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성경 : 이사야 51:1~23 -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

성경:이사야 51:1~23
제목:하나님의 위로와 구원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구속 역사를 하시되 본문에 예언하신 대로 하시게 된다. 성경은 영혼과 육체에 관한 완전한 구원을 목적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계약서이다. 성도에게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해도 본문의 예언대로 순종치 않는다면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된다.

롬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1. 시련 끝에 위로를 주심:1~3

『 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

● 1절:“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으라” -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들어야 한다. 아브라함같이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새 땅의 축복을 받게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어떻게 이루실 것을 구약 때 다 보여주신 것이 육적 이스라엘 역사서이다. 또 율법과 선지서에서 미리 예언하셨고 또 예언대로 이루어 보여주셨다(사 46:10).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명령하셨다. 목적은 새 시대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갈 길도 모른 채 발걸음을 옮기는 아브람의 절대 순종!

창 12:1~4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창 13:14~17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 주시되 창 15:13~16절같이 이방 애굽에서 400년간의 노예생활을 하고, 40년간의 광야 시련을 거쳐 주시겠다고 작정하셨다.

이제 종말에 말세 종들에게 너희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갔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시련이 곧 축복이다.


①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생활

창 12:1~4절을 보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용기 있게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교훈의 생활이요 본보기이다.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그 자손들에게 모든 선지자에게 예언한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라 명하셨다. 종말에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약속된 축복을 받으려면 촛대 교회를 건축하라는 것이 학개스가랴서의 말씀이다.

슥 8: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하셨다. 학 2:10~23절까지의 예언은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 성전 건축을 시작하면 세상을 뒤집어엎을 때에 남은 자가 된다고 하셨다. 여기서 다리오 정치는 동방역사의 유신 정치이다. 동방의 대표 종(이뢰자 목사님)이 1972년 8월 7일에 별세하니, 10월 17일 유신 헌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2년 12월 27일 유신 대통령이 취임하니 73년은 유신 1년이요, 74년은 유신 2년이 된다. 곧 1974년, 즉 유신(다리오) 2년에 학개서를 깨닫게 하시어 9월 24일에 역사적인 순의 제단 지대를 놓으니 사람의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고 때가 차매 말씀이 이루어지는 강권적인 역사인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이 때부터 모든 예언서가 밝아졌다.

사 19:18~ 다섯 성읍 때 애굽 땅 중앙제단이 세워진다고 예언하셨는데, 대표 종이 세웠던 1964년 9·24 성전은 4대 성읍(미·영·불·소) 때였으니 예표의 제단이다(슥 3:8). 예표 시대란 을 내기 위해 보여주고 가르칠 때인 것이다. 오직 말씀대로 다리오 왕 2년이 될 때 순의 제단을 강권으로 세워주셨으니 남은 말씀도 강권으로 이루실 줄 믿고 나가는 바이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은혜 시대에 관한 예언을 모두 이루셨는데, 그 이루신 말씀이 몸에 들어오면 중생을 받게 되었고(영혼 구원), 재림 때는 이 후에 마땅히 될 일 곧 예수님의 피로 산 모든 예언서가 몸에 들어와야 변화체가 된다는 것이다(계 4:1, 10:7).

슥 3:9~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하셨으니 누구든지 예언서를 가감하면 재앙이요 멸망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말씀을 다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성경대로 오셔서(유월절양) 순종하심으로 전 세계로 구원을 받게 하셨으니, 그 가지인 우리도 스룹바벨 성전 건축에 절대 순종할 때에 철장권세를 받아 전 세계 민족을 환란에서 살려주게 된다.

계 14:4~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시온산에 서서 주와 같이 왕권을 누리게 된다. 만일 아브라함이 불순종했다면 믿음의 조상이란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없고 또한 하나님의 큰 구원이 성취될 수 없다.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하나님은 이를 의롭게 여기시고 새 시대를 이루는 구속의 역사를 개척하셨다.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할 때 언약대로 실천해 주셨다(그러므로 말씀을 버리면 언약과도 무관해진다).


② 순종의 제사를 드림

불순종의 대표 - 사울
순종에서 오는 찢어지는 아비의 마음

창 22:9~12절에 하나님은 제물을 원하지 않고 순종을 원하셨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사울 왕이 버림받은 이유는 불순종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래서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2절).


③ 순종으로 만민이 복을 받음

창 22:18~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귀한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아낌없이 번제로 드릴 때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인 그림자 사건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모리아산에서 화목 제물이 되시므로 천하 만국의 택한 자들이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보여준 것이다.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마귀의 일을 멸하고(요일 3:8) 세계를 통일하실 말씀이다.

