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30일 월요일

허락이 있어야 아는 비밀 (마 13:10∼17)


허락이 있어야 아는 비밀 
(마 13:10∼17)

마태복음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비밀이라는 것은 일을 새로이 계획하고 행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악한 자는 악한 계획을 할 때에 숨은 비밀이 있고, 선한 자는 선한 일을 새로이 하려고 할 때에 비밀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할 시대가 올 때는 그 시대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을 먼저 합당한 자에게 알도록 허락한 다음에 그 허락을 받은 사람이 선구자가 되게 하여 그 시대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입고 사는 것은 세계 인류에게 다 같이 허락한 것이지만 당신의 비밀을 아는 것만은 누구든지 다 알게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택한 자에게 알도록 허락이 있으므로 알게 되는 것이다. 택한 자에게 비밀을 알도록 허락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진실함이 있는 자에게 알게 하심 (10∼11)

택한 자라는 것은 진실한 자이다. 아무리 인격과 지식이 훌륭하다 하여도 택함을 받지 못한 자는 진실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고 있었지만 참으로 진실한 사람이 아니고 교권, 명예, 안락을 도모하는 종교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 시대의 숨은 종교인의 하나가 되는 어부들을 택하여 그 비밀을 알게 했던 것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새로운 일을 계획한 자가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나사렛 목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구주요, 그로 말미암아 온 세계 인류가 구원을 받고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진다는 비밀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비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알려주는 자가 아니고는 예수를 믿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마 24:25∼27). 인간이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라고 보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비밀을 인간의 두뇌로서 허락이 없이 안다면 하나님과 인간과는 동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물주 하나님의 비밀을 두뇌로 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어야만 알게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 운동이라는 것이다.


2. 완악한 자가 깨닫지 못하도록 하심 (13∼15)

하나님께서는 완악한 자들에게는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신을 부어 주신다(사 29:10∼12사 66:4). 하나님께서 법을 세울 적에 순종치 않는 자는 마귀가 지배하도록 법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마귀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장 거룩한 신이시니 거룩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만 당신의 비밀을 알도록 하기 때문이다.


3. 정한 때가 될 때에 비밀을 알려 줌 (16∼17)

모든 선지는 메시야를 영접하기를 원하는 마음 간절하였으나 그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받아 기록하고도 때가 아니므로 다 세상을 떠나가고, 주님 탄생시에는 아무런 선지의 역할이 400년 동안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잠잠하고 희미한 상태에 내려간 것이 400년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도로 예루살렘 성전은 부패하였고 참으로 진실한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는 예루살렘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갈릴리에 있는 어부들에게는 비밀을 알게 해 주시고 예루살렘에 왕래하는 대제사장, 유사, 장로 등의 무리들은 이 비밀을 아는 것은 허락지 않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 말하여도 짐짓 더 악해진 것이 비밀을 모르는 유대교인들의 행한 일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할 때에 당신의 비밀을 알려 주되 미약한 자, 어리석은 자에게 알려주고 교만한 자, 부한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으므로 권리를 가진 종교인과 정치인이 그들을 반대하고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선지에게 비밀이 묵시로 나타날 때에도 모든 부패한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그 종을 반대하게 되었고 그 선지 예언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때에도 메시야 탄생을 모르고 반대하는 무리들과 비밀을 안 사람들과 큰 싸움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비밀을 아는 종과 모르는 자와의 큰 싸움이 있어서 교회는 반드시 갈라지게 될 것이다.


결    론

가장 복 있는 자는 그 시대의 비밀을 알도록 허락을 받은 사람이라고 본다. 알게 허락한 것은 그 복을 주기로 작정한 증거라고 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비밀이 깨달아 지는 자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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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참되다고 인치는 믿음 (요 3:31∼36)


참되다고 인치는 믿음 
(요 3:31∼36)

요한 3: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 쳤느니라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이 무엇을 찾는데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편에서 완전 계약의 말씀을 인간에게 주는 동시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를 하실 때에 받는 자로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참되다고 인을 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확신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완전한 진리의 종교라고 할 수 없다. 진리라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이 진리인 동시에 그 진리는 다음과 같이 증거가 있다.


