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창세기 3장 1~10 설교 : 가장 간교한 뱀과 인생 가치

 
가장 간교한 뱀과 인생 가치
-창3:1~10-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하여서 그 가치에 향상과 타락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께서 가장 간교한 뱀을 낸 것은 사람에게 최고의 가치가 되는 영생의 과실과 세세 영광을 누리는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인생이 가치를 상실하게 된 것은 사람의 과오이다. 하나님은 간교한 뱀을 상대해서 아무리 꾀어도 내 말을 참으로 믿고 순종하면 너는 비록 흙에서 난 몸이지만 영생과를 먹으므로 영생할 몸이 되는 가치와 또는 나와 같이 다스리는 권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 동시에 인생의 가치를 발휘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인생이 가치를 상실한 동기는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상실한 것이다 (1~3)
 
말씀의 존위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사람이 가감할 수 없는 말씀인데 사람이 조물주의 말씀에 존위성을 생각지 않고 함부로 자기 마음대로 그 말씀을 말한다는 것은 사람된 가치를 상실하는 큰 과오가 되었다. 하와가 “보지도 말라”,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한 것은 벌써 합법적인 위치를 떠난 중언부언하는 횡설수설의 말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알고 그 말씀을 증거할 때는 권위있게 말하여야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말씀에 존위성을 상실하고 함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 “가져다 붙일 탓” 이라고 하는 말까지 있는 것은 중생받은 성도로서의 그 가치를 상실하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할 때에 말을 똑똑하게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존위성을 잃지 말고 입으로 위엄있게 그 말씀을 말하여야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마귀의 간교한 시험이 올 때에 성경을 본문대로 위엄있게 읽어서 마귀를 물리쳤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 말씀 자체를 권위있게 증거해야만 마귀는 물러가게 된다. 
 
 
  2. 뱀의 말에 충격을 받은 일이다 (4~6상반절)
 
인생이라는 것은 언제나 마귀의 말에 충격을 받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마귀 말에 충격 받는 시간에 영적으로 마귀의 흑암이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아무리 간교한 뱀이 말해도 그 말에 귀를 기울여 들을 필요도 없고 마음에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가야만 사람은 영적으로 침투해오는 마귀의 압력을 받지 않게 된다. 지금 무신론 공산주의 변론이라는 것은 간교한 옛 뱀인 용의 말이다(계13:7). 
 
간교한 뱀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때에만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심판기에도 말한다고 했다. 기독교의 중생의 도리가 십자가의 증거로서 온 세계의 인류를 빛으로 인도한 금일에 와서 간교한 옛 뱀을 다시 말하게 한다. 그것이 소위 유물론 공산주의의 간교한 선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에는 귀담아 들을 것도 없고 현재에 그 세력이 강하게 일어난다 해도 그들이 하는 말을 조금도 마음에 충격조차 받을 필요 없는 말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공산주의 변론 앞에서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듣고 서로 이해한다는 말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가 뱀과 말할 때에 뱀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그 미혹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는 공산주의 변론과는 사정없이 끊어버리는 칼을 써야 한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는다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이 법을 준 것은 처음에 뱀의 말에 충격을 받고 미혹 받은 인생이 잃었던 지상 축복을 중생 받은 사람에게 주기 위한 방법으로 용에게 말한 것이 소위 유물적 정책의 공산주의 변론이라는 것이다. 
 
 
  3. 마음이 끌리는 일이 있게 되는 일이다 (6하반절)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준 인격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곳으로 마음이 기울어질 때에 그때부터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고 그 영이 하나님과만 교통하고 사모할 때에 하나님께로 오는 축복을 받으므로만이 발전하고 또는 완전한 권리를 시행할 수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선악과로 끌렸다는 것은 선악과보다 못한 존재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의 화려하게 보이는 물질에 끌린다면 그 시간에서부터 그 가치를 상실하는 인격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4. 피가 더러워진 일이다 (7)
 
부끄러운 것을 모르고 하나님의 영광 빛 아래 살던 아담,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즉시에 부끄러운 생각이 난 것은 그 몸이 더러워진 증거이다. 인간들이 부끄러운 생각이 난 것은 가치를 잃어버린 몸이 된 증거이다. 우리 몸이라는 것이 완전한 몸이 될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영원한 영광 속에 들어가므로 영생할 몸이 되는 것이다. 부끄러움이란 자체는 자동적으로 몸에서 생긴 것이니 그 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는 증거다. 기독교인이 이 몸이 부끄럽지 않은 영광스러운 몸이 되려면 예언의 말씀을 철저히 지켜서 선악과와 같은 바벨적인 세력에 물들지 않아야 될 것이다. 
 
 
  5.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8~10)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격적인 가치가 상실된 증거라고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하나님과 동거동락할 수 있는 위치를 준 것인데, 선악과를 먹을 때에 그 위치를 가질 수 없는 인격이 되었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의 품안을 떠나서 탈선된 길을 갈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는 날에는 어찌할 줄 모르고 떨게 될 것은 사실이다. 우리 주님이 지상 평화 왕국을 건설하려고 재림할 때에 두려워 떠는 사람이 된다면 이 사람은 뱀의 말을 듣고 그 몸이 죽을 사람이라고 본다. 
 
 
  결    론
 
사람이라는 것은 간교한 뱀과 말씀을 놓고 싸워 이기면 향상이요, 이기지 못하면 가치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마귀의 지배를 받는 생활로 들어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생의 잃어버린 가치를 둘째(마지막) 아담을 통하여 찾아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그 말씀대로 행하는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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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 : 1~5,마태 4~1~11 설교 : 미혹의 말이 무엇인가 주의할 일


미혹의 말이 무엇인가 주의할 일

- 창 3:1~5 / 마 4:1~11 -


창세기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마태복음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하나님께서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에게 간교한 마귀로 미혹의 말을 하도록 허락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자가 되느냐를 시험하는 거요,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변론을 바로 해서 이기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하나님만 존경하는 생활이 있나 보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아담 하와에게 미혹의 말이 왔고, 둘째 아담 예수에게 미혹의 말이 왔다. 미혹의 말이라는 것은 그때에 그 인격을 따라서 오는 것이다. 이제 미혹의 말이 오는 그 환경과 입장을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아담 하와에게 오는 미혹의 말 (창 3 :1-5)

미혹의 말이라는 것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인데 인격과 환경에 따라서 미혹을 받도록끔 하는 말이다. 이제 미혹의 말이 어떠한 환경과 인격에 따라서 오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하나님 말씀을 물어보는 말로 오는 것인데 여기에 대하여 완전한 답변을 못할 인격을 가진 자에게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와 같이 말씀을 옳게 대답을 못하는 자가 되면 대답을 바로 못하는 시간에 벌써 마귀에게 지는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와가 마귀의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나님 말씀에서 정확히 대답을 못하는 인격이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을 '죽을까' 라는 말로 대답이 나올 때에 하와는 미혹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귀는 말씀 무장이 못된 자에게 답변을 바로 못할 줄 알 때는 성경을 물어보는 말로 미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미혹의 말을 이기려면 물어보는 말에 정확히 대답할 무장이 있어야 한다. 금일 소위 목자라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 하나님 말씀으로 정확히 대답을 못한다면 교회를 망치는 목자가 될 것이다(창3:1-3).

  2)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도 미혹자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볼 것이 아니고 한 상징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아니한다는 말이나 같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그 말씀은 언제나 사랑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 미혹의 말이다. 우리는 공의를 떠난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데서 말씀은 공의의 법이라는 것을 믿고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법인줄 알고 마귀와 대적하는 것이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 미혹은 얼마든지 말씀을 변경시키려는 것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창3:4).

  3)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이루어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데 마귀는 이것을 의심나도록 하는 말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까봐 먹지 말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마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케 해 주고자 하는 사랑을 의심나게 하는 말을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이 나지 않고 오히려 불리하게 될 것으로 생각이 나도록끔 하는 것이니 언제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해 주시는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가야 할 것이다(창3:5).


    2. 마지막 아담 예수에게 오는 미혹의 말 (마 4:1-11)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의 아담 하와를 마귀의 말로 미혹해 보듯이 둘째 아담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마귀의 말로 미혹을 시켜 본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미혹해 보는 말을 할 때에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에게 말하는 방법과는 다르게 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신을 받고 성신의 인도 하에서 미혹을 하는 말을 할 때에 성신 받은 사람으로서 미혹 받을 말을 했던 것이다.

  1)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이적이다 (3-4)

이것은 성신 받은 사람이 이적을 중심한다는 것은 미혹 받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적이라는 것은 말씀으로 양떼를 살리기 위한 목적인데 말씀으로 살리지 않고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이적이라는 것은 곁길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이적을 행했다 하여도 진리로서 우리를 살리는 일이 없다면 그 이적은 필요가 없는 일이요. 금일에 아무리 이적을 행하는 종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양떼를 살리는 역사가 없다면 그 이적은 오히려 미혹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으로 이겼던 것이다. 금일에 아무리 이적이 많아 육체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말씀으로 그 생명을 살려 주는 일이 아니라면 거짓선지의 미혹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높은데서 뛰어 내리면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5-7)

성신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한다고 해서 함부로 위험한 일을 저지르면서 보호할 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되는 것이니 마치 마술자가 필요 없이 마술을 행하듯이 아무 필요 없는 일에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이용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노여워할 일이다. 예를 든다면 군대가 전쟁을 할 때에 자기가 주의치 않고 싸움에 실패하면서 상부의 보호만 믿고 있다는 것은 망령된 일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사람이 주의할 일을 주의하고 피할 일을 피하고 싸울 일을 싸우면서 그밖에 내가 못할 일을 하나님의 역사로 된다는 것을 믿고 나가지 않고 공연히 필요 없는 일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고 하면서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오히려 미혹을 받는 길이 될 것이다.

