 6월 30일 토요일

디모데전서 2 : 5~10 설교 : 우리의 스승 된 바울

 
우리의 스승 된 바울
 
-딤전2:5-10-

인간이라는 것은 모든 일에 스승 된 자가 있어야만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 같은 스승은 인류 역사상 없었다. 누구든지 바울이 자기에게 참된 스승이 된다고 깨달은 자라면 가장 복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대제사장과 교법사와 유사와 장로들은 바울을 염병 같은 이단이라고 정죄했었다. 그러나 이단이라고 정죄한 자는 아무런 열매가 없이 망하였고 이단이라고 정죄를 받은 바울은 세계 인류를 바로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것을 세계 인류가 알게 되었다.

 이제 바울이 우리의 스승 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그리스도는 중보자이신 것을 밝히 가르침 (5)

그리스도를 반대했던 바울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보자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일생을 피 흘리면서 싸웠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중보자 되심을 가르치기 위하여 싸우지 않았다면 이방인은 다 흑암에서 해방을 받고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서도 훌륭한 인물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한 도덕가나 종교가는 될지언정 중보는 될 수 없다.

바울이 그리스도만이 중보자라고 가르친 것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요 확실한 증거를 받은 바울로서 분명히 가르친 것이다. 우리가 바울의 증거를 참이라고 믿어지는 것은 그대로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울이 그리스도를 중보자라고 가르쳤다 하여도 지금 우리에게 산 증거가 없다면 바울은 우리의 참된 스승이라고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증거한 말씀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증거가 있으므로 누구든지 이 증거를 받은 자는 하나같이 바울을 참된 스승으로 시인하는 동시에 그가 싸우던 싸움을 계속하여 싸우게 된다.

 2. 확실한 증거를 가르침 (6)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가 확실한 만큼 이루어질 증거도 확실한 것이다. 만민의 죄를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 앞으로 말씀대로 다시 오실 것은 너무나 똑똑한 사실이다.

이미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희생하셨다면 이루어질 일이 너무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속죄의 은총을 받았으므로 앞으로 재림의 주가 올 때에 될 일이 분명한 것이라는 것을 바울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믿는다 하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에 대하여 갈망하는 마음이 없다면 초림의 주를 통하여 오는 산 체험을 받지 못한 자라고 볼 수 있다.

 3. 자기 사명에 대하여 거짓이 없다고 말함 (7)

참된 스승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고, 직접 주님께서 스승으로 세운 자라야 자격이 있는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를 반대하고 폭행을 하던 사람이었으나 주님의 명령을 받고 나서게 될 때에 언제나 자기 사명에 대하여 서슴지 않고 말하게 되었다. 인간이 스스로 연구했다는 것은 참이라고 할 수 없고 주님께서 직접 주신 것이라야 참되다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그대로 되지를 않으므로 참 말이 될 수 없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은 끝까지 주님께서 책임을 지고 행하시므로 참 말이 되기 때문이다.


 
4. 하나가 되기를 원함 (8-10)

복음을 전하는 바울은 옥중에서도 남자나 여자나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자기는 희생을 당할지언정 모든 사람들에게 다툼이 없이 하나가 되어 기도하면 승리할 것을 말했던 것이다. 기도라는 것은 하나가 되지 않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바울은 가르쳤다.

만일 서로 다투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 자체가 사단에게 먹힘을 당한 것이니 아무리 기도한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며,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서 기도해야만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가 되어 기도하여야만 완전한 승리를 이루게 된다. 아무리 바울이 진리를 바로 가르쳤다 하여도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하나가 못된다면 완전한 열매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스승이 없이 아무 것도 바로 할 수가 없고, 스승이 있다 하여도 가르침을 받은 자가 바로 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진리의 스승인 바울을 표본으로 삼는 단체를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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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 : 8~15 설교 :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차이점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차이점
 
-딤전2:8-15-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 남녀를 들어서 쓰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남녀에 있어서 사명의 차이점이 있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차이점을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손을 들어 기도할 특권이 남자에게 있음 (8)

하나님 앞에 손을 들어 기도할 특권은 남자에게만 있다. 왜냐 하면 하나님 앞에 대표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남자가 받았기 때문이다.

남종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하나님께 받아야 한다. 오늘의 교회에서 남종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것은 인간성이 남아서 서로 노하는 일, 다투는 일이 있으므로 그 손에 축복이 임하지를 않기 때문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은 자아라는 것이 완전히 죽어지고 조금이라도 감정이나 육적 정욕에 끌림이 없이 항상 거룩한 생활을 하는 자라야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모세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사람이었지만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반석을 두 번 쳤다는 조건으로 사명이 옮겨간 사실을 알 수 있다. 종된 자가 억울한 일이 있다고 해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과격한 행동을 해서 손으로 실수를 하게 된다면 그 손을 들어 기도할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남을 책망하되 사람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깨닫도록 하는 종이라면 지도자가 될 만한 자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순교자들은 억울함을 당하여도 하나님께 손을 들어 기도하고, 원수들이 죽이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세상을 떠난 자들이므로 왕권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해서 참지를 못하고 남을 때린다든지 합당치 못한 일을 감정으로 했다든지 하면 이 사람은 거룩한 종이라고 볼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손을 들어 기도할 자격도 없다. 우리 사명자의 오른 손은 하나님의 도구로만 쓰여지는 손이 되어야만 거룩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일절 순종할 책임이 여자에게 있음 (9-11)

여종은 대표적인 사명을 가질 수 없고, 대표적인 사람이 하는 일에 일절 순종하여 받들어 나가는데 전력을 두어야 할 사명을 가졌다. 그러므로 고전11:7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고 하였다.

남자라는 것은 대표적인 사람이 된다 하여도 여자의 순종이 없다면 아무런 영광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남종이 아무리 일을 바로 하려고 해도 사모되는 여종이 순종치 않고 반대하고 나선다면 대표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육적 부부가 아니라도 사명적으로 여종들의 받드는 것이 없다면 대표적인 사명자라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일하실 때에도 많은 여종들의 받드는 것이 있음으로서 그 사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자는 염치나 정절로 단장한 인격이 아니고는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자를 섬기는 사명을 가진 여자가 염치없이 대접받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나 정절을 지켜야 할 여자가 마음이 변해 버린다면 깨어진 뚝배기와 같이 아무런 곳에도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의복을 단장해도 섬기는 인격으로 아담하게 해야 하며 염치와 정절로 단장을 해야 된다. 받드는 사명을 가진 여자가 너무 값진 보석이나 의복으로 꾸민다는 것은 양심이 마비된 행동이므로 무엇이나 절약해서 간단한 것으로 몸을 단장하고 주의 사업에 전력을 두어 받드는 것이 있어야만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3. 남녀의 주권에는 차이점이 있음 (12-14)

남자의 주권이 여자를 지배할 수는 있으나 여자의 주권이 남자를 지배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창조를 받을 때에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돕는 배필로 여자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둘째 : 뱀에게 꾀임을 받은 자가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범죄에는 차이가 있다. 여자가 꾀임을 먼저 받아가지고 남자까지 망쳤다는 것이 큰 죄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남자의 주권아래서 여자가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도와서 일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은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의 차이점을 바로 가지게 됨으로써 복된 가정과 교회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가정과 교회라는 것은 남녀의 결합이 있음으로만 있을 수 있고,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명자는 자기가 맡은 일을 하되 남녀의 차별을 바로 두어야 할 것이다.