1. 위로부터 오는 증거 (31)

기독교는 전부가 땅에 속한 것을 목적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위로부터 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만물에 속한 것을 말했다면 이것은 과학적인 지식에 불과할 것이로되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보내는 증거가 즉 그리스도의 탄생인데, 그리스도의 잉태는 땅에서 올라 온 만물에 속한 혈통이 아니고, 위에서부터 온 것이니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물과 피가 임하여 이루어진 몸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몸도 땅 위에 속한 혈통을 받은 몸이라면 그 몸은 참되신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위에서부터 온 몸이요, 또는 신이시다.


2.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함 (32∼33)

주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알게 해 주는 동시에 그대로 행하시는 주님이시라 주님께서 모든 증거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 증거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오신 메시야가 아니고 거짓선지가 될 것이로되 주님의 증거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분명히 알게 해 주셨으므로 그 증거는 참되다고 인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므로 (34)

아무리 예수님께서 성경을 증거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준 역사가 없다면 참된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예수님 머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는 것을 볼 때에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다고 증거했다(요 1:31∼34). 언제나 참된 증거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따르는 것이다. 지금도 기독교가 아무리 진리를 증거한다 하여도 성신을 부어 주는 역사가 없다면 참되다고 인을 칠 수가 없다.

요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4. 영생이 있는 증거 (35∼36)

영생이라는 것은 현저히 그 생명이 믿는 자에게 온다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이 오므로써 나날이 발전하는 영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에 진액이 오므로써 그 가지에 순이 나서 자라듯이 영생의 생명이 흘러오므로 날마다 그 영이 자라나 큰 역사를 하게 되는 열매가 있게 된다. 영생이 오는 것은 행함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으므로 그 영생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이 행하시겠다는 말씀을 먼저 선지를 통하여 세상에 나타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증거가 그리스도의 성신 잉태로부터 십자가 부활, 승천, 성신강림으로 현저히 나타났다. 그러므로 택한 자는 이 증거를 받게 되는 동시에 참되다고 인을 치는 신앙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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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완전 역사 (눅 3:15∼17)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 
(눅 3:15∼17)

누가복음 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무리들의 크게 가졌던 기대가 어긋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면 가장 영광스럽게 나타나고 자기들 나라가 영광스러운 나라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 무리들을 책망하고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 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영광스럽게 와서 영광스러운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는 어떠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증거 했다.


1.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증거함 (15∼16)

그리스도의 왕국은 육적 이스라엘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으므로만 그리스도의 왕국에 가입할 인격이 있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네가 메시야를 영접할 자격이 있는 민족이라고 생각하므로 책망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신앙 사상을 버리고 이기적인 교권 야욕을 가지고 세례 요한을 책잡고자 할 때에 독사의 자식이라고 책망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리스도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하면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이를 증거했던 것이다.  

죄를 지은 인간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수 있는 그리스도는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이르기에는 너무나 인간이 갈 수 없는 험한 길이었다. 유대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애굽의 피난을 거쳐 나사렛 동네에서 빈한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정한 때가 왔으므로 세례 요한이 그를 증거하기 위하여 나타났던 것이다. 세례 요한이 나사렛 목수인 예수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고 할 때에 교만한 바리새 교인과 유대인들은 믿지 않고 오히려 세례 요한을 반대하고 미친 사람으로 알았던 것이다.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오늘날 그리스도가 베푼 성령과 불 세례를 우리가 받게 될 때에 세례 요한의 증거는 참된 증거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미리 선지를 통하여 욜2:28에 만민에게 성신을 부어줄 것을 말씀했지만 다시 예언자인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증거했던 것이다. 이 증거를 믿고 따라가는 제자들은 요한의 증거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어주는 역사를 받았다. 세계 만방이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는 동시에 역사가 나리는 일이 사도를 통하여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세례 요한의 증거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역사를 체험치 못한 자들이라면 세례 요한의 사명과 계통적인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우리 종된 자의 자격은 말씀만 받는 것이 아니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증거를 받아야 한다. 만일 현재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역사는 완전 역사라고 볼 수 없다.


