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집에 왕이 되신 예수님
- 눅1:26-33 -
누가복음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의 목적은 왕국을 이루기 위한 목적인데, 피조물된 인격으로는 세계 통일의 왕국을 이룰 자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지와 예정이 계신 동시에 그 예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번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언적으로 이루어지는 야곱의 집에서 왕 노릇 하는 다윗 왕국과 열매가 되는 그리스도의 왕국과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야곱의 집과 촛대교회와의 연결성
야곱의 집과 촛대교회와의 연결성을 말하자면 과거에 야곱의 집이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운 것 같이 기독교 종말에 촛대교회도 성산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씨라도 축복을 등한시하는 에서는 아무리 사람이 볼 때는 강한 것 같으나 예언적인 왕국을 이루지 못하였고 사람이 볼 때 미약한 사람 같으나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야곱은 예언적인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어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강한 세력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산의 축복을 두고 싸우는 자는 극도로 미약한 상태에 있지만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믿고 싸우는 자를 하나님께서 도와주고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은 언약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2) 야곱의 집에 시련과 촛대교회의 시련
언제나 마귀는 축복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시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축복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편이요, 축복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편이 되기 때문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창조했고 마귀는 얼마든지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피조물로 창조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신 것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니 화를 위하여 역사하는 마귀의 역사와 축복을 위하여 역사하는 성도의 역사와 대립을 시켜서 축복을 받기까지 싸우는 집을 야곱의 집이라는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왕국은 야곱이 축복을 위하여 싸우는 열매로 이루어졌고 영원한 이스라엘의 왕국도 촛대교회가 끝까지 싸우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야곱의 집의 왕권과 촛대교회의 왕권
야곱이 끝까지 싸우므로 예언적인 다윗 왕국의 축복을 받게 되었고 촛대교회가 왕권을 받으므로 세세 왕국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천사가 마리아에게 지시하기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한 것은 육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영적 이스라엘을 가르친 것이다.
이제 예수님께서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이 되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성령으로 잉태된 몸이므로 왕 될 자격이 있다 (26-31)
첫째 아담이 마귀의 말을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은 그 피를 받은 사람으로는 그 몸이 썩지 않고 왕이 될 자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그 세력 아래 속했기 때문이다(롬6:17). 그러므로 예수님은 잉태할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사람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잉태가 아니고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써 이루어지는 것을 말할 때에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면서 야곱의 집에 왕이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 몸으로 왕 노릇 하는 것을 인생의 제일 큰 축복이라고 본다(계20:6). 완전한 몸을 가지신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 되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도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서 왕국을 이루는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순종한 자는 부활해서 왕이 되고 예언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짐승과 거짓선지를 이긴 자는 살아서 변화를 받아 왕이 되는 것이다(계20:4).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타락했지만 야곱과 같이 축복을 믿고 싸워 나가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2. 큰 자가 되므로 (32)
인류 역사상 제일 크게 된 자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여 빈한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피곤한 노방 전도를 거쳐, 쓰라린 심령의 고통을 주는 겟세마네를 거쳐, 쓰라리고 뼈가 저린 십자가의 사형을 거쳐, 캄캄한 무덤을 거쳐, 구름을 타고 올라가서 만민의 죄를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어 기도하시며 성신을 부어 주시다가 구름을 타고 강림하여 죽도록 충성한 종들을 부활시키고 쓰러지기까지 싸워 나가던 종들을 변화시켜서 영원한 왕국을 조직하여 이루시는 예수님밖에 더 큰 이가 없으니 우리는 그를 믿고 끝까지 싸워 나가므로만이 복 있는 자가 될 것이다.
3. 왕국이 다함이 없음 (33)
세상에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한 때는 강했지만 바람 앞에 등불 같이 꺼지고 만 것이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야곱의 집에 왕국은 영원히 세세토록 왕 노릇하되 지상의 천년 왕국을 거쳐 천국에 들어가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한다(계22:1-5).
이러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신으로 잉태된 몸이 마귀와 싸우는 생활을 거쳐서 만왕의 왕이 된 것 같이 성신을 받은 종들도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싸움을 거쳐 왕국의 반열을 이루게 된다. 가장 복된 자는 왕국의 반열에 들어가는 자라고 보게 된다(계19:9).
