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1:~41:


성 경 : 예레미야 31장
제 목 : 안식으로 가는 (새 언약) 과 (새 )


참 종교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죄인들을 안식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책이며, 이 안에는 영혼을 구원하는 새 언약과, 악을 심판하고 몸의 구속을 이루는 새 일과, (새 언약과~새 일)을 통과한 자들이 들어가는 새 천년 안식시대와, 천년 후 백보좌 심판을 거쳐 들어가는 영원 무궁세계가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새 언약의 사자로 오시어 십자가로 승리하셨고, 또 재림하실 때 기록한 모든 예언을 이루심으로 두 번 승리를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힘과 능으로는 당치 못할 동방의 새 일 역사이다. 

계시록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여기에 '흰 말 탄 자'의 역사는 '기독교 복음운동'의 역사로서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계 19:16절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의 역사이다. '활'은 복음의 진리 곧 좌우로 날선 말씀의 칼이요(히 4:12), '면류관'은 승리요, '이기고'는 기독교 복음운동의 1차 승리인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요(골 2:15), '또 이기려고'는 계시록과 예언서로 이 땅에 원수 마귀를 없애는 완전 승리로서 기독교 복음운동의 2차역사인 <초막절 승리>이다(계 19:19).
 요한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생명의 예수님께서는 "인자(人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셨으니(마 12:8), 이분만을 따라가야 참안식에 이를 수 있다.
 
◈ 안식에는 4가지가 있다.

① 마음의 안식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예수의 피가 마음에 들어오면 모든 죄(자범죄)가 사해지므로 그 영혼이 죄로부터 해방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요 1:12. 빌 3:20). 찬송가 205장
② 몸의 안식 : 피로 산 책 예언서가 몸에 들어와 새겨질 것이 다 새겨지면 변화성도가 되는 축복을 얻는다.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슥 3:9)" 모든 예언서가 마음판에 새겨지면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하신 말씀이 성취된다(사 25:6∼8).
③ 지상 안식 :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악을 제하시고 선을 택하시면 버터와 꿀이 넘치는 1000년 안식 펼쳐진다(계 20:4∼6. 사 7:15).
④ 영원무궁 안식 : 예수님이 1000년을 통치하신 후, 무궁 안식 세계가 펼쳐지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신다(고전 15:24∼. 계 21:).

지금 최종적인 안식을 향해 가고 있는 우리는 몸의 안식(몸의 구속)을 받기 위해 오래 묵은 포도주를 먹고 있는데, 이 포도주(사 25:6)만이 우리의 육체를 개조시킬 수 있다(사 19:19∼22, 43:1∼2). 안식으로 가는 역사는 너무나 중요하며, 성격을 달리하는 2가지 역사(영, 육)이므로 구약에서 "출애굽 역사"와 "출바벨론 역사"로 구분하여 2차례로 보여주신 것이다(사 11:16∼. 미 7:15∼. 호 2:15∼. 사 46:10). 출애굽은 유월절 사건으로 영혼의 구원이요, 출바벨론은 초막절 사건으로 영,육의 완전한 구원이자 에덴 본토 회복이다.

  
1. 이스라엘 회복의 선포 : 1~14

『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 영적 이스라엘이 영혼과 육체가 완전구원을 얻어새 하늘과 새 땅(사 65:17~24)에서 1000년 안식을 받아 누릴 것을 말씀하신다.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린 에덴을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다시 찾아서 1000년 안식 세계를 이루게 된다.

 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

육적 이스라엘이 애굽 칼에서 벗어나 시내 광야에서 은혜(만나)를 얻었듯이, 영적 이스라엘도 영적 애굽인 이 마귀세계를 예수님 피 권세로 벗어나 광야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 성령도 받고 은사도 받았다. 이제 이러한 기독교는 지상세계의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 시온산 정부(가나안=천년왕국)를 향해 한걸음씩 진군하고 있다. 구약 출애굽 유월절 역사가 430년 만에 이루어졌듯이(출12:40~41), 예수님도 말라기 선지를 마지막으로 부패한 성전 문을 닫으시고(말 1:10) 430년 만에 유월절 양으로 오셨다. 같은 원리로 출바벨론 70년 역사도 구약에 한 번, 종말에 한 번 (영적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지는데, 북편 땅에서 나오는 영적 70년 회복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비교할 수 없이 큰 역사라 하셨다(렘 16:14~15, 23:7~8, 31:8). 창 15:13, 출 12:40절의 430년은 표면적 유월절이요, 말 1:10 ~ 눅 16:16까지의 430년은 이면적 유월절 역사이다(430년=400년+요셉의 선 이주시기). 우리 기독교는 지금 유월절 양 예수를 영접하고 안식세계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처녀 이스라엘이다.

『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새 언약 피로) 영이 산 영적 이스라엘을 (새 일) 육체까지 구원하여 천년 안식을 주신다는 예언이다. 하나님은 영이신데(요 4:24)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영광을 돌리게 함과 동시에 축복을 부어주고자 하는데 창조의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되므로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이켜 복주고 찬송받자는 것이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이 된다.

『 
6 에브라임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

세계적인 이스라엘이 북편 바벨론(8째왕과 10뿔)의 정권, 교권을 물리치면, 그 남은 자가 돌아와 시온산 정부를 건설한다. 구약 때 스룹바벨 총독이 바벨론에서부터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의 역사로 성곽이 건축된 것은 종말을 보여준 거울이 된다. 종말의 회복 역사에서 남은 자가 되어 돌아올 자들은 부귀, 영화, 권세 가진 자가 아니라 지극히 천한 자들이다.

『 8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

"북편 땅"은 구약 때는 바벨론이지만, 종말에는 러시아를 주축으로 한 10뿔의 연합체이자 이 바벨 세계이다. "그들을...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이들은 "새 일의 교훈"을 따라오는 자들인데, "소경"이라 함은 세상 것은 못 보아도 말씀에는 눈 밝은 자를 뜻했고, "절뚝발이"는 주의 말씀으로 인해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겸비케 된 자로서, 세상과 벗하지 않으므로 세상 성공대로에서 낙오된 자를 뜻했다. 소경, 절뚝발이, 잉태한 여인, 해산하는 여인에 대해서는 홈페이지 >> 백마 >> 주제별정리 >> "쫓겨난 자"를 참조하라.

사 66:7~9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 
9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울며 올 것이며" 구원의 기쁨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이다. 영,육의 구원가족의 구원을 받고 흘리는 귀한 눈물이다.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실상은 에브라임이 차자요, 므낫세가 장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차자를 장자로 만들고 장자를 좇아내시기도 한다. 성경에는 이러한 역사가 많다. 실상은 '에서'가 장자이나, 출 4:22 "이스라엘(야곱)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하셨고, 실상은 르우벤이 장자이나, 대상 5: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하셨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이와 같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마 19:30). 선민인 '이스라엘'이 영적인 방면에서는 꼴지가 되었지만(유대인의 기독신자비율=2.25%), 유대로부터 가정 먼 이방 땅 '한국'은 영적으로 으뜸이 되어 있다. 꼴찌를 1등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 우리는 감사할 뿐이다(한국의 개신교비율=19%, 신구교통합=31%).  

『 
10 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아름다운 소식"을 전 세계에 전파하란 뜻이다(사 40:9~10). 70년 간은 진노하셨으나 이제는 노함을 푸셨기 때문이다. 슥 1:12~16 "유다의 진노"에서의 '유다'란 영적 유다 대한민국을 뜻한다. 한국이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을 강제 체결당하였는데, 이로부터 70년을 맞는 해는 1975년도이다. 이 때가 영적 유다 대한민국에서 학개, 스가랴서가 성취되는 기한이다. 이 두 선지서가 깨달아져 다시 예언함이 없고서는 종말의 영적 성전, 성곽 건축은 불가능하다. 고로 1974~1975년도에 걸쳐 열려진 학개, 스가랴서의 성취가 동방역사에서는 주춧돌과 다름없다.

『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

에덴동산이 다시 와 근심이 없는 새 시대 이룰 것을 말씀하셨다. 사 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모든 예언서가 성취되면 약속대로 성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구약은 종말을 미리 보여주고 고하는 때인데, 메시야께서도 마 26:24절에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하시며 사형틀 십자가를 지시고 모리아(골고다) 산에서 돌아가셨다. 이는 미리 보여준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제사가 성취된 사건이다. 제물로 바쳐진 이삭이 곧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바쳐진(사 53:5. 롬 3:25) 성자 예수님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율법과 시편과 선지자의 예언대로 죽었다가 부활하였는데 어찌하여 성경을 더디 믿느냐?" 하시며 책망하신 것은 여호와의 책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다(눅 24:25, 44) .

이제 인간 종말에도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 곧 성경대로 심판하러 오실 때, 예언서를 믿지 못하여 심판 몽둥이로 작정된 북방세력과 타협하는 자들은 심한 책망을 당하며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영적 유다에서 밝아진 학개, 스가랴의 70년 회복 역사를 깨닫고 북방 적기독 정권 및 타협교권과 싸우며 우는 자들은 주님 오실 때 상급을 받고 즐거워 춤추며 새 시대(고토)로 들어가게 된다.

『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기쁨"에 대한 말이 4번(즐거워 하겠고, 즐거워 하리니, 즐겁게 하며, 기쁨을 얻게) 나오고 "흡족", "만족"이란 말이 뒤따르는 데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예언을 이 땅 위에서 성취시켜 주실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 기쁨은 오직 기독교의 참 성도들 가운데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2. 선민의 비탄과 하나님의 긍휼인 새 일 : 15~22

『 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함"은 4번 이루어진다. 
① B.C 587년 시드기야 왕 때 유다가 바벨론에 잡혀가므로 야곱의 부인 (교회의 어머니로 상징되는) 라헬의 울음이 있게 된다(7머리 짐승국가가 라헬의 자식을 죽일 때마다 라헬은 통곡하였다). 

② 라헬은 라마에서 신고(辛苦) 끝에 베냐민을 출생하고 죽게 된다(창 35:16~19). 본문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언한 것이다. 

③ 마 2:17~18절을 보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시기 위해 '한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를 유대 분봉 왕 헤롯이 죽이려 할 때, 본문인 렘 31:15절이 인용되어 이루어졌다(야곱의 왕 예수님께서 3대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유월절 역사에 착수하려 할 때, 무서운 사단의 훼방이 있으므로 베들레헴과 그 온 지경에 라헬의 통곡성이 울려 퍼졌다). 

④ 마지막으로 북방에서 환난이 올 때 이 본문이 또다시 성취되어 라헬로 상징되는 교회의 최후 소망인 새 일이 창조되므로 새 시대가 회복된다. 새 시대가 창조되면 라헬은 그곳에서 그녀의 후손들과 다 같이 만나서 즐거움을 나누며 할렐루야를 외치게 된다. 그러나 먼저, 초막절 환난 때 예수님의 가지들인 144,000명이 고난의 길(전 3년 반)을 통과할 때 마지막으로 라헬의 통곡성이 크게 울리게 된다.

아무리 붉은 용의 앞잡이인 공산당이 라헬의 자식(촛대교회)을 삼키려 해도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시므로 당해낼 수가 없다.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좇아감에 있어 남은 힘을 다 짜내는 해산수고를 해야만 된다. 그래야 철장권세의 종이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최후의 소망>이 엄청난 축복의 '새 일 역사' 역사임을 알고나 있을까?

『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

• 16절 : 돌아올 것을 예언하셨는데, 과연 예언대로 유대 민족은 B.C.538년에 고레스의 해방령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그 때는 에덴동산이 회복된 때는 아니었다. 종말을 보여준 거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인간 종말에는 영적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하나님의 인맞은 144,000명이 나오면 예수님과 같이 에덴동산 1000년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것이 분문에서 예언한 진정한 "회복"이다.

• 17절 : 인류 최후의 소망은 새 일이다. 구약 최초의 소망은 모세의 출애굽 역사였고, 최후 소망은 출바벨론 역사였다. 이와 같이 신약의 최초 소망은 새 언약을 통해 영적 이스라엘이 죄악 세상에서 출애굽하는 것이요, 기독교 종말의 최후 소망은 거듭난 성도가 지상에덴을 차지하기 위해 태산 같은 북방 적기독 세력의 미혹을 이기고 영,육이 안식을 얻는 천년안식시대를 차지하는 것이다(동방 새 일의 출바벨론 역사).  