 
1. 울부짖는 이삭(예수)의 심정을 보라!  찢어지는 아브라함(하나님)의 마음을 보라!
2. 돌려 받은 이삭을 보라!  부활하신 예수를 보라!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2. 심판을 내리면서 구원하심:4~8

『 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7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8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

하나님의 공의는 곧 말씀인데 불순종하는 자는 새 시대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공의이다. 민 14: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인간 종말에서도 구약같이 1974년 9월 24일에 세워진 촛대 교회에서 밝혀준 말씀을 거역·반대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이요 빛이시니 순종하지 않는 자는 공의의 심판을 받아 아담같이 된다.

창 1장의 창조의 빛은 생명과 약동의 빛이다. 이 빛의 세계(에덴)에서 살다가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타락한 인간에게, 다시 갈릴리로부터 큰 빛을 주시니 곧 죽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빛이었다(사 9:1~3). 이 날까지는 갈릴리 빛을 받아 영혼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심령천국을 누렸으나, 종말이 되어 계시록의 예언(나팔)대로 미혹해 보는 흑암(계 9:)이 온 세계 교회를 덮은 이 때는 종말의 큰 빛, 곧 동방예언의 말씀(등불)을 높이 들어야만 허락받고 나온 흑암을 뚫고 새 시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 만대 축복이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여정인데, 들어보지도 않고 이단시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종말관의 예언이 아니면 육체 구원을 받을 길이 없다. 영이 뭔지도 모르는 북방 무신론 정권이 칼을 들고 나와 교회를 대적할 때 하나님이 무엇을 보호하시랴! 당연히 육체다. 육이 살아야 영과 육이 아울러새 시대를 본다. 우리의 목적은 새 시대이지 죽어 천당이 아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예언을 중생 못 받은 이방인에게 전하신 것이 아니다. 이미 영혼의 구원을 얻어 크게 성장한 종들(종말의 교회)에게 이 말씀을 들으라 하셨다(계 1:1, 4, 20, 22:6). 마 24:22절에서도 창세 이래로 없던 대환란이 올 때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셨다. 북방환란은 불순종하는 자의 육체를 이 땅에서 끊어버려 성결한 새 시대를 앞두고 쭉정이(인간 쓰레기=불법자)들을 쓸어내는 대청소 작업이다.

중생을 받았어도 예언의 법을 무시할 때 육체는 북방 칼에 죽고 그 영까지 1,000년간 옥에 간다는 것이 종말의 심판의 법이니, 인자가 다시 올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이 임하리라(마 24:45)는 것은 종말의 타락과 더불어 심판 방법이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이다(벧전 3:19~20). 그러니 종말은 영혼 구원을 얻어 주님의 은사를 자랑하던 자들이라도 이 예언의 법을 모른다면 크게 후회하는 날이니 불법자의 애통할 날이다(마 7:21~27). 그러니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때를 따라 나눠주는 양식을 꿀같이 받아먹고 순종하는 자가 되자!(마 24:45).


창조의 빛에서 타락한 가인은 흑암의 아들이 되어 심판을 받았고, 은혜의 갈릴리 빛을 반대하던 유대교 교인들도 영적 흑암에 빠져 독사의 자식이 되었으니, 이제 또한 종말에 예언의 빛이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순종치 않는 자는 영과 육이 아울러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죄를 범했다 하여 심판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죄를 사해 주시려고 교훈을 주셨는데도 그 교훈에 불순종할 때에 용서 없는 심판이 내린다는 것이다. 노아 때에 방주를 주셨는데도 불신하여 타지 않은 자는 물 속에 장사지낸 바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심판을 작정하시고 행하신 일이나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는 교훈이 된다(롬 15:4, 고전 10:11, 벧전 3:20).

주께서 율법과 선지서를 이루시려고 유월절 양으로 오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셨으며, 종말에 개국 이래로 없던 큰 환란이 올 때 초막절기로 육체까지 보호하시려고 9·24 제단을 주셨으니 눈이 있다면 때를 알아야 하겠고 때를 알았다면 법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의를 세워보려고 촛대교회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5개월 환란에서 절대로 보호받을 수 없다. 노아 때 불순종자들에게는 방주문이 닫힌 것처럼, 종말에도 첫째 화와 동시에 육체구원의 문을 닫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능력을 베풀면서 위로하심:9~11

『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救贖) 얻은 자들로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


인도자 모세의 손에 능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으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위로의 역사였다. 압제자 애굽을 굴복시킴같이, 강대국 앗수르! 화려한 바벨론과 페르시아 대제국! 놋쇠 같은 헬라! 철 같은 로마가 모세의 뒤를 이은 권세의 종들과 예수님, 사도, 성령의 권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망하게 되었다. 

이제 종말에 소련을 굴복시킬 말씀이 스룹바벨 제단에 머릿돌 말씀, 철장권세로 준비되어 있다(슥 4: 7). 아멘!

