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해 돋는 편에서 두려워 할 영광 (이사야 59:18~60:3)



해 돋는 편에서 두려워 할 영광  

-사59:18~60:3- [70년.7월] 

사 59 :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60 : 1~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시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오리라"


인류 역사상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곳은 아시아라고 보게 된다. 에덴 동산을 창설할 때도 아시아요 인간이 타락하여 생활 개척에 번창의 시발점도 아시아요 무서운 홍수 심판의 방주를 타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노아의 가정도 아시아 사람이라고 보게 된다. 셈과 함과 야벳이 번창할 때에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후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일은 완전한 언약의 말씀이 모든 선지를 통하여 기록된 역사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조물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밀을 인간에게 나타나 보이기도 하고 역사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이와 같은 역사가 앞으로 다시 있으므로써 모든 예언은 이루어져 평화의 왕국이 온다는 것이 과거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일이라고 보게 된다(사46:10). 

모든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장소는 이방의 갈릴리라고 말씀한 대로 갈릴리를 중심하여 이방을 밝히는 빛이 나타났던 것이다(사9:1-2). 그야말로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나사렛 골짜기의 한 목수의 가정으로 자리잡고 자라난 그리스도의 역사는 해변에 나가서 그물 한 채를 들고 있던 갈릴리 벳세다 동네의 어부들이 사도가 되어 세계 열방에 죽은 영들이 살아나는 빛의 종교를 이룬 것이 얼마나 영화로운 일인가. 

이제 더 큰 영광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을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이사야 성경의 목적이 큰 구원을 말한 것인데 이 큰 구원이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재앙에서 남은 자가 되어 눈물 없고 질병 없고 전쟁 없는 새로운 시대에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는 일을 목적 둔 것이다. 그러므로 갈릴리에서 시작된 빛이 시작이라면 해 돋는 동방에 나타난 영광은 끝을 맺는 역사라고 본 성경은 가르쳤다.

이제 해 돋는 편에 나타날 두려운 영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1.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영광이다 (19~20)

인류 역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가 많이 있지만 주 재림시에 남아 있는 자가 볼 영광을 목적 두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던 것이다(약5:7~10, 롬8:18). 그러면 이미 죽은 자들도 이것을 바라보고 싸웠다면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자들의 영광을 가르쳐서 해 돋는 편에서 그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에게 나타날 큰 역사는 해 돋는 편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계시록 7장에도 해 돋는 데서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나온다고 했으니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이 이마에 인맞는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계시록 10장과 11장에 분명히 가르쳤다. 그러므로 이 영광은 원수를 갚는 날에 남은 종이 받을 영광이다(19).



2. 동방 사람에게 마지막 역사가 임하는 일이다 (21)

역사적으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보여준 묵시의 말씀이 다 이루어지는 영광의 새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에게 전할 말씀이 해 돋는 편에 있는 사람에게 입에 임하여서 그 역사로 완전히 끝을 맺는 일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가 없이는 기독교 종말에 나타날 영광을 누릴 진리 운동을 사람으로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직접으로 입에 말씀을 주어서 바로 증거하도록 하는 역사가 동방의 역사라는 것이다(사41:1~2, 24:14~15, 46:11). 이것은 두려워할 일이 된다. 왜냐하면 심판 권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 중에 가장 큰 역사는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종말의 동방 역사이다.



3. 열방을 통치하는 영광이다 (60:1~3)

이 영광은 세계가 흑암이 덮이는 무서운 재앙 속에서 세계 인류를 구원해 주는 역사이니 새 시대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본부는 동방 해 돋는 편이라는 것이다. 잃었던 백성을 찾는 역사는 아시아 서편 지중해 옆 유대 나라요 하나님께로 돌아온 백성을 보호하여 새 시대로 인도하는 역사는 예루살렘에서 획선을 그어서 동쪽으로 나가면 우리 대한민국이 된다.

