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1일 화요일

인류 역사와 사회 문제



인류 역사와 사회 문제


인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역사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할 때에 주인을 모르는 집안일이 있을 수 없고, 국가의 일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역사는 흑암에 잠긴 소경에 불과하다. 그것을 빛의 역사로 믿을 수 없다. 참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쓴 역사는 얼마든지 거짓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는 동시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이 현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 때부터 하나님을 공경하는 역사는 시작되어 계통적인 종교 역사가 현재까지 내려오는 동시에 정확한 역사는 종교 역사를 통하여서만이 인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할 때에 조물주 하나님의 가르친 말씀이 아니고는 과거를 분명히 알 수 없고 미래도 분명히 알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한 것은 당신을 떠나서는 시작도 끝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1. 천지 개벽 홍수가 있기 전의 역사

이때는 세계 땅덩어리에 사람이 다 산 것은 아니로되 아시아를 중심한 지역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담 해와가 있던 에덴 동산은 분명히 동방 에덴이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는 동방에서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방 아시아를 중심해서 역사했기 때문에 완전한 역사의 시발점 아시아를 중심해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혼잡된 그때가 아니고 언어통일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아담의 족속이지만 이방적인가인의 계통과 성민적인 의 게통이 영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것 뿐이다. 그때 사람은 완전한 정치적인 조직 또는 종교적인 조직도 없는 동시에 버림받은 사람의 양심과 버림받지 않은 사람의 양심, 이 두가지 아래서 악하다, 선하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양심시대라고 볼 수 있다.


2. 홍수 심판 후의 역사

1) 하나님의 아들인 셋의 계통만 남는 심판

하나님은 영적으로 버림당한 양심의 악인들을 없애기 위한 목적에서 물로 심판할 때 하나님 앞에 양심적인 신앙의 종교 계통인 셋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방주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노아를 통하여 널리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은 하나님을 향한 양심이나 방주설을 의심하고 믿지 않았으므로 다 물에 침몰 당하고 노아 가정만 남았던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종교 가족으로 민족을 번창시킬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셈과 함과 야벳 중에서 셈의 족속을 택한다는 예언을 노아의 입을 통하여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입으로 말씀한대로 셈의 계통인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언약을 세울 때에 너는 복의 근원이며 네 씨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얻으리라는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이 언약이 성립되는 기간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시대다. 그래서 이 3인에게는 꼭같이 하나님이 나타나서 언약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언약이 이루어지는 역사는 야곱의 족속을 통하여 이루어지되 완전한 종교를 이룬 조직은 없으므로 할례의 법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할례의 법을 순종하는자만이 하나님 앞에 제사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언약 시대라 하는 것이다.

2) 이방 민족이 번창하게 된 동기

이방 민족이 번창하게 된 동기는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 "야벳"의 창대라는 말씀이 응하고, "함"은 종이 된다는 말씀이 응하고, "셈"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정통적인 계통자 외에는 다 이방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방은 다수를 점령하고 성민은 소수가 되었던 것이다.

둘째 : 노아의 후손이 바벨탑을 쌓던 자리에서 언어가 혼잡될 때에 사방으로 흩어져 분산 상태로 들어갈 때에 하나님을 바로 찾은 사람은 셈의 계통인 아브라함 외에는 다 다신숭배의 종교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되므로 열방이라는 지역도 언어가 혼잡해 언어에 따라서 나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그 언어에 따른 국경을 정한 것이 열방이 되었다. 국경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니 그 인종이 번창할 때에 하나님은 그 씨를 분산시켜 그 영토를 각각 차지하도록끔 역사했던 것이다.

셋째 : 이방족이 번창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버려두셨으므로 자유자재하고 아무런 죄를 지어도 그들은 막대기가 없고 재앙이 없고 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번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택한 민족은 하나님을 공경할 때에 조금만 잘못한 일이 있으면 용서없이 이방을 들어서 치기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많이 받게 되고 재앙을 피값으로 나리기 때문에 재앙으로 죽는 일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성민은 소수요, 이방족은 온 세계를 덮게 되었다.


3. 성민의 고난과 율법 시대

성민의 고난과 율법시대란 다음과 같다.

1)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첫 계단은 이방 땅의 고역이다.

하나님께서 성민에게 고역을 준 것은 완전한 조직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이 심할 때에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주기 위한 방법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요셉이 환란이 올 때에 큰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70여명이 기근을 피해간 것이 그 민족의 고역의 근본이 되었다. 성민이 이방의 객이 되니 자유가 박탈되고 경제가 부흥되지 못하고 억울한 노동, 억울한 죽음을 80여년간 받게 되었다. 그대에 그들은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연계를 지배하는 신이신 것을 알고 생명을 좌우하는 신이신 것을 그들은 분명히 증거로 알게 되었다. 이것은 열가지 재앙을 통하여, 홍해를 건너는 일하늘의 만나를 먹는 일반석의 생수와 메추라기 고기를 먹고, 의복을 아무리 입어도 헤어지지 않는 체험을 받았다. 그때부터 세계 인류가 분명히 하나님과 함께 한 백성인줄 알게 되었다.

2) 율법적인 종교가 완전한 조직을 이루어 그때부터 <성서>라는 모세 5경이 나타남.

이때에 그 민족은 그 법에 따라서 정치를 받고 교육을 받고 나갈 때에 그들은 이방과 다른 유일신의 종교와 거룩한 신정적인 국체를 이루어 나갈 때에 그 나라는 신정의 정치를 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선지와 정치인은 병합된 정치가 되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선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라가 망했고 들으면 흥했던 것이다. 이 역사가 즉, 구약 역사라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르쳐서 율법시대라고 하는 것이니, 아무리 택한 민족이지만 율법을 범하면 용서없이 처벌이 있되 속죄제에 중점을 둔 성전이 수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속죄제는 수도에 있는 성전 밖에는 드릴 수 없고 외국 객지 생활을 하고 있는 성민이라도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찾아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4. 부패와 멸망

1) 아무리 신성한 종교를 이루었고 정치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역사가 흘러갈 적에 정치와 종교가 극도로 변질되었다. 이와 같이 부패될 적에 하나님의 사람 선지에게 경고의 묵시가 나타났다. 이 묵시는 3 가지로 되었으니

첫째 : 그 나라의 종교부패와 정치부패를 아울러서 책망하여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고,
둘째 : 메시야 탄생을 말하면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고,
셋째 : 말세 종말의 일을 예언하면서 심판과 새 시대를 말했으니 이 글에는 3대 요소가 있는 것이다.