  
4. 대적을 들어 쓰면서 구원하심:12~16

『 12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 양식이 핍절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저어서 그 물결로 흉용케 하는 자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려 하였음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안식을 이루시기 위해서 마귀를 창조하셨고, 또 사단의 이용물인 강대국가를 시대마다일곱 머리 짐승으로 들어쓰신 후 꺾어 버리셨다. 언제나 시온은 오직 위대하신 하나님만 바라보고 용기 있게 나가야 승리한다.

애굽에서 나올 때도 하나님께서는 종 모세만 바라보고 끝까지 따라온 여호수아갈렙 두 사람에게만 가나안 복지 밟는 것을 허락하셨으니 종말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강대국의 대적을 보고 겁내며 두려워하던 자들은 굳세지 못하니, 곧 절대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우리의 거울이다. 바벨론 대적이 유다를 괴롭힐 때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앙의 절개를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 풀무불과 사자굴로부터 살아나왔으니(단 3:, 6:) 이를 본 열왕은 무릎을 꿇고 절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었다. 이것도 우리의 거울이다(히 10:1, 롬 15:4).

예언의 말씀을 믿는 종말의 사명용사들도 이제 온천하에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세상 열왕의 굴복을 받아낼 것이다. 아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대적이 아무리 태산 같을지라도 조금도 겁내지 말고 말씀만 의지하여 싸우자. 그리하면 승리는 위에서 주실 것이다. 대적을 보고 두려워하는 왕이나 정치인, 종교인들은 모두 원수의 밥이 된다. 우리는 다윗같이 믿고 달려나가 돌(머릿돌)을 던지면 역사는 위에서 하신다. 위에서 오는 역사는 신의 역사이니, 강한 원수가 일격에 거꾸러진다.

  

5. 절망 중에 건져 주심:17~23

『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같게, 거리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 여호와께서는 어떤 자에게 분노의 잔을 주시는가?

사 66:1~6절에 말씀에 떨지 않는 자에게 유혹의 영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다. 종말은 계 9장같이 미혹해 보는 흑암의 때인데, 말씀에 떠는 자는 예언서를 꿀같이 먹어 하나님의 인(印) 침을 받게 되고, 말씀에 떨지 않는 자는 유혹의 영을 받으므로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아담이 시험 받은 것처럼 종말에도 은혜 받은 교회에 오메가의 시험(다섯째 나팔)이 온다. 학교에서도 예습·복습을 철저히 한 학생만이 총명하고 담대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모든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을 잘 복습하고 모든 예언서를 철저히 무장하는 완전한 예습이 있어야만 오메가의 시험(미혹) 앞에서 담대하고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다. 1958년 3월부터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의 거짓된 평화공존(계 9장)이 세계를 덮게 되니 햇빛 같던 교회가 어두움에 잠겼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어두움의 단체이다. 성경을 손에 들고도 예언서를 몰라 흑암에 떨어진 자들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강한 이방 공산당을 심판하고 새 시대를 이루실 것이 목적인데(사 2:4, 미 4:2), 하나님 뜻도 모르고 멸망당할 대적(공산당)과 협상하는 교회는 음녀 교회이다(계 17:). 누구든지 이 분노의 잔에서 빠져 나와야 환란에서 보호받는 초막절기를 지킬 수 있다.

● 그러므로 21절:너 포도주가 니아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심은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아버지 오른손으로부터 받은 안팎으로 기록된 심판의 구약 책을 말씀하심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기록된 책대로 행하시는 역사이다.

지금 이 때는 사 5:20절 같이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을 쓴 것으로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하고 외칠 때이니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기름을 예비하여 등불을 든다고 했다(마 25장).

처녀는 교회요 등은 예언의 등불을 말한다(예수님의 확실한 증인 베드로도 성령을 충만히 받고 편지하기를 벧후 1:1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하였다). 즉 이사야나 베드로나 종말에는 예언의 등불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강한 흑암이 올 것을 내다보았다. 이 사악한 흑암은 예루살렘, 즉 교회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렘 9:14~15 “그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그 열조가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고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열국 중에 그들을 헤치고 진멸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니라”
렘 23: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邪惡)이 예루살렘 선지자에게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렘 25: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 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칼을 보냄을 인함이라”

은혜 받은 교회가 말씀은 따라가지 않고 세상 길로만 치우치니,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은 봉한 책이 되고 말았다. 강단에서는 예언을 못 밝히고 세상 이야기만 해대니 성도들의 심령은 메마르고 컬컬하게 시들어 간다.