그러나 아무나 돌아올 수가 없다는 것이 법이다. 마태 25장의 지혜 있는 다섯 처녀처럼 신랑이 더디 오셔도 불을 밝힐 수 있는 <등과 기름>을 예비한 자들만이 주님과 함께 지상 천년안식을 누리게 된다. 종말에 <3대 화>가 지나갈 때 궤휼자가 심히 궤휼을 행하여 세계를 황폐화시킬 것이지만(사 24:16), 순종자들은 고집을 버리고 때를 따라 예언의 법에 순종하므로 궤휼을 이기고 3대 화를 피해 새 시대를 차지하게 된다. 새 언약의 성취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것처럼, 새 일의 성취로써 우리들의 영과 육을 환난으로부터 구하여주실 것이니, 우리는 세상 소망을 접고 이 시대가 노아 때와 같음을 알고 재림 주 영접 준비에만 최선을 다하자(마 24:37∼). 그리 하면 우리가 비록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와 같을지라도 매를 맞고서 끝에 가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긍휼하심을 얻어 승리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 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70년(슥 1:12)이 지나면 영적 이스라엘 12지파가 영육구원을 얻기 위해 '큰 바벨세계'에서 나올 것이로되 왕권자는 하나님의 인을 맞아  5개월간 황충 떼를 물리친 후 '이긴 자'가 되어 돌아오며, 백성될 자들은 이들의 다시 예언 전도를 받고 회개하며 울고 나올 것이다(계 7:9~17). 그러나 이 역사는 패역을 가진 인간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하나님이 친히 새 일을 창조하시므로 강권으로 행하시는 것이다.

『 
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

"길표" 는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을 고토로 안내해 줄 표지판이니, 오늘날에는 곧 성경이다. 이 예언처럼 '탈선한 정숙치 못한 계집' 같은 종말의 기독교가 다시 표목을 세우고 향하여 갈 길은 '새 일' 곧 야곱의 도(道)뿐이라는 것이다. 협상 및 타협의 길표를 좇다가 멸망할 운명의 그들에게 주님은 사랑을 베푸시어 지금이라도 돌이켜 '새 일'의 표지판을 따라만 오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살리라"는 예언이다. 살려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세우라" 명하신 길표를 무시하고도 살아 남을 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패역한 딸아" 기독교는 주님의 이 부르심에 "예" 하고 답해야 한다. 이 패역은 아담의 원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지독한 죄의 질로서 뼛골 속에 깊이 박혀 육체를 썩게 하는 원죄의 뿌리이다. "딸아" 하고 부르신 것은 이 패역이 다름 아닌 교회 안에서 극성이란 뜻이다. 협상의 길은 방황의 길이요, 협상하는 교회는 패역한 딸이지만, 여호와께서는 이 예언을 통해서 기독교의 최후 소망인 새 일을 창조하시므로 '변화성도'와 '흰무리'를 끌어내신다 하셨다(계 7장). 원죄를 제하시는 이유는 이제 이스라엘의 육체까지 고쳐서 새 시대에서 천년을 살다가 영원 무궁세계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 일'은 패역한 딸을 살려주시는 복된 일이니, 교회 편에서는 최후로 가질 소망이요 하나님 편에서는 긍휼을 베푸시는 마지막 사랑이다. 여기서 불순종하면 영멸(永滅)이다.

슬픔, 전쟁, 질병, 사망이 없는 젖과 꿀의 새 천년 안식세계는 새 일을 통과한 '변화성도'와 '이전 순교자들'이 왕권을 받아 통치하게 된다. 천년 후 물질계가 폐하여지고 더 좋은 신천신지인 무궁안식세계가 열릴 때에는 새 일을 통과해 들어온 새 시대 백성과 백보좌 심판에서 영생의 부활로 일어난 자들이 다 함께 모여 생명과도 먹고 생명수도 마시며 딩동댕동 거문고 타면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며 안식하게 된다(천국). 이 땅에서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간 자들은 천년 후 마귀가 풀려나도 미혹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영원무궁세계로 그대로 이전되는 것이다.

이토록 귀한 새 일을 제껴두고 어찌 
새 언약만을 고집한단 말인가? 31절의 "새 언약"은 자범죄를 씻어주나 육체는 풀과 같이 죽었다가 백보좌 심판 때 부활하는 <그동안(2000년 간)의 역사>였으나, 이제 창조되는 새 일은 '에덴이 회복되는 직전의 시기'에 6,000년 뿌리내려 온 원죄를 소멸시키고 패역한 육체를 신창조하여(사 43:1~3) 지상 천년안식에서 죽음 없이 살게 해주는 인류 최후의 소망이 되는 <지금부터의 역사>이다.

새 일의 성취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 42:9 "보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고해주는 일이 있다. 다음은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새 일로써 패역한 몸을 신창조하여 물과 불이 못당하는 철장권세를 주신다(새일성가 26장4절). 이들이 적기독의 세력을 쳐부수면, 사 43:19절대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하신 말씀이 성취되어 이 땅은 저주가 물러간 안식의 땅으로 변화된다.

구약 민족의 70년 출바벨론 역사가 인간 종말에 있을 '새 일'을 거울로 보여준 역사임을 깨닫는 눈은 너무나도 복되다(
종말의 70년 회복).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 계 12:1~12절에 한 여자가 해를 입고 철장 든 아들을 해산하는데, 이는 "큰 이적"으로 표현된 바 144,000명이 나오는 인류 대 진통의 역사인데, 9.24 제단으로부터 출발하는 촛대교회 역사를 뜻한다(단 4:1~37). 여자는 '교회'를, 남자는 권세 받은 종들인 144,000명을 의미한다.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와 철장 든 아들의 역사는 계 11:1~12절에 1260일을 다시 예언하는 말세 증인들의 역사와 같다. 이들이 증거를 마치고 3일 반 죽었다가 생기를 받고 공중으로 들림받았다가 42달 후 지상에 내려오면 이 땅 위에 악인들은 전멸의 화를 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류 최후의 결전인 아마겟돈 전쟁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4마리 말이 뛰어다니지만 승리는 백마 세력 144,000명에게만 있다(계 14~19장).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얻은 것도 큰 이적이요,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탄생한 일도 큰 이적의 역사였다. 또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세워서 영적 이스라엘 12지파를 만드신 것도 신령한 이적이라 할 수 있다(눅 22:30). 이제 종말에 햇빛 같은 예언서를 입어 세워진 스룹바벨 제단에서 144,000 명의 권세 종을 일으키는 마지막 이적의 역사만이 남아 있다. 사단은 이 일이 성사되지 못하도록 악의 세력을 총 동원하고 있지만, 이 일은 여호와의 신(슥 4:6)으로 되는 역사이므로 피조물이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의 힘으로 추수해는 역사, 씨뿌리신 그분이 거두시는 역사, 시작하신 그분이 유종의 미를 거두는 역사! 그것이 바로 계 12:1~ '큰 이적'을 이루어내는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초막절 역사다. 이것을 줄여 말하면 '동방역사'요, 더 줄이면 '새 일'이다.

'새 언약'만으로는 민족과 세계를 육체까지 안식할 새 시대로 인도할 수 없다. 고로 하나님은 순서에 맞게 일을 하시되 지금은 마지막으로 '새 일'을 행할 때라고 미리 기록하시고는 알려주시는 것뿐이다. 마귀의 지배권 아래 놓여 신음하던 지상세계를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참 안식세계로 변화시키는 세계 통일의 대 역사가 바로 '새 일의 역사'이다(새일성가 16장). 그러니 새 일을 이단이라 하는 자들에게는 이제 죽을 일만 남아 있다. 그들은 죽는 길을 향해 가도 우리는 살려보려고 죽기까지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의 새 언약의 피가 내게 들어오면 새 사람이 되는 것이요(고후 5:17), 예수님이 피로 산 예언의 말씀이 내 몸에 들어오면 내 육체가 변화를 받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보이는 구원의 큰 두 줄기이다(사 25:6∼8, 슥 3:9∼). 고로 육체로 새 시대에 들어가기 원하는 자는 반드시 예언의 법을 지켜야 한다(계 22:18∼19). 새 언약의 피로는 영적 이스라엘을 만들었으나, 이제 새 일의 교훈으로는 완전한 인격을 만들어 영,육이 가족-민족적으로 1000년간 새 땅에서 살다가 무궁 안식으로 이전하게 된다(계 20장. 사 65:17∼24).

지금 교만한 자는 새 일을 깨닫지 못하여 반대만 하고 있지만 북방에서 환난이 오면 깨닫고 돌아와 촛대교회로 들어올 자가 많다(초막절 성취 / 슥 4:7~10. 사 66:7~9절 참조). 이스라엘은 
3대 절기를 통해서만 완전한 축복을 받아 새 시대로 들어감을 잊지 말자(출 23:14∼).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이 성취되어 은혜시대가 펼쳐진 지가 2000년이 되었다. 이제 종말에 이루어질 마지막 절기 초막절만이 남아 있는데 성취방법은 여호와의 새 일 교훈이니, 새 시대에서 심령과 육체의 완전한 안식을 얻고픈 자는 자나 깨나 '여호와의 새 일'을 잊지 말라(사 42:9∼24).

  
3. 교회의 회복과 인축(人蓄)의 번영 : 23~30

『 23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

구약 당시에도 유다가 바벨론에서 70년 만에 귀국할 것을 예언했었는데, 이것은 종말을 보여준다는 차원이다. 이제 북방 붉은 말 공산주의 사상과 청황색 말의 쑥물 속에 갇혀 있던 택민이 돌아와서 시온산 정부에서 안식을 누리게 됨으로써 이 예언은 최종적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 함께 거하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

구약에서 가나안 복지가 회복됨은 종말적으로는 천년안식이 올 것을 의미한다. 예레미야에게 먼 훗날에 되어질 동방역사를 그 당시의 환경에서 묵시로 보여줄 때, 하나님은 훗날 예레미야의 동생들인 우리가 읽어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할 수 있도록 모략적으로 기록해 주셨다. 끝날을 보여주는 것이 구약 종말이다. 구약은 그림자요, 신약은 실물이다(히 10:1).

• 26절 : 선지자는 꿈에서 이상을 받아 썼다. 그 꿈은 달았으며 상쾌했다. 속뜻은 몰랐어도 인류에 큰 소망을 주는 좋은 꿈이라는 것은 알고 흡족해 했다. 이제 이 속뜻을 우리가 전하면 예레미야 형님이 우리 동생들 잘한다고 박수를 쳐줄 것이다.

『 
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70년 전에 불순종하던 이스라엘과 유다를 북방칼에 붙인 것같이, 70년이 차면 스룹바벨 사상을 가진 자만 고토에 귀국시켜서 안식을 얻게 하신다. 구약 때 바벨론에서 회복한 것은 종말에 대한 거울일 뿐, 이 예언의 참된 의미는 오늘의 북방 공산당의 궤휼주의 미혹에서 돌아오는 자가 새 시대에 회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니 

짐승의 표 666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600, 육 백= 붉은 용 마귀 (영권). 
60, 육 십 = 공산주의 적기독 짐승 (정권). 
6, 육 = 음녀, 거짓선지 (교권). 
예비처에는 새 시대에서 번성할 사람과 짐승이 함께 들어간다.

『 
29 그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

마지막 심판 때에는 각자가 자기 죄를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하였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또 계속하여 후손이 그 죄값을 치루는 길에 있게 된다면 살길이 없다. 유대 왕 르호보암은 악한 왕이었으나(대하 13:7) 그 아들 아비야는 흠이 없고 참된 신앙인이었으므로 형통하였고(대하 13:19), 아하스 왕은 우상을 섬긴 자로서 악하였으나(대하 28:22) 그 아들히스기야는 선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예를 볼 수 있다(왕하 19:14~19, 20:1~7). 같은 예로 아몬은 악한 왕이었으나(대하 33:22~23) 그 아들 요시야는 선한 왕이었다(왕하 23:25). 

이런 사실을 볼 때, 당시의 유대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죄의 유전)을 그치게 하리라 하신 언약은 신약시대로 넘어와 하나님의 십자가 공의와 
새 일의 말씀으로 이루실 것을 알 수 있다. 죄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해결될 것이니(새 언약+새 일) 예언서를 읽는 자들은 회개할 따름이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원망하는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저희 조상의 죄를 자손들에게 물려주시어 저희로 망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출 20:5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신 말씀에 기인한다. 이 말씀의 의미는 범죄한 자의 자손 삼 사대가 예외없이 그 조상의 죄값을 일률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조상의 범한 죄악을 계승하며 회개치 않는 한, 조상들의 죄값을 그대로 받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역사가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유다 왕들은 아버지가 선하나 아들은 악한 왕으로 정치한 자가 많았고, 반대의 경우도 허다한 것을 보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4. 새 언약과 새 시대 축복 : 31~40

『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유다 집과 이스라엘 집"은 이스라엘 12지파를 가리킨다. 옛 언약 율법은 진노만 이루니(롬 4:15), 새 언약 예수님 피로 영혼을 구원해 주실 것을 주전 600년 경에 예언한 것이다.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음을 기록한 것이 히 9:11~22절의 내용이다. 4복음서는 유월절 새 언약의 일들을 기록한 복음서이다. 율법에서 증거하는 예수님은 아담으로 오실 예수(롬 5:14), 모세로 오실 예수님이시다(신 18:15. 행 3:22).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롬 8:1~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구약에서 보여줄 때 애굽의 칼에서 430년(출12:40)만에 벗어나 시내 광야에 도달하여 은혜를 얻으매 하늘에서는 매일 만나를 내려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터져 마시게 된 이적이 있었다. 그러나 가나안을 앞두고 200만 이상의 출애굽 대중이 다 쓰러졌으며 오직 여호수아, 갈렙 두 사람과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만이 남아서 가나안 안식에 들어갔다(민 14:30). 이 역사는 종말을 거울로 보여주심이니 거울을 보고 오늘날을 볼 때, 영적 이스라엘이 아무리 많아도 여호수아, 갈렙같이 말씀의 법궤(예언서)를 메고 용기 있게 요단강을 건너야 하겠다는 사상이 없으면 새 천년안식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교훈하신 일이 분명하다. 홍해는 유월절 양의 피로 건넜으나 요단강은 문설주의 피권세로 건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법궤만 바라보는 용사적 신앙으로만 건널 수 있음을 뜻한 것이다(유월절은 양의 피, 초막절은 피로 산 말씀 / 계 5:1~9).