  3) 타협적으로 나가자는 말이다 (8-11)

마귀는 언제나 싸우지 말고 자기 말만 들으면 얼마든지 좋게 해준다는 것이다. 금일에 공산당이 기독교를 향하여 공산 사상을 지지만 해 준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니 이 말이 마귀의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온 것인데 마귀 앞에 타협을 한다면 벌써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은 붉은 마귀의 일을 없이 하려는 것인데 마귀의 일을 없이 하기 위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마귀의 일에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그 시간에 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초림의 주로 오신 것은 타협할 수가 없이 죄를 진 인간들을 향하여 대신 죽으러 온 것이요 재림의 주로 오실 것은 이 세상에서 마귀의 일을 몽땅 없애려 오시는 것이니 누구든지 마귀의 일에 타협하자는 것은 미혹의 말로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사명은 마귀에게 미혹 받은 세상을 깨닫게 해서 구원해 주자는 것이니 마귀의 미혹의 말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기독 신자로서 허공을 치는 바람잡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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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0일 토요일

창 3 : 6~7, 마 1 : 18~25 설교 : 가정에 오는 난제와 인류 문제



가정에 오는 난제와 인류 문제

-창3:6~17, 마1:18~25- [72.2]


하나님께서 인류적인 대 사업을 할 때는 언제나 지극히 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대 자연을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역사를 하게 하셨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낼 때에도 아름다운 동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아름답게 살며 아름다운 영광을 길이길이 누리라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하와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일은 세계 인류를 타락시켰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서 시작된 일이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타락의 근본 되는 가정과 인류 향상의 근본이 되는 가정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인류 타락의 시발점이 된 가정 (창3:6~17)

세계 인류를 대표하는 가정에서 여자 하나가 잘못하여 인류적인 큰 영향이 되었다는 것을 볼 때에 사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간교한 마귀를 용납했다는 것이 세계를 망치는 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조금이라도 불의한 세력을 용납한다는 것은 벌써 자기 사명을 상실하는 일이다.

  하와가 뱀의 말을 물리치지 못하고 거기에 끌려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게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인류 타락의 근본이 되었다. 사명자가 자기 인격을 상실하고 남에게 끌린다는 것은 자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고 인류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사명을 가진 자로서 자기 사명의 획선을 조금이라도 남에게 침범을 당하게 된다면 반드시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자기가 맡은 사명에서 사상과 정신이 조금이라도 상실될 때에 그 시간부터 큰 일이 난 것으로 알고 그것을 물리치는 데 전력을 두어야 한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하여도 그 충격을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자기의 주인 된 남편을 사모하고 따라갔던들 이러한 세상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명자들은 자기 사명에 대하여 방해가 되는 충격이 올 때에 이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담이 아내를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자기 사명의 획선을 벗어나기까지 아내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큰 실패가 되었다. 우리는 아무리 사랑하는 자라도 사명을 침범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이 사단아 물러가라 는 책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담이 아내를 책망하지 못하고 그 일에 끌렸다는 것은 세계적인 대표가 되는 인격이라고 볼 수 없다. 아담과 하와가 사명의 인격을 상실할 때에 수치와 공포와 분쟁이 오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담의 가정에서 시작된 수치, 공포, 분쟁은 오늘날 인류적인 수치, 공포, 분쟁이 되었다. 언제나 사명자라는 것은 무엇에 치우치는 일이나 끌리는 일이 없어야만 세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 인류 향상의 시발점이 된 가정 (마1:18~25)

  

나사렛 동네의 빈한한 가정에서 여자 하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이 세계 인류를 향상시키는 근본이 되었다. 인간 도덕으로는 큰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에게 성신의 잉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할 때에 세계 인류 향상의 시발점이 되는 성신의 잉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성경대로 자기 몸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나므로 다윗의 왕국이 세계를 통일하는 영원한 왕국이 될 것을 믿고 자기 앞에 여러 가지 난관이 있을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순종하였다.

우리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앞으로 오는 여러 가지 난제를 생각지 말고, 주의 능력에 무조건 순종할 때에 순종을 제사보다 낫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므로 되는 것이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무소불능을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무소불능의 역사가 그 몸에 그 시간부터 시작되어 온 세계 인류에게 큰 구원을 주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의 몸에 잉태가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 경솔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주의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범죄하지 않고 의를 행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되었다. 만일 천사의 지시를 받지 못하였던들 요셉은 큰 범죄를 하므로 인류 향상의 시발점이 되는 그리스도 탄생의 대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이 있었으므로 천사의 지시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닥쳐올 때에 이것을 바로 알아보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가장 거룩한 성도의 자격을 가진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했다는 것은 신앙 양심으로서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므로 요셉은 묵묵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무엇이나 깊이 생각을 해 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뜻을 기다리는 것이 있기 전에는 세계적인 대표가 되는 사명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명자는 수치스러운 일이 온다하여도 주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시행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인간 도덕적인 방면으로 본다면 처녀로 잉태한 마리아를 요셉이 집으로 데려와 받들어 섬긴다는 것은 비방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들이 비방한다고 거기에 흔들리고 자기의 위신이 떨어진다고 여기에 치우친다면 이 사람은 세계적인 사명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보기에는 빈한한 목수의 가정이었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가정에 출생하여 세계적인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 가정이 순종치 아니하므로 전 세계 인류가 저주 아래로 떨어졌고 한 가정이 순종하므로 전 세계 인류가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 가정의 난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고 한 가정의 축복이 세계적인 축복이 된 것이다.

 
결    론

한 가정의 일이 세계적인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가정에서부터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 있어야할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복된 가정, 복된 교회, 복된 나라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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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 : 13~15, 사 65 : 21~25 설교 : 원수가 생긴 가정과 원수가 없는 가정



원수가 생긴 가정과 원수가 없는 가정  


-창3:13~15, 사65:21~25- [72.1]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기뻐하기도 하시고 가정을 슬퍼하기도 하신다. 왜냐하면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노엽게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가정을 이루어 주시고 그 가정을 통하여 의의 씨를 충만케 하라는 것과 의의 권세로 땅을 정복하라는 것과 의로운 인격으로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지만 가정을 바로 다스리지 못하므로 원수가 생기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이기는 가정으로 평화로운 왕국을 이루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다.
 
원수가 생긴 가정과 원수가 없는 가정의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원수가 생긴 가정 (창3:13~15)

  

하나님께서 원수를 내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써 원수가 생긴 것이다. 에덴동산의 뱀이 가장 간교하다고 하여도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 나갔다면 뱀은 사람에게 원수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뱀의 가장 간교한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도 더 믿었으므로 가장 간교한 뱀이 원수인 마귀가 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뱀은 사람을 속이는 죄를 졌으므로 저주를 받게 되었고 사람은 속았으므로 축복을 잃게 되었는데 사람을 속인 뱀은 그때부터 사람을 계속으로 속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끝까지 속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뱀에게 한 번 속아 타락한 인생은 끝까지 속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뱀의 말을 듣지 않고 이겼다면 뱀은 사람에게 감히 피해를 줄 수가 없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마귀라는 것은 가장 간교한 뱀이 사람을 속여서 타락시킬 때부터 저주를 받은 동물로써 더 악해지고 최후에는 독한 독사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뱀을 창조하실 때에 가장 간교하게 내신 것은 이기면 얼마든지 승(勝)할 수 있는 기능을 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해서 다른 동물과는 상대가 되지 않아도 가장 간교한 뱀과는 상대가 되게 하셨다. 이 상대라는 것은 의의 상대가 아니라 가장 간교해서 속일 수 있는 동물과 가장 정직하여서 속을 수 있는 사람과의 상대이다. 그런데 정직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거짓이라는 것이 자기에게 있지 않으므로 거짓이라는 자체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뱀이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할 때에 하나님을 의심한 것보다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신이신데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이 나게 되었다.

언제나 원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달리 생각이 나도록 하는 일과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달리 생각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의 역사를 잘못 생각이 나도록 하는 것을 감화로 넣어 주어서 말씀과 사랑과 역사를 탈선된 데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다시 성도의 가정에 들어와서 원수가 되는 일이 있게 된다. 지금도 아무리 마귀가 간교하다 하여도 하나님 말씀을 바로 생각하고 사랑을 바로 생각하고 역사를 바로 생각하는 가정에는 원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원수가 없는 가정 (사65:21~25)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에게 억울하게 미혹을 받고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는 다시 원수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 가정을 이루어 놓는 것이 언약의 말씀의 목표가 된다.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영혼 구원을 목적하신 것이 아니라 원수가 없는 가정으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가 될 때까지 부분적인 구원으로 그 영을 낙원이라는 영계에 머무르게 하시는 것뿐이다.

땅위에 원수가 없는 가정생활을 완전히 이루어 놓으므로 그 가정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를 완전히 이루는 것을 목적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중생 받은 사람으로 심령의 가난과 통회를 가지고 말씀에 떤다면 권고하여 남은 자가 되게 하고 그 밖에 불의한 자들을 다 없애는 동시에 마귀의 원수 피해가 다시없는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사66:1~2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원수가 없는 가정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은 미혹의 신이요, 그 사랑을 바로 깨닫도록 하는 것은 진리의 신이다. 복된 가정에 원수가 생긴 것은 하나님 사랑을 잘못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가장 간교한 뱀이 인생에게 원수가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하나님의 말씀을 변경시킨 일,
  둘째: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생각하게 한 일,
  셋째:하나님과 멀어지게 한 일이다.

가정이 말씀에 순종치 않고 단합되지 못하므로 잃어버렸던 지상 축복을 말씀에 순종하고 단합된 가정으로 다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마귀를 들어 쓰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여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합심이 되고 안 되는 것을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없는 가정이 되려면,
  첫째는 말씀을 순종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며,
  둘째는 단합된 가정이 되어야 하며,
  셋째는 성별된 가정이 되어야 한다.

가장 복된 일은 원수가 없는 가정이 되어 새 땅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원수인 마귀를 없이하는 것은 말씀대로 끝까지 순종하여 완전한 평화의 가정과 나라를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큰 일은 원수가 나에게 피해를 주느냐 못 주느냐 하는 것이다. 아무리 모든 일이 다 잘된 것 같으나 원수의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수고는 다 헛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 아무리 좋은 가정이라도 원수가 있게 될 때에 불행을 가져왔고 현재 아무리 고난이 있는 가정이라도 원수가 없는 가정이 될 때에 영원한 축복이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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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9일 금요일

창 3 : 17~19,계 11 : 7~12 설교 : 흙으로 돌아갈 몸과 하늘로 올라갈 몸


흙으로 돌아갈 몸과 하늘로 올라갈 몸

- 창 3:17∼19, 계 11:7∼12 -

창세기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니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동시에 사람도 그 역사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를 창조하시고 흙에서 창조를 받은 몸을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흙에서 난 몸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은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요, 반드시 간교한 뱀으로 시험을 해보고 이기면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간교한 뱀을 이기지 못하므로 흙으로 돌아갈 몸이 된 인간이 다시 간교한 뱀을 이기고 그 몸이 하늘로 올라가기까지가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것이다.