 결  론

오늘에 와서 남녀 동등권이라는 것은 국가를 발전시키고, 교회를 부흥시키고, 가정을 잘 움직이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녀 동등권을 악용할 때에 가정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고, 국가를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동등권이라는 것은 남녀 차별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는 남자 입장에서 권리를 찾고, 여자는 여자 입장에서 권리를 찾으라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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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3 : 1~7 설교 : 사명자의 사생활

 
사명자의 사생활
 
-딤전3:1-7, 요절:1-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되 사명자의 사생활에 있어서 작은 일에 바로 하는 자라야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사를 내리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일을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에 따라서 왕권을 받는데 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나무가 대중이 보도록 아름다운 열매를 맺되 열매로써 일하는 자에게 힘을 공급하는 것과 같이 사명자가 항상 사생활에서 바로 되는 자라야 대중을 살리는 열매있는 종이 될 것이다. 이제 크게 쓰는 일꾼이 되려면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본문에 가르친 것이다.

 1.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1)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없는데 따라서 열매는 따라가는 것이다. 어떤 종이 주의 일을 할 때에 중심에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중심보시는 하나님이 일을 한다 해도 외식하는 자라고 보게 될 때에 오히려 죄가 된다(마24:51). 누구든지 사명을 맡은 자로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부터 하나님은 일할 수 있는 은혜를 내리므로 열매가 있게 되는 것이다.

 2. 가정이 바로서야 한다 (2)

가정은 사명자가 일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내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부부의 신성과 절제, 근신이 있으므로 아담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부터 신성을 떠나고 절제있는 생활이 없게 된다면 그 종은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는 몸이 된 것과 같으니 자동적으로 힘을 낼 수 없고 열매를 맺는 단계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가정은 성도를 육적으로도 대접할 수 있고 영적으로도 진리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생활이 있게 될 때에 큰 일을 할 수 있는 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남에게 누를 끼치는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떠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3. 거룩한 인격을 이루어야 된다 (3)

하나님의 종은 그 몸이 존귀한 몸이니 그 몸을 정상적인 인격에서 움직여야 한다. 만일 취하는 술이나 또는 혈기내는 일이나 입으로 다투는 일이나 또는 물질에 끌리는 몸이 된다면 사명자의 인격을 상실한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먹는 일이나 혈기를 내는 일이나 다투는 일이나 돈을 따르는 일에 치우친다면 그 인격은 대중을 지도할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대중을 지도하는 종이 되려면 항상 너그러이 남을 용서하는 마음에서 움직이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이다.

 4. 가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4-5)

가정이라는 것은 작은 것 같으나 큰 것이요, 가장 존귀한 것인데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중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정의 자녀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를 알도록끔 되는 종이 되어야 한다. 만일 자녀가 업신여기고 대적을 하게 된다면 벌써 그 종은 하나님의 종의 권위를 가정에서부터 상실한 자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정에 식구들이 감동을 받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는 증거라고 보게 된다.

사44:3을 보면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하였고 49:25을 보면 “너를 대적하는 자를 내가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하였고 66:22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참으로 복 받을 종이 될 때에 가정 축복은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다(마19:29).

 5.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 (7)

사람이라는 것은 불신자도 양심이 있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종이 될 때에 교회 밖의 사람도 그 종을 참 종이라고 인정을 하게 된다. 언제나 교회 밖의 사람들이 그 종을 무시하지 못하고 옳다고 증거하게 될 때 자동적으로 그 종은 전도할 문이 열리는 것이다. 전도란 것은 말에 있지 않고 먼저 열매에 있어야 한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신이시지만 가장 세밀하시고 가장 무소 불능한 신이시지만 지극히 작은 백합화 한 송이까지도 입히시는 것이며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먹을 것을 주시는 신이시니 이러한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사생활에서 바로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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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3 : 14~16 설교 : 사명자의 목회 생활

 
사명자의 목회 생활
 
-딤전3:14-16, 4:6-16, 요절4:15-
디모데전서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11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着念)하라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 의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인류 생활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목회 생활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당 생활은 국민의 육적 생활을 지도하는 거요, 공장 생활은 물건 하나를 위한 생활이요, 군인 생활은 적군을 막기 위한 생활이요, 농민 생활은 열매 하나를 식물에서 얻고자 하는 생활이요, 상인 생활은 자기가 이익을 바라보는 생활이다. 그러나 목회 생활이란 것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모든 생명을 영생 세계로 인도하는 생활이다. 이 생활이라는 것은 저주받은 생활을 벗어나서 자신이 복을 받고 그 복 받는 진리를 남에게 가르쳐 주는 생활이다. 이제 목회 생활에 있어서 본문을 통하여 요소가 무엇인 것을 알 수 있다.

 
1.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것을 알고 행하여야 된다(3:14-16)

조금이라도 진리가 혼선되면 교회가 아니요, 진리가 정확히 바로 서므로만이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알고 자신이 진리에 온전히 바로 서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

 
2. 형제를 깨우치는 일을 해야 된다 (4:6)

목회자는 언제나 깨우치는 일이 있게 된다면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든다면 싸우는 군대가 자기 홀로 싸울 수 없고 다 같이 정신을 차려야 되듯이 언제나 하나님의 종은 대중을 깨우쳐 주는 일이 있을 때에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는 것이다.

 
3.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된다 (7-8)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해져서 일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면서 바로 서도록 연습할 때 성령은 그것을 기뻐하시고 나날이 발전해서 바로 일할 수 있는 생활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목회자는 모든 일을 경건하게 나가 보려고 연습적으로 노력할 때에 경건한 생활이 전부 이루어지는 열매를 보게 된다.

 
4.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고 노력하여야 한다 (9-10)

목회자는 조금도 사람에게 무엇을 얻어 보려고 할 때에 그 시간에서부터 실패다. 언제나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것만을 바라보는 마음이 불탈 때에 하나님은 친히 갚아 주시는 것이다.

 
5.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11-13)

모든 사람은 다 완전한 사람이 아니요,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한 단체가 되어 그 대표적인 사람의 철저한 인격에 감화를 받고 따라가므로 좋은 열매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니 목회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인격으로써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6.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어야 된다 (14-16)

언제나 목회자는 새로운 것이 있어야 된다. 예를 든다면 모든 식물이 새로이 진보하는 것이 없다면 열매를 거둘 수 없고 그 열매가 없이는 사회 생활을 이룰 수가 없음같이 목회자가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있어야 모든 영들은 그를 통하여 나타나는 역사에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되려면 전심 전력을 다해야만 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복된 자는 하나님의 집을 맡아서 주님 올 때까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라고 보게 된다(마24: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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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7일 수요일

성경 : 에스겔 2 : 제목 : 선지자의 급선무

       성 경 : 에스겔 2장
제 목 : 선지자의 급선무


  1. 말씀을 들으라 : 1~2

『 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

• 1절 : 하나님께서 에스겔"인자(人子)"라 부르신다. 본서에는 '인자'라는 말이 93차례나 사용되어 있는데, 그 뜻은 히브리어로 '뺀 아담'이요 '연약한 인간'이란 뜻이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94회나 사용됐다. 사 2:22, 시 146:3, 시 9:20절에 이르기를 인간은 의지할 바가 못 된다고 하심과 동시에 시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기록하셨다.
• 2절 :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  에스겔은 영광의 빛 곧 여호와의 빛 앞에 엎드리어 말씀을 듣게 되었는데(1:28),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신다" 하셨으므로(딤전 6:16) 인간의 죄악된 몸으로 그분을 보면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체휼하시사 그의 하늘 위엄 앞에 엎드러진 에스겔을 위로하시는 의미에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이다. 다니엘 요한 사도 역시 강렬한 빛과 같이 임하는 재림주의 형상 앞에 쓰러졌다가 주님의 어루만짐(안수)을 받고 일어나게 되었었다.

단 10:4 "정월 이십사 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가에 있었는데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 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계 1:9 "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예수님께서 친히 일으키시지 않고는 다시 오시는 그분 앞에 설 자가 없음을 잘 일깨워준다. 영혼구원을 얻은 대표 사도 요한이라 할지라도 쓰러져 꼼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기독교의 마지막 역사에는 재림 주 앞에 설 수 있는 개조의 역사가 반드시 존재할 것임을 부인치 못할 것이다. 바로 이 개조의 역사가 "새일"의 역사인데(계시록과 예언의 법), 주님의 피로 산 동역자들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고 있으니 가슴 아픈 분은 주님 뿐이시다.

