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8일 목요일

말씀의 칼 : 참는 자가 받는 구원 - 마24:10~14


참는 자가 받는 구원  

-마24:10~14-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서    론  
하나님께서 어려운 시련을 통과시킨 후에 기독교 종말의 구원은 끝을 맺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만 알고 끝까지 견디어 나가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모른다면 이 사람은 환란 날에 나가서 설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대적인 진리를 따라서 역사하는 것이니 환란 날에는 끝까지 견디어 보려는 데서 예언을 지키는 자라야 만이 구원을 얻도록 역사해 주실 것이다. 이제 어떠한 환란에서 참아야 된다는 것을 본문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1.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지는 일이다 (10)
우리는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서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할 때 거기에 동참치 않으면 부득불 쫓겨나는 일이나 또는 그들에게 잡히는 일도 있을 것이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끝까지 견디어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한다는 것은 기독교 안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니 이러한 시험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끝까지 참는 자다. 

  

2. 거짓 선지의 세력이 극도로 강할 때 (11)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의 세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누가 참된 예언의 말씀을 바로 지키나 보자는 것이니 미혹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참고 살려는 것이 없는 자에게 필연코 있게 될 것이다. 미혹을 받는 자는 많은 사람이요 받지 않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니 다수가 소수를 압박할 것은 정해 놓은 일이다. 

  

3. 기독교 사랑이 다 식어질 때 (12)
우리는 남이 사랑하니 나도 사랑한다는 정도를 가지고는 끝까지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참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와도 그 사랑이 식어지지 않는 것을 참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형제가 기분이 좋을 때는 사랑하고 환경이 나쁘고 기분이 나쁠 때는 사랑이 식어지고 만다면 이런 사람은 알곡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을 가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어려운 환란이 올 때 더욱 눈물겨운 심정으로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나가는 자 만이 남는 종이 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를 구원해 주기 위해서 첫째로 천사를 동원한다(단12:1).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네 민족을 호위하기 위하여 대군 미가엘이 일어난다고 말 한 것은 다니엘같이 끝까지 견디는 사람을 네 민족이라고 했다. 예를 든다면 추수기에 끝까지 견디고 남는 알곡은 아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보호를 반드시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에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으니 끝까지 참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우리 앞에 올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만일 어떤 종이 우리 신자는 절대 어려운 환란이 없이 평안히 있다가 들림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말씀과 대적이 되는 말이다. 분명히 이런 때가 오는 것은 먼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야 이러한 때가 온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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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여호와께서 중심이 뜨거워지는 일 - 욜2:6~20


여호와께서 중심이 뜨거워지는 일  

-욜2:6~20-

6 그 앞에서 만민이 송구하여 하며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7 그들이 용사같이 달리며 무사같이 성을 더위잡고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되 그 항오를 어기지 아니하며 8 피차에 부딪히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행하며 병기를 충돌하고 나아가나 상치 아니하며 9 성 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더위잡고 오르며 도적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10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11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고 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서    론

하나님은 위대하고 높으신 분이지만 낮고 천한 인생을 향하여 그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 신이시다. 이것은 여호와는 창조주요 인간은 그의 피조물인 동시에 택한 백성은 특히 아끼는 중심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제 어떠한 일에 여호와의 마음이 뜨겁게 움직이느냐에 대하여 본문을 보아 알 수 있다.

  
1. 인간이 송구하고 기절할 일이 생길 때 (6)
하나님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무서운 환란을 당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종말적인 거룩한 경륜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이때를 당하여 하나님은 어떠한 자에게 보호가 있고 어떠한 자에게 멸망이 있다는 것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2. 택한 백성에게 어려운 일이 올 때 마음을 찢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12~13)
만일 어떤 사람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고 위급할 때에 배반하고 만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노의 채찍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릴 때 절실히 깨닫고 참된 통회의 눈물로 회개가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보고 뜻을 돌이키는 것이다.

  
3. 급한 환란이 올 때 열심히 성회를 열고 부르짖는 일이다 (14~16)
만일 어떤 교회가 환경이 좋을 때에는 집회를 열지만 어려운 환란이 올 때 해산하고 만다면 이 교회는 허명무실한 즉 외식의 형식적인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환란이 부딪쳐 와도 열심히 모여서 부르짖는 교회라면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은 뜨거워지는 응답의 강한 역사는 필연코 있을 것이다.

  
4. 대표자의 간곡한 기도가 있으므로 (17)
만일 어떤 종이 어려운 환란이 온다고 교회를 집어던지고 양떼를 버리고 자기 생명 하나를 보전하기 위하여 도망을 한다면 이것은 삯군의 행동일 것이다. 그러나 극도로 교회가 위기를 만날 때 모든 것을 자기가 기도할 문제로 알고 제단 사이에서 울며 부르짖는 호소의 기도가 있다면 그 종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중심이 뜨거워지는 응답이 있으므로 모든 문제는 일시에 해결될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시대적인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은 북방 군대를 일으켜서 환란을 가져오게 하는 동시에 당신의 백성과 종들의 호소를 듣고 그 원수를 갚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친히 북방 군대를 전멸시키고 평화의 새 시대를 이루는 것이 종말적인 하나님의 큰 역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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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말씀의 칼 : 변론과 심판을 위하여 움직이는 여호와 - 사3:1~17


변론과 심판을 위하여 움직이는 여호와  

-사3:1~17-

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2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3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공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  4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  5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6 혹시 사람이 그 아비의 집에서 그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너는 의복이 오히려 있으니 우리 관장이 되어 이 멸망을 네 수하에 두라 할 것이면  7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않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관장을 삼지 말라 하리라 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觸犯)하였음이라  9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16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서    론

하나님은 변론도 해야할 책임도 있고 심판도 해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한 예언을 인간이 알도록 변론을 해야만 할 것이요, 인간이 행복되게 할 수 있는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인을 없애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기에 변론하러 일어나심에 대하여 어떤 형편에서 여호와는 변론하는 것이냐에 대하여 이사야 3장은 가르친 것이다.