현재에 극동에 모든 제단이 다 황폐화되고 한국만이 남아서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나라 만세 라는 우렁찬 애국가를 부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나라에 나타나 보호하는 일이 있을 것을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노래를 부르게 하신 것이라고 믿어진다. 기독교의 진리가 이것인 것을 모른다면 기독교는 지금부터 흑암에 떨어지는 비참을 보게 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대한 민국에 나타날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에 목적을 둔 일이 지상 평화 왕국인데 이것을 이루는 진리가 햇빛 같이 말씀으로 새일수도원 강단에 임했다는 것은 만민 앞에 자랑할 영광이 될 것이다. 경솔한 인간들은 공연히 남의 말에 끌려 이 나라에 나타난 진리를 비소하지만 그들도 눈물 흘리며 회개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나라에 모든 문제는 이 민족 위에 나타난 진리 이것으로 해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60장 전체를 읽어보아서 알 수 있다.



결    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과거가 아니요, 이제부터 기독교에 나타날 것이니 이것을 바로 알려주는 일이 새 일을 고하는 일이다(사42:9 이하). 만일 누구든지 이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전멸을 당한다는 것이니 가장 두려운 일이다(사6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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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역사로 하나가 됨 (이사야 59:18~60:3)


동방 역사로 하나가 됨  

-사59:18~60:3,  요절59:19- [72년.4월]

이사야 59: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60:1~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 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시리니 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오리라"


서    론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큰 영광은 해 돋는 편에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다. 주께서 강림하실 때에는 동방에서 나타나는 역사로 말미암아 열방이 다 각성을 받고 하나가 되어 새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대지: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역사가 임하는 일 (59:18~19)

심판기가 올 때에 하나님께서 내리는 역사는 극도로 강하다는 것을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임한다고 하였다. 주 재림기에 아무런 역사도 없이 오시는 것이 아니요, 모든 교회가 각성을 받고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가 내리되 동방을 중심하여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다(사24:14, 41:2이하, 계7:2~3). 그 밖에도 모든 성경을 보면 인간 종말에 하나가 되게 하는 역사는 동방에서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대지:신과 말씀이 임하는 일 (20~21)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에는 동방 사람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고, 입에 말씀이 임함으로써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다. 기독교가 너무나 영계가 혼란하고 말씀이 혼선된 이때에 완전한 영감의 역사가 임하여야 하며, 완전한 변론의 말씀이 임하여야만 될 것은 사실일 것이다. 만일 이러한 역사가 없다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강권으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신의 역사와 말씀의 역사를 보내시는 것이다.

  

3대지:동방에 나타난 영광으로 세계를 통일하는 일 (60:1~3)

주 재림기에는 흑암이 온 땅을 덮는 미혹이 온다. 이 미혹을 물리치는 일은 동방에 나타난 말씀의 빛으로 되는 것이다. 각 나라의 택한 사람들은 다 그 말씀의 빛을 따라 나오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하나를 이루게 된다. 흑암을 물리치는 일은 동방에서 나타난 말씀의 빛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세계 통일의 역사가 된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동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라고 본다. 천국 복음 운동이 완전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동방 사람에게 새로운 역사가 말씀으로 임하므로 그 말씀을 중심하여 완전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10:7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므로 지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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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이사야 59:14∼21)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

- 사 59:14∼21 - [71년.3월]

이사야 59: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護心鏡)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고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당신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 위하여 이루어 놓았지만 사람이 영광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므로 범죄를 하게 되어 타락했지만, 다시 그 영광을 주고자 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40:5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이 이루어진 시대가 은혜시대라고 본다. 그러나 이제 원수를 갚는 날의 영광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강권 역사이다 (14∼18)

강권 역사가 없이는 원수를 갚는 날에 영광을 받을 자는 하나도 없으리만큼 부패될 것을 말했다(14∼15).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수를 갚는 날에 하나도 쓸 사람이 없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라고 하였다. 이것은 강권을 뜻한 것이다. 택한 자를 강권으로 붙들어서 쓰시되 하나님의 의로써 당신의 종을 들어 쓰는 것이니 이 날을 원수 갚는 날이라고 했다. 강권 역사에 대해서 세 가지 요소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 : 택한 자를 들어 쓰되 여호와의 도구로 쓰는 일,
  둘째 : 열심을 주되 원수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
  셋째 :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완전 개조를 시켜서 남은 자가 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원수를 갚는 날이니 만큼 택한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이므로 아담의 가정에서 억울하게 죽은아벨의 피로부터 이날까지 순교자의 피 값을 갚는 일이니 만큼 그들의 기도가 응답으로 나리는 것이다. 계 6:10과 같이 피의 호소를 들으시고 계 7:2∼3같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역사를 강권이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급할 때에 강권으로 용사를 붙들어다가 싸우게 하듯이 원수의 세력을 없이하는 종말의 역사는 강권이 없이 안 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인류 역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강권으로 역사할 때에 쓰여지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하면 모든 선지와 사도와 성도들은 원수에게 억울하게 쓰러져서 그 몸이 흙으로 돌아갔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 쓰여지는 종은 원수를 짓밟고 나가기 때문이다(사 41:25).