● 22절:“보라 내가...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 그러나 이러한 흑암의 때에, 이 민족과 이 시대의 양 떼를 살리시려고 동방 한국에 예언서를 밝혀 주셨다. 오직 믿는 자가 살 길은 심판할 예언서를 듣고 따라가는 이 한 길뿐이다. 예언서의 내용은 연대와 날짜까지니 가감 없이 지켜야 한다(신 32:7, 행 1:6~8, 17:26~). 취하여 잠든 자들을 깨워서 빛으로 인도하는 역사! 이것이 바로 새 일의 역사이다.

렘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슥 4:7~ 머릿돌·다림줄은 스룹바벨의 손에 있으니 1974년 지대 놓은 9·24 제단, 스룹바벨 중앙교회에 약속하신 대로 모든 말씀을 밝혀 주셨다. 이 제단은 사 19:18~19절같이 5대 성읍(5대 강국) 때 세워진 애굽 땅 중앙제단으로 진리로 인해 압박 받는 제단이다. 4대 강국 때 세워진 대표 종의 9·24 제단(1964. 9. 24)은 예표의 제단이다(슥 3:8). 예표 종은 사단과 싸워 승리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하셨으며, “내가 네 죄과(罪過)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며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셨다(슥 3:1~5). 즉 예표 종(이뢰자)은 자기의 사명을 마친 것이다.

부분적인 역사, 혼선된 예언을 들으면 분노의 잔을 벗어날 수 없다. 성경대로 허락받고 나와 득세하는 마귀의 때인 이 때, 기독교가 무엇으로 마귀를 이긴단 말인가? 사랑으로? 타협으로? 은사 역사로? 이적 기사로? 결코 아니 될 말이다. 마귀(흑암)는 무찌르는 무기가 따로 있다. 바로 머릿돌, 다림줄의 진리인 철장권세 말씀이다.

● 23절:“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 이미 21절에 이르시기를 취한 자여“이 말을 들으라” 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전 4:6). 이 말씀을 듣고 끝까지 진실할 때(계 17:14) 우리 등을 땅바닥 밟듯하며 우리 허리를 길바닥 디디듯 하여 우리를 곤고케 하던 자들에게 재앙의 잔을 돌리시므로 우리는 허리를 펴고 원수를 이기는 승리를 맛보게 해주신다는 진실한 약속이시다.

승리는 순종자의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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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1:1~3 -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 사 51:1∼3 - 

이사야 51:1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3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행하신 일은 그들에게 약속한 언약대로 복을 받을 종들에게 준 교훈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대표적인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복을 받을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남은 종이 될 사람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여 볼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순종하는 생활을 함 (창 12:1∼4)

하나님께서 대표적인 사람을 세울 때에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큰 사명을 맡은 사람이 철저히 순종하는 일이 없다면 대중을 지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하셨던 것이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용기있게 말씀을 순종하여 하란을 떠나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만일 세계적인 사명을 걸머진 아브라함이 용기있게 걸어 나가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대 사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로되 아브라함 한 사람이 순종을 할 때부터 하나님은 새 시대를 이루는 역사를 개척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말씀대로 시행하시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아브라함은 어리석은 자 같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와 같이 여기셨던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2. 순종의 제사를 드림 (창 22:9∼22)

아브라함은 순종이 제물보다 낫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로 번제를 드리라고 할 때에 용기있게 아들을 번제로 드리기로 작정하고 아들을 제단에 놓을 적에 하나님은 그것을 만족한 제사로 인정하고 그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금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자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제물로 바친 것으로 인정을 하고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을 하셨다. 우리의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바치기 전에 순종이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명을 맡은 자는 조금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순종해 나갈 때에 우리가 죽지 않았어도 주를 위하여 죽은 것과 같이 인정하는 것이요, 우리가 바친 것이 없다 하여도 바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물을 바쳤다 하여도 중심에 순종이 없다면 받지 않는 것이요, 완전히 바치지를 못했더라도 끝까지 순종할 때에 바치고도 외식하는 자 보다 더 인정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종이 주인의 일을 받들 때에 주인은 그 종에게 물질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시키는 일을 진심으로 순종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받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그 순종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당신에게 바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몸을 하나님께 바칠 적에 죽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요, 죽지 않고 순종의 제물로 많은 열매가 있기를 원하신다.

과거의 순교자들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으므로 축복의 죽음을 준 것이요, 살아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을 받을 변화성도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친 것과 같이 몸을 완전히 바칠 적에 이삭의 몸을 아껴서 죽이지 못하게 한 것처럼 우리 몸도 하나님께서 산 제물로 인정을 하시고 우리의 몸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신 말씀대로 거룩한 씨가 새 시대에 번창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만민이 복을 받게 됨 (창 22:18)

