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6:~20:


성 경 : 예레미야 16장
제 목 : 임박한 형벌과 장래 회복

심판을 앞두고 쓰이는 종들은 하나님께서 그 생활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간섭하신다. 선지자의 삶이 실천적 예언이 되도록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것을 예표로 보이시기 위해 대선지자 이사야를 벗은 몸, 벗은 발로 3년간 행하게 하셨고(사 20:2~3), 사랑하던 예루살렘의 심판을 보이시기 위해서 어여쁜 에스겔의 부인을 즉각 죽여버린 하나님이시며(겔 24:18), 다니엘의 식생활을 간섭하셨고(단 1:8~16), 당신의 종 호세아를 창녀와 결혼시키신 하나님이시다(호 1:2). 하나님은 영락없이 예레미야의 생활에도 철저히 간섭하신다. 사명자에게는 언제나 세상과 하나될 수 없는 생활의 도전이 있게 된다. 순종한 선배들의 삶은 곧 승리였다. 우리도 어떠한 환경이 오더라도 주만 앙망하며 나아가면 승리하게 될 것이다(사 40:31).

  
1. 결혼을 하지 말라고 권고함 : 1~4

『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너는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

“아내를 취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머지 않아 끓는 가마솥 북방으로부터엄청난 재앙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렘 1:13~16). 심판기를 앞둔 대표 사명자 예레미야에게는 결혼과 육아 문제보다도 환난을 피하는 일을 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 바벨론 환난을 앞둔 선지자의 시대나 러시아 환난을 앞둔 오늘날의 시대나 모두 "노아의 때"와 같다(마 24:37). 마 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이시다. 예언서에 순종하는 가정은 노아 가정같이 보호를 받겠지만, 예언서를 무시하는 종말의 가정들은 다음과 같은 환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창 19:14. 마 24:19~. 눅 23:29. 렘 14:16~, 렘 8:2, 9:22. 시 78:63~72).

『 3 이 곳에서 생산한 자녀와 이 땅에서 그들을 해산한 어미와 그들을 낳은 아비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4 그들은 독한 병으로 죽고 슬퍼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여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며 칼과 기근에 망하고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리라 』

“독한 병”과 “기근”은 전쟁의 부산물이다. “매장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전쟁에 죽는 사람 수가 엄청나므로 매장지는 커녕 매장해 줄 사람조차 없는 기(氣)가 막힌 상황을 예언한 것이다.

  
2. 초상집, 잔치집에도 들어가지 말 것 : 5~9

『 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상가(喪家)에 들어가지 말라 가서 통곡(痛哭)하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哀哭)하지 말라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6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자도 없을 것이며 』

환난의 성격을 더욱 자세히 진술하고 있다. 유대인의 죽음은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고 죄값으로 인한 당연한 죽음임을 설명하셨다. 큰 무더기 죽음의 이면에는 그만한 재앙을 자초할 만한 커다란 죄악이 숨어 있었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하나님의 교회가 미혹시켜보려고 내보낸 거짓 선지자들의 '평강'을 택했으니 이제 '평강'과는 상관 없는 '전쟁'에 죽게 됨이 마땅하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말씀 위에 굳게 서지 못하면 먹고 죽는 일밖에는 당할 일이 없는 이치와 같다. 평강의 왕은 예수님뿐이시다(미 5:5).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단과 그의 졸개들(짐승, 거짓선지자)이 잡혀 무저갱에 갇히기 전까지는 '평강'이 있을 수 없는데(계 19:20~20:3), 거짓 선지자는 제 사명이 그러하니 밤낮 '거짓 평화'만을 외쳐댄다(렘 6:14~, 8:11~). 인류 종말에 이루어진 계시록 8:7~12절 예언은 무신론 공산주의 세력이 성경대로 땅 삼분의 일을 때려부수고 평강을 없애버린 역사적 사실이 증거해 준다(계 6:3~ 붉은말이 큰 칼로 화평을 제한 역사).

이런 일이 있고 나면 계 9:1~12절과 같이 무저갱에서 연기가 나오고 연기 중에서 황충떼가 나와 하나님의 인(印)을 소유하지 못한 종들을 해하게 된다(첫째 화). '연기'는 해(하나님말씀)와 공기(성령역사-기도)를 가리우는 마귀의 사상으로서 멸망할 자들은 '전 3년 반'까지 이 연기에 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후 3년 반'에 떨어지게 된다. 20세기 종말(1958.3.18)에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에 의해 등장한 평화공존 궤휼정책은 교회와 자유세계를 속이는 마귀의 사상의 출발점이다. 이 사상적인 연기가 전 세계의 정권과 교권 속에 침투함으로써 세계는 46년간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이 되고 말았다(눅 21:25~ 일월성신에 징조). 

지금은 변장하여 자취를 쏙 감춰 버린 붉은말 스탈린의 타도정치가 '뱀의 뿌리'라면,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오고(흐루시초프의 궤휼정치), 그 열매는 '나는 불뱀'이 되리라 하신 예언대로 세계는 흘러가고 있다. '나는 불뱀'은 흐루시초프의 궤휼적 정권을 등에 업고 아시아 뿐 아니라 온 세계를 궤휼로 친합시킬 자인데, 이 자가 세 뿔을 뽑고 내려와 극동에서 그 군대를 잃게 되므로(욜 2:20. 사 37:36) 나아가서 많은 무리를 도륙(단 11:44)하게 되는 마지막 '북방 왕'인데, 이 자는  모든 황충이 떼의 임금으로서(계 9;11) 세계를 어지럽히고, 결국 144,000명과 싸워 이기고(계 11:7), 중동 3차 대전(계 9:14~)에서 패권을 장악하여 '후 3년 반' 동안 세계를 지배할 최후의 '작은 뿔'이 된다(에피파네스, 네로와 같은 자). 이 자 옆에는 그를 보필하여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하여 온 세계 사람들로 표를 받게 하고 '작은 뿔'의 우상 앞에 경배하게 만드는 '거짓 선지자'가 존재하는데(계 13:11), 음녀의 대표자이다. 지금 세상은 이 사망의 세계를 향하여 무섭게 돌진하고 있는데, 이것이 다 '연기'의 위력이다. 이러한 흑암의 시대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스룹바벨의 손에 있는하나님의 인을 소유하는 것뿐이다(학 2:6~23슥 4:7~10). 우리는 택자들의 잠을 깨워 '후 3년 반'에 빠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파수하며 다시 예언하고 있다(마 25:5~6. 사 40:9~11. 새일성가 37장1절).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니라"(5절下) : 이들이 먼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바로 교회심판의 정경이다. 6절에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라는 말씀은 사 24:2~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이 된다는 예언과 같다.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자도 없을 것이며” 이방인이 바알 신을 섬길 때 애통함을 표시하기 위해 취하던 풍속인데, 하나님은 이런 어리석고 가증한 행위를 금하셨다(레 19:27~28. 신 23:1~. 왕상 18:28). 바벨론이 내려오면 바알을 섬기던 자들은 전멸한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협상주의 노선에 있던 자들은 북방 왕이 내려오는 날 모조리 도륙된다.

『 7 슬플 때에 떡을 떼며 그 죽은 자를 인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들의 아비나 어미의 상사(喪事)를 위하여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울 자가 없으리라 』

죽은 자의 유족을 위로할 필요조차 없는 환난이라 하신다. 모두 다 죽고 유족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고(겔 24:17), 죽음이 죄값으로 인한 마땅한 결과이므로 사실 울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 종말에 생각밖에 북방환난이 들이닥치면 한국은 '10일 환난' 세계는 '5개월 환난'의 혼란을 거쳐 3차 전쟁으로 돌입하여 '
후 3년 반'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 죽는 죽음은 누가 누구를 위로할 만한 죽음이 못되는 불순종으로 인한 개죽음이라는 뜻이다. 짐승의 악한 통치를 보는 그날에 사람들은 기가 막힐 것이다. 욜 2:6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 8 너는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먹거나 마시지 말라 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를 내가 네 목전, 네 시대에 이곳에서 끊어지게 하리라 』

예레미야에게 잔칫집에 들어가 즐거워하는 것이나, 상가집에 들어가 슬퍼하는 행동을 아예 하지 말라 하심과, 에스겔에게 행구를 준비하여 대낮에 이사하는 행동을 하라(겔 12:3) 하심은, 모두가 환난을 당할 백성들의 미래상을 보이기 위함이다(실천적 예언). 말로가 아니라 생활로써까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 보여야 했던 것이 구약 선지자들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기뻐하는 집회(잔칫집)에 동참하지 말라고 하심은(렘 15:17. 시 26:4~5) 그들이 회개치 않는 자들이며, 이미 멸하기로 작정한 패역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습 3:18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아멘!

  
3. 현재는 포로가 되나 장래에는 회복됨 : 10~15

『 10 네가 이 모든 말로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네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광포하심은 어찜이며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한 죄는 무엇이뇨 하거든 』

백성들의 질문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와 어두움” 속에 있음이 폭로되고 있다(렘 2:35, 5:19~, 13:22).

『 11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12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13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 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

“알지 못하던 땅”이란 말은 바벨론 제국을 말한다. 거기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기간" 즉 버림받는 기간은 '70년'이다(렘 25:11, 29:10. 단 9:1~3. 대하 36:21). 주께서 저희를 고토에서 쫓아내신 것이다(렘 6:15, 15:4. 레 18:27~28. 렘 14:8, 17:4, 22:28). "알지 못하던 땅"으로 끌려가 포로가 되는 원인은 그들이 "선조 때부터 하나님을 버린 까닭"이라 하신다. 원죄의 유전으로 인하여 후손들도 조상의 죄를 본받고 있는 것인데(애 5:7), 인간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롬 5:12,14) 예수님이 친히 해결코자 먼저 새 언약 유월절 양으로 오시어 렘 31:31~34절 예언대로 당신 피로써 모든 자범죄를 용서하셨다(여전히 죄는 짓지만 '믿는 자'라면 그의 죄를 간과하시고 아들로 삼아주시는 시대이다). 그후 이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될 때 즈음 백마 2차승리를 위하여 렘 31:22~ 예언대로 새 일을 창조하시어 뼛골 속 원죄까지 제거해 주시면 이제 죄를 간과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죄를 짓지 않으며, 죄 지을 생각조차 나지 않는 성결한 사람으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천년왕국'이다. 이 세계는 모든 죄악이 소멸된 에덴이므로(계 11:15) 더 이상 창 3:19절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반 교회나 신학계에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받았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죄'에 '원죄'까지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모든 죄'란 예수 피에 녹아지는 모든 '자범 죄'들을 뜻하지, '원죄'까지 사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범죄를 범케 하는 죄의 뿌리가 원죄인데, 이는 사하는(간과하고 용서해주는) 대상이 아니라 뽑아 버려야 할 대상이다. 원죄가 소멸받으면 자범죄를 지을 수 없다. 예수 피는 유월절 양의 피로 예표되었으며, 예수님의 피로 산 말씀출애굽하여 받은 십계명으로 예표되었다. 문설주에 피를 바름으로 죽음의 신이 건너 뛴 것은 마지막 부활 때 예수님을 믿은 영혼들이 사망의 심판을 면함을 뜻했고, 출애굽한 모세총회가 (여호수아, 갈렙과 광야 2세들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의 시체가 되어 쓰러진 것은 아무리 예수님의 피로 영적 구원을 받은 성도라도 가나안으로 표상된 '천년왕국' 들어갈 때는 두 증인(144,000)과 흰무리만 살아남게 된다는 것을 뜻했다.

중생받은 자라도 '법궤'(계시록)에 불순종하므로, '3대 화'에 걸려 그 육체가 사망을 당하게 되는게 종말이다. 기독교인이 예수님의 피로 원죄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보좌에서 받은 책의 봉인을 떼어 요한에게 계시하시며 읽고 듣고 지키라고 하실 이유가 없게 되며, 지금까지 예수 믿은 모든 이들은 사 40:6~8절의 예언처럼 풀과 같이 쓰러진 일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벧전 1:24~25 / 아담 이래로 930억이 사망함). 그래도 지금껏 기독교가 소망의 종교일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믿고 죽은 자들이 이 물질계를 폐하시고 '영체의 세계 천국'을 창조하실 때 다시는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다. 사망을 당하게 된 인간으로서 이 부활에 연합되는 일이야말로 썩을 인간의 최고의 소망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 2,000년간의 '은혜시대' 역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껏 가리워져 왔던 '천년왕국'을 계시록을 통하여 열어주신 만큼, 영혼구원과 그로 말미암는 마지막 부활에 연합하는 일에 덧붙여 전쟁, 질병, 슬픔, 사망이 없는 '땅의 축복'과 '몸의 안식'까지 누리라는 것이다. '지상 천년안식' 말이다. 마태복음부터 유다서까지는 비록 몸은 썩어져도 그 영이 부활의 몸을 받으므로 '천국'에 합당한 자로 다시 살게 하는 말씀들이라면, 작은 책 '요한계시록'은 인간의 몸에 온 저주, 땅에 내린 저주를 완전히 멸하고 '천국'보다 앞서 있는 '지상안식' 시대에 들어가 온전한 육체로 할렐루야를 돌리며 더 이상 풀과 같이 쓰러지지 않고 천년을 살게 해주는 말씀이다. 고로 영혼구원은 '천국복음'으로(새 언약) 모든 자범죄를 간과하여 주시는 시대이고, 지상안식과 몸의 구속은 '영원한 복음'으로(새 일) 믿는 이들의 패역, 곧 원죄까지 소멸시켜주는 시대에 될 일이라는 이 단순한 진리를 말세의 기독교계는 혼선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교파나 인학화된 신학을 강조하지 말고, 모든 선지자들이 받은 말씀대로 순종하면 될 일이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죄 문제는 결코 인간 스스로 해결치 못할 일이므로, 예수님은 친히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새 언약'과 '새 일'로 '이기고 또 이기시므로' 지구 땅과 그 위의 인간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다.