결 론
복 되도다. 다윗 왕국이여, 산 깊은 골짜기에서 양을 치던 목자 다윗이 만왕의 왕조가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나사렛 골짜기 목수의 가정에서 목수 일을 하던 나사렛 예수가 만왕의 왕이 될 줄 누가 알았으며, 갈릴리 바닷가에 그물 한 채를 씻고 있던 시몬이 세계적인 왕국을 건설하는 운동의 선구자가 될 줄을 누가 알며, 어부의 한 사람으로 베드로의 뒤를 따르던 요한이 지상 왕국을 이루는 마지막 역사의 선구자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요, 낙심 말자, 우리의 소망은 여기 있다.
이 왕국 건설 운동은 너무나 크고 영원한 일이 되기 때문에 작은 일에 낙심하는 자나 잠깐인 고난을 참지 못하는 자는 들어갈 수가 없을 것이로되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잠깐 동안인 고난을 참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자에게는 인간이 볼 때에 실패자 같고 망하는 자 같으나 이 왕국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너무나 크고도 귀한 일이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기 위해서는 모략적인 방법으로 까불어 보는 일이 없이는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까불어 보는 때에 인격을 골라내고 수가 찰 때에 일한 대로 갚아 주는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끝까지 참는 자는 그의 반열에 들 것이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 눅17:22-37 -
누가복음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 음) 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서 론
우리는 주 재림이 임박해서 주를 맞이할 자들이 특히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 의인 가정이라도 진노의 날에는 어느 때 보다도 깊이 생각하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진노의 날에 하등 문제가 없다고 방심적인 태만을 갖고 있다면 롯의 처와 같이 멸망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1. 확실한 증거를 보고도 태만하는 자가 되지 말라
롯의 처의 경우는 자기 집에 직접 천사가 찾아와서 때가 급했다는 것을 경고했을 뿐 아니라 악당들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그 가정에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이 롯의 가정을 특히 사랑해서 말씀으로만 경고한 것이 아니고 실천적인 행동에서 그 가정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 성도가 직접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내 마음에 오셔서 역사하는 증거도 받고 하나님의 보호도 받은 체험도 있는 신앙을 가지고 짐짓 말세 예언을 등한히 한다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오히려 체험 받지 못한 자 보다도 먼저 죽는 저주가 올 것이다. 짐짓 하나님의 명령을 만홀히 알았기 때문이다.
2. 강권 역사에 끌려가면서 짐짓 마음이 태만하는 자다
천사는 롯의 처의 손을 쥐고 끌고 가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금일의 강권 역사의 힘을 받아서 나가던 사람도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노력을 한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강권으로 이끌어주는 체험을 받고도 세상을 돌아다보는 자의 경우다. 세밀히 말하자면 확실한 하나님의 체험을 받고 "때가 급하다"는 증거자를 통하여 인도를 받아서 나가던 자라도 멸망할 자가 있다는 것이다. 천사가 끌고 가던 자도 떨어지는 자가 있었거늘 사람에게 인도를 받는 사람 가운데도 (그러한 자가) 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증인을 통하여 강권적인 역사가 임할 때 절대로 세상 일은 돌아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군인이 출전 명령이 내렸는데 뒤로 후퇴하는 자는 쏘아 죽이는 것이 군법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전 삼년반' 기가 닥쳐와서 사명자가 앞을 향해 나갈 명령을 받고도 세상 일을 보고 후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 재림이 온다는 경고는 말세의 권세 받은 종이 나타날 때다. 권세 역사라는 것은 천사가 롯의 처를 끌고 가는 것과 같은 강권 역사다.
3. 천사는 롯의 요청대로 가까운 소알 땅으로 가는 편리를 보아주었다
먼 동리까지는 미쳐 급하여 피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가까운 그곳만 가면 산다는 편리를 주었다. 하나님의 택한 사람에겐 급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든지 살리겠다는 심정에서 안정처를 알려주고 보여주는데도, 롯의 처는 그 말을 등한히 여겼던 것이다. 롯의 아내가 사실을 확실히 믿었던들 뒤를 돌아다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노의 날"을 말할 때 예언의 말씀을 조금만 가해도 감해도 재앙이라는 것은 여기에 연결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급해서 종을 인도하는 것은 (그 종을) 아끼는 심정이다. 사랑 중에 제일 큰 사랑은 하나님이 롯의 집에 보낸 천사의 사랑일 것이다. 낮고 더러운 인간들인 롯의 가정을 살려보겠다고 천사가 와서 이렇게도 애를 쓰는데, 그 사랑을 태만히 하니 다시는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아의 집보다도 롯의 가정은 강권적인 사랑이 임했던 것이다. 노아는 자기 손으로 배를 짓느라고 최선을 다했지만 롯의 가정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무조건 구원해 주겠다는 사랑이 임했었다. 이는 말세 주 재림기에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종들에게도 이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두 남자가 한 자리에 있으면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였다. 또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는데 한 여인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여인은 버려둠을 당하였다 하였으니 롯의 처와 같이 태만한 사람은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롯의 부부가 일생동안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했으나 그 처가 태만할 때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는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33).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명령인 예언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걷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의 생활
- 눅21:25-36 -
누가복음 21: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많이 닥쳐오는 때는 재림이 임박할 때라는 것을 말씀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이 임박할 때에 성도의 생활은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 본문의 성경이다. 여호와의 말씀인 선지서를 보면 전체가 천당가는 사람의 생활에 대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고, 살아서 환란을 이기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사람의 생활을 가르친 것이다.