목적은 심판과 새 시대를 목적한 글이지만 그 시대의 민족들에게 경고도 되었고, 은혜시대에 택한 백성에게도 구원에 대한 확실성과 심판을 알게 했고, 심판기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여야 환란에서 죽지 않고 새 시대에 들어간다는 방법을 분명하게 가르친 글이다. 그러므로 그시대 사람이 선지의 말을 순종치 않으므로 북방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은혜시대가 올 때에도 그 선지의 예언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 영원히 망하고 말 것을 두려워할 일이 되는 것이니 구약의 역사는 그때 된 일이나 그때 예언한 일이 전부가 은혜시대와 심판기와 새 시대까지 이루어지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에 가르친 말씀은 율법이나 예언이 다 완성한 성서를 이룬 것이다.

2) 이방 민족과 성민과의 관계

이 성민이라는 족속은 비록 국경은 적었고 민족수도 적으나 역사적인 단일 민족으로 열조의 피를 지켜 내려온 동시에 유일신 종교를 지켜 내려왔고, 또는 아무런 난관이 부딪혀도 자기네는 성민이라는 사상이 보전되어 내려온 것은 특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방 민족에게는 막대한 피해를 당한 비참한 일을 많이 당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만 하는 일에 있을 때에는 강한 나라를 쳐서 물리치고 독립 국가의 부흥을 가져옴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에 알리는 증거가 되고, 대 종교의 진리가 완전히 열매로 나타난 것이 기독교란 것이다 (☞ 종말의 한국의 사명).


5.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계 문제

1) 그리스도께서 세계 민족 중에서 탄생한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세계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창 22:18)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역사적인 유일신의 종교는 모든 속죄와 할례와 율법에 관한 일체가 기독교가 탄생하므로 폐지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승천, 성신 강림에 대한 역사가 세계 인류를 구원하는 대 종교의 진리가 되었던 것이다.

금일에 어느 나라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게 된 것은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단일 민족의 성민은 목적이 그리스도가 탄생하기까지의 목적을 다 이룬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탄생 후 20세기 기독교 문명은 세계 인류를 흑암적인 다신 종교에서 유일신의 참된 하나님의 교회로 통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세계에 빛이 되어서 어둠의 권세 아래 있는 택한 백성을 광명한 빛의 나라로 옮겨 놓는데 불과한 역사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속죄라는 피는 세계 인류를 대신한 속죄의 은총을 이루기 위하여 20세기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20세기간의) 기독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오는 사명의 범위에 머물렀었고, 모든 선지가 <심판과 새 시대>를 말한 묵시의 진리는 아직까지 전할 시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성경을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한계점에 봉착해 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셨지만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에야 인간이 알도록끔 역사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은 새 시대를 이루기까지의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날까지 이루어진 효과는 개인적인 심령을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을 주는 일에 효과를 주는 역사에서 세계 인류에게 전파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의 역사라는 것은 이것으로 끝을 맺는 것은 아니고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인류적인 구원과 심판으로 끝을 맺는 것이니 이것은 선지의 예언이 전부 해당되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구원 문제를 위한 역사에는 그리스도의 행적인 4복음서, 초대교회 사도들이 쓴 편지로서의 개인적인 문제는 밝혀졌다고 볼 수 있으나 완전한 새 시대를 이루는 구원의 진리는 계시록과 선지서가 대조된 다림줄의 진리로서 이루는 것이니 다림줄의 진리라는 것은 세계 인류를 어떠한 방법으로 종말의 심판기에 구원하며 또한 멸망시키겠다는 진리에 결부된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목적을 완성시키는 것이니 이 역사라는 것은 개인의 심령 문제보다도 영과 육을 아울러 죽음없는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을 목적한 것이다.

기독교는 교화를 확장시키는 시기도 있고, 알곡만 모아들이는 시기도 있으니, 전기가 은혜시대라면 후기는 심판기다. 심판이라는 것은 알곡된 백성을 죽지 않도록끔 절대 보호가 있는 것이요, 그밖의 사람은 아끼지 않고 전멸시키는 것을 심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세계 인류라는 것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받은 것이니만큼 구원하는 것도 심판하는 것도 조물주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과 성민이 갈라져 있는 것이 율법시대요, 이방과 교회가 분별되는 것은 은혜시대요, 쭉정과 알곡을 갈라 놓는 것을 심판기라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근본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목적 밑에서 역사하되 그 영을 구원하는 목적도 있고 그 몸을 구원하는 목적도 있으니 몸을 구원해 주는 역사를 새 시대를 이루는 종말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을 구원하는 시기는 온세계 인류에게 기독교를 확장시키는 시기라면 몸을 구원하는 때는 교회를 다 없이하는 환란이 오는 동시에 당신의 택한 백성을 환란에서 구출하며 보호와 인도와 축복이 같이하므로 완전한 시대를 이루는 것이니 이것을 말세의 다림줄 쥔 종들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의 통치와 새 시대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탄생한 목적을 달성한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새 시대를 가르친 동시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것이다. 첫째 아담이 승리를 이루지 못하므로 잃어버렸던 에덴의 축복을 둘째 아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완전히 이루어 놓는 것을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이 새 시대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되 이것은 완전한 천국이 아니요, 창조의 근본 목적에서 원칙을 이루어 놓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새 시대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이라 하는 것이다. 왕국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이 얻는 것이니 왕권으로서 새 시대를 얻는 자도 있고 시민권으로 얻는 자도 잇으니 왕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행자로서 순교적인 실천 생활에서 왕국 건설을 위하여 승리적인 역사를 한 자에게 주되 부활성도와 변화성도가 있다. 그밖에 백성된 자격은 말세에 변화 성도의 자격을 가진 종들의 예언적인 다림줄의 진리를 믿고 순종하므로서 환란에서 남은 백성이 된 자가 종족이 되는 것이다. 새 시대라는 것은 천년왕국이라 하는 것이니, 이 때는 세계 인류가 다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지배를 받고 축복을 받고 사는 시대를 말한 것이다.