  
1.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예루살렘의 부패를 그냥 두고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1~3)
이것은 왜냐 할 때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깨우치는 변론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변론이라는 것은 당신의 백성이 심판기에 이렇게 하면 너희가 죽을 것이요, 저렇게 하면 살리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살려 주겠다는 언약의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세상 것을 더 의지한다는 것은 멸망을 받을 가증한 행동이다.

  
2.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사회가 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친히 일어나시는 변론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4~7)
하나님은 인심이 극도로 악화되고 부패되고 혼란한 세상에서 당신의 백성을 찾기 위하여 강한 역사를 일으키는 심판의 변론자를 세워야만 될 것이다. 인간의 부패한 정치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니 하나님이 나타나야만 된다는 것이다.

  
3. 지도자가 극도로 악하여 미혹을 시키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8~12)
만일 미혹을 극도로 당할 때 말씀의 칼인 하나님의 변론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바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혹을 심하게 하는 것은 당신의 변론을 따라오는 자를 찾기 위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유혹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변론을 바로 믿고 따르느냐에 대하여 시험해 보는 모략이다.

  
4. 극도로 빈민이 살 수가 없는 난제가 오기 때문에 여호와가 일어나는 것이다 (14~15)
이것은 가난한 자는 대부분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는 자들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극도로 악화되고 거짓이 많은 세상에서 동참할 수 없는 생활을 하려면 빈곤은 필연코 닥쳐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판기가 올 때는 도저히 의롭게 사는 자로서 생계를 보전할 수 없는 고난이 오는 것이다.

  
5. 하나님은 극도로 교만하고 사치한 인간들을 볼 때 참지 못할 진노를 나리게 되는 것이다 (16~17)
여호와께서 제일 미워하는 것은 소위 시온이라 하면서 사치해지고 교만해지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모르고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미운 물건이 즉 이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당신의 변론을 나타내신 것이다. 은혜시대는 비록 귀천이 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동등한 권리와 동등한 생활을 하는 동시에 일반적인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변론을 위하여 사도 바울도 이방으로 향하여 나섰던 것이다. 이것이 바울 서신이다. 그러나 심판의 변론은 아무리 시온이라 하여도 여호와의 변론을 가감하면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목적한 변론이다. 이것은 계시록과 선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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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참 이스라엘은 어디 있느냐 - 요1:40~48


참 이스라엘은 어디 있느냐  

-요1:40~48-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르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가 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서    론
  
주님께서 도성인신하여 세상에 오셔서 당신과 같이 일할 사람을 택할 때 참 이스라엘을 찾기 위하여 그는 빈촌을 찾아가다 보니 벳세다 동리에 한편 모퉁이 어촌에 숨어 있는 참 이스라엘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육안으로 본다면 참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지 않고 어촌에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제 참 이스라엘이 어디 있느냐에 대하여 성경을 찾아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참된 회개의 운동을 따라가는 자이다 (40~42)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우니라”하고 회개의 운동을 일으키는 그 말을 달게 받고 따라가던 자 중에서 수제자 될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가 따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고 요한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오히려 비소 하는 훼방을 했던 것이다. 같은 성민이요 같은 이스라엘이지마는 충성된 마지막 선지인 요한의 말을 참으로 받아들이고 나가던 자는 주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시대가 바뀌어 질 때는 참 이스라엘만이 새 시대의 축복을 받게되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자의 행동 같으나 시대를 바로 아는 참 이스라엘이 된 자는 갈릴리 해변에 있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때를 기다리는 자들이다 (45)
율법시대가 끝을 맺을 적에 율법과 계명을 가르친다는 성직을 맡은 대제사장, 교법사, 장로, 유사, 서기관, 이런 무리들은 때를 모르고 교권, 명예, 안락, 여기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바로 알고 때를 기다리는 무리는 이방 갈릴리 빈한한 어촌 벳새다 동리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말세에 끝 날에도 참 이스라엘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화려한 바벨에 있지 않고 쫓겨난 자 중에 있다고 사41:17에 말했다. 

  
3. 조금도 간사가 없는 것이다 (47)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육적 혈통을 보아서가 아니고 영적인 참의 계통을 가리켜서 주님은 말씀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특히 하나님의 택한 야곱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진 성도를 가리킨 것이다. 아무리 교회의 성직을 가진 자라도 간사가 있으면 이것은 참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를 가리킨 것이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아무리 시험을 해도 끝까지 참고 천사와 씨름하여 이길 때 받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4.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이다 (48)
나다나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 한적한 벳새다 동리 무화과나무 아래 제단을 쌓고 매일같이 하나님과 교통했다는 사실을 주님은 말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을 들은 나다나엘이 너무 똑똑한 자기 비밀을 말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만일 은밀한 가운데 살피시는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숨은 기도의 봉사가 없다면 참 이스라엘인 14만 4천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결    론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감하시사 간사가 없는 진실한 사람을 찾고 있는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계2:23).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는 이스라엘 중에도 참 이스라엘만이 메시야를 영접하여 사도가 되었고,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재림의 주를 맞이할 때에도 참 이스라엘된 14만 4천의 인 맞은 종들이다. 다시 말하면 참 이스라엘인 사도들이 교회를 세움과 같이 참 이스라엘인 14만 4천이 남은 교회를 붙들고 역사 하다가 재림의 주를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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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주께 징벌을 당하며 교훈을 받는 자의 복 - 시편 94 10~23


주께 징벌을 당하며 교훈을 받는 자의 복 

-시 94:10~23- 

10 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정치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12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판단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좇으리로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를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서서 죄악 행하는 자를 칠꼬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말 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잔해를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교제하리이까 21 저희가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반석이시라  23 저희 죄악을 저희에게 돌리시며 저희의 악을 인하여 저희를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저희를 끊으시리로다   



서    론 
주님께서는 복 받을 사람을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하여 징벌을 하면서 교훈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망 있는 사람도 장차 성공을 하도록 부모의 징벌이 따라가는 일이 있다. 이와 같이 말세에 큰 축복을 받을 자는 그 교훈을 바로 알아서 축복을 받기까지는 징벌을 내리는 것이다. 만일 주님께서 징벌만을 주고 깨닫는 교훈이 없다 해도 안 될 것이요, 교훈만 하고 징벌만 해도 안 될 것이다.
 