오늘날 2,000년간 선지자의 예언대로 새 언약이 이루어졌건만, 유대 교회는 지금까지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옛 언약에 거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눈 먼 소경이 되어 있다는 증거이다(요한 9:39∼41. 사 42:18∼. 마 15:14).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하신 말씀대로 새 언약은 영혼구원만을 약속한 언약이다.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은 복되다. 하나님은 시대적으로 구원을 완성해 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놋뱀이 버림돌이 되었다가 머릿돌로 다시와 마귀를 쳐부수기까지>


요한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계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놋뱀 시대
버림돌 시대
머릿돌 시대
육체의 예법(히 9:10)
자범죄를 제하라(히9:11. 마11:28)
원죄까지 제하라(사25:6~8. 슥3:9)
언   약
옛 언약
새 언약(히9:15)
새 일(사42:9. 렘31:21)
흠이 있음
흠없이 영혼구원
흠없이 영육구원(변화체)
판   결
돌에 맞아 죽음(안식이 없음)
육체가 쓰러지나 천국차지
완전변화로 새 시대와 천국차지
교   회
모세 광야 교회
(행7:38. 출25:1~31)
예수 피로 산 교회
(행20:28)
재림주 영접할 촛대교회
(계1:13~20. 사19:19. 학2:6~7. 슥4장)
쓰이는 법
율법(모세 5경). 신27:26
은혜(4복음과 편지서). 갈1:8. 롬3:27
예언(계시록과 선지서). 계1:3. 22:8~19
대   적
옛 뱀, 마귀, 사단, 붉은 용(계12:9, 20:1~3. 창3:1~15)

『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

"새 언약"은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과는 다른 것이다. 사 54:5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하셨는데(렘 3:14,20. 마 25:1~13. 엡 5:22~33), 육적 이스라엘은 아내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쫓겨났다(사 50:1~3). 그래서 새 언약으로 사랑을 베푸시고 조건없이 무조건 받아주신다는 것이 아가페 사랑의 영혼구원 역사인 것이다.

『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예수님이 새 생명인 피를 주셨고, 또 성경대로 성령을 주셨고, 요 1:12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는 자는 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육체는 죽어도 영혼만은 화목한 자녀가 된 것이다(롬 3:27).

『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새 언약의 내용으로서, 구속 얻은 자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는 약속이시다. 예수 안에만 들어오면 무조건적인 속죄함을 받으리라는 약속이다. 이러한 자들만 모여 40절같이 성지가 된 땅에서 살게 되면 그곳이 바로 천년왕국이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짐을 예수님께로 전가시키셨고, 예수 피로 산 바 된 자녀들이 피로 산 말씀까지 순종하여 차지한 새 시대에 가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사 11:9, 합 2:14절이 성취된다.

『 
35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36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3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을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문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것이라 39 측량줄이 곧게 가렙 산에 이르고 고아 방면으로 돌아 40 시체와 재의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데까지와 동편 말문 모퉁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밭에 이르리니 다 여호와의 성지(聖地)가 되고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하리라 』

자연계(自然界)의 질서가 변동될 수 없는 것처럼 역사계(歷史界)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구원도 하나님의 수중에서 계획대로 질서있게 이루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계시를 보아서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알 수 있다. 구약 때는 보여줄 때이니 세계를 축소하여 모리아산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주셨지만, 신약 때에는 이 율법이 개혁(히 9:10)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었으니 구원도, 심판도 세계적 역사가 되므로 지구촌 자체가 1,000년간 새 시대 성지(聖地)가 된다는 예언이다. 

이미 새 언약은 성취가 되었으며 새 일 역사도 준비가 완성된 단계에 있으니 선지서의 예언대로 환난만 일어나면 하나님의 새 일의 철장권세로 원수의 골통을 파쇄하고 선한 것만 남겨(사 7:15)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어 첫 아담에게 약속한 에덴동산이 회복되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창 1:28) 예수 그리스도께 통치 받는 메시야왕국이 성경대로 성취된다.

은혜를 받는데 있어서도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훈이 숨어 있던 것이니 바로 "그리스도의 비밀"이었다(엡 3:1∼21). 마찬가지로 환난 시대에 재앙을 피하는 데도 숨은 교훈이 밝히 드러나야 한다. 그것은 바로 깊이 감취어진 은비(隱秘)한 일인 새 일의 비밀이다(사 48:6). 이것은 종말이 되어서야 나타난 "하나님의 비밀"이다(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셨으니,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바로 이 시대의 비밀이자, 흑암을 밝히는 예언의 등불 '새 일'인 것이다.

새 언약의 말씀을 세계로 외치가는 역사가 은혜시대의 천국복음 역사였고, 이제 새 일의 말씀을 세계로 외치는 역사는 환난시대의 영원한 복음 역사이다. 우리에게"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내용은 바로 <영원한 복음>을 뜻한 것이다(계 10:11).

우리가 배에는 쓰지만 주께서 명령하신 작은 책을 꿀같이 먹고, 하나님의 비밀을 이 시대에 다 증거하면 32장에서 보여주신 회복된 국토(고토=에덴동산)에서 주와 함께 불가불 왕 노릇하게 될 것이다. 붉은 용 마귀는 이 일을 방해하려고 큰 입을 벌리고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끝까지 참고 견딜 인내와 진실함을 주께서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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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2장
제 목 : 국토회복의 이상


1. 예레미야의 예언과 금고 : 1~5

『 1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년 곧 느부갓네살의 제 십팔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선지자의 예언은 역사성(歷史性)을 그 생명으로 지니고 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한 연대가 이중(二重)적으로 표기된 것은, 이 말씀이 내린 시간적 위치를 명백히 표기하는 것이니, 성경은 인간의 머리로 짜낸 소설이 아닌 것이다(시드기야왕 11년 = 느부갓네살왕 18년).


『 2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였다. 그런데도 유다인은 예레미야를 박해하여 감금시켰다. 영적으로 소경이 되어 현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북방세력이 성경대로 "끓는 가마"로 등장하여 북방에서부터(렘 1:13~) 내려올 것이 예언되었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예레미야서를 증거하는 스룹바벨 선교회를 이단시하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 3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취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운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4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가 나의 권고할 때까지 거기 있으리라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치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더니 유다 왕 시드기야가 가로되 네가 어찌 이같이 예언하였느뇨 하고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

예레미야가 감금된 원인이 나타나 있다. 
첫째,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점령하리라 말한 것
둘째,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에 잡혀갈 것이라 외친 것
셋째, 유다 민족이 갈대아인과 싸워도 패배하리라는 것

"네가 어찌 하여 이같이 예언하였느뇨" 시드기야는 이 예언을 사람의 말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를 가두었음이었더라"  언제든지 악정자(惡政者)의 시대에는 간신배(姦臣輩)들이 용납되고 충신(忠臣)들은 박해를 받는 법이다.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이것은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져 그 목전에 서게 되리라는 예언인데, 39:4~6절에서 정확히 성취되었다.

  
2. 예레미야가 사촌의 토지를 매매함 : 6~15

『 6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7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8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9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주되 10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11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12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 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13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

6~15절은 예레미야가 감금된 동안에 하나님께로부터 계시 받은 내용이 하나멜을 통해 행동적(실천적)으로 예언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자마자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와 계시대로 행동한 것을 볼 때 아버지의 말씀은 정확무오하고 이루어내는 권세가 있다. 예레미야의 근족 하나멜이 찾아와 밭을 사는 행위예언은 유다 나라가 70년 후면 고토로 돌아와 다시 토지를 매매하는 평안한 시절이 있을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근족이요, 형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잃어 버린 에덴 곧 천년왕국을 우리에게 되찾아 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7절)" 이것은 레 25:32~34절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환난을 앞두고 있는 자들로서, 예수님의 마 6:19절 말씀같이 복있는 삶, 곧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하면 주님 오실 때 새 시대에서 쌓아 놓은 만큼 갚음을 받을 것이다. 성도들이 당해왔고 또 당해야 할 고난, 핍박, 빈핍은 실로 무섭고도 감내하기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하신 예수님의 한 말씀 앞에 이 모든 것이 녹아질 것이니 성도는  감사할 뿐이다(새일성가 70장 4절).

  
3. 과거의 은혜와 현재의 고난 : 16~25

『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친 후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비의 죄악을 그 후 자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 주는 모략에 크시며 행사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에 주목하시며 그 길과 그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20 주께서 애굽 땅에서 징조와 기사로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외인 중에 그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 주께서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주의 도에 행치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하신 일을 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 보옵소서 이 성을 취하려 하는 자가 와서 흉벽을 쌓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나이다 』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한 가지 의문을 표시한다. 그것은 곧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를 점령하게 되었는데 무슨 이유로 하나님께서 밭을 사라 하시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기도 중에 먼저 하나님의 권능과 공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뒤(16~24), 그 기도 끝에 이르러서 자기의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인간의 머리는 너무 작아서 인류 전체와 종말의 메시야 왕국을 목적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리 민족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라 할지라도) 다 측량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사 55:9).

  
4. 예루살렘 심판의 필연성 : 26~35

『 26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28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일 것인즉 그가 취할 것이라 29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케 한 집들을 사르리니 30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목전에 악만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케 한 것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31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와 분을 격발하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32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 방백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33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34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

26~35절에서는 아무리 택민이라도 회개하지 아니할 때 막대기로 치신다는 것과, 치신 후에는 약속대로 회복시켜 주신다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씀했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27) 하나님은 무소불능의 신이시다(사 40:26). 이러한 하나님을 존중치 아니하고 경(輕)히 여겨 1계명에서 4계명까지의 첫째되는 강령을 무시한 것이 바로 바알, 몰렉 앞에 분향한 행위이다. 이렇게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에게 제사 드려 하나님을 격노케 한 집들을 불사르시겠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은 오늘날 예수님의 피로 산 바 된 교회가 공산주의 목사들과 손잡고 협상할 때 불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경고이다.

  
5. 하나님의 긍휼로 인한 국토 회복과 축복 : 36~44

『 36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의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37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 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38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영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정녕히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4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43 너희가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 하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사되 44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로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36~44절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귀국시켜 스룹바벨로 성전을 재건케 할 예언인데, 이는 종말에 전 지구상의 남은 자들이 스룹바벨의 머릿돌, 다림줄 사상으로 한 데 뭉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서게 된다는 것을 예표적으로 보인 것뿐이다. 구약 종말에 있었던 이 일(성전재건)이 인간 종말에 메시야 왕국 성취를 위해 그대로 재연되도록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모략과 경륜 앞에 순종하여 이 예언이 오늘날 우리들의 양식임을 알고 잘 소화해 널리 전파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서를 통해 70년을 깨달은 다니엘이 금식기도를 하였을 때(단 9장) 이스라엘은 회복받았다. 또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귀국 역사와 성전 재건 및 성곽 건축의 역사는 종말을 사는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이 된다(사 46:10).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은 기독교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성경책을 잘 살펴 보면 '에스라'서나'느헤미야'서가 손때 하나 없이 깨끗함을 볼 수 있다. 기독교 목자들이 그만큼 성전, 성곽 건축 역사에 대해 전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21세기 인간 종말을 맞은 이 때 성전 및 성곽 건축의 말씀이 학개, 스가랴서로 더불어 살아 움직여서 먼저는 대한민국 백성에게, 다음으로는 세계 거민들에게 읽혀지게 될 것이니, 대한의 성도인 우리는 선구자의 사명감을 갖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부지런히 읽어서 때에 맞는 양식을 나누어주는 시대의 파수꾼이 되자(마 24:45~46).
 
구약 때 바벨론으로부터 유다의 남은 자가 돌아왔듯이, 인간 종말에도 세계의 피로 산 교회와 백성 중에서 '남은 자'가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印) 맞은 자 144,000명이다(물론 이들의 전도를 듣고 예비처로 들어간 무수한 흰무리도 새 시대의 백성이 된다 / 계 7:9~17). 이들을 일으키는 '해를 입은 한 여자'의 역사가 바로 <이면적 스룹바벨 역사>이다. 이 역사로만 에덴동산이 회복되는 초막절의 역사가 성취된다. 너도 나도 다림줄과 머릿돌을 쥐었다며 스룹바벨을 사칭해 나오기는 쉽다.

그러나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날 지대놓은 제단은 전 세계에서 여기 한 곳뿐이다.