   2. 말씀을 전하라 : 3~5

『 3 내게 이르시되 인지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 날까지 이르렀나니 4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이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듣든지 그들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실 때 예언을 듣게 될 상대방이 쉽게 순종치 아니할 자임을 미리부터 알려주고 계신다. 핍박과 반대는 바로 예루살렘(교회)에서부터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바 있다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사단은 택민을 미혹시켜 내적인 사상, 심령으로부터 마귀의 사상이 자리잡게 하여 진리를 대적케 한다. 이것이 사단의 사명이다. 성경은 전체가 사단과의 전쟁을 내용으로 하는데, 에덴에서부터 지금까지 싸워 이긴 자는 모두가 왕권이니, 치리자 자격으로 새 시대를 기업으로 얻게 된다(계 20:4~6).

• 3절 :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겔 33:11). 고로 반역만 일삼는 자기 백성에게 선지자를 보내실 때 "패역한 백성"에게 보낸다 하셨다. 이 말은 "패역한 이방들"이란 뜻인데, 하나님의 백성(교회)을 가리켜 이방이라고 하는 이유는 당대의 유대인들의 "패역"이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겔 당시의 이 '패역'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피흘리던 성경사수'를 통해 오늘날 예언서로서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을까? 바로 오늘날 피로 사신 교회 내에 이와 같은 패역이 존재할 것임을 거울로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는가!(히 10:1, 롬 15:4, 고전 10:6,11). 계 10:7~11절에 보면 종말에 될 일들(하나님의 비밀)을 옛날 선지자들에게 미리 예언해 두셨음을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말세 종들은 이 모든 말씀을 전 세계에 1,260일 다시 예언하여 증거 마치고 3일반 죽었다가 예수님 공중재림 시에 생기 받고 일어나서 휴거하게 된다(계 10:11~, 11:1~12).

• 4절 : "얼굴이 뻔뻔함"은 '얼굴이 굳다'는 뜻인데, 진리의 말씀 앞에서 아무런 감수성(感受性)도 느끼지 못하는 철면피적 기질을 가리킨다. 이렇게 된 원인은 원죄의 악이 발생하여 인간으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패역이 생활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 57:18 하나님께서 패역을 "고쳐주리라" 예언하셨다. 이는 사 19:19~22절에 애굽 땅 중앙제단에서 사 42:9~ 새일교훈으로, 사 43:1~ 야곱을 "신창조"하므로 불과 물이 못당하는 인격체를 만들어 새 천년안식을 주시겠다 하신 예언과도 같다.

• 5절 : "듣든지 아니 듣든지" -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공의의 심판이 오게 되니 종 된 자는 무조건 전하라는 뜻이다(7절 참고). 새 언약 은혜시대의 기독교 역사도 천국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되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도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졌던 것이다(마 28:18~20). 패역한 사람이야 듣든지 듣지 않든지, 사명자인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할 따름이다. 종말에도 역사는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옛날 선지자들에게 "내 백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 하심과 같이 지금도 역시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 계 22:6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구약 때 자기 백성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게 하셨던 것처럼, 종말에도 교회와 종들에게 강권으로 전하게 하시는 것이다(계 22:6,16). 전도대상은 일단 하나님의 백성부터이다. 계11:1~2절을 보아도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명령하셨다. '척량'이란 다림줄말씀을 전파함이다. 그러나 은혜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교회가 앞장서 예수님을 반대하므로 영혼구원이 유대를 떠나 세계적으로 전파가 되었듯이, 종말에도 하나님의 피로 산 백성인 기독교에서부터 새 일을 멸시하므로 환난에서 보호받는 육체 구원을 받을 자가 이방족 중 마음이 깨끗한 자들의 차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흰 옷 입은 자들). 이들은 종말의 강권역사 앞에 급히 깨닫고 돌아와 회개하여 영,육간의 구원을 누리게 된다.

계 7:13~17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에스겔이 목숨바쳐 전한 이 말씀을 우리 역시 계시록과 짝맞추어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와 성신 받은 종들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 이는 에스겔과 같이 순종하는 종말의 종들이 준행해야하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시다.

  3. 담대하라 : 6~7

『 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

• 6절 : 말세 종은 "담대하며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말세 종들은 가시가 찌르며 전갈이 쏘는 것 같은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사 48:10 "고난의 풀무"에서 택해 쓰신다). 사 29:1~4절 말씀도 말세 종들이 거쳐가야 할 시련의 관문이다. 사 41:8~15절에는 동방역사를 변론할 말세 종들을 하나님께서 100% 도와주실 것을 예언하셨는데, 지렁이 같은 종을 새 타작기와 같이 쓰신다 하셨으니, 먼저는 지렁이의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오직 성경 본문만이 우리의 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하였다. 렘 1:17절에서도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두렵건대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하게 할까 하노라" 하셨다.

• 7절 :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 여기 패역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결과이다. 이처럼 원죄가 유전되니(시 51:5) 죄를 타고 들어오는 사단의 역사로 6000년간 인류는 계속하여 범죄케 되었다. 사단이 미약한 야곱을 괴롭히고 참소할 때 인간은 이길 수 없어 쓰러지고 만 것이 오늘날까지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제 야곱의 집에 최후 소망이 있다. 바로 렘 31:15~22절의 역사이다.
렘 3 1:15 ".....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 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 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종말에는 여호와가 새 일을 창조하여 패역을 없이하고 촛대교회(여자)를 통하여 철장권세 종들(남자) 144,000을 일으켜 창조의 목적을 달성시키신다는 예언이다. 라헬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역사는 새 일 창조뿐이다. 여기서 라헬이 우는 것은 기독교가 17억인 이 시대에 예수의 천국복음이 전파 안 되어서가 아님은 누구나 인정할 줄 안다. 라헬이 우는 것은 이 큰 교회 중에서 마귀를 이기고 새 땅을 회복시켜 주의 자녀들을 들여보내는 대역사를 이룰 청년 남자들(사 23:4)을 양육지 못한 데 기인한다(사 51:17~23 참조).


  4. 재앙의 책을 믿고 준비하라 : 8~10

『 8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가록되었더라 』

마 24:45절에 예수님이 때를 따라 양식을 먹으라 하심은, 시대마다 주실 말씀 양식이 구분된다는 뜻이다.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구약 모세 때에도 시내 광야에서 율법을 주셨으나 약속의 땅 안식(가나안)에 못들어간 이유는 믿음의 화합이 없어서였다(시편 95:8~11).가나안을 향해 가는 광야 생활에서 애굽 양식을 사모하지 말고(민 11:5~) 만나만 먹어라 명령하셨던 것이, 천년왕국을 앞두고 영적 광야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배에는 쓰지만 입에는 단 작은 책을 꿀같이 받아 먹고 전 세계에 다시 예언하여라" 하는 명령으로 나타났다(계 10:8~11).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심판기에는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계 10:7). 그렇다면 이 시대의 만나는 계시록과 예언서뿐일 것이다. 이것은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에 믿음으로 화답할 때만 예수님께 연합, 일체가 되어 그(다윗)가 통치하시는 천년왕국(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비밀을 놓고 주신 사랑의 음성인 것이다. .
• 요 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유월절 양식).• 계 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본절의 두루마리 책은 심판 때 이루어질 내용들을 담고 있다(사 34:16).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애가, 애곡, 재앙"의 말씀이 기록된 저주의 두루마리인 것이다. 이 책은 "안팎"으로 쓰여 있으며(계 5:1), 가감하면 누구든지 저주를 받게 되는 심판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슥 5:1~11, 계 22:6~,16~).

