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비밀의 원리
계시록 6장
본장은 하나님께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받으신 어린 양이 인을 떼시는 데부터 시작된다.
첫째 인을 떼실 때『네 생물 중 하나가 우뢰소리같이 말하되 오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경륜 아래 되어지는 일을 뜻함인데 이에 요한이 백마를 탄 자를 보았다. 이것은 계시록 19:1절 이하를 대조하면 여기서는 백마를 탄 군대가 만왕의 왕을 따르는데 붉은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과 싸워서 이김으로써 전쟁의 끝을 맺고 천년 왕국이 올 것으로 말세비밀의 끝을 맺었다. 그러므로 첫째 인에서 나타난 백마를 탄 자는 그리스도의 정병이 분명하다.
이 백마를 탄 자가 활을 가졌다는 것은 예레미야 50:28-29절을 보면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여 사면으로 피하는 자가 없도록 원수를 갚으라고 하였다. 이같이 백마를 탄 성도들이 바벨론을 때려 없이 함으로만이 평화 왕국이 올 것이니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다시 이기려 하는 것이 보임은 성도들이 죽도록 충성하여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함을 뜻함이다.
사도행전 1:8절에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시었다. 바로 이 말씀대로 땅 끝까지 전파되는 기간이 이십세기 반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복음 운동은 심판의 복음은 아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복음이다. 메시야를 세계 만민이 다 영접하고 난 후라야 심판주를 영접할 때 전하는 복음 운동은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첫째로 "이기고" 라고 한 것은 메시야를 영접하는 역사라면, 두 번째 "또 이기려고 하더라" 는 것은 종말에 심판기의 역사가 될 것이다.
기독교 종말의 역사라는 것은 이와 같이 다시 예언하는 역사이니 계시록 10:7-10절의 일곱째 천사가 나팔 불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계시록 11:15절의 일곱째 천사가 나팔 불 때에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심판기를 말함이다.
계시록 14:6-12절을 보면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1260일간 증거할 때는 바벨론이 망할 때인데, 이때 누구든지 붉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는 다 멸망할 것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 종말의 심판 때는 붉은 짐승의 표를 받도록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와 말세 비밀을 증거하는 증인과의 싸움이 있는 것이다. 미혹을 받으면 멸망이고, 미혹을 받지 않고 지키면 영ㆍ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계시록 22:7절엔 주님 다시 올 때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백마를 탄 자가 두 번째 이기려고 한다는 것은 심판기의 역사를 가르친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러면 누구와 싸워 이기는 것인가 하면 바로 붉은 세력이다. 붉은 짐승의 표를 받으면 멸망이라는 것이 시온산 심판의 대지가 된다(계시록 14:9-10).
둘째 인을 떼실 때 붉은 말이 허락을 받고 나온 것은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이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도 심판기에 들어 쓰시는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기 위한 막대기와 타작키같이 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13:8절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다 붉은 용과 짐승 앞에 경배하게 되고 만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여기, 붉은 세력이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한다는 것은 세계 민족의 사상을 지배하기까지 혁명적 투쟁이 있을 것을 보임이다.
다니엘 2:43절을 보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아니함과 같다고 하셨고, 이사야 19:2-4절을 보아도 여호와께서 성읍과 나라를 격동시켜서 서로 치게 하고 죽이게 한다고 함같이 금일에 붉은 세력으로 유수 불합의 난관이 오게 되고 세계는 큰 환난을 가져오게 된 현실과 이 땅 ⅓이 다 붉은 정권의 점령하에 있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세계는 황폐될 위기를 가져오게 됨은 심판기가 된 증거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가 다 붉은 세력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하면, 아직 붉은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다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스가랴 1:8-11절과 같이 붉은 말과 흰말이 다같이 온 땅을 다니면서 활동하고 있는 때다.
셋째 인으로 검은 말이 나온다. 이것은 스가랴 6:6절과 같이 검은 말이 북편으로 나가 북편과 대항을 하게 된다. 이것은 즉 남방에서 북을 대항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4대 병마의 빛깔을 각각 서로 대항하는 주의와 사상으로 본다면 흰빛은 평화, 붉은 빛은 악화, 검은 빛은 흑심, 어룽진 빛은 이중적인 궤휼로 봄이 옳다고 본다.
누런 금은 선비의 마음을 검게 한다는 말같이 검은 말 탄 자가 저울을 든 것은경제권으로 본다. 왜냐하면 현재 적마를 막는데 자본주의의 경제권으로 원조하는 일이 없다면 세계는 다 붉은 정권에게 먹힘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것은 일반이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금일 한국 문제를 두고 본다 해도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6:6절도 백마가 그 뒤를 따른다고 하였고, 북으로 나가는 자들이 천사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백마가 하나님의 편이라는 것을 뜻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받고 있는 경제적 원조라는 것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나, 이것만으로 완전 승리가 이룩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로 완전 승리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어둡고 검은 빛의 마음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라는 것은 경제 혼란을 뜻하신 것인데 앞으로 이것이 문제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정치 아래 큰 문제는 이것이니, 이 일이 어떻게 하면 해결될까 하는 것을 머리 속에 생각지 않을 자는 없을 것이다. 마태복음 20:2절을 보면 한 데나리온은 분명히 노동자의 하루 인건비다. 그렇다면, 하루 인건비로 식생활이 곤란하게 될 것이 이 계시에 보여진 것이 분명하다. 과학적 기계문명을 자랑할 수가 없진 않지만 이것으로 경제가 극고극저의 차이를 면치 못할 것이다. 경제 극고의 수가 십의 일이 되고 극저의 수가 구할 이라면 이 문제가 사회적인 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경제적 혼란이 올 것을 보여주시면서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말씀하신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뜻을 보인 것이다. 감람나무와 포도나무는 기독교 본질을 가리킨 것이어서, 본질이 변치 않고 열매가 있는 성도에겐 절대적인 보호와 축복이 있을 것을 보여주심이니 우리는 이 때를 당하여 참감람유(마태복음 25:4)와 참 포도주(이사야 55:1)같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자는 절대적인 보호가 있을 것이다(이사야 65:8).
