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4:

요나 설교
총제:<하나님의 구원 섭리> 




성  경:요나 1장
제  목:사명자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


본서(本書)의 요나는 왕하 14:25절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이다. 예수님께서 마 12:39절에 요나에 대하여 증거하셨다. 요나는 앗수르 국가에 보내심을 받았고 예수님은 대 로마제국 때 대 선지자로 유대인(자기 백성)에게 오셨으나 유대인이 니느웨 백성보다 더욱 패역함을 책망하셨다.

  
1. 사명자의 불순종:1~3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1절:본서는 요나가 친히 쓴 책이지만 저작자인 그는 자신을 제 3인칭으로 부른다. 그것은 일반 저술상의 문투이다. “요나”의 뜻은 ‘비둘기’를 의미하고 “아밋대”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뜻이다.

●2절:“니느웨”는 티그리스 강 가까이 자리잡은 큰 도시로서 고대에 “큰 성읍”이라 일컬었다. 요나 시대의 초강대국이요, 또한 동시에 종말 시대의 초강대국(소련)으로 보여 주심이다.

“쳐서 외침”은 그 도시의 죄악상을 공격함이니 죄인들의 양심을 찔러 회개시키기 위함이다.

“악독이 내(하나님)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 이방 국가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앗수르(소련) 나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사 10:5)』이지만 마지막 날에 회개시켜 새 시대 축복에 참예시킬 목적이 있으신 것이다. 이것은 사 19:24절에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 반면에 나훔 선지서에서는 회개 안 하면 멸망시킬 목적으로 예언을 주셨다.

●3절: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 하였다는 것은 요나 자체도 약해서 넘어질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부족하여 실수투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약해 넘어져도 일으켜 살게 하신다.

“욥바로 내려갔다” 함은 요나의 처지가 이제부터 낮아지며 타락하는 경향으로 흐를 것을 암시한다. 누구든지 사명을 피하면 결과적으로 믿음에서 떨어지게 된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인데, 생명을 살리라고 보냄을 받은 선지자가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간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2. 하나님의 징계와 요나의 잠:4~10

『4 여호와께서 대풍을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5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4절:여호와께서는 선지자를 바로 세우려고 자연계의 재앙을 동원하신다.“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되었더라” - 시 104:4 “바람으로 자기 사자(使者)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使役者)를 삼으시며...” 천지만물도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복종하니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5절:“배 밑층에 내려가서...” - 결국 그 후에 고기 뱃속에까지 떨어졌다.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치 않고 도피한 것은 일반 인생들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기 싫어하는 성질을 대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이 원죄에 물든 인간의 본질적인 어두움이다. 이와 같은 인간성, 타락성의 성정(性情)은 요나처럼 낮아지며 떨어져셔 환난을 당한 후에야 시정이 될 수 있다. 일시적으로 맡겨진 사명은 감당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죄 해결은 육체 속에 있는 죄질을 완전 개조해야만 된다(슥 3:9).

“사공”이라는 말은 선원을 가리키는데, 이방인들은 부득이한 경우에야 신을 찾는다. 이러한 불신자들의 행동은 사욕을 위한 외식으로서 거짓 종교인들의 특징인 것이다. 기복적인 미신이다.

“깊이 잠이 든지라” 요나의 잠은 여행의 피곤과 심령의 어두움 때문이다. 이것은 요나의 무책임한 잠이다. 하나님의 종이 시험에 빠지게 되면 보이는 것이 없고 영, 육이 심한 피곤에 잡히게 된다. 만사가 괴롭다는 것이다. 5절까지 요나는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을 다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시작된다.

●6절:“네 하나님께 구하라”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신들보다 혹 ‘요나의 하나님이 더 능력 있고 자비롭지나 않을까?’ 하여 그리한 것이다.

●7∼8절:“제비 뽑는 풍속”은 고대 모든 민족들 중에 일반적으로 있었던 모양이다. 수 7장에도 죄인인 아간을 가려낼 때 제비를 뽑았다. 요나는 죄를 숨겨두었다가 제비로 말미암아 죄를 고백하게 된다.