    1. 흙으로 돌아가게 된 몸 (창3:17∼19)

아담이 간교한 뱀에게 미혹 받은 여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몸을 이루게 된 것이다. 소위 왕권을 받아야 할 사명자가 여자의 말을 따라갔다는 것은 큰 과오가 아닐 수 없다. 하와는 뱀의 미혹을 받고 선악과를 먹을 때에 벌써 그 몸은 뱀의 도구가 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령이 된 아담을 통하여 (그가) 생명과를 먹어 그 몸이 하나님과 동거동락하게 하시려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몸이 없는 여호와께서는 몸이 있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의 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완전한 것을 줄 수 있는 완전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것을 주는데는 완전히 이기는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상대하여 큰 나라를 이룰 사명을 맡은 자로서 뱀의 도구가 된 여자를 용납했다는 것은 벌써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없는 자격인 동시에 선악과를 먹기까지 했다는 몸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라는 것이다. 이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몸이 되는 죄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

  첫째 : 주권을 상실한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라는 것인데 여자 하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여자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준 주권을 상실한 죄이다.
  둘째 : 여자의 손에 있는 선악과를 먹었다는 죄다. 하나님의 일꾼인 사람(남자)이 남을 옳게 먹여야 할 위치에서 도리어 여자의 손에서 주는 선악과를 경솔히 받아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죄이다.
  셋째 : 하나님의 일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알지 않고 여자의 말에 끌렸다는 것은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는 인격이다.

하나님의 일꾼이 주권을 찾지 못하고 의무를 상실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지 못하면 모든 일이 다 헛수고가 되고 또는 열매 없는 인격으로 흙 한 덩이로 이루고 마는 것이다.


    2. 하늘로 올라갈 몸 (계11:7∼12)

하나님께서 이 날까지 종들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은 죽은 영을 살리는 일에 목적을 두고 역사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영들이 다 타락하여 이미 죽은 영들이었으므로 그 영을 살려 놓고야 하늘로 올라가는 몸이 되는 역사를 하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인류를 향해 다 하나같이 죽은 영들이 살게 되는 일이 있게 하시고, 산 영들을 한 번 시험해서 시험에 떨어지지 않으면 그 몸이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역사를 하는 것이 오메가의 역사이다. 죽은 영을 살리는 일에는 마귀로 시험을 해보는 때가 아니고 이미 마귀에게 사로잡힌 영들에게 해방을 주기 위하여 회개 운동을 일으키되 민족적 국경의 차별이 없이 회개만 하면 무조건 그 죄를 용서하고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는 역사이다(눅 24:47∼48).

시험이라는 것은 죽은 영들을 시험해 보는 것이 아니고, 산 영을 가진 자를 그 몸이 영생하게 하는 목적을 두고 역사하는데는 에덴 동산에서 생령을 가진 아담, 하와를 간교한 뱀으로 시험해 보듯이, 중생 받은 생령의 사람들을 시험해 보는 때를 인류 종말의 환란기라는 것이다. 에덴 동산에서는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으므로 흙으로 돌아갈 몸이 되었고, 기독교 종말에는 음녀적인 바벨에게 미혹을 받지 않아야 영생할 몸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하늘로 올라가는 몸이 되는데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음을 말한다.

  첫째 :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쓴 것을 통과하여 세계적인 예언을 다시 하는 대표의 사람이 나오는 일(계 10:10∼11).
  둘째 : 진리로 하나같이 척량을 받는 일(계 11:1).
  셋째 : 권세를 받아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일(계 11:3∼6).
  넷째 : 삼일 반 동안 쓰러져 있다가 썩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일(계 11:7∼12).

첫째 아담은 성신을 받지 못했으므로 이기지 못하였지만, 말세의 종은 둘째 아담 예수님 승리의 왕권으로 오는 성신을 받아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는데는 권세까지 받게 되므로 옛 뱀 용의 앞잡이 짐승짓 선지자의 세력을 이기게 되어 변화 승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로 올라가는 몸이 되는 것은 말씀 권세로 마귀 권세를 이기고 들림 받게 되는 것을 기독교 종말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 앞에 난국은 말씀을 지키나, 못 지키나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붉은 용, 붉은 짐승, 거짓 선지자가 권세를 받고 나와서 (교회와 성도를) 시험해 보는 것을 난국이라 하는 것이다. 이 난국을 돌파하는 것은 예언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증거하는 종을 통하여 난국을 돌파하고 다시 에덴 축복의 새로운 왕국을 이루는데는 마귀의 세력을 이기고 나간 자들로 지상 통치 평화 왕국이 이루어진다.


    결    론

하나님이 (말씀을 어길 때) 흙으로 돌아갈 사람이 되게 한 을은 <공의의 법칙>이라 한다면  (말씀을 지킬 때) 하늘로 올라갈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의 법>의 완성이라고 본다. 사람이 아무리 타락해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완전한 왕국을 이루어내는 것을 <하나님의 의요, 승리>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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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 1~12 설교 : 아담의 가정의 종교 싸움



아담의 가정의 종교 싸움  


-창4:1~12- [71.6]



종교라는 것은 질적 타락을 가진 사람에게 영혼 구원을 목적한 것이 종교의 시발점이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질적 타락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사람이 질적으로 타락이 될 때에 피로써 대속의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도저히 그 영혼까지도 다 사망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의 가정에 종교 싸움이 시작된 것이 금일까지 계속되는 싸움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종교 싸움이라는 것은 왜 있느냐는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말한다.

 

1. 응답이 있고 없는 데서 싸움이 있음 (1~5)

종교라는 것은 그 제사가 상달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데 의하여 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 아무리 한 아담의 몸에서 난 가인과 아벨이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응답이 있을 때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 적에 한 가정에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에게는 맛있는 빵을 주고 한 아이에게는 주지 않는다면 받은 아이는 기뻐하고 받지 못한 아이는 성이 날 것이다. 그러면 부모가 빵을 주는 것도 아무 아이에게나 줄 수 있다. 속담에 미운 녀석 빵 조각 더 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진리의 하나님은 아무리 사랑하는 아담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적에 용서 없이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었거든 하물며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는 것이니 중심에 간절한 마음이 없는 사람의 제사는 받을 수 없을 것이고 간절한 사람의 제사만 받는 것은 합법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가인의 제사는 왜 받지 않았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선을 행치 않는 죄이다(6~7상반절).
    


하나님은 그 제물을 보는 것보다도 중심에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단 마음으로 순종하느냐, 않느냐는 것을 보시는 것이니 하나님의 일을 단 마음으로 순종치를 않는 것이 큰 죄이므로 선을 행치 않는 가인의 영적 상태를 볼 때에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심중은 간절하나 실수가 있는 사람보다도 제사는 드리면서도 그 중심이 간절한 것이 없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죄의 어미가 되는 일이다(7하반절).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였다. 죄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자기가 고의적으로 지은 죄가 아니고 상대편에 끌려서 실수한 것은 죄의 어미가 되는 행동이 아니로되 옳은 사람을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은 죄의 어미가 되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 자체는 그 마음을 정욕의 사단이 점령했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니 상대편이 내게 감정을 주므로 끌렸다는 것과 상대편이 내게 옳게 대해 주는데 해코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벌써 그 속에 마귀의 역사가 주인이 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언제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기 부족을 깨닫는 마음으로 제사를 하면 받으실 것이로되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남을 미워하는 제사는 도저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하나님의 대적이 된 일이다(8~9).

대적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는 것도 내 대적이요, 직접 나를 대적하는 것도 내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았는데 가인은 아벨을 죽였으니 하나님의 대적이요, 하나님을 대하여 반항심을 가진 것이니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벨을 죽인 일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했던 것이다.

  종교 악이라는 것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외식하는 일이요,
  둘째는 시기하는 일이요,
  셋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불평을 두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종교를 믿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억울한 피와 보응 (10~12)

억울한 피가 이 땅을 적신 일은 대부분이 종교 싸움에서 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담의 집에서 시작된 피의 호소가 이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 피 값은 새 시대가 이룰 때에야 갚아준다고 계16:6, 17:6, 6:9~10에 말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마귀의 도구가 되었고 제사의 응답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억울하게 마귀의 도구가 되는 사람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 이날까지 종교적인 싸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 싸움은 이제 끝을 맺는 단계에 들어온 것이 우리 앞에 남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아담은 미약하므로 남에게 끌려 범죄했으니 그의 제사는 받았지만 가인은 남에게 끌려서가 아니고, 짐짓 하나님의 사람을 미워하고 죽인 죄이므로 하나님의 대적이니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고 저주를 받아 영원히 멸망의 자식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금일도 종교의 싸움이 진리를 위하여 피해를 당한 자는 다시 살아서 왕권을 받을 것이고 피해를 주던 자는 영원히 멸망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아벨이 형에게 죽은 것은 선악과를 먹은 죄 값에 죽은 것이 아니고 의로운 제사를 위하여 죽었으므로 그는 죽었더라도 왕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의로운 사람을 마귀의 도구가 되는 거짓 종교인에게 죽게 한 것은 피 값을 갚는 날에 왕권을 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결    론

하나님은 마귀를 들어서 쓸 적에 아담?하와는 직접 뱀으로 꾀어 보았지만 가인 때부터 지금까지는 종교인으로서 의로운 제사를 못 드리는 자는 다 영적으로 마귀의 정복을 당해서 뱀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와서 끝을 맺는 것이니 계13:11이하를 보면 거짓 선지가 참된 성도를 해치는 정책을 쓰는 것이 마지막 환난인 것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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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9~22 설교 : 홀로 된 노아의 가정



홀로 된 노아의 가정  


-창6:9~22, 7:17~24- [72.1]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에 나타나 역사하실 때에 대중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언제나 홀로 된 사람에게 나타나서 비밀을 알리기도 하시고 역사하기도 하시고 구원하기도 하셨다. 언제나 참된 신앙의 사람이라는 것은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홀로 된 노아의 가정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 (9~1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홀로 된 사람에게 나타나기도 하시고 동행하기도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의합된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시대에 의로운 사람이 고독감을 느낄 때에 그 사람에게 더욱 가까이 하시어 함께 하시고 그 사람을 통하여 당신이 할 일을 하게도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은 대중 심리를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이요, 홀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것을 목적하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만 시대적인 비밀을 알 수도 있고 축복을 받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볼 때는 미약하고 어리석고 가장 불완전한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리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노아 당시에 누구나 다 노아의 고독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의 사람들이 노아는 그 시대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했을 것은 사실이다.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려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올 때는 노아 때와 같으리라고 하셨던 것이다.