오늘 본문 예언의 최종 목적은 에덴동산 회복이다. 에덴동산 회복은 바벨론 포로민이 고토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과 성곽을 재건한 일로 예표된 것이니, 인간 종말에 살면서 주 재림을 눈 앞에 두고 새 시대의 문턱에 와 있는 우리는 다음 33장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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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3장
제 목 : 주 재림과 새 시대


1. 계시의 약속과 포로민의 회복 : 1~9

『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다시 임하니라 가라사대 』

선지자는 옥에 있고 사람들은 그를 배척하니 하나님은 선지자를 찾아 오신다.
• 시 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 시 79:11 "갇힌 자의 탄식으로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 시 102: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 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

"일을 행하는 여호와" "나는 나대로 있고, 나대로 간다"는 의미를 담은 바 곧 완전 선(善)과 자유의지의 근원이시며 영원 불변자요 절대 자주자(絶代 自主者)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은 구속 사업에 있어서 임의적(任意的), 종국적(終局的) 완필자(完畢者)라는 의미이다.


『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70년을 기다리면 큰 바벨론이 멸망하고 스룹바벨이 돌아온다는 비밀이다. 렘 31:22절처럼 새 일을 창조하시는 크고 비밀한 일이 일반 기독교 종말에 큰 역사로 남아 있다. "비밀"이란 사 48:6절의 '은비한 일'인데 하나님의 새 일이라 하셨다. 많은 종들이 이 예언을 함부로 아무데나 붙여서 사용하는데 이것은 말씀 도적질이다. 대학문제, 직장문제, 가정문제에 이 말씀을 결부시키면 안 된다. 본문은 유다와 바벨론과의 문제이지 인간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슥 5장에 말씀 도적질을 하면 저주의 두루마리가 들어 간다고 하셨다.


『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 인의 흉벽과 칼을 막아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와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 시체로 이 성에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족을 침략해 온 바벨론으로 더불어 항전(抗戰)하는 것이 헛되며 필경 많은 희생자가 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

약속 연대 70년이 되면(25:11, 29:10) 귀국하게 되어 본토를 회복하리라는 말씀이다.


『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平康)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

스룹바벨 단체가 돌아올 것을 예언하심이다. 이미 전 세계 이스라엘의 대표격인 영적유다(대한민국) 안에서 스룹바벨 영적 70년 회복이 성취되었으며, 이 역사를 기반으로 세계를 살리는 동방 증인권세의 역사가 사자같이 강하게 일어날 것이다.

  
2. 회복의 환희와 목장의 축복 : 10~13

『 10~11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2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의 거할 곳이 있으리니 그 양무리를 눕게 할 것이라 13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무리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미 31:31절 예언대로 새 언약이 성취되어 은혜시대 2000년 간 전 세계 이스라엘이 속죄함을 받았으며, 이제 주님 재림 때는 이 '영적 이스라엘'이 새 일 교훈을 빠짐없이 새겨(슥 3:9) 썩을 몸이 변화 받아 공중으로 휴거했다가 지상에 와서 1000년 안식을 이루게 된다. 이 예언은 구약 때 완전히 성취될 것을 목적한 것이 아니고, 오직 주 재림 때에 있을 일을 본보기로 앞당겨 보여주신 것뿐이다. 세상 비유를 들자면, 아파트 입주자가 실제로 어떤 집에 살게 되리라는 것을 '모델하우스'를 둘러봄으로써 앞당겨 알 수 있는 이치와 같다.

  
3. 왕과 제사장인 예수님의 재림 : 14~18

『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얻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거할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입으리라 1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 집 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다윗집에 예수님이 王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었다. "의로운 가지"는 예수님의 인성인데,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하심같이 싹으로 오신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실 때에 우리는 그에게 접붙은 가지가 되어야 한다. 본절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의 통치를 받는 새 시대에 가서 온전히 이루어질 예언이다.

  
4. 자연 계시와 계약 보증 : 19~26

『 19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약정과 밤에 대한 나의 약정을 파하여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파하여 그로 그 위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께서 한 번 정하신 바는 창조 질서에 있어서도 변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자초지종(自初至終) 계약운동(契約運動)에 의하여 실행되어 간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시는 참되신 신(神)으로서 예수님을 아들로 보내시사 두 번 이기게 하시고(계 6:1~2), 범죄한 인간을 야곱으로 택하시고 영혼과 육체의 구원을 주신다.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 삼하 7:12~16, 왕상 2:4, 8:25, 9:5절을 참조하라. 
• 사 9: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사 16: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 인자함으로 굳게 설 것이요 그 위에 앉을 자는 충실함으로 판결하며 공평을 구하며 의를 신속히 행하리라"

겔 34:22~26, 37:22~28절도 참조하라.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다윗이 시온산(모리아)에 나라를 건설함과 같이 당신의 재림 시(時)에 전 세계를 계 11:15절 말씀대로 통치하게 될 것이다.

계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23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4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 택하신 두 족속을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치 아니하도다 2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주야의 약정이 서지 아니할 수 있다든지 천지의 규례가 정한 대로 되지 아니할 수 있다 할진대 26 내가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려서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고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

여기서는 계약원리(契約原理)에 의해 택한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데 대해 논증하신다. 예수 믿고 죽어 천국 갈 소망은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이 열리기 전까지는 기독교 신앙계의 최종 목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제 인봉된 말씀이 열렸으므로 (예수 보혈을 영접하여 중생하는 역사는 물론 계속되어야 하거니와) 다시 회복되고야 말  에덴동산 낙토에 들어갈 소망이 더욱 우선시되는 신앙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땅을 차지하라"는 이 한 가지가 모든 선지자들이 공통으로 받은 묵시의 요지인 것이다. 사도적 사명자로서는 (천국열쇠만 가졌기에) 같은 성경을 보아도 종말론이 보이지 아니하고 구속의 도리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 얻은 종들 중에 기독교의 끝을 바로 맺는 사명에로 불리움 받은 말세 종들에게는 육체에 죽음이 사라진 세계 곧 에덴회복의 도리가 담긴 예언서가 보이며 그 말씀이 꿀같이 달게 되어 있다.

오해하지 말 것은 "살아서 새 시대에 들어가자"는 메시지는 결코 천국복음과 대치되는 이단적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 천국은 백보좌 심판 이후에 펼쳐지는 세계로서, 아담이래로 죽었던 모든 자 중 택함 받은 자가 생명의 부활로 들어가는 곳이고, 새 시대(천년왕국)는 
아마겟돈 심판과 백보좌 심판 사이에 존재하는 천년간의 지상 안식세계라는 점을 기독교계는 명확히 구분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천년왕국에 대해 자신이 없으므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자칭 정통파들이 기독교 안에 많은데, 오히려 이런 애매모호함이 이단에 가까운 것이다. 시작은 그럴 듯해도 끝이 다른게 이단 아닌가? 마지막 열매를 잘못 맺으면 그간 잘했던 것이 무효로 돌아간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원리이다(겔 3:20, 18:26, 33:12~13. 마 19:30). 이런 자들의 훗날 대사가 마 7:22, 25:11, 24~25절에 잘 나타나 있다. 비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구속의 피를 흘려 주심으로 믿는 자가 '천년왕국' 끝에 펼쳐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완성하셨고(4복음서와 편지서), 그 후 당신의 피값으로 성부 오른손의 책을 넘겨받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셨다(계시록과 예언서). 주의할 것은 뒤에 주신 이 책을 꿀같이 먹거나 들어야 '천국'에 앞서 펼쳐지는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종말을 당한 기독교가 순서적으로 바로 알 것은 피로 산 예언서를 청종하므로 들어가는 천년안식이 먼저이고,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이 '천년왕국' 이후라는 점이다. 우리 기독교 성도들이 망가진 6천년간의 죄악세계와 신령한 제8천년기인 '천국' 사이에 제7천년기에 해당하는 회복된 지상낙원 '천년왕국'(Millennium)이  존재한다는 점만 명심한다면 종말론에 관한 모든 혼선을 물리칠 수 있다. 6일간 땀흘려 고생하고 제7일날은 안식하라는 율법이 거대한 천년의 틀로 확대되어 제7천년기에는 먹고 웃고 안식하며 할렐루야를 돌려야 함은 당연한 일 아닌가?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更點) 같을 뿐임이니이다"

요약컨대, 새 언약 청종은 '천국행' 티켓을 확보함이요, 새 일 청종은 '천년왕국행' 티켓을 확보함이다. 혼인예식을 마쳤다면 신혼여행을 다녀와 달콤한 신혼살림을 이루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다시 예언하여 증거 마치고 공중에서 예수님 만나 혼인잔치를 벌였다면, 짐승이 통치하는 '3년 반' 동안 보좌로 신혼여행을 떠나 처음 보는 하늘 세계 실컷 구경하고 신혼살림 계획 잘 세우고 돌아와 전 주인(마귀)이 쓰던 집 깨끗이 뜯어내고 천년간 깨소금 쏟아내며 신혼살림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랑은 이렇게 하고 나서 본살림(천국)을 차려 영원토록, 영~원토록 함께 살자 하시는데, 신부될 자라는 것이 미련하고 둔하여서 처음 가진 등불과 기름으로 본살림 차릴 생각만 하고 앉아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오직 여분의 기름(신혼집에 불 밝혀 줄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만이 혼인예식에 참여하여 신랑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다. 신랑 뜻을 무시하고 본살림 집으로 마구 쳐들어가려고만 하던 미련한 처녀들은 신혼살림 천년이 끝날 때까지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30) 하신 말씀대로 '옥'으로 쫓겨날 것이다. 하지만 신랑은 본살림(천국)을 차리시는 그날에 그들에게도 '당신의 피'가 발리운 것을 기억하시어 다시금 거두어 주실 것이다(부끄러운 구원).

회사 일로 잠시 외국에 다녀오겠다면서 다음달 8일날 귀국하겠다고 말하고 떠난 남편(예수)이 비서(요한)를 통하여 7일날 귀국할 뜻을 전했다면, 7일날 잡힌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남편을 맞으러 나아가야 제대로 된 아내이다. 비서가 긴급히 전한 계시록을 전에도 자주 보내주던 사랑 쪽지이겠거니 하면서 "내가 남편 사랑하고 남편이 나 사랑하는 거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 뭐..." 이렇게 말하면(계시록 몰라도 구원에 지장 없다는 교만),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이웃집 공서방(공산당)과 춤바람이 나서 8일이고, 7일이고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미쳐 있는 성도가 꼭 절반이다(W.C.C. 에큐메니칼 세력). 천국 티켓은 천국 갈 보증의 인(印)이니 귀하고 귀하다. 그러나 지금은 확보된 것(영혼구원) 가지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잘 생기고 기운 세 보이는 이웃 집 남자에게 눈 돌릴 때는 더더욱 아니다(협상운동). 지금은 오직! 천년왕국 티켓을 얻어내기 위해 사 25:6~8절을 소망하며 사 55:1~2절같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아멘!

사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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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4장
제 목 : 시드기야 왕에 대한 경고


1. 예루살렘 함락 경고 : 1~7

『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와 그 통치하에 있는 땅의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과 그 모든 성읍을 칠 때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

이 때는 강대국 바벨론과 그 많은 속국들이 유다를 칠 때였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러한 긴박한 시기에 대하여 언급한 목적은 시드기야 왕이 얼마나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말에 미혹되었는지에 대한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쳐들어 오는데도 유다 왕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남방 애굽만을 의지하며 회개치 않고 있었다.


『 2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가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3 네가 그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 손에 붙임을 입고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4 그러나 유다 왕 시드기야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5 평안히 죽을 것이며 사람이 너보다 먼저 있은 네 열조 선왕에게 분향하던 일례로 네게 분향하며 너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슬프다 주여 하리니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것이 바로 일곱머리 짐승과 하나님의 백성의 죄와의 상관관계이다
(사 10:5, 합 1:12, 사 56:9~).

예언의 내용은
①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 성을 불사른다는 것과(2절),
②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을 대면하게 되며 사로잡혀 갈 것과(3절) ☞ 왕하25:1~7 참조.
③ 그런 위험한 전란 속에서도 시드기야 왕은 살육을 당하지 않고 필경 평안히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4~5).


『 6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 모든 말씀을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니라 7 때에 바벨론 왕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모든 성을 쳤으니 곧 라기스와 아세가라 유다의 견고한 성읍 중에 이것들만 남았음이더라 』

이 부분은 시드기야 왕의 불신앙을 지적한다.

  
2. 노예 석방 위반의 경고 : 8~11

『 8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한 후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 그 언약은 곧 사람으로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케 하고 그 동족 유다인으로 종을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 이 언약에 참가한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케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복종시켜 노비를 삼았더라 』

본절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유다의 노예들을 놓아 주도록 한 것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떠난 후에(34:21, 37:5) 시드기야 왕은 위험이 제거된 줄 알고 다시 하나님 앞에 배신하여 노예 해방을 취소하였다(11절). 이는 그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행위이며 그 앞에 큰 죄악을 범한 것이다.

