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6:~ 30:



성 경 : 예레미야 26장
제 목 : 박와 섭리의 보호


1. 교회에 대한 회개 권고 : 1~7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 초에 여호와께로서 이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 말도 감하지 말라 』

"하나님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한 마디도 감하지 말고 그대로 다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즉 "교회와 종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보좌에 앉아계신 아버지께로부터 새 일의 교훈(사 42:9)인 심판책을 받아 사도 요한에게 계시하실 때, '교회와 종들'에게 주라 하셨다(계 1:1, 22:6,16). 교회는 이 말씀을 받되 한 마디도 가감하지 말고(계 22:18~19) "읽고 듣고 지키면" (禍)가 올 때 복을 받는다 하셨다( 계 1:3). 그런데도 지금의 교회들은 예수님의 계시록에 너무도 무관심하다. 오로지 지난날에 사도가 걸어가던 길만을 고집하며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는 때를 따라 역사하는 종교이며 때마다 법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유대교회가 모세의 율법만이 전부인 줄 알고 새 언약(렘 31:31)을 증거하는 사도들을 핍박하며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영혼의 구원을 놓치고 독사의 자식이 된 일을 추억해야 한다! 과거를 거울 삼아 볼 때 지금의 교회도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 마지막 부탁을 무시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결국 3대 화가 올 때(계 8:13) 몸의 구속, 즉 체의 보호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짐승 칼에 붙여져 천년왕국(에덴=고토)을 놓치는 것이다(사 1:19~20).

신 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가감치 말라는 뜻은 "한 말씀도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는 의미이다(2절). 이는 이사야 선지로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23) 하신 말씀과도 같다.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하셨으니 예언서는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의 구원과도 관계 깊은 심판의 책인 것을 알아야 한다(마 24:21).

『 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심판의 메시지(예언서)를 전달하시는 것은 죽이고자 함이 아니요, 악한 길에서 떠나게 하려는 목적이다. "혹시"란 단어에는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혹 인내로 기다리셔도 회개하는 자가 심히 적어 소수만이 심판을 면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각각"이라 함에는 회개운동에 있어서 단체적인 회개보다 각 개인의 개별적 회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슥 12:12~14 참조).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는 말씀에는 패역한 백성이 결코 악행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신의 통찰이 담겨 있으나, 혹이라도 "떠나기만 하라! 그리하면 살려주리라"하는 사랑의 경고도 담겨 있는 것이다.

『 4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5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6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

유다 민족의 역사적인 불순종을 통탄하시면서도 (살리시기 위하여) 그들의 순종을 독촉하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엿보이는 말씀이다. "다시 듣지 아니하면 이 집으로 실로같이 되게 하고" 실로는 법궤가 있던 곳으로 (성전이 없던 시대의) 성전이라 할 수 있다(수 18:1. 삼상 1:3, 4:10~22). 신정국가(神政國家)의 심장부는 바로 법궤가 모셔진 곳이다. 그런데 '엘리' 가문의 부패로 법궤가 블레셋에게 피탈되고 엘리 가문이 몰락한 지 약 110년이 지나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B.C.959년 10~11월 사이에 성전을 완공하고 법궤를 안치시켰다(대하 5:2~10). 하나님은 영광으로 솔로몬 성전을 충만케 하셨으나(대하 7:1~), 이후 백성이 영광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가 타락하기 시작하므로 첫 번째로 포로가 된 여호야김 왕의 등극(B.C.609) 때까지 약 350년간 예언자들을 보내사 부지런히 권고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듣지 않아 여호야김 및 여호야긴 왕 때 2차례에 걸쳐 바벨론 환난을 당한 것이다.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세계 열방' 앞에서 저줏거리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을 보아서 이 예언은 계 10:11절과 관계된 종말론적인 경고가 분명하다. 엘리와 사무엘의 사사시대를 거쳐 초대왕 사울을 거쳐 다윗 때로부터 시작된 유다 왕조는 여호야김 왕 전까지 총 19명의 왕을 배출하였는데, 때로는 선(善)으로 향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惡)으로 치우친 반복된 정치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 왕조가 그렇게 많은 선지자들을 때려죽였어도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지금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이다. 이 상황을 그대로 21세기 교회로 옮겨 보자.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곧 예레미야서를 무시하면 "이 성(기독교)이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솔로몬 성전이 있는 유대 나라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예레미야서가 다시 읽히는 주 재림기를 맞이한 예수님의 피로 산 교회(행 20:28)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여호야김 이후로 '여호야긴'과 '시드기야' 두 명의 왕이 등장하는데, 여호야긴은 석달을 치리하고 잡혀갔고, 시드기야는 악하여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고 핍박하므로 급기야 유다 왕조는 시드기야 11년 째에 최후 종말을 맞이하였다.

듣지 않던 유대인을 이방 땅으로 내쫓아 제해 버리시고, 스룹바벨이라는 '순'과 같은 인물로 새출발을 하게 하신 것이 구약의 역사였다면, 오늘날 일본천황(신사참배)과 W.C.C.(K.N.C.C.)를 용납하고도 회개치 못하는 이 거대해지고 외식화된 국내외 기독교가 다시 예언되는 예레미야서를 끝내 무시한다면, 기독교는 결국 성전 밖마당이 되어 이방인(계 11:2)의 손에 붙여져 잔인하게 짓밟히게 되라라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한 종말의 스룹바벨 순의 단체(144,000+흰무리)가 새로운 땅을 얻어 하나님을 찬송케 될 것이다. '스룹바벨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바꿔치기 역사'이다. 즉 썩은 것은 도려내고 미약하고 연한 생명으로 다시 시작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회복과 소생의 역사란 뜻이다.

 7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

그들이 들은 것은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함이 아니고 트집을 잡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외식하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뿐이었으니 생명의 말씀을 듣고도 깡패와 같이 악독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던 것이다.

  
2.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에게 죽음을 선고 : 8~15

『 8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9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집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으리라 하느뇨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에게로 모여드니라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죽이고자 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①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오해한 까닭이었다.
예루살렘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거처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데(시 132:13~14), 예레미야는 날마다 외치기를 "예루살렘이 머지 않아서 열국의 저줏거리가 되리라" 하고 있으니 그들의 상식으로는 그의 말이 미친 놈의 말처럼 느껴졌던 것이다(렘 29:26~27 / 요 10:20. 행 26:24 참고). 그들은 율법을 크게 오해하였던 것이다. 율법과 시편에는 예루살렘이 범죄하여도 보호하겠다는 말씀은 없다. 그들에게는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의 죄악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없었던 것이다.

②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의 동행보다도 '외형적인 성전'과 '선민적 종교의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부심과 안도감을 얻었다. 이 그릇된 사상과 교만함이 그들로 하여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지나친 애착(숭배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
그런데 예레미야가 저희의 생각과는 다르게
 "예루살렘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으리라"고 전했기 때문에 그들은 발광할 정도로 분노하여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오늘날 '피로 산 교회'의 문제점도 바로 이와 같은 종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 10:7절의 예언서(=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는 믿지 않으면서 스스로 재림주를 영접할 줄로 자부하고 있다는 점, 찬송가 410장 4절을 부를 때에도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구약 성민이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치 않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있으니 "평안하리라"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100% 상충되는 생각이었다. 바로 이 생각은 하나님의 종 스데반 집사를 쳐죽인 자들의 사고방식과 똑같은 것이었다(행 6:10~14). 21세기 적그리스도의 무리(영권+정권+교권=666)도 하나님의 종 144,000명을 이와 같이 해할 것이다.

참 종을 죽이는 사단의 모습을 보라! 
144,000명도 이 길을 통과해야만 한다(계 11:7).

『 10 유다 방백들이 이 일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와서 여호와의 집 새문 어귀에 앉으매 1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방백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죽음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같이 이 성을 쳐서 예언하였느니라 』

유다 임금을 돕는 방백들이 위에 이 사건(선지를 죽이려던 사건)을 재판하기 위하여 "새문 어귀"에 모여 앉았을 때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예레미야를 고소하였다. 죄목은 예레미야가 "이 성(예루살렘)을 쳐서 예언하였다"는 것이다. 목자(牧者)란 양 떼나 소 떼를 먹이며 인도하는 자이다. 여기서 '목(牧)'은 '치다'의 뜻을 갖고 있다. '치다'라는 말에는 곁길로 빗나갈 때 지팡이로 친다는 의미와 좋은 꼴로 먹이며 길러준다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거짓 목자(牧者)는 빗나가도 '평강'을 외치나, 참 목자(牧者)는 빗나가면 "쳐서 예언"한다.  

겔 13: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17 너 인자야 너의 백성 중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부녀들을 대면하여 쳐서 예언하여..."에스겔 선지에게도 가증한 남녀 선지자에 대해서는 "쳐서 예언하라" 하셨다.

『 12 예레미야가 모든 방백과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의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집과 이 성을 쳐서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13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14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소견에 선한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15 너희는 분명히 알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정녕히 무죄한 피로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거민에게로 돌아가게 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이르게 하셨음이니라 』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자신을 고소하는 마당에서 자신이 받은 예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원수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① 비록 자신이 성전을 쳐서 예언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예언임을 분명히 증거했고(12절),
② 대적자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그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보내지 않으시리라는 것도 증거했다(13절).

이는 예레미야가 그의 원수를 사랑하므로 전한 말이다. 언제나 선지자는 자기 생명보다 타인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다. 교회는 하나님이 보낸 종을 대적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인 것을 선지서를 통하여 깨달아야 한다.

