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1:~25


성 경 : 예레미야 21장
제 목 : 회개 없는 기도


1. 시드기야 왕에 대한 예언 : 1~7

『 1 시드기야 왕이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2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 

본문은 시드기야 왕이 난국을 당하여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15:11절에 "내가 진실로 내 대적으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이다. 선지자를 불신하던 왕이 선지자에게 기도원조를 부탁했으나 이 모습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실함이라고는 들어 있지 않았다.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고 한 시드기야의 간청은 당면한 난국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 여하를 알아보려는 얄팍한 마음일 뿐,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왕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혹시 그 모든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가 우리를 떠나리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왕의 오판이었다. 여호와는 죄인을 거저 구원하시는 신(神)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회개 없이는 절대로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코자 하는 하나님의 공의(公義)이기 때문이다.
"... 하던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왕이 보낸 자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씀이 임한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 부탁에 대해 즉각적인 거절의 뜻을 나타내신 것이다. 임한 말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3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는 시드기야에게 이같이 말하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너희가 성 밖에서 바벨론 왕과 또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과 싸우는 바 너희 손에 가진 병기를 내가 돌이킬 것이요 그들을 이 성 중에 모아 들이리라 5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 』

시드기야 왕이 원하던 바와는 정반대로 예루살렘이 북방 칼 앞에 멸망케 되리라는 예언만 쏟아져 나오고 있다(렘 37:8~10).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심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위한 사랑의 마음에서이다. 회개도 없이 육적인 도움만 바라는 그들의 사상은 깨어져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와 분과 대노"로 가슴 아픈 징계를 행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성도들을 향한 귀한 교훈이 된다.

종말에 북방세력을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이루는 말씀 곧 새 일(렘 31:22)을 외치는 '한 제단'이 등장해 있으나, 대다수의 교권에서는 시드기야처럼 애굽(미국)의 도움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 구약 때와 꼭 닮았다. 모든 강대상에서 교세의 확장과 성도의 물권축복을 위한 기도는 홍수와 같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북방문제에 대하여는 한 마디의 기도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참되이 기도하는 제단의 부르짖음은 그 내용이 낯설고 시대착오적이라 하여 이단취급을 받고 있으니 어두운 시대이다. 그러나 정작 북방이 홍수물처럼 내려오는 그날에는 다수의 교권이 자신들의 생각이 오판이었음을 깨닫고 급한 중에 '종말론'과 '살 길'을 알아보려고 '새 일' 제단 앞에 사람을 보내어 장차 될 일을 묻겠지마는, 그것은 진실한 회개의 정신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라 단지 급한 불을 꺼보려는 기회주의적 몸부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노(大怒)를 피할 수가 없다는 교훈이다.

장차 암 8:9~13절과 같은 현실이 한국 땅과 세계교회에 임할 것이다. '새 일'을 멸시하던 포도원은 질려와 형극이 가득한 개포도밭이 된다 하셨다(사 5:5~8, 7:23). 그러나 가련한 자들과 진실한 자들과 참된 성도들은 북방세력으로부터 구해내시겠다 하셨으니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렘 16:15~23, 31:7~22). 하나님은 '새 일'이라헬에게 최후의 소망이 될 것이라 예언하셨다(렘 31:17~22). 교회가 가질 최후의 소망으로 '새 일'을 주셨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장차 '새 일'을 대적하는 교권과 정권은 재앙과 칼에 죽되 조금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 채 패망한다는 것이 다음 예언의 참뜻이다.

 
『 6 내가 또 이 성에 거주하는 자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치리니 그들이 큰 염병에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7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① 사람이나 짐승이 모두 다 염병에 죽고(6절).
② 전쟁과 염병으로 다 죽고 남은 자들이 또 다시 원수의 손에 잡히고(7절上).
③ 그 잡힌 자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원수의 칼에 죽게 되리라 하셨다(7절下). 이와 같은 현상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너무나도 잔인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비참하여 동정을 줄 만도 한 이 재앙의 배후에는 절대로 동정할 수 없는 '깊이 숨겨진 교회의 악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교회가 당하는 형벌이 아무리 크다 한들 교회가 하나님께 지은 죄악의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욥 11:6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

  
2. 백성들의 항복을 권함 : 8~10

『 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9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