이 날까지 기독교회는 천국복음을 전하므로 영혼의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충실히 사명 감당을 다하고 있다(씨뿌림의 역사). 그러나 계절에도 변화가 있듯이, 이제는 이 재앙의 책을 손종하지 아니하면 쭉정이가 되어 육체가 살 길이 없게 된다. 종말에 환난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가 마귀 세력에 의해 피해를 입는 큰 재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천년안식에 들어갈 백성을 위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심 - 추수의 역사=다림줄로 행하는 심판의 역사).

사 61:1~2 "은혜의 해가 있고 신원의 날이 있으니" 때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양식을 믿고
영, 육이 영생을 얻게 된다. 마 24:14~21절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천국복음 전파가 끝나면 창세 이후로 없던 큰 환난이 올 것인데, 당신께서 환난을 감해주시지 않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 예언하신 바 있다.

사 34:16절의 참 뜻도 짐승을 종류대로 대조해보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보면 율법
에 대하여 은혜에 대하여 환난에 대하여 새 시대 천년안식에 대하여 빠짐 없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당아와 고슴도치와 부엉이와 까마귀의 짝을 찾아보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께로 받은 "재앙이 기록된 이 책"을 반대하던 유대 왕 시드기야는 북방 바벨론 칼에 잡혀가므로 애가, 애곡, 재앙의 예언을 그대로 당하게 되었다(렘 39:1~). 종말의 기독교가 계시록과 예언서를 무시하고 십자가의 피로 얻는 영혼구원만이 전부라는 교만을 범하면 그대로 시드기야의 운명과 같이 되어 북방 칼에 잡혀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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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에스겔 8 : 제목 : 교회의 가증한 행위

      성 경 : 에스겔 8장
제 목 : 교회의 가증한 행위

본 장은 구약 솔로몬 성전의 가증한 우상숭배 모습을 통하여 종말의 피로 산 교회의 영적 부패를 예언하심과 동시에, 주님의 성전된 우리의 몸 안에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가는 갖가지 탐심의 죄악이 있음을 쳐서 예언하신 장이다. 8장의 부패가 현 교회의 모습인 것과, 내 속의 더러움인 것을 깨닫고 우는 자들은 9장에서 이마에 먹칠을 받게 되나 8장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살육하는 기계가 지나간다.

  
1. 선지자에게 교회 내부의 죄악을 보이심 : 1~5

『 1 제육년 유 월 오 일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았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

"유다 장로들"은 경험 많은 노인들로서 백성을 지도할 만한 현숙한 자들이다. 에스겔과 이들은 당시 북방 바벨론에서 포로민의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함과 동시에 그것을 전할 능력까지 함께 임하였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진실한 맘으로 에스겔서를 정독하는 자에게는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할 수 있는 권능도 임하므로 이 시대의 파수꾼 자격을 갖추게 된다.

『 2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어 그 허리 이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

이 계시는 1:27절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으로서 진노의 주, 심판의 하나님을 묘사했다. "불 같은 형상"이란 계시록에 나타난 홍보석 같은 형상이며(계 4:3), 다니엘서에 나타난 불꽃 보좌와 불 바퀴 가운데 좌정하신 심판주의 형상이다. 히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 하나님께서 이렇게 소멸하시는 심판주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은 유다(교회)의 죄악을 향해 쌓인 당신의 진노를 보이시기 위함이다.

『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는 투기의 우상 곧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
* 모숨 : 가늘고 긴 물건이 한 줌 안에 들만한 분량.

선지자는 이상(理想)을 보는 중에 성령님께 이끌려 본토 예루살렘으로 옮기워졌다. 이상 중에서 그는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을 보았는데, '안뜰' 형상은 그로 하여금 포로이송 이후 유대 고국의 형편이 어떠할까를 추상케 했을 터이다(왕상 6:36, 7:12). 이곳은 "투기를 격발케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인데,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미운물건'(출 20:5)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할 성전 안에 있었던 것일까? 왕하 21장을 보면 악한 왕 므낫세 가 부친 히스기야의 선한 행위를 좇지 않고, 여호와의 전에 아세라 우상, 바알 우상, 하늘의 일월성신 위한 제단을 쌓고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한 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산 일이 기록되어 있다(왕하 21:1~9). 이는 21C의 기독교 성전도 하나님의 투기를 격발케 하는 이러한 우상들로 꽉 차 있음을 고발한 것이다.

『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보던 이상과 같더라 』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란 참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방국가들의 우상과 구별하여 부를 때 쓰이는 성스런 호칭이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들에서 보던 것 같은 진노의 영광으로 나타나신 것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서 있는 우상 때문이었다(3절下).

『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편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편에 그 투기의 우상이 있더라 』

투기의 우상이 '북편'에 있다는 건, 옛날이나 종말이나 사단의 활동 본부는 '북편'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 14:12~20절에도 바벨론의 위치가 유다를 기준으로 할 때 '북극'이라 기록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영적 선구자, 영적 유다인 대한민국을 중심하여 북편으로는 무신론 공산당이라는 가장 극악한 우상단체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이 바로 21세기의 바벨론(적기독)이다.

겔 38: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메섹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그 모든 떼와 극한 북방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 내리라..... 7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지어다 8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안정기, 탈냉전, 평화공존) 9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

'북방'은 예나 지금이나 부패한 교회를 치는 막대기 사명으로 쓰인다.


  2. 교회 내부 벽에 곤충 우상을 장치함 : 6~12

『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

"크게 가증한 일"이란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제일로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그들이 비극을 당하게 되는 제1원인은 언제나 우상숭배였다. 렘 12: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결국 길이 참으시는 동안도 하나님을 발로 차고 우상을 섬기던 유다 백성도 끝내 회개치 못하므로 70년간 북방에 붙여져 모두 죽게 되었던 것이다.

"담에 구멍이 있더라" - 이것은 제사장실의 벽에 있던 창문 구멍일 것이다. "담을 헐라 하시기로" - 인간들은 범죄 사실을 숨기며 거룩한 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신다. 헐라는 것은 썩은 것을 보이시고 고쳐 수술키 위함이다.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비밀스레 출입하던 문을 뜻한다. 우리 타락한 인간은 뼛골 속에 박혀 있는 원죄악(패역) 때문에 은혜를 받고서도 매 순간 순간 범죄하게 된다. '큰 가증한 일', '담', '비밀스런 문'은 구약 성전의 타락된 종교형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내면의 부패한 모습인 것이다. 그렇게 알고 읽어야 내 뼛골 속이 깊이 숨겨진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 9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

하나님 앞에서 범한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1~ 2차에 걸쳐 바벨론에 잡혀갔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백성 중에서 우상숭배가 근절되지 않은 사실을 보여주셨다. 이것이 바로 패역이다. 패역이 발생하는 이유는 선악과의 원죄 때문이며, 예수님은 이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성경을 기록케 하시고 친히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다. 사단에게 접붙어 패역하게 된 인간이 살 길은 예수님께 접붙어 수술을 받는 길밖에 없다(사 57:17~18).

축복을 주시려고 당신이 영으로 계실 때 인자 에스겔을 보내어 대신 예언케 하셨건만, 패역한 백성은 에스겔의 묵시를 속담(12:22)이라 무시하며 고집을 부리다가 시드기야 왕 11년에 끝내 회개치 않은 죄값으로 성전은 불타 소멸되고 남은 백성은 세 번째로 바벨론에 잡혀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 연속된 패역의 역사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기독교 성도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일까? 예수 믿고도 저지른 우리의 가증하고 악한 행위는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행해진 과거의 범죄뿐만 아니라 지금 혹은 이후로 마땅히 해야할 것을 행치 않은 것도 큰 죄에 속한다 하셨다(약 4:17).
나는 예수 믿고 중생 받았으니 나에게는 죄가 없으려니 하는 생각도 크나큰 죄악이 된다. 왜냐? 이것이 바로 거짓말하는 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요일 1:8).
우리는 은혜 속에 거하는 때에라도 얼마든지 죄 지을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언제나 적절한 환경과 온도만 조성되면 세균처럼 피어오를 우리 속의 무서운 범죄성을 깨달아,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예언서가 아니면 성도 안에 탐심(우상숭배)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시대의 교회가 예언서를 크게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박옥수로 대표되는 구원파의 교리가 점점 더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믿으면 더 이상 죄가 없는 의인이므로 주기도문이나 회개기도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그들의 교리는 마귀의 쑥물이다.