하나님께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것은 네가 내 말을 준행했으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것을 본다면 대표적인 아브라함의 순종이 우리에게까지 응답이 미쳐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명적인 일체가 되므로 앞서간 종들의 순종한 열매가 우리에게 열매가 되는 것이니 그들이 간 신앙 노선을 우리가 생각하고 아무런 시련이 와도 순종할 때에 그에게 약속한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하고 아무런 어려운 환란이 우리 앞에 온다 하여도 큰 축복이 올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련 끝에 인정하고 세우신 언약은 우리 변화성도로서 환란과 재앙을 만나도 끝까지 참고 나가는 사람에게 에덴 축복이 올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되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받으므로 잠깐의 시련을 지나서 영원한 기쁨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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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7. 한국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7. 한국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70.7]


   
우리는 셈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금일에 셈의 장막은 다 교회가 황폐되고 남한 반도를 내놓은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 땅에 나타날 징조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할 때에 셈의 하나님은 셈의 장막에 올 환난과 또는 동방 땅 끝에서 일어날 역사를 중심하여 하나같이 묵시를 보인 것이다.

  
오늘에 셈의 장막에 억울한 피가 호소하는 그 응답은 야벳의 장막으로 올 것이 아니고 무너지다 남은 우리 남한 교회에 나릴 것이니 이제부터 한국 교회는 교파를 초월한 진리 통합에 목적을 두고 남한 교회에 보내신 심판의 다림줄을 굳게 잡고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오는 복을 받아야 할 것이니 어찌하여 이 나라에 임한 진리를 자세히 알아도 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경솔하고 망령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정통 신학자들이 심지어 천년 왕국이 없다고 주장해도 이것은 정통 신학이라고 하면서 천년 왕국에 들어갈 참된 진리가 한국 교단에 나타난 것은 어찌 조금인들 경홀히 볼 수가 있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적한다는 것은 큰 막대기를 맞을 우려가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징계가 다시 올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종들이 기도할 일이요 남의 말에 동요 받는 경솔한 자 되지 말고 좀 더 무겁게 생각하고 이 나라에 나타난 말세 비밀의 진리를 완전히 상고해 볼 필요가 노회와 총회의 회원들까지도 있다고 본다.

  
한국 교회가 W.C.C.에 정식 가입을 했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우리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남한 교회가 협상적인 노선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셈의 장막에서 피 흘린 종들의 피 값을 어찌할 것인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 보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시간을 아껴가며 하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심령 부흥회로 끝을 맺는 사명이 아니요, 세계를 깨우치는 다시 예언의 말씀으로 나서야 할 사명이 한국 교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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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설 : 8. 변화성도가 일어날 때는 왔다

8. 변화성도가 일어날 때는 왔다 [70.7]


   
기독교는 변화성도가 단결하여서 일어나야 할 때는 오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묵시를 볼 때에 전 세계 인류에게 복음이 전파된 다음에 북방으로부터 앗수르와 바벨론적인 세력이 중동을 중심하여 남침하는 환난이 올 때에 인력으로 막을 수가 없으나 변화성도가 일어남으로 각 나라의 남은 자로 말미암아 북방이 망하게 되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하나같이 묵시를 보았다.

  
극동 난제가 해결될 일은 변화 승천할 종들이 엘리야 모세같이 역사하는 일이 있으므로 동방 난제가 해결될 것을 계시록과 선지서에 가르쳤으니 우리 기독교는 천당을 목적하고 싸울 때가 아니고 북방 세력이 무너지고 새 시대가 올 것을 목적하고 싸워야 될 것이다.

  
변화성도가 전할 말씀은 계시록과 선지서이니 이것을 전하지 않고는 멸공 운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없는 멸공이라는 것은 힘줄 없는 지체 같아서 아무런 열매가 없을 것이다.

  
멸공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정책으로 이긴다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았고 종말에 진리 운동이 일어나서 진리로써 북방을 대적할 때에 하나님은 진리대로 북방을 때려 부수고 진리대로 보호하고 진리대로 새 시대가 올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허위 선전에 속지 않게 하는 것은 변화성도가 완전 변론의 진리를 가지고 공산당의 정책과 사상과 또는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 들고 나서야 할 때이다.

  
오늘에 북방 세력이 강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변화성도에게 권세를 주어서 북방을 치게 하고 하나님이 누구 신지를 세상이 알게 하는 동시에 큰 회개 운동이 일어남으로 많은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는 데는 북방 세력을 없애는 동시에 그를 용납하던 자 까지도 없앤다는 것이 기독교 성경의 종말론이니 이 진리는 변화성도가 싸워야 할 사명이며 받아야 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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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이사야 52:1~15 - 시온의 종말의 영광

성경:이사야 52:1~15
제목:시온의 종말의 영광


시온은 다윗 왕이 왕도를 정한 곳으로 이 시온 성을 평화의 성(예루살렘)이라 한다. 성경 기록의 목적은 육적 이스라엘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요, 그들을 통해 보여주시면서 미리 예지·예정하셨던 영적인 세계 이스라엘의 구원이 목적이다. 예수님이 성경을 성취하시려 오심으로부터 육적 이스라엘은 택민의 사명이 끝나게 되었다(이는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치우침이 없도다).