  
3. 하나님의 성노(聖怒)와 심판 : 12~22

『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3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워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렸거든 칠년 만에 너희는 각기 놓으라 그가 육년을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케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나를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목전에 정당히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언약을 세웠거늘 16 너희가 뜻을 변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서 너희 노비를 삼았도다 

①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노예해방 요구가 본래는 율법(출21:2, 신15:15)에 근거한 것임을 밝히셨다(13~14절).
② 이 율법에 대해 유대인의 선조들이 불순종한 사실을 지적하셨고(14절)
③ 시드기야 왕과 당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신하여 그 율법을 불순종한 것에 대하여 꾸짖으신다(15~16절).


『 1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듣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를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그 말을 실행치 아니하여 내 언약을 범한 너희를 19 곧 쪼갠 송아지 사이로 지난 유다 방백들과 예루살렘 백성들과 환관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너희 원수의 손과 너희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붙이리니 너희 시체가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식물이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을 그 원수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리라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 성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 성읍들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 

"내가 너희를 대항하여 자유를 선언하여"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 보아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므로 그들을 저희 자유대로 내버려 두어 전재(戰災)를 당하게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로써 우리는 주의 손에 붙들린 것이 세상 제일의 축복이요, 승리임을 알 수 있다.

재앙의 내용을 분류해 보면,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인다는 것과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지게" 하리라는 것(17절). 이 내용은 예레미야가 40 여년을 외치던 말씀이다(렘 5:17, 6:25, 9:16, 11:12, 12:12, 14:12~16, 15:2, 16:4, 19:7, 20:4, 21:7~9, 24:10, 25:29, 32:24, 36절 참조). 이 밖에도 같은 말씀이 많이 나온다.

② 많은 사람이 죽어 
"시체"가 되어 "들짐승과 새의 밥"이 된다는 것(18~20). 21~22절은 이 재앙을 실행하실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 죄로 불결케 된 유다에 대한 책망은 35장에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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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5장
제 목 : 정절과 부정절


1. 레갑인들의 자숙자계(自戒) : 1~11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때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레갑 족속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우라 』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종종 실물 교수의 방법을 사용하신다. 신자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로 되는 것이니 신자들은 그런 실제 상황들을 보고 영적 교훈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 
"레갑족속"은 미디안 족속인데, 모세의 장인 호밥(이드로)이 속하였던 족속이다(민 10:29, 출 3:1). 이 족속의 또 다른 이름은 '겐' 족속이다(삿 1:16). 이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 중에 섞여 살았다(삿 4:11,17~, 삼상 27:10, 30:29). '겐' 족속은 이스라엘과 잘 사귄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충성되이 섬겼다(삿 4:11, 17~23, 5:24~31, 왕하 10:15~28).

 
『 3 이에 내가 하바시냐의 손자요 예레미야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그 형제와 그 모든 아들과 레갑 온 족속을 데리고 4 여호와의 집에 이르러 익다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에 들였는데 그 방은 방백들의 방 곁이요 문을 지키는 살룸의 아들 마아세야의 방 위더라 5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

4절 :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를 의미한다(4절). "방"은 성전의 부속실을 의미하는데 그것들은 사무실, 부속건물, 하인들의 방으로 사용된다(36:10,12,20. 대상 23:28, 28:12. 대하 31:11. 에스라 8:28,29. 느 10:38~40). 그런데 "레갑 온 족속들"이 인도함을 받은 "방"은 성전의 유력한 사람들의 방 가까운 곳이었다.
"포도주를 마시라 권하매" 레갑족속은 선조들의 교훈을 굳게 파수하여 먹지 않았다. 이렇게 이방 사람들도 선조의 교훈을 굳게 파수하거늘, 하물며 선민된 자들로서야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더욱 더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 6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7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8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9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10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 11 그러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가 두려운즉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거하였노라 』

예레미야의 권면에 대한 레갑 사람의 대답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 선조 요나답의 교훈에 의하여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6~7). 레갑 족속은 위의 다섯 가지를 250년 동안 실행하여 왔다.

① 유목생활만 할 것.
② 집도 짓지 말며 평생 장막에만 거처할 것.
③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
④ 파종을 하지 말 것.
⑤ 포도원도 재배치 말 것.

  
2. 유다인의 불순종을 책망함 : 12~17

『 12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5 나도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좇아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거하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나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그들에게 명한 그 명령을 준행하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17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는 레갑 족속의 모범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꾸짖으신다.

 레갑 족속은 선조의 명령이라도 순종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않음(16절).
 레갑 족속은 그 선조 요나답 한 사람이 한 번 말한 것을 끝까지 지켜 오는데, 유대인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지런히 예언해도 순종하지 않음(14~15).
 레갑 족속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것 같은(14절) 육신 생활에 관계된 명령도 귀히 여겨 순종하여 오는데, 유대인은 그보다 중대한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 환난을 피하라는 예언서를 순종치 않음을 꾸짖었다(15).

지금의 교회들도 자기들의 교단 법규나 내부적 교리는 지키면서, 인간 종말에 대환난이 북방에서 내려온다는 선지서의 말씀은 듣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성전 밖 마당이 잡혀가면(계 11:1~3) 그 빈자리에 이방인이 노비로 들어올 것이다(사 14:1~2).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印)이 없으면 다 쫓겨날 것이다(계 11:1~12).

  
3. 레갑인의 보상 : 18~19

『 18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19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18~1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레갑 사람들에게 그 후손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이 뜻은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계 7:9절 이하를 보면 흰 옷 입은 자들이 큰 환난에서 나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약속의 자녀들이 약속을 무시하고 쫓겨나면 그 자리에 많은 이방족이 노비로 채워진다는 것을 뜻한다(눅 14: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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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6장
제 목 : 왕이 예언서를 소각함


1. 바룩이 예언서를 낭독함 : 1~8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 계시(啓示)의 역사성을 밝히 보게 된다.

① 
요시야 왕 때부터 여호야김 때까지(40년) 예레미야가 유다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자세히 예언한 것이니 그 분량이 풍부하다. 거짓 선지자의 거짓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예레미야의 예언은 기록되어 있으니 이는 어디까지나 '성취된다'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언젠가는 거짓임이 들어날 것이니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곧 마귀와 거짓 선지자는 시온산 건설을 위해서 쓰이고는 버려지는 일회용 물품이라 할 수 있겠다.


『 3 유다 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 듯하니라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사하리라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

"돌이킬 듯하니라" 하나님은 백성의 완악함과 패역함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 돌이키지 않고 잡혀갈 것 또한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구약 백성은 듣지 않고 잡혀갔다. 고로 이 말씀은 이제 종말로 넘어오게 되어 있다. 은혜로 얼마를 택하여 피로 사신 후 성령을 보내주시어 영적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대확장을 이루어내셨건만, 교회가 살이 찌매 성령을 근심케 하며 곁길로 치우치게 되는 종말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와 같은 애굽 땅 중앙제단을 통하여 탈선한 교회에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케 하시는데, 이 때 듣고 돌이키는 자들에 대해서는 과거를 묻지 않고 악과 죄를 사하시어 새 시대에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마 18:22). 또한 하나님은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미 7:18~20). 용서의 하나님은 돌이키기를 바라시며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기도 하며, 천년의 죄도 돌이키기만 하면 하루 만에 사해주시는 자비의 신이시다.

예레미야는 임하는 말씀을 자기 제자 
바룩에게 기록하여 전하게 하였다. 참 선지자는 고난이 많다. 고난은 성도의 구원완성과 사역완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필수적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룩이 예언을 책에 기록하여 낭독한 이유는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그대로 내세우려는 데 있다. 곧 바룩의 전하는 바는 바룩 자신의 권위에 의존되어 있지 않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위에 의존하도록 한 것이다. 기록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오늘도 성경의 권위는 그것을 낭독하는 일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있는 것이다(택한 종들). 성경은 그들의 권위에 의존한 전도 문서인 것이다. 종은 곧 하나님의 대사이다(사 50:10).


『 5 예레미야가 바룩을 명하여 가로되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은즉 6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

"나는 감금을 당한지라" 하나님의 참종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도, 왜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발휘하여 해방해 주시지 않는가? 

사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참종들을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셨다고 예언하셨다.
사 29:1~4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의 진 친 성읍이여 년부년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군대로 너를 에우며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죄 가운데 태어난 인간들은 고난 속에서만 인격이 성장된다.
"금식일" 금식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한 목적으로 모인 날에 하나님의 참 종이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예언'을 낭독해도 듣지 않으니 그 금식은 자기들을 위해 행하는 금식임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슥 7:1~14).


『 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 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무릇 선지자 예레미야의 자기에게 명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하니라 』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라 했는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면 회개가 있을 수 없고 기도도 상달될 수 없다. 구약 때에는 성령께서 개인적으로는 역사하셨으나 단체적으로는 역사하지 아니하셨다. 만민을 위한 성령역사, 곧 "성령 강림"은 행 2:1~ 오순절에 임하였기 때문이다.

  
2. 미가야 선지가 바룩을 은닉(隱匿)함 : 9~19

『 9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10 바룩이 여호와의 집 윗뜰 곧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의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하여 모든 백성에게 들리니라 』

여호야김 왕 5년 9월에 바룩은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했다. 그러나 다음 절들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의 말씀을 칼로 베며 불에 태웠으니 여호야김 왕의 강퍅함을 짐작할 수가 있다. 사단이 내적으로 역사하면 하나님을 반대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사단의 사명은 대적이기 때문이다.


『 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방백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방백이 거기 앉았는지라 13 미가야가 바룩의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로 그들에게 고하매 14 이에 모든 방백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가매 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서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고하리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그 구전하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뇨 청컨대 우리에게 이르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베풀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

① 이 기록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 그대로만을 전하고 있다. 여기 기록된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한 개인을 소개하기 위하여 그 개인의 이름만 말하지 않고 그 조부(祖父)들의 이름까지 덧붙였다.

 바룩의 낭독한 예언을 들은 당대의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다가 필경은 불회개로 떨어진 사실이다. 그들은 그 예언에 담긴 재앙 선포가 민족의 회개를 위한 사랑의 경고인 줄 모르고, 오히려 선지자를 국가에 반역하는 위험한 인물로 오해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예레미야의 예언을 환영하고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역한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는 듯하다. 이는 그들이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함께 숨으라 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3. 여호야김 왕이 예언서를 소각함 : 20~26

『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로 왕의 귀에 고하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방백의 귀에 낭독하니 22 때는 구월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삼편 사편을 낭독하면 왕이 소도(小刀)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24 왕과 그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하여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

여호야김을 조종하는 마귀를 보라! 마귀 도구된 자들은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른다는 특징이 있다(눅 23:34).

여호야김 왕이 바룩이 기록한 예언서를 칼로 베고 불사른 악한 행동이 기록되어 있다.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만 좋아하고 참 선지자의 충언은 배척하는 모습을 보라!  왕은 ① 자기의 죄를 책망해 주는 생명의 경고를 싫어하고 ② 왕 자신과 국가의 멸망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진리도 배척하였다. 저 이방 니느웨 왕은 작은 선지자 요나의 외침에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는데, 예루살렘 왕은 살 길을 터주어도 죽으려고 하니 마귀의 힘은 과연 강하다! 여호야김 왕이 칼로 책(진리)을 찢는 것이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도성인신 하신 예수(진리)를 십자가에 찔러 죽이는 것이나, 종말의 정통 교단들이 예수님의 피로 산 말씀인 '새 일'의 교훈을 이단이라 배척하고 거대한 세력을 이루어 말세의 종들(144,000)이 짐승 칼에 순교하도록 내모는 것은 매 한 가지의 역사로 마귀의 열매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여기에는 큰 비밀이 담겨 있다. 예레미야서가 칼에 찢겨 불 가운데 던져졌다가 다시 기록되어 그 말씀을 모두 성취한 것과, 예수께서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후, 그의 피값으로 심판책을 넘겨 받으신 것은 모두가 성령의 열매로서 이 시대의 144,000명 또한 예수님의 피로 산 책을 꿀같이 먹으면 이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음을 알려주고 있다. 종말의 파수꾼들은 반드시 마귀의 세력 곧 '고난의 풀무' 속에 던져져 지극히 미약해지므로 소멸되는 듯 보이지만, 예레미야 책이 다시 기록됨과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볼 때 이들도 분명 변화 승천하므로 지극히 큰 군대를 이루어 만왕의 왕 예수와 함께 내려와 666과 더불어 아마겟돈 전쟁을 행하여 이 땅의 악의 세력을 완전 소탕하고 불가불 왕 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언제나 발악하여 진리를 대적하지만, 이는 도리어 그 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줄 뿐이다.


『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명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

귀신 들린 왕이 예언서를 파괴시키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까지 잡으려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때 등장하신다.
시 119: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참 종은 미약한데, 마귀가 강하게 나오니 하나님이 일어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선지자를 숨겨주셨다. 방백들을 통하여 종을 보호하심은 하나님의 섭리 중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숨기신 자들을 원수들이 어찌 찾아낼 수 있으랴! 사 49:1~4절을 보면 말세 종들을 마광한 살같이 만들어서 전통에 감추시고 원수가 유다 땅에 들어올 때까지 숨겨 두시는 모략이 기록되어 있다. 종말에 진실한 촛대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서머나 교회'에도 극도로 강한 훼방과 마귀의 시험이 있을 것이라 하셨는데(계 2:9~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하셨다. 예레미야와 바룩같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는 종에게는 마귀가 주는 고난도 "생명의 면류관"으로 바뀌는 법인데, 죽도록 괴롭힌 마귀 편의 운명은 다음과 같이 되는 법이다.

