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30일 일요일

스룹바벨 선교회 : (특강) 1. 창세기~계시록까지


성경 분해 원리


1. 하나님은 타락한 인생을 구원코자 하시는 사랑에서 약속의 말씀을 인간에게 완전히 알도록 하시되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이 완전히 나타나기 전에도 그 시대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을 개인적으로 준 것이 있으니 대표적인 사람에게 알려서 그 말씀을 진행하신 것이다.

(1)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 한마디가 교훈이 된 것이다. 이것은 향상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말씀을 지키지 못한 것이 향상보다도 도리어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피조물에는 사람을 위한 피조물도 있고 하나님을 위한 피조물도 있으니 하나님을 위한 피조물은 아담 하나만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한 목적에서 당신을 위하여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것이다. 영광을 주기 위해서는 "너는 법을 지키라"는 것이 당신을 위한 사람에게 준 말씀이다. 법을 주는 동시에 법을 방해하는 피조물을 두었으니 이것이 가장 간교한 뱀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적을 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모략적인 방법으로 둔 것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신이신 동시에 모략적인 신이시기 때문에 선한 모략으로 사람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2) 여호와 하나님은 법을 지키면 향상시키는 것에도 거짓이 없고, 법을 범하면 타락한다는 것에도 거짓이 없는 참 신이시다. 그러므로 법을 범한 인간에게 용서 없는 사망이 오게 된 것이다. 사망이 왔지만 사랑이라는 법이 있으니 이것은 사람이 실수가 있어도 용서해 준다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 동시에 그 법에 따라서 당신 앞에 제물을 바쳐 예배하는 것을 사람에게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반드시 희생의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게 된 것이 종교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3) 하나님은 사람에게 참된 제사를 받기를 기뻐한 것이 사랑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죄가 많은 인간이라도 회개하고 그 대신 피의 제사를 드린다면 받으시고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모세 5경에 쓴 이스라엘에게 준 교회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구원을 인류에게 준 교회는 못되고 한 법을 가르치는 종교에 불과했던 것이다.

(4) 입법적인 교회가 서는 동시에 이 교회는 단일 민족의 종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이방의 피가 섞이면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 율법적인 그 민족의 특징이었던 것이다. 이 민족은 성민이라고 성호를 가지고 내려온 역사이니 그것도 성경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던 것이다. 성경이 될 가치가 있는 것은 그 민족이 죄가 있으면 용서 없이 처벌을 내리되 회개할 때까지 벌하였고, 회개하면 다시 부흥시켜서 복을 내리도록 된 역사이기 때문에 성민의 역사는 하나님이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체험적인 종교로서 인류에게 알려준 것이다. 하나님이 그 민족에게만 관할하시고 다스렸기 때문에 그 민족의 역사를 모아서 하나님의 역사적인 존재를 알리게 된 것이다.

(5) 하나님은 율법적인 진리가 있는 동시에 그 민족에게 법으로 다스렸고, 또는 법으로 다스리는 그 사실을 들어서 심판새 시대를 가르친 것이 선지서라 하는 글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말씀의 법으로서 용서 없이 온다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 승천과 성신 강림으로서 세계적인 인류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을 가르치는 예언과, 말씀대로 오는 심판과 또는 말씀대로 오는 보호와 축복과 새 시대에 되어질 사실을 기록한 것이 예언서의 대지가 되며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됨으로서 성경이라는 책이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여 세상에 나타낸 성경이 이루어진 것을 가르쳐 그리스도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1)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적에 세상 죄를 진 어린 양이라는 제물로서 세상에 탄생하신 것을 도성인신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들에게 요구하는 제사를 속죄의 피로써 완전히 이루게 한 방법이다. 양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예언적인 제사에 불과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는 예언적인 제사를 열매로 탄생시킨 영원한 속죄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속죄의 보혈은 세계 인류를 다 죄에서 구원할 수 있는 가치를 이루게 된 것이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은 소망 없는 죽은 영들에게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주는 승리의 열매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부활의 승리를 가져오게 된 것은 은혜시대의 성도의 자격을 이루는 씨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씨가 들어간 영들은 나날이 장성할 수 있는 생명의 종교를 이루게 된 것이다.

(3) 성신의 역사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義)로만 오는 은사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 기독교의 성신의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이와 같은 역사는 천국 건설의 왕국을 이루게 하는 역사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이 왕권으로 누리도록 하기 위한 데까지 한계를 두고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활동이다. 이것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 신약전서라 하는 것이다. 신약이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가르친 것인데 이루어진 사실을 증거한 것을 4복음과 편지서라 하는 것이다.

(4) 그리스도는 다시 오는 역사가 있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서 심판기라 하는 것인데 이 때는 인종을 전멸시키는 혼란이 오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보혈을 믿고 자기의 백성된 자만을 평안히 안식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이 진리를 분명히 가르친 것이 계시록이다. 이 계시록이라는 것은 환난과 재앙으로 심판이 올 때에 그리스도를 왕권으로 맞이할 자의 되어질 일과 지상강림하는 그리스도를 백성된 자격으로 맞이할 자를 가르쳐서 마땅히 읽고 듣고 지켜야 할 진리를 기록한 책이 계시록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리는 구약 말기에 선지들이 본 심판과 새 시대의 진리가 전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3. 주 재림기의 역사

(1) 주 재림기의 역사라는 것은 증인권세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전 세계 인류를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의 능력과 권세로만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죄값으로 잃었던 백성을 다시 찾는 방법이다. 죄의 값이라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피가 없이는 탕감할 수 없다는 것이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재림기의 증인권세 역사라는 것은 이미 속죄의 은총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몸이 원수의 피해를 당치 않고 재앙을 받지 않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데까지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그러면 이 권세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세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의 권세는 만민을 죄 아래서 구출시키는 역사라면 증인권세 역사는 환난 가운데서 양 떼를 살리기 위하여 마귀와 대적하여 싸워서 마귀를 물리치고 그 양떼를 영과 육을 아울러서 살도록 끔 인도해 주는 역사이다.

(2) 이 때는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권세를 주어서 인간에게 큰 화가 오는 때이니 만치 마귀 권세를 물리치는 권세를 받은 자 외에는 나가서 역사할 수 없는 때를 가르친 것이다. 권세라는 것은 마귀의 권세를 물리치는 것을 목적으로 주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종에게 종말적인 심판의 다림줄을 쥔 진리에 의하여 심판하는 것을 증인권세라 하는 것이다.

(3) 이 역사는 일반적인 역사가 아니다. 성신의 은사는 일반적이었으나 이 권세 역사는 기독교 종말에 정확한 진리의 다림줄을 바로 쥐고 싸우는 자에게만이 해당되는 권세이다. 아무리 은사를 받은 종이라도 다림줄을 바로 잡고 싸우는 종이 아니라면 권세 역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를 따라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은사를 받는 진리가 있고 권세를 받는 진리가 있으니 은사는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값없이 오는 은사요, 권세 역사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택한 자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은사시대는 심는 역사라면 권세 역사는 알곡을 모아들이는 타작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4) 이 권세 역사는 기독교 종말의 끝을 이루는 심판기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역사인 동시에 새 시대를 완전히 이루기까지 싸워서 승리하는 역사이다. 철장으로 질그릇 치듯이 불의의 세력을 깨뜨려 버리는 것으로만이 기독교 끝을 맺기 때문이다.


4. 재림시의 변화성도의 형편

변화성도라는 것은 재림시까지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종들을 가리킨 것이다. 이 종들은 시대적인 말세 비밀의 진리를 하나같이 깨닫고 이것을 가지고 거짓 선지와 싸우는 영적 군대들이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므로 중생 받은 성도의 자격을 초월하여 말세 증인권세의 역사에 한 단체의 감람나무를 이룬 14만 4천의 용사들이다. 이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일어나는 역사이다. 동방역사라는 것은 말세의 부패한 교계를 바로잡고 혼란한 영계를 바로 서게 하는 동시에 기독교 종말에 진리 통일의 대승리를 이룬 파수꾼들이다. 이들은 권세 새힘을 받음으로 그 자체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강권 역사인 새로운 새 일의 역사의 열매가 된 변화성도들이다. 이들은 사명 분야에서 움직이되 다음과 같다.

(1) 돌진의 용사적인 사명이 있다. 이들은 선구적인 역사를 하는 활동 부대다. 이들은 개교회로 중심한 사람들이 아니고 세계적인 적그리스도 국을 대항하는 북진 용사들이다.

(2) 목자적인 사명 분야에서 개척 교회를 파수하며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며 종족을 위한 촛대교회를 파수한다. 또는 교회의 정치, 목회, 사업을 중점한 사명자들이다.

(3) 사생활에서 가정을 돌보며 자녀를 양육하며 이웃에 덕을 세우며 개교회에 내적 모든 일을 살피며 촛대교회에 불순분자가 없도록 모든 일을 세밀하게 보살펴 주며 교회 질서를 바로 유지하는 사명이 있는 종들이다.