이제 징벌을 당하며 교훈을 받는 자의 받을 복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환난 날에 빛이 나게 한다 (13)
우리의 축복은 캄캄한 어두움의 환난이 올 때 광명한 빛이 나를 인도한다면 이것이 축복이다. 이런 자에게 참된 평안이 따라 오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불가피한 환난의 흑암을 거칠 것이니 그때 빛과 평안을 소유하려면 징계를 받으며 교훈을 받는 자라야 될 것이다.
 


2. 절대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14)
하나님은 당신의 교훈을 받는 자가 부족이 있다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영원한 기쁨을 얻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교훈대로 할 책임은 가르친 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해지므로 환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고 환난 가운데 버리지 아니하므로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3. 그를 위하여 악자를 치신다 (15~16)
하나님께서도 악자가 교훈을 받는 사람을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싸워주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싸워 주는 일이 없다면 아무리 교훈을 받은 자라도 악자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4. 미끄러져도 붙들어 주신다 (17~18)
우리는 신이 아니요, 육을 가진 사람이니 아무리 바른 길을 간다 해도 미끄러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누가 말하기를 나는 절대 미끄러져 넘어져 본 일이 없다는 사람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교훈을 따라가는 사람을 미끄러질까 봐 넘어질까 봐 항상 붙들어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떤 친구가 길을 가다가 한 친구가 넘어져도 잘 되었다 하며 보고만 있다면 이것은 친구라고 할 수가 없다. 하물며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람이 넘어지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방관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5. 주의 위안이 영혼을 즐겁게 한다 (19)
사람은 시험이 많을 때 주님께로부터 오는 위안이 없이는 영적 생활을 보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교훈을 받을 자의 영혼을 주께서는 항상 위안을 주고 즐겁게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6. 피난처가 되신다 (20~23)
여호와는 아무리 악한 자들이 잔해를 도모하고 재판장이 아무리 의인의 영혼을 치려고 하되 여호와 하나님은 악자에게 피해당하지 않도록 항상 보호하는 피난처가 된다. 하나님의 교훈은, 사람이 네가 지키라 하는 교훈이 아니고, 내가 이렇게 너를 해 줄테니 너는 이 교훈에 순종하라는 것이니 교훈을 달게 받는 자는 끝까지 보호해서 안식의 시대를 정복하게 할 책임이 있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우리는 덮어놓고 복을 받겠다는 것은 세계 인류가 다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길을 취해야만 축복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는 심히 적다.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자 중에도 이 길을 바로 아는 자가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의 교훈과 징계도 모르고 사는 자도 있고, 징계를 받으면서 교훈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도 있으며, 교훈을 받기 위해서 징계도 달게 받는 자도 있으니 우리의 취할 길은 징계도 교훈도 달게 받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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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6일 화요일

말씀의 칼 : 심판 받을 행위 - 갈5:2~10


심판 받을 행위  

-갈5:2~10-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8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서    론
  

하나님의 심판이란 죄를 지은 사람을 덮어놓고 심판한다는 법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지었다고 그대로 심판하는 신이라면 사랑이 없는 신이시니 사랑이 없는 신은 죄를 짓는 인간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되 심판 받을 행위를 가진 자를 심판하는 것이다. 
  
이제 심판 받을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1. 남의 믿음을 요동케 하는 행위 (갈5:10)

우리는 실수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되 고의적으로 남이 진리를 따라 바로 믿는 신앙을 쓸데없이 딴 교훈으로 동요를 시켜서 그 마음이 탈선되게 만드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와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정통적인 복음을 받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할례를 주장하는 이단설은 순수한 양떼의 신앙을 동요시키는 무리의 행위가 될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 종이 있다면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죄는 죄 중의 큰 죄가 될 것이다. 

  
2. 빛을 미워하는 행동 (요3:19~20)

우리는 빛을 사랑하지만 어둠과 싸우다가 실수하는 죄도 있고, 짐짓 빛을 미워하는 죄도 있으니 두 가지 죄를 놓고 하나님은 역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체가 어두운 미로에서 헤매면서 빛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빛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빛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빛을 미워함은 하나님의 사랑은 크지만 책임질 수 없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중심에 빛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면서도 빛의 열매를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은 빛의 열매를 맺도록 책임지고 역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교훈을 듣고 증거를 보고도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바리새교인들은 정통을 찾는 교파요 매일같이 기도하고 또는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려도 결국은 멸망을 받았던 것이다. 사랑은 두 가지가 있고 미워하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 사랑도 빛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죄가 되고 미워하는 것도 악을 미워하는 것 외에는 죄가 될 것이다.

  
3. 종을 대적하는 죄 (사41:8~11)

하나님께서 종을 쓰시되 말씀을 따라 쓰시는 것이다. 은혜 시대 종을 대적하던 자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옳다고 판정을 내리던 바울도 회개하여 사도가 되었다. 그러나 말세에 동방 땅 끝에서 심판의 권리를 받고 나오는 종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이라고 했다. 이것은 왜냐 할 때 동방 역사는 피 값을 갚는 역사니 그 종에게 원수를 회삼물같이 짓밟는다는 특권을 주었기 때문이다(사41:25).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는 것은 대장이 군대에게 너를 대적하는 자를 쳐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말세 사명자는 만왕의 왕의 특명을 받고 나오기 때문이다. 엘리야 모세같이 쓰여지게 된다. 이것을 기독교 종말에 진노의 날에 쓰여지는 종이라 한다(계11:3).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쓰는 종도 있고 원수를 치기 위하여 쓰는 종도 있으니 죄인을 부르기 위해 쓰는 종은 대적해도 피해가 없었다. 그러나 원수를 치기 위하여 쓰는 종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하는 것이다.