7. 무궁 시대와 인류 문제

무궁시대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체가 갈라지는 데서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이것은 행위 심판후에 되는 일이다. 행위 심판이라는 것은 아담으로 천년 왕국의 왕권을 가졌던 성도 외에는 상선벌악의 행위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지옥과 천국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이것을 이루기까지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 목적을 이루자는 것을 말씀이라 하는 것이다. 이 때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교훈이 필요없다. 왕권도 영원, 시민권도 영원하다.


Copyright (c) 2002  Mahershalalhashbaz All rights reserved.
 02-815-5126(교회), 011-9739-2782(담임목사), 010-9242-7815(홈페이지)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headstone924.net/ 

14만 4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7:12 제사장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변역된 것 
율법 = 은혜
할례 = 세례
제물 양의 피 예수님의 피
제사장 : 레위지파 유다지파
안식 토요 안식 부활 안식 일요일
이스라엘 선민 이스라엘 세계 영적 이스라엘 

육적 유다지파 = 영적 유다지파
대한민국 = 영적 유다



(문) 19. 14만 4천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자 합니다.

(답) 이것은 인간 종말에 진노의 날이 올 때에 남아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종들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계 7:1이하를 보면 땅과 바다가 큰 피해를 당할 바람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불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이 다른 천사를 통하여 있는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바다나 땅이나 해치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진노의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종이 되려면 은혜시대 종으로서 다시 무장을 해야 된다는 뜻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엡 1:13을 보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침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것은 종된 사람에게 오는 인이 아니고 죄인으로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에 받는 성령의 인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14만 4천명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것은 사명자들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성신의 인 맞은 종을 들어 쓰는 법과, 이마에 인 맞은 종을 들어 쓰는 법이 성서를 보아서 다른 시대라고 봅니다. 계 9:4에 보면 첫째 화가 올 때에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검은 연기 속에서 황충이가 나오는데 이마에 인 맞지 않은 사람만 피해를 주라고 한 것을 보면 인 맞은 종이라야 첫째 화를 피한다는 뜻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화가 오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이름을 가지고 각 지파라고 한 것은 새 시대를 이루는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선지를 통하여 아무리 이방 세력이 강하게 이스라엘을 대적하지만 필연코 승리는 이방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에게 있다는 것을 가르쳤으며 새로운 왕국을 이룰 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라고 한 것을 보면 이방 세력을 없이하는 진노의 날에 남은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종이 이 14만 4천을 현재 아랍과 싸우고 있는 이스라엘이라고 본다는 것은 십자가 복음에 의하여 큰 모순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으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을 전하기 위해서 율법주의자와 싸웠던 것입니다(갈 3:28-29). 만일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못되고 현재에 십자가의 도를 배반하는 중동의 이스라엘국이 진짜 이스라엘이라면 십자가는 하등에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계 5:9을 보면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라고 한 것을 보면 피로 산 백성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요 또는 왕권을 가진다고 한 것을 보면 지상 왕국은 피로 산 백성으로 이루어지되 종들을 통하여 왕국이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는 동방 해 돋는 데라고 한 것은 사 41:8이하를 보면 동방 땅 끝 이스라엘이라고 말했으니 우리 대한민국의 사명이 14만 4천을 일으키는 사명이라고 보게 됩니다. 14만 4천은 강한 용사로서 적 그리스도와 싸우는 군대가 되는데 12지파의 모양으로 12반열이 이루어질 것을 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록을 보일 때 변화 성도가 일어날 시기, 일어나야 될 환란, 또는 붉은 세력을 없애버릴 심판의 재앙을 뜻한 것이니 기독교 종말의 역사는 14만 4천명으로서 끝을 맺는 역사가 되고 이들이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변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계 14:3).




Copyright (c) 2002  Mahershalalhashbaz All rights reserved.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headstone924.net/

십사만사천이 육적 유대인이라는 의견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사만사천이 육적 유대인이라는 의견에 대한 질문입니다.




1. 계시록 7장을 보아야 합니다.

계시록 7장에 나오는 인 맞은 이스라엘은 종말의 환란 가운데 남아 재림의 주를 맞이할 변화성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변화성도란 완전한 승리의 왕권을 받을 종들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라"고 하신 것은 율법의 종들 중에 뽑아내라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 복음으로 거듭난 종들 중에서 특별히 뽑아 내라는 뜻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144,000의 이마를 보면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고전 5:7)를 먹고, 그 위에 아버지께서 넘겨 주신 심판책(계 5:7)까지 먹은 자들이 진정한 이스라엘 144,000명이라는 뜻입니다(두 구절 다 5:7절이네요).