  
4. 왕의 운명을 예언함 : 27~32

『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으로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그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 왕이 정녕히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뇨 하도다 3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그에게 다윗의 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1 또 내가 그와 그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을 인하여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 그들과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에게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한 그 모든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그의 예언을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기록하라고 하셨다(28절). 여호야김 왕은 바룩이 기록한 예언 문서를 불태웠지만 하나님의 진리가 사람의 훼방으로 인해 폐해질 수 없다. 시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분위기로 흐른다 해서 오기로 작정된 심판이 어찌 오지 않을 수 있으랴! 왕은 책을 찢음과 동시에 그 예언의 내용까지 함부로 판단하였으니 이중으로 큰 죄악을 범했다(29~31). 하나님의 귀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배반한 자에게는 더욱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된다.
 
예루살렘이 첫 번째 멸망한 것은 B.C.606 년인데 여호야김 왕이 왕위에 오른지 4년째 되던 해이다. 신정국가가 되어야 할 유다가 하나님의 진리를 훼방할 때 아무리 시온산 정부라 할지라도 원수 바벨론에게 붙여져 속국이 되며, 이방인들 사이에서 수치를 당하였던 것이다. 침략 당한지 7년 후에 왕은 천하게 죽임을 당했고(30절), 그 아들은 3개월간 왕위에 있다가 북방에 붙잡혀 갔다.
대하 36:6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라고 하였는데 여기 "바벨론으로 잡아 가고"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잡아갔다는 뜻이 아니고 "바벨론으로 잡아 가려고"라는 뜻이다.

짓밟혀도 퍼져나가는 주의 말씀! 
사람을 통하여 이루신다. 아멘!

『 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취하여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 왕 여호야김의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하였더라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권고에 의하여 이제 그의 예언들을 "다른 두루마리"에 다시 기록하게 한다. 이 두 번째 기록에는 첫 번째 것에 없던 예언들도 첨부되어 있다. 하나님 말씀은 핍박을 받을수록 더욱 힘있게 전파되는 법이다.


<성경 기록의 목적>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계 11:15) 건설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기록된 완전영감(完全靈感)의 정확무오(正確無誤)한 여호와의 책이다(사 34:16, 9:6~7. 롬 15:4. 요 5:39~47).
사 46:10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변하지 않는 영원 보편의 진리를 후세에 전하며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고 보인 귀하고도 귀한 책이 성경이다. 하나님은 이미 만대를 명정하였다 하셨으니(사 41:4), 이 명정을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실 리 없다(암 3:7. 창 18:17). 사람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명정이 바로 예언서이다. 예언성취는 역사적인 사건 안에 나타나기 마련이므로 계시는 초시공적(超時空的)인 헛된 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역사적 시간을 경유(經由)해 가면서 완전구원, 완전안식을 향하여 하나하나 차분히 성취함을 본다. 성경 기록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하였다. 들음은 기록한 것을 읽는 것과는 다르다. 들음은 인격체를 통한 증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으므로 사람들은 사람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서 움직이는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은 참으로 귀하다. 이제 하나님은 이 증거(대언)의 일을 행할 당신의 마지막 종들을 불가운데 던져(슥 13:8~9) 은같이, 금같이 연단하여 계 10:7~11절의 명령대로 다시 예언케 하심으로, 계 20:4~6절의 성도의 나라를 이루실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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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7장
제 목 : 예레미야의 투옥


1. 북방 바벨론군이 전략상 일시 후퇴 : 1∼5

『 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로 유다 땅의 왕을 삼음이었더라 2 그와 그 신하와 그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

"고니야"의 또 다른 이름은 여호야긴이다(왕하 24:6). 3개월간 왕이 되었던 일이 있으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감에 따라 그의 숙부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의 세워줌을 받아 왕이 되었다. 그러나 왕과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바벨론에게 반역하기를 꾀하였던 것이다(왕하 24:19∼20, 대하 36:11∼13).

 
『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도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더러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청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① 왕 자신은 스스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
②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는 않으면서 곤란한 때를 당하면 그의 도우심만 받고저 하는 얄팍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실상 하나님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어지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시드기야 왕의 태도는 신앙적인 것이 아니고 이교적(異敎的)인 것이다. 또한 매우 기회주의적인 태도이다.

 
『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

이때는 애굽 왕 바로 호브라(BC 588)가 바벨론 군대를 대항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떠나왔다. 이것은 유다가 청병(請兵)한 까닭이었다. 애굽의 소문을 들은 북방군대는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2. 예레미야가 적군이 재침할 것을 예언함 : 6∼10

『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7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 9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

시드기야 정권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지 않고 하나님보다도 애굽 정권을 의지하였다(겔 17장. 렘 24:8~10).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지 아니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려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내용인즉,

 바로의 군대는 후퇴하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7절).
 북방은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그 성을 불사를 터이니 유다를 떠나리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8-9).
 설혹 유다가 북방을 쳐서 부상자만 남도록한다 할지라도 그 부상자들이 예루살렘성을 불사르리라는 것(10절).

화(禍), 복(福)은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오는 것이다(애 3:38). 이를 알고 있는 선지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유다를 향해 권면도, 책망도 해보았으나 유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배반하고 말았다. 배반자의 최후는 
북방 칼에 처참히 쓰러지는 것이었다(렘 39장).

  
3. 예레미야가 투옥됨 : 11∼15

『 11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12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가로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

예레미야가 사촌 하나멜에게 밭을 샀는데 그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베냐민 땅으로 갔을 때 문지기 두목이 예레미야에게 "너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하며 오해를 하게 되었다. 이것은 거짓된 누명이다. 이처럼 선지는 언제나 사탄에게 괴롭힘을 받아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게 된다(사 52:14).
"베냐민 문"은 예루살렘의 북쪽 문이다(렘 8:7. 슥 14:10). 이것을 '에브라임 문'이라고도 한다(왕하 14:13. 느 8:16).

유다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의뢰치 않고, 
인본주의로 친애굽주의만을 고집하여 바벨론을 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금의 교회 역시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종말에 하나님의 뜻은 오직 새 일이다(렘 31:22). W.C.C.나 로마가톨릭의 인본주의, 통합주의, 바벨적 사업은 잠시간은 화려하고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의 새 일 권세 앞에서 경각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사 29:5~8).

 
『 14 예레미야가 가로되 망령되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방백들에게로 끌어가매 15 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으로 옥을 삼았음이더라 』

"망령되다"라는 말은 언행이 보통사람에 비해 심히 어그러져 있다는 뜻이다. 예레미야는 이리야가 자기에게 씌우는 누명이 사실과는 반대된다고 지적한다.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바른 말을 하여도 방백들이 죄없는 선지자를 때리고 감금한 사실을 보면 당시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무법(無法)하고 부패하였던가를 알 수 있다.

  
4. 시드기야가 선지자를 보호함 : 16~21

『 16 예레미야가 토굴 옥 음실에 들어간지 여러 날만에 17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 』

시드기야 왕이 선지자를 석방하고 그에게 계시유무를 물어본 태도는 그가 방백들보다 선량한 면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하 36:11-13절에서는 시드기야 왕을 악한 왕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왕이 간신배들에게 좌우(左右)되었기 때문이다. 왕은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예레미야를 단순히 여러 점술자들 중 한 사람처럼 취급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커다란 잘못이었다.

육신은 옥에 갇혔어도 영적으로는 자유로운 것이 바로 선지자이다. 왕은 육적으로는 자유가 있는 것 같아도 영적으로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도 마귀 영권(600)과 짐승 정권(60)에 잡힌 지도자가 부패한 교권자들(6)인데,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저들 세력의 행하는 일과 발언에 '아멘'만 연발하고 있으니 실로 밤중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렘 5:30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구약종말은 인간종말의 형편을 자세히 본떠 놓은 형틀과도 같다.
"비밀히" 왜 비밀히 하였을까? 그것은 예레미야를 박해하는 신하들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시드기야가 왕의 신분으로서 자신의 신하들을 두려워하여 참 선지자를 만나는데 있어 "비밀스럽게" 행동하였다는 것은 정말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잠 28:1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 18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

예레미야가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이다. 요 18:23~ 예수님도 이렇게 자기를 변호하신 적이 있었다. 선지자는 이와 같은 변호를 통해서 그가 선포한 예언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는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 무슨 죄를 범했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라고 한 것이다(18절). 예레미야가 북방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 거짓 예언자들에 관해 왕에게 이르기를 "평강만을 외치던 종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하였다. 이 내용이 다시 예언되는 종말에는 평화공존 협상주의가 선(善)이라고 외치던 거짓 종들은 북방이 내려올 때 말 문이 막힌 채 두려워하다가 '후 3년 반'에 들어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 20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

20절은 선지자의 탄원서이다. 선지자는 끌려오기 전에 요나단의 집에 갇혀 있었는데 이제 다시는 그리로 돌려 보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며, 맡겨진 귀한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야 할 인물이다. 이 탄원은 일개 육신적 죽음이 두려워서 청한 말이 아니었다. 죽음이 무서웠다면 지금껏 매맞고 갇힐 일도 없었겠거니와, 왕의 면전에서 진리대로 말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참 선지자의 존재 이유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키 위함이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계 19:10).

시드기야 왕은 그를 시위대 뜰에 두고 양식을 공급하게 하였다. 결과 예레미야는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손에 넘기워지지 않고 선지자로서의 남은 사명을 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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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8장
제 목 : 예레미야의 재차 투정(投井)


1. 예레미야의 피소와 투정 : 1~6

『 1 맛단의 아들 스바댜와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와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예레미야의 모든 백성에게 이르는 말을 들은즉 이르기를 』

1절에 기록된 네 방백들은 시드기야 왕의 심복 분자들이다(5절참조). "셀레먀의 아들 유갈과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은 이미 21:1, 37:3절에 등장한 바 있다. 이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청취한 동기는 바리새인들처럼 그를 고발하려는 것이었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으나(37:21), 계속적으로 예언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세상 마귀가 하나님의 종들을 육신적으로 가두는 것은 가능해도 그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만은 가둘 수 없다. 하나님 입에서 한 번 나간 말씀은 아무런 속박됨 없이 반드시 목적지까지 전파되고야 마는 법이다(딤후 2:9. 사 55:11).

 
『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

2~3절과 같은 말씀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므로 그 말씀대로 되는 날 그것을 지켜보는 자들은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됐음을 부인치 못할 것이다. 선지자가 외치는 말들은 청자(聽者)가 듣고 회개치 않는 한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적으로 들려주어도 회개치 않는 그들에게는 2~3절이 얼마나 듣기 싫은 고통의 소리였겠는가!
"그의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살리라" 그러나 회개하여 선지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잃을 뻔한 생명을 건짐 받는 구원의 기쁨이 있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 4 이에 그 방백들이 왕께 고하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 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청컨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

방백들은 오해하고 참 선지를 공격한다. 하나님의 종은 사실 백성의 해(害)를 구한 것이 아니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의 흑암이 덮이우니 정치 방백들이 진리를 곡해하여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사실 '회개'라는 것은 영광에 이르는 길이요, 결코 천해지거나 낮은 데로 떨어지는 길이 아닌 것을......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많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이 말은 유익한 말씀을 해로운 것으로 오해하여 말하는 공연한 걱정이다.

 
『 5 시드기야 왕이 가로되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왕은 조금도 너희를 거스릴 수 없느니라 』

시드기야 왕의 태도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했음이요 
 무책임했으며 의인을 돌보지 않고 악인의 편에 서 있었다. 그 결과는 비참함과 멸망이었다(렘 39장).

 
『 6 그들이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 넣을 때에 예레미야를 줄로 달아 내리웠는데 그 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중에 빠졌더라 』

"구덩이"는 물이 없는 웅덩이다. 고난의 풀무와 같다(사 48:10).

  
2. 에벳멜렉의 간청으로 구출함 : 7~13

『 7 왕궁 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 그들의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음을 들으니라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았더니 8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께 고하여 가로되 9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성중에 떡이 떨어졌거늘 그들이 그를 구덩이에 던져 넣었으니 그가 거기서 주려 죽으리이다 10 왕이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는 여기서 삼십 명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죽기 전에 그를 구덩이에서 끌어내라 11 에벳멜렉이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 곳간 밑 방에 들어가서 거기서 헝겊과 낡은 옷을 취하고 그것을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줄로 내리우며 12 구스인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헝겊과 낡은 옷을 네 겨드랑이에 대고 줄을 그 아래 대라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매 13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끌어낸지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

7~13절에는 예레미야가 왕의 환관 구스 사람 에벳멜렉으로 말미암아 그 빠졌던 구덩이에서 구출된 사건이 진술된다.
"환관"은 먼 옛날부터 중동지역과 중국에 많았는데, 왕의 궁녀들과 여자 숙소에서 수종들거나 경호하는 일에 담당했다. 주로 왕의 '시종' 역할을 담당하던 환관을 '내시'라 칭했다(왕상 22:9. 왕하 9:32, 24:15, 25:19. 대상 28:1~ 참조). 환관은 통치자가 궁전에 거느릴 수 있는 수많은 아내나 첩에게 가장 적당한 경호원으로 여겨졌고, 왕의 은밀한 규방에서 지낼 수 있는 허물 없는 입장 덕분에 왕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에벳멜렉'의 충언은 그의 지위에서 오는 기회를 잘 살린 경우일 것이다.