  2. 해 돋는 편에 나타날 영광 (19)

금일에 서방에서는 물질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 그 영광에 도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동방 사람은 서방의 문명을 받아들여 그 지도를 받고 있다. 심지어 풍속까지라도 서방 풍속을 받아들일 때에 동방의 예의까지라도 서방의 풍속에 물들고 보니 이것이 동방 셈의 민족의 영광이라고 볼 수가 없다. 또는 소위 공산주의라는 침략적 정책이 동방 아시아의 기름진 땅을 다 점령하고 가장 아름다운 산까지도 메말라 붉은 산이 된 남한만 남았다는 것은 현재로 보아서는 영광이라고 할 수 없다. 본인이 이 나라에서 출생하여 57년 생활에 걸어 온 길을 돌아보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첫째 : 고아의 쓰라린 생활 15년
둘째 : 일본 제국주의 정치 아래서 압박을 받던 생활,  공산 정치 아래 무서운 박해를 받던 생활
셋째 : 6·25 동란의 피난민 생활
넷째 : 깊은 영계의 생활에서 심령적으로 쓰라린 영적 전쟁에서 군대 마귀와 싸우는 영계, 대장 마귀와 싸우는 영계, 붉은 용과 싸우는 영계에서

억울한 말을 많이 듣는 피해를 당하게 된 금일에 1971년 새 봄을 맞이하는 입춘 절기를 맞이하여 간곡히 바라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 나라에 나타나 세계를 깨우치는 선지 국가가 될 것을 믿는 바이다.



  3. 성결한 자로 입에 말씀이 임하는 일 (20∼21)

이날까지 많은 성자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들은 다 완전 역사라는 것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원수를 갚는 날의 남은 종에게는 완전한 역사가 임할 것을 가르쳐서 죄과를 떠난 자라 하였고(사 59:20), 여호와의 신이 같이하는 자로 여호와의 말씀이 입에 있으므로 이것으로 영원한 새 시대를 이룬다고 했다. 이날까지에 모든 선지는 영광스러운 일이 두 번 있을 것을 말할 때에

첫째는 갈릴리 해변을 가르쳐 말했고
둘째는  해 돋는 편이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동방 땅 끝에 있는 우리를 가르친 말씀이다. 지금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가 부족한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같이 해서 얼마든지 받아서 기록하는 대로 내 입에서 말씀이 나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날 일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진다. 왜냐 하면 내가 연구한다는 것은 조금도 영광이 못되겠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이 나려 수많은 책자가 내 입을 통하여 계속으로 나릴 때에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나"라는 생각이 들어갈 때에 한 자 글도 쓸 수 없이 되기 때문이다.

언약의 말씀이 묵시로 나타난 나라(육적 이스라엘)는 적군에게 먹힘을 당해서 이날까지 긴 세월을 흘러 내려왔지만, 그 묵시의 말씀이 햇빛같이 나타나서 세계를 밝히는 그 나라(대한민국)는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는 나라라고이사야 60장에 가르쳤으니 역사상 큰 영광은 해 돋는 편에서 원수를 갚는 날에 나타나므로 완전한 영광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인간들이 영광을 바라는 것은 욕망의 하나라고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원수를 갚는 날에 큰 화가 될 것'을 (도리어)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흑암으로 본다. 정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물권을 잡는 것을 영광으로 보고 심지어 교회라 하면서 까지도 교권을 잡으려고 한다면 부패된 세상에 원수 갚는 일이 심판으로 오게 될 때에 (그 영광이 오히려 심판당할 조건이 되는 것이니) 영광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원수를 갚는 날에 그 말씀을 바로 증거하는 종에게만 본문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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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흑암과 강권역사 (이사야 59:9~18)


기독교 흑암과 강권역사  

-사59:9~18- [71년.10월]

이사야 59: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 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10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11 우리가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12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13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 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에게 기독교 종말의 흑암이 무엇이며 강권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이 본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교회가 부패해서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갔다 하여도 강권 역사를 행하시고 심판을 내리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의 흑암