 

2. 홀로 끝 날을 알게 된 노아 (13)

노아는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에서 홀로 끝 날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은 끝 날이 왔다는 것을 안 노아가 만나는 사람마다 세상은 끝이라고 할 때에 미친 사람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는 홀로 알고 홀로 정신을 차려 담대히 나섰던 것이다. 지금도 끝 날이 왔다는 것을 말하면 미친 사람으로 알 것이고 끝 날이 왔다는 것을 분명히 안 사람이면 사람의 어떤 탄압이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거하게 된다.

끝 날이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고, 눈물겨운 심정으로 입을 열어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아 시대에도 노아가 아무리 말을 해도 한 사람도 그 말을 알아주는 자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담대히 모든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나갔던 것이다.

 

3. 홀로 방주를 준비한 노아 (14~22)

아무리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돕는 자가 없이 홀로 일을 한다는 것은 힘이 빠질 일이요 용기를 가지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쓸쓸한 자리에 있게 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종이 홀로 일한다고 해서 힘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할 때에 남이 하면 같이 열심을 내고 남이 하지 않으면 힘을 잃고 만다면 이것은 산 믿음이 있는 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앞으로 큰 축복을 받으려면 언제나 홀로 일하게 되는 데서 더 큰 힘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열심 중에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열심도 있고 남에게 끌려서 흥분으로 사는 열심도 있고 자기 홀로 끝까지 모든 일을 진행하는 열심도 있으니 노아와 같은 열심이 있는 자라야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것이다.

 

4. 홀로 구원 받은 노아의 가정 (7:17~24)

가장 놀라운 일은 홀로 구원 받은 노아 가정의 일이다. 개인적인 구원은 새 시대를 이룰 수 없고 가정적인 구원이라야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때에 되는 일은 노아 때에 된 것과 같다고 한 것은 구원을 받을 자가 심히 적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영혼 구원을 받는 사람은 보통 신앙이 있어도 되지만 영과 육이 아울러서 구원 받는 자가 되려면 특별한 신앙에 특별한 일을 해야 된다.

다시 말하면 이 몸이 죽고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은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결한 마음이 있다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 가정이 심판 날에 구원을 받는 것은 특별한 신앙에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가정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며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는 반드시 홀로 고독감을 느끼는 일이 있을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    론
  


가장 귀한 일은 대중적으로 있게 되는 일이 아니고 홀로 비밀을 알게 되고 홀로 준비를 하게 되고 홀로 구원을 받게 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시대를 만난 이때에 홀로 된 노아의 가정을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힘을 날마다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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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7장 1~24 설교 : 하나님의 명령대로 준행하는 노아의 가정



하나님의 명령대로 준행하는 노아의 가정  


-창7:1~24- [71.3]

인류 역사상 노아의 가정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합심하여 순종하며 준행한 가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롯의 가정도 소돔에서 구원을 받을 적에 합심이 안 되므로 불행을 가져왔고, 아브라함의 가정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완전히 준행치 못하므로 불행스러운 이스마엘이 나왔고, 이삭의 가정도 두 아들이 합심이 못되므로 불행스럽게 에서의 족속이 나왔고, 야곱의 가정에도 불행스러운 일이 많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 영광이 못되는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싸운 야곱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의 가정은 전 세계가 전멸되는 심판에서 세계의 어머니가 되는 가정을 이룬 것은 새 시대에 들어갈 촛대교회의 표징이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한 노아의 가정에서 행한 일을 본문대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의로운 가정 (1)

하나님의 명령이 노아의 가정에 온 지 120년 동안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지만 합심 단결하여 방주를 준비했다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시대 사람이 한 사람도 노아의 방주를 지지하고 협조한 자는 하나도 없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그 방주에 들어간 자가 없고 노아만 그 가정 식구를 데리고 들어간 것을 본다면 그 방주를 준비할 기간에 어려운 일이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다 강포가 충만할 때라는 것을 창6:11~12에 말했다. 이러한 시대에서 그 가정이 합심이 안 되었다면 노아는 도저히 방주를 준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금일에 우리 촛대교회는 노아의 가정같이 합심된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준행할 수 있고 준행하는 일이 있어야만 큰 축복이 내릴 것이니 많은 사람이 모이고도 합심이 안 되는 것보다 적은 수라도 합심이 될 때에 완전한 촛대교회를 이룰 수가 있다.

 

2. 순종하는 자를 다 구원해 주는 일에 전력을 두었다 (2~9)

아무런 동물이라도 방주 안으로 순종해 들어오는 동물은 다 구원을 받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사랑의 방주요, 은혜의 방주라고 볼 수 있다. 동물들이 아무런 수고한 일이 없지만 무조건 구원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때에 아무리 방주에 수고한 일이 없다하여도 짐승과 같이 순종하고 무조건 배 문을 닫기 전에 들어간 자라면 무조건 구원을 얻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방주와 같은 촛대교회에 들어오는 자는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하던 자라도 택민보호의 진리를 믿지 않고 촛대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자는 홍수 같이 내려오는 환난에 빠지게 될 것이요, 아무리 교회에 다니지 못하고 있던 자라도 말세 경고를 듣고 촛대교회에 들어와서 예언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다 같이 보호를 받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촛대교회를 세우기에 전력을 두는 자의 그 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라고 본다.

 

3. 큰 파도를 이긴 노아의 가정 (10~24)

천하에 모든 인류와 동물은 큰 홍수에 파도를 못 이겨 전부 쓰러졌지만 하나님 명령대로 준행한 노아의 가정은 그 홍수의 부딪히는 파도의 피해를 당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물결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가정이 되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다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축복이라고 보게 된다.

사람이라는 것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가지고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인간들이라고 보게 된다. 우리 인간은 자기라는 것을 내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때에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 같으나 지나고 보면 지혜로운 일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홍수같이 환난이 온 세계를 덮는다 하여도 예언의 말씀을 믿고 준행하는 교회가 될 때에 홍수같이 밀려오는 환난은 오히려 촛대교회의 승리를 이루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자가 더 수고롭고 시험이 많고 심지어 어려운 핍박도 있지만 물밀듯 내려오는 환난이 올 때는 방주와 같은 촛대교회는 반드시 안정처가 있게 되는 것이다(사33:20~24).

 

결    론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할 때에 그 심판은 행위 심판이 아니고 복음 심판이라고 본다. 누구든지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살고 못 들어가면 다 죽게 된다는 것은 앞으로 새 시대를 이룰 때에 짐승의 표를 받으면 죽고 안 받으면 산다는 심판과 대조가 된다.

다시 말하면 노아 홍수 심판은 예언적이라면 종말의 예언의 말씀대로 인종 전멸의 심판과 재앙이 올 때에 촛대교회는 완전히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가 될 것이다.
 
하나님 명령을 준행하면 살고 그 명령을 순종치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 노아 때나 주 재림기나 동일한 심판이 된다. 노아 홍수 심판 후에 지상에 새 시대를 이룰 수 있는 언약이 성립되었고 주 재림기에는 그 언약이 몽땅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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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1~5 설교 : 복의 근원 아브라함



복의 근원 아브라함  


-창12:1~5- [72.9]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에 복을 사람에게 주기 위한 목적에서 창조한 것인데 아담이 범죄 하므로 복을 줄 수 없게 됨을 하나님은 탄식하셨다. 하나님의 진노는 복을 주고자 하여도 순종치 않을 때에 복 받을 사람만 이 땅에 살게 하기 위하여 순종치 않는 무리를 없이 하는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홍수 심판을 내린 것은 순종하는 사람만 이 땅에 살게 하여 그들에게 복을 주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노아의 가정만 땅위에 살게 되고 순종치 않은 사람들을 전멸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홍수 심판 후에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징으로 비온 후에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홍수로 심판치 않겠다는 말씀을 믿지 않고 바벨탑을 쌓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또 저주한 것은 말씀을 믿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을 사람에게 주어야만 할 일이므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언약을 세우셨다.

 

1.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심 (1)

하나님께서 세계 인류에게 다시 복을 주기 위해서는 세계 인류가 복 받게 되는 복음 운동의 근본 되는 거룩한 성지를 아브라함에게 주기 위하여 급한 명령을 내리었다. 네가 사는 본토를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중심을 보시되 순종하는 마음이 있나 없나 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시는 것이다. 만일 순종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사명을 맡긴다면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아시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복 받을 사람을 인도할 때에 홀연히 급한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조건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간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복 받을 사람은 인간이 볼 때에 어리석은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볼 때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명령하는 그 일을 순종하는 자라면 지혜로운 자가 되기 때문이다.

 

2.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하심 (2)

누구든지 복 받을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한 이름을 주시며, 그 이름을 존귀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 이라 이름을 주신 것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한다는 뜻이다(창 17:4~5).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 대로 모든 족속이 다 지상왕국의 축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아브라함’ 이라고 이름을 주신 것이다.

가장 큰 축복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이름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잘 먹고 잘 입고 죽는다는 것이 축복이 될 수 없고 영원하고도 완전한 복된 나라를 이루는 일이 큰 축복이라고 보게 된다. 아브라함은 인간이 볼 때는 남보다도 시련을 많이 받았지만 아브라함의 이름 아래서 지상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복의 근원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사41:8 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에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너를 싫어버리지 아니하고 도와주며 붙들어 주며 너를 대적하는 자를 멸망케 하므로 완전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되어 지상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말씀했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라 한 것은 인간 종말에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를 이루는 데는 동방 땅 끝에서부터 하나님의 응답이 내리게 되므로 새 시대를 이룰 것을 말씀했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의 자손 된 자로서 지상왕국을 이루게 된다.