●9절:“바다”라는 말이 “육지”라는 말보다 먼저 나왔으니 그 이유는 요나가 현재 처한 상황이 바다의 심한 풍랑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하나님” - 가장 능력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고, 여호와라는 성호(聖號)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계시된 ‘스스로 계신 참 하나님’을 가리킨다. 요나는 이와 같은 성호들을 가지고 그가 섬기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잡신들과는 다른 참 하나님임을 드러내고 있다. 다신론자들 가운데서 이와 같은 말씀 한 마디를 외침은 진리의 폭탄선언이다(출 3:14~16).
요나는 이제야 이렇게 모든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문제시하지 않고 자기의 지은 죄를 공적(公的)으로 고백하기 시작했다. 우리 신자들도 범죄한 후에 혹 그것을 가려보려고 머뭇머뭇거리다가 마침내는 그것을 공적(公的)으로 고백하여 회개한다. 성령님의 최고의 역사는 회개 운동이다.

●10절:범죄한 선지자는 도리어 불신자들에게 꾸지람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선 그의 받을 벌이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라는 이방인들의 책망은 요나의 양심을 깊이 찔렀을 것이다.

  
3. 징계로 깨달은 선지의 자책감:11~17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11절:바다가 점점 흉용한 것은 요나의 회개가 성숙할 때까지 더욱 채찍질하심이다.

●12절:“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한 것은

① 죄책감이 강하므로 그리하였다. 사람에게 죄책감이 강해지면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보다도 어떤 희생으로든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② 그는 회개를 만족히 이룬 뒤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실까지도 내다보는 것이었다.

③ 그는 대중의 생명이 자기 한 사람 때문에 멸망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는 의리에서도 그런 말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13절:배에 함께 탄 이방인들도 요나의 생명을 될 수 있는 대로 아껴보려고 그대로 행선하였다. 이것도 요나의 마음을 찔렀을 것이다. 그는 니느웨 성읍의 수많은 생명을 건져볼 생각조차 없이 도망치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요나를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써도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하니”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원하는 바 따로 뜻이 계시니 그 뜻대로 반드시 성취시키신다(사 14:24, 43:13, 46:11). 인간의 생각 밖에 있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바로 구원이다.

●14절:“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 요나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것으로 인해 자신들을 멸망시키지는 말아 달라는 뜻이다.

“무죄한 피” - 요나가 그들에게는 잘못한 일이 없었으니만큼, 이제 그들이 요나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면 무죄한 사람을 죽이는 셈이 된다.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 곧 그들이 요나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는 것은 그들의 자의(自意)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도록 작정하신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5절:“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 요나에게 되어진 일, 즉 요나가 바다에 던지워지자 풍랑이 즉시 멎은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땅 속에 장사함이 되자 그의 백성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가라앉은 것이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2:40)

●16절:그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이유는 요나를 바다에 던진 죄가 자기들에게 돌아올까 하여 두려워한 까닭이다.

●17절:“큰 물고기”는 요나에게는 희생의 장소이지만, 결국 니느웨 사람들을 살려내게 되는 축복의 장소이기도 하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하셨다. 예수님이 니느웨 사람 같은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죄 값으로 대신 죽으시고 성경대로 땅 속 무덤에 내려가시는 사랑으로 우리가 큰 구원을 얻었다.

감사함이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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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요나 2장
제  목:선지자의 헌신(獻身)과 회개기도


1. 요나의 기도:1~10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사람이 물고기 뱃속에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이적이다. 하나님은 전능자시니 당신의 뜻을 위해서라면 못 하실 것, 못 이루실 일이 없다.

●3절:“주의 파도와 큰 물결” - 불순종하는 인간의 근성과 죄악성을 깨뜨려 버려야 되기 때문에 요나를 이렇게 고통 속에 던지신 하나님이시다. 곧 자신을 깨뜨려 부숴야 하나님께 남은 여생을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나는 어떻게 풍랑이 주님의 손으로 말미암은 일인 줄 알았을까? 그것은 그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체험을 통과하였기 때문이다.