첫째:빛을 바라나 어두운 일 (9~10)

교회가 아무리 애를 써도 흑암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사랑이 떠나고 공평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사랑하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무시하게 될 때에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내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눈이 있어도 소경이 되고 빛이 있어도 그 빛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흑암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스스로 어두운데 있는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요一2:9~11). 기독교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사랑의 본질을 떠나고 공평을 떠나게 될 때에 십자가의 원수가 되므로 자동적으로 흑암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구원을 바라나 멀어지는 일 (11~13)

구원이라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죄인을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바라보면서도 죄악을 떠나는 생활이 없다면 그 생활은 구원과 멀어지는 생활이다.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서도 구원을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라고 본다. 죄를 용납할 수 없어서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거짓이 있는 자를 용납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교회 흑암이라는 것은 구원을 바라보면서 성결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셋째: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는 일 (14~15)

교회가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아니로되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게 되면 정직한 사람이 일할 수가 없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교회는 흑암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사도 앞에 불의한 자들이 있다 하여도 다 쓰러지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신령한 교회로 세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교회는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라고 한 것은 불의한 자가 권리를 쥐고 있으므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와 같이 될 때에 이 교회를 그냥 두고는 도저히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강권 역사를 행하고야 심판을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강권 역사

첫째:쓸 사람이 없으므로 강권 역사를 행하시는 일 (16)

교회의 지도자 부패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질 때는 하나님은 강권 역사로써 새로운 종이 나오도록 하셔야만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스라엘 말기에도 예루살렘이 부패한 것은 지도자 부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지도자들에게 임하므로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복구된 것은 새로운 순의 종이 하나님의 강권 역사로 나오게 하므로 된 것 같이 심판기에도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여호와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고 역사한다고 하신 것은 강권 역사를 뜻한 것이다. 가장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은 지도자 부패라고 본다.

  
둘째:구원을 베푸시며 원수를 갚는 일 (17~18)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 강권 역사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는 구원을 베푸는 일도 강하게 역사하시고 심판을 내리는 것도 강하게 역사하시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국가에서 적군이 들어올 때에 적군을 치는 것도 강하게 치며 자기 백성을 구해 주는 것도 강하게 다스리는 것과 같다.   

은혜 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때가 아니므로 원수에게 피해를 당해도 그 영혼만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는 친히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하시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동방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한 것은 동방 역사는 원수를 갚는 날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진노는 교회 부패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부패되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 동참하지 말고 여호와만 바라보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서 새로운 일꾼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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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9일 화요일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인격 (이사야 58:10~12)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인격  

-이사야 58:10~12- [72년.4월] 

이사야 58: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종이라는 것을 본문에 가르쳤다. 이날까지에 우리 기독교는 몽학적 교훈의 역사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도 몽학적 교훈을 하는 때가 있었고, 경고의 나팔을 부는 선지 시대가 있었다.

구약 때에 몽학적 교훈은 모세 오경이니, 없던 성전을 세웠고 없던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그대로 그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친 동시에 제사하는 법을 가르쳤고, 성전 짓는 법을 가르쳐서 그 말씀대로 나라 헌법이 되었고, 그 말씀대로 성전이 이루어졌고, 그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족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지나서 선지 예언 시대라는 것은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운다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예언한 때를 말한다. 부패한 정부와 부패한 선지와 부패한 성전의 모든 것은 다 황폐화되고 말 것을 가르쳤으며, 거기에서 새로운 순의 종이 나와 예루살렘이 다시 복구될 것을 가르친 것이 선지 예언이다.  

이와 같이 신약 시대에도 새로운 사람들이 중생을 받아 뭉쳐지는 단체를 교회 단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 때에 몽학적 교훈이 되는 모세 오경에 가르친 말씀대로 이루어진 교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몽학적 교훈이 완성된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날까지 기독교는 이스라엘 왕국의 몽학적 교훈이 신약 교회에 완전한 열매가 되는 교회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경고의 예언의 말씀이 구약 말기에 증거가 나타난 것은 신약 종말에 완전한 열매가 될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울 종의 인격은 어떠한 것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인격 (10)

오늘날 참된 종이라는 것은 마음이 괴로워하는 자를 만족케 해 줄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마음이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몽학적 교훈이 필요치 않고, 완전 변론의 역사가 있어야만 될 것이다. 은혜 시대의 역사는 젖을 주는 것이라면, 괴로워하는 마음에 만족을 주는 교훈은 감추었던 만나가 될 것이다.  