 

3.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 주시겠다고 언약하심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되 친히 갚아 주는 일을 하신다. 택한 자를 축복하면 축복으로 저주하면 저주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대표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갚아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완전 승리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갚아 주느냐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이나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택하여,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위하여 싸워주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적에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을 따라 행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라 하신 것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새 시대가 이룰 때까지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되는 아브라함의 자손 된 축복을 예수를 통하여 받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께 속한 자라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갈3:29).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는다고 한 것은 벌써 육적 이스라엘을 중심하여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신앙 중심으로 새 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라고 하는 축복을 받을 때는 할례를 받기 전이요, 이삭을 낳기 전이었다. 우리가 아브라함에게 시작된 그 축복을 지상에서 완전히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 대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결    론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니 언제나 시작할 때에 끝을 어떻게 맺을 것을 미리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시작한 그 역사는 조금도 변함없이 끝까지 그대로 역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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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1~33 설교 : 신앙의 복된 가정



신앙의 복된 가정  


-창18:1~33- [71.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은 왜 복된 가정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가정 (1~5)

아브라함은 비록 자녀가 없는 쓸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있는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 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그는 부지중에 하늘의 천사를 손님으로 대접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대접하는 것을 당신이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이 갚아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손님을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천사를 보냈던 것이다.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대접을 받는 것보다도 대접하는 생활이 가장 물질을 바로 쓰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도둑의 생활이요, 남을 대접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사람에게 주는 것은 서로 대접을 하며 살면 더 좋은 것을 얼마든지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므로 “너는 복의 근원”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받게 되었다.

 

2. 합심된 가정 (6~8)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해도 가정에서 합심이 안 되면 복된 가정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코자 할 때에 합심하여 급한 요리를 제조했던 것이다. 가정의 미라는 것은 남을 대접하는 일이라면 전 가정이 합심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름다운 복된 가정을 이루는 요소가 될 것이다.
 
합심이라는 것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어떤 가정은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자기네 가정만 잘 살아 보려는 데서 합심된 가정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로되 남을 살리고 대접하기 위하여 합심된 가정에는 얼마든지 하늘에서 남을 살리고 대접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3. 이적으로 되는 가정 (9~15)

아브라함의 가정은 세계적인 사명을 갖되 거룩한 씨를 전하는 사명이 있는데 인간의 무엇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라는 다시 자기에게 거룩한 씨가 될 자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단념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난 천사는 말하기를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으리라”고 할 때에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나이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고 노쇠한 사람이 이제 와서 어린애를 낳는다”고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그 때에 천사는 네가 “왜 웃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며 기한이 이를 때에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 말대로 노쇠한 몸에서 이적으로 거룩한 씨가 될 이삭을 낳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복된 가정에는 모든 일이 이적적으로 되게 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과학에 국한된 생활에서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과학을 초월한 이적으로 되는 일이 있으므로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 가정 (16~18)

가정은 국가를 이루는 본부가 되는 것이니 강대국을 이룰 수 있는 인격은 복된 가정에서부터 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과학을 초월한 이적으로 시작된 거룩한 씨는 악의 세력을 이기고 세계를 통일하는 강대국을 이루게 될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아무리 자녀가 많아도 멸망의 자식이 된다는 것은 불행 중에 불행이요 아무리 작은 겨자씨 같은 이삭 한 사람을 낳은 가정이라도 그 씨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를 가져왔다는 것은 복된 가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참된 미라는 것은 결말이 좋아지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의 씨가 세세 왕국을 이루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라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다.

 

5. 의를 위하여 택한 가정 (19)

가장 복된 일은 하나님이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한 사람이라면 누가 그 세력을 막을 자는 전혀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택할 때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을 개척한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그 일의 열매가 되는 사람이 될 때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대 주재 하나님이 그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할 일을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말씀했던 것이다.

 

6. 급한 비밀을 알려주는 가정 (20~33)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그들은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짓고 오락하고 춤추다가 한 시간에 멸망을 했다.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천사가 와서 그 비밀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소돔 고모라를 염려하여 “의인이 그 성에서 열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하는 데까지 물어 볼 때에 하나님은 열 사람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을 생각하여 의인 열 명이 되지는 않겠는가 생각한 일도 있은 것이다. 그러나 의인 열 명이 없으므로 그 성은 망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복된 가정은 급한 비밀을 하나님께서 알려주는 일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천하에 복된 가정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게 되는 가정일 것이다. 우리가 받는 축복은 전부가 복된 가정인 아브라함의 집에서 시작된 그 축복을 받게 되는 가정이니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아서 복된 가정의 시발점이 무엇인 것을 알아 끝을 맺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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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7일 수요일

창세기 18장 16~19 설교 : 강대한 나라를 이룰 인격



강대한 나라를 이룰 인격  


-창18:16~19- [71.5]

  

인류 역사의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은 그 인격을 짐승이라고 성경에 기록했다. 이것은 침략적인 정책의 인격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볼 때는 미약한 자 같으나 아브라함의 가정에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가장 기쁜 소식을 알려준 것은 노쇠한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아서 강국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제 강국을 이루는 아브라함의 인격은 어떠한 인격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여호와의 친구가 되는 인격 (16~17)

하나님은 당신의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는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 비밀을 다 알릴 수 없는 인격이라면 그 인격은 불완전한 인격일 것이다. 조물주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조금도 숨김없이 알려주는 인격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까불어 보아도 변치 않고 나가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인정하고 비밀을 다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본 것은 그 인격을 검열한 것이다. 그러므로 강대국가를 이룰 인격은 시련 가운데서 인정을 받은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



2. 만민을 복을 받게 하는 인격 (18)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자기 하나를 위하여 살다 죽는 인격이 아니고 그 인격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 인격이라고 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대로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된 것은 영원한 강국을 이루는 일이 된 것이다. 언제나 자기의 영광과 주권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다 망하고 만 것이로되 자기가 희생을 해서라도 많은 사람을 복을 받게 한다는 그 인격은 영원한 왕국을 이루는 왕권에 이르게 되므로 완전한 나라를 이루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강자 같으나 실지는 약한 자를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코자 하는 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복을 받게 하려는 인격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께 복을 받았기 때문에 남도 복을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원수에게 못 박혀 죽은 것은 인간이 볼 때는 약자 같으나 가장 강국을 이루는 인격이라고 본다.

그때에 로마의 정권과 유대 교권이 강한 것 같았으나 그 정권과 교권은 다 망하고 만 것이요 그리스도의 인격은 만왕의 왕으로서 강대국을 이루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의 모든 민족이 다 복을 받게 될 때에 심판 날에 그리스도의 권세를 대적하는 자는 다 망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왕권으로 세세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이 말씀을 믿고 끝까지 참고 나갔다는 것은 강대한 나라를 이룰 인격의 조상이 된 것이다.



3.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택한 인격 (19)

  

인간이 아무리 애써 보아도 하나님의 선택의 진리를 폐할 자는 없는 것이다. 지금 아무리 악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은 자 앞에 다 굴복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하는 일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종으로써 강국을 이루는 일의 한 도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택함을 받은 사람이 약하고 어리석은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들어서 쓰게 되므로 택함 받지 못한 인간들이 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택한 종이라는 것은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실 경륜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그 종을 들어 쓰는 것이니 그 종의 하는 일을 막을 자는 전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한 종을 들어서 쓰는 일을 조금도 침범할 권리를 가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했다.



결    론

가장 위대하고도 강한 일은 강국을 이루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강대국이라는 나라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었거든, 영원하고도 완전한 성도의 강대한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격도 여러 가지 시련을 시킨 후에 그 언약을 세웠거든, 하물며 심판 날에 남은 종이 될 변화 성도의 인격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인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의 인격보다도 더 위대한 인격을 받아야만 될 것이다. 우리는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 마지막 싸움에 승리하는 인격을 가지려면 아브라함의 신앙 인격에서 좀 더 진보하여 향상되는 인격을 가지기 위하여 좀 더 큰 시련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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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8장 32~19장 29 설교 : 의인이 없는 도성의 비극



의인이 없는 도성의 비극  


-창18:32~19:29- [7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보여준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때 망할 세상의 될 일을 예표로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이 재림할 때에 남은 자가 되려면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한 것이다.
 
이제 의인이 없는 도성의 비극이 무엇이냐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는 비극이다 (18:32~19:5)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멸할 때에 의인이 열 명만 되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고 소돔성에 천사가 입성했던 것이다. 그때에 롯의 가정에 두 천사가 들어갔을 때에 소돔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발악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것이 멸망 받을 징조가 되었던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해치려는 악당들이 충만한 도성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와 같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의로운 사람을 미워하고 해코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멸망이 올 증거이다. 예루살렘이 황폐될 때에도 의로운 사람인 예레미야 선지를 공연히 미워하다가 망하였고 주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사도를 미워하다가 황폐화 되었다. 오늘날에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옳은 사람을 미워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멸망이 가까운 증거이다. 
 
주님께서 재림 시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에 내가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은 그만큼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려운 때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2. 악당들이 눈이 어두워진 일이다 (6~11)

  

하나님께서 악당들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은 그들이 공연히 롯의 집을 해치려고 할 때에 저주했던 것이다. 지금도 공연히 의로운 사람을 해치려는 사람은 눈이 어둡게 될 것이다.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의인을 대적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스가랴 12장을 보면 심판기에 만국을 일으켜서 예루살렘을 치러 모이게 하고 그들로 눈이 멀게 한다고 한 것과 같이 소돔 고모라의 백성도 그와 같이 된 것이다.
 
제일 악한 일은 의인을 대적하는 일이다. 자기가 부족한 줄 알면서도 죄를 이기지 못하는 것보다도 짐짓 대중이 일어나서 의인을 해치려는 것은 멸망을 받을 증거이다.