어찌해서 영혼 구원받는 사람의 생활을 중심하여 가르치지 않고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사람의 생활 문제를 놓고 세밀히 가르쳤느냐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마귀의 세력을 개방시켜 시험을 해 볼 때이므로,
둘째 : 절대로 보호를 받아야 될 때이므로,
셋째 : 가장 사랑하는 자를 아끼시고 그 밖의 사람은 멸망을 시킬 때이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종들에게 미리 세밀하게 말씀하신 것은 그 시대를 지나서는 다시 기회가 없고, 용서 없는 재앙 심판이 오겠기 때문이었다.
1. 징조를 보고 각성할 것 (25-33)
인간 종말의 징조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모든 민족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고,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 기절하게 된다고 25-26에 말씀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을 보거든 너희 구속이 가까웠으니 머리를 들고 각성하라고 하셨다. 그밖에 여러 가지 징조를 다 여기에서 말할 수 없으나 이 시국을 볼 때에 극도로 세상이 혼란해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생각한다면 한시간 동안에 세계 인류가 전멸될 전쟁이 눈앞에 이르게 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생각만 해도 기절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난제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피해 보려고 생각하던 정치인들은 서로 간에 협상을 부르짖고 있다. 약간의 손해가 있다 하여도 싸우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오늘날 가장 지혜로운 정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공산 세력이 세계를 위협하는 이때에 우리가 각성해야 될 것은 어떤 문제를 풀기보다도 재림의 주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일이다.
2. 마음이 둔해질까 조심할 것 (34-35)
우리의 생활은 조금만 조심하지 않아도 마음이 둔해지는 것이다. 너무나 방탕한 사회가 되었으므로 신앙의 절개를 잃어버리기 쉽고, 너무나 미혹이 많으므로 독주를 먹고 취하기가 쉽고, 너무나 경제적 혼란이 심하므로 생활 염려에 마음이 압력을 받고 감각이 없이 되기 쉬운 것이니 우리의 생활은 조금도 불의(不義)와 동참하지 말고 성별된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3.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할 것 (36)
우리가 장차 올 모든 일을 피하고 주님 앞에 서려면 항상 기도로 승리하여야 한다. 기도라는 것은 모든 난제를 해결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종의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적하여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경륜한 것이 아니고 우리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을 기도의 응답으로 해결해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항상 기도하며 그 기도의 응답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고,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 하므로 모든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고 주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고 기절하게 될 때에, 거기서 조금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승리해 나가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오는 시국 난제를 모두 해결하고 나가는 생활이 있는 자라야 완전한 구속의 은총을 받으므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주 재림을 맞이할 자의 생활방침
- 눅17:22-37 -
누가복음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 음) 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사람이라면 합법적인 생활을 하여야 된다. 왜냐 하면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은 말씀대로 판단하려고 오시기 때문이다. 초림의 주는 용서하러 오시는 주님이시니 아무리 죄인의 생활을 하던 자라도 영접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용서하되 회개하는 자는 얼마든지 너그러이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가 되려면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말씀에 굳게 서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 (22-24)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오신 예수를 믿으므로 죄사함을 받아서 말씀대로 오실 예수를 기다리되 조금이라도 말씀에 가감된 일에는 치우치지 않고 말씀에 굳게 서서 나가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큰 이적이 일어나며, 기사가 일어나고, 만민이 놀랄 일이 일어난다 하여도 거기에 따라갈 필요가 없고 말씀에 굳게 서야할 것이다. 왜냐 하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번개같이 오시되 온 세계가 다 영접할 수 있도록 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이미 이루어진 말씀도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며,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도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지방에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것을 중심하여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리스도의 재림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에도 따라갈 필요가 없고 오직 그 날에 설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주 재림이 온다는 것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해야할 일을 충실히 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필요 없는 일에 공연히 따라갈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다만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준비가 있어야 그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인격적인 무장을 갖추는 일에는 전력을 두지 않고, 어떤 신비적인 일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끌려간다는 것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의 생활에 완전히 섰다고 볼 수 없다. 신앙 생활을 어떤 흥분이나 감정이나 신비에 기준할 것이 아니고 자신이 말씀의 법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격과 생활과 사업에 체험적인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주님 다시 오실 때에는 인격, 생활, 사업에 의하여 보응을 받기 때문이다.