5. 들림 받는 종의 형편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 할 때는 북방의 무서운 환난이 날 때다. 인력으로는 도저히 그 환난을 막을 수 없는 북방 세력이 강하게 일어나는 대환난이다. 이 때는 권세 역사의 종이 아니고는 도저히 나서서 바른 진리를 말할 수 없는 환난이다. 이 환난은 어떤 국경을 다투는 환난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을 사단으로 격동을 주어서 발악적인 무질서한 행동과 교회 안에 부패한 거짓 선지 앞잡이들이 참된 종을 대적하고 일어나는 폭행 중동 사건이 극도로 혼란한 것은 아프리카의 흑인종이 대대적인 활동을 하되 중동 문제를 자기네가 해결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북 통일을 목적하고 나오는 폭동 또는 습격 반란을 일으키는 야수적인 행동에서 중동 사태는 도저히 평화의 질서를 보전하기가 어려운 난관이 올 것이다.

이 때에 아무리 거부권을 가진 나라도 도저히 그 혼란과 폭발되는 반란을 수습할 수가 없는 난관이 봉착되는 것이다. 이 때에 거부권이 무효 되는 국제적인 문제가 올 것이니 그 때에 평화의 사신들이 슬피 운다는 사 33:7이하의 말씀이 응할 것이다. 이것은 북방 침략자의 궤휼적인 행동에서 되어지는 반란이다. 그러므로 권세 역사를 하는 종이 아니고는 도저히 나설 수 없는 때에 모세 때보다 7배나 강한 역사가 증인권세 역사로 나타날 것이다.

그 때에 자유 진영의 모든 돌진의 용사들은 한국으로 구름 떼같이 모여든다. 이 때에 한국은 세계를 움직이는 권세 역사의 국가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북방 세력은 중동에서 승리를 이루나 동북에서 일어나는 극동 문제를 떨지 않을 수 없는 자리로 들어간다. 이 때에 거짓 선지는 최후 발악적으로 행동을 개시하되 누구든지 자기의 주장하는 법령을 가지고 대대적인 행동을 할 때에 부패한 교계의 악당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천군을 동원하여 촛대교회를 옹호하므로 신령한 교회는 악당의 피해를 당치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역사가 있을 것이니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된 일과 같은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이 때에 증인권세의 거성이 되는 사람들이 북방을 치고 들어갈 적에 재앙으로 땅을 치는 역사는 대표적인 한 사람을 통하여 천지가 진동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택한 백성을 환난에서 구출시키기 위한 강한 역사이다. 이 기간은 반년 동안 기간이 오는 것인데 자유로운 권세 역사가 세계를 움직이는데 그 역사의 본부는 동방 땅끝의 해 돋는 데서부터 활동 본부가 될 것이다. 이 때는 사람들이 다 미혹을 받을 만한 환경에 이르게 되므로 거짓 선지는 세계통일의 위력을 가지고 모든 국민의 사상 정신 생활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 외에는 거짓선지의 유혹적인 사단의 세력을 막고 빛의 역사를 할 교회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한 것은 미혹이 극도로 심하므로 미혹을 이기고 절개 있는 신앙을 가진 자는 극히 소수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 때에 환난 중에서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될 자는 자동적으로 하나같이 뭉치게 되니 이것을 가르쳐 감람나무 촛대라 하는 것이다. 마치 예를 들면 강한 타작기가 돌고 있는 앞에 알곡만 모여지는 것같이 될 것이다. 이 때를 당해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1) 권세 받은 종의 강한 역사가 뚜렷이 만민이 알도록 나타난다.

(2) 오늘의 교회가 완전히 갈리되 알곡만 모이는 교회가 나타나므로 자동적으로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신자가 촛대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3) 아무리 교회 밖의 사람들이라도 옳은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양심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피난처를 찾아 촛대교회로 찾아들 것이다. 이들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그 때를 당할 적에 자기는 죽어도 사상 정신만은 잃지 않겠다는 불타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오직 가야 할 곳은 촛대교회란 것을 알고 모여들 적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준다.

(4) 은혜시대의 신앙을 가진 자로서 증인권세의 역사를 등한히 알고 있던 무리들은 벌벌 떨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숨어서 자취를 감추고 있는 무리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촛대교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 양심적인 신앙만을 보전해 보겠다는 데서 개인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5) 거짓 선지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교회 안의 모든 것을 자기 주권에 넣어 보려고 폭행 또는 협박 공갈 훼방 악선전을 하면서 당파를 지어서 최후의 수단 방법을 쓰고 나오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6) 어린 학생으로서 사상 정신을 분명히 분간할 수 없으나 부모님의 간곡한 기도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주일 학생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되는 교회에 하나님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A. 하나님은 휴거를 시키는 일이 있다.

휴거를 받을 자는 생명을 내걸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거짓선지와 싸우면서 증거하는 종들 외에는 휴거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휴거를 받는 자는 왕권에 가입될 자격이 있는 자라야 되기 때문이다. 왕권이라는 것은 신앙 중심에서가 아니고 그가 행한 일에 따라서 받기 때문이다. 휴거라는 것은 그 몸이 썩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들은 신과 같이 쓰여지는 자이므로 신의 역사에서 그 몸을 영체로 완전히 이루게 된다. 이 몸은 피가 성결케 된 몸이니 죄악의 근성의 피는 몸에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했지만 증인권세 역사를 통하여 그 몸을 개조시켜서 변질적인 몸이 되는 것이니 변질이라는 것은 죄악의 질이 없어지는 것을 가르쳤고 절대적으로 피곤이 없고 또는 원수의 피해가 몸에 들어올 수 없고 절대 영생의 질로서 완전 개조 변화를 받은 것이다. 이들은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인격을 권세 역사를 통하여 받게 된 것이다. 절대 신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인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이 된다.


B. 완전 변화체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사상, 중심, 양심이 바른 자로서 말세 예언을 따라 순종하고 살길을 찾아보려는 사람은 강권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죽지 않도록 보호 양육이 있는 것이니 이들을 위하여 피난처의 보호가 있게 된다.

피난처 보호라는 것은 증인권세의 역사가 필요 없고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마귀 떼를 쫓아내는 동시에 지상 마귀를 따라 내려와서 피난처에 택한 백성을 몰아넣고 그 경계를 정해 놓고 마귀의 피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택민 보호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택민은 권세 받은 사람은 아니로되 하나님의 자녀이니 환난에서 신앙 절개를 지킬 수 있는 보호와 악당의 피해를 당치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b) 내리는 재앙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에 지역을 정하고 한 데 집결 단체로 예배하며 자유롭게 하나님을 공경하며 영적 신앙을 기르도록 해주는 것이다.

c)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사단의 역사를 없이하고 새 시대의 거룩한 시온의 아들딸이 되도록끔 만들어 놓는 역사가 피난처 안에서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신앙 생활을 하지 못했던 자라도 믿고 순종해서 말세 복음을 따르는 자라면 무조건 그곳에 들어가서 양육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은 강권역사 하여 주는 것이다.

d) 이곳은 절대 질병이나 재앙이 들어오지 못하되 성민이 될 신앙을 가진 자 외에는 그 지경 안에서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징벌이 내리되 애굽 땅에서 나올 때 유월절과 같은 일이 있으므로 그 지경 안에는 악인의 씨가 하나도 있을 수가 없는 재앙이 내려서 거룩한 지경을 이루어 놓고 사방의 촛대교회의 양 떼를 그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e) 여기서 생활 방법은 계급이 없는 생활이니 하나님께서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는 땅이다. 절대적인 보호와 양육이 있되 3가지로 있다.

(a) 하늘에서 만나 같은 양식이 내리는 곳도 있다. 또는 그 경내에 우순풍조하여 아름다운 생산도 있을 수 있다.
(b) 절대적인 하나님의 역사에서 모든 생활 제도가 균일되도록 하되 조금도 무엇이나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니 아무리 어린 유아라도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질서에서 움직인다.
(c) 그 안에서도 지도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모든 어린 자들을 교육하고 인도해 주는 자를 하나님은 쓰게 된다. 그러나 이 지도자는 변화성도는 못되었으나 능히 그 안에 있는 대중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로서 하나님은 역사하게 한다. 이 사람은 종족을 인도하는 지도자이다.

f) 피난처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a) 이 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마귀에게 맡길 때이니 참된 백성을 버린 세상에 그냥 둘 수 없고 오직 당신의 예비한 예비처 안에 알곡 될 주의 거룩한 성남 성녀들을 모아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같이 살도록 비를 주고 일용할 양식을 먹도록 하였지만 이 때는 진노의 날이니 악한 자를 없애자는 재앙을 주니만큼 악인들이 사는 그 동네에 의로운 씨를 섞어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재앙을 내리기 때문이다.

(b) 이 때는 하늘에 있는 마귀가 땅으로 쫓겨와서 누구든지 자기 앞에 굴복치 않은 사람은 무조건 피해를 주는 환난이 있기 때문이다. 마귀는 하늘에서 이날까지 참소하고 있었지만 왕권 받은 종들이 영계 싸움에서 대 승리를 보고 그 수가 차게 되어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뤘기 때문에 마귀는 천사들에게 패전을 당하여 땅으로 쫓겨 내려오니 만치 마귀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 때이다. 그러므로 비처 밖에는 전부가 귀신의 처소가 된다. 하나님은 절대로 예비처 밖에는 간섭을 하지 않고 마귀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c) 하나님은 심판을 나릴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그 마귀에게 경배한 자는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몽땅 없이하는 심판을 내리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으로 신앙 절개를 지켜 나가는 동시에 그 생명을 보전시켜 심판날에 심판을 면하도록 하기 위한 예비처가 있게 된다.