  
3.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보호함 : 16~19

『 16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음이 부당하니라 17 때에 그 땅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 말하여 가로되 18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9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 』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로 구성된 종교 지도자들은 예레미야를 죽이려 하였는데, 도리어 다른 사람들 곧 "방백들과 모든 백성"은 그를 변호해 주고 있으니 종교층이 썩어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교회의 부패를 막기 위해 세운 종교 지도자들이 부패하면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악한 자들이 되고 만다. 그들은 자기의 밥그릇 및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거룩한 종교를 악하게 이용하던 자들이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참 종을 박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예레미야를 변호한 것은 종말에도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변호했던 것처럼, 참 종들을 돕는 자들이 있을 것을 뜻한다. 당시 성전에 모인 노인들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각인시키며 예레미야를 죽이지 못하도록 충고하였다. 이 충고는 히스기야 왕이 미가를 죽이지 않았으므로 복 받은 일을 전감(前鑑)으로 말한 것이다.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이것은 미 3:12절에서 인용한 말씀이다. 말씀을 청종치 않아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에 아무리 명성있는 '모리아산'일지라도 일개 농부의 밭같이 갈아엎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선지자의 예언은 진리요 충언이다. 옛 조상들도 "良藥苦口 利於病 忠言逆耳 利於行"(양약고구 이어병 충언역이 이어행) 이라 하였는데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낫게 하고 충성된 말이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 유익하다"는 뜻이니, 인간의 패역을 정확히 통찰한 금언(金言)이라 하겠다. "장로 몇 사람"은 예언의 본질을 깨닫고 있었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 곧 예레미야의 말이 충언(忠言)인 줄 알았으므로 그를 죽인다면 유다 나라에 하늘의 화가 미칠 것을 내다본 것이다. 잠 25: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이와 똑같은 일이 행 5장에도 기록되었는데, 종교적 외식자들이 사도들을 죽여 없애고자 할 때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말하므로 그 목숨을 보존케 한 일이 있다(행 5:38~39).

  
4. 아히감이 저를 보호함 : 20~24

『 20 또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는데 곧 기럇여아림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을 쳐서 예언하매 21 여호야김 왕과 그 모든 용사와 모든 방백이 그 말을 듣고는 왕이 그를 죽이려 하매 우리야가 이를 듣고 두려워 애굽으로 도망하여 간지라 22 여호야김 왕이 사람을 애굽으로 보내되 곧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몇 사람을 함께 애굽으로 보내었더니 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여호야김 왕께로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 시체를 평민의 묘실에 던지게 하였다 하니라 24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여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

예레미야처럼 유다민족을 쳐서 예언한 "우리야"라는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는 동족의 훼방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갔다가 체포되어 유다로 끌려 와서 순교당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대선지자로서의 사명이 남아 있으므로 아직은 그처럼 죽을 수 없다. 하나님은 선지자가 남은 예언을 다 고하기까지 "아히감"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그를 보호케 하신다.

시 34: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서인데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작정하신 내용을 인간에게 글로 계시하신 책이다. 이 언약서가 성취되기 위하여 여러 이방 나라들까지 총동원되는 것이며, 택한 종과 백성이 시대마다 일어나서 각자의 맡은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

땅의 역사는 이렇게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대로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니(사 41:1~4, 43:13) 우리 사명자들은 <박해>를 받아도 <섭리의 보호>가 있을 것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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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7장
제 목 : 바벨론에게 복종할 것


1. 세계 민족들에 대한 경고 : 1~11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나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3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러 예루살렘에 온 사신들의 손에도 그것을 붙여 에돔 왕과 모압 왕과 암몬 자손의 왕과 두로 왕과 시돈 왕에게 보내며 4 그들에게 명하여 그 주에게 이르게 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같이 고하라 』

"여호야김의 즉위한지 오래지 않아서" 받은 말씀인데, 선지자가 자기 목에 "멍에"를 메고 다니도록 하신 것은 유다의 맹방(盟邦)들도 장차 바벨론을 섬기게 될 것을 실천적 예언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이것은 침묵적인 설교요, 견학(見學)시키는 교훈이다. 하나님은 시국(時局)이 급박할 때는 이처럼 인상깊은 무언(無言)의 행동으로써 교회를 각성시키신다. 에스겔에게 행구를 준비하여 낮에 백성의 목전에서 이사하도록 명하신 것도 똑같은 예이다(겔 12:1~5). 선지자의 황급한 이사를 보면 "아무리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깨달으리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 3~4절 : "시드기야"를 찾아온 자들은 유다와 똑같은 위기 상황을 맞이한 인접국들의 사신이었다. 급부상한 강대국 바벨론의 팽창정책 하에서 상부상조하여 유대력을 강화해보자는 목적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유다를 돕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또한 도움을 받아보고자 찾아왔지만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므로 그 나라 왕들에게 동일한 메시지, 곧 "줄과 멍에"를 전달하라 말씀하신 것이다.

『 5 나는 내 큰 능과 나의 든 팔로 땅과 그 위에 있는 사람과 짐승들을 만들고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부리게 하였나니 7 열방이 그와 그 아들과 손자를 섬기리라 그의 땅의 기한이 이르면 여러 나라와 큰 왕이 그로 자기를 섬기게 하리라마는 8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

• 5~6절 :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유다와 그 맹방들에게 바벨론을 섬기며 순종하라는 예언을 주신 것(3~4)은 바벨론을 높이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북방 스스로가 잘나서 강성대국 바벨론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징계의 도구로 쓰시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니 그 나라에 순종하라 하심이다(사 10:5. 렘 25:9, 27:6, 43:10).
"나의 소견에 옳은 대로 땅을 사람에게 주었노라" 사 14:24~27, 행 17:26절 말씀 참조.

• 7절 : 바벨론의 집권시기는 
70년으로 한정하셨다(렘 29:10. 단 9:2). 따라서 70년이 차면 메데 바사가 일어나 바벨론을 꺾고, 유다는 본토로 귀국할 것이다. 이 작정에 순종하는 자가 '좋은 무화과'요, 인본주의적 방법으로 징계를 피해가려던 자들이 '악한 무화과'였던 것이다.

• 8절 : 북방에게 순종하지 않는 나라들이 당하게 될 화(禍)에 대해 예언하셨다. 하나님이 세운 나라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치 않는 행동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바벨론을 섬기지 않는 나라나 백성은 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문권을 바벨론에게 맡기셨다(겔 23:24). 그러나 당대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작정과 반대로 말하면서 억압받는 백성의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

"너희 선지자"란 유다 땅의 거짓 선지자를 말하고 "복술"은 살촉을 던져 그 떨어진 위치에 의해 점을 치는 행위를 말한다. "술사"는 시일(時日)의 길흉을 점치는 자이다. "요술객"이란 주문을 외우는 자들로서, 이들은 모두가 다 이방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나온 자들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속이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에게 이런 류의 속이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한 것이다.

『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11 오직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 10절 :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그 때에 유대인들이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들음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않게 되니 그 죄값으로 필경 바벨론으로 잡혀 가게 된다는 것이다(사 9:16~).

• 11절 : 70년 간은 바벨론의 금머리 시대이니(단 2:38) 왕에게 순종하는 나라가 평안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셨는데 어찌 인간이 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징벌 내린 70년간은 포로살이를 순순히 당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된다. 렘 24장에서 순종하는 자를 "좋은 무화과"로 불순종자들을 "악한 무화과"로 비유하셨다.
 "내가"로 시작하시어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맺으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실 것을 선포하신 것인데, 하나님은 과연 진실하셔서 역사는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2. 시드기야 왕에게 경고함 : 12~18

『 12 내가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여 가로되 왕과 백성은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와 그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 13 어찌하여 왕과 왕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에 대하여 하신 말씀같이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 하나이까 14 왕과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며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리라 하셨나이다 』

이 부분은 예레미야가 앞서 전한 말씀(7~11)을 다시 한 번 왕 시드기야에게 고하는 대목이다.

 "바벨론 왕과 그 백성을 섬기라"(12절) : 자기 민족의 왕더러 이방 나라의 왕에게 순종하라고 말하는 것은 선지자 자신도 원치 않았을 말이다. 말을 듣는 왕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처지가 되는 것임과 동시에 발언자 예레미야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따라올 일이므로 사실 위험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미안하고도 안 된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선지자는 '왕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대언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체면과 위신을 차린다면 하나님의 뜻은 선포될 수 없다.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 19:10).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는 나라들은 화를 받게 된다"(13절) : 그 환난은 "칼과 기근과 염병에 의한 죽음"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14~15) : 거짓 선지자들의 표어(motto)는 늘 항상 '평강'이다(6:14, 8:11). 백성(교회)들은 이미 "평강하리라"는 말에 현혹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하는 "회개하라"는 내용이 미친 자의 말로 들렸던 것이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의 사명은 회개해야 살 백성이 더욱 교만하도록 분위기를 사주하여 '사망'과 '음부'로 인도하는 것이다.

『 16 내가 또 제사장들과 그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집 기구를 이제 바벨론에서 속히 돌려오리라고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이는 그들이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하셨나니 17 너희는 그들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어찌하여 이 성으로 황무지가 되게 하겠느냐 18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

• 16~17절 :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에게"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 18절 : 진정한 선지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로 더불어 참되게 교통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긴 자들이라 임박한 환난을 감지하지 못하므로 성전 및 왕궁의 남은 기구를 보존해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없었을 뿐더러, 환난당할 백성을 위해서도 환난이 없다는 거짓말밖에 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을진대... 남아 있는 기구가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그들은 선지자도 아니라는 뜻이다. 장차 될 일을 말할 수 있는 신은 여호와뿐이시므로(사 44:7. 계 1:19) 미래에 대한 예언은 오직 하나님의 대언자인 예레미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도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할 수 있는 제단은 하나 뿐일 것이다.

  
3. 성전 기구에 대한 예언 : 19~22

『 19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둥들과 놋바다와 받침들과 및 이 성에 남아 있는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나니 20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귀족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옮길 때에 취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라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의 집에와 유다 왕의 집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 기구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22 그것들이 바벨론으로 옮김을 입고 내가 이것을 돌아보는 날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그 후에 내가 그것을 옮겨 이곳에 다시 두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기둥들"에 대하여는 왕상 7:15절 이하를 참조하고 "놋바다"에 대하여는 왕상 7:23절 이하를, "받침들"에 대하여는 왕상7:27절을 참조하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성전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진 것은 바벨론 군대가 세 번째로 침략한 때였다(B.C.587 / 왕하 25:9~10). 세 번째 침략에서 바벨론 군대는 성전의 모든 기구를 남기지 않고 옮겨 갔다. 대제사장들은 피살당하고 시드기야 왕은 눈알이 뽑혀 북방에 끌려 갔다. 모두가 예레미야가 전한 예언대로 되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다시 예언하는 시대의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끌려갈 것인가? 예레미야서의 존재목적은 "구약 백성의 패역"을 판단하라 하심이 아니다. "이 패역이 종말을 사는 우리 안에 있으니" 다시 예언할 때 경고 받고 살라 하는 뛰어나고도 거대한 모략의 세계적 교훈인 것이다. 다시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동생들의 말을 들으면 살고, 듣지 않으면 시드기야와 같이 된다. 인간 종말에 되어질 일을 미리 보여준 신은 참 하나님 여호와뿐이시다(사 46:10. 히 10:1. 고전 10:6,11. 롬 15:4).