모든 죄가 나쁘지만, 죄 중에서도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는 우상숭배이다. 아담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는 십계명의 제1~2계명을 범하므로 매맞아온 역사이다(렘 2:8, 5:7, 8:2, 9:14). 그 중 제2계명은 십계명 중 가장 긴 내용으로서 우상과 관련하여 행하지 말아야 할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신 계명이다. 그런데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제2계명을 범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삭제해 버렸다. 가톨릭에서 제작, 출판되는 모든 기도서나 십계명 판에는 제2계명이 삭제된 것이 확인 가능하다 ( ①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라. ② 천주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③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십계명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친히 새겨주신 것이지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출 24:12).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제 생각을 섞어 성경을 맘대로 칼질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제2계명을 삭제하므로 아홉 개가 된 십계명을 다시 열 개로 맞추기 위하여 열 번째 계명을 두 개로 쪼개 놓았다. 신 5:21절을 근거로 들며 아내와 재물을 분리시켰다고 변명하고 있다. 이것이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처음 주신 말씀 출 20:17절을 보면 아내나 남종, 여종, 소, 나귀 등은 하나의 계명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대로 아내 즉 여성을 물권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서 10번째 계명을 2개로 쪼개놓았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2계명은 보존되야 하며 10계명을 분리시켜 11개의 계명을 지키면 될 문제이다. 2계명을 삭제한 죄악을 가리우려고 10번째 계명을 2개로 쪼개놓고서는 변명하는 행위란..... 미혹의 영이 들어간 행위이다. 거짓말은 하나님 앞에 결코 통과될 수 없는 망령된 행위이다. 인간은 속여도 하나님은 못 속인다.

'가톨릭대사전'이라는 홈페이지를 참조해 보라! 교묘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군색하기 그지 없다. 2계명을 삭제한 건, 가톨릭이 많은 우상들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대금으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포기할 수 없어 계명을 포기한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씀을 삭제한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다음을 참조하라! http://www.catholic.or.kr/dictionary/dict.htm 색인 '사' >> 68 페이지 >> '십계명'을 클릭..

『 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15 이스라엘 자손을 북방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리라 』

과거 모세 때의 출애굽 역사도 귀했으나, 이제는 그보다 큰 출바벨론 역사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개의 큰 연대를 이해하면 성경 전체를 깨닫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430년 만의 출애굽 역사는 예수님이 (말라기 때 성전문을 닫고) 430년 만에 유월절 양으로 오시어 피를 흘리시고 이 죄악 세상 애굽으로부터(계 11:8. 사 19:1~,19~) 우리를 구해내심으로써(영혼구원) 완전 성취되었다. 그런데 이 일도 귀하지만 이와 같이 구약 70년 회복이 다시금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더 귀하다는 것이다. 종말의 출바벨론 역사 곧 영적 유다를 노하신 지 70년 만에(슥 1:12) 초막절기를 통하여 온 세상의 피로 산 백성들의 영,육을 3대 화로부터 보호하여 새 시대로 이전시키는 역사는 더욱 더 <큰 구원>이요 귀한 역사라는 뜻이다(렘 23:7~8, 31:1~8. 사 42:9~, 43:19, 렘 3:18, 24:6, 시 106:47).

구약은 표면적 절기로서 종말을 보여주시는 것일 뿐이고, 때가 되어 이 절기들이 이면적으로 한차원 발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신약의 역사이다(롬 2:28).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당신이 정하신 3대 절기의 이면적 성취를 위해서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이루시고야 말 신이시며, 이를 통해서 당신 백성의 영, 육을 원수의 손으로부터 완전히 속량하여 주신다. 이 일을 구분지어 보이신 것이 '400년'과 '70년'의 연대이다. 지금 우리는 십자가 유월절의 성취를 통하여 영적 400년에 연합된 성도들로서, 남은 초막절기의 이면적 성취를 향하여 약속의 땅 시온산(천년왕국)으로 인도받고 있는 중에 있다. 이 일에 있어 수두(首頭)로 앞장 선 '유다 지파'가 바로 동방 땅 끝에 위치한 선지 국가, 제사장 국가(출 19:5~6. 대하 31:14)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70년 회복'(슥 1:12)을 깨닫고 일어나 외칠 때 세계 민족이 70 이레로 완성되는 그리스도의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단 9:25~27, 2:44~45, 7:14. 계 11:15. 사 11:6~9, 35장, 65:17~25).

  
4. 악의 징치와 백성의 구원 : 16~21

『 1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 후에 많은 포수를 불러다가 그들을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암혈에서 사냥하게 하리니 17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 18 내가 위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 』

북방 군대를 총동원시켜 “어부”가 고기 떼를 잡듯, “포수”가 사냥감을 잡듯 예루살렘을 잡아 삼키도록 하시겠다는 예언이다. 이 같은 일이 우리 시대에 성취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언서에 깜깜하니 깨닫는 자가 적다.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라 하심은 유대민족이 이방 강대국들의 가증한 우상들을 수입하여 섬기므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심히 더럽혔다는 것이다(단 9:27. 마 24:15~ 참조). 구약을 보면 종말을 알 수 있다. 1천 번제를 드리고 3천 지혜를 받는 등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솔로몬이 어찌하여 거룩한 시온산 터 위에 우상의 산당을 세웠을까? ....... 기름부음 받은 그에게도 원죄악을 틈타 들어오는 사단의 역사를 이길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죄악의 고리를 물기 위해 틈을 보는 사단에게는 '작은 일'로만 협상해 주어도, 그로 인해 선민이 이미 받은 모든 축복은 단숨에 날아가게 되어 있다. 여자인 왕비들의 간청을 노년을 맞이한 솔로몬이 '작은 일'로 알고 허락해 주었을 때 통일국가 12지파는 찢어지게 된 것이다(왕상 11:1~8. 느 13:26. 시 78:58~64, 23:27). 

정욕때문에도 이쁜 여자는 다 끌어 왔겠지만, 또한 솔로몬의 부귀와 명성으로 인하여 이방 왕들이 딸들을 시집보낸 것도 사실이다. 세상 고리들(정욕, 돈, 명예)에 걸려들면 사단은 반드시 그 고리를 이용해 말씀을 범케 하니, 왕비들이 제 나라의 우상을 섬기도록 해달라고 꾀일 때 노년의 솔로몬은 그만 망령되이 이를 허락했던 것이다. 원죄악의 눈이 밝아지면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눈이 감기운다. 선악과가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워 보일 때(창 3:6), 창 2:17절의 말씀은 온데 간데 없게 된 이치와 같다. 이렇게 연약한 여자를 통한 사단의 계략이 먹혀 들어갈 때, 솔로몬 성전 안에는 이방 우상의 산당이 들어서게 되었고, 이것은 사마리아 열 지파가 찢어져 나가게 된 원인이 된 것이다(왕상 11:1~13, 30~36).

시돈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 신 '그모스'와 암몬 신 '밀곰'이 이스라엘의 성소 안에 들어서게 됐다는 것(포도원 변질=사 5장)은 종말의 기독교 성도가 정신차려서 교훈 받을 일이다. 구약은 무조건 종말의 그림자이니 이 역사 그대로 지금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말씀을 가벼이 해석하는 신신학자들이 교회 안에 독버섯처럼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범하게 하고 있다.W.C.C.나 로마가톨릭과 같은 거대 교단들을 통하여 시행되고 있는 음녀적인 인본주의 신학, 세속주의 신학, 에큐메니칼 운동을 보라. 이 '사랑'과 '평화'와 '대화''타협'이라는 사상 조류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의 성경말씀들을 하나하나 범하게 함으로써 결국 은혜받은 기독교회(초기의 솔로몬)가 협상주의 기독교회(노년의 솔로몬)로 타락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가증한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으라" 하신 종말을 살고 있으므로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고 마는" 심판기의 백성인 것이다. 이제 3대 화가 지나가므로 하나님을 섬기던 참 이스라엘과 쭉정이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 19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 환난 날의 피난처시여 열방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허무하고 망탄(妄誕)하고 무익한 것뿐이라 20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하리이다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

예레미야의 기도 내용이다(렘 17:17, 시 119:14, 시 27:5, 시 46:1). 우상을 섬기던 구약 유다 나라가 우상국가에 잡혀가 고생을 하였지만, 죄값의 기간 70년을 마칠 때 메데 바사국의 고레스 역사로 회복받았듯이, "다시 예언하는 우리에게" 이면적 유다의 70년 회복이 이루어짐에 있어 동방 고레스가 나타나서 21세기의 바벨론 왕벨사살을 하룻밤에 죽이고(단 5:25~30사 45:1~4) 유다와 온 세계 이스라엘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의 수레바퀴는 예레미야로부터 2,600년을 굴러왔으며 지금은 그 종점에 이르러 있다. 단 9:24절에 시온산성을 위하여 70 이레로 기한을 정하셨는데, 69 이레째에 예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로 오셔서는 돌아가시고, 이제는 마지막 1 이레의 성취만을 남겨 놓고 있다.

예언은 영적 흑암을 뚫는 등불이다. 모든 예언서를 밝혀야만 21세기의 바벨세계를 영안으로 볼 수 있는 참 선지자 단체가 된다. 우리가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들면 열방이 주께로 돌아온다 하셨다. 시 22:27, 사 2:3~18:7~45:14~1549:22~23,60:1~14절에 유다를 중심으로 하여 머릿돌, 심판의 다림줄 말씀이 나아가면 세계의 알곡이 유다에 연합되어 창 49:8~ 예언이 성취되고, 계 11:15~, 20:4~6절같이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므로 인류와 모든 피조물이 그렇게도 바라던 천년왕국이 도래하게 된다. '천년왕국'을 못 가게 하려는 마귀의 미혹을 예언으로 물리쳐서 그 땅을 차지하면 천년 끝의 미혹을 무난히 이기고 더 좋은 '천국'으로 이전하게 되지만, 아무리 예수 피로 '천국'을 확보해 놓은 자라도 예수님의 피로 사신 말씀인 계시록에 불순종하면 얼마든지 '천년왕국'에서 탈락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제단은 예수 믿고 '천국티켓' 따 놓은 자들 중에 "울며 탄식하는 자들"(겔 9:4)과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 이름하는 자들을 찾아내어 그 이마에 인을 치고, 거대한 군대를 이루어 적기독세력과 싸워 승리하고 3일 반 죽었다가(계 11:7), 하늘로 들림을 받아(계 11:12) 모든 선지자들과 성도의 피값을 갚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지상강림하여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세력을 완전 섬멸하고 새 땅에서 왕노릇 할자들을 불러 일으킬 제1번지 제단이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말세 사명자들을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으니 우리는 단지 미약한 야곱으로서 이 말씀을 전심으로 다시 예언할 뿐이다. 단지 순종할 때 소망없이 뼈가 된 '이스라엘'(겔 37:11)이 하나하나 모여들어 '극히 큰 군대'를 형성하게 된다(겔 37:10). 주님이 하실 일이다.

주님은 이 군대가 될 자들에게는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만이 유일로 신뢰할 분>이라는 사상을 심어주시어 승리케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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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17장
제 목 : 유일로 신뢰할 하나님


1. 범죄의 결과로 국외에 이송 : 1~4

『 1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

죄를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하라는 것은 유다의 죄가 간과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죄임을 의미한다. 지울 수 없으니 심판을 돌이킬 수 없다. 이렇게 심판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죄가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기 때문인데, 이는...

