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31일 일요일

말씀의 칼 : 주의 인도를 따르는 복된 가정 - 마태2:13~23

주의 인도를 따르는 복된 가정

- 마 2:13~23 -
2: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서  론
 
역사적인 인류생활의 호화롭고 복된 생활을 한 가정이 많지마는 가장 빈한하고 쓸쓸한 목수 요셉의 가정은 인류역사에 제일 복된 가정이라는 것을 그 시대에 아는 자는 심히 적었던 것이다. 육안으로 볼 때 멸시, 천대, 빈곤, 피난의 길을 걸어가는 가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인도를 따르는 그 가정은 어디를 가나 평화, 승리를 이루는 가정이 되었든 것이다.
 
이제 복된 가정은 무엇이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1. 천사가 왕래하는 가정 (13)
 
금일에 어떤 정치요인의 집에 군대가 파수를 보고 있는 것을 안전이라 복되다 하는 일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천사가 지시하고 인도하고 보호한다는 가정은 얼마나 복된 가정이냐 하는 것을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산 높고 물 맑은 빈촌에 빈한한 목수의 가정에 천사는 왕래하고 인도하고 보호한다는 것은 그 집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이었다.
 
요셉의 복된 가정이 알파라면 우리의 가정은 오메가적인 교회에 끝을 맺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시91:10-11). 앞으로 오메가의 끝을 맺는 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가정일 것이다. 어린 아이로온 예수를 모신 가정도 복되다 하거든 만왕의 왕으로 다시오는 주님을 영접하는 가정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2. 합심하여 순종하는 가정 (14-15)
 
아무리 하나님은 롯의 가정을 유황불에서 건져내고자 하여 천사가 와서 인도해도 순종치 않을 적에 불행스러운 비참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 예수를 앞에 놓은 요셉과 마리아는 밤을 세우며 찬이슬을 맞으면서 길을 떠나는 그 부부의 절대적인 순종의 걸음은 복된 가정이 되고야 만 것이다. 고향을 떠나라는 지시를 받은 아브라함은 정처 없이 떠날 때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축복의 음성은 그 가정에 들려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쓸쓸한 피난의 걸음을 걷는 그 가정은 헤롯왕을 이기는 승리의 발걸음이 되고야 만 것이다. 말세에도 아무리 악한 정치가 성도의 가정을 해치려고 병력을 동원해도 합심하여 순종하는 가정에는 아무 피해도 없을 것이다. 만일 순종의 발걸음이 하루라도 더디었던들 화를 만나는 가정이 될 것이었으나 철저한 순종이 있는 가정이니 필연코 승리한 것이다.
 
 
3. 안정한 생활의 회복된 가정 (16-23)
 
아무리 비참한 환란을 겪었으나 어린 예수는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정든 고향을 다시 복구할 때 그 가정에 행복스러운 생활은 매일같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귀여움을 더하는 그리스도의 장성은 세계인류를 구출시키는 인격을 양성시키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물질의 부요, 명예, 화려가 있다한들 이러한 인격을 길러내는 가정은 인류역사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만왕의 왕이 오실 때 그의 국왕의 한 보좌를 차지하는 주의 종이 나온다는 가정은 얼마나 복된 가정일까! 세상 정치, 문화가 이 자리를 줄 수 없고 오직 합심하여 순종하는 가정에 만이 세계를 움직일 하나님의 종은 나올 것이다. 우리의 축복이라는 것은 세세왕권을 가질 종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것을 인간이 알 자는 심히 적다.
 
 
결  론

복된 가정은 세계를 천국으로 이루어 놓는 역사의 원천이며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시키는 학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소식이 연락되는 가정, 하나님의 보호가 같이하는 가정, 세계 만왕의 왕을 길러내는 가정, 인류 역사에 둘도 없는 복된 가정은 어느 가정인가. 목수 요셉의 가정인 것이다. 우리는 노동을 부끄러워 말고 빈곤을 원망하지 말자. 복된 가정은 무엇이라는 것을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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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세례요한의 인격과 축복 - 마태11:2~15

세례요한의 인격과 축복  

-마11:2~15-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서    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신이 아닌지라 실족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할 때 주님을 향하여 실족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말했다.  
  
세례요한은 어떠한 인격이 있었다는 것을 본문은 증거하고 있다.  주님은 인생의 약점을 아시기 때문에 요한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큰 자라 했던 것이다. 즉 사람 중에 큰 자라하는 것이다.  
  
이제 요한의 인격에 대하여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경홀치 않는 인격 (2~3)
요한은 예수께 대한 소문을 옥중에서 들었다.  사람에게 전해온 말을 들을 때 신이 아닌 요한은 마음에 의문되는 점이 있었다. 이것은 전해지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말이란 예수께 대한 좋지 못한 평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악한 헤롯왕에게 억울하게 옥에 갇힌 것은 헤롯왕이 동생의 아내에게 장가들은 것을 책망한 죄로 옥에 갇혔기 때문에 극도로 헤롯왕은 요한을 미워하고 예수를 악평하는 무리들을 통하여 말을 들을 때 먹기를 탐하며 병을 고치되 안식일을 범하고 또는 아무런 가치 없는 사람들만 가까이하고 사귄다는 이러한 말만 듣게 된 것이다.  