  
4. 예언을 경홀히 아는 죄 (계22:18~19, 사65:12)
  
교훈도 용서하기 위하여 전하는 교훈도 있고, 심판하기 위하여 주는 교훈도 있으니 종말에 심판하려고 예언하는 말씀은 조금만 가감해도 용서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했던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은 심판을 하고 싶어하는 본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 자체는 사랑의 본질이다. 그러나 사랑으로써 살리기 위해서 역사하는 역사를 순종치 아니하므로 자동적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을 무서워하는 것보다도 시대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한다든지 그 말씀을 경홀히 여긴다는 것은 심판 받을 행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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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롯의 처를 생각하라 - 눅17:22~37

롯의 처를 생각하라
 
- 눅17:22-37 -


누가복음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 음) 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서  론
 
우리는 주 재림이 임박해서 주를 맞이할 자들이 특히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을 공경한 의인 가정이라도 진노의 날에는 어느 때 보다도 깊이 생각하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진노의 날에 하등 문제가 없다고 방심적인 태만을 갖고 있다면 롯의 처와 같이 멸망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1. 확실한 증거를 보고도 태만하는 자가 되지 말라
 
롯의 처의 경우는 자기 집에 직접 천사가 찾아와서 때가 급했다는 것을 경고했을 뿐 아니라 악당들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그 가정에 증거를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이 롯의 가정을 특히 사랑해서 말씀으로만 경고한 것이 아니고 실천적인 행동에서 그 가정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 성도가 직접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내 마음에 오셔서 역사하는 증거도 받고 하나님의 보호도 받은 체험도 있는 신앙을 가지고 짐짓 말세 예언을 등한히 한다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오히려 체험 받지 못한 자 보다도 먼저 죽는 저주가 올 것이다. 짐짓 하나님의 명령을 만홀히 알았기 때문이다. 
 
 
  2. 강권 역사에 끌려가면서 짐짓 마음이 태만하는 자다
 
천사는 롯의 처의 손을 쥐고 끌고 가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금일의 강권 역사의 힘을 받아서 나가던 사람도 떨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노력을 한 일이 없는데도 하나님이 강권으로 이끌어주는 체험을 받고도 세상을 돌아다보는 자의 경우다. 세밀히 말하자면 확실한 하나님의 체험을 받고 "때가 급하다"는 증거자를 통하여 인도를 받아서 나가던 자라도 멸망할 자가 있다는 것이다. 천사가 끌고 가던 자도 떨어지는 자가 있었거늘 사람에게 인도를 받는 사람 가운데도 (그러한 자가) 있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증인을 통하여 강권적인 역사가 임할 때 절대로 세상 일은 돌아다보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군인이 출전 명령이 나렸는데 뒤로 후퇴하는 자는 쏘아 죽이는 것이 군법이다. 그러므로 말세의 '전 삼년반' 기가 닥쳐와서 사명자가 앞을 향해 나갈 명령을 받고도 세상 일을 보고 후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주 재림이 온다는 경고는 말세의 권세 받은 종이 나타날 때다. 권세 역사라는 것은 천사가 롯의 처를 끌고 가는 것과 같은 강권 역사다. 
 
 
  3. 천사는 롯의 요청대로 가까운 소알 땅으로 가는 편리를 보아주었다
 
먼 동리까지는 미쳐 급하여 피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가까운 그곳만 가면 산다는 편리를 주었다. 하나님의 택한 사람에겐 급한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든지 살리겠다는 심정에서 안정처를 알려주고 보여주는데도, 롯의 처는 그 말을 등한히 여겼던 것이다. 롯의 아내가 사실을 확실히 믿었던들 뒤를 돌아다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노의 날"을 말할 때 예언의 말씀을 조금만 가해도 감해도 재앙이라는 것은 여기에 연결된 것이다. 예를 들자면 급해서 종을 인도하는 것은 (그 종을) 아끼는 심정이다. 사랑 중에 제일 큰 사랑은 하나님이 롯의 집에 보낸 천사의 사랑일 것이다. 낮고 더러운 인간들인 롯의 가정을 살려보겠다고 천사가 와서 이렇게도 애를 쓰는데, 그 사랑을 태만히 하니 다시는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아의 집보다도 롯의 가정은 강권적인 사랑이 임했던 것이다. 노아는 자기 손으로 배를 짓느라고 최선을 다했지만 롯의 가정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무조건 구원해 주겠다는 사랑이 임했었다. 이는 말세 주 재림기에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종들에게도 이와 같은 사랑을 베풀어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결  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두 남자가 한 자리에 있으면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였다. 또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는데 한 여인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여인은 버려둠을 당하였다 하였으니 롯의 처와 같이 태만한 사람은 버림을 당한다는 것이다. 롯의 부부가 일생동안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했으나 그 처가 태만할 때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노의 날에는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33).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명령인 예언의 말씀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걷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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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5일 월요일

말씀의 칼 : 하나님의 사람이 용맹을 발할 이유 - 다니엘11:27~44


하나님의 사람이 용맹을 발할 이유  

-단11:27~44-

27 이 두 왕이 마음에 서로 해코자 하여 한 밥상에 앉았을 때에 거짓말을 할 것이라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에 미쳐서 그 일이 끝날 것임이니라 28 북방 왕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가리니 그는 마음으로 거룩한 언약을 거스리며 임의로 행하고 본토로 돌아갈 것이며 29 작정된 기한에 그가 다시 나와서 남방에 이를 것이나 이번이 그 전번만 못하리니 30 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며 거룩한 언약을 한하고 임의로 행하며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길 것이며  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궤휼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쇠패하리라 34 그들이 쇠패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은 궤휼로 그들과 친합할 것이며 35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패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40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로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 41 그가 또 영화로운 땅에 들어갈 것이요 많은 나라를 패망케 할 것이나 오직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의 존귀한 자들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42 그가 열국에 그 손을 펴리니 애굽 땅도 면치 못할 것이므로 43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 은과 모든 보물을 잡을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되리라 44 그러나 동북에서부터 소문이 이르러 그로 번민케 하므로 그가 분노하여 나가서 많은 무리를 다 도륙하며 진멸코자 할 것이요 45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


서    론 
  
하나님의 사람이 용맹을 발해야 할 때는 용맹을 내야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한 일을 볼 때 용맹을 내야만 한다는 그 이유를 가르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 용맹을 내지 않는다면 도저히 안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을 들어 써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때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들어서 용맹스럽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한다.