넷째 인을 떼실 때 청황색말이 나온다. 이것은 극도로 어려운 문제를 당할 때, 마귀는 궤휼적인 미혹의 역사를 하게 될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 이름은 사망이요, 음부가 그 뒤를 따른다. 푸른빛과 누런빛이 합하여 져서 이중 빛이 된다. 식물을 두고 말하자면 푸른빛은 산 빛이라면 누런빛은 죽은 빛이다. 이것은 산 생명의 기독교가 사망과 언약하는 궤휼 친합이다(다니엘 11:34).
우리는 붉은 말 탄 자의 칼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룽진 말의 사망의 권세가 더 무서운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마귀는 근본이 궤휼이다. 에덴동산의 하와도 마귀의 이 좋게 된다는 말로 죽게 되었다. 오늘 날 소위 협상이니, 통합이니, 평화공존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나오는 것은 이중적인 청황색 말의 하나이니 알쏭달쏭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아담과 하와가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꾸며내는 말을 듣고 미혹되었던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예언말씀을 부인하는 붉은 용의 앞잡이 거짓 선지의 궤휼적인 청황색말을 없이 하여야 한다. 스가랴 6:6절을 보면 어룽진 말을 북방 세력으로 보여주었다.
이 세력은 땅 4분의 1의 권세인 4대 거두의 한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결국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다니엘 7:17-22절을 보면 이 네 나라 마지막 때 성도의 나라가 오는데, 넷째 나라가 성도의 권세를 파하나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므로 성도의 나라가 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검과 흉년과 사망과 짐승으로써 죽인다고 하였다. 이것은 순서적인 것으로 첫째의 검은 학살 운동이었고 다음은 자유를 박탈하였으며, 셋째는 죄악된 사상을 높이는 동시에 마지막엔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것으로써 죽인다. 계시록 13:11절 이하의 다른 짐승이 용처럼 말하고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한다고 하였으니, 이 짐승이 표를 받게 하는 미혹을 주는 것이다.
이 계시록 6장은 목록적인 계시이므로 시기를 구분하는데 불과하다. 다시 말하자면 이 4대 병마가 나오므로, 때는 잠시 후에 큰 진노의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마를 탄 자가 두 번째 이기려고 할 때, 붉은 말이 나오므로 서로 죽이게 하는 혁명적인 투쟁이 세계를 침투하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경제권이 그 세력을 막게 되는 동시에 불행스러운 경제 혼란이 오게 됨에 따라 궤휼적 사망의 권세인 멸망의 아들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심판을 독촉함은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억울한 사정을 뜻함이니 자기네가 피 흘려 세운 교회가 황폐되는 동시에 남은 교회조차 속화되는 것을 보는 영들은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자기는 말씀을 위하여 순교하였지만 그 말씀이 무시를 당하고 양떼는 쓰러지는 형편에 있기 때문이다. 이때 주님께서 저희들에게 흰 두루마리를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왕권인 신부 자격을 인정하여 주시는 것이다.
지금 교계가 만일 세속화 신학 사상으로 흐른다면 그야말로 순교자의 피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지는 일이요, 영적인 문제도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님께서 그 피를 인정하시니 현실주의는 어떻게 주 앞에 설 것인가?
그러므로, 주님께서 순교자들에게 아직 잠시동안 쉬되 순교자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주님 당신처럼 죽임을 받아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셨다. 이것은 말세 사명자의 수가 찬다는 뜻인데, 여기 죽임이라는 것은 육체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각각 자기 자체의 모든 죄악성을 완전히 죽이는 자라야 144000명의 반열에 들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가 싸울 용사들을 가르친 것이다. 즉 계 14:4-5의 사람이 되려면 산 순교 생활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히 "그 날과 그 시(時)"를 안다 하는 것은 탈선될 길이지만 금일의 4대 병마와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이 때를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때가 되면 심판기는 잠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가 나갈 길은 - 자기 사명을 위하여서는 순교적 희생을 각오하고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때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큰 지진이 나니, 이것은 인간들이 살수가 없는 큰 변사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수가 차기를 기다리시고 참으셨으나, 이제부터는 빛도 없이하신다. 아무런 감화가 나리지 않고 악화뿐일 것을 해가 어둡고 달이 피빛 같이 되는 것으로 보이셨다.
아무런 일도 옳게 할 수가 없고, 종들이 일할 기회가 지난 것을 "별들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셨으며, 은혜시대는 끝이 나고 진노의 재앙이 오는 것을"하늘이 종이 축같이 말려 가는 것"으로 보이셨다. 또한 정권ㆍ물권ㆍ교권의 교만한 세력이 다 무너지고 세상의 모든 계급들도 전부 타파되고 마는 것을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떠나는 것"으로 보여졌다. 왜냐하면 여기 "모든 사람들이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우리를 가리워 달라"고 한 것을 보아서 먼저 보여진 것들은 상징적이 분명하다. "이 큰 진노의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 한 것은 인간들의 힘으론 피할 자가 도저히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록 6장을 보여주신 것은 이러한 날이 어느 때쯤 올 것을 세상이 되어 가는 징조를 보고 정신을 차려 깨어 준비하라고 분명히 알도록 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때가 어떠한 때란 것을 본장을 보아서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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