그는 전하는 말에 경홀히 움직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비밀로 사람을 예수께 보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행하신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말만 듣고 경홀히 비판하면 그 말에 충동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요한에게 배워야 될 것이다. 만일 요한이 사람을 보내지 않고 전하는 말만 듣고 움직였다면 크게 실족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2. 선지자 보다 나은 인격이다 (9)
모든 선지는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보고 글을 기록한 것 뿐이다.  세례요한은 직접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사람이니 선지자보다 높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길을 직접 예비한 자다. 과거의 선지자는 이러한 사람이 오리라는 예언을 하였지만 세례요한은 오는 사람을 직접 영접하고 인도하고 소개해준 자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선지자 보다 낫다는 것은 그만큼 귀한 사명을 가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은혜시대의 영계 사명자보다도 재림의 날에 살아서 주님을 영접하는 자의 영계가 높다는 것과 같다. 

  
3.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다 (11)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모든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눅1:15에 보면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가 되었지만 세례요한은 모태부터 성신의 충만함을 받았다. 예수님은 신성으로 잉태되었지만 세례요한은 인성으로 출생을 하되 모태로부터 성령을 충만히 받았다는 것이다.

눅1:42를 보면 성모 마리아의 문안하는 소리를 엘리사벳이 들을 때 태중에서 요한은 기쁨으로 복중에서 뛰놀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성령으로 역사된 것이며, 이것을 본다면 세례요한은 보통 속된 사람과는 달라서 모태에서 부터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함은 세례요한의 역사는 율법시대 역사의 끝을 맺는 것뿐이니 하늘 왕권의 최고의 왕위에는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은 잠깐 증거하고 예수님을 소개한 것뿐이고 여기에 작다는 것은 왕권을 받는 지위에 국한된 것뿐이다. 

  
4. 축복 (14)

세례요한이 인간 중에는 복 있는 자라고 보게된다. 날 때부터 거룩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앞길을 여는 사람이 되었으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많은 제자를 전도하여 예수께 인도한 것이니 복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만일 세례요한이 경솔히 움직였다면 요한도 실족한 자로서 실패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되 정직하고 겸손한 분이라고 소개하였고 또한 경솔하지 않고 끝까지 옥중에서 참은 사람이니 성신강림 되기 전 율법시대 사람으로는 복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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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111. 사람의 제일 기쁜 일은 수고를 바로 하는 데 있다


2. 사람의 제일 기쁜 일은 수고를 바로 하는 데 있다 [72.5]
 


오늘의 모든 사람들이 수고 없이 사는 생활에서 자기의 쾌락을 얻어 보려는 것은 벌써 참된 기쁨을 얻을 만한 사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인격은 벌써 참된 인생의 의무를 할 수 없는 인격이므로 이러한 자들이 많은 나라가 될 때에 그 나라는 자동적으로 쇠퇴해지는 것이요, 이러한 자들이 가정에서부터 모든 일을 게을리 할 때에 그 가정은 자동적으로 비극을 가져오게 된다.

 
이제 인생의 제일 기쁜 일이라는 것은 수고를 바로 하는 데 있다는 진리를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사상이 있어야 한다

 
오늘에 공산사상이라는 것은 근본 자체가 수고를 바로 할 수 없는 사상이다. 왜냐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농장이나 공장에 가서 일하면 먹을 것을 준다는 정치에서 그 사상은 아무런 발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소망의 확실한 것이 사상이 되면 자나 깨나 그 소망을 생각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고를 영광으로 알고 나가는 것이 있을 때에 그 수고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게 된다. 그런데 공산 세계는 국민들이 아무런 소망 없는 국민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종교적인 소망도 찾아볼 수 없고, 개인적인 생활 향상의 소망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 전 국민은 소망이 없는 사람으로 한 기계에 불과한 인격이 되므로 그 사람들은 한 정치의 도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사상을 가질 적에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데서 기쁘다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받는 데서 기쁨을 얻는 것은 흥분이나 감정을 초월해서 수고를 기쁨으로 하게 된다.
 
인생이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는다는 것이 완전한 소망이 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서는 수고할 용기가 있지 못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체험한 자로서 수고를 하는 것은 정욕을 떠난 양심에서 다른 사람을 살려준다는 목적을 두고 수고를 하게 되는 것이니, 이 수고를 통하여서만 완전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다.

 

2.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단체가 있어야 한다

 
오늘의 단체라는 것은 수고를 바로 하려고 해도 바로 할 수 없는 단체를 이루게 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본다. 왜냐하면 각자가 다 자기의 소욕을 채우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단체는 사상, 양심이 바른 사람으로서 그 단체에서 같이 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위 종교단체라고 하는 가운데서도 사상 양심이 바른 사람으로서 그 종교단체가 하는 일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게 되는 때가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고가 헛되지 않게 끝을 바로 맺을 단체가 필요하다. 일한 대로 갚아 주려고 오시는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단체는 수고를 바로 하는 종들이 자동적으로 뭉쳐진 단체라고 본다.

 
과거에 초대교회는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단체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부터 일어나서 세계적인 교회 확장을 가져 왔지만, 오늘의 종교단체라는 것은 사상이 바른 종으로서 그 단체에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단체들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하루하루 사는 생활이 어떻게 하여야 먹고 사느냐 하는 문제가 머리에 꽉 차서 밥만 잘 먹여 준다면 어디든지 따라 간다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된 현실 사회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 사회라는 것은 자동적으로 동물에 가까운 생활에 들어가는 사회가 된다.