2.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신다고 증거함 (17상반절)

하나님께서 지금까지는 씨를 뿌려 싹이 나게 하고 가꾸는 것과 같은 역사를 하시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아직은 완전한 교회를 이룬 것이 아니고 완전한 교회를 이룰 수 있는 과정으로 장성하는 발전 단계에 있다. 그러면 완전한 교회라는 것은 어떤 교회냐 하면 조금도 부정이 없는 청결한 교회로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어야 된다. 기독교의 역사는 교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이 되는 것이다.  알곡만 모을 수 있는 청결한 교회가 나타나고 쭉정이만 모이는 바벨적인 교회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타작 마당을 정케한다는 것은 거룩하고도 깨끗한 동산인 촛대교회를 뜻한 것이다. 촛대교회라는 것은 손에 키를 들고 쭉정이와 가라지를 날려 버리듯이 주님께서 강한 역사를 행하시어 쭉정이와 가라지를 몰려 나가도록 해서 알곡만 남은 교회를 말한다. 이 강한 역사라는 것은 사단의 세력이 완전 소멸되고 완전 청결의 역사를 뜻한 것이다.  

기독교가 추수기를 만난 이때에 타작 마당에 남아 있게 되는 완전한 역사를 받아서 그날에 설 수 있는 무장이 되려면 정케된 교회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는 것이니, 지금이 타작 마당을 정케하는 키로 들고 까부는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키를 든 주님 앞에 남은 종이요 남은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 말씀 하나를 완전히 믿고 단결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주님의 역사는 지금 택한 자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하여 키로 까불어 보는 것은 완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사30:28를 보면 멸하는 키로 열방을 까분다고 하였다. 이때는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을 하며 주께서는 막대기로 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라고 하였다(31∼32). 지금 멸망의 미운 물건을 들어서 교회를 까불어 볼 때가 왔다고 본다.


3.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임 (17하반절)

하나님께서 멸망의 미운 물건을 들어 쓰는 것은 알곡을 모으는 촛대교회를 세울 모략적인 방법이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때는 모략적인 역사가 없었지만 알곡을 모아들이는 역사에는 하나님의 선한 모략이 같이하는 것이다. 멸망의 자식을 들어서 쓰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요 북방 세력을 들어 쓰고 북방을 없이하는 것도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알곡을 모아들이는 역사로써 지상 왕국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암9:9).


결    론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완전 역사를 세 가지 법을 들어서 증거한 것은 모든 선지 예언의 전체를 대지적으로 증거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말세의 변화성도는 세례 요한의 사명을 다시 계대 하는 자들이다. 세례 요한이 선지서를 들어 다시 예언의 말을 한 것과 같이 우리는 선지서 전체의 말씀을 예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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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7일 금요일

교훈을 바로 아는 자가 되자 (요 7:14∼18)


교훈을 바로 아는 자가 되자 
(요 7:14∼18)

요한복음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사람의 완전한 인격이라는 것은 교훈을 받을 때에 그 교훈이 어떠한 교훈인지를 바로 아는 자가 된다면 이 사람은 완전한 것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교훈을 할 때에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바리새교인과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그 교훈을 듣고도 바로 알지를 못하고 그리스도를 이단시하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교훈을 바로 알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 하나님께로 온 교훈이 무엇인지 알라고 말씀하심 (14∼16)

인간들은 사람이 배운 지식이 많은 자라야 그 교훈을 바로 아는 줄 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글을 배워 본 일이 없는데 무식한 사람으로 어떻게 교훈을 하느냐고 하면서 의심하는 무리들에게 내 교훈은 하나님께로 온 교훈이라고 말씀했다. 만일 인생이 머리 속으로 아는 지식으로서만 교훈한다는 것은 오히려 흑암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소위 박사라고 하는 자들이 교회를 망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 온 교훈을 자기 지식으로 해석을 하고 가르친다는 것이 교회의 쑥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완전한 교훈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신작용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 오는 교훈이 완전한 것인 줄 아는 자라면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알아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인간 지식을 배워서 거기에 국한된 교훈을 한다면 세계 인류를 구원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도 배운 일이 없는데 인간이 할 수 없는 교훈을 하시는 그리스도이시므로 참으로 우리가 믿을 만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자라야 바로 알게 됨 (17)