이 시국에는 사상과 양심이 바른 성도들에게 괴로움이 되는 일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롭고, 남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롭고, 동,서방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괴로운 형편에 있는 것이 이때이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사상으로, 정치로, 교회로, 가정으로 변해진다는 것은 극상 포도를 심은 농부가 들 포도가 된 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과 같이 사상, 양심이 바른 참된 하나님의 종이 괴롭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에게는 천국 복음을 말해서 마음에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요, 심판과 새 시대에 대한 진리를 완전 변론으로 증거해서 괴로워하던 종의 마음에 의문을 풀어줄 때에 자동적으로 만족을 가지게 된다. 피곤한 그 마음이 각성을 받고, 분명히 이때는 우리가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괴롭던 모든 문제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 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므로 해결될 것을 확신하게 되므로 마음에 만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초림의 주가 오실 때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그 죄를 사함 받으므로 기뻐하게 되었다. 지금은 시국의 여러 가지 문제가 마음에 괴로움이 된 사람에게 완전 변론의 말씀을 증거하게 되면 모든 어려운 난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이것은 말씀대로 시국이 이렇게 되었으니 말씀대로 어떠한 노선을 가야만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될 때에 마음이 괴롭던 자들이 만족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었던 영들이 이루어진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는 종들을 통하여 중생을 받았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환난과 재앙을 만난 사람들이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게 될 때에 마음에 만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2. 어디서든지 항상 만족을 누리는 인격 (11)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인격이 되려면 아무리 메마르고 적막한 자리에 간다 하여도 항상 만족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조금도 피곤이 없는 인격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괴로운 것이 남아 있다면 자신부터 고쳐야 될 것이 있는 인격이니,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독교 종말에 역사를 일으킬 종은 은혜 시대보다도 더 만족한 것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은혜 시대의 종인 바울은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 하나 속사람은 새롭다고 하였지만, 인간 종말에 남을 종이 될 사람은 영이 소성함같이 몸도 아울러 소성함을 받는 역사가 있으므로 그 몸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게 될 것이다.

  

3. 많은 열매를 맺는 인격 (12)

이 땅에서 가장 열매가 많은 인격을 가진 자는 새 시대로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사명자라고 본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가진 자는 대중적인 구원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목적했다. 그러나 인간 종말에 새 시대를 이루는 종은 순식간에 새로운 왕국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게 된다(사66:7~9). 천국은 단체적으로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죽어서 그 영혼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역사는 전 세계 인류가 전멸을 당하는 날에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고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복 있는 자는 무너진 데를 다시 세우는 일을 하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사람이 무너뜨리는 일은 하기 쉬워도,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귀한 일이라고 본다. 오늘날 심령 부흥회가 각 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이것은 완전한 역사라고 볼 수 없다. 우리는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가장 큰 역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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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즐거움 (이사야 58:13~14)


안식일과 즐거움  

-이사야 58:13~14- [72년.4월]

이사야 58: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즐거운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실 때에 즐거워하신 것은 없었던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천지 창조가 없었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일이 있을 수 없다. 세상에서 어떤 부부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가만히 있다면 즐거움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시지 않으시고 영원히 홀로 계신다면 아무런 영광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크게 즐거워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대 사업을 마치시고 축복하신 날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축복을 받지 못하고 슬퍼하시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아무리 타락한 인생이라도 다시 그 축복을 주시고자 하는 거룩하신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자에게 거룩한 뜻을 알게도 하시고, 그 복을 받게도 하시는 것이다.  

율법 시대와 신약시대의 안식일에 대해서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율법 시대의 안식일은 몽학적이라면 신약시대의 안식일은 완전히 이루어지는 열매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언적인 성전에서 지켰던 안식일은 열매가 될 교회가 누릴 안식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따라 행하시는 날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행하시는 날이다. 그리스도께서 완전 승리의 열매를 이루신 이레 중 첫날이 되는 그날에 부활하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기도 하시고, 은혜를 내리기도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의 법에 의한 안식이므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본다.  
  