① 마음속 양심이 그들의 죄를 항상 지적하고 있음과,
② 그들이 예배 드리는 제단 뿔도 그들을 정죄하며 심판하고 있음을 뜻한다. 본래
"제단 뿔"은 죄인의 속죄를 위한 것이지만(출 27:2~, 29:12, 30:1~3, 10) 그것이 사람을 정죄하고 또 심판하게 되기까지 한 것은 그들이 끝내 회개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 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9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모든 선지자가 공통적으로 '인간의 패역'에 대해 기록한 것은, 종말의 교회도 이와 같은 죄악으로 망하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살 길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서 및 모든 선지자들의 말씀을 꿀같이 먹어 '패역'을 고침받는 길 뿐이다(사 57:17~18. 렘 3:22. 호 14:4. 슥 3:9).

아세라, BC 1300년경 시리아의 라스샴라 근처에서 출토된 상아상자 (부분), 프랑스 파리에 있는 Musee du Louvre 소장
 2 그들의 자녀가 높은 메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

조상들의 아세라 우상 숭배 전통은 자손들에게까지 미쳤는데(삿 3:7. 시 78:58. 사 1:29), 이렇게 어른들의 우상숭배 죄는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그 자녀들과 가정을 몰살시키는 죄악이 된다. 이 시대에도 종말의 우상숭배가 횡행할 것인데, 곧 이세벨(음녀)을 용납하는  '협상죄'가 기독교계에 관영케 될 것이다. 이러한 교회와 성도들의 가정은 단체적인 멸망을 받게 된다(계 2:20~23). 합법적인 솔로몬 성전이 있었음에도, 우상이 있는 '골짜기'와 '산'으로 기어들어가 망한 것! 이것이 바로 '패역'이다. 종말에도 예언서를 햇빛같이 밝히는 '해를 입은 한 여자', '애굽 땅 중앙제단',재림 주님이 '영광으로 충만케 할 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교권 속에서 안주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했고 원치도 않았던 '후 3년 반'의 세계로 들어가 전멸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 3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지경의 죄로 인하여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대적을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로 맹렬케 하여 영영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니라 』

죄로 인하여 시온산이 북방 바벨론 세력에게 멸망당할 것을 진술하고 있다. "들에 있는 나의 산"이란 시온산성인 다윗성 곧 '예루살렘'을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호칭이다(삼하 5:4~10. 대하 3:1~17).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 그들의 재산과 보물과 산당들을 소중히 여겼으므로 하나님은 그것들을 모두 적군에게 노략 당하게 하신다(렘 15:13. 왕하 24:13. 사 39:6. 렘 39:1~10). 
 또한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의 땅 가나안(기업)을 우상들로 가득차게 하여 더럽혔으므로 주께서도 더 이상 그들로 그 땅에서 거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공의와 질투의 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도 없이 자신의 탐욕을 좇아 하나님의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을 섬겨 하나님의 노를 일으킨 만큼, 이제 하나님도 그들이 원치 않는 북방 원수의 압제 하에 그들을 던져 넣어 "잘 한 번 섬겨 보라" 하신다(렘 5:29, 7:20, 12:12, 16:13, 25:9, 27:12. 레 26:30. 겔 6:3. 신 4:27, 28:48, 사 5:25 참조).

렘 13: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기독교는 지금 누가 신랑이며 누가 사기꾼인지를 분간치 못하고 든든해 보이면 아무나 신랑 삼고, 믿을 만해 보인다고 아무나 친구를 삼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심히 망령된 행위로 본다.

  
2. 인간의 무위(無爲)와 인심의 사곡(邪曲) : 5~10

『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혈육"이란 말은 영(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사 31:3) 인간은 다 헛되며 결국 없어지고 말 존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전 1:2, 12:13~14. 사 66:15~17). "권력을 삼는다" 함은 강한 인간의 세력에 기대어 보려는 모든 행위로서 한 마디로 '협상죄'이다. 마땅히 하나님만 믿어야 할 유다 나라가 이방 강대국가를 의지하였던 것이다(겔 17:7~10). 구약 교회와 같이 오늘날의 교회도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로 기울어져만 가고 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할 예수의 피로 산 교회(행 20:28)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초강대국 북방 공산주의 사상에서 나오는 거짓선지자의 미혹(쑥물)에 크게 속아 형성된 것이 오늘날의 W.C.C.(세계교회협의회)라고 하는 단체이다. 계 17:1~16 짐승과 음녀가 심판 받는 원인이 무엇인가? 짐승은 신랑 예수를 대적했기 때문이고, 음녀는 그러한 짐승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북방 짐승 정권을 따라가는 기독교(여자)는 현재 자신이 음녀의 노선을 걷는 줄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

"사막의 떨기나무"는 열매가 없다. 사람에게 유익이 없는 나무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도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즉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므로 소망이 없고, ②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므로 쓸쓸하여 위로와 기쁨이 없게 된다(시 39:5~7, 1:4, 92:7. 렘 48:6).
 
『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

시 1:1~3절과 같은 내용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 역설체(力說體)로서 하나님을 믿되 참으로 의뢰하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말씀이다(시 2:12, 시 34:8). 오늘날의 교인 중에서도 구약 때와 같은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예수님을 의지한다고는 하지만 참되이 의지하지 않는 자가 많다. 참되이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욕심과 관련하여 열심을 내는 신앙을 배격하고도 기쁨이 있어야 한다. 내 통장이 넉넉해야 입가에 웃음이 돌며, 자녀가 좋은 대학에 합격할 때라야 비로소 이웃집에 '간증한답시고' 가슴 펴고 건너가 떵떵거릴 수 있는 정도라면, 감사예배를 드려도 가증한 것이요, 예수님의 권위를 세상 복락과 바꿔치기 한 도적의 신앙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

어떤 목사님은 아예 이렇게 설교한다. <예수 믿고도 부자가 못되고, 예수 믿고도 병을 못 고치는 것은 뭔가 잘못 믿어 그렇소>.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설교이다. 매년 12월이 되면 나타나는 재미 있는 현상도 있다. 아주 당당하게 <수험생을 위한 특별기도회>라는 현수막을 내걸며, 수많은 학부형들은 그 현수막 밑으로 몰려든다. 여느 달과는 달리 12월에는 성령의 역사가 강한 것일까? 어느 때보다 뜨겁고, 어느 때보다 많은 헌금이 올라오지만 주님이 원하신 바는 아닐 것이다. 주님의 원하시는 바는 이러하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것이 진정한 의뢰이다(단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을 본받자). 이러한 자에게는 생수 같은 성령의 역사가 끊기지 않게 된다.

 
『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

① 참 교인이라 함은 물가 근처에 뿌리내린 나무가 계절변화와 관계없이 착실히 수분을 공급받는 것처럼, 때를 따라 내리는 하나님의 말씀양식을 성실히 받아 먹는 자이다. 
② 그래야만이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마 3:8. 요 15:5. 갈 5:22. 엡 5:9 참조).

 
『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

"심히 부패한 것"이란 치료될 수 없는 상태까지 썩었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의 마음의 거짓됨을 알지 못하므로 언제나 스스로 속게 된다(렘 16:12, 11:20, 20:12. 창  8:21. 시  51:5, 139:2). 인간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바로 판단하시니 우리 각자는 '내 생각'을 버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만 신뢰해야 한다(렘 17:5~11. 사 40:31~ ). 인간들이 자기의 판단을 믿고 행하는 일은 모두가 실패로 돌아간다. 비유하자면, 자고새가 낳지 않은 알, 나와 상관없는 알을 품음과 같다.

  
3. 불의의 축재(蓄財)와 선지자의 고백 : 11~18

『 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

이 예언은 여호야김 왕이 그의 중년 곧 왕위에 오른 지 11년째에 성취되었다(BC 598). 그는 어리석은 왕이었고 그의 동생 시드기야는 더욱 어리석은 왕으로서 이 사람도 왕된 지 11년 만에 포로가 되어 잡혀갔다(B.C.587). 렘 39장을 보니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의 목전에서 그의 자식들을 칼로 도륙했고, 그것을 목도하게 한 뒤에는 눈알을 뽑았고, 그의 왕국과 성전을 다 소멸시키고 백성도 포로로 잡아갔다. 

"불의로 치부하는 것"은 
 도적질이다(말 3:8). 
 부정직한 사업이다(잠 21:6). 
③ 송사를 공정케 아니함이다(렘 5:28, 22:13. 잠 1:19. 딤전 6:9). "자고새"는 불의한 재물을 모으는 자가 필경 그 재물을 다 빼앗기고 말 것을 비유하고자 기록됐다(잠 10:2, 13:11, 20:21, 28:22).

 
『 12 영화로우신 보좌여 원시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

여호와를 잘못 섬기는 자를 이 땅에서 완전히 제하여 버리실 것을 말씀하셨다(시 37:9, 22, 34).

 
『 14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

예레미야의 기도 대목이다.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예레미야는 우상을 배격했으며 하나님만을 찬송하였다.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오직 여호와만이 구원자이시며 치료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다(출 15:26. 사 19:22, 57:18. 렘 3:22, 33:6. 호 14:4. 말 4:2). "나를 구원하소서" 참 구원자는 여호와이심을 믿으니 대적의 손에 둘린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 달라는 기도이다(렘 31:15~22, 5:20. 시 60:5. 사 57:18,).

 
『 15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선지자를 향한 백성의 조롱이다(렘 20:7). 이러한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악독한 자들 곧 뱀의 후손들이 늘상 지껄이는 말이다(사 5:19. 겔 12:22). ☞ 참조 (시 42:3,10, 79:10.  요 8:19. 벧후 3:4). 그러나 하나님은 조롱하는 자는 망하게 하시고, 조롱받는 자의 손을 높이 들어주신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뱀의 후손들에게 조롱을 받고 있는가?

미 7:8~10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사 51:1~3. 시 51:5~18. 슥 3:1~8절도 참조하시오).

 
『 16 나는 목자의 직분에서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를 좇았사오며 재앙의 날도 내가 원치 아니하였음을 주께서 아시는 바라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

예레미야가 선지자가 된 것은 자의(自意)로서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어미 복중에서부터 택하신 것뿐이다.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 하심은 그의 입술에서 나가는 말에 여호와 신의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해주고 있다(렘 1:5, 20:9~. 겔 3:17. 암 7:15).

 
『 17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 18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케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

"재앙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예언하였다. 이것은 구약종말과 신약종말에 대한 2중 예언이 된다. 이러한 심판의 날이 임하는 것은 교회가 회개치 않기 때문이다. 회개치 않을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에서 <공의의 심판주>로 돌아서시게 된다. 그러므로 심판기로 들어서면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된 그들의 죄악에 대해 그 죄목대로 징벌하시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 피로 거듭난 기독교 성도라도 '3대 화'가 지나가는 심판기에는 구약 예언서에 기록된 죄목에 걸리는 대로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법은 <믿음의 법>이 아니라 <예언의 법>인 것이요, 이것이 중생 얻은 교회에게 계시록을 주시며 1:3, 22:18~19절을 기록케 하신 이유이다.

은혜 때는 일반적인 비를 내려 주셨으나, 예레미야서가 읽혀지는 종말에는 진실한 신뢰자들에게만 당신도 진실한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것이다(렘 16:9. 시 41:1, 59:16).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배나 되는 멸망"을 주시는 이유는 그들이 회개치 않는 죄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죄까지 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똑같다. 기독교가 새 언약(렘 31:31~34)은 믿으면서 새 언약과 명백히 구분되어 '5회'나 기록된 새 일을 전하면 이단시하고 조롱하는 현실이 그것이다(민 16:30. 사 42:9, 43:19, 48:6. 렘 31:22). 만일 이 시대의 교회가 주께서 기록하신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하는 자들을 함부로 이단이라 정죄하고, 핍박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이 받을 형벌을 배나 더 자초하는 어리석음이 될 것이다(렘 20:11. 시 35:4, 40:14).

 
『 19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가서 유다 왕들의 출입하는 평민의 문과 예루살렘 모든 문에 서서 20 무리에게 이르기를 이 문으로 들어오는 유다 왕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가르치신 말씀이다. 안식일은 새 생명을 주신 날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안식일 곧 지킬 수도 없는 저주의 안식일(토요일)을 무덤 속에 묻어 놓으시고 제8요일인 '주의 날'(일요일)에 부활하셨다(죽음을 이긴 생명과 부활의 안식일). 죽었던 영혼이 주님의 부활로 새 사람이 된 만큼 이제 안식일은 "지키라"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이것이 심령에 만족이 있는 은혜의 안식일이다(사 58:13 참조). 안식일 하루를 멸시하는 자가 천년간 지속되는 안식세계(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민 15:32~를 보면 안식일날 나무를 주워 떡을 구워먹다가 돌에 맞아 죽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을 범하다가 안식세계(가나안)에 못 들어간 일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교훈이 된다. 주일날 장사하고, 주일날 여행하고, 주일날 온갖 오락을 즐겨 행하는 기독교인들은 안식일날 나무를 주워 떡을 해먹은 자를 "쳐죽이라" 하신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안식의 땅 가나안까지 백성을 인도해준 것은 유월절 피가 아니라 법궤 곧 '말씀'이었으니, 천년안식의 땅까지 우리를 인도해 줄 계시록과 예언서를 따라가는 것이 곧 '안식일을 참되이 지키는 행위'가 된다.