  
1. 양대 거두가 서로 거짓말을 하며 흉계를 꾸밀 때 (27)

이것은 왜냐하면 소위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이 국제적인 난제를 앞에 놓고 서로 부패한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하면서 자기네가 정권 야욕을 품고 헛꿈을 꾸는 광경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람은 용맹스럽게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양대 진영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할 때 일 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를 지도하는 자가 거짓말을 하다 보니 그 아래 백성은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문제시 아니할 수 없다. 이때는 전부가 거짓으로 꾸미는 세상이 되니 하나님의 참 사람이 나와야만 된다는 것이다.

  
2. 미운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때 (31~32)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의 강단에까지 멸망케하는 자식이 섰으니 그것을 보는 하나님의 사람은 용맹을 발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이런 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사람이 가만히 있다면 교회는 여지없이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인 말세 진리를 배반하고 악한 자들을 궤휼로 타락시키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란 악한 자를 회개시키는 일도 바쁜 일인데  오히려 타락시킨다는 것은 멸망의 자식이다.

  
3. 많은 사람이 궤휼로 친합이 될 때 (34)

우리는 친합을 반대하는 것은 진리의 사랑으로써 친합이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땅히 할 일이나 소위 기독교라는 간판을 가진 교회가 궤휼적인 정책에 타협하는 친합이라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람은 용맹을 발하고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가 된 증거이다.

  
4. 북방의 무신론 정책이 극도로 형통해질 때 (36~39)
만일 무신론자가 극도로 깃발을 날리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꼴을 하나님의 사람이 보고도 잠을 자고 있다면 양심이 허락치 않을 일이다. 소위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이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을 묵인하고 그 앞에 가서 타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는 북방 세력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각성을 받고 일어나서 그 세력을 쳐부셔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극도로 바로왕의 마음이 강퍅할 때 모세를 들어 썼고 극도로 아합과 이세벨이 악화될 때 엘리야를 들어썼다. 금일에 무신론자의 세력이 강성해질 때 하나님의 사람이 일어나는 일이 없다면 여지없이 기독교는 짐승의 밥이 될 것이다.

  
5. 중동 사태가 극도로 위기에 처해질 때 (40~44)
  
세계 남북의 양대 진영이 극도로 부패해지는 동시에 남방 구스, 리비아 사람은 북방을 시종들고 일어나게 되니 북방 세력을 막을 길은 아시아에서 아득한 것뿐이다. 이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동방에서 용맹을 발하고 일어나니 하나님은 대군 미가엘을 동원시켜 하나님의 사람을 호위해 준다(단12:1). 그러므로 아시아 문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결하는 일은 동북의 소문이라고 한 것이다(단11:44). 이것은 초인간적인 역사니 하나님이 없다는 북방 세력은 어찌할 줄 모르고 번민하므로 발악을 하다가 망한다고 했다. 이때 땅의 티끌 가운데서 일어나는 부활 성도도 있고 용맹을 발해서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인도하는 종들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 왕권을 받게 될 것이다(단12:2~3).

  
결    론
  
하나님께서 주 재림기가 임박하여 극도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강하게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으로서 용맹스럽게 역사하도록 하는 동시에 하나님은 동북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그리스도께서 강림하므로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용맹을 발할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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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하나님 백성의 삼대 축복 - 시편144:12~15


하나님 백성의 삼대 축복  

- 시144:12~15 -


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과 같으며  13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14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 진대  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서    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완전한 축복을 주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동시에 언약의 말씀이요, 약속의 말씀인 동시에 축복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는 축복을 요구하는 것 보다도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가 더 급선 문제일 것이다.  하나님은 참되시니 말씀한 대로 축복을 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세 가지 축복을 본문 성경에서 알 수 있다.

  

1. 자녀 축복 (12)
우리 말세의 축복은 자녀의 축복을 큰 축복으로 주시겠다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하늘의 별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으리라고 한 것 같이 말세종에게도 자녀의 축복을 준다(사49:18~20)고 했고,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내게 말하기를 이곳이 좁으니 넓혀서 우리에게 거처하게 하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특히 자녀의 축복을 받기 위한 시련 속에서 고난 중에 이삭을 통하여 축복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종된 자로서 자녀에 대하여 큰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죽어 천당을 목적함보다 새 시대  건설을 목적한 말세 사명자니 시련을 받을 때 여기에서 자녀가 축복 받을 일이 온다는 것을 아브라함 같이 믿어야 한다.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심정을 가지는 동시에 자녀에게 축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자격을 잃지 아니해야 한다.

  

2. 물질의 축복 (13)
하나님의 종이 물질 중심에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물질을 하늘 나라를 위하여 쌓을 수 있다면 축복 중에 축복이 될 것이다. 말세의 하나님의 종은 특히 기근의 날에도 물질의 축복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사65:13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물질에 명백하여 물질에 치우치는 일이 없이 될 때 축복이 나린다. 하나님의 종이 물질에 애착심이 있으면 있던 물질도 거두어 간다는 것이다(시113:3~9).
  

물질을 죄악으로 본다는 것도 탈선이요, 무엇이나 정욕으로 치우치는 것 외에는 그 물질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종이 물질이 많을수록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이 종을 통해서 하나님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3. 원수가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일 (14)
하나님의 집에 악당의 피해를 당한다는 것은 징계의 채찍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부패할 때 악한 나라를 들어 쓴 것도 징계이지만 하나님의 종의 집에 악자가 피해를 준다는 것은 축복받는 자에게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천사의 보호가 있기 때문이다(시34:7, 시91:9~10).