이제 안식일과 즐거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즐겁고 존귀한 날 (13상반절)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날은 땅의 것을 위하여 사는 날이 아니요, 하늘의 것을 위하여 사는 날이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하늘의 것을 받는 체험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그 날은 외식이 되고 말 것이다. 엿새 동안에 마음이 상처를 받고, 피곤해지고, 복잡해졌다 하더라도 안식일에 교회로 와서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새로운 역사를 받게 될 때에 극도로 즐거워진다.  
  
그리고 가장 존귀한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날에는 내 사업보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아는 사람이 일을 중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에 가장 존귀한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이 안식일에 즐거워하는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기도록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그 생활은 아무런 열매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기 때문이다. 안식의 축복을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식일에 모여서 우렁차게 호소 성가를 올려야 할 것이다. 집에서 기도의 힘을 잃었던 사람도 성전에 나와서 호소 성가를 올리게 될 때에 새로 내리는 역사를 받게 되므로 메마른 땅에서 시들은 풀이 단비를 맞고 소성하듯이 소성함을 받게 된다.

지금 하나님께서 새 시대를 목적한 진리를 중심하여 새일성가를 내려 보내신 것은 그 기도 호소문을 통하여 안식일마다 무한한 축복을 내리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 「새일수도원」에서는 새일성가를 부를 때마다 이슬과 단비 같이 역사가 내리므로 누구든지 믿음으로만 부르게 되면 산 체험을 가지게 된다. 아무리 피곤하던 사람이라도 이 성가를 부르게 될 때에 분명히 소성함을 받게 되는 모양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안식일에 이 성가를 통하여 내리는 흡족한 은혜를 항상 받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오락을 한다는 것은 은혜가 내리지 않는 교회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락보다도 하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가지고 그날을 지켜야 할 것이다.

  


2. 사적을 떠난 공적의 날 (13하반절)

안식일에는 단체적인 행동을 해야 된다. 사사로운 행동이나 말을 하지 말고 공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과 대중을 복 받게 하는 일을 중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교인이 교회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예배한다는 것은 벌써 공적 교회를 무시하는 일이니, 죄를 범하고 있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사적 생활에 대한 일이나 말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한 단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 하나를 위한 것보다도 대중을 위해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력을 둘 때에 자동적으로 거룩한 단체가 되어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예배를 드리게 되며,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예배를 드리게 된다.

강단에 서는 종은 하나님께서 그날에 하실 말씀을 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제물로 올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렁찬 호소를 올려야 한다. 제물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으로 제사를 완성한 것이니, 우리는 이 몸을 바쳐 예배할 때에 지성소에 있는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통하여 응답이 내리는 것이다.
  
강단에 선 종이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입을 열어 설교할 때에 그 말을 통하여 대중이 만족함을 받는 일이 있게 되므로 교회는 날마다 신령한 은총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예배를 인도하는 종이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지 못하고 강단에 선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은 자동적으로 세상으로 흩어지게 되는 일이 있으므로 그 교회는 속화되고 말 것이다.

  


3.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날 (14)

우리는 안식일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얻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교회가 안식일에 극장을 가고, 야외 소풍을 가고, 운동회를 하고, 오락회를 열고, 파티를 연다면 벌써 여호와 안에서 떠난 행동이다.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교회가 될 때에 세상 오락이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원을 받는다는 것보다도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하고도 즐거운 날은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날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예배의 날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에 복을 받는 자가 되어야만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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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는 비결 ( 이야사 58 : 9~12 )



축복받는 비결

- 이사야 58 : 9~12 - 

이사야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인 동시에 복을 주고 싶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없이 복을 준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어떤자가 되어야 말세에 큰 축복을 받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1.  버릴것을 버려야 한다((9절)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해 버려야 한다. 이것은 무거운 멍에를 자기가 벗고 남에게 메우려하는 것을 용납할 수없다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볼때에 자기를 돌아보아 고칠려는 마음은 없고 손가락질 하는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망한 말로 남을 해치려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하고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이 세가지가 있는자는 도저히 응답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축복을 받을려는 것도 마땅한 일이지만 버릴것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2.  주린자에게 심정을 동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10절)

만일 남의 주린 사정을 보고도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양심이라 하기는 어럽다.우리는 남의 딱한일을 볼때에 마음이 동하여 하나님을 향할때 하나님은 그 심정을 보고 움직여 주시는 것이다.