예수님이 계시록을 주신 것은 12사도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신 이후이기 때문에(행 1:8). 계시록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나오는 144,000명은 세계적으로로 확장된 기독교계에서 나오는 종들이 분명해집니다. 또한 계시록은 그 서두에 계 1:1,4절부터 그 수신자가 '교회와 종들'임이 밝혀져 있습니다. 계 22:6,16절에도 '교회와 종들'에게 주신다고 다시 한 번 밝히셨습니다. 여기서의 교회가 율법적인 모세 교회(행 7:8)가 아님은 너무도 분명치 않습니까? 계시록에 명시된 교회란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행 20:28)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계시록 7장의 144,000명은 예수님의 피가 발리운 신약의 영적 12지파 가운데 (온 세계 인류가 불에 살라져 버리는 무서운 환란이 올 때) 뽑혀져 역사할 종들이라고 요약됩니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피해를 주지 말라 하신 것을 보면 144,000명이 등장할 시기는 지구 땅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만한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계 7:2~ 하나님의 인이 나타나는 '해 돋는 데'가 어디인가를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해 돋는 동방을 '팔레스타인'으로 볼 것인가? '극동 아시아'로 볼 것인가? 

해 돋는 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들고 나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되 이스라엘 중에 14만 4천을 뽑아내라는 것은 큰 군대(겔 37:10)가 이루어지는 용사적인 완전 결합을 뜻한 것입니다. 이 결합은 종들(144,000)에게 일시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고, 인을 치는 역사가 해 돋는 곳에서부터 '우리'(계 7:3)라는 종들에 의해 순서적으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계 7장을 보조해 줄 동방역사의 기록을 살펴 보면 사 24:15, 41:2, 46:11, 겔 47:1~10 같이 먼저 동방의 소수 종들로부터 선구자적인 역사가 출발하여 세계로 뻗어나갈 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동방역사는 동방에서 출발한 진리가 모든 하나님의 종들을 한 무리 되게 하는 기독교 통일의 역사인 것입니다. 아시아 '셈'의 장막은 여호와를 찬송할 영권이 임해 있는 장막이므로(창 9:26), 인간 종말의 역사는 반드시 아시아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지리적으로 극동에는 '한국'이, 극서에는 '이스라엘'이 위치해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의 유대민족은 계시록 7장의 동방 '해 돋는 곳'의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됩니다.




3.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인류 전멸의 전쟁을 수행할 만할 때의 동방이어야 함.

2,000년간의 은혜시대 역사는 이방을 찾아가서 한 사람 한 사람 회개시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다락방에 떨어진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는 역사였습니다(갈 3:28∼29. 엡 3:6). 이 역사가 20세기 동안 이룬 기독교의 업적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7장에서는 이미 이렇게 확장된 기독교의 종들 중에 그 이마에 인 맞을 자를 뽑아내라는 것입니다. 그 시기는 땅과 바다를 해칠 권세를 받은 '네 천사'(4대강국)가 나타난 후이며, 이 '네 천사'에 대한 해석은 계 9:15 이하를 볼 때 정해진 년, 월, 일, 시에 사람 3분의 1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라 하였으므로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말세의 4대강국이 됩니다. 그 무기를 표현할 때 마병대가 2만만(=2억)이고, 말들의 머리는 사자 같고, 꼬리는 뱀 같고, 꼬리에 머리가 있고 입이 있어서 거기로부터 불과 유황이 나와서 이 땅 사람 3분의 1, 즉 20억을 죽인다 하였으므로 현재 60억 인구 중 20억을 살생할 만한 어떤 포열을 가진 무기들이 사용될 것입니니다(이러한 것들 몇 방만 터져도 20억 금방 죽지 않겠습니까? 중동 유프라테스 부근에서 많이 터짐). 불과 유황으로 죽이는 무력은 과학 발전으로 말미암은 신 무기 전쟁을 가리킨 것이니 이러한 때 '해 돋는 동방'이라는 장소는 중동이 아니라 아시아 극동이 되는 것입니다. 마침 세계인들은 과거에나 현재나 우리 한국을 '동방예의지국', '동북아시아의 주역', '극동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불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때에 동방에서 인을 치는 역사가 나와서 14만 4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예수님의 계시인데, 어찌 예수님을 메시야로조차 영접하지 않은 육적 이스라엘에서 144,000명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144,000명은 분명히 무서운 전재(戰災)가 와서 세계가 전멸 상태에 들어갈 때 쓰여질 종이되 '해 돋는 동방'에서부터 올라오는 '우리'라는 다른 천사의 사명 가진 자들로부터 시작되는 무리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의 교파를 초월하여 재앙 속에서 남을 종을 일으키되, 동방 한국에서 나타난 영원한 복음(계 14:6)의 진리로 완전한 무장을 시켜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이기고 '3일 반' 순교했다가 들림을 받는 최종 승리에 목적을 두고 전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4. 이름과 칭호는 영적이라야지, 간판적인 것은 쓸모 없음.

육적 이스라엘은 아무리 성민(聖民)의 이름을 가졌더라도 우상을 좇아갈 때 북방 사마리아가 된 일이 있으며, 영적 이스라엘 중에서도 얼마든지 반 기독론을 들고 공산당의 뿌리가 된 스탈린(신학생이었음)과 같은 자가 나와 교회를 망친 일도 있는 것이니, 어떠한 간판 아래 소속돼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못됩니다. 이름(간판) 자체는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기 위한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땅이나 바다가 다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재앙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자'가 될 때에 이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다윗의 왕국(메시야 왕국=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스라엘의 의미는 오직 예수, 오직 예수의 피로 산 말씀 속에서만 찾아지는 것입니다. 중동에 위치한 저들의 국호가 아무리 '이스라엘'이어도 그것은 간판일 뿐, 그들은 진리를 버렸기 때문에 종말의 144,000의 사명자 될 수 없음은 물론, 아브라함의 자녀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세례 요한은 육적 이스라엘을 책망할 때에 너희는 독사의 새끼니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고 했고(마 3:9), 예수님도 바리새 교인들에게 네 아비는 마귀라고 하셨고(요 8:44), 사도 바울도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하였습니다(롬 2:28). 결정적으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다음 세 구절로 인해 '중동 이스라엘'은 계시록 7장의 이스라엘에 얼씬도 할 수 없게 됩니다.