① 풍랑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려고 제비를 뽑은 때에 그것이 요나에게 당해진 사실에서였다(1:7∼10).
② 요나는 자기가 바다의 던짐이 되자마자 즉시로 풍랑이 멎게 됨을 보아서(1:15) 이 사실을 더욱 확신하였고,
③ 큰 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기다리던 중에 노를 그치시는 하나님의 태도를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자기가 당한 바다 속의 고난이 주님께서 주신 것인 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분임을 체험한 그 영적 확신 밑에서 그는 주님은 바닷물까지도 주장하실 분임을 믿고(1:9) 힘써서 기도하게 되었다. 그는 파도를 이를 때도 “주의 파도”라 하였으니, 주님이 자기에게 그토록 가까이 접근하신 줄 알고서야 누가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랴? 언제나 사명자에게는 고난의 풀무가 있는 법이다.

사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니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하셨고, 

사 29: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하셨다.

완전한 인격자를 만드시려고 행하신 (사명자의 생각 밖의) 하나님의 크신 뜻이 곧 ‘고난의 풀무’요, 요나의 가는 길이 곧 선지자의 가는 길임을 보여 주셨다. 선지자의 대표는 대선지자 곧 예수님이시다.

●4절:주님이 쫓아 내실지라도 주님을 사모하고 그에게 기도함은 주님의 선하심을 맛본 종의 태도이다(벧전 2:3). 은 말하기를 “그가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고 하였다(욥 13:15).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하였다.

●5∼6절:그가 얼마나 위험한 자리에 깊이 빠졌던가 하는 사실을 진술하므로 그가 받은 구원이 전적으로 이적에 의한 것임을 밝혀준다(시 18:5∼6, 69:2).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 그가 바다 밑에 깊이 빠졌으니만큼 그것은 ‘산의 뿌리’ 곧 땅 속 깊이에 들어간 것같이 되었다.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다” 함은 바닷물의 힘이 육지에 뻗쳐 들어옴을 막아 바다와 육지 사이에 연락이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욥 38:10).

●7절:“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하다” 함은 극도의 낙심지경을 가리킨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신앙심이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밖에 없다.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함은 성전을 하나님의 계신 장소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다(시 18:6). 요나의 기도는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다.

●8절:“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비(慈悲)를 가리킨다. 시 144:2 “여호와는 나의 인자(仁慈)시요 나의 요새(要塞)시요 나의 산성(山城)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9절:요나는 여호와만 섬기며 “감사하는... 제사”를 드릴 작정이다.

●10절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3일 만에 육지에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3일 후 부활을 상징한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구약은 신약과 종말의 거울(사 46:10. 히 10:1. 롬 15:4. 고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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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요나 3장
제  목:선지자의 고난의 길


  1. 니느웨 성이 회개함:1~5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요나
는 회개하고 새 출발을 했으나 요나의 뼛골 속에는 선악과의 죄질이 깊이 박혀 있어서 겨우 하룻길을 외치고 4: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한 걸 보니 그 본색이 드러나고 말았다. 바울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함은 바로 죄의 본질을 말함이다(고전 15:31).

요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뜻을 미쳐 다 헤아리지 못하고 옹졸하게 행동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가 비록 큰 성이지만) 요나가 하룻길만 외쳐도 크게 회개 운동이 일어나도록 긍휼을 베푸셨다. 이 요나서의 예언은 종말에 와서 계 10:7∼11절같이 다시 예언되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의 니느웨는 어디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니느웨는 바로 일곱째 머리 소련이다.

요나서를 들고 마지막 선지자들이 북진(사 41:3)하면 철장권세 역사 앞에 캄캄한 영적 흑암권 곧 북방정권이 무너지고(새일성가 75장 2절), 사 18:7~같이 “그 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서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산에 이르리라”고 하신 말씀이 성취가 된다(사 7:13∼14절에 유다 왕 아하스는 불신해도 하나님은 친히 징조를 주시고 실행하신다).

●1∼5절:선지자의 전도 핵심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것으로 시한부 종말론적 멸망을 외쳤다(창 6:7, 창 19:, 신 29:23, 암 4:11, 렘 20:16, 애가 4:6). 이 전도는 요나 일개 개인의 자격으로 행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의 날에 있을 심판권세의 말씀을 대행한 전도였다(1:1).