 
짐승들이 배만 부르면 좋다고 하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아무런 종교심도 없고, 애국심도 없고, 도덕심도 없이 먹고 보자는 생활로 들어간다면 이 사회는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승리하는 사회가 될 염려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있어야 수고를 바로 할 수 있는 생활이 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생활이 될 때에 한 시간도 헛된 수고를 하지 않고 수고를 바로 하는 생활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 수고는 전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수고가 될 때에 수고를 바로 하는 자가 받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생활에서 재앙의 날에도 기쁨으로 찬송하는 생활이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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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112. 지극히 작은 것을 삼갈 때에 큰 것을 바로할 수 있는 인격을 얻게 된다


3. 지극히 작은 것을 삼갈 때에 큰 것을 바로할 수 있는 인격을 얻게 된다 [72.5]
 


하나님께서는 대 자연을 창조하실 때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빠짐없이 하셨고,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큰 공장을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삼가는 기술자에게 달려있고 대자연을 움직이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살피고 계시는 조물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지는 것이다.
 
이제 지극히 작은 것을 삼가는 자가 큰 것을 할 수 있는 인격이 이루어진다는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지극히 작은 죄의 생각 하나를 삼가는 자라면 큰 붉은 용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된다

 
인격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보게 된다. 하나님을 상대하는 인격이 있고 사람을 상대하는 인격이 있다. 인간으로서는 지극히 작은 생각 하나를 바로 가졌는지 가지지 않았는지를 모르고 사람을 대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신 창조주로서 사람의 마음에 작은 죄 하나를 아시고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들어 쓰는 큰 인격을 가지려면 지극히 작은 생각 하나라도 삼가는 데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말씀할 때에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 있다고 한 것은 중심에 자기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만 사모하는 자라야 거룩하고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의 신앙 양심에 비추어 경험한 바는 다음과 같다.

 
지극히 작은 죄의 생각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종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으므로 나는 인간의 도덕을 초월해서 중심성결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경건한 사람 같으나 중심 속에 작은 죄의 생각 하나라도 있다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교통을 못한다는 것을 나는 날마다 체험하고 있다.

 

2. 지극히 작은 말 한마디를 삼가는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법을 따라 역사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전 계약서가 되는 말씀을 삼가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입을 들어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확실치 않는 것은 증거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러므로 계시록과 선지서에 대해서는 절대 함부로 말하지 않고 4복음서와 편지서에서만 말씀을 증거하는 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계시록과 선지서를 증거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시간을 보내게 될 때에 내가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이 된 줄로 생각하는 바이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어서 작은 절수 하나라도 분명치 않다면 나는 감히 계시록의 말씀과 선지서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할 수가 없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 말 한마디라도 하나님 말씀에서 가감되지 않도록 증거할 수 있게 되므로 나는 날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은총을 받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오늘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지만, 작은 말한마디를 삼가지 않음으로써 완전한 하나님의 종의 인격을 이루지 못한 자가 너무나 많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3. 지극히 적은 성금 한 푼을 삼가는 자라면 큰 사업을 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사람에게 맡겨서 지극히 적은 성금 한 푼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자라면 벌써 도둑으로 인정하게 된다.

 
나의 체험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지금 큰 수도원 사업을 하게 된 것은 7년간 하나님의 성금에 대하여 동전 한 푼도 삼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성산에 들어온 돈을 내 사적으로 소비하는 일이 없이 이 사업을 받들게 된 것은 시작할 때부터 내가 어떤 명예나 권리나 생활의 대책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큰불이 내려와서 나를 불 가운데 앉혀 놓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기를 너는 “뢰자”라는 이름을 주노니 이 이름을 받아 가지고 변화 성도를 일으키는 수도원 사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돈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순종만 하면 물질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단돈 2천원을 가지고 그 날부터 이 사업을 하기 위하여 자수로 수도원 지대를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실 줄 믿고 성금 한 푼을 삼가는 것뿐이다. 나는 앞으로 물질의 큰 축복이 우리 수도원에 올 것을 확신하며 내 소원대로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지금 이 사람은 너무나 무식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무식하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으로서 수도원 사업을 해 나가는 일이나,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 사업을 해 나가는 일이나,「여호와 새일교단」을 움직여 나가는 일이나, 「새일중앙교회」에 300여명의 교인을 다스리고 목회하며 나가는 일은 너무나 짐이 무거운 일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도 피곤이 없이 가장 가볍고 명랑하게 일해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이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요, 지극히 작은 일에 삼가는 것을 하나님은 보시고 역사하는 일이라고 믿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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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9일 금요일

말씀의 칼 : 교회 안의 분쟁은 왜 있을 것이냐 - 요16:1~4

교회 안의 분쟁은 왜 있을 것이냐  

-요16:1~4-

요한복음 16 :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 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서    론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운 것은 참된 사도들 통하여 그리스도의 정신 사상 양심을 가진 종들로 한 가정적인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있다는 정도로 아는데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아는 사도들이 동족인 유대교인들에게 박해를 받으면서 세웠던 것이다. 
  

그 때에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를 축출하고 박해, 사형을 처한 것은 그리스도를 이단으로 판정을 내린 교권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상 끝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교회 안에 있으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한 것이 본문이다. 
  

이제 어떻게 교회 안에 큰 분쟁이 일어날 것이냐 하는데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성경을 찾아보자.

  

1. 시험에 빠진 자들이 권리를 쥠으로 (마24:10)
이것은 주재림시기에 사단의 흑암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인들의 마음을 강퍅케 만들고 서로 주권 쟁탈이 파당적으로 일어날 것을 말한 것이다. 이 때에 거짓 선지가 큰 기회를 타서 대 환란을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서 동석할 수 없는 사람이 됨으로 자동적으로 순의 종이 나오는 요시야의 집에서 모였던 몇 사람과 같은 숨은 제단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슥6:9~12).