1) 마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2) 마 21: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3)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주 재림기)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황폐하여 버린 바 된 자들과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긴 자들에게서 어떻게 144,000명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유대민족의 회복을 말한 로마서 11장은 그들이 겨우 예수님께 접붙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축복이 말세에 있을 것을 뜻한 것이지, 저들이 세계를 살리고 적그리스도를 쳐부술 144,000명을 배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5. 이스라엘은 144,000을 배출하긴커녕 도리어 그들을 죽일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영접할 가능성이 많다.

요한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가끔 성탄 때 TV 다큐로 성지순례 등을 방영해 주는데, 거기서 보면 유대인들은 지금도 통곡의 벽에서 메시야를 보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조차 성경으로 인정치 않는 그들이 어떻게 다시 오실 주님의 1등 신부인 144,000명이 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천재적인 적그리스도의 궤휼 정책에 휘말려 그(작은 뿔)를 메시야로 영접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계시록 7장에서 14만 4천을 이스라엘이라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재앙기에 남은 자가 되어 그들로 말미암아 영원한 왕국이 지상에 이루어지는 때에 '이긴 자' 즉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새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 것일 뿐(사44:5), 육적 이스라엘이 끼어 들어올 틈을 준 것은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사명의 이름을 주신 것은육적 혈통을 통해서 승리할 것을 뜻하심이 아니고 마귀를 이기신 그리스도께 접붙은 종들을 통하여 완전한 승리를 주실 것을 뜻하여 붙여 주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시몬에게 베드로란 이름을 주시며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라 하신 것도 유대인'에 국한시켜 주신 말씀이 아니고 세계 교회를 다 포함하여 이르신 말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몰지각한 신학자들이 계시록 7장의 이스라엘을 문자 그대로 율법적인 야곱의 12지파로 이해한다는 것은 극도의 어리석음이자 스스로 사단의 종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벧전 2:9∼10에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이건 백성이건 이스라엘은 예수를 믿는 세계적인 기독교에서 나오는 것이지, 절대로 메시야를 영접치 않은 독사같은 민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6. 영원한 이스라엘이어야지, 임시적인 이스라엘은 소용없다.

우리는 잠시 이스라엘로 불렸다가 버림받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이스라엘로 불리움 받아야 되는데, 그 자격은 바로 계14:4∼5의 인격입니다. 그래야만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은 기독인이 전국민의 2%도 되지 않습니다. 중생받은 자가 144,000명도 안 되는데, 어찌 중생받은 자 중 뽑혀져 나오는 수 144,000을 배출할 수 있겠습니까? 천하에서 가장 복 있는 자는 재앙 가운데 남은 종으로서 영원한 이스라엘이 되는 자라고 볼 수 있는데, 사 66:20을 보면 열방에서 다시 제사장과 레위족을 택해서 그 자손이 영원히 복을 누린다고 말씀했으므로 144,000명은 세계 민족 중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지극히 성경적입니다(미 5:7~9).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어 만민을 피로 사서 '한 나라'(메시야 왕국)를 이루게 하는 데는 먼저 이 땅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 천국으로 가되, 중생을 받고 성령 받은 종들 중에 다시 뽑혀져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적인 사명자가 다시 예언을 완수하고 들림을 받으면 왕권의 이스라엘(144,000)이 완성되고, 그 종들의 예언을 듣고 회개하고 나오는 무리는 아무리 불신자 및 이방 종교에 있던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이스라엘에 가입하여 새 시대의 종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종족 이스라엘 완성, 계 7:9 이하. 사 14:1~2).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중요하되 육적인 간판 자체는 '천년왕국'을 이룸에 있어 하등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여 진정한 영적 자녀(이스라엘)가 되는 것입니다. 혹은 '5개월 환란' 때 회개하여 예비처에 들어가 진정한 이스라엘 왕국(천년왕국)이 펼쳐질 때 그 땅의 백성이 되는 길뿐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에서 144,000명이 나온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7. 동방 땅 끝의 의미

땅 끝이라는 단어의 의미만 상고해 보아도 이스라엘은 감히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너희는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성신의 역사가 임한 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아시아의 전도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막으시고 마게도니아로 건너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를 비롯하여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하고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로 모든 사도가 다 순교를 당하고 사도 요한 한 사람이 남았을 때, 요한은 기독교 종말의 변론을 계시로 받으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동방 땅 끝인 해 돋는 편에서 올라오는 모습을 묵시로 보았습니다(아시아를 종말의 사명장막으로 남겨두신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이스라엘 중에 종 된 자 중 14만 4천이 인을 맞는 광경이 보였던 것입니다. 말일(末日)의 동방역사가 예언된 이사야 41장의 9절을 보아도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육적 이스라엘이 될 수 없는 것은 41장 자체가 기독교 종말에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승리할 이스라엘을 두고 하신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종말의 144,000 만큼은 절대로 "싫어 버리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이것은 말세 종 144,000명의 권세이지, 세상 경제권과 각종 사업체를 손아귀에 쥐고 돈을 끌어 모으는 유대인의 권세가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도 모세의 율법만 되뇌이며 나사렛 예수 말고 다른 메시야를 보내달라는 억지 생 떼를 부리고 있는 저주 받은 민족입니다. 저들을 깨우쳐 살려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데, 저들에게서 144,000이 나오다니요?... 가당치 않은 이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록까지의 성경 전서가 되어 그 책이 외국어로 번역될 때에 서양 문명을 타고 루터 종교 개혁을 중심으로 번역되어 나갔습니다. 이때부터 어느 민족 누구나 성경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해방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시아에서부터가 아니요 유럽의 지중해를 시발점으로 대서양 바다 해변으로 발전되어 세계적인 기독교 문명이 형성된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성경번역과 함께 기독교인들을 통하여 이루졌습니다. 고로 아시아가 아닌 성경을 번역한 유럽(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 장막)이 과학 발전을 누리며 세계를 정복한 강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창 9:27절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얻은 자도 기독교인이었고, 그 땅에 이상적인 민주 국가를 개척한 자도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아시아에서 서쪽으로 발전되어 아메리카에 합중국이라는 나라를 이루어 그곳이 극동에 복음을 전하는 본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은 참으로 고마운 동생입니다. 고로 이제 우리가 형님 노릇을 할 때입니다. 야벳은 창대케 되어 셈의 장막에 와서 거하라고 하였으니까요(창 9:27).