마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고, 마 21:33~4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했으며, 마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하심으로 주님을 영접치 아니한 유대인의 멸망을 예언하셨다. 육적 이스라엘의 패역과 교만이 심판 받은 것이다. 이들의 잘려나감으로 하나님을 모르던 이방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로다(엡 1:3~14, 롬 11장). 그러나 잘려나간 그들이라도 예수가 그리스도(메시야)임을 믿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적 이스라엘이란 민족과 국경의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되는 역사이니 이를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道)라 한다(엡 3:6~8, 갈 3:27). 은혜 시대의 시온의 영광은 이방 갈릴리에서부터라는 사 9:1~3절의 예언이 예수님 때 성취되므로 마 4:12~17절에 인용하여 기록되었고, 종말의 시온의 영광은 해 돋는 동방 땅 끝에서부터라고 예언했으니(계 7:2~, 사 24:14, 41:1~4, 59:18~) 북방에서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환난이 올 때 하나님 권세로 북방을 무찔러 승리한다는 것이 종말에 있을 시온의 영광이다.

  
1. 부정한 자가 다시는 없게 됨:1~2

『 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2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

세계 교회를 대표하는 동방에 하나님의 선지 국가를 세우시어 알곡을 모집하는 역사(초막절)가 펼쳐지는데 있어 부정한 자는 허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할 때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 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므로 동방 시온의 영광은 찬란하게 된다. ☞ (찬송가 248장)


●1절 상반절:“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입을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 신앙의 잠을 깨우는 역사는 동방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슥 4장같이 캄캄한 영적 밤이 온 세계를 덮은 이 때에 순금등대 감람나무 같은 종의 역사로 태산 같은 북방 원수의 세력이 평지가 되며, 머릿돌 말씀의 진리 역사를 보고 일어난 대중적인 무리로 은총의 골짜기를 이루시는 데는 모든 역사가 동방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 51: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하신 말씀처럼 20세기 종말의 세계 모든 교회가 이같이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내려오는 북방환난을 당하게 되는 것은 이 말씀인 예언서를 듣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빛도 어두움도 창조하셨는데(사 45:7), 왕국건설(☞ 왕국건설 승리가)을 위하여 마지막 어두움을 들어 쓸 때 누구든지 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길은 예수님께서 피로 사신 예언서를 따르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큰 싸움이 있다고 경고하시며 이미 이길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니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예언서는 구원의 법이자 심판의 법이 된다. 따르는 자에게는 구원의 책이요, 버리는 자에게는 심판의 책이다.

● 1절 하반절:“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하심은 슥 2:5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하심과 같은 역사이다.

● 2절:“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 이 말씀은 동방의 빛(한국의 말씀)으로 완전한 해방을 받되 이제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슬픈 아리엘’의 때, 곧 땅에서 나직히 지껄거리는 지렁이의 때, 전통에 감춰진 시련의 때를 지나 강력한 새 타작기, 마광한 살, 시온의 잠을 깨우는 철장권세로 쓰임받는 동방역사로 초막절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이다.

  
2. 원수의 압박에서 속량하여 줌:3~6

『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4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寓居)하였었고 앗수르 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6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 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 줄 알리라 곧 내니라 』

해방에는 때가 있다. 구약 때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400년, 즉 이방 땅 애굽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해방받는다는 창 15:14절의 말씀이 출 12:40절에서 성취되었으니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전 3:1).

애굽 고역의 생활동안 쌓아진 이스라엘의 한숨과 눈물의 기도는 모세를 탄생시키는 전주곡이 되었다

창 15:13~14절의 말씀을 하나님은 정직하게 이루셨다. 인류역사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음이로다. 아멘!

육적 이스라엘의 육적인 해방에도 ‘때’가 있었다면, 세계 영적 이스라엘의 진리 해방에도 때가 있을 것이다. 앞에 기록했듯이 육적 이스라엘의 해방은 창 15:14절과 출 12:40절로 증거되었다.


그렇다면 영적 이스라엘의 해방은 성경 어느 구절에 기록되었을까?

바로 학개, 스가랴서이다. 유다(한국)의 성전이 9·24 제단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학개서의 말씀이다. 슥 1:12~ “이(유다)를 노하신지 70년이 되었나이다” - 여기서 “70년”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70년은 동방 유다에서부터 회복이 시작되어 세계 영적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되는 핵심적 연대이다. 70년이란 1905년부터 아무 이유 없이 일본에게 값없이 팔려간 영적 유다 한국을 기준한 것이니(∵ 스가랴 선지가 1:12절을 외칠 때는 주전 520년 경으로 구약 유다가 회복된 지 이미 16년이 지난 후이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값없이 팔려간 한국이 70년이 차는 해 1975년에 돈 없이 속량된 것이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민족도, 세계 이스라엘도 학개스가랴의 예언대로 정한 때에 해방이 된 것이다.