『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

동물숭배는 애굽의 미신이었는데, 이스라엘까지 이방 족속의 이 미신을 모방했던 것이다. 동물우상을 포함한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은 탐심과 패역의 상징이다(골 3:5). 만물을 다스리라고 지음받은 인간(창 1:26,28. 2:19)이 곤충 형상의 우상 따위나 그려놓고 비밀스레 출입하여 복을 구했다는 건, 인간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아닌가?

『 11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

"70인"은 모세가 세운 칠십 장로들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 공의회' 위원들이다. 백성의 머리된 자들이 이처럼 심히 미혹되어 우상을 섬겼다는 건 실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지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를 섬기는 일은 최고의 흑암이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무신론과 손잡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행위와 구약 장로들의 저와 같은 행위가 무엇이 다를까?

『 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

이들은 우상숭배 죄 때문에 북방환난을 당하여 놓고도 마땅히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우상숭배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한다(렘 44:17~18 참고). 조선기독교가 일제 칼(하나님의 몽둥이)을 당하여 놓고도 회개는커녕 도리어 더러운 신사참배를 교단적으로 가결한 것(장로교 27차 총회)은 구약 때와 동일한 죄가 아닐 수 없다. 패역한 조선기독교는 도리어 에스겔과 같이 이 민족을 파수하던 주기철 목사의 목사직을 파면시키고 그를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순교 53주기를 맞아 주기철 목사 추모예배와 동시에 목사 복권 및 복적 선포식을 행하였는데(1997.4.20. 예장통합), 이는 양심적으로 과거의 죄를 회개한 자리라기보다 자신들의 양심이 편해지고자 행한 행사로서의 성격을 보인 외식적 모임이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회개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고함과 동시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다시금 성령의 도우심으로 일어나 성결로 나아가는 과정인데, 현재 W.C.C.에 가입한 죄악을 보지 못하며 그것을 회개치도 못하는 그들이 어찌 과거의 죄인들 깔끔하게 돌아볼 수 있으랴!

이 나라가 이러한 죄악을 회개치 못한 채 계속하여 교권을 의지하며 타협적인 노선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공산당에 이은 제3차 몽둥이가 내려오게 된다. 교회는 자신의 '여러 가증한 행위'를 에스겔서를 통하여 깨달아야 산다.


  3. 여자들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함 : 13~16

『 13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

"담무스"는 바벨론과 베니게(페니키아)에서 숭배되던 국신의 이름이다. 유대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서까지 이방 잡신을 예배한 것은 '크게 가증한 행위'가 된다.

이와 같이 20세기 한국교회도 천조대신을 앞세운 일본의 칼이 두려워 1~2계명을 범하였고, 21세기 세계교회 역시 이방 무신론 '세력의 신'을 섬기는 세계에서 나온 거짓 선지와 손을 잡고 세계교회협의회(W.C.C.)나 한국교회협의회(K.N.C.C.) 같은 가증한 단체를 이루는 것은 명백히 영적 우상숭배에 속하는 것이다. 단 11:36~39절에 '세력의 신'을 섬기는 북방 무신론 군대의 강포한 활동이 예언되어 있다. 합 1:6~11절을 보아도 북방은 '그 힘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라 했다.

무력이 겁이 나기에... 사랑이란 단어를 이용하여 마귀의 자식들이 외치는 '평화공존'을 받아들여 한 단체를 이룬다는 것은 엄청나게 크나큰 가증한 일이 된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셨다.

『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

"이십오 인"이란 구약 제사장 24반열에서 각각 한 사람씩의 대표자를 뽑고 거기에 대제사장 1인을 가산한 데서 나온 수이다(대상 24:7~19). 그들이 "여호와의 전을 등진 태도"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징표이다(렘 7:24, 슥 7:11~14). 태양을 숭배한 범죄는 므낫세 왕 때부터 행해진 죄악이다(왕하 21:1~17).

종말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대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면 다니엘서에 예언된 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 하셨다(마 24:14~15). 멸망의 가증한 것은 '후 3년 반'에 들어가면 공적으로 세워져 경배를 받겠지만, 지금은 정치 종교적으로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미혹하여 범죄케 하는 때이므로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들지 않으면 청황색말 궤휼을 분별할 수 없다. 청황색말은 '후 3년 반'에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청황색말은 지금 세계를 누비고 있는 중이다. 청황색말이 행하는 정치궤휼(공산당의 평화공존), 종교궤휼(WCC,에큐메니칼)을 분별치 못하면, '후 3년 반'에 들어가 사망과 음부로 떨어지는 것이다.

스룹바벨 선교회는 '전 3년 반'까지 활동하는 제단으로서, 모든 예언서를 밝혀 이 땅에 다시 예언하고 있지만, 교만한 교권은 교회 규모와 세상 권세를 앞세워 작은 제단을 압박 멸시하고 있다. 예레미야를 군박하고 때리고 구덩이에 던지면 그리 한 정권과 교권은 북방 칼에 휘둘리고(렘 12:12), 그 왕의 눈알이 뽑히는 것이며(렘 39:7), 살아남은 자는 저 적막한 유브라데 강 건너편 바벨 땅으로 내던지움을 당하는 것이다(70년포로). 또한 에스겔을 조롱하고 멸시하면 북방이 와서 그 코와 귀를 깍아 버리는 것이며(겔 23:25), 아모스를 배척하면 배척한 세력의 아내들은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되며 그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그 땅은 줄 띄워 나누이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 더러운  땅에서 죽게 되는 것이다(암 7:12~17).

하나님의 노를 쉬게 하는 것은 회개뿐이다. 그 종의 말에 청종하는 길뿐이다(사 50:10). 종이 지적하는 교회의 가증한 행위를 빨리 깨닫고 회개하는 길만이 살 길이다. 그러나 언제나 종은 미약하고 교권은 강대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4. 강포한 행위가 가득함 : 17~18

『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

문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위력에 있다. 유대인이 사단에게 영적으로 미혹받다 타락의 길에 서게 되었으니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불쌍한 인간을 살리려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살리려는 신은 배척하고 멸망시키려는 사단을 따라가게 되면 공의의 하나님은 그를 살릴 수 없다.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인데 사단에게 미혹받은 이방을 좇아 그 우상숭배 관습을 모방하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하고 역겨운 행동이겠는가! 이러한 죄는 종교적 외식에 더하여 철면피한 양심까지 드러낸 죄악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행하실 때 이러한 자들을 절대 돌아보지 않겠다 선언하셨다(잠 1:28. 사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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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에스겔 9 : 제목 : 구원과 살육 심판


성 경 : 에스겔 9장
제 목 : 구원과 살육 심판



(9장 본문은 구약 때 성취된 적이 없는 예언으로 인간 종말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특별 계시이다)
 
1. 세계적인 대표자 6명이 등장함  : 1~2

『 1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2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

본문의 예언은 구약 당시 솔로몬 성전의 영적 부패를 향해 외친 예언이 종말의 교회를 대상으로 최종 결실을 맺는 구조이다. 사실 이 예언은 구약 교회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종말을 향한 특별 계시이다. 왜냐하면 에스겔 당대에는 유다를 중심한 '다섯 사람'이 살육하는 기계를 들고 등장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취되지 않은 모든 예언은 앞으로 성취될 것이다(마 5:17). 고로 '5대 강국'과 '먹그릇 찬 서기관'은 말세가 되어야 등장한다. 즉 에스겔 9장은 말세 사명자들이 다시 예언(계 10:7~11)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2,600년 전에 미리 고해 두신 내용이 된다. 그러므로 나팔재앙이 진행될 20~21세기 이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에스겔서를 읽거나 외칠 수 없었던 것이다. 외쳐봐야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받은 묵시들이 종말의 세계 기독교 안에서 실체화되어 이루어지는 이 신비는 모략과 경륜에 뛰어나신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기묘한 일이다(사 46:10).