(d) 새 시대에는 이 세계를 불로 사를 때에 불에 피해를 당치 않는 자라야 남은 백성으로 종족이 될 것이니 그 불의 피해를 당치 않는 자격은 예비처에서 양육을 받고 절대 죄악의 질이 없이 된 자로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세계가 불타는 날에 남은 백성이 될 것이다.

(e) 새 시대의 종족은 사상, 정신, 마음이 하나같이 성결하여야 되는 것이니 완전 성결을 받는 자 외에는 거룩한 씨가 될 수 없으므로 성남 성녀가 완전히 되기 위해서 예비처의 양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영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몸을 영생하도록 하는 동시에 이 사람들은 변화체는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죄악의 질이 그 몸에서 없어진 자로 거룩한 땅에서 축복 받은 백성으로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번창하는 족속을 이루는 근본의 종족이 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증인권세 역사는 변화 승천할 사람을 위하여 '전 삼년반'에 권세 역사를 나리는 것이요, 예비처의 양육은 새 시대의 거룩한 백성을 이루기 위해서 보호 양육하는 것이니 전자는 왕권이요 후자는 백성이다.


6. 심판기의 형편

심판기라는 것은 변화성도와 부활성도가 함께 공중 재림의 주를 맞이하여 하나님 보좌 앞에 들어가 질서 정연한 완전 조직의 왕국을 이루어 가지고 지상왕국 세계 통치의 역사를 하기 위하여 지상 강림하는 때이다. 지상강림이라는 것은 완전히 성도의 나라를 이루어서 평화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시온산을 중심한 지상 강림이 되는 것이니 이 때에 주와 같이 세계의 악의 세력을 쳐 없애는 자는 부활성도가 아니고 변화성도의 14만 4천이 부활성도의 억울한 피값을 갚아 주는 전쟁을 하게 된다. 변화성도의 통치 왕국을 위한 전쟁의 형편은 다음과 같다.

(1) 이 전쟁이라는 것은 아마겟돈 전쟁이라 하는 것이다. 이 전쟁의 시기는 후 삼년 반의 말기인 즉 1260일 예비처의 양육이 있고, 다음에 7대접을 땅에 쏟는 재앙이 나리는 동시에 덫과 같이 임하는 즉 원수를 전멸시키는 전쟁이니 이것은 원수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예비처에만 하나님의 역사가 있게 될 때 이 세상을 바벨론이라 하는 것이다. 바벨론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극도로 혼란해진 사단의 처소가 된 세상을 말한 것이다. 즉, 자기 정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미혹을 받은 사람만이 살고 있는 땅이다. 그 세상을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이다.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볼 수 없고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극도로 사치하고 음란한 도성인 것이다. 이와 같이 된 것은 공중재림 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걷혀 가고 택한 백성은 한 데로 모아 예비처에 집결 양육이 있는 동안에 거짓 선지의 세력에게 완전히 먹힘을 당한 세상을 말한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다 혼취한 정신에서 무엇을 똑똑히 분간할 줄 모르는 세상이므로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2) 변화성도가 지상에 오는 것은, 번개같이 올 때에 하나님은 사단의 발동으로서 세계의 정치적인 요인을 한데 모으게 한 후에 도둑같이 내려오면서 그 세력을 쇠뭉치로 질그릇을 치듯이 때려부수는 것을 아마겟돈이라 하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다같이 인도하되 무서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인도하는 곳이 있다. 예비처의 양육이라는 것은 마귀의 박해를 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심판기에 인도하는 땅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 즉 인종 전멸의 재앙을 당치 않도록 하는 인도이다. 이것은 오래도록 피하는 것은 아니로되 약 1개월 내에 일곱 대접의 재앙이 땅에 쏟아지는 때이다. 이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법이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해변에 신육지가 나오는 변동이 있고, 둘째는 깊은 산 속에 밀실과 같은 장소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잃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때에 아무리 재앙이 나리고 세계 인류가 전멸되어도 그들이 있는 위치에는 절대적으로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쳐 인류 전멸이라 하는 심판이다. 그러나 노아 때의 심판에 불과하다. 행위심판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따라 오는 심판이다.

(3) 이 재앙은 조금도 인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니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피해볼래야 어디 있든지 악한 자는 죽어 버리는 재앙이다. 이 때에 오는 재앙은 절대 오랜 기간이 필요 없는 잠간 동안에 오는 재앙이니 이것이 있으므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고 식물, 동물까지 전부 피해를 당하되 하나님께서 특별히 동물, 식물도 다시 변동을 시키는 때이기 때문에 사람이 남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보호에 있고, 만물도 다 그와 같이 희생시키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오는 재앙이다. 그러므로 이 때는 전부 개조를 시키는 방법에서 오는 재앙이다. 절대적으로 필요치 않는 것은 다 소멸되는 재앙을 가르친 것이다.

(4) 하나님께서 14만 4천명을 들어서 쓰는 것은 순교자의 피값을 갚는 군대로 쓰는 것이니 이 군대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고 나섰던 짐승의 군대와 거짓 선지를 쳐 없애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싸우는 것이니 아무리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기네가 그 재앙을 피해 볼 최후 노력을 쓸지라도 백마를 탄 군대 앞에서 다 전멸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악한 사람이 아무리 계교를 꾸며도 도저히 변화성도 앞에서 당할 수 없이 전부 전멸되고 마는 것을 아마겟돈 전쟁이라 하는 것이다.



7. 새 시대의 형편

(1) 새 시대라는 것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인간의 본질과 또는 근본적인 생활의 축복, 근본적인 만물의 본질을 다시 찾아 놓는 것을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3대 요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a) 그 영을 마귀의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을 주는 구원이다. 사람이 범죄하므로 죄의 권세를 잡은 마귀의 사망의 법에서 그 영이 벗어날 수 없는 자리에서 십자가의 승리의 보혈을 믿음으로, 믿는 즉시에 그 영이 사망의 세력을 벗어나는 것을 속죄 구령이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피의 공로가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다.

b)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시에 변화성도로 받는 구속이 있으니 이것은 속죄구령의 진리와는 다른 법이다. 이미 속죄를 받은 영이 자라서 용사가 되어 결말에 사단의 세력과 싸워서 승리하는 자리에 도달하는 자만이 받는 구속이다. 첫째 아담은 마귀의 미혹을 이기지 못하므로 그 육체가 죽었지만 이 변화성도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의 영과 싸우되 말씀의 칼로 싸워 이긴 승리자인 동시에 왕권을 부여받고 그 몸이 죽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구원이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을 권세 있게 증거하는 증거하는 종들이 받는 구원이다.

c) 온 세계가 하루아침에 불로 살라지는 진노의 심판이 나릴 적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백성된 자격으로 그 몸이 살아서 새 시대 가는 구원이 있으니 이것을 가르쳐서 종족적인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변화성도가 예언한 말씀이 즉, 이 구원을 목적하고 환난 중에서 증거하는 것이다. 이 구원은 모든 선지가 다 하나같이 목적하고 말한 구원이 다 이것을 가르쳐서 새 시대를 이루는 완전한 구원이라 하는 것이다.

(2) 새 시대의 축복은 다음과 같다.

a) 첫째로 족속의 축복이 있다.

이 족속이라는 것은 왕권을 가지고 변화성도가 된 (자들의) 자손이 받는 축복이다. 변화성도의 자격으로 수많은 생명을 환난에서 구출시키는 자의 자손은 특별히 새 시대의 축복을 받되 왕족적인 큰 축복을 받아 새 시대의 축복만이 아니라 무궁세계의 축복도 받도록 하는 특별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계명의 말씀에 의하여 수천대까지 복을 준다는 말씀은 무궁세계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왕족이 아니요 특별한 사명자의 전도에 따라서 아무런 공로 없는 자들이 예비처를 거쳐 새 시대 들어간 족속(왕족 아닌 백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족속이라는 것은 공로자의 피의 계통이 아니고 이방적인 혈족이지만 그 때 전도를 받고 순종한 조건으로 받게 된 종족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족속은 완전히 축복 받은 족속이 아니다. 이 족속 중에서 다시 미혹을 받는 무리가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천년왕국 말기에 마귀를 다시 놓아줄 때 될 일이다.

b) 생활의 축복

생활에 대한 형편은 절대적인 자유의 생활이다. 이 자유라는 것은 죄가 없는 시대에서 있는 자유이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맑은 양심, 사상, 정신에서 움직이는 자유다. 어떤 사람의 구속을 받아 억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 때 모든 사람은 이상적인 신성한 자유를 가진 사회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는 축복 속에서 슬픔과 탄식이 있을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사 35:10, 51:11). 사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또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피해를 주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누리는 자유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 신이신 동시에 인생에게 진정한 자유를 소유하도록 하는 축복된 생활이라 하는 것이다.

c) 이 때의 사람의 식탁이라는 것은 절대 영양이 부족한 식물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열매가 다 축복의 열매로 사람에게 공급되는 것이니 사람으로서 늙거나 병들거나 하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이 때에 사람들은 그 몸이 저주받고 있는 생활이니 그 몸에 피곤이나 괴로운 증세라는 것은 추호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에 식물이라는 것은 사람을 극도로 아름답게 이루어 놓는 가치를 발휘해 주는 것이다.

d) 사업의 축복

이 때의 사업은 영적인 사업보다도 축복 받은 사업에서 피차 교제를 이루는 목적에서 둔 것 외에는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교제라는 것은 최고의 미를 이루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건설적인 사업이니 내냐 네냐 하는 영리적인 욕망을 가진 것이 아니고 다같이 미의 생활을 하자는 목적에서 모든 사업을 하되 공동적인 활동 결합에서 이루어지는 것뿐이다.

e) 교육의 축복

 그 시대 교육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 지혜와 지식의 신이 같이하는 역사가 있는 동시에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 다음과 같이 교육한다.