• 19~20절 : "예루살렘 모든 문에서 외쳐라" 렘 7:2, 19:2, 26:2절을 참조하라. 선지자가 백성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경고할 때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하였으며(렘 13:18), 
 재앙 내릴 것을 선포하였으며(렘 19:3), 
③ 주를 대신하여 주의 말씀으로 깨우쳤다(겔 3:17).  

『 2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22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아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함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

• 21절 : "스스로 삼가라" 
① 모세를 통해서도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하셨으며(신 4:9). 
②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하셨다(잠 4:23).
• 22절 : "안식일을 지켜라" 
① 이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날이며(창 2:3. 출 20:10), 
② 하나님이 표징으로 주신 것이니 인간이 재해석할 수 없다(겔 20:12. 출 23:12). 이것은 안식교인처럼 토요일을 지키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 23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

• 23절 : "백성이 청종하기를 싫어하므로" 
①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갔으며(렘 11:10), 
②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게 되었다(렘 16:12). 
 백성의 이 패역한 속성에 대해서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도 외친 바 있다. "네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이라"(사48:4). 

『 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25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 26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남방에서 이르러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의 희생을 가지고 여호와의 집으로 오려니와 』

"주께서 제시하시는 조건"은 주를 청종해야 하며(출 15:26), 주님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신 11:13).

• 25~26절 : 그리하면 "정치적인 안정"이 유지되며 "종교적 활동"이 지속될 것을 약속하셨다(시 107:22. 히 13:15. 벧전2:5). 그러나 24절 말씀대로 청종치 못할 때에는 정치적 불안이 일되 
① 지도자들로 잔뜩 취하게 하여 멸하신다 하였으며(렘 13:13~), 
 무자(無子)하고 형통치 못하여 유다를 다스릴 자가 끊긴다 하셨다(렘 22:30). 인간 종말에도 천년안식세계를 소망하며 그곳에 들어갈 소망을 가졌던 자들은 저주의 짐승통치시대인 '후 3년 반'이 도래해도 예비처에서 '한때 두때 반때'를 양육받으므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며 피의 정결함까지 받게 되니(계 12:6,14. 사 4:3~4) 주님의 말씀은 얼마나 진실한 말씀인가! 

『 27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청종치 아니할 때"엔 꺼지지 않는 불에 삼키게 되리라 하셨는데, 과연 청종치 않으므로  왕궁과 백성의 집이 불에 탔고(렘 39:8), 
 여호와의 전이 소화되었으며(왕하 25:9), 
③ 성전의 모든 귀한 기명이 훼파되었다(대하 36:19). 구약교회가 당한 종말의 모양은 기독교 종말에도 그대로 적용되되 누구든지 주님의 영원한 복음(계 14:6)인 새 일의 말씀(렘 31:22)을 청종치 않은 자들은 '3대 화'에서 전부 망하되 마지막 화인 7째 나팔(7곱 대접)의 아마겟돈 때에는 불순종한 지구전체가 주님의 진노의 불에 소화된다. 구약이건 종말이건 청종만이 살 길이다! (슥 6:15).
 

◈ 청종하여 얻는 안식에는 4가지가 있다.

1. 영혼의 안식 - 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성도의 마음 안에 있다(벧전 1:9~. 히 10:39. 롬 8:10).

2. 육체의 안식 - 마 24:21~22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육체와 관계된 커다란 환난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한다 말씀하신 것이다. 계 11:1~12 예언의 증거를 마치고 3일 반 죽었다가 생기받고 하늘로 휴거하는 자들(왕권)은 그 몸이 사망을 이긴 변화체이므로 안식을 얻게 되고(살전 4:16~17), 계 12:6~ 예비처에 보호받는 자들(백성)은 3년 반 동안 물과 양식을 공급 받으며 피를 정결케 함으로써 천년간죽음없는 육체의 안식을 누린다(사 4:1~6). 성경에는 영혼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백보좌 심판의 부활로 나와 영생에 들어가는 것 이외에, 중생받은 자의 그 몸까지 구속해주심으로 전인적인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을 소망한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롬 8:11, 8:23. 엡 4:30. 빌 3:21. 계 14:1~5).

3. 지상안식 - 말 그대로 이 땅 위에 아담이 빼앗긴 에덴의 영광이 회복되는 때이다. 새 천년 동안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의롭고 완전한 통치시대이다. 다음 성구는 모두가 땅에서 이루어질 말씀들이다(사 1:19~20, 2:3~4, 7:15, 9:6~7, 11:6~16, 14:1~5, 32:1~20, 35:1~10, 43:19~, 54:11~13, 65:17~25)

4. 무궁안식 - 중생받은 성도들이 2,000년간 소망해 온 '천국'은 바로 천년안식 세계가 끝나고 펼쳐지는 무궁안식 시대를 말한다(계 21:1~. 고전 15:22~24). 그러나 이곳은 천년왕국이 마쳐지고 새로운 신천신지로 창조되는 곳이므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상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느냐 못 갖추느냐 하는 문제이다. 무궁안식은 예수의 피를 믿으므로 들어갈 자격을 얻고(새 언약=천국복음=백마1차승리), 지상안식은 계시록과 예언의 말씀에 순종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새 일=영원한복음=백마2차승리).

백마가 2번 이김으로써(계 6:2) 이상에서 설명한 4가지 안식이 완전 성취되며, 이곳을 차지할 자들에게 주신 책이 주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다.

 유월절 양의 피로 자범죄를 용서받고 영혼이 구원을 얻지만 육체는 원죄 값으로 말미암아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이다(사 40:6~8. 창 3:19). 

 그러나 이제 초막절기가 성취될 때를 맞아 예언의 말씀인 새 일 교훈으로 원죄의 열매인 패역까지 제해 주시면(슥 3:9사 25:6~857:18) 사망이 사라진 몸으로 신창조 받아서(사 42:9~, 43:1~)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서 1,000년을 살고서 무궁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주고 싶은 사랑'을 가지신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데, 인간들은 '천국'가는 것만을 전부로 알고, 그 이전에 펼쳐지는 '지상천년안식' 세계 가기를 원치 않고 있다. 사실 이 좋은 세계를 원치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사단의 미혹이 문제인 것이다. 예수 피로 거듭나 하늘 시민권(빌 3:21)을 확보하는 복음이 전파될 때에는 기득권층인 유대교권이 반대하더니, 이제 피로 산 말씀까지 순종하여 육체가 천년간 죽지 않고 사는 새 시대에 들어가자 하니 놀랍게도 하늘의 시민된 자들이 반대하고 있다. 몸의 구속 즉 '육체구원' 따위는 이단들의 얘기이니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상안식세계'은 아담이 빼앗긴 에덴을 예수께서 다시 찾아 돌려주시는 땅으로서 결코 허구가 아니다. 본래 우리의 것이었던 것을 우리가 다시 받자는데 그것이 왜 이단인가? 자기 것을 찾아주겠다는데도 "싫다" 하는 자가 바보 아닌가? 지금 교회 안에는 바보와 어리석은 자들이 참 많다. 그래서 지혜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여종'을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잠 9:3~6) 말하게 하신 것이다.

이 여종에 대해서는 예언서의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여종이 바로

1) "해를 입은 한 여자"요(계 12:1),
2) 
"남자(144,000)를 안는(두르는) 여자"요(렘 31:22),
3) 애굽 땅 중앙에 있는
 "여호와를 위한 한 제단"이요(사 19:19),
4) 만국의 보배가 임하실 때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하신 9.24 제단이요(학 2:7), 
5)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건축할
 "여호와의 전"이요(슥 6:12), 
6) 열 처녀가 졸며 잘 때 홀로 깨어
 "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외치는 충성스런 '밤중의 소리'이다(마 25:6).

'여종'으로 표현된 이 '한 제단'은 예수 믿고 영혼구원 받으라 외치는 제단이 아니다. 예수 믿고 영혼구원 얻은 기독교가 신랑이 더디 오므로 흑암 중에 졸며 잘 때 스가랴 4장의 순금등대의 역사로 그들을 깨워 "3대 화"를 면하고 '지상안식세계'에 "육체로 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외치는 사명의 제단이다. 그 곳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신혼살림의 낙(樂)을 기쁘게 누리라 외치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제단이다.

인간이 "싫다" 하여도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신 당신의 절대권력으로 뜻한 바를 이루신다. 절대권력 앞에 순종하여 땅의 소산을 먹겠는가? 절대권력자의 뜻을 거절하여 북방 칼에 삼키움을 당하겠는가?(사 1:19~20).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은 농부의 바라는 바는 변치 않는 포도 열매이다. 이제 18장을 통하여 토기장이로 등장하신 "하나님의 절대권력"을 깨닫고 그 앞에 순종하므로 '지상안식'의 기업을 받는 "우리"가 되자! 아멘...
 

(신앙문답)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안식일이라는 것은 흙에서 지음 받은 아담의 몸에 축복한 날입니다. 그 축복이라는 것은 네가 이 땅에서 충만하고 다스리며 세계를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행함이 있는 조건에 의한 축복이 아니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내고 이르시기를 "네가 네 사명을 이제부터 충실히 하면 복을 받으리라"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은 인간이 완전한 데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완전해 질 수 있는 사명으로 받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완전으로 갈 수 있는 <공의의 시험>에서 "뱀에게 말씀을 도둑맞아"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말미암아 지상의 축복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다시 찾아 주마" 하시며 맺어주신 것이 하나님의 언약인데,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진 민족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축복'으로서 부어준 계명이 아니라, 축복을 주기 위하여 다시 언약을 세울 때에 "죄가 무엇이냐?"를 가르쳐 주는 몽학적 교훈 차원에서 주신 것입니다. 즉 안식이 들어있는 십계명으로 말미암아 안식을 이룬다는 것이 아니고, 안식을 찾아가는데 필요한 '속죄'의 큰 뜻을 이루고자 하여 먼저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이냐를 가르친 것입니다. 공의를 분명히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죄를 사한다는 것은 <완전한 공의>를 폐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그 안식일을 사람이 지킴으로써 안식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준 안식의 축복을 받으면 그날은 평안히 쉬는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목적하여 가르친 말씀이지, 인간의 노력으로 성취될 말씀이 처음부터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안식일 날(토요일) 무덤에 들어가서 완전히 하루간 죽어 계셨던 것은 첫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안식의 축복을 빼앗긴 것을 되찾아주기 위하여 그 죄의 대가를 걸머진 몸으로 자신을 내어주셨던 것이고, 이레 중 첫날(주일)에 사망을 뚫고 부활하셨던 것은 잃어버렸던 안식을 새로이 개척한 날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위해 창조한 것인데, 사람의 범죄로 만물이 다 저주를 받았으니 마지막 아담(사람) 예수가 완전한 승리의 부활을 하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이루어지는 '새 날'을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중생 받은 '영적 이스라엘'은 육적 이스라엘이 지키던 안식일이 우리와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과, 그 율법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주님의 부활날이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날임을 알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안식의 축복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령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법 아래서 다스림을 받는 신앙적 양심에서 그날을 "지킴으로써" 복을 받는 것이 아니요, 이미 복을 받은 우리들이 그날에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동시에 복 받은 사람으로서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의 은총을 힘입어 새롭게 되므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동시에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부활한 안식의 날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은총을 크게 입음으로써 안식의 축복을 거저 받은 자가 되어 날마다 자라나는 과정에서 예배하며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안식일 계명>에 연합한 자의 참된 신앙노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날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든지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우리가 "지킴으로써" 된다는 조건이 끼어들 틈이 없고, 오직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복을 주신 주님을 경배하며 섬긴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진리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율법이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고 율법의 마침(롬 10:4)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안식을 주시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은총 속에서 부어지는 은혜를 더 받기 위한 마음에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바친다는 사상이 안식에 연합한 신앙사상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식'이 아니요, 은혜 가운데서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간절해짐으로써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신령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므로 그날을 지키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억지로 지키는 법적인 행위가 아니고 은혜 속에서 자동적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는 모든 것 전부가 우리 자체의 행위로는 이룰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부활을 통하여 흘러오는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 인간이 새로워지는 동시에 몸으로 실천하는 일까지 발생하므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 "주일을 지켜야 된다" 하는 말은 사도 바울 서신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고 오직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예배를 사모해서 모이게 되므로 그날을 거룩히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라면 누구든지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보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안 된다. 반드시 은혜를 받아야 된다"는 사상이 앞서야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떠나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니 성령의 역사 아래서 입도, 생활도, 몸도, 그 전체가 그날에 바쳐지는 예배(산 제사)가 될 때에 그날 하루 받은 은총 속에서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하든지 활발하게 승리의 길을 걸어나가는 열매가 주어지는 것이며, 이로써 주일 하루가 거룩하게 흘러가므로 안식일을 성령 안에서 자동적으로 지키게 되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일날을 우리에게 축복하실 때에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주님의 부활을 통하여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로 만세 전에 이미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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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18장
제 목 : 하나님의 절대 권력


예레미야
는 토기장이 집의 비유와 레바논 눈(雪)의 비유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유다의 변절을 강조한다. 그 동안 선지자는 여러 각도로 유다의 패역에 대해서 외쳤지만 유다 민족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계속하여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았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동족백성에게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토기장이 비유와 레바논 눈의 비유를 베풂으로써 그들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라는 걸 실감나게 깨닫도록 영감적인 교훈을 던져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반응은 더욱 더 포악해질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선지자는 하나님께 공의의 심판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심판호소 역시 선지자의 개인적 감정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대로 인도함을 받은 결과일 뿐이었다.