왕에게 늘 충언을 올려야 할 유다 방백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고, 보잘 것 없는 일개 이방족 중 한 사람인 '환관'은 참 선지를 구하는 일에 용감히 앞장섰으니 우리에게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세상적으로 똑똑하며 '정통족보'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사단 편에 서고, 세상적으로 무언가 부족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진리 편에서 일하는 것은 알파로부터 오메가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이는 사탄이 똑똑하고 유력한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기를 즐긴다는 것을 증거해준다. 아모스 선지는 안일하며 마음이 든든한 자들과 이 세상에서 유명하여 우승한 자들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외쳤다(암 6:1).

  
3. 왕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운명을 예언함 : 14~28

『 14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집 제 삼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일을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불러 밀담(密談)을 하였다. "내가 한 일을 네게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예레미야는 바벨론 침략하에 있는 유다에 대하여 그가 받은 계시를 여러 차례 왕에게 말한 바 있다(21:4~10, 32:4, 34:2~6). 그런데도 왕이 지금 또다시 묻는 것은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 아니요, 행여나 좋은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맘에서이다. 이러한 사상은 불신앙자의 사상이요, 병든 사상이다. 예수님을 불신한 빌라도의 간사한 태도와 시드기야 왕의 태도는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요 18:33~38, 19:10~11). 얼핏보면 참종을 위하는 척 보일 수도 있지만, 본질을 보라! 종말에도 유력자 중 시드기야와 같은 자, 빌라도와 같은 자가 많이 나올 것이다. 재림 시(時)에 이루어지고 있는 계시록과 예언서 곧 '하나님의 비밀'과 '옛적 선지자들의 말씀'을 손에 들고다니면서도 불신하는 자들은 모두가 시드기야와 비슷한 자들이다(사 43:8~ ).

 
『 15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왕에게 아시게 하여도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16 시드기야 왕이 비밀히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붙이지도 아니하리라 』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라고 했다. 이것도 시드기야 왕의 요구에 응하기 전에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한 왕의 신중한 순종이 있어야 할 것을 암시적으로 내포하여 그를 주의시키기 위한 발언이었다(15절). 지조 없는 겁쟁이와 같은 시드기야 왕은 5절과는 상반되는 내용 곧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고 보호할 것을 서약하였다(16절).

 
『 17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18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

위 진술은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모르는 그 시대의 분위기로 볼 때 반역자로 몰리기 쉬운 위험한 말이었다(38:4, 37:13).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주신 말씀인 것이 확실한 만큼 사람의 생각을 섞지 않고 그대로 예언하였다. "항복하면 살수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 19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 20 예레미야가 가로되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이다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 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 』

예레미야의 항복 권고를 받은 시드기야는 '먼저 항복한 유다인들'의 조롱을 두려워 하며 항복을 주저하고 있다. "항복한 유다인"이란 시드기야의 정책노선과는 반대 노선을 주장했던 자들이므로, 왕은 그들의 항복을 비겁한 처사로 매도했을 터였다. 그러니 예레미야의 말을 좇아 뒤따라 항복하고 말면 그들 앞에 설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닐 판이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그의 성품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시드기야의 이와 같은 행동은 예레미야가 외치는 말씀의 권위가 곧 하나님의 권위라는 사실을 인식치 못한 데서 발생하였다. 예수님 말씀 마 20:1~16절의 내용처럼, 시드기야는 당시에 그저 회개하고 "주시는 대로 받겠나이다" 하는 상태까지 마음을 비워 순종해야 했다. 진정 회개한 자는 자신을 죽은 자와 같이 여기며 하나님만 바라보며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그의 앞길 전부를 맡아 주시는 것이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잠 5:21~23).

 
『 21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 22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자가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로 끌려갈 것이요 그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 23 네 아내들과 자녀는 갈대아인에게로 끌어냄을 입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의 손에 잡히리라 또 네가 이 성으로 불사름을 입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21~23절은 18절의 내용을 재설명한 것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경우에 당할 시드기야의 심판을 다시 일러준다.
"그들은 네게 말하기를 네 친구들이 너를 꾀어 이기고 네 발이 진흙에 빠짐을 보고 물러갔도다 하리라"(22절하반절). 시드기야 왕은 자기가 항복하는 경우에 자기를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공연한 염려를 하고 있었으나(18절) 예레미야는 그가 항복하지 않을 경우에 더 견디기 어려운 조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곧 왕의 궁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면서 그를 조롱하리라는 것인데 그녀들의 말인즉 왕의 친구들(거짓 선지자들)이 왕을 꾀어 수렁에 빠치우고서는 목적을 달성하여 물러간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예언이 이제 인간종말에 완전히 적중된다는 데 있다(계 10:7~11). 오늘날 소위 자신의 명패 앞에 '진보'자 붙이기를 좋아하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 치고 공산주의사상을 뒤로 감추고 나온 W.C.C. 속 거짓 선지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들은 없다. 공산권 가짜 목자들의 신학에 의해 완전히 속아넘어가 놓고는 자신이 남보다 한 걸음 앞서나가는 진보적인 종이라고 착각하는 인물들이다. 이러한 목자나 그 밑에 있던 성도들은 
후 3년 반 바벨론 세계로 잡혀 들어가게 될 터인데, 그 곳에서 자신이 먹이던 양떼 앞에 서게 될 목자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바벨론에 잡혀간 자기 백성들 앞에 서게 될 시드기야의 모습인 것이다. 이미 5개월 환난 때에 황충떼로부터 죽기까지 괴로운 고통을 당하지만(계 9:4~6) '후 3년 반'에 들어가면 조롱당하는 정도를 넘어 구약 시드기야처럼 눈알이 뽑히는 일도 있고, 칼에 쓰러지는 일도 있을 것이다(계 17:16. 렘 15:2~4).

 
『 24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너는 이 말을 사람으로 알게 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25 만일 방백들이 내가 너와 말하였다 함을 듣고 와서 네게 말하기를 네가 왕에게 말씀한 것을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에게 숨기지 말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또 왕이 네게 말씀한 것을 고하라 하거든 26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의 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도로 보내지 말아서 거기서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 27 모든 방백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물으매 그가 왕의 명한 모든 말대로 대답하였으므로 일이 탄로치 아니하였고 그들은 더불어 말하기를 그쳤더라 28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시위대 뜰에 머물렀더라 』

시드기야 왕은 살 길을 가르쳐준 예레미야의 예언을 반기기는커녕 그 예언 내용을 (비밀스레) 들었다는 사실이 방백들에게 탄로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왕은 왕 된 자로서 자신이 행할 마땅한 의무와 공의를 전혀 집행치 못하고 있는데,
 온 천하에 공포해야 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감추려 하는 사실에서 그러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있는 사실에서 그러하다.
율법의 대표 모세는 신 27:26절을 외쳤다. 은혜의 대표 바울은 갈 1:8절을 외쳤다. 마지막 시대인 환난의 대표 스룹바벨은 사 42:9~, 계 22:18~19절을 외쳐야 한다.

생사화복(生死禍福)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을 믿는 자는 사람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 왕이라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날까 두려워하였고, 방백들은 그 말씀을 공공연히 박해했으니 예레미야는 북방이 치고 올 때까지 감금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28절).

예레미야의 모든 예언은 늘 그대로 성취되었다. 바벨론 군대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그때의 유다 민족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당하면서도 믿지 않고 선지자를 박해하였다. 지금도 세계정세는 계시록 9장에 예언된 대로 
거짓 평화공존(1958.3월~)의 분위기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단 9:26절 말씀대로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하고 외치게 된다. 예언대로 강대국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전쟁조짐이 중동과 극동에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전쟁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종들이 없고 "평화~평화"를 외치는 종들만 수두록하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러한 시국에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하는 것은 예레미야의 고통에 동참하는 순종적 행위임과 동시에 그가 받을 면류관을 함께 받게 되는 영광에 참여하는 신앙정로일 것이다. 모든 말씀은 이 시대에 한 말씀도 예외없이 100% 다시 예언될 것이다(계 10:1~11, 11:1~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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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9장
제 목 : 예루살렘 함락


1. 적군 침입과 눈이 뽑혀 포송되는 왕 : 1~7

 『 1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2 시드기야의 제 십일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이 온전히 성취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다. 예레미야서 39장부터 41장까지는 역사적 예언으로서 기록된 것이다. 이 부분은 성경의 예언성취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니 우리는 이 점(역사성)을 주목하면서 읽어야 한다. 선지자는 약 40년간 유다 나라가 북방에 의해 패망하리라는 예언을 거듭 말하여 왔다. 이제 급기야 이 예언대로 바벨론 군대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와서 18개월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다가 성을 함락시키게 된 것이다. 육체를 지니고 자연계 안에서 살도록 창조된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자연의 법칙을 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선민인 이상 예언대로 성취되는 인류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자는 없는 것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의 말씀이 
다시 예언되는 이 시대에, 저 북방에서 끓는 가마솥이등장하여 남방(겔 20:46~49)을 향해 기울어져 있으니 이제 예레미야 39장의 예언은 다시 한 번 종말의 역사로서 재현될 것이다.


『 3 바벨론 왕의 모든 방백이 이르러 중문에 앉으니 곧 네르갈사레셀과 삼갈르보와 환관장 살스김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기타 모든 방백들이었더라 』

"중문"은 예루살렘 성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중요한 문이다. 그들이 아직 성중에 들어가지 않고 먼저 성안의 모든 형편을 감시하기 위하여 "중문"에 앉아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은 렘 1:15절의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렘 1: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북방 모든 나라의 족속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면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을 치리라
종말의 북방환난과 탈선한 교회의 최후가 보이는가?


『 4 유다 왕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밤에 왕의 동산길로 좇아 두 담 샛문을 통하여 성읍을 벗어나서 아라바로 갔더니 5 갈대아인의 군대가 그들을 따라 여리고 평원에서 시드기야에게 미쳐 그를 잡아서 데리고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올라가매 왕이 그를 심문하였더라 6 바벨론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인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 하여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 

시드기야 왕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외쳤던 예레미야의 예언이 현실 속에서 모두 성취되는 순간이다. 선지자의 입에서 나간 예언이 얼마나 무섭도록 적중하는가는 다음 사실이 말해 준다.
① 왕이 도망하되 밤에 두담 샛문을 통하여 도망한 것(4절). 겔 12:12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 
② 그물에 걸리듯이 바벨론 군대에게 붙잡힌 것(5절). 겔 12: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③ 왕이 바벨론 왕앞에 와서 심문을 당한 것(5절하반). 렘 34:3절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④ 왕의 눈이 뽑히움(7절). 겔 12:13 "내가 또 내 그물을 그의 위에 치고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그를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 땅을 보지 못함은 눈알이 뽑혔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 소화(燒火)와 백성의 포송 : 8~10

『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바벨론으로 잡아 옮겼으며 10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

북방 갈대아(바벨론)인들이 유다를 불태우고 성벽을 헌 후, 부자와 힘센 용사들을 포송하였으되, 오직 아무 소유가 없는 가난한 자들은 유다에 남겨 두어 밭과 포도원을 그들에게 준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부선망(富先亡)의 원칙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적용됨을 볼 수 있다. 환난이 닥치면 유력한 자와 부자가 먼저 망한다는 사실은 종말에도 한 번 더 적용될 것이다.

  
3. 바벨론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우대함 : 11~14

『 1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레미야에 대하여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에게 명하여 가로되 12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13 이에 시위대장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과 박사장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14 보내어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서 취하여 내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붙여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중에 거하니라 』

전란 중에서도 예레미야는 보호를 받으리라 한 다음의 예언들이 성취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렘 1: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렘 15: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속하리라"
.

  
4. 에벳멜렉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 15~18

 『 15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6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앙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목전에 이루리라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붙이우지 아니하리라 18 내가 단정코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구원하여 준 에벳멜렉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다. 그것은 바벨론으로 말미암은 전쟁의 화가 예루살렘에 임할 때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고도 확실하게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참 종을 도와주면 이와 같이 보호를 받게 된다.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18절) - 에벳멜렉이 그 위험한 전쟁 중에서 하나님의 보호로 구원을 받아 누리는 기쁨이 구사일생의 경우와 같이 될 것을 가리킨다.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에벳멜렉의 신앙행위에 대하여는 38:7~13 을 참조바람. 에벳멜렉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서나 거짓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편에서 살면 진리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요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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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40장
제 목 : 예레미야의 석방


1. 예레미야의 석방 : 1~6

『 1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해방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예레미야는 일찍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의해 바벨론 군대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아 그 신변안전이 보장되어 있었으나(렘 39:14), 그 후 예루살렘이 혼란한 와중에서 그도 엉겁결에 바벨론 군대에게 체포되어 가는 무리 중에 섞이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에 보장받은 그 말씀대로 "라마"에서 해방을 받게 된 것이다. 어떠한가? 하나님의 예언은 한 치도 어긋남 없이 필연코 이루어진다는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구절 아닌가?