  

결    론  
우리는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려면 다윗과 같은 신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다. 산 깊은 목장에서 홀로 부친의 양떼를 지킬 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작은 양 한 마리를 위하여 싸웠던 것이다. 또한 민족과 하나님의 대적을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동역자의 억울한 박해를 당하나 끝까지 기름 부은 종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심정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었던 것이다. 누구든지 이와같은 종이라면 삼대 축복은 필연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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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4일 일요일

말씀의 칼 : 여호와의 뜻을 돌이키고 못 돌이킬 일 - 아모스9:1~9


여호와 뜻을 돌이키고 못 돌이킬 일  

-암9:1~9-

1 내가 보니 주께서 단 곁에 서서 이르시되 기둥 머리를 쳐서 문지방이 움직이게 하며 그것으로 부숴져서 무리의 머리에 떨어지게 하라 내가 그 남은 자를 칼로 살육하리니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2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3 갈멜 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4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육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5 주 만군의 여호와는 땅을 만져 녹게 하사 무릇 거기 거한 자로 애통하게 하시며 그 온 땅으로 하수의 넘침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같이 낮아지게 하시는 자요 
6 그 전을 하늘에 세우시며 그 궁창의 기초를 땅에 두시며 바다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니 그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8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서    론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다같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뜻을 여호와께서 돌이킬 일도 있고 돌이키지 못할 일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 이것을 분명히 모른다면 완전한 신앙의 지식을 가진 자는 못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으로 신앙의 완전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주는 일과 돌이키지 않는데서 완전이 있는 것이다.

  
1.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킬 일 (1~6)

 

1) 시련 중에서도 뜻을 돌이킴

하나님은 재앙을 오게도 하시고 재앙을 물리치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재앙을 무서워 할 것보다도 뜻을 돌이키지 않는 것을 무서워해야 할 것이다. 아모스 선지가 묵시를 볼 때 풀을 벤 그루터기에서 풀이 돋기 시작할 때 주께서 황충을 지어 황충이 풀을 먹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이 것은 새로운 순과 같은 역사가 일어날 때 황충같은 악의 세력으로 그 역사를 대항시키는 광경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황충 같은 악의 세력을 들어서 하나님의 종을 시련시키는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청컨대 여호와여 용서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찌하오리까 하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켰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시련이 닥쳐올 때 자기 죄를 깨닫는 심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2) 낙심하지 않고 그 원수를 대항해 싸워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

만일 어떤 종이 시련이 닥쳐올 때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어도 안될 것이다. 원수가 무서워서 대항하지 않고 쫓겨가는 정도에 있어도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서리이까 하는 심정을 가질 때 하나님은 원수를 대항해서 넘어지지 않고 설때까지 뜻을 돌이켜 그 악한 세력을 물리쳐 주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써 물리칠 수 있는 것을 아는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아시나 인간으로 자기 부족을 더 깨닫기 위한 것과 또는 자기 미약을 깨닫게 하기 위한 모략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려운 난관이 닥쳐올 때 자기의 부족과 미약을 깨닫고 돌아오면 얼마든지 뜻을 돌이킨다는 것이다.


3) 큰 징벌에서도 뜻을 돌이킴

종말의 징벌이라는 것은 인명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고 바다나 육지를 다 삼키는 징벌이다. 이 세계가 불에 살라지는 것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어서 이것도 자기의 미약을 깨닫고 어떻게 하든지 바로 서 보려는 심령을 가진 자는 뜻을 돌이켜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징벌을 나려도 겸손한 사람이라면 그 환란에서 건져내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심판 날에 죽을 죄는 교만과 사치다.  바벨론이 망한 것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는 죄와 사치한 부요로 인하여 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징벌이 나릴 때 더 사랑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은혜시대에는 오히려 당신의 종을 멸망의 자식보다도 더 시련을 당하도록 한 일도 있으나 세계 전멸의 징벌이 올 때 자기의 미약을 깨닫고, 여호와를 바라보는 자는 절대로 불의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사40:10~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미약을 아시고 미약한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부탁하는 간곡한 심령이 있다면 절대 책임을 져 주신다는 것이다.

  

2. 뜻을 돌이키지 못할 일 (7~9)

  
주님께서 곧게 줄을 치고 쌓은 담을 보여 잡고 섰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다림줄을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거든 다시 용서치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삭의 산당이라도 황폐되고 이스라엘의 성소라도 훼파된다는 것을 말했다. 이것은 다림줄이라는 심판의 경고이니 심판의 경고를 하여도 받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인 이삭이나 야곱의 집도 용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육적 이스라엘도 아모스 선지의 경고를 듣고 회개치 아니할 때 멸망하였거든 영적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교회가 말세의 경고를 등한히 여긴다면 사랑하는 교회라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말씀대로 재앙을 나리는 것이니 재앙의 날에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말씀을 순종치 않을 때 책임을 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속는 자는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니 결코 재앙을 받지 아니하리라 생각하면서 짐짓 태만한 자다(사28:15).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언약을 순종하는 것보다도 자기의 수단 방법을 쓰면서 문제없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이스라엘 말기에 무서운 지진이 나는 2년 앞에 농촌에 뽕나무를 재배하던 아모스에게 묵시가 임하고 또 외친 것은 말세에 무서운 환란이 지진같이 세계를 불태우는 전쟁으로 될 때 나가서 외쳐야 할 심판의 경고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아모스 선지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을 책망하며 네가 이 경고를 순종치 아니하면 너는 반드시 네 집의 자녀까지 전멸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듣고도 순종치 아니할 때 이스라엘은 망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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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종된 자의 받을 축복과 재앙 - 사65:8~16


종된 자의 받을 축복과 재앙  

-사65:8~16-

 8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혹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9 내가 야곱 중에서 씨를 내며 유다 중에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 거할 것이라 10 사론은 양 떼의 우리가 되겠고 아골 골짜기는 소 떼의 눕는 곳이 되어 나를 찾은 내 백성의 소유가 되려니와 11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12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13 이러므로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 14 보라 나의 종들은 마음이 즐거우므로 노래할 것이로되 너희는 마음이 슬프므로 울며 심령이 상하므로 통곡할 것이며 15 또 너희의 끼친 이름은 나의 택한 자의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주 여호와 내가 너를 죽이고 내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서    론  
하나님은 종을 들어 쓰시되 시대가 바뀌는 그날에는 시대적인 새로운 법을 따라서 그때 종으로서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은 주인이 방법을 고칠 때는 고치는 방법을 반대한다면 그 집에서 축출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심판기가 올 때 종들은 어떤 방법으로 판단하느냐에 대하여 본문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1. 참포도에 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서 판결이 올 것이다(8)