천국 복음이 온 세상(마 24:14), 즉 땅 끝(행 1:8)까지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시아의 서쪽인 중동에서 출발한 천국복음이 아프리카 장막과 유럽 장막에 전파되고,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복음이 다시 아시아의 동쪽인 동양 삼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일본은 기독교 2∼3백년의 역사를 가졌고, 중국도 3∼4백년의 역사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만큼은 120년밖에 되지 않은 신참 막둥이 나라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으뜸이 될만한 교회 확장을 가져 온 현실은 동방 땅 끝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이스라엘 중에 144,000을 일으킬 영원한 복음(계 14:6)의 전진 기지(본부)라는 것을 증명해 줄 만한 징조입니다. 만일 거듭난 신학자나 종들이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의 유대 족으로 본다면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십자가를 무시하는 망령된 행동이 되는 것으로 천년왕국을 이루기 위해 펼쳐지는 동방역사를 훼방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동방 땅 끝을 우리 나라로 보는 것은 합법적인 진리이며, 우리나라의 종들로부터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 중에 144,000이 모집된다고 보는 것이 여러 예언을 종합해 볼 때 가장 타당한 견해가 되겠습니다.

2005년 3월 8일 <스룹바벨 선교회>http://www.zion924.com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headstone924.net/

불법자의 나타남과 주님의 나타날 일 (살후2:1~12)


불법자의 나타남과 주님의 나타날 일

(살후2:1~12)

살후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였느냐  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서  론

그리스도께서 메시야로 나타날 때도 불법적인 교권의 세력이 극도로 강성하여 참 성도를 탄압할 때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다시 공중에 나타날 때도 불법적인 거짓 선지의 세력이 노골화하여 자기의 숨겼던 비밀을 만방 앞에 공포하고 개시할 때 주님은 홀연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재림을 고대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절대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일이 있기 전에는 주님이 오지 않는다고 단언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이제 불법의 사람이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1. 배도자의 뒤를 따라 나온다 (2-3) 


이 배도란 이미 세워진 교회를 황폐화시키는 정책을 말한 것이다. (단11:30-31)에 다니엘은 종말의 환란은 북방과 남방으로 대립되는 것을 말할 때 북방 세력은 하나님 말씀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기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한다고 했다. 이 배도는 과거에도 개인적인 행동으로는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는 세계제왕이 배도한 일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배도라는 것은 세계적인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북방세력을 말한 것이다. 즉 북방의 적그리스도의 정책을 말한다. 이렇게 배도적인 세력이 세계적인 위협을 쥐고 나올 때 그 배도자의 뒤를 따라 나오는 거짓 선지를 불법자라 하는 것이다. 

불법이란 (마7:21, 마24:11-12)의 성경을 보면 “주여 주여” 하면서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날까지는 기독교가 말씀에 탈선된 자를 출교, 책벌 등의 강한 치리가 있으므로 불법의 비밀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 재림이 임박해서는 이것이 세계의 교권을 쥐고 불법적으로 노골화시켜 만민 앞에 공개시키고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현재 ‘새 신앙 고백서’ 라고 말할 수도 있다. 동정녀 잉태설과 심판을 빼고 나오는 이 고백서는 불법이 아닐 수 없다. 즉 알파와 오메가를 빼놓은 불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성신 잉태와 그리스도의 강림의 심판을 뺀다면 메시야도 재림의 주도 부인하는 불법이다. 이것을 강단에서 세운다는 것은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2. 성전에서 나타난다 (4)


여기에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한다는 것은 인본주의적 사상을 말한 것이다. 즉 자칭 유대인이다(계3:9). 동정녀 잉태설을 부인하고 재림을 부인하는 신앙고백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이니 자칭 유대인인 동시에 가증한 물건이라고 보게 된다. 자기의 중심에 맞는 것을 믿는다면 자기를 믿는 신앙이니 하나님은 참되시다 하는 인을 친 자가 아니고는 다 불법이라고 볼 수 있다(요3:33).

 
3. 하나님께서 허락하므로 나타났다 (5-8) 


하나님은 왜 불법적인 신앙고백서를 내놓게 하느냐 할 때 이제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 때라는 것은 주님이 나타날 때이다. 이 때는 전 3년반기이니 말세증인이 나와야 할 때다. 왜냐하면 권세 받은 증인이 나오지 않고는 이 세력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이 나타난 현재 1967년을 경홀히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능력과 기적과 표적으로 나타난다 (9) 


하나님은 사단을 허락해서 능력도 기적도 표적도 행하도록 허락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즉 예언의 말씀을 바로 믿고 다림줄을 쥔 종에게 천상 천하의 권세를 맡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하와를 미혹해 보라고 사단을 허락한 것같이 말세에도 말씀의 칼을 든 종만 골라 세우기 위하여 사단의 능력과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는 것이다.