  

2. 종말의 예언을 무시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남으로 (사66:4~9)
교회는 말씀을 바로 증거함이 완전한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을 미워하고 쫓아내는 무리들이 교회 안에서 권리를 쥘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떠는 자로서 쫓겨남을 당할지언정 불의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점으로 교회와 합할 수는 없을 것이다(사66:5~6).

  

3. 교회의 상부가 부패하게 됨에 따라서 (습3:18~20)
초대교회는 교회 상부가 신령하다 보니 약간의 이단자가 교회 중에 있더라도 이것을 책벌과 출교를 행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심판기의 교회는 대회를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이 쫓겨남을 받고 수욕을 받게 됨으로 그들이 남은 자가 적다고 말씀하셨다. 대회라는 것은 상부의 최고 기관을 말한 것이니 최고 기관이 부패되는 동시에 하부에 이르기까지 큰 분쟁이 있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4. 미운 물건이 교회에 서게 됨으로 (단11:31~32)
이것은 북방의 배도적인 정권이 정치적 도구로 쓰는 거짓 선지를 말하는 것이다. 계13:11이하와 대조가 된다. 이 미운 물건은 궤휼적인 정책의 앞잡이로서 거룩한 언약을 배반시키는 동시에 모든 사람을 타락시키고 있으므로 이 때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로 강하게 일어나서 용맹을 발할 것이다.

  

5. 궤휼 친합이 있으므로 (단11:34)
궤휼 친합이란 것은 북방 궤휼자의 수단 방법에 끌려 교회가 먹힘을 당하는 것을 말함이니 그 때에 그들 중에 지혜로운 자가 적게 남아서 연단을 받고 청결케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른다고 하였다. 우리는 진리 통합이란 것은 진리와 사랑 안에 통합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궤휼로 친합 된다는 것은 교회를 삼키는 사단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자는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덮어놓고 사랑이란 간판 밑에서 분쟁이 없도록 해 보자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고 분명히 심판기의 교회는 성도들이 박해를 받고 축출을 받고 연단을 받게 되는 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을 가르친 것이다. 협상이나 또는 어떤 인물 중심이나 교파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미혹에 들어가는 넓은 길이 될 것이다. 싸워야 할 것이며 참아야 할 것이며 끝까지 말씀을 지켜야 할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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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성도의 사생활과 하나님의 보응 - 골3:18~25

성도의 사생활과 하나님의 보응  

-골3:18~25-

골로새서 3 :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서    론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염세주의적인 사상을 버려야 할 것이고, 세상의 사생활에서부터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생활에서 행하는 일을 통하여 보응을 나리는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의 종이 대중 앞에서 신령하게 보이더라도 사생활이 그렇지 못하다면 이것은 자동적인 외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친히 사생활에서부터 본을 끼치는 길을 걸어가신 것은 성도에게 마땅히 가야 할 길과 생활의 표본이 되는 것이다.

  

1. 성도의 부부 생활 (18~19)
성도의 부부 생활이라는 것은 주안에서 사는 생활이니 주안에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 부부 생활을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와 같은 뜻을 표시한 것이다(엡5:22~25). 
  

하나님께서 일남일녀를 창조하실 때에 남자를 도와주라는 책임을 주기 위해서 여자를 창조했고, 남자는 여자를 통하여 영광을 같이 누리게 함으로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승리하시고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에 교회도 주님께만 순종하면 영광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나 여자나 합하여 지므로 서로 더 아름다운 미의 생활의 열매를 이루어 주자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니 부부라는 것은 조금도 가면적인 형식이 따를 수는 도저히 없다. 

  

2. 부모와 자녀간에 할 일 (20~21)
자녀는 모든 일을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라야 된다. 아무리 부모에게 순종이라 하여도 주안에서 되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해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격노케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자녀를 기르는 부모는 소망을 끊어주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책망에 있어도 소망을 위하여 자녀를 더 힘이 나도록 하기를 힘써야 될 것이다. 푸른 순같이 자라나는 자녀를 낙심이 가게 만든다면 축복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무리 징계해도 더 열심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주 안에서 믿음으로 자녀를 기르는 것도 은혜로 되도록 힘써야 될 것이다. 만일 부모가 자식에게 혈기를 내고, 감정을 내서 어린 마음을 낙심하게 하면 사단은 반드시 틈을 탈것이다.

  

3. 종과 상전에 대하여 (22~23)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어떤 형제가 자기 상전인 주인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는 일이 된다면 이것은 신앙의 양심이 잘못된 행동이다. 주님을 믿는 신앙이라면 양심적인 생활에서 주를 두려워하여 거짓이 없는 성실로 행해야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남의 일을 할 때 그 날 그 날 자기 삯이나 바라는 마음에서 한다는 것보다도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목적하고 마음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이 없다면 주님 앞에 설 때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이 없다면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는 주님 앞에 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    론  
성도의 지상 생활에서 되어지는 일은 영원한 천국을 위하여 심는 생활이니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둘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여야 큰 일에도 충성이 있다고 주님은 가르친 것이다(눅16:10). 
  