본 장의 예언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는 국제연합(U.N.)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1945년 10월 24일 U.N.이 창설될 당시 상임이사국은 다섯 나라였다(미국, 영극, 프랑스, 소련, 중국). 그러나 중국 공산화과정에서 1949년 12월에 자유중국이 중공에게 쫓겨 섬으로 축출되면서 상임이사국의 수는 다섯 나라에서 네 나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중공이 힘을 키워 1971년 10월에 U.N.에 재가입하므로 세계는 다시 '다섯 성읍'의 시대가 된 것이다.

성경은 언제나 현재를 말씀해 주시는 책이다. 달리 말해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시는 신이시란 뜻이다. 그분이 쉬지 않고 일하신다는 것은 말일(末日)에 가게 되면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 하셨다(렘 30:24). 우리는 이 중요한 말일(末日)의 시기에 태어난 복된 사명자들이다.

에스겔서는 주 재림 때에 되어질 예언이므로 오늘날의 세계정세는 이 계시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없다. 먹그릇을 찬 '한 사람'은 말세종이니 세계적인 우상 곧 <종교 통합운동>이 진행될 종말의 시기에 이를 쳐서 예언하기 위해 등장한다. 에스겔 8장을 보면 육적 유다가 가증한 우상을 성전 안에까지 끌고 들어와 숭배했던 것처럼, 종말에도 영적 유다가 에스겔 8장과 같이 세계적인 미운물건 W.C.C.의 활동을 교회 안에까지 끌고 들이고 말았다. 이 가증하고 엄청난 범죄를 보며 우는 자들(겔 9:4)은 하나같이 참 종의 입에서나가는 다림줄의 말씀인 <다시 예언>을 들을 때 영계적으로, 사상적으로 한 소속임을 확인하며 모여들게 된다(습 3:18~19).

가증한 종교행위를 보며 우는 이 종들은 영계적으로 큰 사명이 부여돼 있는 선구자들이다. 그들의 이마에 먹칠이 된다는 것은 종말에 다시 예언하는 한 제단에서 가증한 바벨종교를 쳐서 예언할 때 그 예언의 말씀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용이 압박하는 한 제단에 연합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는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계시록 7장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에스겔 9장에는 가증한 일들로 인하여 우는 자들의 이마에 먹칠을 한다. 그런데 세밀히 구분해 보면, 먹칠은 '다섯 성읍' 때 되어진다 기록돼 있고, 인치는 역사는 '네 천사'가 충돌할 때 벌어진다고 기록돼 있다(계 7:2~3). 먹칠할 때 있던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5대강국 중 한 나라가 인 치는 역사가 일어나기 전 사라져버린 것이다. 바로 중국의 패망이다(사 7:16).

3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중국은 이미 세력을 잃은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것이 성경이 알려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먹칠은 인 맞을 종들인 '우리 하나님의 종들'(144,000)을 불러 일으키는 '우리'라는 종들을 빚어내는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처녀잉태라는 승리의 징조에 따라오는 법적인 말씀의 승리로 인해 이미 1975년에 시체가 되어 있는 것과 같지만, 아직 육적으로는 건재한 듯 살아 있다. 저 망한 놈이 마치 안 망한 듯 버티고 있는 1975년도 이후의 시기는 바로 애굽 땅 중앙제단의 말씀권세로 선구자적인 종들을 찾아내어 그 인격을 빚어내는 이마에 먹칠하는 시기인 것이다. 훗날 황충의 피해를 이기고 나갈 철장권세를 받은 종들(계 9:3~4)은 바로 이 시기에 이마에 먹칠받은 선구자적인 사명자들의 전도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종말의 추수역사에서는 한 제단이 등장하여 '우리'라는 소수의 선구자적 종들을 빚어내고 그들이 다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다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므로 144,000이라는 거대한 군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들은 계 11:1~12절을 보니 성전 안에서 척량을 받고 권세를 얻어 1,260일간의 예언 증거를 마치고 휴거하게 된다. 이렇게 성전 안에서 척량받지 못한 나머지 교회는 협상세력이 장악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성전 밖마당이 되는 것이다. 성전 안의 참 종들을 대표하는 한 제단은 '스룹바벨 성전'이다. 뒤집어엎는 심판기에 하나님의 인(印)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다 하심과(학 2:6~7, 21~23), 머릿돌, 다림줄이 그의 손에 있다 하심을 인정할 때(슥 4:7~10) 종말의 인(印)치는 역사의 출발은 본 선교회가 선포한 1975년 8월15일 이후의 말씀 선포 역사로 시작되었고, 이 역사는 5대강국 시대에 되어지는 먹칠하는 역사인 것이다. 이 제단은 아무 때나, 아무개에 의해서 아무렇게나 세워진 제단이 아니다. 반드시  다리오왕 2년 9월 24일에 '스룹바벨'의 사명자가 영적 유다의 '70년 회복'을 깨닫고 지대를 놓아야 한다(학 2:10, 18, 20~23, 슥 4:9). 이 역사를 지지해주는 국내적 징표가 바로 유신 정권의 출발이며(1972년 10월 유신헌법 통과, 12월 취임, 1973년은 유신 제1년, 1974년은 유신 제2년), 세계적 징표는 1971년 10월 1일 중공의 U.N. 재가입이다(5대강국의 시대로 접어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참 종들은 성경대로 걸어가는 제단에서 다시 예언하는 말씀에 반드시 연합하게 되어 있으며(계 7:2~8, 사 19:18~19), 세계적인 종들을 일으킬 기폭제 역할을 할 종들을 빚어내는 기간이 곧 이마에 먹칠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먹칠을 받는 자가 되려면 선결조건이 있다. 바로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로 울며 탄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슬픈 아리엘과(사 29:1~4) 미약한 야곱(암 7:1~2)들에게만 그 이마에 먹칠이 임하게 된다.


  2. 교회의 가증한 죄 때문에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함 : 3~4

『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 찬 사람"은 당시로는 에스겔이며 인간 종말로서는 다림줄과 머릿돌과 인의 권세를 가진 말세종이다. 이 사명자는 겔 2:8~3:11절을 거쳐가는 자이다. 종말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미혹하고 있지만, 학 2:20~23절은 혼란을 정돈해 준다. "열방을 뒤집어 엎을 때" 하나님은 유다 총독 스룹바벨을 당신의 인(印)으로 택해 놓았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계 7:2~8절에 해 돋는 동방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印)을 치니 인(印) 맞은 자의 수가 144,000명이라 하였다. 결국 '다른 천사'는 '서기관의 먹그릇 찬 자'이고 인(印)을 맞는 자들은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순교자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이다(계 6:11). 이들은 백마용사들(계 6:2)로서 우상의 세력과는 영적으로 원수된 자들이다. 결국 먹칠과 인침은 144,000을 이루어낸다는 데에서는 다 같은 맥락이지만,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기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숫자나 예언성취의 무대 등을 고려해 볼 때 5대강국 때 먹칠이 임하다가 중국이 패망하면서 4대강국의 시대로 접어들어 전쟁의 기운이 감돌 즈음 인치는 역사가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먹칠과 인침은 이처럼 시기에 있어 명백히 선후관계가 형성됨을 알 수 있다.