● 4절:“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 하였었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 -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 400년, 북방 바벨론에70년 잡혀가 포로 생활을 하였으나 정하신 연대가 될 때 어김없이 회복을 주셨듯이(단 9:1~, 스1:), 인간 종말의 세계적인 이스라엘 회복도 구약 때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 5~6절:“...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며 내 이름을 항상 종일 더럽히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그러므로 그날에는 그들이 이 말을 하는 자가 나인줄 알리라 곧 내니라” -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강대국들은 이 모든 일들이 자기들의 힘과 뜻대로 되는 줄 아나 하나님의 모략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로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는 4:11~ “이제 많은 이방이 모여서 너를 쳐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 모략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하고 외쳤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다. 즉 살기로 작정된 자만 주야로 묵상하게 되는 책이다(시 1:1~2). 그러니 구원이 없는 이방인이 깨달을 수가 없고 갖다 펴 주어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핍박할 뿐이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와 똑같이 종말에도 예언의 법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새 시대 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세요 능력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3. 파수꾼이 재림의 주님을 만나게 됨:7~8

『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8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

파수꾼은 예수의 일꾼이니 자행자지(自行自止) 할 수가 없다. 세상과의 타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주님을 만날 수가 없다. 세상은 넓은 길이지만 파수꾼이 가는 길은 좁은 길이다. 그래서 산을 넘는다고 했으니 이 산은 천신만고(千辛萬苦) 시련의 산이다. 종말에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들림을 받으니 시련의 산이란 곧 이 싸움을 가리킨다. 슥 4:6~7절에 순금등대 역사는 인간의 힘이나 능(能)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신(神)으로만 되는 역사라 했다. 스룹바벨이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태산이 평지가 되리라 하셨으니, 여기서 태산이란 우리를 대적하는 666의 큰 세력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물이니 하나님의 통치만 받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자기의 욕심을 쳐서 자기를 복종시키고, 심판의 다림줄만 굳게 잡아 어떠한 역경의 산이 와도 이겨낼 때 철장권세 승리의 종이 된다.

동방역사는 단체역사니 순수히 말씀으로만 뭉쳐진 단체가 일어나서 예언서 전체를 밝힐 때 세계적인 흑암은 물러가게 된다. 종말에 미혹해 보는 흑암을 이기는 자가 환난 날의 파수꾼이다. 촛대 교회 양 떼를 양육하던 파수꾼들은 전 3년 반의 증거를 마치고 공중에서 재림의 신랑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휴거), 이 말씀을 좇아오던 양 떼들은 예비처로 피난 간다(계 11:7~12, 12:예비처에서의 양육).

  
4. 하나님의 위로와 구속:9~10

『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였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

기독교 종말의 영·육 구원 역사는 동방 땅 끝 유다(한국) 예루살렘으로부터 하시는데, 슥 1:12절에 70년이 되면 하나님이 유다에 돌아오셔서 성전을 건축하신다고 예언하셨다. 그 예언대로 1975년에 학개서로 승리의 제단을 세우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70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6~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구원에는 먼저 죽었던 영혼이 중생을 받는 영혼의 구원이 있다. 이 역사가 오순절 다락방에서부터 전 세계로 전파 될 때에 성령 받은 사도들은 순교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렇게 이미 영혼 구원을 얻은 교회에 종말에는 두 번째로 육체의 구원을 주시는데, 아담의 선악과 먹은 원죄로 인해 죽게 된 것은 영과 육이기 때문에 살려야 할 대상도 영과 육 전체라는 것이다. 죄 값의 결과는 영의 사망뿐 아니라 육의 사망까지인데, 예수님께서 영혼만 구원하신다면 완전한 구세주가 아니다. 따라서 완전하신 예수님은 때를 따라 역사하시되 1차로는 영혼 구원, 2차로는 영·육 구원을 이루시어(계 6:2) 영과 육이 아울러 안식을 누리는 천년 안식세계를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구약의 택민은 영혼 구원이 뭔지도 몰랐다. 오직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서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는 그들의 성경을 보는 유아기적 시각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혼 구원의 속죄양으로 오셨듯이, 종말에도 다시 오실 재림 주는 영혼 구원밖에 모르는 은혜 교회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심판주로 오시되 종말의 법인 예언의 법을 일점 가감없이 순종하여 새긴 자들에게는 육의 사망까지 멸해주시어 당신 형상을 닮은 144,000을 일으킴으로 새 시대의 왕권을 이루겠다는 것이니, 이러한 종말론의 정확한 진리는 사도 사명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보아너게’(우뢰의 아들; 막 3:17) 곧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선지자의 계통으로 역사하시겠다는 것이다. 즉 종말에 되어질 일은 사도의 사명을 가진 은혜 시대 교역자로서는 깨달을 수 없고 깨달아서도 안 되는 것이 법이다.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는 사도 요한(계 1:9)