세계 구원은 여호와께서 만대를 정하신 대로 이루어지는데 새 천년시대에 많은 백성이 필요하니 심판 전 구원받을 백성의 수를 채우게 된다. 오늘날 북방은 80년 이상 복음의 단비가 내리지 못한 영적 불모지이다. 그러나 5개월 환난 끝에 144,000명이 북진할 때 말세 전도를 듣고 많은 무리가 일어나므로 나라가 하루에, 민족이 순식간에 나오게 된다(사 66:7∼9).

예수님 당시, 유대 교회는 교만과 강포가 가득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대선지자로 오셔서 3년을 외치셨는데도 회개치 않았다. 표적을 구하던 악한 세대에(마 12:39) 요나의 표적이 실제로 일어남에도 깨닫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심판 때가 되면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라고 하셨다(마 12:41~).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가 심히 가까이 왔다. 은혜 받은 교회들이 과거 유대 교회와 비슷하게 큰 시험에 빠져서 때도 모르고, 예언도 모르고, 재림에 관하여 관심도 없게 된 현실이다. 피로 사신 교회(행 20:28)가 회개하지 않으니(협상운동=W.C.C.) 육체를 심판하시고, 오히려 니느웨(소련, 공산권, 세계의 영적 불모지) 사람을 회개시켜 천년안식에 보낼 계획이시다.

  
2. 왕의 금식 명령으로 전국이 구원 얻음:6~10

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7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백성들의 진실한 회개
●6∼8절: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다. 앗수르 왕이 이렇게 크게 변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왕의 강한 회개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짐승까지 금식을 시켰으니 철두철미한 회개 운동이었다. 니느웨 회개 운동은 의식주의(儀式主義)가 아니고 진실하고 도덕적인 회개 운동이었음이 드러난다.

①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② 그들을 멸망의 위험에서 건져낸 것은 금식이 아니었고 그들의 변화된 마음과 생활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돌이키시게 하였다.
참된 금식은 음식을 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입만으로 금식하지 말라! 눈도 귀도 손도 발도 금식에 합당한 행위에 참여할 때 참된 금식이다. 자기의 욕구 불만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금식은 미신을 섬기는 죄가 된다(슥 7:1∼14).

●9절:“혹시 뜻을 돌이키시고”라는 말은 계산된 잔꾀가 아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이다. 죄인들의 회개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책임지고 사죄와 구원을 베푸시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조건 행위가 아니다. 죄인들이 회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죄하시며 구원해 주시는 것은 그의 의무로서가 아니고 자유로우신 주권으로서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일 뿐이다. 죄 값은 사망인데, 벌써 범죄한 자가 이제 와 회개한들 그 범한 죄가 어떤 이유에서 백지화되겠는가?

죄인들이 회개해도 사죄함과 구원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만 달려 있는 것인 고로 본문에는 “혹시”라는 말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는 말도 있다.

●10절:니느웨의 회개운동을 하나님께서는 만족해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표본 삼아 회개치 않는 유대교인들을 심히 책망하셨다(마 12:41). 주님 재림 시(時)에는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들라고 신신 당부하셨건만 오늘의 영적 이스라엘은 반응이 없다. 심판 때 니느웨 사람이 일어나서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라!

우리는 다시 예언하여 이 시대의 니느웨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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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요나 4장

제  목:하나님의 완전역사와 어리석은 종





  1. 니느웨 성의 회개를 보고 불평함:1~4

『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

●1∼4절:요나는 왜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 싫어서 불평을 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원죄이다! 아담으로부터 선악과의 죄질이 유전되었으므로 모든 사람은 질적으로 타락했다. 바로 인간의 이 패역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고쳐 주시려고, 먼저는 구약을 들어서 보여주시고 종말에는 인간 원죄를 뿌리 채 뽑아내는 애굽 땅 중앙제단(사 19:19∼22)을 세워서 말씀으로 신창조된 인간으로 하여금 재림 주님을 영접시켜(사 19:1∼) 에덴동산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새 일의 역사다(사 42:9∼25).