  

1. 토기장이의 비유와 하나님의 큰 권세 : 1~10

『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가라사대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리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

하나님께서는 당신 뜻을 인간 세계에 드러내실 때 실물로 비유하며 가르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달아 교훈받도록 하기 위함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말씀이란'생명'으로 인간의 생활과 역사(歷史)를 떠나서는 그 본질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은 영적 존재인 인간들이 몸담고 있는 실생활 속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뜻 드러내기를 즐기신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내재(內在)하시는 주님은 융통성 있는 교재(敎材)들로써 우리들을 깨우치시는데, 세상에 가득한 피조물은 모두 다 택민들을 교훈하기 위한 교보재 역할을 한다. 피조물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자연계시'라 한다.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하신 것은 그저 이론으로 말씀하시는 것보다 그로 하여금 실제 견학(見學)하여 강한 인상과 교훈을 받아 여호와의 뜻을 대언케 하려는 데 목적을 두신 것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보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교육재료로 여기며 자세히 견학할 줄 알아야 한다. "녹로"는 진흙으로 오지 그릇을 만들 때에 사용되는 도구(틀)이다.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종은 하라면 해야 한다. 종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에만 하늘의 역사는 이루어진다.

① 렘 13:1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베띠를 사서 네 허리에 띠고..."
② 렘 19:1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③ 사 20:2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④ 렘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가 가 보았더니 토기장이가 녹로를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발걸음을 옮기는 순종을 통해서만 교훈 얻을 장소에 도달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요나는 주의 뜻에 불순종하여 '욥바'로 내려갔다가(욘 1:3) 물고기 뱃속에서 뜨거운 맛을 본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권세 앞에 굴복하여(욘 2장) 주님이 명하신 '니느웨 성'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인간의 순종과 더불어 계시되는 법이다. 매맞고 코 꿰어 끌려와 일하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괴롭고 힘든 일에 맞서 기쁘고 즐거운 태도로 순종한다면 순종자에게도 큰 축복이 임하는 법이요 하나님께도 영광이 돌려지는 법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하셨고,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행 26:19)라 말함으로써 순종하였다. 바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언제나 하늘의 명령에 빨리 순종, 기쁘게 순종, 절대 순종하였던 것이다.

 
『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때를 따라 이루어지되 만대를 명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사 41:4).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그 피를 이어받아 태어나는 모든 혈통이 죄인으로 출생하게 되었지만(시 51:5), 예수님 보혈의 피(새 언약)로써 타락한 인간의 영혼을 신창조해 주시므로 영혼구원은 기독교의 1차적 본질이 되었다(고후 5:17, 4:16. 벧전 1:9,24). 그러나 자범죄를 덮이움 받고 영혼의 소성을 얻어도 육체가 썩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창 3:19)만은 아직도 모든 인류에게 역사하고 있다. 중생받은 자들에게도 말이다! 그러나 육적 사망도 범죄로 말미암아 온 것이 확실하므로 기독교 종말에는 원죄(=패역)까지 뿌리 뽑아 그 육체를 예수님과 같이 죽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주는 새 일의 역사가 있게 된다(사 42:9), 이 일(새 일)이 다 고해지고 그 말씀으로 척량을 받게 되면 척량받은 자의 육체가 신창조되어(사 43:1"땅에서 구속받아 처음 익은 열매"인 144,000명이 나타나고(계 7:1~8) 이들이 철장권세로 역사하여 세계를 돌아 북진하면 능히 셀 수 없는 흰무리가 딸려 나와 촛대교회의 구원 역사가 마무리된다(계 7:9~13). 그 후 세계는 짐승 손에 붙여져 42달이 지나가며, 그 끝에 주님과 144,000명이 지상에 강림하여 아마겟돈 전쟁으로 666을 몰아내므로 이 땅의 악(惡)은 제해지고 선(善)만 남아 저주가 물러 간새 하늘, 새 땅 천년왕국이 창조되는 것이다(계 11:15. 사 65:17~24

※ 예언서에는 2가지의 '새 하늘 새 땅'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 새 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천년안식세계를 의미한다) . 144,000과 예비처 백성은 비록 몸의 형질과 영광은 다르더라도 영혼구원 위에 '몸의 변화', '몸의 구속'까지 이루어지므로 기독교 역사가 마무리된다는 것을 증명케 될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종들을 통해 말씀을 기록케 하신 궁극적 목적은 사망과 저주가 사라진 <에덴동산의 회복>이다. 지금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해산수고할 때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펼쳐질 지상안식의 성취를 위해 해산수고할 시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간에 이루어지는 협력의 역사(롬 8:28)도 지상안식(천년왕국)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이들에게 강력히 역사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다(엡 2:3). 3위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 역사가 아니고서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사 42:1~4 메시야 유월절 역사 / :5~8 성령의 오순절 역사 / :9~25 성부의 초막절 역사). 하나님은 길가의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무소불능하신 분이다(마 3:9). 이러한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이란 거리의 진흙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욥 10:9, 33:6. 사 29:16, 45:9, 64:8. 롬 9:21). 그러므로 진토(塵土)인 인간은 평안할 때에 교만치 말아야 하며, 환난이 오더라도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하나님 손에 들려 있는 진흙인 줄을 깨닫고 절대적인 겸비와, 주님만 앙망하는 절개있는 신앙을 파수할 따름이다(사 40:31). 그것이 토기장이(하나님) 앞에서 취할 진흙(인간)의 마땅한 태도이다.

 
『 5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

"토기장이" "진흙"을 마음대로 주무를 주권(主權)을 가진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과 모든 국가들에 대해 절대적 주권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일러주신다(암 5:4, 6~). 우리는 여기 토기장이의 일하는 모습에서 깨달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 종들에게 꿀 같은 교훈을 주어 먹게 하시며 창조목적(창 1:28)을 달성해 나가실 때 우리가 말없이 우리의 심신을 내어드려야 한다는 점이다. 피조물이 제 생각을 버리고 복종하는 것을 재료로 하여 조물주께서도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행사하시기 때문이다(사 43:13). 그분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어 놓으셨으며(마 10:30), 국가의 흥망성쇠를 친히 주장하고 계시나(사 51:2) 성도의 순종과 복종이 밑거름 될 때에 즐겨 축복을 내리신다. 오병이어(五餠二魚) 없이도 먹고 남게 하실 수 있지만, 어린아이가 들고 나온 오병이어 위에 축복하시는 신이 하나님이시다사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절대 주권자의 말씀이시다. 우리 종된 피조물은 이 분을 두려워해야 하며, 온유하게 순종해야 하며, 그분만 신뢰하는 겸손을 가져야 한다. 엄마 품에 매달린 갓난아기처럼 자신을 그분께 완전히 내어 맡겨야 한다. 여호와는 우리의 아버지라 하셨으며(사 64:8. 시 68:5, 89:26), 주의 권세는 영원하다 하셨다(단 4:34). 이러한 주(主)님께서 지금도 세상 만사와 모든 인간과, 이 글을 읽는 '나 자신'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빚어가고 계신다. 아멘!

 
『 7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8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

백성이 회개할 때에만 소망이 있다는 것을 밝혀주신다. 유다 백성은 불원장래에 벌을 받으리라 선고(宣告) 받은 처지에 있지만, 그들이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소망도 있다고 하신다. "돌이키면"이란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뜻인데, 단지 말뿐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 생활과 행동적 시정(是正)이 뒤따라오도록 돌이키라는 뜻이다. "나는 인간의 근본적인 돌이킴을 기뻐하는 신이라"는 의미에서 재앙 내릴 뜻이 작정돼 있더라도 얼마든지 "돌이킬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시며 백성에게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진정으로 자기 죄를 깨닫고 마음을 찢어 통회하는 자에게는 들려도, 패역한 자들에게는 들릴 리 만무하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들을 교훈하실 때 거저가 아니라 "네가 악(惡)에서 돌이키려는 의지를 확정할 때 하나님인 나도 재앙 내릴 뜻을 거두겠다"고 말씀하신다. 신인(神人) 간의 관계가 계약적이고 상호교류적이고 대응적 관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인간 없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당신 홀로의 능력으로 새 시대를 창조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의 기도를 받으시겠다 하신다. 능력은 홀로 갖고 계시나 그대로 이루어 달라고 청하는 성도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6:3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고로 기도란 망하게 된 인간이 전능자시요, 구원자이신 여호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요, 축복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

 
『 9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惡)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善)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

주님께서 어떤 국가를 건설하기로 작정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악(惡)을 행한다면 그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하신다. 이것을 볼 때 주님은 죄악과 타협하지 않는 신(神)이시다(시 5:4). 악(惡)이란 "주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는 모든 것"이다(10절). 청종치 아니함이 멸망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삼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악(惡)을 행하는 자는 '긍휼과 사랑의 약속'에서 철저히 제외된다(시 125:5. 겔 18:24, 33:18).

  
2. 하나님의 권고와 백성의 강퍅 : 11~17

『 11 그러므로 이제 너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며 계책을 베풀어 너희를 치려 하노니 너희는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며 너희 길과 행위를 선(善)하게 하라 하셨다 하라 』

하나님께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항상 동일하시다. 죄악 행하는 자를 벌한다는 것은 알파 때부터 내려오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오늘의 경고는 "너희가 죄악을 행치 않을 수 없는 것을 내가 아노니, 다만 회개하라!" 하시는 사랑 어린 경고인 것이다. 선을 행할 수 없는 우리에게 회개하라는 말씀보다 귀한 말씀이 또 있을까?(마 4:17). 메시야 사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입술을 여실 때 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였다. 이미 망하기로 작정된 죄악을 쌓아놓은 인간이 회개하기를 거부(拒否)할 때에는 멸망밖에 준비된 것이 없다.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잠 16:20)라 하였고,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셨다. 하나님은 죄인이 돌이켜 돌아올 때에 기뻐함으로 그 배역을 고쳐주시는 신이시다(렘 3:22, 7:3. 사 55:7).

 
『 12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의 도모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

유대인들은 "회개하라"는 사랑의 경고를 헛된 말씀으로 여겼다. 이와 같은 악질적인 죄는 21C 교회 내부에도 뿌리박혀 있는 고질적 죄악이다. 회개하면 살려주기 위하여 선지자를 보내셨건만 선지자의 외침에 "이는 헛된 말이라"고 조소하는 패역한 백성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구약의 패역을 살펴보고 오늘날의 패역을 깨달아 보자!
① 렘 2:25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신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② 왕하 6:33 "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③ 사 57:9~10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지라도 헛되다 아니함은 네 힘이 소성(蘇醒)되었으므로 쇠약하여 가지 아니함이니라"

이렇게 패역한 자들은 여호와를 기다리지 않고 우상 따르기에 힘을 내며 말하길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리라" 한다(12).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렘 7:24~) , 주를 청종치 아니하며(렘 11:8~), 마음이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습이 고발되었다(렘 23:17~ ). 이 같은 반역죄를 범한 자들은 북방 칼에 죽는다(사 1:19~20). 오늘날도 저 북방에 무신론 핵강대국 공산당 세력이 등장해 있는 이유는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위와 같은 패역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만일 11절처럼 "돌이켜 선하게" 하지 아니하면 기독교는 3대 화가 지나갈 때 살 길이 없다. 기독교는 가장 살쪘을 때를 조심해야 한다(신 32:15. 호 13:6). 다음은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이다.