지금 교회들은 영혼의 구원만이 전부인 줄로 착각하여 때에 맞는 양식을 배척하므로, 자연스럽게 나태와 비대함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애굽)으로 강하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가나안(천년왕국)만을 바라보고 돌진해야 할 모세(예수) 총회(기독교)가 남방 애굽 마귀의 물질권세와 북방 바벨론 마귀의 궤휼권세(정치,종교)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금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 밤중의 시대이며(마 25:1~13)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거짓 선지자들이 득실거리는 때이다.

교회가 이렇게 되었으므로 주님의 분노는 하늘까지 사무쳤다. 
예레미야서 초반에 기록된 "끓는 가마솥"의 묵시를 기억하는가?(1:13~14). 
가마솥은 펄펄 끓고 있었고, 남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렘1: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임하리라"  

예수님이 분노를 발할 도구로 택하신 것이 바로 북방짐승이다. 계시록 8장9장을 보라! 여기에 나타난 나팔재앙은 모두가 북방 무신론의 세력으로부터 시작되고 마감될 재앙들이 아닌가!

궤휼(뱀의 혀)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고 지독한 것인지는 이제 예레미야 28장에서 나타난다. 궤휼의 세력, 음녀의 씨들은 참 선지 예레미야를 핍박하나 하나님은 궤휼의 씨들을 다 죽여버리시고 예레미야와 같은 자들에게 승리를 준다고 예언하셨다(사 57:3~13). 협상 세력들은 28장의 '하나냐'를 보고서도 자신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 두 증인의 세력은 28장을 통해 참승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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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8장
제 목 : 예레미야 vs 하나냐=(참 선지와 거짓 선지)


1. 하나냐의 거짓말과 선지의 태도 : 1~9

『 1 이 해, 유다 왕 시드기야의 즉위한 지 오래지 않은 해 곧 사년 오월에 기브온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집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에 대하여 거짓말로 예언할 때에 그 자리에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함께 있었다. 이는 하나냐가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 굉장히 담대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곳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집 모든 기구를 두 해가 차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가져오게 하겠고 4 내가 또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지라 』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거짓 예언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말이니라"로 끝나고 있다. 예언의 내용은 달라도 형식은 참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과 똑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도용(盜用)한 것이다. 하나냐의 예언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아니라 백성의 바램(소원)에 아부하는 인간적 소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21세기에 존재하는 '하나냐'의 혀는 어떠한 말들을 내뱉고 있을까?


1948년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창설된 W.C.C.(세계교회협의회) 헌장에는 "W.C.C.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친목단체(협회)이다"라고 선언돼 있다. 외형상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보면 저들의 용어는 성경적 용어와는 판이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이름난 감리교인이자 방송 연사였던 '훠스딕'씨는 『예수님 예배의 위험』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주신 모든 사랑의 원천으로 내 어머니 안(母性)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확신에서부터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내 신앙을 고백할 때 내가 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뜻을 생각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럴 듯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만 말의 속뜻은 전혀 딴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분별해야 한다. '훠스딕'은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성경적 진리를 은근히 왜곡하여 '예수라는 한 인간의 사상과 행동은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는 정도로 축소, 변개시키고 있다. W.C.C. 헌장에는 완전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라는 말씀이 한 군데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전 15:3~4 바울의 기록을 참조하라).

하나냐가 내뱉은 류의 거짓된 감언이설은 W.C.C.라는 거대한 음녀 조직에 침투한 사단의 영을 통해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는데, 국내의 K.N.C.C. 회원교단이나W.C.C.에 속한 세계 각국의 양 떼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거의 무지한 실정이다.  W.C.C. 회장 중 하나였던 "티•씨•차오"라 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시 14:1, 53:1) 하는 중국공산당 소속의 공산주의자였으며, 그 당시 이 회의에서 나온 여러 가지 성명서의 내용을 살펴 보면, 이방종교의 지위는 높이고 '복음'(福音)과 '주 예수'의 지위는 낮추는 내용들로 꽉 차 있었다. 한 중국 대표는 "공자의 유교는 기독교의 신관(神觀)을 제외하고는 기독교의 본질 전부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고, 미국에서 온 '러퍼스 존스'라는 자는 "우리들은 이방종교들이 가진 선(善)이나 미덕
(美德)을 기쁨으로 인정한다"고 발언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지도자', '선생', '이상적 인물'이라고는 칭하였지만, '구원자'라든지 '구세주'라는 말로는 단 한 번도 호칭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W.C.C.는 어느날 불쑥 생겨난 단체가 아니라, 에덴동산 때부터 있던 뱀의 후손들이 종말의 때가 가까우매 총결집한 단체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음녀 대장 가톨릭과 잡동사니 이방종교들까지 연합되면 성경대로 믿는 참 성도를 핍박하는 "피에 취한 음녀의 실체"(계 17:6)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1948년 이전부터 이미 교회연합 운동을 목적으로 대회(大會)회들이 다수 있었다. 이들은 <성경적 진리>에서 멀리 떠나 있으며,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구원된다는 복음적 메시지와도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이러한 자들이 <소유구조 개선 및 계급해방>을 통해 '지상낙원 유토피아'를 건설해 보자 하는 사회주의자들과 교묘히 야합되면서 결성된 거대 괴물이 바로 W.C.C.였던 것이다. 많은 양 떼들이 이를 분별치 못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거짓 복음의 단체는 중생받지 못한 채 외식적 신앙만을 추구하는 모든 쭉정이들을 한 데로 모으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치 하나냐의 거짓 예언이 예레미야를 반대하는 모든 쭉정이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듯이 말이다.

W.C.C.가 거대한 인본주의적 종교기틀을 마련하여 이 땅의 양 떼들을 '후 3년 반'으로 인도하고 있는 이 '비밀'을 우리는 예언서를 통하여 깨달았다. 우리는 임박해 오는 양 떼들의 떼죽음을 가만히 지켜 보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대로 다시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죽는 '정통'이 무엇에 유익한가? 오히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이단'이 되어 주님 다시 오실 때 "잘했다" 칭찬받는 신부가 되는 편이 훨씬 복되다.

잠언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이와 같은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 즉 교회 통합운동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진보신학자들'과 '종교철학자들'이다. 일반 성도나 보통 교역자들은 이 엄청난 사단의 모략에 대해 깜깜무지한 상태이다. 우리가 W.C.C.의 비복음적 사상 곧 거짓 선지의 쑥물을 비판하고 고발할 때마다 W.C.C. 내의 멋모르는 양 떼들이 우리를 욕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은 자기가 속한 교단의 '무서운 음녀적 비밀'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양 떼란 순진한 법이다. 목자가 주는 대로 받아먹고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 지도자들이 빛을 가장한 화려한 언어 혼란전술로 미혹시킬 때 넘어가지 않을 양 떼란 없는 것이다. 성경을 손에 쥐고 "주여 주여"를 외치고, 찬송가 펴 놓고 "예수님 찬양"을 부를 줄 알면 모두가 성도인가? 아니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의 인본주의적 발언(쑥물)과 싸우는 이 일을 진실하게 계속해 나갈 때, K.N.C.C.와 W.C.C.에 속한 많은 알곡들은 마침내 자기들이 몸담고 있던 거대한 '교회협의회'가 얼마나 가증한 단체이며, 얼마만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멀리 이탈해 있는 모임인지를 깨닫고 거기서 나오게 될 것이다.

계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W.C.C.에는 가증한 몇 가지의 계획이 있다. 첫째로 "개신교 교파들이 단일연합교회를 형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게 된 이후에는 "개신교 연합체가 정교회와 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단계까지는 이미 성취된 상태이다. 공산당의 통치를 받는 가짜 교회들까지 이미 버젓이 W.C.C. 정식회원으로 가입되어 우두머리의 자리(위원장)까지 차지한 현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대로이다. 여기까지 성취된 이후로 행해질 최후 단계가 바로 '개신교-그리스정교회-로마가톨릭'까지의 완전 통합인 것이다. 아직까지 로마가톨릭은 W.C.C.회원교단이 아니다. 그러나 실상 가톨릭이 가증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현실과, 매 미사 때마다 행해지는 '본기도' 및 '여타 기도'에 <종교간의 대화와 타협을 위한 기도>가 빠지지 않는 것을 주목해 볼 때, 가톨릭은 기독교 계파뿐만 아니라 이방종교까지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에 주역을 담당할 것이다.

위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마지막 단계의 '초교파적 거대 통합'은 그리 먼 훗날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유명한 개신교 부흥사나 명망있는 목사들 중 "우리는 이제 어리석은 교파싸움을 종식하고 다시금 큰 집으로 돌아가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이 늘고 있다. 또한 기독교 방송 채널을 틀면 몇몇의 목사들이 로마가톨릭 신부들이 착용하는 '로만칼라'를 목에 두르고 나와 설교하는 모습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때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작은 징조들이다. 루터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빼내심'을 다시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 어찌 사단의 작품이 아니리요?

통합세력들은 오늘도 예수님을 이방종교의 여러 지도자들 중 하나 정도로 격하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거짓된 공산주의에서 나온 기독교 세력에 의해 <예수님의 보혈>은 오늘도 죄인인 우리를 속죄하는 생명의 피가 아니라, 정의와 사랑을 부르짖던 한 청년의 억울한 한(恨)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혁명의지'를 부추기는 붉은 색 자극제로 전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마귀의 짓이다. 이 잘못된 보혈관은 오늘날 교회 속에, 사회 속에 침투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혁명운동에 사상적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있다.