우리는 진액을 같이 받은 종이라도 주인이 요구하는 즙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써 판결 받는 것은 요15:2과 같이 되는 것이니 과실을 맺지 않은 가지는 제하여 버리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맺게 한다는 말씀과 같다. 가지가 진액을 받는 것은 즙을 바로 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즙이라는 것은 맛이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모양은 포도 같으나 들포도 맛이 된다면 진노를 받을 것이다(사5:4). 이것은 본질이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본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 비밀을 말한 것이다.  어떤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변하게 한다면 이것은 개포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종이라 하는 사람은 주인과 종과의 질이 같아야 될 것이다. 주인은 남을 극히 사랑해서 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보내는데 그 종이 그 사람을 해치는 마음이 있다면 이 종은 용납할 수 없는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근본적인 기독교의 본질인 사상, 중심, 양심에서 벗어난다면 이것은 개포도라 하는 것이다.




  2. 성산을 사모하느냐 잊었느냐 하는데서 판결이 난다 (9~11)

하나님께서 말세 종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성산의 축복이다. 살아서 새 시대의 성산을 들어가야 할 새 시대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오히려 잊고 세상 인간 운명에 맡기는 그 현실주의에 떨어진 자는 칼에다 붙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심판기가 올 때에 살아서 안식 성산에 들어간다는 그 사상과 목적을 부인하는 종은 원수의 손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을 찾는다 하여도 주시겠다는 축복을 등한히 하는 사람에게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죽어서 천당을 가는 것은 시인하면서도 살아서 성산의 축복을 받는 것은 부인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언서의 말씀을 듣고도 가하면 재앙을 받고 감하면 거룩한 도성에 못간다는 (계22:18~19)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을 택하는 일 (12)

종이라는 것은 언제나 주인이 즐거워하는 일만을 순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은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요, 주인의 것이니 주인이 즐거워하는 일만을 하지 못하면 그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극진히 사랑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환란 중에 양떼를 사랑해서 죽지 않고 살아서 성산에 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하나님은 즐거워하는데 이말 자체를 기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러도 대답도 없고 듣지도 않으니 이것을 악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된 종이 되려면 시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순종해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축복이 올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시대가 올 때 십자가 와 부활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는 핍박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종도 시대적인 비밀을 전할 때 사도적인 순교의 생활이 아니라면 참 포도송이라고 할 수는 도저히 없다.




  결    론
  

이러므로 순종하는 종은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노래할 것이로되 화를 받는 종은 주리고 목마르고 수치를 당하고 마음이 슬퍼서 통곡하게 되며 저주거리가 됨은 여호와께서 친히 그 종을 죽이고 복 받는 종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아무리 종이라도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라고 했다.  이것은 시대적인 진리의 역사를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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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진노의 날에 아끼는 백성 - 말라기3:16~4:3


진노의 날에 아끼는 백성  

-말 3:16~4:3-

말라기 3 :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라기 4 :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서    론   
하나님은 진노의 날이 올 때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은 특히 더 아껴주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무서운 시험이 올 때 부모가 자녀를 더 보호하고 아끼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노아 홍수 때에도 진노의 날에 그 가정을 더 아꼈고 소돔 고모라성이 불탈 때에도 롯의 가정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제 어떠한 자가 아끼는 백성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1. 시련 중에도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 (3:3)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는 시련을 시키면서 믿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시련을 시키면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기분이 좋으면 연보도 하고 기도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그만 둔다면 아끼는 백성 될 자격이 없다. 예를 든다면 친구에게도 기분 좋으면 가까이 하고 기분이 나쁘면 박차버린다면 그 친구는 사귀는 것이 불리할 것이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아낄 사람을 아무나 그대로 두고 아낄 수 없다는 것이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 (3:8~12) 


십일조라는 것은 축복 받은 백성의 해야할 의무적인 한 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할 문제가 아니고
첫째: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것,  
둘째:하나님의 집에 드릴 것,
셋째:순수한 수입에서 드릴 것.
이것을 온전한 십일조라 하는 것이다. 만일 마지못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있고 어떤 교회의 체면으로 드린다든지 또는 이단적인 사단의 회가 되는데 드린다든지 또는 십일조를 순수한 소득이 아니고 자기의 어떤 이익을 붙여 놓고 드린다는 것은 온전한 십일조가 못된다.



3.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이다 (3:16) 


이것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되 이름을 더립힐까봐 조심하고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존중이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말 한마디를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 한다(시34:11~13).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훼방하고 모략한다면 이 사람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존중히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라 할 것이다(마6:14, 마5:24).



결    론 


심판의 목적은 아낄 자는 아끼고 없앨 자는 없애는 것이 심판인 것이다(4:1~3).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불탈 때 초개같다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뛴다는 것이다. 모든 악인은 불에 살라져 재가 되고 의인은 땅에서 새 나라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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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3일 토요일

말씀의 칼 : 진노의 날에 지혜로운 자가 되자 - 다니엘12:1~4


진노의 날에 지혜로운 자가 되자  

-단12:1~4-

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서    론  
하나님은 진노의 날이 올 때는 지혜로운 자를 특히 들어서 쓰는 일을 하신다. 은혜시대 보다도 더 빛나는 역사를 일으켜 주신다.  진노의 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지혜인 것이다. 이제 진노의 날에 지혜로운 자는 어떠한 자인가 하는 것을 본 성경을 보아서 알 수 있다.



1. 연단중에서 정결케 사는 생활이다 (단11:33~35) 

지혜라는 것은 연단 중에서 깊이 깨달아 지는 것을 하나님이 주는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방 세력이 아무리 강하고 또는 대중이 북방과 타협하는 이러한 시기에도 지혜로운 자는 동참치 않고 쇠패해지며 압박을 받아도 이전보다도 더 정결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 할 때 때가 다 되어 기한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환경이 나빠지고 국제적인 대세가 그러하니 현실을 따르자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하나일 것이다. 지혜라는 것은 대중을 따르는 것이 지혜가 아니고 대중이 다 옳다해도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알아내는 것을 지혜라 하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많은 사람이 하는대로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쭉정이에 불과하다.