(a) 역사를 배워 주는 교육이 있다.

이 역사라는 것은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의 역사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르치는 것은 더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마음과 더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열중을 두게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도 크니 하나님께 예배하자는 정신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자녀를 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마음이 더 강하게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을 적에 그들은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존귀하게 알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만 하는 것만을 목적두라는 교훈이다.

(b) 생활 교제적 교훈이다.

이 때의 죄의 본질은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서로 사랑하며 연락하며 또는 피차의 미의 생활을 이루는 풍속 예법 또는 생활 방법을 중점으로 한다. 이것은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피차에 거룩한 교제, 사랑의 미를 이루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다.

(c) 장래를 가르치는 교훈이다.

이 장래라는 것은 앞으로 이 천지는 영구한 시대가 아니고 불로 사름을 당할 것이며 이 시대 말기가 있으니 이 말기에는 다시 과거 역사와 같은 미혹이 올 것이니 이 미혹을 받으면 영원히 멸망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는 지금보다도 더 좋은 신천 신지 무궁세계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남보다 건설적인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차에 열심으로 일을 하게 하는 교훈이니 전부가 의의 열매가 있되 더 많아지도록 끔 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다.

(d) 모든 생활 방침을 배워 준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 더 발전이 되고 이런 방법으로 해야 된다는 그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 주는 것이다. 그 때에도 하나님이 준 축복의 물질을 가지고도 더 바로 살 수 있는 기술을 배워 준다. 그 때 기술이라는 것은 남을 해코자 하는 방법은 없어도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건설적인 재능을 배워 주는 것이다. 그들의 재능은 지금 사람들과 비할 수 없는 재능이 하나님께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억지로 피곤이 넘치는 활동 기술이 아니고 피곤 없는 활동에서 미로 이루어지는 기술이다. 다시 말하면 미술적인 기술이다.

f) 정치적 활동

이 때의 정치라는 것은 의로운 통치를 말한 것이다. 의로운 통치는 다음과 같다.

(a) 국경의 한계를 다시 정한다. 지금 국경이라는 것은 변동이 있지만 그 때의 국경은 변동 없는 한계다. 이 국경이라는 것은 어떤 적대시한 국경이 아니고 왕권을 가진 왕권의 권리적인 한계를 그리스도께서 정해 주실 것이다. 이것은 영광을 누리는 왕권으로 피차에 더 좋은 발전을 위한 것 외에는 아무런 다른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왕권에도 계급을 두되 세계적 통치적인 통치의 권리는 그리스도께 있는 것이요 다음의 그리스도 앞에 국경을 정한 권리에도 그 권리에 따라 국경이 넓고 좁은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세왕권의 계급인 동시에 계급을 따라 되는 한계를 두는 것이다.

(b) 정치 분야에 있어서 나라를 통치하는 왕권도 있고 또는 그 지역을 맡아서 다스리는 권리도 있는 것이다. 이 때의 정치라는 것은 악인을 위한 치리는 필요 없되 의로운 사람으로서 질서 정연하고 방침이 가장 진보적이고 또는 연락의 긴밀한 관계와 사업적인 방면에 조금도 지장이 없도록 해주는 일과 이상적인 사회 건설에 속도를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뿐이다.

(c) 화려한 도성을 이루되 그 백성이 살기에 복되고 아름답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창조의 효과를 발휘하는데 전력을 둔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는 목적이다. 이 천지를 창조할 때 피조물을 통하여 받고자 하는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정치이다.


8. 천년왕국 종말의 형편

이 때는 지구 땅덩어리에 사람이 안 사는 곳이 없이 편만하게 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 때는 기후까지 변천이 되므로 어디나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는 지구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나 하나님의 창조적인 원리의 효과를 발휘시키는 것이다. 이제 종말의 인류가 팽창할 때에 되어지는 일은 다음과 같다.

(1) 극도로 발전된 사회가 온다.

이 발전이라는 것은 땅 위의 피조물된 만물이 전부 효과를 발휘하되 지상에 있는 식물이나 지하에 있는 광물이나 다 그 민족에게 큰 축복으로 쓰여질 적에 황금 보석으로 궁궐을 짓고(사 54:12) 변화성도가 왕래하는 정치 요인의 활동 본부와 지부가 되는 것이다. 변화성도의 자격과 부활성도의 자격의 활동은 다같이 동일한 왕권을 가지되 변화성도의 혈손이 세계를 다 정복하되 왕권 받은 종들의 자손이 따로 있고 그의 혈통은 아니로되 이방적인 혈통의 자손이나 그 땅에 들어가는 자는 왕족적인 혈통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족적인 혈통보다 이방적인 혈통의 자손이 더 팽창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할 때에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14)가 권세의 종의 전도를 받고 따르기 때문이다. 비례를 들자면 왕족은 1/100의 수가 되고 그 밖의 족속은 99/100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2) 정치적 발전의 열매라는 것은 많은 사람을 생육 번창시킬 때에 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지도, 또는 양육하여 무궁세계로 들어가기까지 지상통치를 하는 것이다.

이 통치라는 것은 불가불 변화성도와 부활성도가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왕권 받은 자격으로서 책임적인 통치에 불과하다. 왕권의 영광은 천년왕국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무궁세계인 새 예루살렘에 가서 완전히 누리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이방족이 미혹을 받고 멸망할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는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적인 섭리가 이루어지는데 불과한 지상왕국이다.

(3) 큰 미혹이 와야 할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a)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시니 그 시대에 확장된 민족을 한번 마귀로서 까불어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무궁세계로 들어갈 자격은 시험을 통과한 자라야 되기 때문이다. 만일 시험이 없이 한다면 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라는 것은 시험을 해도 이기는 것을 의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b)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신천 신지의 영원한 천국이니 완전한 것을 소유할 자격은 3 가지로 되어 있다.

첫째 :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서 영혼이 구원받는 자와
둘째 : 환난에서 말세 증인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고 영, 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는 자와
셋째 : 천년왕국 말기에 마귀의 미혹이 있어도 미혹을 받지 않는 자와 아울러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국이라는 것은 완전한 영생으로서 다시 사망이 없고 고통이 없고 눈물이 없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4) 미혹을 받고 안 받은 자의 형편은 다음과 같다.

변화성도의 왕족의 피의 계통은 절대 미혹을 당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적인 혈통은 다수가 미혹을 당하게 된다. 이 미혹이라는 것은 성도의 왕권을 대항하는 반항심을 가르친 것이다. 마치 고라당이 모세를 대항하듯이 왕권 가진 성도의 은공을 모르고 불평을 두고 자기네가 왕권을 세워 보려는 야심적인 행동이 나올 때 그 때에 하나님은 성도의 왕권을 권리로 맡겼기 때문에 그 정권을 무시하는 자를 무조건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족들은 미혹을 당치 않는 것이다.

(5) 이 때의 혼란이라는 것은 기독교 종말의 혼란과 같다.

기독교 종말에 미혹을 받은 신자들이 참된 변화성도들을 대항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중생을 받았다 하더라도 말세 증인의 권세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몽땅 죽은 것과 같이 그 시대에도 성도들의 왕권을 대항하는 미혹 받은 사람은 몽땅 대 심판날에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6) 이 때의 심판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a) 불이 내려서 지구를 태우는 동시에 미혹을 받아서 성도의 왕권을 대항하는 자는 그 불에 전부 소멸을 받는 것이다.
b) 행위심판이 있으니 그것은 행한 데 따라서 갚아 주는 보응을 말한 것이다. 이 행위심판이라는 것은 왕권 받은 자 외에는 다 거치게 되는 것이다.

