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 싶은 사랑과 징계
-계시록 3:18~22- [72.6]
계시록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오직 주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완전한 것을 가지신 주님께서 당신의 종에게 완전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시되 죄를 용납할 수는 없으므로 죄를 없이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고 회개할 때에 죄를 없이 하는 동시에 완전한 것을 주시는 것을 주님의 완전한 사랑과 징계라는 것이다.
이제 주고 싶은 주님의 사랑과 징계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주고 싶은 사랑으로 권함 (18)
소위 하나님의 교회에 사자라 하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캄캄한 사람이 되었어도 주님은 양 떼를 불쌍히 보는 사랑 속에서 그 종에게 부요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시며 흰옷을 주고자 하는 동시에 그 눈도 밝게 해서 올바른 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할 때에 완전한 것을 사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첫째 : 완전치 못한 것을 주님께 맡기고 완전한 것을 받아 가지라는 것이다.
둘째 : 희생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셋째 :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주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준다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준다는 것이다. 오늘의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은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된다고 하였고 집이나 전토나 부모나 형제까지라도 다 버리고 따라 오는 자라야 된다는 것은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둘째 : 희생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셋째 :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 완전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주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무조건 준다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준다는 것이다. 오늘의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완전한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은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된다고 하였고 집이나 전토나 부모나 형제까지라도 다 버리고 따라 오는 자라야 된다는 것은 희생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익이 많이 있다 하여도 주님께서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도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자라야 주의 것을 받을 수 있다.
2. 주고 싶은 사랑으로 징계함 (19)
주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주고자 할 때에 권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요, 권해도 순종치 않을 때에는 징계를 해서라도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언제나 징계라는 것은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한데서 오는 것이니 누구든지 징계를 받을 때에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열심을 내야만 한다. 주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소와 나귀보다도 못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소와 나귀도 주인이 시키는 일은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때릴 때에 열심을 내어서 빨리 하는 일이 소와 나귀에게도 있는데 소위 사람이라 하면서 징계를 받고도 열심을 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징계를 받고 열심을 낼 때에 주님은 오히려 징계를 하시고도 기뻐하시는 것이다.
3. 주고 싶은 사랑에서 문을 두드림 (20)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완전한 것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든다면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열라고 재촉하는 자와 같은 심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것을 사랑하는 종에게 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믿고 마음의 문을 여는 자라면 얼마든지 만족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족이라는 것은 인간의 물질을 초월 한데서 있는 것이니 하늘의 것을 먹고 마시는 생활에 들어가므로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기가 직접 받아 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신앙이라는 것은 직접으로 먹고 마시는 체험이 있음으로써 완전한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4. 주고 싶은 사랑으로 보좌에 함께 앉게 함 (21)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은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느 부모든지 자식을 기를 때에 영광스러운 자리를 얻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이 역사를 내리는 한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시면서 지혜도 총명도 능력도 권세도 주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주고 싶어 하시는 그 사랑을 믿고 항상 문을 열고 영접하는 것 밖에는 아무런 것도 할 자격이 없다.
결 론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아 순종하는 자라면 아무리 부족이 있다 하여도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패한 사람이라도 징계하시면서 완전한 것을 주어 영광의 자리를 주시겠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니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먹고 마시므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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