                        

          조용기 목사 "성경과 불경 가르침은 하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이나 ‘마음이 곧 부처(心是佛)’라는 말씀은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말입니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인 조용기(趙鏞基·사진) 목사가 12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동국대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에서 특강을 했다. 조 목사는 스님 불자 등 70여명의 청중 앞에서 50분간 강연했다. 개신교 보수교단의 핵심인물인 조 목사가 불교 관련 모임에서 강연한 것이 처음인 데다 강연내용도 파격적이어서 주목된다. 조 목사는 “동국대의 제의를 받고 무척 망설였으나 <종교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승낙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선(禪)불교를 신봉해 장남인 자신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불교문화 속에 살았다고 털어놨다. “1953년 폐병을 앓아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우연히 누님 친구의 소개로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예수와 인연이 닿은 것이지요.”

그는 <불교가 한국의 장자 종교>로서 포용력을 갖고 타 종교를 대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케이블 불교TV를 자주 봅니다. 기독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불교 강의를 들으며 깨닫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병조 교수(동국대 윤리문화학과)의 강의는 쉽고 재미있어 빼놓지 않고 봅니다.”

내년에 정년(70세)을 맞는 조 목사는 은퇴 후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밖으로는 해외선교에 주력하고 안으로는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호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004 .5.12="" nbsp="">

신 32:15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호 13:6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이것이 교계적으로 파장을 일으키자 조 목사는 주일 설교에서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였으며, K.N.C.C. 대변지인 국민일보에는 다음과 같이 기사가 실렸다.

“구원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존재”…불교대학원 강의 조용기목사<2004.05.16>
16일 주일예배 설교에 앞서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에서의 특강 발언 중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음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최근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 초청 특강내용과 관련,강연내용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게 보도됐다면서 16일 주일예배 설교에 앞서 진실을 밝혔다.

조 목사는 “내가 마치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식으로 언론에 비쳐졌는데,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으며, 그들 앞에서 예수께 기도해 마음의 평안과 병고침받은 것을 전했다”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을 뿐이며,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고 밝혔다.

조 목사는 또 “처음에 참석을 상당히 주저하면서 기도하다가 ‘무엇을 주저하느냐. 그곳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며 “불교의 가장 중심부에 가서 그들에게 예수께 기도해 마음의 평안과 병고침받은 내용을 들려준 후,예수 안에서만 소망이 있고 소망을 얻으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삶을 살게돼 축복을 받게 된다고 증거했다”고 설명했다.

조 목사는 “사람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고 하는 불교와,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믿는 기독교가 모두 마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고 말했다”며 “그런데 그것을 마치 불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됨으로써 진실이 잘못 전달됐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전 교인을 향해 거듭 “구원은 죽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 이외는 천하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진 적이 없다”고 강조했고,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조 목사에게 신뢰의 박수를 보냈다.

한편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부목사는 “비유를 통해 불교와 기독교의 유사점을 설명한 것은 ‘구원의 도’가 아니라 ‘형식적 유사성’에 관한 것이었다”면서 “이를 두고 ‘종교다원주의’ 등의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강연의 원뜻을 바로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고 강조했다.

유영대기자 
ydyoo@kmib.co.kr


우리는 조용기 목사의 강연내용을 접했을 때, 이것이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교계적인 물의를 일으킨 후 조 목사는 설교를 통해(행 4:12) 오해에 대한 해명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조 목사와 함께 초대받은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목사는 행 4:12절을 인정하지 않는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봉에 선 자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1~2).

조 목사는 이 말씀 앞에 두려워 떨어야 한다. 또한 발람의 교훈을 추억해야 할 것이다(계 2:14. 민 22~24, 31:8). 귀신의 소굴 불교계, 그것도 불교경영자 최고위과정에서 왜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와 더불어 조용기 목사 자신을 초대하였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75만 성도의 대표인 조 목사는 자신이 귀신의 초대에 휘말린 것인지, 진정 복음 전파를 위하여 바울과 같은 정신(고전 9:19~23)으로 그 자리에 간 것인지를 분별하고 후자가 아니었다면 회개해야 한다. 귀신의 초대에 응하는 것자체가 발람의 길인 것을 왜 모르는가?

 목사는 설교를 통해 즉시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해명함으로써 이 문제를 가라앉혔지만, 문제는 K.N.C.C.의 여러 교단들과 천주교는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독선과 배타성을 버리고 타 종교와 대화하며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에큐메니칼적인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는 K.N.C.C.의 대변지이고, K.N.C.C.는 무신론 공산당이 장악한 W.C.C.의 산하단체임을 볼 때, 이번 동국대 강연 관련 발언은 어물쩍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호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한 조용기 목사의 발언은 K.N.C.C.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며, 이는 W.C.C.가 수십년간 주장해 온 바이다. 조 목사 자신은 해명을 통해서 책임을 회피하였다 하여도 자신이 몸담은 K.N.C.C.와 천주교의 행보는 조 목사의 해명과 정 반대의 입장일 것인데, 조 목사는 과연 가증한 K.N.C.C.를 탈퇴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은 바이다.

 
『 13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누가 이러한 일을 들었는가 열방 중에 물어보라 처녀 이스라엘이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

주께서는 자기 백성의 범죄를 가리켜 너무 이상하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 어느 나라도 받지 못한 은혜와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렸다. 첫아담이 저지른 것과 똑같은 죄악이다. "처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적 신부로 정(定)해진 바, 정결함을 간직해야 할 '영적 처녀'이다. 이토록 귀한 선택과 사랑을 받은 처지에서 늘 항상 감사로 할렐루야를 돌리지는 못하고 도리어 택함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너무나도 모순되며 가증스럽다. 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괴악(怪惡)한 행태를 지적하시기 위해 자연계(自然界)의 사리(事理)를 들어 꾸짖으신다. 종 예레미야가 기록한 이 자연계시는 일곱 나팔이 이루어지는 기독교 종말의 성도들에게 다시 예언될 교훈이다(계 10:7,11).

 
『 14 레바논의 눈이 어찌 들의 반석을 떠나겠으며 원방에서 흘러 내리는 찬물이 어찌 마르겠느냐 』

"레바논의 눈이 들의 반석을 떠나지 않는다" 함은 늘 항상 변함없이 레바논산 꼭대기를 뒤덮고 있는 흰 눈의 모습을 말함이다. "들의 반석"이란 말은 레바논산의 별명(別名)이다. 이렇게 레바논산의 눈은 사시절(四時節) 그 자리를 뜨지 않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너무도 쉽사리 하나님 앞을 떠나 우상과 이방 강대국가에게로 붙어버린다(겔 17:12~16). 소위 선민(選民)이라 불리우는 백성이 자연만도 못하게 변질된 것은 뼛골 속에 박혀 있는 원죄악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6,000년 묵은 이 악질적인 패역(구약선민과 오늘날 기독교는 거울과 실물 관계)을 새 일 교훈으로 고쳐서 그 근본을 개조시켜 놓겠다고 약속하셨다(사 19:19~22, 42:9~, 43:1~3, 57:18. 렘 31:21~22. 호 14:3~4).

이 일은 계 10:7~11, 11:1~12절 말씀과 같이 1,260일(전 3년 반)간 다시 예언하고 증거마친 자들(144,000)이 3일반 죽었다가 생기를 받고 공중으로 들림받을 때 비로소 성취되는데, 이들이 곧 6,000년 만에 원죄의 패역까지 제함받는 최초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바울베드로와는 분명 다른 계통의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바울은"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하였지만(롬 8:23), 몸의 구속을 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도요한은 144,000 명에 대하여 묵시받아 분명하게 기록하기를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 표현하였다. 자신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요, 같은 사도 계통인 베드로, 바울도 거듭난 자들임을 너무도 잘 아는 요한이 어찌하여 그 노년에 "사람 가운데서 구속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훗날 등장하리라는 계시를 받았겠는가? 이는 이 예언의 주인공들은 분명 사도단체인 그들과는 다른 형질을 가진 자들이요, 영혼의 구원 위에 그 육체까지 구속 받은 자들이라는 걸 암시해주는 대목이다(계 14:1~5).

기독교 오메가의 역사에서 <육체구원>을 빼놓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러한데도 육체구원만 말하면 자칭 장자총회라 이름하는 교단에서는 '이단'이라고 정죄하기에 바쁘다. 진짜 이단은 육체구원이 이루어질 때 그것을 반대하다가 환난에서 육체를 심판당하는 세력일 것이다. 이미 육체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 단체는 이단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몸의 구속' 곧 3대화로부터의 육체보호, 몸의 개조를 144,000명의 역사와 승천, 예비처에서의 흰 무리 보호 등의 성경적 증거로 외치는 자들은 진리의 종들이지 이단이 아니다. 이 역사는 영혼과는 별개의 '육체'와 관련된 사건들이다. 기록된 축복을 놓치지 말자 하는 것은 이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 친히 '육체구원'을 강조하신만큼, 이러한 일이 성취될 때를 사는 우리는 '영혼구원' 위에 '육체구원'이 있다는 것을 부지런히, 그리고 담대히 전해야 한다.

 
『 15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 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하여 』

"그 옛 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돼 온 참된 신앙정로를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모세의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에 기록된 진리를 버리고 "곁길" 곧, 우상숭배의 도(道)를 따라갔다. 우상의 길은 "닦지 아니한 길" 같아서 사람을 허무한 데로 인도할 뿐이다. 사람이 '닦지 아니한 길' 곧 '우상의 길'을 걷는 것은 탐심 때문인데(골 3:5), 인간의 맘 속에 주님을 경외함이 없을 때에 이 길을 가게 된다(렘 2:19). 시 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인정할 때 주님은 우리를 곁길로 빠지지 않게 보호해 주신다. '우상의 길'로 가는 것은 자기 길을 굽게 함이요(렘 3:21), 거짓된 것을 신뢰함이다(렘 13:25). 렘 14:10절에서는 이 길을 "어그러진 길"이라고 표현하셨다. 우상은 망령되이 만든 것이므로(렘 10:15, 16:19) 부어 만든 우상을 일컬어 '바람'이라 하셨다(사 41:29. 호 4:17~19, 12:1). 하나님은 주(主)를 버리고 우상을 섬긴 시일대로 벌을 내리겠다 하셨다(호 2:13).

백성이 멸망의 이 길을 가게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거짓 지도자'이다. 탐심을 쳐서 예언해 주어도 부족할 판에, 백성을 율법의 정도(正道)로 인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다닐 길을 훼파하며 미혹케 함으로서 멸망당하게 하는 자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와 지도자들이다(사 3:12).

사 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오늘날 K.N.C.C.나 천주교의 머리된 목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에큐메니칼적인 설교는 이방종교인들에게는 환영받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설교는 분별력 없는 양 떼들을 사망으로 떨어뜨리는 쑥물인 것이다말 2: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만일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듣고도 회개치 않는다면 심판하러 내려오는 원수의 칼 앞에 쓰러지게 될 것이다.

 
『 16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 영영한 치소가 되게 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서 그 머리를 흔들리라 17 내가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기를 동풍으로 함같이 할 것이며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

본 구절은 선민이 범한 죄의 결과(16절)로 받을 벌에 대한 예언이다.
"그들의 땅으로 놀랍고 영영한 치소가 되게 하리라"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인데도 불구하고(민 13:27), 이 땅이 놀랄 만큼 황폐하여 행인들의 "치소거리"가 되는 것은 그 땅에 거주하던 선민들의 죄값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좋던 땅이 그렇게 비참하게 된 것을 그밖의 어떤 원인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 원수 앞에서 흩으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케 하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이 새 언약이 성취되므로 펼쳐진 은혜시대에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는 자범죄를 사함 받고 성령의 은사 곧 단비를 받아 (영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말을 맞이하여 예언의 법을 범하니 바벨론 통치와 같은 후 3년 반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그 땅을 주실 때에도 인간의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기적, 곧 하나님의 간섭으로 된 것이었고, 그들이 범죄하여 그 땅을 도로 빼앗기는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으로 되는 것이다. 주시는 이도, 빼앗는 이도, 행하시는 이도 살아 계신 하나님뿐이시다(욥 1:21).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예루살렘이 망하는 모습을 말씀하실 때 
① 무더기가 되고(렘 9:11)
② 지나가는 자마다 모욕하며(렘 19:8)
③ 놀램과 치소가 되고(렘 25:9)
④ 원수 앞에서 흩어질 것이라 말씀하셨다(렘 13:24. 신 28:25, 64~).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아니하리라" 돌이키는 기간을 주어도 돌아오지 않던 백성들을 '재난의 날'에 결코 돕지 않겠다는 말씀이시다(17절). 그 이유는 ① 백성이 등을 하나님께로 향하고(렘 2:27),  교훈을 하여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렘 32:33). 그러므로 하나님 역시 전쟁의 환난이 올 때 백성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외면(外面)하시겠다는 선포이다. 백성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청종하기를 거부하였으나 주님은 길이 참으사 용서하시며 돌아오기를 고대하셨어도, 백성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조롱뿐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긍휼로 대하사 또 한 번 살려주시기 위해 종을 통해 마지막 경고를 하신 것이나, 그 최종적인 경고의 말씀조차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백성을 버리겠다고 선포하신 것이다.