세상 교훈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알게 될 것이요, 하나님께로 온 교훈은 하나님께 속한 자라야 바로 알게 될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 하므로 교훈을 바로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아무리 대제사장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없이 자기의 안락을 위한 삯꾼이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반대하고 멸망을 자취(自取)하는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불타는 자라야 시대적인 교훈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목회자라 하여도 그 삯을 따르는 삯꾼이 된다면 교훈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자신이 망할 뿐 아니라 양 떼를 죽이는 비참한 일이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라야 참된 교훈을 하게 됨 (18)

죄 중에 저주받을 큰 죄는 자기의 영광만 구하는 일이요, 의중에 축복 받을 의는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는 일이다. 이날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명예를 날리는 일을 교훈으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으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 지도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모두가 자기의 욕망을 위하여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었지만 말구유에 탄생하시어 빈곤한 목수의 생활을 거쳐 노방전도, 병자 방문, 죄인들을 환영하며 겟세마네 동산의 피땀의 기도를 드리고 십자가를 지고 만민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것 전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순종의 걸음을 걸어 간 것 뿐이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전부가 땅의 것을 중심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가지 비유로, 여러 가지 이적, 기사로 또는 여러 가지 변론을 하실 때에 조금도 타협이 없는 십자가의 길에서 죽기까지 충성된 증인으로 증거한 말씀은 부활, 승천, 성신 강림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그의 증거대로 세계 인류가 다 구원을 받게 된 현실에 이르러 우리는 여러 가지 혼선이 많은 교계에서 종말의 교훈을 바로 알아야만 될 때가 왔다.


결    론

교훈은 완전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금수와 같은 사람을 만들 수 있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바로 알 때에 하나님같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교훈을 바로 알지를 못할 때에 금수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훈을 바로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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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엡 3:14∼21)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엡 3:14∼21)

에베소서 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인생이라는 것은 사랑이 없이 살 수 없는 것이니 그 사랑을 바로 가질 적에 바로 살 수 있고 사랑을 바로 가지지 못할 때에 탈선된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완전한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 있어야만 그 사랑을 통하여 완전 인격, 완전 생활, 완전 열매를 이루어 완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지식이 넘치는 사랑의 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1. 사랑 가운데 뿌리를 박게 되는 역사이다 (16∼17)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깊이 뿌리를 박게 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거짓된 사랑이라는 것은 잠깐 동안에는 도움을 주는 것 같으나 머지 않아 도움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는 날이 갈수록 뿌리를 깊이 박게 된다. 왜냐하면 점점 그 사랑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보이지 않는 깊은 땅 속에서 질소, 인산, 칼리(칼륨)를 흡수하기 위하여 뿌리를 박는 일을 소리 없이 하므로 진액을 풍성히 받게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큰 나무가 되는 예와 같다. 기독교 신앙 생활의 열매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은 체험을 가지게 될 때에 아무런 난관이 와도 그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점점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규칙이나 도덕적 행위를 초월하여 하나님만 아는 비밀 속에서 소곤거리는 기도와 묵상하는 속에서 진리가 깊이 깨달아지는 체험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성신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2. 지식에 넘치는 사랑을 하나같이 깨닫는 역사 (18)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약속이니 부분적인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같이 뭉쳐질 수가 도저히 없고 그 사랑의 약속인 진리의 말씀을 알게 될 때에 비로소 완전한 단체를 이루게 된다. 지식 중에 가장 큰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을 아는 자리에서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리 없이 역사하지 않고 법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하신 진리의 법칙에 의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인 말씀이 얼마나 큰 비밀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써만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고 완전한 단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충만케 되는 역사 (19)