노동조합이 명동 성당에 들어와 진을 치고, 대학생이 이 땅의 정의를 부르짖으며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노동자가 제 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자살하는 행태가 방송국 안에 진치고 있는 좌익세력에 의해 진리를 위한 거룩한 희생처럼 미화되는 일도 많다. 동료가 죽겠다 해도 말려야 할 판에 동료의 분신을 부추기고 그 헛된 죽음을 말리지 않고 방치하는 행위는 아무리 미화해 본들 사단의 행위일 뿐이다(MBC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큐멘타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2년 4월 28일자 '91년 죽음의 배후'라는 동영상을 참조해보라. MBC는 좌파적 시각을 옹호하는 태도로 보도하고 있지만, 독자 여러분은 죽음을 선동하는 마귀의 정체를 꿰뚫어 보길 원한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이며(요 8:44)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적이다. 붉은 사상에 취한 사단의 자식들은 20대 초반의 철모르는 대학생들을 자기가 섬기는 마귀 앞에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죽는 자나 죽음을 사주하는 자나 하나같이 그 죽음이 지상낙원을 앞당기는 순교자적 죽음이라 신앙하면서 그러한 행동을 저지른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신앙은 사람을 지옥불로 인도할 뿐이다. 신나에 몸이 타죽은 그 청년은 그 영혼까지 지옥불에서 고통받게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마귀의 속임수는 이토록 잔악하고 무서운 것이다. 

1960년대에 W.C.C.의 신학적 대변자들은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신학(死神神學)을 선포한 적이 있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보아도 W.C.C. 안에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성경적 인도도 없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얻는 중생함도 없고, 하늘나라도 없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놓고는 아니지만) 교묘히 부인하면서,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미화시켜 선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열망케 함으로써 일종의 신기루 같은 거짓 종교를 유포시키고 있는 것이다. '후 3년 반'을 통치할 정치지도자는 반드시 이 거대한 음녀단체와 규합하여 세상에 등장하여서는, 그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결국 이 돈많고 호사스럽고 탐스런 음녀의 살을 다 뜯어 먹고 그 뼈까지 불사를 것이다(계 17:16). 미친 짓을 하는 가련한 음녀는 자기의 운명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

성경을 믿고 중생받은 크리스챤이 되신 한국의  W.C.C. 산하의 K.N.C.C.교단 성도들이여! 그 무리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 왜 하나님께 순종하여 친히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그 같은 거짓 종교에서 나오지를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인가? 그 안에서 무슨 탑을 쌓고 있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고후 6:17~18 )

오늘 예레미야 본문 28장 1~4절을 읽으면서 이토록 길게 W.C.C.를 언급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하나냐와 그 무리는 컸고 예레미야는 작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W.C.C.와 K.N.C.C.는 크고 넉넉하여 압박받지 않고 있지만, 우리 스룹바벨선교회는 이단 아닌 이단이 되어 참말을 하고도 욕을 먹고 있다. 예레미야는 70년을 선포했는데, 하나냐는 바벨론이 불원장래, 즉 "2년 내에 멸망할 것"이라 하며 "유대인은 귀국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3~4). 겉으로 볼 때는 물론 달콤한 말이요, 애국 선지자다운 말이다. 그러나 지금 유다인은 죄값으로 매맞는 중에 있지 아니한가? 죄인의 귀에 달콤하다는 것은 뱀의 소리임이 아니고 무엇이랴! 물론 괴로운 식민지통치하에 있는 백성인지라 예레미야의 말이 달갑지 않게 들릴 수 밖에 없음을 안다.

하지만 에덴동산을 추억하여 보라!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본문의 하나냐의 말이나 오늘날 W.C.C.의 말이나 에덴동산의 간교한 저 뱀의 말이나 다 비슷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 않는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기록된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 교회가 거짓 평화공존에 하나같이 속고 있는 현실은 알록달록하여 어찌 보면 푸른 생명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시들어버린 황색 같기도 한 청황색말이 뛰노는 시대임을 뜻한다. 그러나 청황색말을 타고 있는 자의 이름이 무엇이던가? '사망'이 아닌가! 또한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무엇이던가? '음부'가 아닌가! (계 6:8). 한국의 알곡과 세계의 알곡은 본 제단에서 증거하는 생명의 예언서를 깨닫고 하루빨리 재림 주님을 영접할 신부단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펼쳐지는 참 선지와 거짓선지의 대결을 잘 보시라! 이 시대에 재연될 영적 대전쟁이니까 말이다!


『 5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 선 제사장들의 앞과 모든 백성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할 새 6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오시기를 원하노라 』

예레미야도 하나냐처럼 자기 백성이 치러야 할 죄값이 적은 것이 좋지, 많은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민족을 아끼는 참 선지자의 순수한 마음이다.

『 
7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

여기서 예레미야는 자기와 및 옛적 선지자들이 전한 예언이 그 원리(심판의 메시지)에 있어서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신 28:15~29:29).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의 회개를 목적으로 설교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의 귀에 듣기 좋은 말들만 한다. 반면에 참 선지자는 백성들의 진실한 회개를 위하여 쓴 소리라도 장차 임할 환난, 심판에 대해 서슴지 않고 말하는 법이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다!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

참된 선지자의 자격 성립은 그가 말한 예언의 성취에 달려 있다. 

신 18:21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2.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다툼 : 10~14

『 10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고 11 모든 백성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대조적인 모습이 나타나 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발악을 하며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취하여 꺾었다. 이런 행위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행동이다. "멍에"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70년 선포의 사명'이다. 자기 민족을 향해 바벨론 왕 밑에서 70년을 살라고 말해야 하는 가슴 아픈 사명인 것이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처음부터 가라지(마 13:25~28)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어서 참 선지 예레미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겸손하고 지혜로운 자는 사실 유다의 죄를 속하기에는 70년도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는 "두 해가 차기 전에"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어 자기 민족을 고토로 돌려보낼 수 있다 하니 이런 예언을 사주하는 자가 마귀가 아니고 누구이랴!

하나님은 이미 70년을 선포하셨고(25:11), 한 번 더 선포하실 것이다(29:10). 또한 바로 전 장에서는 27:8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9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10 그들은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하여서 너희로 너희 땅에서 멀리 떠나게 하며 또 나로 너희를 몰아내게 하며 너희를 멸하게 하느니라" 말씀하신 바 있다. 하나냐 같은 자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 길을 가니라" 참 선지자는 마귀의 말같지 않은 말에 그저 침묵한 채 자리를 피하여 묵묵히 "자기 길"을 갔던 것이다. 말씀에 굳게 선 멋진 형님의 이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다.  

 12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어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신다 하라 』

하나님으로부터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다시 말씀이 임했다. "네가 나무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를 만들었느니라" 예레미야는 이 말씀을 하나냐에게 전하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의 경영'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사 43:13). 아무리 대적의 핍박과 훼방이 있어도, 기록된 말씀은 더욱 견고히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가 중동전쟁과 극동환난을 외치면 많은 이들이 듣기 싫어하며 욕을 한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 '탈냉전', '전쟁종식', '평화공존'을 진리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쟁과 환난을 말하는 우리를 못살게 굴며 우리를 쥐어박으면 박을 수록 우리의 사명은 쇠멍에처럼 더욱 더 굳세어진다.

  
3. 예레미야의 예언과 하나냐의 죽음 : 15~17

『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으로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을 하였음이라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칠월에 죽었더라 』

예레미야가 하나냐에게 그의 죽음을 예언하였다.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이 예언대로 하나냐는 그 해 7월에 죽었다. 거짓말하는 자는 죽는 법이다! 7월은 초막절기가 있는 달로서, 이 달에 유다 땅에서 펼쳐지는 이면적 초막절 역사로 인해 거짓말하던 정치방백, 종교방백, 그들의 쑥물을 먹고 취했던 자들이 많이 죽게 된다.

종말을 사는 우리는 구약 선지자들이 받은 모든 예언을 종말을 향한 투시기법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냐와 예레미야의 싸움이 담고 있는 참 뜻은 이러하다. 인간 종말에 신랑 예수를 저버리고 짐승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사상을 용납해주고 세상 금잔에 치우쳐 가련한 많은 양떼를 미혹시키는 하나냐 같은 
음녀 세력(계 17:3~5)은 후 3년 반에 들어가 짐승에게 미움을 받아 참담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계 17:16).

그러나 계 13:11~15 "새끼양 같이 두 뿔이 나고 용처럼 말하는 짐승" "거짓 선지자"(계 19:20)로서 음녀와는 다르다. 많은 이들이 '음녀'와 '거짓 선지자'를 동일시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새끼양 같은 짐승'은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는 이적을 행하며 '후 3년 반' 동안 세상 사람들로 짐승과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도록 미혹시킬 자이다(단수로 1명이다). 그러나 '음녀'는 금잔을 손에 들고 모든 가증한 것들의 어미가 되어 있는 거대한 종교 통합세력이다. 계 13장의 '거짓 선지자'는 '짐승=적그리스도' 1인의 동역자로서 그를 도와 함께 '후 3년 반' 동안 통치하다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백마를 타고 내려오시는 예수님께 심판을 받되 자기가 보필하던 '짐승'과 함께 잡혀 산 채로 불못에 들어가는 최후를 맞이할 자이다(계 19:19~20). 그러나 '음녀'가 심판당하는 시기는 '거짓 선지자'의 심판시기보다 훨씬 앞선다. 음녀는 짐승에게 미움을 받아 '후 3년 반'에 먼저 죽는다. 고로 '음녀'와 '거짓 선지자'는 최후를 맞이하는 시기도 다르고, 자신을 심판하는 대상도 다른 별개의 두 존재이다.

이 마지막 때에 나타나게 되는 붉은 용(600) + 짐승(60) + 거짓선지(6)라는 이 적마의 3세력(계 16:13)은 최종적이면서 가장 사악한 귀신단체로서 666의 진수이다. 구약 때부터 보여진 모든 적기독 정권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최후에 나타날 이들에 대한 예표 역할을 했을 뿐이다.