2.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 (단12:3)

 

지혜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 알고 있는 자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내가 분명히 알았으니 어떻게 하든지 남을 지혜롭게 해서 살 길로 인도해 보려고 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약3:17)을 보면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지혜가 있는 자라면 남이 죽는 것을 볼 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지혜로운 종이라면 환란이 올 때 많은 사람을 구원해 내는 전도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적인 말씀을 바로 전할 때 환란 날에 구원받을 사람은 다 그를 따르게 될 것이다.



3. 지혜로운 자는 시기를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단12:10)

 

우리는 대중을 인도하는 사람이니 시기를 똑똑히 가르칠 줄 모른다면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가 없다. 누구든지 주 재림시의 지혜 있는 자는 하나같이 깨닫게 될 것이다(사19:12).
  

진노의 날이 올 때 깨닫는 자는 깨닫고 악한 자는 더 악해질 것이나 악한 자에게 지혜로운 자가 쫓김을 당하게 될 것이다(사66:5).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는 다수요 지혜로운 자는 소수가 되기 때문이다.



결    론

 

우리도 진노의 날에 지혜로운 자가 된다면 시대는 지혜로운 자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날까지는 무신론자의 궤휼적인 세력이 형통했지만 진노의 날에는 지혜로운 자만 해같이 빛나는 시대가 오니 이것은 영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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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칼 :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 - 스가랴9:9~17


여호와의 땅에 빛날 일  

-슥9:9~17-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倍)나 네게 갚을 것이라 13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14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17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서    론  
하나님은 당신의 땅에서 빛나게 살 수 있는 백성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한다는 것을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목적한다는 이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죽어 천당만을 목적하고 이 땅에서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비밀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스가랴 선지는 육적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을 받고 돌아올 때 묵시로 본 것은 전부가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되는 일을 보여준 묵시다.  
  

이제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해서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본문에서 알 수 있다.



1. 예수께서 나귀 타고 오심으로 되는 일 (9) 

만일 예수께서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이 되었다면 성경은 그대로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귀를 타신 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이루기 위한 왕으로서 상경했던 것이다. 모든 제자들은 그때 단번에 예수님이 왕이 되는 줄 알고 기뻐했던 것이다. 모든 대중은 예수가 왕이라고 호산나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어긋났던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볼 때 절망 낙심해서 원망하고 욕하며 침을 뱉고 비웃었던 것이다.  

이것은 즉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호기심 명예심에서 날뛴 것 뿐이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자기네 나라에서 왕이 되고 세계를 다스린다는 신앙관이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본문 성경인 슥9:9이하를 똑똑히 알았던들 그렇게도 낙심해서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성경에서 일점일획도 어기지 못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성경을 자기 욕망에 채우는 허영심에서 날뛰었던 것은 사실이다. (슥9:9)에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만 보고 그 아래는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금일도 성경을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자기 주관에 붙이는 신앙이란 어려운 일이 올 때 넘어지고 말 것이다.


2. 이방에 화평을 전하는 역사 (10)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딸아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먼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한 후에 그 정권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르고 세계를 통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말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인을 짐승같이 보는 과오를 범했던 것이다. 지금도 유대교인들은 이방은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흑암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만일 바리새교인들이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았던들 바울을 그다지 박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위 정통을 찾는 바리새교인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하여 염병같은 놈이라고 했다. 금일도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남을 비판하는 자는 바리새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3. 언약의 피로 구원하는 역사 (11~12) 

하나님이 이 세계의 땅을 빛나게 하는 역사는 언약의 피를 인하여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올라오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다. 이러한 성경을 모르는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 피로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 있고야 예수가 왕이 된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대로 살아서 왕이 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금일까지 이루어진 역사는 (9~12)까지 해당된 역사라고 본다.



4.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이방을 치는 역사 (13~14) 

이것은 종말의 사명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날까지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서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는 원수를 치는 역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는 원수의 세력을 치되 용사의 칼같이 역사해서 치는 것이다.  
  

만일 금일에 종말적인 역사가 있어야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헬라적인 문명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협상적인 기독교 사상 운동을 한다면 이 말씀과는 반대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역사하기 때문이다.



5. 여호와께서 백성을 호위하는 역사 (15) 

하나님은 이방의 세력을 용납지 않고 치는 역사를 할 때 당신의 백성이 절대적으로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호위를 한다는 것이다(단12:1). 다니엘 선지도 북방의 세력이 남방을 침노하는 때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호위하기 위하여 미가엘 천사를 동원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호위해 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원수를 무서워하고 원수와 타협을 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6. 양떼같이 구원하는 역사 (16) 

이것은 영적 구원을 말한 것은 아니고 적군인 원수의 피가 강같이 흐를 때 자기의 사람을 목자가 양을 보호함 같이 구원해 준다는 것이다. 이때 구원을 받는 자는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고 형통하며 아름다움이 크게 이루어지므로 소년과 처녀들이 건강을 얻어 복된 땅에서 장수하며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결    론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시대와 하나님의 말씀과 시대와 하나님의 역사를 잘 구분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되는 일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를 통하여 기록할 때 어떻게 여호와께서 역사하므로 여호와의 땅에 빛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본문은 순서있게 말한 것이니 우리는 빛나는 일의 축복을 받으려면 절대 이방의 헬라적인 사상과 맹렬히 싸우는 용사가 되어야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헬라라 하는 것은 속화된 문명을 가르친 것이니 (다니엘 8장)에 파사의 문명을 수양으로 말했고 헬라의 문명을 염소로 말한 것은 사상을 보여준 묵시라고 본다. 파사는 스룹바벨의 역사를 적극 후원하고 승리하도록 스룹바벨에게 권리를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헬라를 친다고 한 것은 종말의 기독교의 헬라적인 사상이 교회를 망칠 것이니 이것을 용납지 말고 쳐야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금일의 종교 위기는 헬라적인 사상이 강단에 서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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