충만이라는 것은 완전을 뜻한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에는 충만이라는 것이 항상 같이 하는 것이다. 만일 어떠한 종이 충만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범위를 모르는 자리에 있다고 본다. 제일 넓고, 길고, 높고, 깊은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아무리 과학자가 연구하여도 이 사랑의 범위를 알 수가 없고, 이것을 아는 것은 직접 하나님과 교통을 받는데서 알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달걀 속에 있는 병아리가 뚫고 나오기 전에는 밝은 세계를 모르는 것과 같이 사람의 심령 상태가 죄악이라는 자체를 벗어날 때에 얼마든지 광명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눈이 있어도 그 눈을 가리는 장애물이 있다면 그 눈동자는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사람의 심령이라는 것은 죄로 가리워 놓으면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심령이 되고 만다. 인간 자체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통하여 충만한 것이 올 때에 우리 인간은 거기에서 열매를 맺는 인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부를 당신의 사랑 속에서 인간에게 주자는 것이 자연을 창조한 목적이니 그 사랑을 바로 아는 자에게 충만이라는 것이 오는 것이다.


4. 능력이 교회 안에서 역사함 (20∼21)

하나님의 사랑은 이론이 아니요 능력이 같이 하는 것이다. 이 능력이라는 것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사명이요, 하나님은 그 교회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이 영광이 된다. 능력이라는 것은 사랑을 통하여서 인간에게 오게 되고 사람은 그 사랑 속에서 능력을 힘입어 완전에 도달하게 된다.


결    론

사랑은 완전 지식이 있어야 하고 사랑은 완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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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5일 수요일

심판날에 정죄 받을 행위 (유 14~16)


심판날에 정죄 받을 행위
(유 14~16)

유다서 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쎄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는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팍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7대손 에녹의 예언한 일을 본문에 기록하게 한 것은 변화 승천할 종들이 일어날 때에 정죄 받을 자들의 형편을 말했다. 심판 날에는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 하여도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정죄 받을 것을 말했다. 강퍅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말했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행동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원망하는 자

원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고,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망의 말이 있으므로 하나님은 진노하여 그 무리를 진멸시킨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생활에서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원망 없이 나가야 한다. 

예를 든다면 한 가정에 부부가 목적을 두고 생활해 나갈 때에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일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와도 그 남편을 받들어 섬기므로만 그 가정은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 우리는 남편이 되시는 예수를 맞이하려면 아무리 난관이 와도 원망 없이 싸워 나가야 한다. 만일 원망하는 말을 하는 자가 있다면 정죄 받게 될 것이다(약5:9).

주께서 심판하시는 날은 끝까지 원망하지 않고, 나가는 자만이 남은 자가 될 것이니 우리는 끝까지 원망치 않고 나가는 자가 되어야 재림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2. 불만을 토하는 자

불만이라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일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인데 갚아 주시려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자가 주님께 대하여 불만을 가진다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주의 종이라 하면서 주님의 일에 불만을 가지는 자는 자동적으로 정죄를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군대가 전쟁에 나가서 자기 나라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애국 정신이 아니요, 나라를 대적하는 정신이니 반드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순종하신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가 주님의 일에 불만을 가질 수 없다. 불만을 가지는 자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행동이니 마땅히 정죄 받아야 될 것이다.
 

3. 정욕대로 행하는 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린 것은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 것인데 정욕대로 행하는 자는 십자가를 대적하는 자이니 정죄를 받게 된다. 예를 든다면 어떤 종이 주인의 집에서 일하면서 자기 정욕에 따라서 일을 한다면 주인의 집에 도둑이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산 백성 중에서 주의 것으로 쓰여져야 할 종인데 자기 정욕대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을 망치는 행동이니 이러한 자는 용서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4.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는 자

우리 입술이라는 것은 주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것 외에 자기의 것을 자랑한다면 십자가의 대적이 된다. 어떤 사람이 먼 곳에 급한 소식을 전하러 보냄을 받은 자가 그 소식을 전하는 것보다도 자기를 내세우는 말을 하고 있다면 이러한 사람은 용서 없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제일 급한 소식은 죽어 가는 죄인들에게 십자가를 말해 주는 일인데 어떤 종이 강단에서 자기의 지식이나 인격을 자랑하게 된다면 십자가의 강단을 더럽히는 행동이니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저주가 온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바울은 절대로 자기 지혜나 지식을 말하지 않은 것은 십자가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다. 
 