고로 이 땅의 참된 성도들은 붉은 옷과 각종 사치품으로 꾸미고 금잔을 든 채 짐승을 타고 취해 있는 가증한 음녀 세력과는 자리를 같이 해서도 아니 될 것이요(기독교를 사칭한 통합종교체제), 짐승을 위해 이적을 행하며 짐승 앞에 경배케 하는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도 아니 될 것이다(종교지도자 1인). 오직 예레미야 형님 편에 서서 예언서만을 묵묵히 대언해야 한다. 참 성도는 하나냐의 죽음을 지켜본 예레미야처럼 종말의 거짓 선지가 패망하는 것을 반드시 두 눈으로 목도케 될 것이다(미 7:7~10). 

<요한 10:1~16, 27.   계시록 14:4, 17:14>

우리는 백성의 귀에 듣기 좋은 달콤한 말만 하는 하나냐 같은 인본주의적 발상을 배척하고 W.C.C.나 로마가톨릭이 쌓는 영적 바벨탑 사업에서 도피하여, 오직 "여자(음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신앙 정절을 지키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 되자!

이 길을 가려 할 때 구약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방해를 하겠으니 우리는 종말의 '스마야'를 이기고 나갈 힘을 얻기 위해 예레미야 29장을 정독해야 한다! 참 종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환난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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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9장
제 목 : 환난과 하나님의 섭리


1. 예레미야가 포로민에게 편지를 보냄 : 1~7

『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2 때는 여고니야 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위탁하였더라 일렀으되 』

• 1절 :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이란 바벨론의 생존자들을 의미한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일찍이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자들 편에 있었을 것이다(26:11). 그래도 하나님은 끝까지 사랑을 베풀고 계신 것이다.

• 2~3절 : 사로잡혀 간 자가 1만 명이라고 하는데(왕하 24:14), 거기 용사 7천과 공인(工人) 1천명이 부가되었을 것이다(왕하24:16). 특별히 부자와 지식층, 권력층들이 포로의 주된 대상이 된 것을 주목하라. 오늘날도 환난이 일어나면 부선망(副先亡), 가진 자와 세도 부리던 자가 먼저 망할 것이다.


『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衰殘)하지 않게 하라 』

거짓 선지의 말을 더 이상 듣지 말고 70년을 믿으란 뜻이다. "아내를 취하라"는 것은 그곳에서 자식을 낳으며 오래 살아야 된다는 뜻으로, 돌아올 생각 말고 거기서 죽으라는 것이다. 회복은 2세대에 가서 있을 것이 이미 작정되었기 때문이다.


『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

바벨론 왕은 하나님의 종으로서(렘 25:9) 이 일을 행한 것뿐이니 유다는 70년이 되기 전에는 못 돌아온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바벨론 왕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정하신 매를 순히 맞고 살면 평안함 중에 기한이 차 귀국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미 6:9). 죄를 지었다면 죄값을 다 치르기 전에는 옛 지위를 회복할 수 없는 것이 공의이다. 택한 백성이라도 죄를 지을 땐 이렇게 매로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없다" 하는 세상의 악인에 대해서는 어떠하시겠는가?

잠 11:31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우리는 생전에 매를 맞는 것이 복임을 깨닫고 회개 못한 죄가 있다면 오늘을 넘기지 말고 자복하자! 죄값은 사망이거늘(롬 6:23) 사망당하지 아니하고 회복을 약속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인가?

  
2. 70년 후에 회복될 것을 약속하심 : 8~14

『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 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당시 <70>을 받아들이기 힘든 민심을 틈타,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복술이나 꿈을 통하여 백성을 유혹하였던 것이다. 2년 내에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냐의 예언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 거짓 예언 중 하나이다(28:3). 70년이 되어야 회복된다는 하나님의 예언을 사단은 잡혀가서까지 대적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범죄로 잡혀 간 그 시대에 유다 땅의 참 선지자란 '예레미야 1명' 뿐이었다(잡혀간 바벨론 땅에는 에스겔과 다니엘이 있었다).

다시 예언하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레미야 예언서를 전하는 종들은 참이고 전하지 못하는 자들은 가짜인 것이다. 가짜들은 한결같이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단 9:26)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협상주의 노선에 서서 "전쟁은 없다" 하며, 혹은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평화공존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들이 "받았다", "꿈으로 일러주셨다" 하며 자기들의 말을 듣는 길만이 살 길이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미혹받고 있는 실정이다.

단 9:26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기록된 성경만이 진리이다. 그밖의 말을 하는 자들은 이 예레미야서의 말씀의 불(렘 5:14)로 죽여야 한다.
신 13: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5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하셨다.

현재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군비확장 현상과 곪아만 가는 '중동문제'와 '극동문제'관련시사는 지구의 역사가 거짓 선지자들의 말대로가 아닌, 성경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요엘 3:9~21절을 참조하라).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극동지역의 군비 팽창은 성경대로 이루어져 가는 세계시사를 잘 입증해 준다(1장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군사력 현황> 표 참조).

 
『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한 번 "~하리라" 하셨다면 그대로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진실하신 속성이다. 구약 때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하시고서는 '70년 만에' 그대로 이루셨다면, 여러 소리가 필요 없다. 슥 1:12절의 '70년'도 그대로 이루시는 것이다. 이 거대한 바벨세계에 갇혀 있는 이스라엘 양 떼를 살려내야 하는 우리로서는 이 말씀보다 더 큰 소망이 있을 수 없다.

슥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이 예언은 구약 백성이 바벨론으로부터 '70년 만에' 돌아온 뒤 16년 후에 주신 묵시이므로, 종말 유다의 '70년 회복'으로 보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예언이다.

슥 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그래서 우리 제단이 나타나 이 말씀은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는 것이다. 축자영감 그대로이다.

하나님은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이미 1975년도에 이 나라에 '돌아오셔서' 죄값으로 (일제와 공산당에게) 매맞은 영적 유다 대한민국에 당신의 성전을 짓게 하시고 먹줄(다림줄)을 쳐 주신 것이다. 그래서 종말의 스룹바벨 총독은 학 2:7절에 '기록된 제단'을 건축할 때 그 지대를 2:18절 '기록된 날짜'대로 놓게 되는 것이며(슥 4:9), 그의 손에는 '기록된 머릿돌'(슥 4:7)과 '기록된 다림줄'(슥 4:10)과'기록된 하나님의 인'(학 2:23)이 위탁되어 있는 것이다. 위에서부터 시키시는 이 역사를 막을 자가 누구리요? '꿈 꾸는 자'와 '기록된 길을 걷는 자'가 맞붙으면 승리는 '기록되었으되'를 외치는 자에게로 돌아가는 법이다. 아멘!


『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

백성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있다. 종말을 사는 우리도 성경에 전쟁이 있다 하여 떨지 말고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라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욥 5:17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우리가 아무리 못났지만 우리를 여러 모로 아껴주시는 하나님이시니 감사만 하자.


『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

• 12~14절은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시 65:2절에도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는 많은 기도원에 모여 세상 기복적 소원을 아뢰라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응답은 성경에 약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 그 하나뿐이다. 기록되지 않은 것을 달라는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사 16:12).

  
3. 불순종자에게 임할 멸망 : 15~23

『 15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하여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하므로 16 여호와께서 다윗의 위에 앉은 왕과 이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 18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따르게 하며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쫓아 보낸 열방 중에서 저줏거리와 놀램과 치소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니 19 이는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그들에게 보내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듣지 아니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사로 잡혀간 유대인들 중에 섞여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 당시 바벨론 포로들 중에서 떠도는 말인즉 "우리에게도 선지자들이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실상은 말짝 거짓 선지자들 뿐이었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포로들이 머지 않아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구약이건 지금이건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가 항상 하나님의 집 안에 진을 치고 존재한다. 이들을 판별해낼 수 있는 절대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70년'이다. 구약 선민이 '70년'을 믿지 않아 '악한 무화과'가 되었다면, 종말의 성도들도 '70년 회복'을 신뢰하느냐의 여부에 의해 '남은 자'가 될지 '떨어진 자'가 될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개, 스가랴서는 중요하다(슥 8:9).

예레미야가 외치는 70년을 신뢰치 못하는 자는 왕이나 백성을 무론하고 다 칼과 기근과 염병에 붙이겠다 하셨고(16~17), 쫓아 보낸 열방 중에서 저줏거리와 놀램과 치소와 모욕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으니(18), 종말에도 마지막 북방환난을 앞두고 알려주신 '70년 회복'의 비밀(슥 1:12)을 신뢰치 않고 협상과 평화공존으로 치우치는 모든 자들은 '후 3년 반'으로 쫓겨들어가 저주와 모욕을 당케 될 것이 분명하다.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악한 무화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사 8:20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21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煩燥)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22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 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 
20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나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

포로된 유대인들에게 그들을 사로잡혀 가도록 하신 이가 하나님 자신이심을 기억시키고 계신다. "내가... 보낸 너희 모든 포로"란 말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만이 자신과 민족을 살리는 첩경이 된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우리 대장 예수님께서 먼저 본을 보이시고 영광의 승리를 얻으셨으니, 기록된 대로 걸어가는 자들에게는 축복과 상급이 임할 것이요, 기록된 말씀을 이탈한 불순종자들에게는 재앙과 멸망이 임할 것이다.

 
『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2 너희 바벨론에 있는 유다 모든 포로가 그들로 저줏거리를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

거짓 선지자는 죽는 법임을 알려주셨다. 아합과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였다는 점을 말하며, 그 두 거짓 선지자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겠다고 하신 것은 종말에도 다시 예언되는 예레미야서를 따라오지 않고 교권에 빌붙어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러시아 곧 앗수르 왕(사 8:7)의 손에 붙여 죽여 버리시겠다는 뜻이다.


『 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니라 나는 아는 자요 증거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였더라 』

하나님은 천하만사 인간사(天下萬事 人間事)를 다 알고 계신다(시 139:1~4). 우리의 거짓됨과 죄악은 하나님 앞에 하나라도 속일 수 없다.