 
5. 속이는 일로 나타난다 (10)

이것은 누가 진리를 사랑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기 위한 방법이다. 누구든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은 다 속도록 만드는 심판이다(사66:4). 예언의 말씀을 듣고도 가하든지 감하든지 하면 재앙은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말세 진리를 가감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거짓을 믿도록 하겠다는 것이다(11). 다시 말하면 이것은 영적으로 오는 재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  론

주님이 나타날 시기에는 이 말, 저 말 듣지 말고, 기독교의 불법적인 행동이 교권을 가지고 나오는 때를 주님 나타날 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니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주겠다는 목적에서 간교한 뱀을 허락한 것같이 말세의 성도들에게 죽지 않고 살아서 생명과를 먹을 수 있는 축복을 주기 위하여 다시 마귀를 극도로 간교하게 속이도록 허락하는 것이니 이 때는 말씀의 칼을 든 자외에는 다 하와 같은 혼미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말에는 예언대로 심판하는 것이니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느냐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도 이 때 진리를 사수하지 않는 자라면 다 미혹을 받게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미혹을 시키겠다고 말씀했으니 이 말씀을 예언하신 하나님은 말세 진리에 혼선되는 자를 미혹을 안시켜도 심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내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한 것도 이러한 때를 두고 말한 것이다.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headstone924.net/

재림에 대한 징조와 확실한 예언 (벧후1:12-21)


재림에 대한 징조와 확실한 예언

(벧후1:12-21)



서  론

우리는 주 재림을 믿는 신앙에 대하여도 확실한 징조도 있고 확실한 예언도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에게 완전한 신앙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만일 징조만 있고 확실한 예언이 없어도 불완전이요, 예언만 있고 징조가 없어도 완전한 것은 아니다. 징조가 확실하고 예언도 확실하니 이것은 합법적인 진리라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징조와 확실한 예언을 성경으로 다음과 같이 찾아본다.

 
1. 재림에 대한 징조를 봄 (16-18) 


이 날까지 기독교에서 재림에 대한 확실한 징조는 보여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실한 예언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 자체도 징조는 내가 보았으나 확실한 예언을 분명히 모른다고 말했다. 베드로가 재림의 징조를 보았다는 것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변화산에 올라가서 직접 눈으로 그 영광도 보았고 주님의 자체를 보았고 똑똑히 음성도 들은 것이다. 이것을 보아서 확실히 주님은 강림한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또는 주님이 승천할 때 천사가 말했다(행1:11). 

그러나 다시 온다는 징조는 친히 눈으로 보았으나 다시 올 때 예언은 계시록을 통해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은 어찌하여 재림의 징조는 있게 했으나 이 때까지 예언의 확실한 것은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있는 것이다. 이미 죽은 성도에게는 주님 다시 온다는 것만 알아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다. 십자가, 부활, 승천, 재림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이 신앙은 주님이 분명히 오신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왜냐하면 확실한 예언이란 주 재림을 살아서 환란 가운데 남은 종으로서 맞이할 자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다. 만일 죽어서 부활할 성도에게 예언을 지키라고 하면 이것은 이단설이 될 것이다. 이것은 때가 되기 전에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날까지 예언을 들고 활동하던 사람이 실패한 것은 그리스도만을 바로 믿기만 하면 될 시기에 월권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2. 확실한 예언 (19) 


사도들은 확실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말했으나 해석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언이란 인간의 사사로운 생각으로는 풀 수가 없다는 것이다(20). 예언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할 때 하나님이 바로 해석하도록 해 준다는 것을 베드로가 그 때 사사로이 예언을 풀었던들 그는 사도의 자격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사도의 직분은 그리스도 한 분을 바로 증거해서 믿게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확실한 예언을 증거하는 총 대지는 계10:7일 것이다.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시기는 일곱째 나팔을 불 때니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한 말씀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비밀이 옛날 선지의 전한 복음과 같이 성령으로 잉태되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고 성신이 강림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사명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사명자는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이 선지의 예언대로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심판기의 종들이 전할 사명이다.

그러면 심판기에 남은 종들은 모든 환란과 재앙과 또는 남은 종과 남은 백성이 선지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의 다림줄을 바로 쥐고 나가서 다시 예언하는 역사이다. 다시 말하면 미분명한 해석을 분명히 해석해 준다는 뜻이다. 만일 환란과 재앙이 올 때 확실한 예언을 증거 못한다면 기독교는 흑암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예언은 등불이라 할 것이다.

등불은 어두움이 오는 밤에 필요한 뜻을 가르친 것이다. 이미 태양빛 같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로 믿게 하는 시대가 빛의 시대라면 신랑이 밤에 온다는 말과 같이 주님 올 때는 빛의 시대가 아니고 흑암 시대다. 흑암 시대가 올 때까지 예언의 등불을 들지 못한다면 주님을 맞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기독교가 확실한 예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촛대교회를 일으킬 수 없다. 촛대란 밤에 쓰는 등불이다. 

우리는 사명적인 겸손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와 같은 심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확실한 예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믿으면 된다 하여 예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것도 교만이요, 자기 사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예언을 해석 한데도 교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께서 확실한 예언을 나가 하도록 해줄 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나가 증거할 것뿐이다(계12:11).

 
결  론 


하나님의 역사란 징조가 먼저 똑똑하고 예언은 글자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약 때 양으로 제사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징조를 보여준 것뿐이다. 십자가의 속죄를 완성할 때 징조는 폐지된 것이다. 그와 같이 재림의 징조만을 믿던 신앙을 완전한 예언이 나올 때 징조만을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확실한 예언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주님 다시 온다는 징조도 다 있는데 믿으면 되지 무슨 예언이 필요 있느냐 할 때 이것은 시대를 모르는 어리석은 종이 될 것이다.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headstone924.net/

올라 오라 할 때에 들림 받을 자 (계11:9~12)


올라 오라 할 때에 들림 받을 자

(계11:9~12)

계시록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인간의 최고 역사는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역사라고 본다. 오늘의 과학자들은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에 가는 것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에게 효과를 주는 행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올라오라"는 주님이 나타날 때에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이 된다면 가장 복 있는 자라고 보게 된다. 

만왕의 왕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나셔서 빈곤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3년간 쉬지 못하고 죄인을 찾아가고 병을 고쳐 주고 복음을 전하시고 겟세마네 고통의 기도와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를 지고 올라간 그 고난, 죽기까지 쓰라린 십자가의 쓴잔을 달게 받으시고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부탁을 하시고 구름 타고 올라가실 때에 올라간 대로 다시 오리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다시 나타나 인류 종말에 무서운 환란과 미혹과 또는 기독교의 큰 역사를 보여준 동시에 당신이 공중 재림할 것을 본 장에 보여준 것이다. 