구약 종말의 이 원리는 인간 종말인 지금도 동일하다. 현재의 피로 사신 교회들이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 곧 "다시 예언하라"(계 10:7~11)는 말씀을 들은 체 만 체하며 등지게 될 때, 필경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등지시리라는 것이 오늘의 말씀이 교훈하는 바다. 예레미야와 같은 종말의 선지 144,000명의 슬픈 경고를 무시하는 교회는 3대 화가 올 때에 아무리 부르짖어도 예수님께 버림을 받고야 말 것이다.

슥 7:11 "청종하기를 싫어하며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神)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怒)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14 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다음 구절들도 참조해 보시라 ☞ 대하 12:5. 레 26:23~24. 말 2:9. 사 65:12, 66:3~4. 렘 11:10~12, 25:4~9, 44:4~6. 겔 8:16~18).
  
  
3. 모살자(謀殺者)를 위한 선지자의 기도 : 18~23

『 18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할 뿐 아니라 선지자의 예언 활동을 저지(沮止)시키려고 대중까지 충동질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은 오늘날에도 벌어질 것이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오라"고 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의 힘을 모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의 궤휼인 인본주의요, 협상주의이다.

 제도적(制度的) 종교장치 속에서 부패한 "제사장과 소위 지혜자들과 거짓 선지자"의 말을 빌어서,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의 예언 운동을 제지하고자 하는 것이다(렘 28장). 시대마다 선민이 타락할 때는 하나님의 참된 종을 부패한 기성 교권(敎權)의 지도자들이 가로막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기성 지도자층(旣成 指導者層)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때에는 그들이 거짓 스승의 운동을 막아주는 일도 있었고, 참 종들을 위기에서 살려준 적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외식자들은 신앙과 의리로 형통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간사한 말로서 의인을 훼방하여 이기고자 한다(시 12:4). 심판기에는 참 선지자가 많은 박해를 당하는데, 원인은 악마의 득세이다. 악의 종들은 먼저 악의 도모를 이루기 위한 거짓단체를 만들고(렘 11:19. 시 21:11. 사 32:7) 그 단체의 힘을 입어 악한 꾀를 도모한다(시 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특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므로(욥 5:13) 최종적인 승리가 참 종들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참 선지자를 죽이려 하며(렘 26:11), 그 혀로 심한 악을 꾀한다(시 52:2. 슥 14:12).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음을 깨닫고 주님 주신 혀를 생명의 길에만 사용하자(잠 18:21. 사 11:3~5. 계 11:5~6).

 
『 19 여호와여 나를 돌아보사 나로 더불어 다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옵소서 20 어찌 악으로 선을 갚으리이까마는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나이다 내가 주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려 하고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선한 말씀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

지금부터는 대적들을 처벌해 주시기를 청하는 예레미야의 기도이다. 이것은 기도인 동시에 예언이다. 선지자의 기도 중에는 하나님의 뜻 아닌 것이 끼어 있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대를 정하셨다(사 41:4). 하나님께서 그의 대적들을 처벌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알파 때부터 이미 있어 온 예언이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벌하시려는 분노를 돌이켜 주실 것을 기도한 바가 있었다(20절 하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대적들(유대인들)이 끝까지 회개치 않고 도리어 "악으로 선을 갚고자 하여" 그를 모해(謀害)할 운동을 전개함에 따라(18절), 예레미야는 이제 하나님이 선포하신 그 본래의 예고(豫告)대로 그들을 벌하여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선지자의 기도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예언할 수 있다. 하나님은 늘 참 선지자를 돌아보신다.

① 의인을 시험하사 폐부를 살펴 보신다 하셨고(렘 20:12)
 주께서 탄식을 들으신다 하셨으며(시 55:16~17)
 생명을 보존해 주시겠다 하셨다(시 64:1). 

예레미야와 더불어 다투는 이 백성은 악으로 선을 갚는 백성들이다(시 35:12, 38:20. 잠 17:13. 요 15:25). 백성들은 이토록 반역하였지만, 예레미야는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였다(렘 7:16, 14:9. 시 106:23. 겔 22:30~31).

 
『 21 그러하온즉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며 그들의 아내들은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하시며 22 주께서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하사 그들의 집에서 부르짖음이 들리게 하옵소서 이는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음이니이다 』

어느 시대에나 참 선지자를 대적함은 곧 하나님을 대적함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로서 만전(萬全)을 기(期)하는 사역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사감(私感)을 발하여 원수를 맺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선지자는 대적들의 구원을 위하여까지 기도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예레미야를 대적했으니, 그것은 악으로 선을 갚는 행동이었다. 그들의 행위를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된 자들로서 죄악이 노골화(露骨化)된 자들이다(사 3:8~9). 이런 때 참 선지가 할 수 있는 기도는 본래 작정하셨던 바대로 "저희를 벌하시옵소서" 하는 기도밖에 없다. 이 기도대로 하나님은 움직이셨고 이 재앙 곧 "기근" "전장"으로 인하여 그들의 자녀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다(렘 39:1~).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형벌이다. 그들이 이러한 형벌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분신인 선지자를 죽이려 한 죄악 때문이다. 어느 시대이건 선지자를 대적한 죄는 결코 면죄받을 수가 없는 법이다(계 11:5). 하나님은 당신의 원수된 자들의 가정은 반드시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렘 11:23. 계 2:20~23. 말 4:1).

 
『 23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종인 자신을 죽이려 하는 유다 민족을 공도(公道)로써 징책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예레미야 입으로 이러한 기도를 시키신 것은 돌이키면 살겠지만 회개치 않고 끝까지 대적할 때는 그 악을 사할 수 없는 결론으로 가게 됨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다(느 4:5. 시 35:4, 59:5). 언제나 불택자들에게는 예언의 말씀(선지서)이 걸림돌이 되었으니, 오늘날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 초림 시 불택자들에게는 '새 언약'이 심한 걸림돌이 되었었다. 바울과 베드로가 예언서를 짝 맞추어 '십자가의 도(道)'를 아무리 잘 전해도 불택된 자들은 도리어 사도들을 못박거나 목베어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도 불택자들에게는 '새 일의 교훈'(사도들이 증거하고 남은 모든 예언)이 심한 걸림돌이 되니 이 도(道) 전하는 자들을 죽이기에 이를 것이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의 손에 피가 묻은 것(계 17:6)은 거짓된 교권이 총동원되어 짐승의 힘을 빌어 참 종들(144,000)의 피를 흘릴 것을 예언한 것이다.

본 제단에는 수 많은 전화가 걸려 온다. 감사와 격려의 전화, 상담 및 문의전화, 훼방과 저주의 전화 등이다. 그 중 훼방하는 이들이 말하는 주된 내용인즉 "구약은 지나간 역사인데, 왜 구약 예언서를 이 시대에 들먹이냐"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용감한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마 11:13절을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율법과 선지서는 요한까지이니 이 시대에 율법과 선지서를 들먹이는 것은 100% 이단이라는 것이다. 크게 오해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결론이다. 마 11:13절의 참뜻은 짝이 되는 다음 말씀을 통해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요한을 마지막으로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가 마무리되고, 예수님의 때로부터는 이전 선지자들이 고한 모든 예언이 성취되는 시대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고로 "율법과 시편과 선지서의 글"은 요한 때에 끝났으니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글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 초림 때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의 나라' 곧 아름다운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기까지 율법과 시편과 예언서의 말씀은 계시록과 더불어 쉴 새 없이 이루어진다.

같은 성경 말씀을 놓고도 누구는 오해하여 소경이 됨을 볼 때 두려움을 느끼며, 누구는 참 뜻을 깨달아 주의 사업에 매진하게 됨을 볼 때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오직 택자만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주시는 큰 긍휼을 받아서 영, 육 간에 완전한 구원을 얻게 되고또한 큰 환난에서 가족까지 구원을 얻어 세세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이다. 성경에 기록된 축복을 차지할 자는 기록된 모든 예언이 주 재림의 날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굳게 믿는 자들일 것이다. 아멘!

렘 23: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렘 30:24).

단10: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

미 4:1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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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19장
제 목 : 멸망의 상징인 파기(破器)


1. 힌놈 골짜기의 심판 경고 : 1~9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2 하시드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 』 

"오지병"은 목이 좁은 병으로서 속에 담긴 액체를 쏟을 때에 "박뿍 박뿍" 하고 소리가 난다. 이 병은 토기로 만들었으며 오짓물을 발라 구어 윤이 나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병의 깨어짐과 같이 유다 나라(현 교회)가 깨어질 것을 실물교훈(實物敎訓)으로 보이신 것이다.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가라 하심은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어른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시드 문"은 '태양의 문' 혹은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동편 문을 뜻한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편 골짜기인데, 하시드 문을 통해서 내려가면 '힌놈의 아들 골짜기'가 나온다 하니 하시드 문의 정확한 위치는 예루살렘 성 남동쪽 모퉁이쯤 된다. 이 문은 바로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분문(糞門=똥문)과 동일시된다(2:13). 이 문이 '질그릇 조각의 문'이라 불리우는 것은 근처에 토기장이의 집들이 밀집된 관계로 많은 질그릇 조각 파편이 이 문 부근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유다 어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가는 이유는 앞으로 유다 땅이 '도벳'과 같이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을 실천적으로 예언하기 위함이다. 유다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우상숭배로 더럽혔으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도 유다 땅에 살육을 베푸시어 '도벳'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골짜기가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 ※ 하시드 문 가까이에 있는 토기장이의 밭은 도벳=기드론 골짜기=힌놈 골짜기=살육의 골짜기 등으로 불리운다. 여기서 불법적인 우상제의가 행해졌으며 바알, 몰렉 등에게 어린아이를 잡아 바치는 악습이 자행되었다. 렘 32:35. 대하 28:3, 33:6. 렘 7:32). 이러한 예언을 읽고도 무심하여 계속 가증한 행동을 하게 되면 다시 예언되는 종말! 바로 지금 저 심판의 골짜기에 매장될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

사 30:33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또 왕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라 깊고 넓게 하였고 거기 불과 많은 나무가 있은즉 여호와의 호흡이 유황 개천 같아서 이를 사르시리라"

이 심판을 벗어나는 방법은 3절부터 펼쳐지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 3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무릇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하리니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아" 유다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죄책(罪責)이 "왕들""거민들" 양쪽에 다 있다는 말씀이시다. 도벳과 같이 더러워진 "이곳" 유다 땅에 전쟁의 화를 보내시겠다고 하신다. 이때 "듣는 자의 귀가 진동"한다고 하신 것은 엄청난 살육심판의 환난이 임한다는 소식을 듣는 자마다 놀라리라는 뜻이다.

 
『 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불결케 하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음이며 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죄"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시는 원인이 된다.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이란 '우상'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길은 모두 다 우상의 길이다.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웠다" 함은 선지자 시대에 참된 종들이 많은 핍박을 받아 죽임 당한 사실을 가리킨다(렘 2:34, 7:6, 22:3,17). 언제나 종교가 부패해 갈 때는 의인의 피에 주린 불의한 자들이 많아진다(시 14:4~6). 앞으로 예레미야서를 들고 나가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많아진다면 우리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이니 더욱 힘을 낼 일이다.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인 율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헛된 미신으로 떨어졌을까? 아들을 불살라 바침은 사람이 한 번 미혹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예언서 어디를 보나 구약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사단의 꾀임에 끌려간 흔적뿐이다. 이는 아담 이후의 인간 중 뼛골속 선악과의 질을 이기고 사단의 미혹을 받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결론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긴 자"가 되는 길은 오직 사단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와 새 일의 말씀에 연합하는 그것뿐이다. 영육이 누릴 지상 천년의 축복은 사단이 들어쓰는 거짓 선지자의 궤휼(오메가의 미혹)을 이겨야만 준다는 것이 종말의 법이다. 거짓 선지자는 교회를 살육심판의 도벳 골짜기로 몰아넣기 위해 존재하고, 144,000명은 교회를 도벳 골짜기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 6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는 날이 이를 것이라 7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계(謀計)를 무효케 하여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8 이 성으로 놀람과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모욕할 것이며 9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핍을 당할 때에 내가 그들로 그 아들의 고기, 딸의 고기를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고기를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

죄 값으로 받을 재앙의 선포이다.