유다가 살 길은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 전쟁에서 얻어지는 '노략물'은 근근히 얻어지는 것이며 위태한 중에 수확(收穫)되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의 생명이 위기에 빠져 있지만 그들이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항복하면 그나마 근근히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다 왕이 항복하지 않고 친애굽 노선을 취했으므로(겔 17장)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가 내려왔던 것을 상고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21세기 교회에 다시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의 교회가 자기의 죄악으로 인해 내려오는 북방세력을 막아보려고 하나님을 떠나 남방 강대국을 의지한다면, 시드기야와 유대교회가 당한 황폐와 멸망을 그대로 당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짧지만, 저 "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구약 모든 예언서를 구구절절이 무장해야 하니 '진정한 파수꾼'은 1분 1초라도 무가치한 일에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하신 말씀은 이때를 위한 말씀이다. 예언서(기름)를 무장(예비)한 자는 이스라엘 교회가 미혹을 받아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이 될 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음성에 벌떡 깨어 흑암을 물리칠 예언의 등불을 밝히고 신랑을 영접해 혼인잔치에 들어가게 되지만, 생명의 말씀을 주어도 이단이라 하며 핍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구약 때 그러했던 것처럼 '사망'으로밖에 나아갈 길이 없을 것이다.

 
『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은 복을 위함이 아니요 화를 위함이라 이 성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로 사르리라 』

"나의 얼굴을 이 성으로 향함"이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진노를 내리기로 결심하셨음을 의미한다. 이제 유다 나라가 멸망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빚어지는 철저한 심판인 것이다. 고로 유다가 하나님이 내려보내신 북방군대에 항전(抗戰)한다 함은 결국 하나님의 경영에 대항하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살 길은 9절! 곧 정하신 몽둥이 앞에 항복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렘 27:6~1).

  
3. 왕가(王家)와 백성에 대한 심판 선고 : 11~14

『 11 유다 왕의 집에 대한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다윗의 집이여 너는 아침마다 공평히 판결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

이 말씀은 유다 왕가(王家)의 집권자(執權者)들을 향하여 주신 예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이 두 차례 연거푸 나왔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힘주어 말씀하고 계심을 뜻한다. "다윗의 집"은 다윗과 같은 의(義)로운 임금이 세운 기반(基盤)에서 의로운 통치(統治)를 행할 왕가(王家)이다. 이러한 지위에 앉아서 불의(不義)를 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모순된 일이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이여"라 부르시면서 불의한 집권자들이 의롭게 될 것을 권고(勸告)하고 계신다.

 
『 13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4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골짜기와 평원 반석"은 작은 산들로 골짜기를 이루고 또 여러 평원(平原)을 갖고 있는 유대 땅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지리적 환경을 믿고 자신들의 나라를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요, 반석 같은 땅으로 알 때 그들은 자연히 하나님 대신에 다른 것으로 마음 든든해 하는 범죄를 행케 된 것이다. 하나님 아닌 것으로 든든해 하는 것!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하나님을 거역하여 재앙을 당하게 된 유다가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여 안일한 대비태세를 보이고 있으니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대로 벌하시겠다 말씀하신 것이다.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하심은 장차 유다 땅이 바벨론 군대의 공격으로 인해 환난의 불길에 휩싸일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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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2장
제 목 : 유다 모든 왕들에 대한 경고


1. 회개 권고와 형벌의 선고 : 1~9

『 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

"왕의 집"에 내려가 예언하는 행동은 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그가 가서 증거할 예언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에 익숙한 왕들이 들으면 반드시 격노케 될 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아모스와 같이 하나님만 믿어 극히 담대해지는 일이 없고서는 이와 같은 명령은 순종키가 어려운 말씀이다(암 7:13). 그러나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이 순종하였듯이 선지자의 사명을 가진 이 시대의 종들도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읽어 다시 예언하는 데 있어 주저함 없이 나아가야 한다.

1절 초두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로 시작하여 2절 끝에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로 끝내는 것을 보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힘껏 높이고 있다. 이것은 그 듣는 자들로 말씀의 앞에서 두려워 떨라는 의미이다. 기독교는 계시(啓示)의 종교로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앞에 그 백성이 100% 믿고 떨어 순종할 때에만 "기록된 대로" 축복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종교이다.


『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당한 자를 압제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

"공평"이란 치우침 없는 판단을 의미하는데 옳고 그름을 분별함이다. 뒤에 이어 나오는 "정의를 행하라" 함은 각 사람에게 합당한 권리를 찾아주라는 것이다. 이것은 뒤에서 즉시 해설되고 있으니 곧 "탈취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라"는 명령이다. "이방인"과 "과부" "고아", 이 셋은 성경에 흔하게 등장하는 약자의 대명사로서 하나님이 특히나 불쌍히 여기시는 이들이다(약 1:27).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은 여호야김 왕이 선지자 우리야를 잔인하게 죽인 사실을 지적하며 경고한 말씀이다(렘 26:20~30).