이제 올라 오라 할 때에 들림 받을 자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들림 받을 시기 (7~8, 9:15) 


계시록에 나팔 부는 천사가 나타난 것은 들림 받을 종들이 역사할 때에 일어날 환란을 순서 있게 보여줬다. 8장과 9장의 나팔의 순서는 이 땅 3분지 1이 피해를 당하는 환란이 일어나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전세계적인 화가 올 때에 계9:4과 같이 인 맞은 종만이 남게 된다고 하였고, 14절과 15절에 년 월 일 시에 사람 3분지 1이 죽을 것을 보여줬으니 그 년 월 일 시라는 것은 주 재림기를 가르쳤다.

계시록은 각 장의 독립성을 가진 계시가 아니고 8장과(타도정치) 9장은(협상정치) 하나님께서 악자를 들어서 세상을 치는 환란이 올 것을 보여준 동시에 10장과 11장은 8장 9장과 같이 환란이 오는 때에 들림 받을 변화성도가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다가 들림 받을 것을 보여줬으니 주 재림 시기는 이 (땅 3분지 1이 공산화) 피해를 당하고 세계적인 화가 되는 환란이 나오는데는 중동을 중심해서 마지막 환란이 나올 때에 주 재림기라고 계시를 보여준 것이다. 다니엘 선지는 단11:40 이하를 보면 중동을 중심 하여 무서운 환란이 일어나되 북방 세력이 애굽에까지 내려오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북방을 시종 드는 일이 있을 적에 주님이 오실 때라고 12:1~4에 말했다.

그러면 오늘에 이 시국은  (땅 3분지 1) 이 마귀 앞잡이 공산당에게 피해를 당하고 이제 세계적인 무서운 환란이 오게 된 사실을 보아서 분명히 주 재림기라고 본다. 만일 과거에 주님이 오시길 고대했지만 그때 사람들이 다 자기 사명을 분별치 못하는 자리에서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것을 생각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반드시 변화성도라는 것은 예언하는 선지 사명을 가지고 환란 가운데 살길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예언을 하는데는 계시록을 가지고 변화성도가 증거하다가 계시록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하게 되고 계시록대로 이루어지는 주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계시록 10장 11장은(예표와 순의역사) 변화성도가 역사할 광경을 보여준 것인데 그 시기는 9장과 같이 될 시기라고 본다. 9장에 해와 공기가 어두워지는 가운데 (황 충 떼)가 나오는 것은 주 재림기에 들림 받을 종들(144,000)을 대적하고 일어날 것을 보여준 동시에 10장과 11장에는 원수의 피해를 당치않도록 권세를 주어서 역사할 것을 보여주었고 다음에 주님의 공중 재림 때 올라 오라 할 때에 구름 타고 올라갈 것을 말했다. 

계시록은 주 재림기에 마귀 편에서 역사할 것과 하나님 편에서 역사할 변화성도의 형편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의 이때를 주 재림기라고 보게 된다.
황충떼의 뜻은 짐승같은 정권 공산당이 쓰는 악당들을 말한다.


  
2. 들림 받을 자의 순교적인 역사 (9~10)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종을 쓸 적에 원수의 세력을 강하게 역사하도록 하면서 당신의 종을 들어 쓰는 것을 순교적인 생활을 하는 자만으로 1차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사도 시대에는 네로 황제를 들어서 악한 정치를 하게 해서 사도들을 다 순교를 시켰고 말세에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계17:8~13을 보면 분명히 일곱 중에 마지막 머리가 주 재림기에 변화성도와 싸울 큰 나라가 된다. 그렇다면 일곱째 머리는 분명히 소련 공산 정책이라고 본다. 
이제 앞으로 종들은 두 가지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순교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 거짓 선지의 교권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될 것이요, 붉은 짐승의 정권과 협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순교적인 생활을 하는 종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과 싸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짐승과 싸우는 자에게 재앙으로 땅을 치도록 역사해서 심판의 다림줄이 되는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게 할 것이니 주 재림시까지 말씀을 증거할 자는 들림 받을 자격을 가진 변화성도들이 하나같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진리를 가지고 큰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3. 몸이 썩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자이다 (11~12) 

이 본문에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한 것은 부활성도가 아니고 변화성도라는 것을 가르쳤다. 부활성도는 무덤 속에서 썩은 몸이 부활하는 것이요 변화성도는 죽은 사람같이 쓰러지기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3일반 동안 아무런 역사를 못하고 있게 되었다가 그 몸이 변화하면서 승천 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누구든지 그 몸이 썩지 않고 들림 받을 사람이 되려면 주 재림기까지 열심으로 예언의 말씀을 증거할 무장을 갖춘 자라야 남은 종이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본문에 두 선지자라는 것은 두 대표적인 사람을 가르쳤으니 변화성도의 전체가 다 포함된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대표자는 전체를 대표한 사람이니 두 선지자가 구름을 타고 올라간다는 것은 변화성도의 전체를 가르친 것이라고 보게 된다.

  
결    론

가장 복되도다. 뱀과 싸우던 전쟁도 말씀을 놓고 싸웠는데 마지막 예언의 말씀으로 승리하고 올라가는 그 모양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것인가를 우리는 뜻 깊이 생각해야 된다. 사람의 수한에 대해서 판단하지 못하나 시기를 볼 때에 분명히 이때는 변화성도가 전할 복음을 전할 때요 변화성도가 역사할 역사가 일어날 때다. 누구든지 이때에 완전 무장을 갖추고 마지막 붉은 짐승과 전쟁을 하다가 들림 받는다는 것은 천하에 가장 복된 자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시국을 두려워할 것도 없고 원망할 것도 없고 주님이 나타나서 올라 오라 할 때까지 싸운다는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용기있게 나가야만 할 것이다.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headstone924.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