  
4. 스마야의 행위와 형벌 선고 : 24~32

『 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26 여호와께서 너로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집 유사로 세우심은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를 착고에 채우며 칼을 메우게 하심이어늘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대저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오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악행을 지적하였다. 그의 악행은 그가 바벨론 포로들 중에서 거짓 선지자 노릇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한 사실이다(25절).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① 제사장 스바냐를 직무 태만죄로 꾸짖었다. "어찌하여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라는 말로써 말이다(27절).
② 스마야는 예레미야더러 "미친자, 자칭 선지자"라 하였다. 참 선지자는 항상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예수님도 바울도 이 길을 갔다.

요 10:20 "저(예수)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했다. 또한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행 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세상이 사단에게 속한 고로 참된 종들은 이러한 대우를 통과해야 한다.

『 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 들릴 때에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

'70년'을 부인하고 '2년 안에 회복된다'느니,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는다'느니, '예레미야는 자칭 선지자이며 미친 자요'라고 하는 거짓 종교지도자들의 모든 말들을 하나님은 "거짓"이라고 규정하셨다. 그러나 백성은 그 체질이 약하므로 진실하지만 딱딱한 예레미야의 말보다는 거짓이지만 부드러운 가짜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갔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평화공존', '남북통일', '화해, 협력, 일치의 에큐메니칼 운동' 등은 다 거짓이다. 기독교 성도들로 이러한 말을 믿게 한 자들은 다음과 같이 심판 받는다.

 
『 3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 중에 거할 그의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받을 벌에 대해 진술하셨다. 이 우상 세계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잠시 우세한 것처럼 보이나, 가련하고 빈핍하며 혀가 마를 딱한 사정에 처한 하나님의 참 종들이 6,000년간 거짓 종들과 피흘리기까지 싸우다 순교한 것이 축복의 승리였음은 (예수님이 시온산 정부의 왕국부서를 정비하기 위하여 '전 3년 반' 끝에 공중에 오시어) 1차부활자들을 일으키실 때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제 순교자의 동무 종인 
변화성가 될 우리들도 적기독 정권, 교권에 대항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기록되었으되"로 싸울 때(마 4:4,7,10),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기필코 말씀먹고 그대로 증거한 당신의 종들을 승리자 반열에 세우시어 영원 무궁토록 당신과 함께 왕 노릇할 영광을 주실 것이다. 동시에 스마야 같은 종말의 거짓 선지자들은 영원히 타는 불못으로 던지실 것이다. 아멘!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남종, 여종이신 말세 사명자 성도 님들께 알려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레미야서를 1장부터 29장까지 읽어오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인도하심은 구약의 임시심판과 임시회복을 통하여 종말의 완전심판과 완전회복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니 이제부터 시작되는 30장부터 33장까지의 예언을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부분은 예레미야서에서 가장 중요한 '허리' 부분으로서 말일의 역사를 보여주시는 핵심적인 예언입니다. 이를 통해 종말의 역사를 확실히 깨닫게 되면 34장부터 52장까지 보여진 유다와 그 주변국에 대한 예언은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해 모두 종말적 예언으로 읽히게 될 것입니다. 그림자(구약)를 보고 실물(종말)을 깨닫는 것!(사 46:10. 롬 15:4. 고전 10:6,11).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선지자의 눈'을 선물로 받아 푸른 감람나무 같은 종들이 되어 세계를 향해 빛을 발하는 촛대교회의 기둥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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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30장
제 목 : 말일의 구속의 예언 


1. 임시 회복과 완전 회복 : 1~11

『 1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임하여"(1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3절), "여호와의 말이니라"(3절) - 이렇게 같은 말씀이 4번씩 반복된 것은 당신의 입술에서 굉장히 중대한 말씀이 나온다는 뜻이다. 선지자는 어떠한 핍박이 와도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하신 명령대로 기록하여 전해야 한다. 그들이 피흘려 기록한 이 책이 바로 우리가 무장해야 할 '여호와의 책'이다(사 34:16).

『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포로를 돌이킨다는 약속"을 주심은 당시의 백성을 위로하시기 위함이다. 언제든 소망이 없는 백성이란 죽은 백성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언제나, 어떤 처소에서나 소망을 갖게 된다.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하던 당시는 B.C.595년경이다. 이미 2차례나 바벨론 칼을 맞고 고통을 당하는 때이며, 남은 백성도 유다왕조의 완전멸망이라는 비극을 남겨둔 시점이었다(B.C.596. 느부갓네살 19년 5월7일 - 왕하 25:8~). 그런데 유대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의 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고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공포심을 일으키려고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신다.


『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

남자들까지도 여인이 산고(産苦)를 당할 때의 아픔 같은 고통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 떨리라는 의미이다. 애 3:37~38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하랴 화, 복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입으로 나오지 아니하느냐"

『 
7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

"야곱의 환난의 때" 2중 예언으로서 구약 야곱이 바베론을 통해 당한 환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종말의 영적 야곱에게 오는 환난에 대한 예언이다. 이처럼 예수 피로 산 기독교회에 환난이 오는 것은 찢어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징계하여 고쳐주시기 위함이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 날은 유다 민족이 벌 받을 날이다. 패역이 크므로 수술도 큰 것이다. "환난의 때" "그 날"이나 "여호와의 날"은 신원의 날로서 모두가 같은 뜻이다. 초막절은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시는 날(욜 2:20)인데, 유다 민족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적인 역사로 발전한다. 이 때 보호받지 못하는 자의 육체는 북방 칼에 붙여져 처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구약 때 북방 칼에 상한 지 70년 만에 새 싹이 돋아나서 귀국했던 것처럼, 종말에도 영적 유다의 70년 회복(슥 1:12)을 신뢰하는 모든 자가 '3대 화'를 피하여 새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종말적인 '야곱의 환난의 때'는 
① 10일 환난 
② 5개월 환난 
③ 42달 대환난 
④ 75일 대접재앙이다. 환난의 날은 모두 1,495일이다.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라" 구약 때도 70년의 기간이 차자 언약하신 대로 어김없는 회복을 주셨으니, 종말에도 슥 1:12~16절의 '70년'을 신뢰하는 크리스챤들, 즉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돌아오시어 '먹줄을 쳐 주신다'는 언약을 믿는 성도들은 '3대 화' 곧 1,495일간의 "야곱의 환난의 때"로부터 구하여 냄을 얻으리라는 예언이다. 기독교는 해산의 종교이다. 갈 4:19, 사 7:14, 8:1~4, 66:7~10, 렘 31:22, 계 12:1~2절을 보면 모두가 사단과 싸워 이겨 구원을 얻는 역사이다. 2,000년 전의 해산수고는 영혼구원의 열매를 이루어내었으나, 종말의 해산수고는 영육구원과 지상안식의 열매를 이루어낼 것이다. 계시에 감추어진 비밀은 시대가 흘러가면서 점차 명료히 드러나게 되어 있고, 마지막 종들은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다 찾아내어 빠짐없이 증거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큰 구원'은 완전한 결실을 보게 된다(시편 18:50). 이 일은 생존 성도 중 영광스런 1차부활에 참예할 자들이 하게 된다.

창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야곱의 아들)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종말의 세계 이스라엘)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요셉=예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만왕의 왕 예수를 예표)를 삼으셨나이다"

창세기는 알파요, 계시록은 오메가이니 지나간 성경의 모든 역사(말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사 46:10절의 원리 안에서 녹아져 내린다. 우리 제단도 우리가 꾸는 꿈(모든 묵시의 말씀) 때문에 모든 형제 교회들에게 이단 소리를 들으며 미움을 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약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 오시어 심판하시는 그날에 "할렐루야"로 영광을 돌릴 자들은 과연 본문대로 꿈을 꾸고 있는 '우리'가 아니겠는가? 할렐루야!

그러니 "야곱의 환난의 때"는 참으로 귀하다. 환난이 오더라도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라는 말씀이 바로 연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육적 유다에게 주신 이 예언이 영적 이스라엘 안에서도 참되게 열매맺는 그날에, 우리가 죄로 얼룩진 아무리 '못난 야곱'이라도 하나님은 (때리시고는) 결국 우리 편이 되시어 마귀를 책망하시고 '친자식'인 우리의 손을 들어 승리케 해주신다는 너무도 고마운 말씀이다! 예레미야를 때린 거짓 종들과 이스라엘을 씹어 삼킨 북방 세력은 반드시 보응을 받겠거니와, 예레미야와 그를 도와 준 종들(바룩, 에벳멜렉)은 그 생명을 보존케 되며, 예언에 순종한 좋은 무화과들은 반드시 회복에 참여한다는 것이다(렘 37:7~9, 40:1~, 39:11~14, 16~18, 45:5).

이 원리는 예레미야서를 다시 예언하는 오늘날, 동일하게 적용된다. 
첫째'에서 예언서를 전하지 못한 지도자급 종들이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고(계 9:4~6), 
둘째'에서는 음녀화된 협상교회들이 멸망을 당하며(계 17:16), 
셋째'에서는 이 땅의 교회를 훼파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북방 짐승과 그 일당들이 완전 소멸을 당하게 된다(계 16장).

그러나 예레미야서를 비롯한 모든 예언의 말씀을 계시록과 더불어 증거한 단체는 하늘로 들림을 받고(계 11:1~12, 12:5), 이들의 증거를 듣고 회개한 자들이 예비처에서 보호를 받으면(계 12:6,14), 백마 탄 자와 그의 군대가 지상에 강림하여(19:11~21) 선(善)만 남기고 악(惡)을 제하여 버리게 된다(사 7:15). 이제 버터와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새 시대(고토)에서 순교자와 144,000명은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을 하게 되는데(20:4~6), 순교자의 수는 21C 현재 이미 다 차 있고, 지금 살아 있는 생존성도 가운데 144,000명의 변화성도 숫자가 차면 모든 축복은 다 성취되는 것이다. 변화성도가 5째 인에서 호소하고 있는 순교자들(계 6:9~11)의 원한을 풀어주는 심판을 행할 때(계 19:19~), 순교자인 부활성도는 계 19:1~5절과 같이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하나님을 찬송케 된다.