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하셨고, 계 22:6~7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하셨으니,

이 말씀대로 종말의 역사는 선지자에게 전하신 복음대로 이루시되 원수의 손에 쓰러지며 죄 사함의 구원을 외쳤던 사도들의 영의 하나님이라 명칭하지 않으시고 오직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먼저는 이 시대가 흑암의 시대라는 것을 알고, 이 시대에 세운 하나님의 선지자가 누구인지 분별하여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 이 시대의 지혜일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의 뜻을 순종하는 유일한 길이다.

사 51: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따라서 재림 때 이루어질 역사는 죄 값으로 썩어질 육체를, 예언의 양식으로 개조하여 썩지 않을 변화체로 만들어 주시는 큰 구원의 역사임을 믿자!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이 보좌에 가셔서 하나님 오른손으로부터 심판할 예언서를 받아 이 땅에 주시며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새길 것을 다 새겨서 이 땅의 죄과를 하루에 제하여 버리는 역사(슥 3:9)를 행하되 해 돋는 편 동방 9·24 제단을 통해 행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흙에서 난 아담의 죄로 인한 영,육 간의 사망을... 하늘에서 난 아담이 친히 맡아주심으로 이 땅의 저주와 사망이 완전 소멸 받는 것이 기독교의 승리이되 반드시 이기고 또 이기는 백마 2차 승리의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계 6:2)

그러나 이 땅의 기독교가 육체구원을 말하면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단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묻겠다! 육체의 죽음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인가? 육체가 골골거리다가 쇠약과 질병으로 썩어지는 것이 진리란 말인가? 결코 진리가 아니다! 성경은 영혼의 죽음과 더불어 육체의 죽음도 분명히 죄 값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는 구절을 오해하여 육체 죽음을 정당화하는데, 이는 무지이다. '사람에게 정했다'라는 것은 그렇게 정하기 이전에는 그 법이 효력을 발생치 못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 번 죽는 것’을 언제 정하셨는가? 바로 창 3:19절에서 정하셨다.

창 3:14~19절까지는 죄로 인한 벌책! 즉 고통과 사망의 선포이다. 이 선포 안에 육체의 죽음이 들어 있음을 깨달으라! 사망은 죄 값이지 결코 선하신 창조 원리가 아니다. 모든 선지가 받아 성경에 기록한 죄와 사망을 영원히 멸하리라는 주님의 언약을 인간의 머리로 제한하지 말라!(슥 3:9, 사 24:, 25:6~8). 그러니 이 모든 말씀을 본문 그대로 외치는 한국의 사명은 종말의 예루살렘 사명이라는 것이다.

사 41: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변론하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 구약을 통해 종말관을 보여주셨는데, 대제국 바벨론을 들어 쓰시고 기한이 차 꺾어버리실 때에 동방 고레스를 들어 역사하셨듯이, 세계 이스라엘을 황충 떼의 환난으로부터 육체까지 구원하는 역사는 동방 한국(고레스 사명)에서부터 예언서로 하신다는 것이 곧 동방역사이다(사 45:1~5, 계 7:2~).

  
5. 하나님이 뒤에서 호위하심:11~12

『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켤케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

종말에 쑥물을 먹이는 바벨 교회로부터 어서 나오라는 교훈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영혼의 정결함을 얻었으나 그것으로 예수님의 사명이 끝난 것이 아니니(승천 후 피로 사신 책을 또 주셨기에), 미혹해 보는 종말의 시대에 이 미혹을 이길 수 있는 무기인 모든 율법서와 예언서대로 다시 예언하여 행하므로 인격적인 정결함을 받는다. 그러니 이 예언대로 이루어질 때에는 성경을 혼선시키는 W.C.C. 단체로부터 나와서 혼잡을 물리치는 스룹바벨 진리단체가 되어야 한다.

  
6. 종들을 지극히 존귀케 하심:13~15

『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

구약의 선지자, 예수님, 사도들, 모든 종들이 이 땅에서 무시를 당했다. 말세 종들도 이 악한 세대에 이 말씀을 다시 예언할 때 똑같이 무시를 당할 것이나 하나님 예언대로 지극히 존귀하게 되어 영화롭게 된다는 것이다. 정녕 그러하리로다. 아멘

매맞고 찢기신 예수(마 27:28~)... 이 분이 세상의 악을 심판하는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줄을 죄악 세상이 어찌 알리요..!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7)...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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