"가증한 일"이란 종교적으로 우상을 섬기는 일인데, '후 3년 반'이 오면 노골적으로 만민을 그 앞에 경배시키는 강권정책을 쓰지만(단 9:27. 계 13:15), 현재는 음성적으로 정치 종교를 통해 종들과 양 떼를 점령해 나가고 있다. 바로 'W.C.C.' 및 '로마가톨릭'의 가증한 활동들이다(666에 대한 상고를 참조). 진리의 사상전쟁은 빛의 세력과 흑암의 세력이 격돌하는 것으로 5개월간 세계적인 싸움이 있게 된다. 어둠의 세력은 전갈의 권세를 갖고 나오는 황충떼의 세력이며, 빛의 세력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印)을 맞고 연합된 세계적인 스룹바벨 단체이다. 싸움이라고는 하나 사실 이는 인(印) 맞지 못한 자를 골라내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일 뿐, 하나님의 인(印) 맞은 권세의 종들에게는 조금의 해(害)도 없다.

타작이란 쭉정이를 어떻게 태우느냐보다도 어떻게 알곡을 다치지 않게 추려 창고에 들이느냐에 참 목적이 있다. 고로 종말에 임하는 교회심판과 세계심판도 인간 중에 알곡을 뽑아내기 위해 임하는 환란임을 알 수 있다. 알곡은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한 자이다.
마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에스겔보다 약 150여년 전에 활동한 이사야 선지자는 사 19:1~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19:18~ 세계에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는 '장망성'이라는 묵시를 받았다(장차 망할 성읍은 러시아로서 세계를 궤휼로 홀려 그들로 협상죄를 짓게 하다가 계 17:8. 단 7:11,26, 8:25, 11:45절 예언대로 망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때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의 제단'이 있겠고 그들이 압박을 당할 때 부르짖으므로 '한 구원자'(사 19:20)를 보내서 세계를 구원시키겠다고 예언하였다. '한 구원자'는 대표 종이요, '다섯 성읍'은 5대강국이니 이들을 합하면 총 '여섯 사람'이 되는 것이다(2절).  이들은 인간 종말의 추수꾼들이다. 하나는 알곡을 모으는 의(義)의 타작기요, 다섯은 쭉정이를 심판하는 악의 타작기들이다.

모든 성경은 인간의 종말을 목적하여 기록된 것이며, 그 중 구약은 종말을 미리 고하고 보여 주려는데 목적을 둔 책이다(사 46:10. 히 10:1. 롬 15:4. 고전 10:6,11). 본격적인 종말의 동방역사를 정확히 짚어 말씀하실 때 사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하신 것이며,

이 때 당신이 붙들고 쓸 말세 종의 특권이 어떠함을 말씀하실 때 사 43:13 "과연 태초로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자가 없도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든든한 힘이 되어 주시니 아무리 패역한 교회와 강포한 북방이 우리를 압박하여도 우리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담대히 예언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아멘!

사 19:20절의 '한 구원자'(사 19:20)는 중앙제단을 지대 놓은 대표 종이며(학 2:10~23 스룹바벨), 중앙제단 '변경의 기둥들'은 세계적인 144,000명이다. 이사야에게 묵시 주신 '한 구원자'가 바로 에스겔에게 묵시 주신 '서기관의 먹그릇 찬 자'이니, 이 묵시 모두는 학개 스가랴서 예언의 주인공이 되는 '스룹바벨' 역사로 수렴된다.

"가는 베옷"은 하나님의 종인 제사장의 복장이다. 말세종의 사명은 주님께 바쳐질 세계의 알곡을 모아들이는 제사장의 사명이니 이 역사로 세계를 살릴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은 초막절 역사를 거쳐 거룩한 제사장국가로 성별된다.

유다가 70년간 바벨론에 포로 되었다가 죄값을 제함받고, 푸른 순 같은 2세들을 데리고 귀국할 때 스룹바벨 총독의 지도하에 인도되었고, 그의 손으로 성전 지대가 놓아지고 또한 필역됐다(스 6:14~15. 슥 4:9). 유다의 역사임과 동시에 학개, 스가랴서에 기록돼 있는 이 예언은 계시록 10:7절이 읽혀지는 오늘날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10:7)이 되는 것이므로, 이 인간 종말에 영적 유다의 사명을 가진 극동 아시아 한반도 남단에서 예언대로 다리오 왕 2년(1974. 유신2년) 9월 24일에 촛대 교회를 지대놓은 이면적 스룹바벨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교회는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 시대에 맞추어 다시 예언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제단으로서 '먹줄이 치어진' 제단이다(슥 1:16). 이 제단이 기록된 사명을 완수할 때 세계적으로 모집된 144,000은 북방까지 들어가 예언 증거를 마치고 들림받게 되며(계 11:1~12, 단 10:1~4),
흰 무리는 예비처로 인도되어 둘째 화, 셋째 화를 피하고 새 시대의 백성이 된다(사 33:20~24. 계 12:6~).


  3. 이마에 표 없는 종은 심판을 당함 : 5~7

『 5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 상에서 승리하시고, 부활 후 승천하셔서 성부께로 받으신 '안팎으로 기록된 심판 책'은 바로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이다. 이것을 압축하면 바로 계시록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계시록 5장 = 인권인수). 계 10:7~11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여 주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신 말씀은 나팔이 기록된 계시록은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의 엑기스라는 뜻이다. 고로 이 말씀을 깨달은 자들은 작은 책(계시록)을 꿀같이 먹고 나가서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율법, 시편, 예언서를 짝맞추어 다시 예언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주신 지상 명령이다.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을 빌어 3,500년 전에 이미 인간 종말을 예언하셨다. 그러나 구약교회 때는 살육기계를 잡은 다섯 사람이 없었고 오직 바벨론 한 나라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는 핵무기와 거부권(veto)을 소유한 5대 강국이 등장해 있다. 한국 또한 아시아의 공산화에서 벗어나 마지막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사명이 있기에 만국의 보배가 임하여 영광으로 충만케 해주시겠다는 학개서 2:6~23절의 제단이 이 대한민국 땅에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스룹바벨 제단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그날을 위해 지렁이같이 멸시받으며(사41:14) 슬픈 아리엘이 되어(사29:1~4) 전통에 감취어져 있는 상태이다(사 49:1~4).


백마 편에서는 1958년 3월 19일 계시록 해석으로 출발하여 1974년 9월 24일에 순의 제단이 세워지고(학 2:20~23, 슥 6:12) 북방을 이겼다는 징조를 먹고 있으며(사 8:1~4, 37:30~32), 청황색말 편에서는 1958년 3월 18일부터 붉은 짐승의 나라(소련)에서 흐루시쵸프가 종교를 이용하면서 등장해 거짓 평화공존, 핵무기제한, 핵실험 금지라는 미혹의 연기로 세계를 뒤덮은 상태이다. 전 세계의 은혜 받은 교회(피로 사신 교회 / 행20:28)는 이를 분별치 못하므로 오늘도 무신론 공산권에서 배출한 가짜 목사들과 손을 잡고 "반전, 평화공존,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가증한 기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방의 거짓 평화(연기)가 해(말씀진리)와 공기(성령역사)를 어둡게 만들었다. 이것이 오메가의 미혹해 보는 흑암이다(청황색말). 예수님의 재림 때는 마 25:1~10절 비유 말씀같이 10처녀가 졸며 잘 때이다. 이 흑암의 연기로부터 불원장래에 황충 떼가 일어나면 첫째 화가 시작된다. 그때가 되면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인 맞는 자들이 일어나 양떼를 살린다.

알파 때 에덴 동산에서도 뱀과의 사상전쟁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오메가인들 어찌 다르리요? 새 시대는 거짓선지의 평화 제스처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사상과 시온의 사상간의 정면 대결이 있은 후에 도래하는 것이다. 승리는 144,000명에게 있음이 작정되었고, 이들과 만왕의 왕 예수님이 지상강림 하면 온 세계는 1,000년간 평화로운 성도의 나라가 된다.