환난 재앙 온다 해도 두렴 없도다! 하나님의 보호 받고 승리하도다! 붉은 마귀 몰아내는 승리역사라! 할렐루야 기쁘게도 승리개가 부르면서 환난 면코 나가도다(새일성가 41장2절).

죄만 지은 주제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황송하옵게도) 마귀와 싸우는 이 큰 전쟁에서 용사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으니 끝에 가서 "할렐루야"로 기쁜 승리개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죽기까지 해산수고를 해야 한다. 다음은 이 힘든 싸움에서 미약한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신령한 새 노래이다(41장2절,후렴 / 6장후렴 / 9장3절 / 12장2절 / 14장4~5절 / 19장4절 / 20장2절 / 31장1절 / 33장1절 / 37장2절 / 44장4절 / 48장후렴 / 54장1절 / 55장3절 / 60장3절70장3절 / 71장2절 / 74장후렴).

그러나 이러한 승리개가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 우리는 미약한 죄인이므로 공도(公道)의 징책을 다 당한 후에야 영광의 반열에 참예할 수 있다.

『 
 8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9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 1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 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

"그 날에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8절) 북방 포로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스룹바벨 단체가 '순의 단체'를 이루어 귀국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9절) 다윗의 왕위인 모리아산(시온산)의 정권은 예수님의 시온산 정부를 상징하는 바, 구약 종말에 북방환난이 곧 인간 종말에 있을 북방 러시아의 환난이란 것을 깨우쳐주심과 동시에 북방환난이 지나면 새 시대 천년왕국 도래할 것을 뜻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형으로 보내신 푸른 감람나무(시 52:8) 같은 다윗의 왕위를 계승(사 9:6~7)하시어 주 재림 시 1000년 왕국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고 시작하는 성경의 모든 말씀은 천년왕국을 차지할 영적 이스라엘, 영적 야곱에게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종말론적 말씀이지 결코 구약 당시의 백성만을 위한 예언이 아닌 것이다. 2,600년 전에 주신 말씀이 주 재림기의 성도들에게 제대로 된 양식이 된다는 이 비밀은 말세 사명자들만이 깨닫게 되는 진리로서, 주님이 당신이 다시 오실 때 우리더러 "다시 예언하라"(계 10:11) 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육적 이스라엘'의 혈통은 약속된 기업(천년왕국)을 이어받을 백성의 자격을 논할 때 아무런 이점도 없다. 어떤 사람이든지, 오직 '예수의 피로 거듭난 백성이면 누구나 야곱이 되고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라야 예언서는 비로소 그에게 양식이 된다(시 114:1~2. 슥 1:17, 2:12절을 참조하라). 영적 이스라엘, 영적 야곱이 예언서와 계시록의 주인공임이 안 믿어지시는 분들은 다음 말씀을 살펴보라(사 44:1~5. 출 19:5~6. 시 33:12. 사 43:7). 혈통과 계보를 따지며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만이 '참 이스라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 말씀을 제시한다(요 8:39,47. 롬 2:28, 9:8. 갈 3:22~29. 엡 3:6).

벧전 2:9~10절은 압권(卷)이다. 모든 이론(異論)들을 단칼에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따라서 우리는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며 시작되는 이 모든 예언의 말씀이 전 세계의 영적 야곱, 피로 산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인 줄을 깨닫고 목숨바쳐 다시 예언해야 한다.

이것이 야곱이요, 이스라엘이다. 
정녕 하나님은 세계의 하나님이시로다.

  
2. 유다의 중상과 하나님의 치료 : 12~17

『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도다 13 네 송사를 변호할 자가 없고 네 상처를 싸맬 약이 없도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허물이 크고 네 죄가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대적의 상하게 하는 그것으로 너를 상하게 하며 잔학한 자의 징계하는 그것으로 너를 징계함이어늘 15 어찌하여 네 상처를 인하여 부르짖느뇨 네 고통이 낫지 못하리라 네 죄악의 큼과 죄의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 』

유다 민족이 그 죄 값으로 당할 벌이 매우 크다는 것을 예언하셨다.

①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12절).
② 변호할 자가 없고(13절).
③ 상처를 싸맬 약이 없고(13절).
④ 사랑하던 자가 잊고 찾지 아니하며(14절).
⑤ 고통이 낫지 못하리라고 하셨다(15절).

이런 비극을 당케 된 가장 큰 원인을 꼽으라 하면 당연히 '패역'이다. 이 '패역'은 인간이 노력해서 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은 야곱을 환난(고난의 풀무)에 집어 넣어 단련하시며 이 원죄의 악질을 깨닫게 하시며 고쳐가고 계신 것이다.
"네 죄의 수다함을 인하여" 죄악 때문에 유다를 징벌하셨음을 알려주는 말씀이 두 번 나온다(14~15). 사 1:4~8절에도 죄로 인하여 매맞고 상처난 유다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환난이 오기 전에 회개하면 살려주신다는 것이 예언서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이지만, 패역한 백성은 하나님이 감동시키시기 전엔 스스로 회개조차 할 수 없다. 이런 무지한 백성을 살리시려고 여려 명의 선지자를 보내시어 부지런히 외치게 하셨건만, 예루살렘 거리에는 공의(公義)와 진리(眞理)를 찾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렘 5:1). 결국 이를 인하여 하나님은 야곱을 '환난의 때'에 던져 넣으시지만, 그 목적은 '치료'에 있기 때문에 야곱에게 환난의 풀무 역할을 한 악의 세력은 치료가 끝남과 동시에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 
16 그러나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무릇 너를 치는 자는 다 포로가 되며 너를 탈취하는 자는 탈취를 당하며 무릇 너를 약탈하는 자는 내가 그로 약탈을 당하게 하리라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필경 북방에 붙이셨다가 70년이 필하면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바벨론 사람이 유다 민족을 가리켜 하는 말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하며 천대할 때, 하나님께서는 간섭하시어 그들을 치료하여 주겠다고 하신다. 본 예언은 택민들에게는 (그 죄값으로) 반드시 원수의 조롱이 있을 것이지만은, 때가 되면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되어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는 데서 결실을 본다(계 11:15).

"쫓겨난 자"에 대해서는 홈페이지에 수록된 다음 내용을 참고하라.
☞ (
http://headstone.pe.kr/06_subjective/J_comeAagain/diven_out.htm).

렘 31:15~ 라헬이 자식이 없어서 통곡할 때에 최후의 소망을 주셨는데, 이 소망인즉 31:21~22절에 기록된 '새 일'의 역사이다. 이 역사는 외식에 치우치고 화려하기만 한 교권으로부터 '쫓겨난 자들'을 통해 성취되는데,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해를 입은 한 여자)가 남자(철장 든 144,000)를 안으리라(두르리라)하신 내용과 같다. 쫓겨난 자들을 다 모아 새 힘을 주어 66 바벨세력을 쳐서 없애는 심판역사가 인류가 회복되기 전에 행해지는 마지막 해산 역사이다.

  
3. 예루살렘 회복과 심판 : 18~24

『 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에중건될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20 그 자손은 여전하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 21 그 왕은 그 본족에게서 날 것이요 그 통치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며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여호와의 말이니라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

역시 이전 예언들에 이어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70년 만에 회복되어 본토에서 왕성하게 되리라
고 예언하신다.

구약 때의 유다 나라가 
고토로 회복된 사실은 인간 종말에 영적 이스라엘이 주의 재림을 맞이하여 이 귀신 바벨론 세계로부터 나와 새 천년 안식시대로 들어갈 것을 구약인들의 삶을 통해 실천적으로 예언한 것이다(사 46:10). 유다 나라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서와 예언서를 메시야 왕국과 연결시켜 볼 줄 아는 눈! 이것이 바로 선지자의 눈이다.

그렇다면 이 귀신의 처소 바벨세계에서 심판의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판은 '3대 화'를 통하여 단계적으로 실행되는데, 먼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인 맞지 못한 종들이 '첫째 화'인 
5개월 황충 떼 환난에서 잡혀가고, 그 다음 '둘째 화'에서 끝을 바로 맺지 못한 쭉정이 양 떼가 짐승 통치권 아래서 심판받고(후 3년 반), 마지막 '셋째 화'로서는 75일간의 대접재앙이 쏟아지므로 이 땅 위의 악인들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다 전멸되는 것이다.

『 
23 보라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4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 대로 먼저 동방 메데-바사 군대를 동원하여 당신 백성의 원수들을 멸절시키고 '유다'를 고토로 회복시키셨다. 이제 이 예언이 종말적으로 다시 예언될 때이다. 동방 해 돋는 곳에서 나타난 '우리'라는 종들로부터 일어난 전 세계의 144,000명은 종말의 메대 바사 군대로서 이 악한 바벨론 정치-종교의 우두머리인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세력을 전멸시키고 흰무리와 더불어 아담이 빼앗긴 에덴낙원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1,000년간 축복을 누릴 것이다.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말씀을 다 알 때가 온다는 것이다. 23:20절에서도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하셨다.

깨닫는 데에는 3가지 노선이 있다.

첫째 노선은 남보다 앞서 깨달아 이 예언 증거에 자기 생애와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이렇게 해산 수고를 다하는 자들은 1차 부활에 참예한다.

둘째 노선은 조금 늦게 깨닫고 박수치며 따라오는 자들로서 예비처에서 보호받고 새 시대의 싹이 된다(흰 무리 = 계 7:9~17). 불행한 자들이 있으니 들려줘도 뺨을 때리고, 울며 전해도 조롱하는 그들이다.

이들은 '후 3년 반' 대환난에 들어가게 되는데, 늦게라도 깨달아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않으면 짐승 손에 죽어(순교 아님) 백보좌 심판 때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나, 깨닫지 못하여 우상에게 절하고 그 표를 받으면 일곱 대접심판 때 몸에 독한 헌데(부스럼)가 나고, 물대신 피를 마시며, 3차대전으로 인한 오존층 파괴로 뜨거운 햇볕에 온 피부가 그대로 상하며, 온 몸에 악창()과 종기가 나 심히 괴로워하다가 참되신 하나님을 저주한다고 했다(계 16장). 아마겟돈 불심판을 통하여 이러한 인간 쓰레기들을 다 쓸어 버리는 것으로 6,000년 죄악세계는 끝나게 된다.