 
『 2 시위대장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앙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

시위대장이 말하기를 유다에 임한 전쟁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뿐이며, 재앙의 원인은 유다 민족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일개 이방 사람 중 하나인 시위대장이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잠깐 이용하시는 것인데, 요나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도망하여 배 밑층에서 잠잘 때 이방인의 경책(警責)을 당하게 되었던 경우와 유사하다. 요나에게 말한 이방인은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종들이 탈선할 때는 이방 사람을 들어 깨우치기도 하시는 것이다(욘 1:5~6).

 
『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해방하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선히 여기거든 오라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선히 여기는 대로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의 총독으로 세우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중에 거하거나 너의 가하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시위대장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중에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

39:11~14절에서처럼 북방군대가 예레미야를 보호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다. 내용인즉,

①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가든지 안 가든지 자유로이 선택토록 함이요(4절상반).
② 어디든지 자기 소원대로 갈수 있는 자유를 보장함이요(4절하반).
③ 그 땅 총독 그다랴에게로 가든지 안 가든지의 자유를 보장함이요(5절상반).
④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낸 것이다(5절).

  
2. 총독 그다랴의 피선 : 7~12

『 7 들에 있는 군대장관들과 그들의 사람들이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이 땅 총독으로 세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옮기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 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

바벨론 군대에게 패배를 당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군인들이 이제 총독 그다랴에게 모여왔으며 모압, 암몬, 에돔 등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도 모여왔다. 그때에 모여든 자들은 극히 악한 무화과였다(렘 24:1~10). 그러므로 그들은 다 흩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마엘"은 총독 그다랴를 죽이므로 민족에게 화가 미치도록 하였고(41:2) "요하난"은 하나님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반역하고 무리를 거느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자이다(43:7).

 
『 9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가로되 너희는 갈대아인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

그다랴는 9절 이후로 자기를 찾아온 피난민들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이미 가르쳐 주신 바 있다(21:8~9). 그다랴는 의인 아히감의 아들로서(26:24)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유다 총독이 되었으며 그의 지도 원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으로서 남은 백성을 선무(宣撫)하는 귀한 일을 하였다. 당시 피상적(皮相的)인 애국자들은 무조건 바벨론을 반대하는 길만이 애국의 길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에 합당한 애국자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순종하면서 백성을 지도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신본주의 애국자는 하나님 지상주의(至上主義)를 실천하고, 민족지상주의를 표방하지 아니하는 만큼 혈기에 넘치는 피상적 애국자들 앞에서 반역자로 몰리기 쉽다는 것도 역사상의 통례이다.

 
『 10 나는 미스바에 거하여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인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실과와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축하고 너희의 얻은 성읍들에 거하라 하니라 』

돌아온 피난민들에게 전쟁의 화를 겁낼 필요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식품을 "그릇에 저축"하는 것은 타국 군대의 침략 우려가 없는 때에 하는 행동이다. 총독 그다랴가 이런 안전보장을 약속한 것은 그가 예레미야의 사상계통에 속하여 유다 민족의 진로(進路)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귀한 지도자를 살해한 이스마엘의 행위는 사단에 속한 행위인 것이다.

 
『 11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북방에 있는 유다인도 바벨론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의 위에 세웠다 함을 듣고 12 그 모든 유다인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실과를 심히 많이 모으니라 』

"모압", "암몬","에돔" 민족은 유다 민족의 원수가 되는 족속들이다. 그런 나라들 가운데 피하였다가 돌아오는 유대인들은 당연히 바벨론에 항복하라 하신 하나님의 지도를 좋게 여기지 않던 자들이 틀림없을 것이다(악한 무화과). 바로 그들 중에 하나로서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인 것이다(41:1~3). 언제나 권력자나 부자들 속에서 역사하는 사단의 속성이 잘 폭로된 사건이다. 종말에도 사단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적어도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급 속에 들어가 역사할 것이 분명하다. 사단은 이런 자들을 사주하여 성경과 반대되는 길을 걷게 만드는 것이니, 이 책을 읽는 지도급 인사들은 말씀의 등불로 새로 지음을 받아 그 악한 무리의 사상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편에서 순복하여 승리의 길 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3. 요하난이 총독암살 음모를 고발 :13~16

『 13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군대장관들이 미스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취하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요하난은 총독 그다랴에게 총독 암살계획에 대하여 밀고(密告)하였다. 사단의 계획이 현실화되기 이전에 항상 이 같은 사상전쟁이 있음을 알되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참고해야 한다.

 예레미야의 사상계통에 속하는 그다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유다 남은 백성의 살 길을 잘 지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그러나 마귀는 반드시 이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역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다랴가 그 밀고를 받고도 믿지 않는 것은 무사안일주의(
無事安逸主義)의 잘못된 태도였다. 그다랴는 사단의 비밀을 몰랐다. 그러나 비밀을 몰랐던 데서 화가 온 것이 아니라, 알려줘도 믿지 않았던 사실에서 화가 임했으므로 그 책임은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그다랴에게 밀고하므로 총독암살을 막아주려 했던 요하난의 선함은 그 행위에서 막을 내린다. 이제 잠시 후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은 패역한 무리의 지도자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43:2~7). 육적 전쟁에서건 사상 전쟁에서건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이다. 아홉을 잘했어도 마지막 하나에서 무너지면 승리는 마귀의 것이 된다.

에덴동산을 공격하여 무너뜨렸던 옛 뱀은 마귀요 사단이며 붉은 용인데(계 12:9, 20:2), 에덴 파괴 이후에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노아 때에도 역사했고(눅 17:27), 예루살렘 성전에도 역사했고, 피로 산 교회도 거의 다 장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마지막 교회인 촛대 교회까지 들어와 계속하여 공격하고 있으니, 사명자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렘 11:9~23 ☞ 아나돗(제사장촌) 사람들 / 12:6 ☞ 형제와 아비의 집).


 15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가로되 청하노니 나로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로 네 생명을 취케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인으로 흩어지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케 하랴 16 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치 말 것이니라 너의 이스마엘에 대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 

간교한 사단은 밤낮 참소하고 있으나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만 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인도해 주신다. 구약 때의 모든 교훈은 종말에 등장할 144000명에게 주신 로얄제리와 같은 양식이요 교훈이니, 우리의 인도자-명령자 되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100% 기록된 대로 순종만 할 따름이다. 예수님이 다윗의 입을 빌어 하나님 앞에서 "나는 벌레요" 하셨다면(시 22:6) 우리는 예수님 앞에 또한 벌레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41:14).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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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41장
제 목 : 이스마엘의 반란


 1.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살해함 : 1~3

 『 1 칠 월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

"왕의 종친"이란 말은 왕손이란 말이다. 이스마엘이 유다의 왕손이었으니만큼, 그때의 집권자였던 그다랴를 없애 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느다냐의 아들 왕의 장관"이란 말은 그저 왕을 섬기는 고관들의 이름이다. 

"떡을 먹다가" 총독 그다랴의 대접으로 음식을 먹던 중에 일어난 사건이다. 음식 대접을 받던 중에 그 대접하는 주인공을 죽이는 것은 살인 중에도 가장 악한 방법이다(요 13:18). 민족이 포로가 된 상황에서 그것도 그 남은 자들 가운데 이런 악한 일이 또 발생하는 것은 예레미야가 "악한 무화과"라고 말한 예언이 참된 예언임을 증거해준다(24:1~10). 렘 39장에서 41장까지는 실천적 예언으로 특히 40:7절부터 41:18절까지는 그 남은 백성이 심한 불행 가운데 빠지게 될 사실을 보여준다.

 
『 2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한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3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한 모든 유다인과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

이스마엘 일당이 그다랴와 및 그의 지지자(支持者)들과 갈대아 군사들을 일시에 죽인 사실은 내란죄에 해당되고 유다의 지배국인 바벨론을 대적하는 행동이었다. 이스마엘은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보낸 사단의 단체에 속한 악인이다. 자기 개인의 정권욕을 위해서는 유다인이야 죽든지 살든지 관여치 않는 그의 행태는 사단의 속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2. 사마리아 예배자를 살해함 : 4~9

『 4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 』

"이틀이 되었어도" 그 정보가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을 볼 때 매우 간교한 자임을 알 수 있다.

 
『 5 때에 사람 팔십 명이 그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에서부터 와서 여호와의 집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6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서 울며 행하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여 7 그들이 성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로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에 던지니라 』

이스마엘이 행한 또 하나의 무서운 살인행위가 드러나는데, 그는 무죄한 사람 80명 중 70명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80명은 몸에 유다의 멸망을 슬퍼하는 표시를 한 채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오는 도중이었다. 사단은 항상 사람을 죽이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살인자이다(요 8:44). 사단에게 잡힌 이스마엘 일당이 치밀한 계획과 연기로 그들을 꾀어 살해한 것을 볼 때 정말로 간교한 살인마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악한 무리가 그 땅의 남은 백성을 휩쓰는 것을 볼 때 예레미야가 예언한 "악한 무화과"라는 말이 정확히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 8 그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우리를 죽이지 말라 하였으므로 그가 그치고 그들을 그 형제와 함께 죽이지 아니하였더라 』

80명 중에 열 사람은 이스마엘에게 뇌물을 주고 죽음을 면하였다. 여기서 사단의 또하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옳은 정치에 대하여는 역적의 무리가 되게 하고 물질에 대하여는 탐심으로 가득찬 도적떼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단의 사주인 것이다. 돈은 일만악을 저지르게 하는 뿌리임과 동시에 일만 악당들에게는 삶과 행위의 목적이자 이유인 것이다. "우리가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밭에 감추었으니" 라고 말할 때 그들의 살인의지는 어느 새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성에서 선악과의 질이 최고로 발동하니 하나님의 시온산은 사단의 집이 되고 만 것이다.

 
『 9 이스마엘이 그다랴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던진 구덩이는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 죽인 시체로 거기 채우고 』

그당시 이스마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다랴는 총독이요, 총독 주위에 딸린 식솔들을 생각할 때 총독에게 속한 사람을 모두 죽여 구덩이에 던졌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살인이었겠는가? 이 구덩이는 유다 아사 왕이 이스라엘 왕 바아사를 두려워하여 팠던 것이라 함을 보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사상적으로 나뉘어 간헐적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이 치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3. 요하난의 잡힌 자를 다시 찾음 : 10~18

 『 10 미스바에 남아 있는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 곧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위임하였던 바 미스바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을 사로잡되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사로잡고 암몬 자손에게로 가려 하여 떠나니라 』

"암몬"은 롯의 둘째 딸과 아비와의 동침으로 태어난 잡족이다(창 19:38). 이 민족은 이스라엘의 숙적(宿敵)으로서 늘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삿 3:13. 삼상 11:1~11. 렘 49:6~9. 겔 25:1~7. 암 1:13~15. 습 2:8~11).

 
『 11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의 행한 모든 악을 듣고 12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가에서 그를 만나매 13 이스마엘과 함께 있던 모든 백성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한 모든 군대장관을 보고 기뻐한지라 14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에게 포로되었던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15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

이스마엘의 악행을 보고 일어난 요하난의 의거(義擧)에 대하여 말한다. 그때에 이스마엘의 포로들 중 8명을 제외하고 거의 전부가 이스마엘을 배반하고 요하난 쪽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요하난은 피 흘림 없이 승리하고 이스마엘은 패배를 당했다.
"기브온 큰 물가" 이 곳은 미스바의 동북쪽, 예루살렘 북서쪽 약 8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성경지명사전의 '기브온')

 
『 16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군대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17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18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 왕의 그 땅 총독으로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인을 두려워함이었더라 』

"요하난"은 정의감이 강한 용사요(13~15) 또한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실수는 이제로부터 발생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하여 이 민족이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러나 요하난은 일시적인 두려움으로 그 뜻을 거스르고 반대 방향 곧 애굽 땅으로 도망가려 했던 것이다. 실패자의 생각은 언제나 인본주의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렇게 유다 민족의 말로(末路)는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24장) 그 남은 백성까지 더욱 불행해지는 상황으로 떨어진다.

선한 지도자 그다랴가 암살 당하고 이스마엘은 남은 백성까지 모조리 살해하는 악행을 하였고, 요하난까지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고 말았으니 사단의 힘은 강하고도 강했다. 본장의 사실들은 모두가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역사 이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한 렘 24:8~10절의 예언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24:8~10). 보이는 세계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정한 뜻에 의해 철저히 지배당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이제 42장부터는 남은 자들의 불순종이 노골화된다. 교만과 패역을 연구할 수 있는 최고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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