 


3. 하나님 말씀을 농담 같이 아는 일이다 (12~14)

  

언제나 망할 인간들은 농담을 좋아하고 하나님 말씀까지라도 오락화시켜 수수께끼 같은 말로 생각을 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다림줄의 진리를 두렵게 알지 않고 농담 같이 여기고 비소하는 인간들이 세상에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두렵게 알지 않고 등한히 안다는 것은 멸망을 받을 증거이다.

 

4. 의인을 떠나게 한 일이다 (15~22)

  

가장 큰 비극은 의인을 악인과 갈라 세울 때이다. 지금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한 곳에 두고 악한 자의 세력을 용납할 때이니 악인들이 자기가 잘난 것 같이 알고 있지만 이 세상에 의로운 사람을 보아서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쭉정이와 알곡을 한데 두고 있지만 의인을 악인과 함께 있지 못하게 할 때에 인간의 비극은 소돔과 같이 되는 것이다. 교회도 의로운 사람이 있으므로 그 교회가 유지되지만 의로운 사람을 그 교회에서 떠나게 할 때에는 그 교회에 하나님도 떠나는 것이다. 오늘날 와서 망할 교회는 옳은 종을 쫓아내는 일도 있지만 이것은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들의 행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이 떠나는 도성은 소돔 고모라 같이 되는 것이다.

 


5. 하루아침에 멸망 (23~29)

  

소돔 고모라가 의인이 떠날 때에 하루아침에 멸망을 당한 것 같이 말세에도 계시록 18장과 같이 망하는 바벨론에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한 것은 그 바벨론을 버린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소돔 고모라 같이 불탈 때가 가까운 증거이다. 롯의 처가 소돔 고모라를 돌아보다가 망한 것 같이 심판날에 망할 도성을 사랑한다면 동참죄가 되므로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심판기에 의인은 악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떠나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결    론
오늘날 가장 복된 나라는 물질이 많은 나라가 아니요, 의인이 많은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비록 가난한 나라이지만 이 나라에 성도가 많으므로 앞으로 큰 축복이 올 것을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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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장 10~22 설교 : 야곱이 받은 축복



야곱이 받은 축복  


-창28:10~22- [71.5]

  
야곱이 축복 받은 비결은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첫째:모태로부터 택함을 받은 것이니 이것은 행함으로써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의 축복이다(창25:22~23).


둘째:믿음으로 받은 축복이다. 야곱의 행한 일을 본다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배고픈 형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장자의 기업을 팔라는 일이나 아버지의 눈이 어두운 기회를 타서 속이고 축복을 받은 일이나 이 모든 일은 행위로 본다면 복을 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축복을 믿는 믿음을 볼 때는 축복을 에서보다도 야곱이가 받아야 할 것이다.

첫째:시련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간 일이다. 야곱이 정든 고향을 떠나 눈물겹게 홀몸으로 적막한 들에서 찬 돌을 베고 쓰러져 있으면서도 담대히 하나님을 바라 본 그 마음을 하나님은 인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는 야곱의 생활은 아무리 부족한 인생이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남보다도 믿음이 강하다는 것과

둘째: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축복 받을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제 야곱이 받은 복은 다음과 같다.



1. 세계적인 대표가 됨 (13~14)
가장 큰 축복은 야곱에게 준 축복이니 모든 성경에 이스라엘이라, 야곱이라는 이름 아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복 받을 것을 가르쳐서 종말의 14만 4천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였고 말세에 동방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종을 야곱이라 한 것은 야곱의 사명적인 계통을 가르친 것이다. 주님이 탄생할 때도 야곱의 집에 왕이 된다고 말씀했으니 야곱의 축복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이 택함을 받은 사람으로 사람 앞에 모든 일이 부족하다 하여도 축복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지가 강하다면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시고 무조건 복을 내려 주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 (15상반절)
우리의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지키거나 말씀을 지켜서가 아니고 택한 자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믿음이나 또는 움직이는 생활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야곱이 미약하고 어리석고 너무나 단순해서 속기를 잘하지만 하나님이 지켜주는 사람이 되므로 어린 소년이 어디를 가나 피해를 당치 않고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고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3. 약속이 다 이루기까지 역사해 주심 (15하반절)
야곱에게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은 금일에 우리에게까지 이루어지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을 야곱이라고 한 것은 과거의 야곱을 가르친 동시에 그 약속이 말세에 새 시대가 이루어지기까지 포함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약속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떠나지 않고 다 이루도록 역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끝까지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무조건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4. 축복 받은 야곱의 제단 (16~22)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그곳을 잊지 않고 돌을 세워 놓고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다. 열의 한 분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고 그때부터 용기 있게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을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에 그 말씀을 존중히 아는 동시에 실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야곱은 절대로 믿음이 강한 자로 조부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싸웠지만 이때부터는 직접 자기에게 축복하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용기 있게 싸워 나가므로 완전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께 받게 된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야곱과 같이 모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동방 땅 끝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대로 종말의 야곱의 사명을 맡은 우리들에게 역사하므로 야곱의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을 새 시대 라 하는 것이다.

2012년 11월 5일 월요일

창세기 28장 13~15 설교 :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야곱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야곱  


-창28:13~15, 30:25~27, 31:24~29- [72.6]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택한 자가 인간이 볼 때는 완전치 못한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있다. 인간이 볼 때에 흠 잡을 만한 것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함께 해야 될 사람이 있고 인간이 볼 때는 흠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함께 하시는 야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을 받음 (28:13~15)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실 때에 반드시 함께 해야 될 형편에 있는 야곱이었다. 그러나 에서는 야곱을 해코자 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 에서가 정당한 일을 한 것 같으나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야곱과 함께 해야 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으므로,
  둘째 :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으므로,
  셋째 : 축복을 받기 위하여 참는 마음이 야곱에게 있으므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하시겠다고 언약을 세우셨다.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장자의 기업을 판다는 맹세를 했고, 야곱은 사모하는 마음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의 맹세를 받았다. 형인 에서는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고도 등한히 알았지만 야곱은 그 맹세를 존중히 알고 이삭을 속여서라도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에서가 마음이 강퍅해져서 야곱을 해코자 하였지만 야곱은 마음이 평화로운 자리에서 쓸쓸한 벧엘 광야에서 돌을 베고 누워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축복하시되 “이 땅에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고 언약을 세우셨다. 인간 도덕으로는 야곱이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해야만 될 일이므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세우셨던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내리는 축복을 갈망하고 싸우면서 참는 마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항상 함께 하신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행할 책임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함께 하므로 축복이 임함 (30:25~27)

야곱은 인간이 볼 때에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라도 축복을 믿고 싸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신 것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부탁하기를 너는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삼아야만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말을 믿고 14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라헬과 레아를 위하여 희생 봉사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축복을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축복을 믿는 마음에서 봉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육적으로 끌려서 봉사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 할 수 없지만, 축복을 믿고 봉사하는 일이므로 야곱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아무런 수입이 없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줄 믿는 신앙으로 일을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내리실 책임이 있다.

 

3. 하나님께서 함께 하므로 피해를 받지 않음 (31:24~29)

사람이라는 것은 축복을 받을 때에 원수가 있게 된다. 야곱이 큰 축복을 받을 때에 라반은 야곱을 시기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자기를 시기하는 라반의 집을 떠나게 되었다. 인간이 볼 때는 야곱이 라반의 집을 비밀로 떠나는 것이 부도덕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별된 걸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므로, 야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따라 갈 때에 사람에게는 오해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분개한 마음을 가진 라반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 대해서는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야곱에게 가졌던 오해를 풀고 야곱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만을 순종하기 위하여 나가는 자에게는 인간이 볼 때에 오해를 할 일이 있다 하여도 결말을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려면 인간의 어떤 세력이든지 무서워 말고 담대히 나가야 한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는 것이다.

 
결    론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어디를 가든지 평강이 같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일이 형통하기 때문이다. 형통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실패 같고 어리석은 일 같으나 결말은 큰 열매를 이루는 일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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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1~11 설교 : 하나님의 징계와 택한 가정



하나님의 징계와 택한 가정  


-창38:1~11- [72.7]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시었다(마1:2~3).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지만 그를 통하여 거룩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조상이 되게 하였다. 인간이 볼 때에 유다의 가정은 불행스럽고도 부도덕한 일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택하였으므로 다음과 같은 징계를 내리셨다.

 

1. 엘을 징계 하심 (6~7)

아무리 엘이 택한 가정에 거룩한 씨를 전할 사명이 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자이므로 그를 치셨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가정일수록 조금이라도 악을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가정을 통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볼 때에 택한 가정이 택하지 않은 가정보다 불행스러운 일이 있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악을 용납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에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한 택한 가정은 아무리 사명을 맡은 자라도 악한 일이 있을 때에 생명을 불러가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택한 자라는 것은 사명을 행하여야만 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2. 오난을 징계하심 (8~10)

 

택한 자가 사명을 존중히 알지 않고 자기 이익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난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셨다. 왜냐하면 거룩한 씨를 전하되 장자의 씨를 전해주라는 법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인간이 볼 때에는 큰 죄가 될 일이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로 보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오난은 거룩한 씨를 전하기 위한 일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치 않고 그 일을 불평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씨로 말미암아 거룩한 종교를 이루고자 하였는데 오난이 씨를 전하는 일에 순종치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자아를 희생하고 순종치 않을 때에 악한 자로 인정하는 것이니 사명이 있는 택한 가정에는 개인의 이익을 생각지 말고, 그 사명을 더 존중히 해야만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다말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음 (11)

인간이 볼 때에는 다말이 하는 일이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멸시를 당하면서도 거룩한 씨를 전하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축복하신 것이다. 다말이 유다를 속여 그 몸에서 씨를 전한 것은 인간으로는 죄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몸의 소생을 통하여 거룩한 종교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

우리가 맡은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수치를 무릅쓰고, 아무리 생명이 위태한 일이라도 불타는 마음으로 나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열매가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면 의가 되는 것이요, 순종치 않으면 악이 되는 것이므로 아무리 택한 가정이라도 순종 없이 열매가 있을 수 없다. 열매라는 것은 사람이 해야 될 일을 할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라는 것은 순종하는 것밖에는 있을 수 없다. 다말이 아무리 멸시를 받고 무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 담대히 나설 때에 그를 통하여 많은 열매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사명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용기 있게 돌진의 걸음을 걸어서 나간다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사명을 맡긴 다음에는 징계를 해서라도 그 사명을 달성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엘과 오난 같이 될까 조심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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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 28~33 설교 : 야곱의 축복과 별세


야곱의 축복과 별세  


-창49:28~33- [70.8]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쓰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12지파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복을 빌고 세상을 떠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이스라엘에게 선지 사명을 맡겼다

이스라엘을 통하여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세계만방에 기록해 전하도록 이스라엘, 야곱의 씨를 통하여 이루어 놓은 일이다. 이것은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끝까지 싸우는 자에게 승리의 이스라엘인 왕국을 이룰 역사의 표적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이 축복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지상 통치에 왕권 받을 14만 4천명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의 축복 받은 자를 14만 4천에 대표적인 이름으로 기록한 것은 야곱에게 허락한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때에 남은 종이 되어 야곱의 왕국을 이룰 변화성도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은 축복을 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사41:8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에 야곱이라고 한 것은 동방에서부터 변화성도의 역사가 일어나서 야곱의 왕국을 완전히 이룰 것을 뜻한 것이다.