3.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하는 일이다(11~12)

우리는 타인의 심정을 알아주는 것이 첫째 할 일이다. 아무리 남에게 육적으로 도움이 있다 하여도 그 마음을 만족케하는 일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를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의 종이 양떼의 마음을 만족케 못하고 괴롭게 한다면 자동적으로 흑암이 올 것이다.



결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첫째= 항상 인도 하시되 심령에 만족을 받게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것이 잘되는 것 같으나 영혼이 만족하지 못하는 일이라면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축복일 수 없다.

둘째= 뼈가 견고케 되는 것이니 이것은 소성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11) 
하나님의 축복은 피곤에 잠긴것이 아니고 정상적인 샘물 같이 솟아오르는 일이있는 것이다.

세째는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이것은 아름다운 새시대를 가르친 것이니 완전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받는 종을 통하여 아름다운 새시대를 건설할 자를 일으키게 된 것을 완전한 축복이라 한것이다.

아무리 세상에서 화려한 생활이 있다 하여도 이것은 황폐될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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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 (사56:7~8, 66:5~6, 습3:19~20, 미4:6~8)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  

-사56:7~8, 66:5~6, 습3:19~20, 미4:6~8- [71.10]

이사야 56 : 7 내가 그를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사야 66 : 5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아 그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6 훤화하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대적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스바냐 3 :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미가 4 : 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7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8 너 양 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을 처음에는 쫓겨나게 하시고 다음에는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과거의 역사요 현재의 역사요 미래의 역사가 될 것이다. 어찌해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쫓겨남을 당하게 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택한 자의 진실성을 알아보자는 목적이요,  
  둘째는 당신의 능력을 세상이 알도록 하자는 목적이요,  
  셋째는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일은 쫓겨남을 받은 자가 원수를 이기게 되는 것이다. 쫓겨난 자로 강국을 이루는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쫓겨난 자를 모아서 단체를 이루게 하심 (사56:7~8)

완전한 단체라는 것은 평안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단체가 아니요, 어려운 일을 당하는 데서 사상으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이루어지는 단체를 완전한 단체라는 것이다. 쫓겨남을 받은 사람들이 한 단체를 이룰 때에 사상과 정신과 마음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뭉쳐지게 된다. 이 단체는 사상 통일, 정신 통일마음 통일을 이룬 단체로서 이상적인 나라를 이룰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쫓겨난 자를 모아서 당신의 성산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2. 쫓겨난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심 (사66:5~6)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떠는 마음으로 순종하기 위하여 형제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난 사람을 위하여 원수를 갚되 아무리 당신의 성전이라도 황폐화시키기도 하시고 당신의 자녀라도 말씀에 떠는 자를 미워하고 쫓아낼 때에는 원수로 알고 싸워 주시되 그들을 진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감정으로 남을 쫓아내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심판의 다림줄의 문제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고 쫓아내었다면 그 사람은 용서 없이 그 말씀대로 오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3. 쫓겨난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심 (습3:19~20)

가장 칭찬과 명성이 높은 자는 진리를 위하여 쫓겨나면서도 싸워 나가던 자들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서울에 억울함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나라를 위하여 싸운 사람들의 동상을 많이 세운 것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의 나라를 위하여 진리를 전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싸운 자라면 얼마나 그 칭찬과 명성이 높을 것인가! 그러므로 시온 대회를 인하여 근심을 하며 괴로움을 당해도 거기에 굴복치 않고 나간 자들이 천하에서 제일 명성이 높아질 것이다.

  

4. 쫓겨난 자로 영원한 나라를 이루심 (미4:6~8)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가장 진실한 자로써 영원한 왕국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쫓겨난 자로 강한 나라를 이루는 것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를 뜻한 것이다. 이날까지 아무리 그 세력을 자랑하던 강대국이라 하여도 다 바람 앞에 등불 같이 그 자체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를 대적하고 남을 압박하고 쫓아내던 나라들이므로 자기 자체가 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쫓겨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싸워 나간 자라면 하나님께서 볼 때에 제일 강한 자로 인정하시고 그들을 세세 왕권의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악의 세력을 강하게 해서 당신의 사람을 대적하게 하시는 것이다. 사람으로는 원수의 세력을 이길 수 없으므로 쫓겨나게 되지만 끝까지 싸워 나갈 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함께 하시므로 완전한 강국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쫓겨난 자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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