예를 든다면 큰 나무가 유형적인 열매를 이루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적인 작은 뿌리에서부터 힘을 얻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큰 열매를 나타내려면 은밀한 골방 생활인 사생활에서부터 힘을 얻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천국을 건설하는 인격을 양성시키는 양성소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마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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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8일 목요일

시편 27 : 1~14 ... 주님께만 마음을 두자


시편 27 : 1~14...주님께만 마음을 두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새 일)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9.24전)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초막절-성부의절기)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 하시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내가 산 자의 땅에(에덴 회복)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논 설 : 113. 가장 지혜로운 자 같으나 어리석은 자


4. 가장 지혜로운 자 같으나 어리석은 자 [72.5]
 


오늘에 인간들은 인간이 하는 일을 다 지혜로운 일로 보기 때문에 그 일에 있어서 미혹을 받게 된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사람의 정신 작용으로 발달된 것을 보고 놀라게 되는 자
과거 정신작용이 발달되지 못한 때에 살던 사람의 생활과 오늘날 정신 작용이 발달된 때에 사는 사람의 생활을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인력거를 타고 다니던 것이 오늘에 와서 아폴로를 타고 달나라에 간다는 것도 놀랄 일이요,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역마를 사용하던 것이 오늘에 와서 전화로 가만히 앉아서 전하게 되었다는 것도 놀랄 일이요, 손으로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땀을 흘려가면서 밤을 새우던 것이 오늘에 와서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가만히 앉아서 무슨 물건이든지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이 놀랄 일이다. 그리고 이 생활이라는 것은 영리적이며 호화로운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는 남의 영토를 빼앗기 위하여 단병접전으로 피를 흘리며 싸우던 전쟁이 약 한 시간이면 세계 인류를 한 사람이 죽일 수 있는 전쟁이 있게 된 것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고 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이것이 참된 지혜이며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보는 자가 있다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 작용에 속한 사람으로서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신의 역사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고등 동물에 불과한 인격을 가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경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인간 종말에 될 일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 세상이 되어지도록 역사하시는 아래에서 심지어 공산당까지라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의 사람으로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살길이 없는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별 세계까지 깃들이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행함 따라 갚아 주시는 심판을 내리시되 영적으로 움직이던 야곱은 불이 되게 하시고 세상에 인간 지혜와 지식으로 움직이던 에돔은 초개가 되게 하므로 불에 살라지게 될 것을 말씀했기 때문이다(옵1:18 이하).

 

2. 인간 향락에 도취가 되어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없는 자

 
인간이 볼 때에 지금 이때가 얼마든지 호화롭게 살 수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황금만능을 자랑할 때라고 본다. 돈만 있으면 현 세상을 천국이라고 할 만큼 화려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이러한 자를 보실 때에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시는 것이다.

 
지금 완전한 지혜를 받은 자라면 세상 향락에 도취가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생활을 부끄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시기를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때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쉬지 않고 인격 무장을 갖추는 데 전력을 두어야할 것이다.

 
화려한 바벨론이 하루아침에 불탈 때에 할렐루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인격을 무장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의 할 일이다. 이 인격이라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완전 역사를 받아야만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변화 성결, 지혜, 지식, 능력, 권세의 역사를 받은 자로서 죄와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완전 변화체를 이루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만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에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인격을 무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지 않고 세상에 끌리는 생활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가련한 인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3. 종교적인 정통 관념에 굳어져 새로움이 없는 자

 
오늘에 소위 정통 신학이라는 학설에 굳어진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학설이 제일인 줄 알고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어리석고도 유치한 사람의 하나라고 본다. 왜냐하면 과거에 정통이 그대로 인간 종말에 정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통적인 신앙을 가졌다면 인간 종말에 이 몸이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는 정통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만 잘 믿으면 성경 해석이라는 것은 각각 다르게 해도 무방하다고 한다면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 같으나 실지로 가장 어리석은 자이다. 이미 이루어진 말씀이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도 글자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과거 사도들이 초림의 주가 오신 것은 선지 예언이 성경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성신의 계시를 받아서 알게 될 때에 소위 정통이라는 바리새인들이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다가 망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오늘에 와서 정통이라고 하는 관념에 굳어진 사람들이 새 일의 진리를 이단시한다면 망하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새 일이라는 것은 영혼구원의 역사가 아니고, 택한 자를 재앙의 날에서 그 몸까지 구원하여 새 땅의 축복을 받게 하는 역사이다(사42:9, 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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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114. 노동을 등한히 하는 국민이 나라를 망친다


5. 노동을 등한시 하는 국민이 나라를 망친다 [72.5]




우리나라 국민들의 큰 병은 노동을 등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에 농민들이 농지를 팔아서까지 자식을 공부시켜서라도 취직을 시켜야 되겠다는 관념이라는 것은 나라를 부강케 하는 일에 있어서 너무나 큰 병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것은 어느 직장에 취직하는 것으로 목적이 다 이루어진 것이 되고 만다면 자동적으로 나라의 생산력은 약해질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농민들이 이런 병에 걸린 원인은 다음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식민 정책 하에서 너무나 멸시를 받고 노동을 하던 것을 고질로 알았던 부모들이 자기 소원이 좀 일하지 않고 먹고사는 자식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에 “ 놀자 놀자 젊어서 놀자, 늙어지면 못 논다 ” 하는 것은 타락한 민족의 부끄러운 노래라고 본다.