(7) 심판과 부활

a) 사람의 부활이라는 것은 왕권의 부활도 있고 시민권의 부활도 있고 멸망자의 부활도 있다. 그러므로 왕권의 부활은 1차 부활이니 처음 열매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은혜시대의 종으로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불타는 심정에서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순교적인 생활을 하던 무리들이 받는 부활이다. 이들은 죽은 자의 부활 또는 변화성도와는 다르다. 이것을 1차 부활이라 하는 것이다.

b) 심판시의 생명의 부활사망의 부활이 있으니 생명의 부활이라는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받는 것이다. 이 생명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자로서 아담 때부터 심판기까지 구원받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다. 심판록이 있으니 여기에는 지옥 갈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니 이것도 대 심판까지 다 포함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부활을 받아서 영생할 자나 사망의 부활을 받아서 영원히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나 다 같이 부활을 받게 된다. 부활이라는 것은 물체 속에 잠긴 질이 전부 뽑혀서 어느 사람의 몸에든지 지구에 잠겨 있는 질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다.

c) 부활 받은 자의 행위에 따른 보응은 다음과 같다.

(a)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했으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온 사람의 받는 보응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 속에서 옳게 살아보려는 양심에서 그 시대에 법에 따라서 처리하는 것이니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사는 생활에서 양심적인 생활을 한 자라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의 힘이 그들에게 미쳐지는 일도 있다. 십자가라는 것은 아담 때부터 재림 시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에게는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둘째 아담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탄생했으니 이 타락이라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사망이 온 타락이다. 그러므로 사망에서 부활을 받게 될 때에 영혼이 죽는 죄를 범한 자 외에는 다 생명의 부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혼이 죽는 죄라는 것은 고의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해치려는 죄는 영혼이 죽는 죄인 것이다. 아무리 십자가의 복음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어떻게 하든지 옳은 정의를 따라 보려는 사람들이 약간의 실수가 있다 하여도 십자가의 피는 전부 미쳐지는 것이다.

(b) 그 영이 마귀에게 지배를 받고 악질적인 행동을 하는 무리는 신, 불신을 막론하고 그 영은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의 복음을 세상에 있을 때 받지 못해서 확실한 진리를 몰랐다 하더라도 그 영이 예수님께 속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십자가의 보혈의 의가 그 영에게 해당되므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신자라 하여도 종말에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 짐승의 표를 받아 예언의 말씀을 대항하는 자는 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에게 속하는 영에게는 행한 대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보상에도 왕권의 보상이 있고 시민권으로 받는 보상도 있다.


9. 신천 신지(천국)의 형편

신천 신지라는 것은 물질계를 가르친 것이 아니고 물질계의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전혀 없어지고 영체의 사람으로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영원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고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여 인격을 훈련하되 간교한 사단을 두어서 시험을 하여보고 승리한 자로서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것을 신천 신지라 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은 만물은 사람을 위해서 내고 사람은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해서 완전한 영체를 이루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영생할 나라에 만물을 영원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신천 신지의 모든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 나라의 기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12진주 보석으로 쌓은 도성이 있다. 

이것은 최고의 왕권을 가질 사람에게 분깃이 되는 것이다. 이 도성은 최고의 왕권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동시에 그 안에는 완전한 조직을 이룬 왕국이 배포된 것이다.

(2) 이 도성에 조직은 행위 보상에 따라 계급은 정하여 있다.

그러므로 같은 도성이지만 나라의 조직을 이루었으므로 완전한 정치의 영원한 조직이다. 예를 든다면 이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조직에 비할 수 있으나 이것은 거룩한 왕국에 변동이 없는 완전한 조직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이 도성은 완전한 것으로서 이룬 도성이니 인간의 물질을 초월한 영원한 것으로서 이루어진 도성이다.

다시 말하면 영체의 사람이 영원히 복을 누릴 처소가 된다. 이 도성에는 절대적인 불완전한 것은 있을 수 없고 만물이 전부가 완전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체의 사람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물이다.

(4) 그 나라의 법도

이 나라의 법도라는 것은 전부가 계급을 정하여서 사랑의 교제적인 법도를 세운 것이다. 교제적 법도를 가르치는 것은 아름다운 미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최고의 왕권을 가진 사람을 옹호하는 반열이 있고, 다음에는 각 부서가 조직되어 있는데 그 부서라는 것은 행위 보상에 따라 반열로 나뉘어져 있다. 반열이 높으면 그 반열의 최고자의 영광을 옹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니 그 영광이라는 것은 완전한 안식의 복락의 만족을 누리는데 필요한 조직적인 반열이다. 이 반열이라는 것은 애호 협력에 미를 이루는 반열이니 화창한 노래를 부르는데도 반열이 있고, 아름다운 생활의 가치를 이루는데도 반열이 있고, 또는 피차에 연락 교섭의 필요에 따라 조직이 있다. 이 반열의 법도는 혼선이 이루지 않기 위한 목적에서 영광의 가치를 발휘시키고 생활에 쾌락한 만족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가장 고상한 지위에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인데, 전부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통일적이다. 그 영광을 누리는 반열의 계급은 차이가 있다. 반열을 이루는데 그 보상에 따라서 계급적인 반열이 있다. 계급적 반열이라는 것은 최고의 직위를 가진 자가 반열의 주재 아래서 움직이되 반열에 따라 계급에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은 억지로 구속시키는 것이 아니고 각자가 최고의 쾌락을 이루는 만족과 기쁨을 이루기 위한 것뿐이다.

(5) 생활 제도

이 생활 제도라는 것은 전부가 완전한 영체의 사람으로 생명과 생명수를 사용하되 이것은 아름다운 교제에 넘치는 쾌락을 이루는 것에서 이루는 동시에 영생의 생명과와 생명수를 마시는 것이다. 생활의 방침은 반열적인 제도에 의하여 있되 서로 만족한 미를 이루기 위한 데서 필요한 것뿐이다. 하나님은 미의 하나님이시니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독처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창조의 원리이니 여기 생활이라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완전한 사랑으로서 서로 화답하며 교제하며 영광스러운 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절대적인 혼선이 없고 영원히 동거 동락하는 반열이 된다. 이 영체의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한 몸인 동시에 완전한 교제완전한 쾌락의 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생활에는 생육 번창은 필요 없되 서로 완전한 기쁨과 완전한 평강을 누리는 일을 서로 협력하는 사랑의 세계다.

(6) 왕권의 배치는 다음과 같다.
 
이 왕권이라는 것은 어떤 남을 구속시키는 권리를 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도록 하는 것뿐이니 모든 영광이 왕권을 통하여서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고통이 없는 것은 일반이지만 영광의 가치를 누리는 것은 계급이 있되 왕권의 영광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다음가는 지위의 영광을 말한 것이니 그 위치에 모든 설비가 왕권 가진 사람에게 계급을 따라 있게 된다. 여기서 누리는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 위치에 따라서 그 만큼 영광되리만큼 설비해 놓은 것이니 세상의 무엇으로 비할 수 없는 찬란한 영광의 위치를 하나님께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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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 선교회 : (특강) 2. 인류 역사와 사회 문제




2. 인류 역사와 사회 문제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할 때에 주인을 모르는 집안일이 있을 수 없고, 국가의 일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역사는 흑암에 잠긴 소경에 불과하다. 그것을 빛의 역사로 믿을 수 없다. 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쓴 역사는 얼마든지 거짓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현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 때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는 역사는 시작되어 계통적인 종교 역사가 현재까지 내려오는 동시에 정확한 역사는 종교 역사를 통하여서만이 인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조물주 하나님의 가르친 말씀이 아니고는 과거를 분명히 알 수 없고 미래도 분명히 알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한 것은 당신을 떠나서는 시작도 끝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1. 천지 개벽 홍수가 있기 전의 역사

이때는 세계 땅덩어리에 사람이 다 산 것은 아니로되 아시아를 중심한 지역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있던 에덴 동산은 분명히 동방 에덴이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는 동방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방 아시아를 중심해서 역사했기 때문에 완전한 역사의 시발점 아시아를 중심해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혼잡된 그때가 아니고 언어통일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아담의 족속이지만 이방적인 가인의 계통과 성민적인 의 게통이 영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것 뿐이다. 그때 사람은 완전한 정치적인 조직 또는 종교적인 조직도 없는 동시에 버림받은 사람의 양심버림받지 않은 사람의 양심, 이 두가지 아래서 악하다, 선하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양심시대라고 볼 수 있다.


2. 홍수 심판 후의 역사

1) 하나님의 아들인 셋의 계통만 남는 심판

하나님은 영적으로 버림당한 양심의 악인들을 없애기 위한 목적에서 물로 심판할 때 하나님 앞에 양심적인 신앙의 종교 계통인 셋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노아를 통하여 널리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은 하나님을 향한 양심이나 방주설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으므로 다 물에 침몰 당하고 노아 가정만 남았던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 가족으로 민족을 번창시킬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셈과 함과 야벳 중에서 셈의 족속을 택한다는 예언을 노아의 입을 통하여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입으로 말씀한대로 셈의 계통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세울 때에 너는 복의 근원이며 네 씨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얻으리라는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이 언약이 성립되는 기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다. 그래서 이 3인에게는 꼭같이 하나님이 나타나서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언약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야곱의 족속을 통하여 이루어지되 완전한 종교를 이룬 조직은 없으므로 할례의 법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의 법을 순종하는자만이 하나님 앞에 제사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언약 시대라 하는 것이다.