2. 예비하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 (25-30)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자는 먼저 그 날이 어떠한 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6절을 보면 주님께서 재림의 날을 두고 말씀하실 때에 “노아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는 예비가 없는 자는 감히 설 수가 없다. 노아 홍수 때에도 방주를 예비한 노아의 가정외에는 다 전멸을 당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 다시 오실 때에도 예비가 된 자 외에는 다 환란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 예비하는 생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 말씀을 그대로 믿는 동시에 순종해야 된다.
둘째 :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여야 된다.
셋째 : 합심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
노아의 가정은 합심이 되므로 구원을 받았고, 소돔, 고모라에서 나오는 롯의 가정은 합심이 되지 않았으므로 큰 실패를 가져오는 일이 되었다.
재림의 주가 오실 때의 구원은 영, 육이 아울러 받는 것이니, 이것은 반드시 예비가 있는 자라야 받게 될 것은 사실이다. 노아는 물이 샐 틈이 없이 방주를 지었으므로 구원을 받았고 우리는 말씀에 조금도 가감 없이 무장이 되어야 흑암을 뚫고 나가서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예비가 있는 생활은 무엇보다도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것이 있어야만 된다.
3. 순교적인 생활이 있어야 된다 (31-35)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자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생각하지 말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원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용기있게 나가는 생활이 있는 자라면 주님을 맞이할 인격이 갖추어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주님 재림의 날은 무서운 시험이 닥쳐오는 날이니 조금이라도 세상의 것을 생각하는 자는 남을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안에 있는 것이나 모든 물건을 가지려 하는 생각을 버리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33절에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고 한 것은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 바치고 강하게 나가는 사람이라면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재림의 날은 순교의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바로 증거하던 종들만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순교자의 인격을 가져야 된다. 이날까지 순교를 당한 종들과 주님 재림할 때까지 순교적인 생활을 한 종들이 주님께서 올라 오라 하실 때에 들림을 받게 된다. 이것은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 재림의 주를 영접하기 때문이다.
결 론
주의 날에 설 자는 중생을 받은 자가 아니요, 중생 받은 사람 중에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생활을 한 자이다. 그러므로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일한 사람은 왕권 반열에 들게 되어 세세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함부로 따라가지도 말고 깨어서 예비를 하되 노아 때와 같이 될 것을 알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고 하셨다.
혼란과 곤고가 올 때에 일어날 일
- 눅21:25-36, 요절:28 -
누가복음 21: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인간 종말을 말씀하실 때에 예루살렘이 이방에게 망할 것을 말씀하셨고 이방 세력이 망할 때가 올 때에 극도로 혼란과 곤고에 떠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서 기절하리라고 하였다. 이제 혼란과 곤고 중에서 일어나야 할 일에 대하여 성경 본문으로 증거한다.
1. 혼란과 곤고 (25)
본문에 민족들이 바다 파도의 우는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고 한 것은 극도로 혼란한 세상을 가르쳤다. 사17:12 이하를 보면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의 뛰노는 소리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물이 밀려옴같이 그들도 충돌 하였도다.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의 밀려옴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보라, 저녁에 두려움을 당하고 아침 전에 그들이 없어졌나니 이는 우리를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 우리를 강탈한 자의 보응이니라고 하였다. 지금 이때는 혼란 중에 곤고한 때라고 본다. 이 세상은 어제가 옛날이라고 하리만큼 나날이 변천을 가져오는 혼란한 시기를 만났다.
2.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 기절할 일 (26-27)
앞으로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한다면 무서워 기절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 하면 3차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이 세상은 한시간 동안이면 완전히 전멸을 당하고 마는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욜2:10 이하를 보면 북방 군대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때에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앞으로 북방으로 오는 환란에서 기절할 만큼 두려운 일이 올 것을 성서는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온다고 하였다.