 교회가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의 악행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그곳은"살육의 골짜기"가 되며(6절).
② 현세적, 육체적인 복을 바라며 행하던 유다인의 모계(謀計:계책을 꾀하는 일)는실패할 것이며(7절).
 예루살렘 성이 황폐해져 지나가는 행인들의 놀람과 모욕거리가 될 것이며(8절).
 유다인이 적군에게 포위될 때 극도의 식량난으로 서로의 고기를 뜯어먹는 일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9절) : 이 일은 바로 '후 3년 반'에 떨어진 기독교인들에게 이루어질 일이다(신 28:52~57. 왕하 6:28~30. 애 2:20, 4:10 참조).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유다 백성이 당할 환난의 비참함이 곧 그들이 행한 죄악의 비참함과 동질동량(同質同量)임을 깨달아야 한다. 21C 종말에 기독교가 무서운 '3대 화'를 통과하게 되는 것은 교회의 죄악이 그만큼 무섭다는 뜻이다.


2. 파기(破器)로 멸망을 경고함 : 10~13

 
『 10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오지병을 깨뜨리고 11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파하리니 그들을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하리라 』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동행자들의 앞에서 "오지병을 깨뜨려"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실물교훈(實物敎訓)를 행하라 하신다. 21C의 교회는 이 살아 움직이는 예언을 경청해야 한다. 사랑과 온유의 예수님이 무서운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때 촛대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들이 바로 이처럼 깨어지고는 다시 회복될 수 없는 형편에 처할 것임을 알려주신 예언이기 때문이다.


『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 곳과 그 중 거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

예루살렘은 이제 "도벳"과 같이 시체들로 더러워진 땅이 될 것인데, 성지(聖地)가 이렇게 시체들로 더럽게 되는 원인은 <우상숭배>이다. 에스겔 9장에서도 성소에서 어른들 곧 장로들로부터 시체가 될 것을 예언하셨는데, 그 원인 또한 성읍(교회)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 곧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알려주셨다(사 43:28, 66:6~ , ☞ 겔 9장 설교를 참조하라).

  
3.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예언함 : 14~15

『 14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예언하게 하신 도벳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1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

선지자는 성전 뜰에서 다시 예언하였다. 내용은 유다 민족이 받을 재앙에 관한 말씀이다. 종말에도 선지자 사명을 가진 파수꾼들은 예수님께서 "교회와 종들"에게(계 22:6~,16~) "이후에 마땅히 될 일"(계 4:1~)에 관하여 계시하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그대로 외쳐 예언해야 한다. 인봉개시(印封開始)된 이 말씀을 가감하면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이 임하리라고 예언하셨으니(계 22:18~19) 이 시대의 성도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계 1:3). 우리는 예레미야와 같이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 일에는 엄청난 시련이 따르는 것이니 20장을 통하여 교훈받지 않고서는 다가올 시련을 이길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 예레미야서를 읽는 우리 모두가 형님 예레미야가 걸어간 길을 묵상할 때 크게 깨닫고 각성하므로 큰 시련이 다가오는 그날에 더욱 담대히 나아가 예언할 수 있는 인격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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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0장
제 목 : 파수꾼의 시련과 역사


1. 바스훌의 박해와 선지자의 예언 : 1~6

『 1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집 유사장(有司長)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웠더니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

선지자는 언제나 자기 민족에게 임할 환난 재앙을 예언하고도 핍박을 받는 존재이다(미가 7장 참조). 본문은 참 선지자가 유사장(성전의 질서유지 책임자)에게 매를 맞고 수금당하는 모습이다. 유사장 곧 제사장의 두목이 폭행을 했다는 것은 당대의 종교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려준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형식과 외식적인 교회활동을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러한 교계적 부패를 현실감 있게 증거라도 하라는 듯, 예레미야서 집필 중인 2003년 5월 25일 주일날 아침, 선지자들이 기록한 모든 말씀을 가감치 않고 이 시대에 다시 예언하는 본 제단을 교인수 1위를 자랑하는 대형화된 거대교권이 폭언과 폭행으로 핍박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음 주소를 통하여 내용을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통화로서 끝인 줄 알았으나 저들은 통화 중에 했던 말인 "너희 교회 어디야? 가서 확 뒤집어버릴테니까... 죽고싶냐?"는 말을 실행에 옮기려는 듯, 통화 후 정확히 4시간 만에 우리 교회(스룹바벨선교회)에 도착하더니 검은 승용차 2대로부터 안전부장(교회의 질서유지와 안전을 담당하는 직책)과 그가 거느리는 키 180cm 이상되는 건장한 남자 4~5명과 무술 유단자로 보이는 험상궂게 생긴 무표정의 장정이 하차하여 교회의 오후 예배 준비성가 시간을 방해하였다.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지 않으면 교회가 북방세력으로부터 화를 당한다'는 전도지를 자기네 교회 장로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하여 그 여집사를 손봐주러 온 것이다. 오자마자 문을 부수듯 두드리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며 '무슨 일로 찾아오셨느냐'고 물으러 나간 청년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해대는 모습이란 도저히 성령의 열매로 볼 수 없는 흑암 덮인 행위였다.

회의 신앙생활의 요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다.

요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예레미야는 자기를 "놓아주는 바스훌" 앞에서도 그 예언의 내용을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初志一貫)하여 전하므로 앞으로 임할 재앙에 대해 분명하고도 견고하게 예언했다. 이렇듯 참 선지자는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할 뿐이다"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바스훌'이란 '권세를 확장하는 자'란 뜻인데 이제부터는 그가 "마골밋사빕" 곧 '사방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리라 한다. 이 이름은 종말에 북방환난이 내려오는 날 '권세 있는 교회가 처하게 될 모습'을 예표한 것이다.
 
『 4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로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 내가 또 이 성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물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되어 옮기우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가 거짓 예언을 하여 들린 네 모든 친구도 일반이리라 하셨느니라 』

4~6절은 예루살렘과 바스훌에게 임할 환난의 내용이다.
① 그가 그의 친구들이 칼에 죽는 것을 보게 됨(4절).
② 모든 소유와 보물이 원수에게 탈취당하게 됨(5절).
③ 그의 가족들과 그 자신도 바벨론에 사로잡혀가게 됨(6절).

지금은 예레미야서를 다시 읽어 전하는 시대이다. 이 때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멸시하며 압박하는 교회의 권세자들은 바스훌과 같이 모두 '후 3년 반'으로 들어가 기록된 저주의 예언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2. 예레미야의 기도와 확신 : 7~13

『 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선지자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신 12:32) 하셨다. 계 22:18~19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 선지자는 주께 받은 사명으로 괴롭지만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 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

선지가 말할 때마다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는다" 함은 입을 열 때마다 북방환난과 재앙의 내용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1장에서부터 '가마솥이 북에서부터 끓고 있으며 북방 모든 나라가 유다와 이 땅 모든 거민을 치러 내려온다'는 묵시를 받았다(렘 1:13~). 그러나 유다 정권과 교회는 듣고도 끝까지 불순종하였기에 결국 바벨론의 세 번째 침략을 당하므로 완전한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렘 39장). 그러나 그들은 붕괴를 당하기까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참 선지를 모욕하고 괴롭히기만 했던 것이다.


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동족이 가하던 고통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괴로움 중에 다시는 여호와의 뜻을 선포하지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도 아니하겠다 하여도 선지자는 곧"중심이 불 붙는 것같이" 뜨거워지게 되므로 다시 뛰쳐나가 예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강권역사이다. 인간의 힘이 못당하는 성령의 역사이다(슥 4:6~ ). 이렇게 되는 이유는...

①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온 말씀임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고
② 말씀의 내용이 너무도 참되기 때문이며
③ 성령께서 그로 하여금 그것을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도록 그 마음을 뜨겁게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는 마귀의 참소도 강한 법인데, 오늘날 예레미야를 다시 예언하는 종들도 다음과 같은 대적들의 훼방을 통과케 될 것이다.


『  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

선지자는 자기가 당하는 모든 위험스러운 일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데, 곧 비방하는 일과 해하려는 음모들이다.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이 말은 원수들끼리 주고 받는 말인데, 예레미야에게서 무슨 허물을 찾으면 알려 달라는 말이며, 고소할 때는 함께 힘이 되어주겠다는 말이다. 이들의 공동 목적은 예레미야를 잡아 죽이려는 것 한 가지뿐이다"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친한 친구들까지도 예레미야가 죄를 범하고 거꾸러지기를 원하리 만큼 참 선지자의 길은 외롭고 고독하며 범인(凡人)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시 55:1~16).


『 11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고로 나를 박해하는 자가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치 못하므로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그 수욕은 영영히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

본절에서는 예레미야가 10절까지에서 고백한 힘겨운 역경 중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원수들이 산더미같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휘두르는 장면들에서는 마치 하나님조차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의 긴박함과 위기감이 조성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시는 "두려운 용사"로 알았으며 원수들이 자신을 이기지 못할 것을 내다 보았다. "그들은... 큰 수욕을 당하오리니" 예레미야는 자신을 박해하는 모든 자가 실패할 것을 확신하였는데, 이는 말세의 종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종말의 파수꾼들이 예레미야서를 들고 나갈 때 대적의  무리들이 죽일 듯 달려들테지만 그들은 큰 수욕을 당하게 되고 예레미야와 같은 144,000명의 용서들은 "두려운 용사" 하나님의 완전보호를 받게 될 예언이다.

 
『 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

예레미야의 신앙을 드러내주는 구절이다. 그는 자기의 심사(心思)에 불의함이 없다는 사실과, 그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안도감을 갖는다. 13~ 극도로 위험한 때이지만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는 모습은 합 3:16~18절에 나타난 말세 종의 자세이다. 말세 종들은 세상 권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하다.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는 과거형 문투의 신앙고백은 마귀로부터 권세 받은 악한 종들이 말세 종들을 핍박하고 나올 때 큰 위로의 말씀이 될 것이다. 과거형 문투 예언은 이미 그렇게 이루어진 줄 믿고 나아가라는 강한 권고의 말씀이다. 우리는 "구원하셨음이니라" 이 한 말씀으로 인해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 소망의 열매는 이처럼 달다. 하지만 인내의 과정은 쓰다는 진리가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된다.

  
3. 선지자가 자기 생일을 저주함 : 14~18

『 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15 나의 아비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기를 네가 생남하였다 하여 아비를 즐겁게 하던 자가 저주를 받았더면, 16 그 사람은 여호와께서 훼파하시고 후회치 아니하신 성읍같이 되었더면,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18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 』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그의 출생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한 자까지도 저주를 받았더면 좋았으리라고 하고 있으니(14~15)... 선지자 예레미야의 연약한 체질이 감당키 어려운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핍박이 덮쳐왔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저주의 탄식은 선지자의 믿음이 하급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너무 강하므로 나오는 탄식인 것이다. '출생하지 않았더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운 환경은 말세 종 144,000명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이 예언이 기록된 것은 참 선지의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가를 알리는 데 있지 누군가를 저주하는 데 있지 않다.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한 바 있다(왕상 19:4).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대항할 말세 종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러한 환경을 거쳐가야 할 것이다. 



고난은 선지자가 통과해야만 하는 필수관문이다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그의 출생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한 자까지도 저주를 받았더면 좋았으리라고 하고 있으니(14~15)... 

선지자 예레미야의 연약한 체질이 감당키 어려운 얼마나 커다란 고통과 핍박이 덮쳐왔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저주의 탄식은 선지자의 믿음이 하급이어서가 아니라, 고통이 너무 강하므로 나오는 탄식인 것이다. '출생하지 않았더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운 환경은 말세 종 144,000명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다. 

이 예언이 기록된 것은 참 선지의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가를 알리는 데 있지 누군가를 저주하는 데 있지 않다.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한 바 있다(왕상 19:4).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대항할 말세 종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러한 환경을 거쳐가야 할 것이다.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이것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공포의 소리를 의미한다.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여기서 "그" 는 하나님이시다. 원망하는 말이 아니고 선지자의 길이 이러한 말이 나올 만큼 험하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그의 삶 전체가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는 만큼 그 인생에서는 기가 막힌 일들이 수없이 발생케 된다. 욥 3:1~26절에서도 기가 막힌 말을 많이 함을 볼 수 있다. 사 29:1~4절에도 말세 종은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하신 상태가 된다고 예언돼 있다. 우리가 비껴 갈 수 없는 필수관문의 예언들이다.
사 48:10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 시 119:67~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신데, 왜 택한 종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고난의 풀무를 지나게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하는 종들에게 세세 왕권을 주시기 위함이다. 세세 왕권을 주시되 강한 마귀와 싸움을 붙여 이기는 자에게 준다는 것이 '공의'(公義)이므로 "고난"이 필요한 것이다. 고난은 주님의 '모략적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 49:2~ 종을 "마광한 살"같이 아프게 갈아 전통에 감추고 꼼짝 못하게 하시는 것도 다 원수 마귀를 이기게 하기 위한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핍박과 고통을 도리어 축복으로 알고 감사만 하자! 그것이 진정한 파수꾼의 인격이요, 그가 걸어야 할 신앙의 정로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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