※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이마는 인격을 가리키는데, 기독교회가 예수님의 피를 영접한 후, 그분의 피로 산 말씀(사 34:16, 겔 2:8~10, 3:1~9)을 꿀같이 먹어야만 표를 받게 된다. 이 표가 마음판에 새겨진 자라야 사단 우상(단 2~3장)과 싸워 이겨 새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계 12:11). 창세기 3장에서 출발한 사상싸움이 6,000년간 흘러왔다. 이제 끝을 맺는 시점이니 인류역사 마지막 한 폐이지의 싸움이 바로  인 맞는 역사이다. 이마에 먹칠이 없는 자는 장로나 젊은 자나 처녀나 어린아이나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하나님의 인)있는 자는 건들지도 말라는 것이니 인 맞는 역사는 얼마나 귀한 역사인가! 늙은 자는 겔 8:16절에 나타난 25명의 태양숭배자이다. 정치배도, 종교배도자의 무리들과 협상하는 기독교(협상패)의 원로 지도자들은 바로 늙은 장로 곧 오늘날의 태양신 숭배자인 것이다.

영혼구원은 유월절 예수님의 새 언약 피만 있으면 얻었지만, 살육하는 자 5명이 나타난 이상 영육구원에는 또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오메가의 마귀사상을 이기는 방법은 피로 사신 하나님의 새 일(사 42:9)교훈으로만 가능하다고 못박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황충떼 역시 이마에 인 맞은 자 말고는 다 피해를 입는 것이니, 영혼구원과 위로의 역사만을 자랑삼고 응석부릴 때가 아니다. 초림의 예수님도 사단과 싸울 때 "기록되었으되" 한 마디로 승리하셨듯이(마 4:4), 우리도 "기록된 말씀"으로만 원수를 이기고 새 땅을 정복할 것이다(사 49:8). 말씀 무장이 없던 시대 곧 시드기야 왕 11년(B.C.587)에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백성은 포로가 됐고, 부자나 출세한 자는 다 북방칼에 죽거나 잡혀갔던 사실은(렘 39:1~11), 말씀무장이 없는 이 시대를 미리 찍어놓은 사진인 것이다.

영원한 복음을 전해보니 많은 성도분들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교회에는 결코 심판이 없습니다.
다른 데 가서 전하세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분들은 다음 말씀들을 전혀 모르고 계신다.
성경 어디를 보나 심판은 성전에서부터라고 예언되어 있다(대하 36:17~23).

언제까지든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며 어리광피우는 어린아이의 자세로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예수님은 정녕 씨 뿌려 물줄 줄만 알고, 추수할 줄은 모르는 바보 농사꾼이신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사 28:23~29). 예수님은 마 24:45~51절에서 친히 교회 심판을 말씀하셨다. 피로 산 교회는 심판 시(時) 절대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안전지대는 하나님의 인(印)으로 모인 촛대 교회뿐이다.  


  4. '협상교회'의 죄악과 '순의 종'의 순종 : 9~11

『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

"죄악이 심히 중하여" 선민의 커다란 죄악은 하나님을 신앙치 않는 일이다.
사 57:3 "무녀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느니라 하셨느니라"
계 17:3 음녀 바벨교회는 중한 죄악을 범한 기독교를 보인 것인데, 큰 붉은 짐승을 타고 호사했지만, 짐승에게 속아 이용당한 후에는 짐승의 밥이 될 것을 예언하셨다(계 17:16). 영적이건 육적이건 죄값은 사망이다(롬 6:23).

"불법이 찼나니" 불법이란 예언의 말씀을 버리는 행위이다. 심판 직전에는 언제나 불법이 만연한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에덴시대에는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불법이 있었고, 가인을 내어쫓고 의로운 셋의 계통을 성별하신 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인의 딸들을 아내 삼아 빛과 어둠이 혼혈되는 불법을 저질렀기에 홍수 심판이 온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주신 후 당신의 백성이 율법을 역행할 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곧바로 심판치 아니하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깨우쳐 살리려 하셨다(렘 7:13,25~, 11:7~, 25:4, 26:5~, 29:19, 35:15. 44:4~). 이렇게 하신 것은 바로 오늘날 서기관의 먹그릇 찬 말세종의 사명을 미리 보여주시기 위힘이다. 종말의 피로 산 교회가 타락할 때도 하나님은 새 일의 교훈으로 훈계하신 후 끝까지 불순종하는 자들만 추려 심판하실 것이다.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 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구약 교회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때리고 돌로 쳐죽인 불법은 하나님 당신이 사람되어 오셨을 때에도 변하지 않았다.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유대교회의 역사 자체는 전체가 불법의 역사였다. 이 불법이 오늘날의 교회에서 다시금 반복되므로 살육하는 기계잡은 5인방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십자가를 믿고서 용서받았기로서니) 어찌 그것이 율법과 할례로 성별된 구약 거민보다 더 낳은 대우 받을 조건이 되리요?

• 마 24:11~12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사 10:1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내 백성의 가련한 자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3 너희에게 벌하시는 날에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4 포로 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의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  사 10:12 "이러므로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구약 택민이 그러했듯이, 오늘날 기독교 택민 속에도 원죄의 질이 남아 있으므로 사단의 미혹이 지나갈 때 패역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사 57:15~21절에 통회하고 겸손한 자에게는 그 패역을 고쳐주심으로 변화체의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거절하여 배반하는 자들은 고침받지 못하므로 평강이 없는 악인으로 멸망한다(환난시대의 불택자).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영적 상태가 어두워진 것이다. 하나님은 일하시나 인간의 눈이 가리워졌을 뿐이다. 이렇게 된 인간의 상태를 하나님은 '멸망하는 짐승'으로 표현하셨다(시 49:20). 사람은 회개한 상태라야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회개치 않으므로 하나님의 역사를 감지치 못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은 천지에 층만하시다(렘 23:24). 그들은 스스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시대나, 무슨 일에나 당신이 친히 주장(主掌)하시며 주재(主宰)하시는 신이시다.

『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

어느 시대나 죄악이 관영한 곳에는 심판이 내리는 법이다. 죄악이 관영한 상태라 함은 끝까지 회개치 않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져도 도리어 그 기회를 범죄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 상태를 가리킨다(롬 2:4~5 참고).

『 11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

"가는 베옷"은 제사장의 옷이다(출 28:42~43, 39:27~30). 종말에 택함 받은 사명자는 강권역사로 예언을 성취할 자들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인간 중에는 이 일을 맡길 자가 없다. 따라서 주님 편에서 사명의 옷을 입혀서 내어보내시되 반드시 원죄의 죄질을 고쳐서(사 57:18) 예수님이 받으신 철장권세를 넘겨주셔야만 일곱 영의 완전 역사를 대행할 수 있다. 이리하여 여호와의 용사들이 초막절에 승리하게 된다(겔 38~39장).

새 시대를 눈앞에 둔 21세기! 전 세계에 펼쳐지는 모든 문제는 예언서대로 진행되고 있다. 아들 취급도 못받던 가장 작은 베들레헴의 출신의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렸듯이, 예수님은 가장 천한 십자가로 사단의 세력을 굴복시키셨다. 이제 이 승리를 눈으로 보는 일만 남았는데, 동방의 지렁이들로 새 타작기계처럼 쓰시어 이루신다(사 41:14~15).

타작기계가 돌아가면 바벨론 우상이 멸망하고(사 45:1~5) 동방역사가 마무리된다. 이 일이 지금 동방 땅 끝의 지렁이 같은 제단 스룹바벨 9.24 성전을 중심축으로 진행중에 있다. 승리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머릿돌, 다림줄, 하나님의 印에 있도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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