3. 일어나 머리를 들 일 (28)
일어나서 머리를 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말한 것은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재림의 주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는데 전력을 두라는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려면
첫째: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에 확신을 가져야 하며,
둘째:스스로 조심하여야 하며,
셋째: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지금 이때에 하나님 말씀 하나만을 생각하고 세상의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 염려에 마음이 둔해지지 않아야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절개가 있어야 하며 쑥물을 먹지 않아야 하며 세상 물질에 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나가려면 영적인 사람으로 날마다 심령 소성을 받아서 기도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혼란에 빠지지 말고 공포심을 가지지 말고 용기있게 재림의 주를 맞이할 인격을 갖추고 생활의 준비를 갖추어야만 될 때가 왔다고 본다.
성경을 깨닫는 시기
-눅24:44-49-
서 론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때가 되기 전에 필요 없이 깨닫게 하는 일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제자들이 3년 동안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이적을 보고 교훈을 받고 심지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하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예수님의 본체의 영광을 본 사실까지 있지만 시기가 되기 전에는 절대 그 말씀을 깨닫지를 못했던 것이다.
만일 성경을 아무 때나 누구든지 마음대로 깨달을 수 있는데 국한된 것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기가 되기 전에 성경을 억지로 풀려는 것도 실패의 근본이요 시기가 되었는데도 성경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멸망을 자취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때를 따라 성경을 깨닫게 해 주느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경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다.
1.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을 해 보는 사람에게 (마1:19-23)
아무리 때가 온대도 어떤 학자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목수의 한 사람인 요셉은 어려운 난제를 앞에 놓고 경솔히 말하지 않고 행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기다릴 때 천사가 나타나서 성경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성경을 깨닫게 아니하였더면 마리아는 큰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때가 될 때 하나님은 가장 의로운 사람에게 당신의 비밀을 깨닫게 해 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요셉같이 의로운 사람, 인내력이 있고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반드시 시대적인 비밀을 알게 할 것이다.
2. 구속을 기다리는 자에게 (눅24:21-27)
아무리 낙심될 일이 와도 낙심치 않고 구속을 기다리는 심정에서 염려하는 자에게 나타나신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참된 메시야로 믿었던 그들이 슬픔에 잠겨서 염려하며 길을 갈 때 홀연히 주님 나타나시어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다.
누구든지 낙심될 일, 슬픈 일을 당해도 타락하지 않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비밀을 알게 해 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뜻대로 안된다고 낙심, 원망하면 안될 것이로되 자기가 도저히 깨닫지 못하는 심정에서 안타까워 하는 자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3. 공포 속에서 마음이 변치 않은 자에게 (눅24:36)
우리는 낙심될 일을 당할 때 떠는 것이 약점이다.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걸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주님을 배척하는 마음이 아니요, 비겁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진리를 모르고 떠는 자에게 진리를 알게 해 줄 책임은 주께 있는 것이다. 이때 주님이 그 제자들에게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안될 경우에 처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사명을 맡겼던 것이다. 세계적인 사명은 내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전하는 동시에 회개를 만방에 알리라고 했던 것이다.
4. 성경 읽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행8:29-34)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를 좋아하는 자에게 빌립을 친히 인도해서 성경을 깨닫고 믿도록 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자는 성경을 누구를 통해서든지 깨닫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다.
5. 항상 기도를 힘쓰는 자에게 (행10:30-38)
고넬료는 성경을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신줄 알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를 힘쓸 때 하나님은 강권으로 베드로를 인도해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하여 그 가정을 구원했던 것이다. 그때 베드로까지도 고넬료의 가정을 통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성령이 나리는 것을 볼 때 이방인의 집을 가기를 꺼리던 사도들은 완전히 복음의 진리를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지금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상달하는 기도를 통해서 시대적인 말씀을 분명히 알도록 지시할 것이다. 계11:1을 보면 성전 제단 안에서 경배하는 자를 하나같이 시대적인 비밀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화를 가져오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벧후1:20, 3:15-18). 종이란 주인이 알려주면 주인의 말대로 전해줄 것뿐이다. 만일 어떤 종이 내막을 알려주지 않는데 자기 멋대로 가서 전한다면 이것은 망령된 행동일 것이다.
증인은 시대적인 비밀을 주님이 깨닫게 하는 그대로 증거할 것 뿐이다. 모든 사도와 성도는 십자가의 부활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피를 흘렸고 말세 증인은 작은 책을 꿀 같이 먹고 배에서 써도 만방에 예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룹바벨 선교회 : http://www.zion9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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