근본이 바로 되려면 “ 일하자 일하자 젊어서 일하자"  늙어지면 일 못한다”  하는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조 5백년 동안 내려 온 것은 소위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상놈을 부려먹고, 36년간 왜정 시대에 악독한 사람들이 한국 국민을 너무나 억압을 하고 부려먹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하기가 싫은 일을 하던 습관이 오늘날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농민들이 자식을 열심히 공부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지만, 그 목적이 일하지 않고 놀면서 먹겠다는 정신이라면 그 공부란 것은 훌륭한 국민을 양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인격이 이루어질 적에 많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농민들이 일을 싫어하는 원인은 조상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데서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국민들의 생활이 잘살 수 있다는 것에 머리를 쓰지 않고, 그날그날에 먹고 지내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알고 어떻게 하든지 일하지 않고라도 먹고 지내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인격을 길러내는 일에 너무나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억지로 일하는 국민의 생활에서 이러한 가난한 나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가 조상적부터 바로 해 내려왔다면 남의 나라보다도 모든 것이 다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위치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북방에는 얼마든지 곡창이라고 할 수 있는 대륙을 놓고 동해, 남해, 서해로는 얼마든지 수산을 낼 수 있고, 산이 높은 만큼 얼마든지 전기를 낼 수 있고, 수로가 편리한 만큼 얼마든지 외국과 무역을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과 물, 곧 자연의 경치가 아름답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철의 기후가 적합하므로 무엇이든지 만족히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러므로 산명수려(山明水麗)하고 사시 기후가 적합해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라가 남의 나라보다도 못사는 이유를 알아서 전 국민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노동을 부끄러워하는 국민이 된 것이 첫째 원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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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7일 수요일

논 설 : 115. 인격을 따르는 것보다도 인격을 만들어주는 하나님께 순종하자


1. 인격을 따르는 것보다도 인격을 만들어주는 하나님께 순종하자 [72.6]
 


인생이라는 것은 인격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볼 때에 자기보다도 인격이 훌륭해 보이는 사람 앞에는 자동적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예를 든다면 큰 나무가 생기면 작은 나무는 그 나무 그늘 아래서 자라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고 큰 짐승이 나타나면 작은 짐승이 그 앞에서 떨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자기보다 큰 인격이 나타날 때에 그 사람을 숭배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인격을 따르는 사람은 그 인격 앞에 눌림을 받을 것뿐이로되 인격을 완전히 만들어 주는 하나님을 따라갈 때에 다음과 같은 향상이 있다.

 

1. 행할 수 있는 인격 (요14:12)
 
하나님께서는 무소불능의 신이시지만 언제나 당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그 능력을 주어서 역사하기를 기뻐하는 신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찾는 것보다도 완전한 사람을 만들어 놓기 위한 목적에서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완전한 것을 인생에게 주고자 하여도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완전한 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므로 완전한 인격을 가진 아들을 통하여 완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고 완전한 인격을 가진 아들을 통하여 완전한 역사를 누구든지 받게 한 것이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대 종교가 된 것은 완전한 인격을 만들어 주는 은혜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2. 이길 수 있는 인격 (사41:25)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놓을 때에 자신이 있다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승리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 사람을 들어 쓸 때에 아무런 환난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요, 환난이 있게 하시되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난국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않고 담대히 나가는 자에게 넉넉히 이기도록 하시는 것이다.

 
오늘에 인격을 따르는 사람들은 공산당을 이기기가 어렵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인격으로는 공산당을 넉넉히 이길 수가 있다. 세계 통일의 완전 승리를 이루는 인격은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을 따르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따르는 인격을 가져야 한다.

 

3. 살릴 수 있는 인격 (행2:37~41)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대중을 살리는 역사를 하실 때에 아무리 실수가 있다 하여도 베드로를 들어서 대중을 살렸던 것이다. 우리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만을 증거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살리고자 하는 사람을 우리가 살리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가장 큰 일은 남을 죽이는 일이 아니요, 남을 살리는 일이다. 누구든지 일편단심 남을 살린다는 마음이 뜨거워 있는 자라면 남을 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쓰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을 따르는 인격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따르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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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116. 큰 것을 기대말고 작은 것을 잃지 말라


2. 큰 것을 기대말고  작은 것을 잃지 말라 [72.6]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큰 것을 기대하는 허영심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작은 것을 잃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고기를 잡는 사람이 큰 고기를 잡아 물에다 놓아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구멍이 난 포대에 돈을 담는 자와 같이 모든 것이 다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작은 데서 큰 것을 이루도록 하셨다. 식물도 작은 씨를 심어서 큰 것을 이루게 하셨고, 동물도 작은 것으로 시작되어 큰 것을 이루게 하셨으니 사람이 큰 것을 얻고자 할 때에 작은 것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제 큰 것을 얻는 것은 작은 것을 잃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작은 일에 충성하므로 영원한 왕권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종이 작은 소자 하나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대중을 거느릴 인격을 상실하는 것이요, 작은 말 한마디를 잘못하여 신용을 잃는다면 아무리 크게 소리를 질러도 그 소리는 꽹과리에 불과하다. 누구든지 소자 하나에게 행하는 일이 즉 주께서 갚아 줄 일이 되고 골방 속에서 한 마디 한 말이 심판의 대지가 된다고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라면 크고 두려운 날이 올 때에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 적은 시간을 아끼므로 영원한 왕국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적은 시간을 아끼지 않고 허송하는 자라면 많은 시간을 허송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적은 시간을 아껴서 바로 할 때에 영원한 영광을 이루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지극히 적은 시간을 다투어 싸워 나가는 열심이 있어야 한다.