우리가 야곱의 축복을 받으려면 야곱이 지상 축복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싸우던 생활이 반드시 있어야만 될 것이다. 축복의 언약을 받은 사람도 싸워 승리하므로 언약을 받았는데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종말의 역사가 어찌 그 말씀을 믿고 싸우지 않는 자에게 올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동방 땅 끝에 야곱이 되려면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역사에 몸을 바쳐 싸워 나가는 자에게만 있게 될 것이다.

 

2. 초림의 주를 맞이하게 됨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 올 때에 아무리 이스라엘에 많은 성직자가 있었지만 그들은 야곱의 행하는 일을 하지 않는 거짓 선지였다(요8:39~40). 그러므로 야곱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하여 주님은 갈릴리 해변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것은 사9:1~2과 같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정신, 사상, 양심이 야곱과 같지 않으면 아무리 성직자라도 야곱의 왕국을 위하여 오시는 메시야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요8:42~44).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므로 중심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순종하는 야곱의 이름으로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세계 통일의 정부가 서게 되는 것은 야곱과 같이 영권?물권을 받은 자만이 있기 때문이다.

 

3.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됨

재림의 주를 지상에서 맞이할 자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는 신이시니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지상 왕국이기 때문에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변화성도를 야곱이라고 하고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은 야곱의 왕국을 이루는 지상 축복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명자를 뜻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길 때에 사명 맡은 자의 일생에 다 이룬 것이 아니고 그 후세의 사람을 통하여서도 그 사명을 위하여 역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야곱이 맡은 사명으로 끝을 맺는 것을 동방 야곱의 역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곱 자손 가운데 그리스도가 와서 그로 말미암아 지상 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가르친 것이니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일체가 되는 한 나무가 되기 때문에 야곱에게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는 역사에 쓰여지는 변화성도는 그 몸이 살아서 야곱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일이 되므로 야곱은 축복을 하고 별세했지만 그의 축복은 우리에게까지 이루어지는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 자손이 지상 왕국을 이룬 것이 아니고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왕국을 위하여 말씀했기 때문에 과거에 야곱의 자손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책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우리들에게 이루어지는 열매가 될 것이다.

 
결    론
야곱의 축복과 별세라는 것은 그때에 야곱이 축복한 그 축복 속에서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대승리를 이루는 교회가 이루어졌고 그 이름으로 세계 통치의 왕국을 이룰 것을 목적 두고 야곱은 예언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같이 야곱의 왕국에 가입될 주의 백성이며 종이므로 야곱에게 축복권을 준 것은 오늘 우리에게 해당되는 열매라고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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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 : 1~14 설교 :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출3:1~14-


우리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에 대한 예언적으로 나타난 역사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를 보아서 분명히 알게 되는 동시에 완전한 소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말씀을 완전히 세우실 적에 행하신 일은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열매가 될 증거로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은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세우신 언약대로 행하시는 신이시다 (6, 출2:24)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한 것은 그들에게 언약을 세운 대로 행하시는 신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세울 때에 “천하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 언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은 언약대로 복을 받을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말세의 종을 동방 땅 끝의 야곱이라고 한 것은 그들에게 세운 언약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을 받을 종을 가르친 것이다.

완전한 성경을 인간에게 나타내기 전에도 언약하신 말씀대로 행하셨거든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성경으로 나타내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것은 분명한 일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는 동시에 현저히 그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문서가 없이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기록한 문서는 조금이라도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것과 같다.

 

2. 자기 백성을 고통 중에 건져주시는 신이시다(7~8)


하나님께서는 친 백성을 고통을 당치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요, 고통을 당하되 인간의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는 난관을 당할 때에 홀연히 나타나셔서 건져주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택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요,
  둘째:택한 백성들에게 진실성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요,
  셋째:인간 종말에 환난을 당할 백성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을 당할 적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부르짖는 사람이 된다면 그밖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게 된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려운 고통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더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린아이가 배고플 때에는 우는 것밖에는 더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어려운 난관이 올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외에는 더할 수 없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인간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물밀듯이 내려올 때에 시온의 백성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3. 택한 종과 함께 하시는 신이시다 (11~1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한 종과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기를 기뻐하시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한 종을 들어 쓰는 일이 없이는 왕국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종과 함께 하시어 그를 들어 쓰시되 그에게 왕권을 주심으로써 승리를 이루게 하는 동시에 영광을 받기도 하시고 영광을 주기도 하시는 것이다.

 

4. 스스로 계신 신이시다 (13~14)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신이시니 그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순종해야 될 피조물 된 사람으로서 조물주가 아닌 신을 공경한다는 것은 주인을 대적하는 종이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 된 사람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즉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부르짖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가 있을 때에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만민이 알게 되는 열매를 맺게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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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4일 일요일

출애굽기 2 : 1~25 설교 : 택한 자의 형통



택한 자의 형통 


-출2:1~25-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을 향하여 형통하도록 역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일이 있되 그 일을 통하여 오히려 더 형통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는 두려운 일이요, 원망할 일이요, 실패를 당하는 일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택한 자를 향하여 더 유익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일이다.

이제 택한 자의 형통에 대하여 본문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정한 때에 출생케 하심 (1~3)
인간이 볼 때에 모세가 출생한 때는 불행한 때였다. 왜냐하면 바로가 이스라엘이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버리는 정치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모세같이 위대한 인물이 날 때부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골짜기에서 났다는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옥동자를 낳은 모세의 부모가 3개월을 숨겨서 기르다 더 기를 수가 없으므로 죽으라고 원수 앞에 내 놓는다는 것은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같이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된다는 것도 불행스러운 일이요 악한 민족에게 이유 없이 아들을 빼앗긴다는 것도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을 원망할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일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없다면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그 민족에게 괴로움을 받는다는 말씀이 응하지를 않으므로 괴롭게 한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되 하나님의 징벌이 애굽에 올 때가 온 징조이다. 모세의 부모가 장차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시킬 영도자가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치도 못할 일이다.

극동 난제가 닥쳐 온 오늘 우리가 이때에 났다는 것이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정한 때에 가장 복된 민족 중에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우리가 지금 동방 땅 끝에 출생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모세가 애굽의 악정 아래에서 출생한 일과 같이 된 것이며 모세에게 형통한 일이 있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있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 복된 길로 인도하심 (4~10)
옥동자를 나일강변에 버리는 그 슬픔 인간으로서는 극도로 낙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볼 때는 모세가 버림당한 것 같았으나 실지는 복된 길을 가게 되었다. 쓸쓸한 가정에 태어난 모세가 화려한 바로의 궁궐에 들어가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화려하게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품에 안고도 어머니가 아닌 것처럼 하여 아들을 기를 때에 무엇보다도 숨은 기도가 많이 있었을 것이고 숨은 교훈이 많았을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세상 학문을 배우는 것도 특별한 교훈을 받게 되었고 사상적, 종교적인 교훈도 어머니에게 특별히 받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도탄 중에서 모세를 기르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서 길렀다면 그렇게 안타까운 기도가 어머니에게 없었을 것이고 안타까운 눈물의 교훈이 없었을 것이다. 가장 어린 소년의 축복은 어머니의 품에서 기도로 길러주는 일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남의 나라 사람보다도 왜정 시대와 공산 정권 아래에서 눈물겨운 기도를 하며 자라난 일은 큰 축복이 될 일이라고 본다. 인간의 복된 길이라는 것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숨은 비밀에서 있는 것이다. 숨어서 기도하고 숨어서 성경을 보고 숨어서 주의 일을 받드는 그 심정! 이것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이라는 것을 나도 체험한 바이다.
 
우리는 복된 길이 무엇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배워야 한다. 나는 기도 생활 40년 동안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어 온 것은 날 택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복된 길이었다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닫게 된 것이다.

 

3. 실패의 길 같으나 성공의 길로 인도하심 (11~22)
만일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일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힘을 믿고 한 일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인간 감정으로 민족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가 있으므로 민족을 살리게 된다는 것을 몰랐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민족을 지도할 것인데 혈기에 속한 육의 사람으로 민족을 지도하는 일은 실패를 당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모르는 모세에게 쓸쓸한 미디안 목자의 생활 40년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거룩한 장막이 되었다.

우리도 신과 같은 사람이 되기 전에 도저히 나가 일할 수 없는 시대를 만났다. 그러므로 과거에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택한 사람에게는 성공을 가져오는 길로 옮겨지는 형통의 길이 되는 것이다. 모세가 실패를 당하여 도망하던 길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돌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패를 당한 모세의 40년 생활은 세 가지로 형통했던 것이다.

  첫째:영의 사람이 된 것이요,
  둘째:복된 가정을 이룬 것이요,
  셋째:원수의 손을 벗어나는 피난처가 된 축복이었다.
 