사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그의 탐심(貪心)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悖逆)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하심같이 요나도 고기 뱃속에서 철저히 회개했는데 그 속에 살아 있는 “패역”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여 불평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새 일의 역사다. 인간은 패역한 본질을 고쳐야 된다.

사 57:18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2. 초막과 박 넝쿨 준비:5~6

5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니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는 요나 - 패역! >

요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요나가 처한 육체의 불편을 보시고 박 넝쿨을 준비해 주셨으나 요나 속에 자리한 근본적인 원죄의 원한은 없애주시지 않으셨다. 아직 새 일을 행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아도 영적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뿐이지 육체 속에 있는 원죄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오늘날까지의 모든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히 9:27). 육체의 사망은 아담의 범죄, 선악과의 죄 값이다(창 3:19).

●5∼6절:그런데 요나는 자기 속에 자리한 죄의 본질은 문제삼지 않고, 당장의 고통을 감해주는 박 넝쿨이 좋아 기뻐했다. 우리는 요나같이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을 삼지 말고, 멀리 내다보며 진리의 말씀을 거역치 않는 순종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 넝쿨이 문제가 아니고 ‘뼛골 속에 박힌 원죄’가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이기고, (재림 때 새 일의 교훈으로) 또 이기시는 것이다(계 6:2). 이 ‘또 이기는 역사’를 성취함에 있어 우리를 택하시어 다시 예언하라고 부탁하신 것이니 순종할 뿐이다(계 10:11).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는 누구든지 육체에 재앙이 온다(계 22:18∼19).



  3. 벌레와 동풍을 준비하여 책망하심:7~11

7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昏困)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

●7절:하나님은 영적 문제를 깨우쳐 주시려고 벌레를 준비하셨고, 또한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셔서 요나를 깨우쳐 보셨다. 사명감을 일깨워 주고자 하심이다. 요나는 동풍 때문에 또 다시 죽기를 원하였다.

●8절:“스스로 죽기를 구하였다” 함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취하여 가기를 기원함이다. 죽도록 충성치 못한 죄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교육하시기 위하여 그들로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라고 시편에서 교훈하셨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를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신 말씀으로 후세에 많은 종들이 깨우치도록 다윗을 통하여 크게 교훈하셨다(시 51:1∼17).

●9절: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저지른 또 한번의 합당치 않은 분노를 지적하시며 그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나 요나는 이번에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라며 하나님 앞에서 항변까지 한다. 요컨대 요나의 행위에서는 인간의 부패성(원죄의 질)이 표본적으로 나타난다.

오늘의 모든 교회가 이 부패성을 해결치 못하고도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줄로 알고 있는데 큰 착각이다. 사 42:9절에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하셨고 :21∼여호와께서 새 일의 교훈을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종들이 도적을 맞아 육체가 불타도 깨닫는 자가 없다고 하셨다(사 42:22∼25).

단 10:8∼의 다니엘 선지도, 계 1:13∼20절의 사도 요한도, 재림 주님의 모습을 보는 즉시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유는 아담으로 부터 물려받은 원죄의 부패성 때문이다. 이것은 새 언약의 피로서는 해결이 안 되고 피로 사신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새 일의 교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오늘까지 2,000년 동안 영혼의 기쁨은 충만하여도 육체의 구원이 없는 이유는 아직 새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말에 마땅히 될 일이 하나님의 새 일 역사이다(사 43:19∼). 새 일의 교훈을 통과하지 않고서도 새 시대, 새 땅을 밟을 수 있다면 성경은 거짓된 책이 되며 하나님은 불법의 신이 된다.

●10∼11절:박 넝쿨은 요나의 수고와는 상관없이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시든 것인데 요나는 왜 불평했는가?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도 분변(分辨) 못하는 귀염둥이들과 수많은 생명과 육축들이 있는데 요나는 이를 생각지 못하고 자신만을 아꼈기에 실수를 범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며 하나님의 참된 종이라고 자부하는 믿음 좋은 ‘우리들’... 혹시 이 시대의 요나는 아닌지...? ....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범사에 조심하며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들고 산순교의 제물이 되자!

할렐루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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