2) 이방 민족이 번창하게 된 동기

이방 민족이 번창하게 된 동기는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 "야벳"의 창대라는 말씀이 응하고, "함"은 종이 된다는 말씀이 응하고, "셈"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정통적인 계통자 외에는 다 이방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방은 다수를 점령하고 성민은 소수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 노아의 후손이 바벨탑을 쌓던 자리에서 언어가 혼잡될 때에 사방으로 흩어져 분산 상태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을 바로 찾은 사람은 셈의 계통인 아브라함 외에는 다 다신숭배의 종교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되므로 열방이라는 지역도 언어가 혼잡해 언어에 따라서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그 언어에 따른 국경을 정한 것이 열방이 되었다. 국경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니 그 인종이 번창할 때에 하나님은 그 씨를 분산시켜 그 영토를 각각 차지하도록끔 역사했던 것이다.

셋째 : 이방족이 번창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셨으므로 자유자재하고 아무런 죄를 지어도 그들은 막대기가 없고 재앙이 없고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번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택한 민족은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조금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용서없이 이방을 들어서 치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많이 받게 되고 재앙을 피값으로 나리기 때문에 재앙으로 죽는 일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성민은 소수요, 이방족은 온 세계를 덮게 되었다.


3. 성민의 고난과 율법 시대

성민의 고난과 율법시대란 다음과 같다.

1)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첫 계단은 이방 땅의 고역이다.

하나님께서 성민에게 고역을 준 것은 완전한 조직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이 심할 때에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요셉이 환란이 올 때에 큰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70여명이 기근을 피해간 것이 그 민족의 고역의 근본이 되었다. 성민이 이방의 객이 되니 자유가 박탈되고 경제가 부흥되지 못하고 억울한 노동, 억울한 죽음을 80여년간 받게 되었다. 그대에 그들은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연계를 지배하는 신이신 것을 알고 생명을 좌우하는 신이신 것을 그들은 분명히 증거로 알게 되었다. 이것은 열가지 재앙을 통하여, 홍해를 건너는 일, 하늘의 만나를 먹는 일, 반석의 생수메추라기 고기를 먹고, 의복을 아무리 입어도 헤어지지 않는 체험을 받았다. 그때부터 세계 인류가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한 백성인줄 알게 되었다.

2) 율법적인 종교가 완전한 조직을 이루어 그때부터 <성서>라는 모세 5경이 나타남.

이때에 그 민족은 그 법에 따라서 정치를 받고 교육을 받고 나갈 때에 그들은 이방과 다른 유일신의 종교와 거룩한 신정적인 국체를 이루어 나갈 때에 그 나라는 신정의 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선지와 정치인은 병합된 정치가 되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선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했고 들으면 흥했던 것이다. 이 역사가 즉, 구약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서 율법시대라고 하는 것이니, 아무리 택한 민족이지만 율법을 범하면 용서없이 처벌이 있되 속죄제에 중점을 둔 성전이 수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속죄제는 수도에 있는 성전 밖에는 드릴 수 없고 외국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성민이라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4. 부패와 멸망

1) 아무리 신성한 종교를 이루었고 정치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역사가 흘러갈 적에 정치와 종교가 극도로 변질되었다. 이와 같이 부패될 적에 하나님의 사람 선지에게 경고의 묵시가 나타났다. 이 묵시는 3 가지로 되었으니

첫째 : 그 나라의 종교부패와 정치부패를 아울러서 책망하여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고,
둘째 : 메시야 탄생을 말하면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고,
셋째 : 말세 종말의 일을 예언하면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으니 이 글에는 3대 요소가 있는 것이다.

목적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글이지만 그 시대의 민족들에게 경고도 되었고, 은혜시대에 택한 백성에게도 구원에 대한 확실성과 심판을 알게 했고, 심판기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여야 환란에서 죽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방법을 분명하게 가르친 글이다. 그러므로 그시대 사람이 선지의 말을 순종치 않으므로 북방 앗수르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은혜시대가 올 때에도 그 선지의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 영원히 망하고 말 것을 두려워할 일이 되는 것이니 구약의 역사는 그때 된 일이나 그때 예언한 일이 전부가 은혜시대와 심판기와 새 시대까지 이루어지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 가르친 말씀은 율법이나 예언이 다 완성한 성서를 이룬 것이다.

2) 이방 민족과 성민과의 관계

이 성민이라는 족속은 비록 국경은 적었고 민족수도 적으나 역사적인 단일 민족으로 열조의 피를 지켜 내려온 동시에 유일신 종교를 지켜 내려왔고, 또는 아무런 난관이 부딪혀도 자기네는 성민이라는 사상이 보전되어 내려온 것은 특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방 민족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당한 비참한 일을 많이 당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만 하는 일에 있을 때에는 강한 나라를 쳐서 물리치고 독립 국가의 부흥을 가져옴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에 알리는 증거가 되고, 대 종교의 진리가 완전히 열매로 나타난 것이 기독교란 것이다 (☞ 종말의 한국의 사명).


5.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계 문제

1) 그리스도께서 세계 민족 중에서 탄생한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세계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창 22:18)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역사적인 유일신의 종교는 모든 속죄와 할례와 율법에 관한 일체가 기독교가 탄생하므로 폐지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승천, 성신 강림에 대한 역사가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대 종교의 진리가 되었던 것이다.

금일에 어느 나라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게 된 것은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단일 민족의 성민은 목적이 그리스도가 탄생하기까지의 목적을 다 이룬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탄생 후 20세기 기독교 문명은 세계 인류를 흑암적인 다신 종교에서 유일신의 참된 하나님의 교회로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세계에 빛이 되어서 어둠의 권세 아래 있는 택한 백성을 광명한 빛의 나라로 옮겨 놓는데 불과한 역사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속죄라는 피는 세계 인류를 대신한 속죄의 은총을 이루기 위하여 20세기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20세기간의) 기독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오는 사명의 범위에 머물렀었고, 모든 선지가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한 묵시의 진리는 아직까지 전할 시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성경을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한계점에 봉착해 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셨지만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에야 인간이 알도록끔 역사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새 시대를 이루기까지의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날까지 이루어진 효과는 개인적인 심령을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을 주는 일에 효과를 주는 역사에서 세계 인류에게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의 역사라는 것은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것은 아니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인류적인 구원과 심판으로 끝을 맺는 것이니 이것은 선지의 예언이 전부 해당되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구원 문제를 위한 역사에는 그리스도의 행적인 4복음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쓴 편지로서의 개인적인 문제는 밝혀졌다고 볼 수 있으나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구원의 진리는 계시록과 선지서가 대조된 다림줄의 진리로서 이루는 것이니 다림줄의 진리라는 것은 세계 인류를 어떠한 방법으로 종말의 심판기에 구원하며 또한 멸망시키겠다는 진리에 결부된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목적을 완성시키는 것이니 이 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심령 문제보다도 영과 육을 아울러 죽음없는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을 목적한 것이다.

기독교는 교화를 확장시키는 시기도 있고, 알곡만 모아들이는 시기도 있으니, 전기가 은혜시대라면 후기는 심판기다. 심판이라는 것은 알곡된 백성을 죽지 않도록끔 절대 보호가 있는 것이요, 그밖의 사람은 아끼지 않고 전멸시키는 것을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계 인류라는 것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받은 것이니만큼 구원하는 것도 심판하는 것도 조물주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과 성민이 갈라져 있는 것이 율법시대요, 이방과 교회가 분별되는 것은 은혜시대요, 쭉정과 알곡을 갈라 놓는 것을 심판기라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근본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목적 밑에서 역사하되 그 영을 구원하는 목적도 있고 그 몸을 구원하는 목적도 있으니 몸을 구원해 주는 역사를 새 시대를 이루는 종말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을 구원하는 시기는 온세계 인류에게 기독교를 확장시키는 시기라면 몸을 구원하는 때는 교회를 다 없이하는 환란이 오는 동시에 당신의 택한 백성을 환란에서 구출하며 보호와 인도와 축복이 같이하므로 완전한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말세의 다림줄 쥔 종들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의 통치와 새 시대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목적을 달성한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새 시대를 가르친 동시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것이다. 첫째 아담이 승리를 이루지 못하므로 잃어버렸던 에덴의 축복을 둘째 아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완전히 이루어 놓는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이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이것은 완전한 천국이 아니요, 창조의 근본 목적에서 원칙을 이루어 놓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라 하는 것이다. 왕국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얻는 것이니 왕권으로서 새 시대를 얻는 자도 있고 시민권으로 얻는 자도 잇으니 왕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행자로서 순교적인 실천 생활에서 왕국 건설을 위하여 승리적인 역사를 한 자에게 주되 부활성도와 변화성도가 있다. 그밖에 백성된 자격은 말세에 변화 성도의 자격을 가진 종들의 예언적인 다림줄의 진리를 믿고 순종하므로서 환란에서 남은 백성이 된 자가 종족이 되는 것이다. 새 시대라는 것은 천년왕국이라 하는 것이니, 이 때는 세계 인류가 다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지배를 받고 축복을 받고 사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7. 무궁 시대와 인류 문제

무궁시대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체가 갈라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이것은 행위 심판후에 되는 일이다. 행위 심판이라는 것은 아담으로 천년 왕국의 왕권을 가졌던 성도 외에는 상선벌악의 행위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기까지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자는 것을 말씀이라 하는 것이다. 이 때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교훈이 필요없다. 왕권도 영원, 시민권도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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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세 증인의 설교의 의의




1. 말세 다림줄을 쥔 증인의 설교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소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1) 심판기에 설교자라는 것은 합법적인 다림줄에 의한 정확무오한 설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판기에는 강단에 선 종이 조금만 혼선되어도 그 자체가 흑암을 뚫을 수 없기 때문에 양 떼를 (올)바로 재앙에서 구출시킬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선이 없는 설교라는 것은 알파적인 진리와 오메가적인 진리를 완전히 짝을 맞춰서 증거하는 설교라야 될 것이다. 교회를 세우는 시기에는 죄인을 부르는 때이니만큼 십자가의 보혈을 증거하는 것 하나에 중심된 설교이면 모든 영들은 죄의 권세잡은 사망의 권세 아래서 해방을 주는 열매를 가져올 수 있었으나, 심판의 다림줄을 쥔 종으로서는 재앙기에 양 떼로서 재앙을 피하도록 인도하는 설교가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진리도 정확히 증거하는 동시에 ★★★ 재앙의 날에도 어떻게 되므로 피로 산 백성은 재앙을 받지 않고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다는 길을 명확히 말해주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변론적인 설교라야 된다.