 
열심이라는 것은 허영의 열심도 있고 진리의 열심도 있는데 이 진리의 열심이라는 것은 완전한 지식을 따라 살 때에 적은 시간을 가치 있게 이용하는 것으로 큰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고 있는 시간에 자지 않고 기도를 한다든지, 다른 사람이 쉬는 시간에 쉬지 않고 진리를 상고한다든지, 다른 사람이 오락하는 시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진다면 그 생활은 전부 열매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열매라는 것은 적은 시간을 허송하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3. 적은 물질을 바로 사용하므로 큰 보화를 상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질이라는 것은 많으므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니요, 적은 물질이라도 바로 사용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많은 물질이라도 바로 사용을 못하면 큰 화가 되는 것이요, 적은 물질이라도 바로 사용하면 큰 축복이 되는 것이다. 물질의 자체가 가치 있는 것보다도 물질을 바로 사용함으로만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예를 든다면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하여도 그 약이 잘못 사용되어 사람을 죽이는 화를 가져올 수 있고 아무리 적은 냉수 한 그릇이라도 바로 사용되어 사람을 살리는 열매가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 한 절을 잘못 전하므로 큰 화를 가져올 수도 있고 말씀한 절을 바로 전하므로 큰 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역사가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작은 것을 잃지 않는 일을 먼저 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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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117. 모든 일에 재미를 얻고자 하는 것 보다도 수고를 달게 해야 된다


3. 모든 일에 재미를 얻고자 하는 것 보다도 수고를 달게 해야 된다 [72.6]
 



인간이라는 것은 재미를 얻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라고 본다. 그러나 참된 재미를 맛보지 못할 때에 공연히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수고를 달게 하지 않고 먼저 재미부터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참된 재미를 맛보지 못한 자는 발전보다도 일을 하다가 타락의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참된 재미를 얻는 생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양심적인 수고가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양심적인 수고를 하는 자라면 참된 기쁨을 주고 평화를 주고 새로운 힘을 주시므로 수고를 하지 않는 자보다도 더 재미가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양심적인 수고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합당한 수고를 하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를 내리시므로 수고를 하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진리를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참된 진리를 위하여 수고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얻게 되는 인격이 아니요 하늘에서부터 오는 인격이다. 그러므로 이 인격을 얻는 일은 인간 노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로만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행하시는 일이니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말씀대로 먼저 역사하는 일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인격이다. 사도 바울이 누구보다도 진리를 위하여 더 많이 수고하였던 것은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지만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셔서 부르시므로 다른 사람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더 깨닫고 수고를 영광으로 알고 나갔기 때문이다.

 

3. 희생적인 수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희생적인 수고가 있는 다음에 가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재미있게 살게 하기 위하여 간교한 뱀을 내어서 꾀어 보셨던 것이다. 이것은 독생자의 희생적인 수고로써 간교한 뱀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므로 남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적인 수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아무리 남을 희생시켰던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게 될 때에 남을 살리기 위하여 희생적인 수고를 하게 되므로 최대의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수고로써 재미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자는 기쁨의 세계를 기업으로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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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118. 인간의 생활의 진보는 받는 데 있다


4. 인간 생활의 진보는 받는 데 있다 [72.6]
 



인간이라는 것은 받아야 할 의무가 있고 조물주는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든다면 어머니는 자녀를 낳았으므로 어린이에게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어린이는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선생님은 가르쳐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학생들은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야 할 책임이 있고 우리는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받을 것을 받지도 못하고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보다는 주실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노엽게 하는 일이 된다. 
 
이제 받는 자에게만 진보적인 생활이 있게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새 생명을 받는 자에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을 받는 이치는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에게 주겠다는 것을 언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주겠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받는 것이 있으므로 생명의 종교라고 한다. 받아야 할 인생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자를 바로 알아 믿음으로 받는 것이 참된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것이 없다면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로되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받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진보적인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에 기독교가 아무리 예배를 보고 기도를 한다 하여도 받는 것이 없다면 그 예배와 기도는 자동적으로 외식이 되므로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믿음이라고 보게 된다. 참된 종교 신앙에는 항상 받는 것이 있으므로 진보적인 인격과 생활을 가지게 되어 비록 겨자씨 같이 작은 것 같으나 큰 나무를 이루듯이 진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새 생명을 줄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을 이루었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믿고 사는 생활에는 항상 새로운 생명의 은혜가 흘러오는 체험을 받게 되므로 십자가만 자랑할 수 있는 담대한 힘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새로운 지식을 받는 자에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지식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물체를 바로 사용하는 지식도 있고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는 그 경륜을 바로 알아 하늘에서 오는 것을 받는 지식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지식이 부족하다면 정상적인 진보를 갖지 못하고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만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바로 아는 지식이 발전할 때에 그 지식을 따라오는 새로운 힘을 계속적으로 받게 되므로 백전백승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적 지식이 발전 했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한 기계에 속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인생이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을 낸다 하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아는 지식이 발전됨에 따라서 영원한 영생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일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3. 새로운 생활을 받는 자에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다. 기도를 할수록 새로워지고, 성경을 볼수록 새로워지고, 찬송을 부를수록 새로워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만일 어떤 신자가 새로워지는 것이 없다면 기도와 성경과 찬송을 하는 것이 하나님과 하등 관계가 없는 탈선된 노선에 있는 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신앙을 가지게 될 때에 날마다 새로워지는 생활이 있게 되어 참된 미의 세계를 이루는 생활에서 천국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천국에서 오는 것을 먹고 마시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은 날마다 받는 것이 있음으로만 참된 진리 안에서 진보하는 생활을 하므로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는 단체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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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공 더반서 제5차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 - 다니엘11:40, 에스겔 38:의 말씀이 이루려합니다.

남아공 더반서 제5차 브릭스 정상회의 개막

(EPA=연합뉴스)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남아공 더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민철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6일 오후(현지시간) 제5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개막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정상회의는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참석했다.