『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마는 5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6 나 여호와가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 7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병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순종할 것을 독촉하는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겠지만(4절),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파멸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결과로 가게 되는 (시기상) 중요한 단계에서 선포된 말씀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확인시키는 의미에서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셨다(히 6:13).

 "이 집이 황무하리라"(5절) 하셨는데, 예언을 듣지 않은 결과로 렘 39장에 그 결과가 기록됐다.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6절) '길르앗'은 아름다운 목장으로 유명하고(길르앗=도피성, 수 20:8), '레바논'은 울창한 백향목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유다 민족이 죄를 회개치 않음으로 '광야'와 같이 되리라고 하신다.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7절) 유다 민족을 침략하여 파괴할 짐승의 나라 바벨론의 군대를 의미한다. 빛이건 어둠이건, 선인이건 악인이건, 상급이건 보응이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장 중에서 결정되고 움직인다. 고로 예언에 순종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이다

(사 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 8 여러 나라 사람이 이 성으로 지나며 피차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에 이같이 행함은 어찜인고 하겠고 9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유대인들의 마음은 너무도 강퍅하여서 바벨론의 1차 침략(B.C.606)을 당하고서도 매맞은 이유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던 상태이다. 그러니 다가올 2차 몽둥이를 예언하고 있는(B.C.599년경)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고로 하나님은 패역한 그들에게 2차 파멸의 이유를 친히 설명해 주고 계신다. 아담의 가정이 뱀의 말에 홀려 넘어간 것과, 솔로몬 성전이 사단(우상)에게 홀려 넘어간 것처럼, 오늘날의 예수님의 피로 사신 수많은 교회들도 북방을 본부로 하여 퍼져나온 '평화공존' 궤휼정책에 완전히 홀려 넘어간 상태가 지금이니 이 시대의 성민이 다시 예언되는 예레미야서를 청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택자는 돌아온다(거짓 평화공존에 연합된 종교인들은 100% 심판의 대상이다). ☞ 신앙문답 112번.

  
2. 여호아하스의 비참한 운명 : 10~12

『 10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 아비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12 잡혀간 곳에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

요시야의 큰 아들 여호아하스가 애굽에 사로잡혀갈 것을 예언하면서 포로지에서 생을 마감할 것을 말씀했다.

  
3. 여호야김의 죄와 그 형벌 : 13~23

『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을 꾸짖는 말씀이다. 그는 백성을 고용하고도 노임을 주지 않던 못된 왕이었다(약 5:4).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자기 집을 화려하게 짓는 것에 있어 경쟁심이 발동하는 따위의 인격으로는 왕위를 유지할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오늘날도 성도를 치리하는 많은 목자들이 교인 1명의 영혼구원(천국)과 육체구원(천년왕국) 문제보다도 <신자 등록수>와 <화려한 건물짓기>에 경쟁적이다. 교회의 외형 통한 자존심 보존 따위로 과연 하나님이 맡겨주신 제사장의 직무를 다할 수 있겠는가?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부친 요시야의 모범된 생애를 들면서 그를 꾸짖으신다. 지금의 개신교는 16세기에 요시야와 같은 루터가 등장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축복받아 세워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개신교가 또 다시 계시록과 예언서로 종교 개혁을 단행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은 여호야김의 악행으로 떨어져 있다는 증거이다. 교회 안에 극도로 죄악이 가득 찬 때가 지금인 것을 예언서를 먹은 자가 아니고서는 알 자가 없다.


『 17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

부친과는 정반대로 백성에게서 착취하기를 그치지 않았고 의인을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을 지적하며 여호야김 왕의 회개를 독촉하고 있다.


『 18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슬프다... 슬프다" 여호야김 왕이 북방의 적군에게 죽게 될 것과 그의 죽음을 슬퍼할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을 말씀하셨다. 왕의 죽음에 그 백성이 안타까와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잔악하고 포학이 얼마나 심했던가를 짐작케 해 준다. 오늘날도 자기 배를 채우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북방이 내려오는 날 여호야김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20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가 다 멸망하였음이니라 』

높은 곳에 올라 여호야김의 비운을 외치라 하시는 건, 그의 운명이 이 예언대로 마감될 것이 확실함을 강조한 것이다. "너를 사랑하는 자"란 왕의 가족들과 그의 근친들을 가리키는데, 여호야김이 죽는 환난 날 함께 망하리라는 의미다.


『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던 사실을 지적하며, 그로 인해 그 국가가 멸망하게 됨을 예언하신다. 건강할 때 몸 돌보고, 높아질 때 겸손하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며 왕된 자의 도(道)이건만 그는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며 자신만을 돌보았던 것이 나라를 패망케 한 죄악이 되었던 것이다."네 습관이라"이라 하심은 멸망당할 여호야김의 불순종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긴 세월을 통해 쌓여 온 고질적인 죄악이었음을 말해준다.