우리도 앞으로 가는 길이 이와 같이 형통이 있게 될 것을 확신하고 세 가지 축복을 받아야 한다. 형통이라는 것은 자기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결    론
 

모세가 거친 바로 궁궐의 40년, 미디안 40년이라는 기간은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지루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400년이라는 기간을 정해준 때가 차기까지 모세를 길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한 때에 써야 할 택한 사람은 인간이 볼 때 지루한 것 같으나 쓸 만한 사람이 되도록 기르는 기간을 두고 모든 일이 형통케 하시는 것이다. 조급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 낙심하고 원망하는 일을 하게 되지만 택한 백성이 부르짖는 호소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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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1~25, 3:1~8 설교 : 영적 지도자가 되는 길



영적 지도자가 되는 길 


-출 2:1~25, 3:1~8-


서    론
 

영적 지도자라는 것은 정치적이나 문화적이나 어떤 경제적 지도자보다도 제일 큰 사명자니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쓰는 자를 영적 지도자라 하는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인간 정계나 문화계, 경제계를 초월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느냐 하는 데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장성기의  길 (2:1~10)
영적 지도자는 자라날 때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지?예정이 계심으로 모태로부터 택하되 그 시대를 따라서 나게도 하시고 자라게도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는 영적 지도자를 해치려는 박해는 어려서부터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을 빼앗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다. 그 길은 전화위복이라는 하나님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라는데 불행스러운 것 같으나 결국은 영적 지도자를 만들기 위하여 불행스러운 환경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세상에 나올 때도 원수의 공포 속에서 났고, 자랄 때도 원수의 무서운 정권 아래서 자라나되 하나님의 보호는 항상 같이 했던 것이다.

영적 지도자는 시대적인 혁명을 일으키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원수의 강한 세력 아래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원수의 강한 압박 속에서 장성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라날 때부터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자라나게 하며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해서 기른다는 것이다.


2. 시련의 길 (2:11~25)
영적 지도자는 실패를 당하게 한 후에야 지도자의 자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즉 남을 지도하려면 자기가 어려운 시련을 겪어 보아야만 되기 때문이다. 모세는 애굽의 학술을 배운 인격이었으나 이것으로만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실패를 당케 하여 미디안 40년의 시련의 길에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세계로 인도했던 것이다. 

영적 지도자가 되려 할 때는 인간과는 끊어지도록 만들어 놓는 것은 하나님과만 접촉할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즉 사람에게 박해를 받고, 축출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숨어 있지 아니하면 안 될 환경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명예와 권리의 영광을 맛보면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로 쓰려는 사람은 세상의 쓴 맛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계10:10, 사40:27).


3. 명령을 받는 길 (3:1~8)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를 명령할 때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기대나 어떤 연구나 계획을 가질 때가 아니다. 만일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계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인간 지도자는 될 수 있으나 영적 지도자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영적 지도자는 초자연적인 신의 역사 없이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절망, 낙망, 공포 속에서 명령이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나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니 인간의 어떤 힘이나 지식이나 세력을 초월한 역사이기 때문에 홀연히 명령이 내리되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하는 명령이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이요, 큰 위험을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이 명령을 받는 자는 목숨을 내걸고 참된 희생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여호와만을 앙망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길이다. 실패 같으나 성공이요, 죽는 길 같으나 생명이요, 약한 것 같으나 강한 역사가 일어나는 길이다. 앞으로 전진 할 때 그때그때 홀연히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는 길이니 조금도 좌우나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시대가 바뀌어지는 동시에 당신의 영적 활동의 법을 변경시킬 때 영적 지도자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언약 신앙 시대에는 아브라함에게, 율법 시대에는 모세에게, 은혜 시대에는 그리스도에게,  환난 시대에는 동방의 사람(말세 증인), 이와 같이 쓰시는 것은 지도자 없이는 시대를 개혁시키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에게는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권세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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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일 목요일

다니엘 7장 15~22 설교 :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고 이루워지는 나라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고 이루어지는 나라  


- 단7: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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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16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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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는 다니엘에게 묵시가 보일 적에 성도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는 일이 있으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보여 줬다.
 
하나님께서 하나같이 모든 선지에게 원수를 갚아 주는 심판이 있은 후에 거룩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억울함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주기 위한 목적이요,
둘째:앞으로 오는 모든 문제를 돌파하고 나가는 큰 힘을 성도들에게 주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이 말씀을 믿고 참는 자를 진실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하여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원수를 갚고 성도들에게 지상을 통치하는 왕국의 권세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일이라고 본다. 원수를 갚는 이유와 성도에게 거룩한 나라를 주는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영원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16~18)
하나님께서 과거부터 언제나 강한 나라를 들어서 다윗 왕국을 괴롭힌 일은 인간 종말에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정치와 나라는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성도를 어떻게 보호하므로 이기게 한다는 것도 과거에 미리 보여준 것이니 다니엘 당시에 바벨론 왕에게 쓰라린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승리가 있게 하여 예루살렘을 복구케 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에도 하나님께서 성도를 도우시므로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언제나 성경은 기록하기 위하여 나타난 역사가 있고 이루어지기 위하여 나타난 역사가 있으니 과거에 나타난 역사가 분명한 것과 같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도 분명하다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 짐승은 구약 시대에도 가르친 말씀이요, 신약 시대에도 가르친 말씀이다. 구약 시대의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 네 나라가 예루살렘을 정복하던 나라요,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영적 교회를 정복하고 들어오는 나라가 네 나라가 된다.

지금 강국이라는 나라들은 대부분 다 영적 교회를 부패되게 하는 나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강국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처음에는 돕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말에 가서는 그 나라가 부패하는 동시에 성도를 괴롭히는 짐승과 같은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본시 강대국이라는 것은 종교를 이용하다가 망할 때는 참된 교회를 탄압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세상 권리를 쥐고 나가는 정치는 침략적인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대국을 짐승으로 말한 것은 침략자를 뜻한 것이다. 언제나 큰 짐승이라는 것은 작은 짐승을 잡아 먹는 것이 원칙인 거와 같이 강한 나라는 작은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칙으로 알고 있다. 과거에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메데파사나, 헬라가 다 그러한 정치를 썼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언제나 참된 종교를 자기 정치적인 도구로 쓰려는 것은 종말에 가서는 다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들이 참된 성도를 억울하게 하는 정치를 하다가 원수를 갚는 심판이 오므로 완전히 망하고 성도의 나라가 온다는 것이다.

 

2. 성도가 나라를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19~22)

구약 시대에도 넷째 가는 헬라에서 종말의 성도를 압박하며 각성을 시키는 일이 있고 성경을 없이 하고 예배를 보지 못하게 한 일이 3년 반 동안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심판기에도 넷째 가는 나라가 성도를 괴롭히고 성도를 극도로 탄압하여 성도를 이기게 된다고 하였다. 넷째 가는 짐승을 들어 쓴 것은 왕권 받을 종을 검열해 보기 위한 방법이다.

구약 시대에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나와서 4대 강국인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헬라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탄압을 받은 일이 있고, 신약 시대에는 로마에서 기독교가 승리하고 나와서 미, 영, 불, 소의 사대 강국의 종말을 당하는 이때에 넷째 가는 나라에서 기독교는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신원하고 성도의 나라가 오게 한다고 하였다. 성도의 나라라는 것은 억울함을 당하고 순교한 성도들과 인간 종말에 넷째 짐승에게 억울함을 당하던 성도와 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열 뿔의 세력이 교회를 침투하는 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가 넷째 가는 짐승과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넷째 짐승은 심판의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구약 시대의 성도나 신약 시대의 성도가 다 억울함을 당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선한 모략이다. 왜냐하면 억울함을 당한 자에게 영원한 왕국의 권세가 오기 때문이다.

 
결    론
 

우리는 원수를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종이니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하나님을 원망할 것도 없고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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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1: 40~12: 1 설교 : 중동 전쟁과 천사의 보호



중동 전쟁과 천사의 보호  


- 단11:40~12:1, 요절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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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42 그가 열국에 그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므로 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12 :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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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다니엘에게 인간 종말을 보여줄 때에 바벨론이 메데파사에게 망할 것과 메데파사가 헬라에게 망할 것과 헬라시대에 남북전쟁이 있을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인간 종말에도 남북의 전쟁이 있는 데 있어서는 중동을 중심하여 북방은 진리를 대적하고 모든 신을 대적하고 자기 힘으로 신을 삼는 세력인데 모든 것이 다 궤휼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전쟁이 북방에서부터 내려오되 물 같이 내려 올 것과 애굽까지 그 세력에게 먹힘을 당할 때에 남방 아프리카 사람들이 북방을 대항하지 않고 시종을 들게 된다고 하였다.
 
이제 중동 전쟁과 천사 보호에 대하여 본문을 그대로 읽어서 간단히 공부하겠다.

 

1대지 : 남방 왕이 먼저 북방을 치게 됨 (11:40)

 

북방의 정책이라는 것은 언제나 거짓을 행하여 외면적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 비밀로 궤휼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방 왕이 부득불 북방을 칠 수밖에 없는 난국을 만나게 된다. 지금도 북방이 궤휼적 정책으로 남침을 음모하면서도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목적한다고 허위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방 왕이 먼저 북방을 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2대지 : 존귀한 자는 피해를 당치 않음 (11:41~43)

 

북방 세력이 회리바람같이, 물이 넘침같이 내려오지만 존귀한 자가 피해를 당하는 환난이 아니요, 인간 종말에 악한 세상을 벌하는 재앙이다.

 

3대지 : 동북의 소문을 듣고 번민하게 됨 (11:44~45)

 

북방 세력이 중동을 침투하는 동시에 아프리카까지 하나가 되는 일이 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북방을 시종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들려오므로 무신론적인 북방 세력은 큰 번민을 하게 되어 발악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극동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사야 41장과 같이 계시록 7장과 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 힘을 신과 같이 알던 북방은 어찌할 줄 모르고 번민하게 되어 이유도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행동을 하다가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이다.

 

4대지 : 천사의 보호가 있음 (12:1)

 

인류 종말의 전쟁이라는 것은 개국 이래에 역사적으로 없던 무서운 전쟁이다. 그러므로 이때에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해 주는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 종말에 환난을 오게 하는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만 구원하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없애기 위한 방법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진리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적인 보호를 믿고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무서워 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보호하사라는 사상을 가지고 말씀에 굳게 서서 싸워 나갈 때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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