회의는 더반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막식에 이어 만찬을 겸한 연회 순으로 진행됐으며 주마 대통령이 만찬에 앞서 회원국 정상들을 환영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정상들은 27일 다시 모여 공개·비공개 회의를 열어 '브릭스와 아프리카:개발·통합·산업화를 위한 제휴'를 주제로 토의를 벌인다.

정상들은 회의 후 ▲브릭스 개발은행 ▲브릭스 외환준비 풀(Pool)▲브릭스 싱크탱크 컨소시엄 ▲브릭스기업인위원회 설립 등에 대한 회의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회의 최대 관심 사안으로 부상한 개발은행 설립을 둘러싸고 정상회의에 앞서 재무장관들이 논의했으나 회의 후 참석자들이 설립 합의 여부를 놓고 언론에 서로 다르게 공개해 혼선이 빚어졌다.

일부 참석자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했으나 다른 참석자는 출연금 규모 등 핵심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27일 정상회담 후 발표될 내용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주마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양자 회담을 하고 양국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 정상은 농업, 예술·문화, 교육, 에너지, 어업, 광업, 과학기술 및 교통 부문 등에서 모두 9개의 협력 협정 체결식을 지켜봤다.

이날 협정은 양국이 인공위성 등 우주 과학 분야에서 서로 협력하기로 하는 한편 러시아 헬리콥터의 아프리카 운영·정비 센터를 남아공에 설치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남아공 군수업체인 데널항공은 이번 협약에 따라 Mi-8, Mi-17 헬리콥터의 유지 보수 센터를 요하네스버그에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 다니엘 11장
40절 마지막 때에 남방왕이(미국과 연합된나라와 함께하여) 그를 찌르리니 (북방왕에게 속해있는 나라)
북방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휘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아프리카) 사람이 그의(푸틴) 시종이 되리라...

*** 에스겔 38장
1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러시아)와 메섹(모스코바)과 두발(우크라이나)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4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고 칼을 잡아 큰 무리와
5 그들과 함께한 바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6 고멜과 그 모든 떼와 극한 북방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 내리리라...
7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지어다
8 여러날 후에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에 벗어나 열국에서부터 모여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9 네가 올라오되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많은 백성이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
1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네 마음에서(북방왕) 여러 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어
11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없이 다 평안히 거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12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무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처하는 땅과 열국 중에서 모요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13 스바와 드단과 다시스의 상고와 그 부자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탈취하러 왔느냐 네가 네 무리를 모아 노략하고자 하느냐 은과 금을 빼앗으며 짐승과 재물을 취하며 물건을 크게 약탈하여 가고자 하느냐
14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15 네가 네 고토 극한 북방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떼와 능한 군대와 한께 오되 
16 구름이 땅에 덮임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1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그들이 그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성도님들... 위의 말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 오바마, 시진핑 `아프리카 외교` 맞불

오바마, 시진핑 `아프리카 외교` 맞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 시에라리온, 세네갈, 말라위, 카보베르데 등 북부 아프리카 4개국 정상과 백악관에서 만난다. 
 
이번에 백악관에 초청된 4개국 정상은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 호세 마리아 페레이라 네베스 카보베르데 총리 등이다.
 
백악관이 특정 지역 국가 정상들을 한꺼번에 초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들 4명 정상과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민주주의 강화와 교역ㆍ투자확대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카에다 등 반미(反美) 무장세력의 확산 방지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다.
 
그동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중동문제 등에 쫓겨 아프리카는 사실상 손 놓고 있다시피 했다. 그러는 사이 알카에다 등 극단적인 무장세력이 북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활개를 치게 됐고, 아프리카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시킨 중국은 최대 교역국 자리를 꿰찼다. 지난해 미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교역 규모는 997억달러(수출 328억달러, 수입 669억달러)로 중국(1984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중국은 막대한 자금 지원을 약속하면서 아프리카의 환심을 사는 데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이틀간 짧은 러시아 방문을 마친 뒤 곧바로 아프리카로 날아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탄자니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연달아 방문해 대규모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시 주석은 지난 27일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회담에서 50억달러 규모 차관 제공을 약속했다. 중국개발은행(CDB)을 통해 남아공 물류 공기업인 트랜스넷에 제공된 차관은 노후 철로를 개선하는 데 투입될 예정이다. 트랜스넷이 남아공의 광물ㆍ에너지 자원 수송을 전담하는 공기업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중국의 행보다. 트랜스넷은 향후 7년간 3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철로와 항구,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스트럭처를 확충할 계획이다.
 
시 주석은 앞서 탄자니아에서 가진 연설에서는 "향후 3년간 아프리카에 총 20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해 아프리카가 부자 대륙으로 거듭나는 것을 돕겠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3년간 아프리카에서 인재 3만명에 대한 교육훈련을 지원하고, 1만8000명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는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잇는 철도 개ㆍ보수 지원을 약속하면서 "중국의 아프리카 지원에는 어떠한 정치적 조건도 붙지 않는다"고 다독였다.
 
시 주석은 이어 남아공 더반에서 개최되는 '제5회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마친 뒤에는 브릭스 정상들과 아프리카 19개국 정상이 함께 참여하는 '아프리카 대화 포럼'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이 아프리카의 에너지 자원과 인프라스트럭처 개발을 지원하는 방안과 함께 중국의 경제 발전 경험을 전수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시 주석은 마지막으로 콩고공화국을 국빈 방문한 뒤 오는 30일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