5.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

어떤 종이 충성된 말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아첨하는 행동을 한다면 이러한 자들은 정죄를 받게 된다. 종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충성 되이 말하는 것이 충성된 증인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워야 할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아첨한다면 이 사람은 삯꾼의 행동이니 이러한 무리는 재림의 날에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충성된 증인으로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 있다 하여도 끝까지 주의 일을 지키는 자 외에는 주의 날에 설 자가 없는 것이다. 가장 옳은 일은 주님 올 때까지 충성 되이 증거하는 자요, 가장 불의한 자는 주님 올 때까지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는 자이다. 

결  론

가장 두려운 일은 종 된 자로서 정죄를 받는 일이요, 가장 영광스러운 일은 종 된 자로 칭찬을 받는 일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여 심판 날에 그 거룩한 반열에 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노력하여야 한다.

첫째로 : 중심 성결을 위하여,
둘째는 : 양떼를 살리기 위하여,
셋째로 : 사상을 지키기 위하여,
넷째는 : 진리를 변론하기 위하여 조금도 타협치 말고, 용기있게 싸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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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4일 화요일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롬 7:15∼23, 8:12∼17)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 
(롬 7:15∼23, 8:12∼17)

로마서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인생이라는 것은 모양은 하나이지만 두 가지 사람이 있다. 육의 사람이 있고 영의 사람이 있는 것이다. 신앙자로서 육에 속한 인격을 가질 때와 영에 속한 인격을 가질 때의 차이점은 사도 바울의 간증적인 글을 보아서 알 수 있다.


1. 육의 사람 (7:15∼23)

첫째 : 죄에 끌리는 사람이다 (15∼17)
사람이라는 것은 죄에 끌리면 육에 속한 사람이요 영에 끌리면 영에 속한 사람이다. 아무리 신자라도 중심에는 죄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만 죄에 끌리면 아직까지 그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죄가 그 몸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몸에 죄의 역사가 있는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육에 끌려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 중심에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18∼20)
마음에는 원해도 그 원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심령이 자라지 못하고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없는 연약한 심령이 된 증거이다. 그 영이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는 육에 있는 죄를 이길 수가 없는 것이 육에 속한 사람이다.

셋째 : 두 가지 법을 섬기게 되는 자이다 (21∼23)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도 하고 예배를 보지만 세상에 나가면 세상에 끌려서 살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가는 일도 있을 때가 있다. 육의 사람이라는 것은 도저히 진리대로 실천할 수가 없는 인격이다(8:7).


2. 영의 사람 (8:12∼17)

첫째 : 영으로 육의 행실을 죽인 자이다 (12∼13)
신앙 생활은 성신의 역사로 몸의 행실이 죽어지는 일이 있기 전에는 도저히 발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몸에 병이 있는 아이가 그 몸이 자랄 수 없는 것같이 심령에 죄가 남아 있는 자는 그 영이 자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이 다 죽게 될 때에 그 영은 자유롭게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되므로 나날이 영적 발전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 영이 그 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 성령의 인도가 같이 하는 자이다 (14∼15)
성신의 인도라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에게 있을 수 없고 육의 행실이 완전히 죽게 될 때에 성령의 인도 하에서 움직이는 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은 역사할 때에 먼저 그 몸의 마귀세력을 없이 하고자 하는 것이 성신의 원하는 것이니 모든 육체의 행실을 죽이고자 노력할 때에 성신은 강하게 역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은 마귀와 절대 타협할 수가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하고 숨기는 생활을 할 때에는 성신은 그 사람을 인도하고 다스리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신의 인도라는 것은 거룩한 생활로 인도하는 것이다.

셋째 :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고 고난을 이기고 나가는 사람이다 (16∼17)
육에 속한 사람은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극복할 자격이 없고 영의 사람이 죄악의 세력을 이기고 나가는 것이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될 때에 육의 안락을 요구치 않고 영원한 영광을 목적으로 하고 기뻐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요,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다.


결    론

첫째 아담이 범죄하므로 육에 속한 사람이 되었고, 둘째 아담 그리스도가 승리하므로 성신의 역사가 타락한 인간에게 은혜로 올 때에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움직이는 생활을 말한다. 영에 속한 사람이 되므로 승리의 열매가 있게 되고 승리의 열매가 있으므로 왕권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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