지금 우리의 정신은 어디에 팔려 있는지 점검해 보자. 내 모든 신경이 무엇에 집중되어 있는가? 오늘 하루는 무얼 좇아 뛰었나? 내 몸의 피곤은 주님을 위해 일하다 쌓인 피곤인가? 돈을 위해 일하다가 쌓인 피곤인가? 이제 행한 대로 갚아줄 "말일(末日)의 구속의 때"가 왔으니 누구든지 그것을 완전히 깨닫게 되겠지만, 깨닫는 시기에 따라 구원과 상급이 확연히 나뉘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오늘부터 각성하자!

부  록

- 주 재림 시의 변화성도의 형편과 백성될 자의 형편 -

말일의 추수기에는 교회 안에서 다음과 같이 일이 발생할 것이다.
 
(1) 권세 받은 종의 강한 역사가 만민이 알도록 뚜렷이 나타난다.

(2) 현재의 교회가 완전히 갈라지되 알곡만 모이는 교회가 나타나므로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자 살던 신자들은 자동적으로 촛대교회로 모여들 것이다.

(3) 아무리 교회 밖의 사람들이라도 옳은 사상과 정신을 가지고 양심대로 살아보려고 하던 사람들은 자기의 피난처를 찾아 촛대교회로 찾아들 것이다. 이들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나 그 때를 당할 때에 자기는 죽어도 사상, 정신만은 잃지 않겠다는 불타는 마음이 있는 동시에 오직 가야 할 곳은 촛대교회란 것을 알고 모여드는 정직한 자들이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4) 은혜시대의 신앙을 가진 자로서 증인권세의 역사를 등한히 여기던 무리들은 벌벌 떨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숨어서 자취를 감추는 생활을 하게 되는 일도 있다. 이들은 촛대교회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 일개인의 양심적인 신앙만을 보전해 보겠다는 신념에서 개인적인 행동을 취하는 무리들이다.

(5)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받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 안의 모든 것을 자기 주권에 넣어 보려고 폭행 또는 협박, 공갈, 훼방, 악선전을 하면서 당파를 지어 최후의 수단 방법을 쓰고 나오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6) 어린 학생으로서 사상, 정신을 분명히 분간할 수는 없으나 부모님의 간곡한 기도의 응답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주일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나뉘는 교회 안의 백성들을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하시며 보호하실 것인가? 
 
1) 휴거를 시키심.
자기 생명을 내걸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거짓 선지자와 싸우며 말씀을 증거하는 종들 외에는 휴거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휴거라는 자체가 왕권에 가입될 자격이 있는 자를 공중으로 불려올려 혼인예식을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왕권이란 신앙적인 중심에서가 아니라 그가 행한 일에 따라서 받는 상급이다(일반인의 개념처럼 "믿으면 받는 것"이 휴거가 아닌 것이다). 휴거라는 것은 그 몸이 썩지 않고 변화 승천하는 역사를 가리킨 것이다. 이들은 신과 같이 쓰여지는 자이므로 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몸을 완전한 영체(변화체)로 이루게 된다. 이러한 몸은 피가 성결케 된 몸이므로 죄악의 근성을 가진 피는 몸에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창조했지만 증인권세 역사를 통하여 그 몸을 개조시켜 질적인 변화를 받은 몸이 되는 것이니 '변화된 질'이라는 것은 죄악의 질이 없어지는 것을 뜻한 것이며 절대적으로 피곤이 없고, 또는 원수의 피해가 몸에 들어올 수 없으며, 절대 영생의 체질로서 완전한 개조 변화를 받음을 뜻한다. 이들은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완전인격을 권세역사를 통하여 받게 된 것이다. 신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인격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은 몸이라 할 수 있다.
 
2) 피난처 보호
완전 변화체를 이루지 못하였으나 사상, 중심, 양심이 바른 자로서 말세의 예언에 순종하고 살 길을 찾아보려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그들을 책임지고 죽지 않도록 보호, 양육하시는 것이니 이들을 위하여 <피난처의 보호>가 있게 된다. 피난처 백성들에게는 증인권세의 역사(철장권세)가 따르지 않는다. 이들은 천사의 보호를 받는 자들인데, 하늘에서 마귀 떼를 쫓아내려 보낸 천사들이 지상까지 따라 내려와서 택한 백성을 피난처로 몰아넣고 그 경계를 정하여 마귀의 피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보호해 준다. 이 역사가 계 12장에 계시된 <택민 보호>의 역사이다. 이와 같은 역사를 이루어주셔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택민은 권세를 받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환난에서 신앙절개를 지킬 수 있는 환경과 악당의 피해를 당치 않는 보호가 필요하다. 이러한 목적에서 택민 보호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이 역사는 내리는 재앙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에 지역을 정하고 한 데로 집결하여 단체로 예배하며 자유롭게 하나님을 공경하여 영적 신앙을 기르도록 해주는 것이다.

) 또한 피난처 안에서는 완전한 인격을 이루기 위하여 사단의 역사를 없이하고 새 시대의 거룩한 시온의 아들, 딸이 되도록 만들어 놓는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아무리 신앙 생활을 하지 못했던 자라도 믿고 순종해서 말세 복음을 따르는 자라면 무조건 그곳에 들어가서 양육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곳에는 질병이나 재앙이 절대 들어오지 못하되, 먼저 성민이 될 신앙을 가진 자 외에는 그 지경 안에서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징벌이 내리게 된다. 애굽 땅에서 나오던 유월절 밤과 같은 역사가 있으므로 그 지경 안에는 악인의 씨가 하나도 잔존할 수 없는 재앙이 내린다. 이렇게 먼저 거룩한 지경(地境)을 이루어 놓고 사방 촛대교회의 양 떼를 그리로 인도하는 것이다.

) 여기서의 생활 방법은 계급이 없는 생활이다.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1260일간 양식과 물을 공급해 주시는 땅이다. 이곳에 들어간 자에게는 절대적인 보호와 양육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3가지 요소이다.

     ㄱ) 하늘에서 만나 같은 양식이 내리는 곳도 있다. 또는 그 경내에 우순풍조하여 아름다운 생산도 있을 수 있다.

     ㄴ)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모든 생활제도가 균일을 이루니 무엇 하나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땅이다. 아무리 어린 유아라도 자유롭게 자랄 수 있는 질서로 움직여진다.

     ㄷ) 하나님은 그 안에서도 모든 어린 자들을 교육하고 인도해 줄 지도자적 사명자를 쓰신다. 이 지도자는 변화성도는 못되었으나 능히 그 안에 있는 대중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로서 하나님이 친히 들어 역사하신다. 다시 말해 피난처는 종족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끌어가는 세계이다.
바) 피난처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마귀에게 맡길 때이므로 참된 백성을 버린 세상에 그냥 방치해 둘 수 없고 당신이 예비한 예비처 안에 알곡 될 주의 거룩한 성남 성녀들을 불러 모아야 된다는 것이다. 이날까지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똑같이 살도록 비를 주고 일용할 양식도 먹게 하셨지만, 이 시기는 악한 자를 없애는 재앙을 내려보내는 진노의 날이니 만큼 악인들이 사는 그 동네에 의로운 씨를 섞어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재앙을 내리는 때이므로 알곡의 분리가 필요한 것이다.

     ㄴ) 이 때는 하늘에 있는 마귀가 땅으로 쫓겨와서 누구든지 자기 앞에 굴복치 않은 사람은 몇이든지 무조건적인 피해를 주는 환난기이기 때문이다. 마귀는 이날까지 하늘(공중)에서 참소하고 있었지만 왕권 받은 종들(144,000)이 영계 싸움에서 대 승리를 보고 그 수가 차게 되어 완전한 승리의 왕국을 이루었기 때문에 마귀는 천사들에게 패전을 당하여 땅으로 쫓겨 내려온 만치 42달 '후 3년 반'은 마귀가 최후의 발악을 할 수밖에 없는 때이다. 그러므로 예비처 밖은 전부가 귀신의 처소가 된다. 하나님은 절대로 예비처 밖에는 간섭하지 않으신다. 마귀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ㄷ)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시되 짐승의 표를 받은 자와 그 우상(마귀)에게 경배한 자는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몽땅 없애버리는 심판을 내리시기 때문에 택한 백성으로서 신앙 절개를 지켜 나가는 동시에 그 생명을 보존하여 무서운 심판날에 심판을 면하도록 하기 위해 예비처를 두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ㄹ) 새 시대에는 백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세계가 불에 살라질 때 그 피해를 당치 않는 자라야만 남은 백성으로 새 시대의 종족백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니, 그 불의 피해를 당치 않을 자의 자격은 예비처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곳의 백성에게는 양육이 있되 죄악의 질이 절대적으로 제해진 자를 만드는데 목적을 둔다. 이들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불에서 구원을 받은 것같이 세계가 불타는 날에 남은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자들이다.

     ㅁ) 새 시대의 종족은 사상, 정신, 마음이 하나같이 성결해야 되는 것이니, 완전 성결을 받는 자 외에는 새 시대의 거룩한 씨가 될 수가 없다. 고로 완전한 성남성녀(聖男聖女)가 되기 위해서는 예비처의 양육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영이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고 그 몸이 영생하도록 주어지는 축복이다. 이 사람들은 변화체를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그 몸에서 죄악의 질이 없어진 자들이므로 거룩한 땅에서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번창하는 족속을 이루는 축복의 제1세대 선조 종족이 되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증인권세 역사는 변화승천할 사람을 위하여 '전 3년 반'에 권세 역사로 나리는 것이요, 예비처의 양육은 새 시대의 거룩한 백성을 이루기 위해서 '후 3년 반' 동안 보호 양육하는 것이니 전자는 왕권이요 후자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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