심판기의 종은 완전한 변론이 서지 않으면 마귀의 미혹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마귀가 죄의 권세를 가지고 있은 것뿐이었으나, 종말에는 환란과 재앙을 가져오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완전 변론의 설교가 아니면 마귀의 허락 받은 재앙의 권세를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앙이 오는 것도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요, 재앙 중에 살 길을 찾아 구원 받는 것도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날까지 기독교 신학이라는 것은 십자가에 국한된 신학을 말하는 것이요, 종말에 재앙기에 관한 신학을 감히 뚜껑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재앙기에 관한 진리가 은혜시대에는 필요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봉하여 두었던 까닭에 사람으로서는 변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앙이 올 때는 재앙기에 영,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변론을 할 수 있게끔 진리의 창고를 열어 놓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 새일성가 19장 2절


3) 권세가 같이 하는 설교가 있어야 한다.

은혜 시대 설교라는 것은 은사가 같이할 때 십자가를 증거할 수 있는 표적이 되었고 재앙의 날에 설교자는 권세 역사가 있으므로서 흑암의 재앙을 물리치고 양 떼를 구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권세라는 것은 심판의 다림줄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다. 마귀를 쳐부술 수 있는 권세는 다림줄을 통하여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혜 시대의 종된자로서도 이 권세가 없이는 환란 중에서 역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권세는 보혈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통하여 주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2. 설교 방법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법에 따라 쓰지 않을 때 아무런 효과를 발휘치 못하는 것같이 아무리 다림줄의 진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방법을 바로 써야 할 것이다. 다림줄의 진리를 증거하는 설교 방법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해야할 것이다.


1) 강해적인 방법

이것은 성경을 읽어가면서 원리에 따라 글자 글자를 해석하는 설교이다. 이 해석 방법은 어느 성경이든지 펼쳐들 적에 이 성경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가르친 예언이라는 것을 먼저 명확히 말하고, 그 성경의 의의를 말할 적에 모조리 성경을 읽어가면서 먼저 말한 목적을 해석해가며 순서있게 말하되 성경에서 풀어야 한다. 성경이라는 것은 목적 하나를 두고 말세의 성도는 바로 알도록끔 가르치는 글이니 본문에서 본문을 해석하는 설교가 되지 않고는 완전한 강해를 하는 설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감히 사람이 해석할 수 없는 글이기 때문이다.


2) 요지 설교

이 설교는 성경을 강해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성경에 가장 요지가 되는 절수 하나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말씀을 나리는 대로 대중 앞에 말하는 설교다. 요지를 말할 적에 그 뜻을 대중이 알도록 할뿐만 아니라 일반 심령들이 마땅히 각성해야 될 문제를 놓고 혹은 권면, 책망, 경고, 위로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같이 설교할 때에 요지에 따라서 대지를 영적으로 해석하는 일도 결부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설교는 특수한 예배 시간에 무슨 일을 앞에다 놓고 그 일을 완성시키는 힘을 얻기 위해서나 또는 큰 시험 문제가 닥쳐올 적에 이것을 대중이 물리칠 수 있도록 하는 목적과 또는 극도로 영들이 피곤할 적에 새로운 소성을 가져오는 것을 목적하는 설교다.


3) 교리 설교

교리 설교라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적인 신앙 체계를 바로 가르치며 각 성경을 들어서 신앙 노선이 바로 서도록끔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지식을 넣어 주는데 효과를 주는 것이다. 마음판에 또렷이 새겨지도록 신앙 체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교리적인 설교를 바로 못할 때에 그 영들은 담대한 힘을 얻지 못할 관계가 있다. 교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도록끔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3. 설교의 인격

설교라는 것은 대중 앞에 대표로 서는 인격이니 필요한 것이다. 왜냐할때에 음성을 듣는 반면에 그 태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인격은 다음과 같이 자신이 조심할 일이 있는 것이다.


1) 설교자는 사람을 상대하는 태도가 아니고 하나님을 대표하는 엄숙하고도 경건한 태도가 따라야 한다.

엄숙, 경건이라는 것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대중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과 어떻게 하든지 <그 영들에게 만족한 진리를 증거해 보려는 눈물겨운 심정>이 있을 적에 신께서 역사함으로서 대중이 바라볼 때에 그 인격과 영감을 받게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모양을 내보려고 해도 그 영들에게 경건하고, 엄숙하고, 사랑스러운 무엇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하여도 심령을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2) 설교자는 음성이 대중이 알아듣도록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뜨게도 않고, 한마디 한마디 말이 명랑하고 힘있게 나가도록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있다 하여도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떠들기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주는 일도 있다. 어떻게 하든지 한마디 말이라도 대중의 심리를 뚫고 들어가는 말이 있도록끔 노력이 있어야 될 것이다. 말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균일된 태도라야 된다. 이것은 말씀에 사로잡힌 설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마음 속에 그 진리를 자기가 은혜 받으면서 말하는 것이 있기 전에는 아무런 효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3) 입의 구재에 관하여

억지로 재간 있게 말해보려는 그런 방법을 취할 필요가 없고 한마디 말이라도 정직하게 진실하게 간절한 태도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설교자가 중심에 없는 변명적이나 선전적이나 어떤 포섭적인 태도를 가지면 성령은 역사하지 않는다. 설교가 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설교자는 말보다 중심을 울려주는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설교자가 말을 꾸며 보려고 말의 재주를 얻기 위해서 책을 볼 필요는 없다. 성령이 말하게 하므로 입을 열겠다는 신앙 양심에서 겸손히 나서야 할 것이다. 어떤 자가 인격을 내세울 마음이 있든가,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있을 때 성신은 떠나가는 것이다. 설교자는 모든 사람의 영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 외에는 딴 방침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한마디 말이라도 성령이 내 입을 사용해야만 나는 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말할 재료를 가졌다 하더라도 성신의 역사가 나를 떠나면 필요없다는 견지에서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해야 할 것이다.



4. 개인 방문적인 설교

방문적인 설교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리에 찾아갈 적에 성경을 가지고 말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가장 필요한 시간인 줄 알고 생명 하나를 살려준다는 친절의 태도와 말이 있어야 될 것이다. 개인 방문 설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3가지를 해야될 것이다.


1) 병자를 방문하는 시간

그 시간은 설교에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 그 병자에게 소망을 주고 믿음에 도움을 줄 성경 절수를 바로 찾아서 한마디 말을 마음에 꼭 기억하도록 간절히 읽고, 간절히 부탁하는 말을 하고 말씀에 의해서 간절한 기도를 한 다음에 위로의 말을 많이해 주어야 할 것이다. 위로의 말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든지 병자에게 새 힘을 얻도록 주님의 사랑을 깊이 말해주는 위로가 있어야 할 것이다.

2) 시험을 받고 있는 자를 방문하는 시간

방문하는 그 시간은 성경을 들어서 권면하는 시간이 많아야 될 것이다. 권면하되 그 사람의 단점을 쳐서 오해가 되는 말을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의 장점을 들어서 소망을 넣어주는 동시에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깨달아지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귀의 압력을 받는 사람에게 단점을 지적할 적에 사탄은 더 강하게 와서 마음에 공포를 심어주고 의심이 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마귀가 물러가는 일은 그 사람이 주님을 보도록 만들어 주므로 주님께로 온 힘을 받아야만 시험이 물러가기 때문이다.

3) 믿음이 식어진 사람을 방문할 때

이때는 각성을 받도록끔 말하되 무엇 때문에 식어졌다는 원인을 본인이 깨닫도록 성경을 들어서 말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대부분이 교만해서 드는 시험이 될 것이니 얼마만큼 자기 신앙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될 것이다. 이때는 그사람 자기가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자극을 받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극도로 위기에 들어갈 것을 알라고 강하게 성경을 들어서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자에게 겸손히 가서 붙들어 주는 태도보다는 하나님 편에서 노여워한다는 것을 성경을 들어서 말해야 할 것이다.


4. 사생활의 주의


말세의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재앙의 날에 보호받는 생활이니 3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 것이다.


1) 사람을 주의할 것

어느 사람이나 함부로 사귄다는 것은 재앙의 날에 큰 위험을 가져올 것이니 할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교제하되 말세의 다림줄을 붙들고 나가는 사람을 중점으로 하는 교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할 때에 말세의 진리를 바로 믿는 사람 외에는 다 마귀의 흑암이 그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에 영적 손상을 당하게 될까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은혜시대에는 죄인을 부르는 시기이니, 어떻게 하든지 안 믿는 사람이라도 잘 교섭해서 믿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쭉정이와 알곡을 가르는 재앙의 날에는 알곡은 알곡끼리만 모여지는 일이 없이는 큰 손상을 볼 것이다.

2) 사업에 관한 문제

말세의 재앙의 날에 어떤 사업이든지 큰 손해를 볼 우려가 많게 될 것이니 함부러 어떤 영웅적인 심리를 가지고 사업을 하면 안될 것이다. 사업을 하되 하나님의 축복을 중심하여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종말적인 뜻을 이루겠다는 목적 외에는 딴 것은 필요 없다. 사업을 하는데도 말세 진리 운동에 필요 없는 일은 다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알곡을 모으는 추수기이니 모든 것은 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일이 오기 때문이다.

3) 식탁 문제 (가정)

재앙의 날에 남은 가정이 되려할 때에 절대적인 식탁을 조심해야 될 것이다. 그 식탁에 더러운 짐승의 고기를 먹을 때에 그 집에 재앙이 올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경제적인 연구를 하여 사치를 피하고 영양에 필요한 것만을 중점으로 하는 식탁을 취해야 할 것이다. 식탁시는 언제나 식탁의 노래를 부르고 공동 기도를 시키되 매양 어린 자녀들이 기도하는 것을 중점으로 해야 될 것이다. 기도의 중점을 배워줄 적에 이 음식을 먹고 몸이 죽지 않고 새 시대에 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재앙의 날에 남은 가정은 식탁 축복을 받아야겠기 때문이다. 사렙다 과부의 가정에 임했던 축복이 성도의 가정에 같이할 것이니 음식을 적게 먹어도 영양이 충분하는 일도 있고, 사람이 모르게 무슨 일인지 양식이 핍절되지 않는 신기한 일도 있을 것이다. 남은 병들고 굶고 하는 날에도 식탁의 축복을 받은 가정에는 전염병이나 또는 기근의 재앙이 오지 못하도록끔 천사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

5. 영계 문제  


영계 문제에 대하여 3가지 지켜야 될 요소가 있는 것이니 다음과 같다.


1) 항상 시간을 아껴가는 각성의 정신이 있어야 될 것이다. 왜냐할 때에 심판기의 성도는 일할 기간이 얼마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헛된 시간을 보내면 도저히 안 되는 것이다. 쓸데 없는 데 시간을 소비할 때 사탄은 얼마든지 영적으로 침투해 들어올 것이니 항상 내 심령이 쓸데 없는 일에 쏠려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말세의 다림줄의 진리를 쥔 종이라도 사탄이 들어올 수 있는 필요없는 시간을 소비할 때에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

2) 항상 내 사명을 감당해 보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데서 싸워야 할 것이다. 각각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서 자기 사명을 어떻게 하든지 감당해 보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자 외에는 다 자기 사명을 빼앗기는 큰 손해를 보는 일이 있을 것이다. 왜냐할 때에 심판기라는 것은 어느 사명자나 총궐기하여야 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큰 전투가 일어났는데 어떤 군대가 자기 책임 하나를 잘못하므로 대군을 거느린 큰 일에 큰 영향을 가져오는 일이 있는 것과 같다. 기독교 종말의 마지막 싸움을 하는 것이 다림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3) 사상 문제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인류 최후의 결전을 이루는 전쟁은 무력전보다도 사상전이니 아무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도 사상이 잘못될 때에 전멸을 당하는 화가 올 것이다. 이 사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사상을 가진 자는 주 강림시에 불법을 행한 자란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마 7:23). 다시 말하면 금일의 사회주의 공산당이란 것은 근본이 반 기독적이다.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가 반 기독적인 사상을 조금이라도 용납할 때 이것은 벌써 영적으로 표를 받은 사람이다. 우리의 싸움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 영계문제와 사상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니 기독교 종말에 싸우는 전쟁에서 조금이라도 사상적으로 미혹을 받을 적에 그는 용서없이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6. 기도 생활


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은혜 시대 때와 다르다. 은혜 시대에는 각자 각자가 자기 영적 문제 하나를 목적 두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을 많이 두는 것을 기도생활이라고 본다. 그러나 재앙의 날에 사명자는 그런 방식의 기도 생활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다림줄을 쥔 종의 기도 생활은 모든 선지와 사도의 원한이 이루어지는 강권 역사 때이니,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는 종이 나가서 일하지 않고 기도만 하고 있다는 것은 합당한 생활이 못되기 때문이다.

심판의 역사라는 것은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역사l이니 그때 그때 시간을 다투어 가면서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남을 살려 주는 일과 또는 자기 사명 분야에서 어떻게 하든지 승리한다는 목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기의 사명은 전투적으로 싸워나가는 방법으로 합심 호소를 하는 것을 중점으로 해야할 것이다. 사적 행동에서 개인 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심판기에 적당한 것이 아니다.

개인 개인이 나가 싸우다가 피곤이 올 때에 한 데 집결해서 우렁찬 호소를 하여 큰 권세 새 힘을 받아야 할 것이다. 종말의 역사는 군대적인 한 사람의 자격을 가지고 사적인 자유의 행동을 버리고, 부흥단의 한 사람으로서 활약하는 정신에서 강하게 나간다는 정신 없이는 기도의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은혜 시대와 기도 생활의 다른 점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본다.

1) 은사를 중심한 기도가 아니고 권세 역사를 중심한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 영을 구원하는 영적 운동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든지 환란에서 저 사람을 사는 길로 인도하려는 것이 있어야 한다.
3) 은혜 시대에는 어떻게 하든지 내 개인 영적 문제 하나를 목적하고 애를 썼지만, 심판기에는 나 자체가 완전 개조를 강권 역사를 통하여 받는 동시에 변화 성도의 자격으로서 몸에 인간성, 죄악성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합심 호소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시대를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7. 성서 연구에 대하여


말세 심판기의 사명자는 성경을 자기가 한 번 연구해 보겠다고 달리 머리를 쓰고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합당치 않다. 왜냐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리 대표자를 통하여 말씀을 나타냈으니 다 나타났는데 그것을 존종히 여기지 않고 자기가 따로 연구해 보겠다는 것은 대표자를 무시하는 교만의 하나가 될 것이니 일단, 다림줄을 종에게 나타낸 진리를 함께 전하기 위하여 같이 노력하는 중심에서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심판기의 역사이니 벌써 진리가 다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종에게 권세 역사를 하는 때이니 그 종에게 나타낸 진리에서 내가 측량을 받고 바로 서게 된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종의 다시 예언을 중히 아는 동시에 겸손히 다림줄을 쥐고 같이 싸우는 것 외에는 필요 없는 것이다.

만일 심판기에 가서 어떤 사람이 자기가 또 다시 연구해 가지고 나온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한 자라고 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세에 증인 권세 역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권세를 대표적인 종에게 맡긴 것은 다시 예언하라는 권세이니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 주관을 내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제 심판기의 종으로서 성서 연구에 있어서 크게 두가지로 나뉠 것 뿐이다.

1) 성경은 그 시대에 따라 하나님이 개봉하는 책이니 사명자가 한 그것 외에는 다른 해석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나가야 할 일

2) 성경은 조금도 빠짐이 없는 글이니 그 시대의 비밀을 성경에 있는 대로 말할 것 뿐이다.

성경은 시대적인 대표의 사람에게 나타난 것 외에는 함부로 사적 해석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 시대에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어진 사실을 사람이 깨달은 것 뿐이요, 그밖의 된 일은 아무도 정확히 성경을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의 다림줄이 나타날 때는 성경 전체에 대한 해석을 정확히 하도록 하나님은 대표자에게 알려서 그 말씀으로써 통일을 가져오도록 하는 것을 종말의 다시 예언하는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권세 역사를 주는 것은 대표적인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는 진리를 가지고 심판하겠다는 표적이다.


8. 금전 문제


심판의 종으로서 금전 관계가 명랑해야 될 것이다. 왜냐할 때에 종말의 큰 화는 물질에 치우친 자에게 임한다는 것이 예언서의 전편 대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물질 문제에 대하여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물질이 없다고 낙심해서 세상 염려에 마음이 둔해진다는 것은 주의할 일이요, 물질을 많이 쌓아두고 거기에 마음을 두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물질을 아끼고 심판의 역사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쌓아 두기를 좋아한다면 이 사람은 심령이 흑암으로 떨어진 자라고 볼 수 있다.

사명자로서 물질에 관하여 있고 없는데 뜻을 둘 것이 아니고 자기의 할 사명을 위하여 최후의 노력을 하는데 정신을 두고 싸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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