『 22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23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여호야김 밑에서 일하던 지도자들도 바람에 불려가는 연기처럼 모두 다 멸절되리라는 뜻이다. "레바논에 거하며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란 높고 영광된 자리에 거하면서 환난의 두려움을 모른 채 교만해 날뛰며 사치했던 왕을 비유한 말씀이다. 교만자는 극도로 높아졌다가는 반드시 더럽고 가련하고 미천한 처지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는 성경 곳곳에서 증명되는 진리이다(사 28:1~414:5~23암 4:1~36장).

  
4. 여호야긴의 죄와 그 형벌 : 24~30

『 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25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26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미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에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고 27 너희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혀 갈 것과 그의 모친 또한 쫓겨나 죽을 것을 예언하신다. "오른 손의 인장 반지" 이것은 그 소유자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보물로서 중요한 문서에 인을 칠 때 사용되는 도장이었다. 여호야긴(고니야)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와 같이 긴밀하고 중요한 관계였다 할지라도 죄를 회개치 않는 한 (공의 법칙에 의해) 그는 사정 없이 내던져진다는 것이다.


『 28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破器)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3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無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

왕의 장래가 얼마나 비참할 것인가를 탄식한 예언이다. 구약 유다에 있었던 사건은 인간 종말에 교회에 있을 심판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들어야 한다.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사람이 천하여 쓸모없이 된 그릇을 내어버리듯이 여호야긴도 하나님 앞에 그렇게 던지움을 당할 것이라 한다. 본래는 그렇게 될 일이 아닌데, 왜 변질되어 불순종함으로 이와 같은 일을 자초했느냐는 탄식조의 말씀이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유대 민족의 말로(末路)를 대표하는 여호야긴과 그 가족의 비참한 운명을 내다볼 때 느껴지는 원통함과 탄식이 배어져 있는 말씀이다.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와 같이 인간 종말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총애를 받던 기독교회가 구약 교회가 걸어갔던 이 모든 일에 유념치 않고, 다시 예언하는 말씀을 무시하여 오메가의 미혹 앞에 끌려간다면 북방 칼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유대 왕가에 대한 예언을 어찌하여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시키느뇨?"라고 말하는 모든 이들은 사단의 자식들이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복음을 주신 궁긍적 목적은 인간 종말의 세계 역사가 계 10:7절처럼 되게 하시어, 계 11:15절의 나라를 이루기 위함에 있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의 역사가 동일함을 깨닫고 구약 교회가 당한 이 비운을 세계적으로 선포하여 세계 교회로 하여금 이 예언의 확실성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시 예언하라"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가 된다. 참 종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작은 책'과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꿀같이 먹고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뿐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멘!"


(신앙문답) 112. 지금 세상이 평화를 부르짖는 이 때에 
기독교 신자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답) 우리 기독 신자는 '평화'를 반대할 것도 없고, '평화'를 위하여 활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잠깐동안 잠잠한 때'도 있고, '홀연히 환란이 임하는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애쓴다 하여도 말씀대로 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으니 우리는 말씀대로 나리는 역사를 날마다 받아야 할 것이요, 말씀대로 될 장래를 분명히 알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이, 날마다 우리의 사는 목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새 시대에 두고 그날의 수고에서 만족을 찾고 충성을 다할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니,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에 순종할 의무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주의 뜻이라면 순종해야할 것이며, 아무리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 하여도 주의 뜻이 아니라면 순종치 않아야 할 뿐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다는 것은 교만에 가까운 일이니,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생각밖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게 될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들은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단 3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우리의 생각밖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과거 성도들의 삶에서도 그러했지만, 이제 우리 시대에는 더욱 분명한 사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부르짖는 세상' 속에서 말씀대로 오는 평화 왕국을 위하여 활동하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격을 무장하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인위적인 평화'라는 것은 '잠깐'인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므로) 인위적인 평화에 목적을 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진 뒤에 오는 완전한 평화 왕국에 목적을 두고 심판 날에 두려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인격과 신앙을 다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내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전 생활의 목적으로 두고 싸워 나가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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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3장
제 목 : 참 목자와 거짓 목자


1. 거짓 목자와 참 목자 : 1~8

『 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2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다(왕, 방백, 제사장, 선지자). 그들은 "목자"라는 선한 간판을 달고도 "양을 흩는"악행을 저질렀다. "양무리를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함"은 백성을 잘못 지도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나라 전체를 이방국가로 쫓겨나게 만든 악행을 말한다. 이들은 또한 교세를 이루어 참 선지자의 발붙일 곳을 없이 하고, 환난을 앞둔 백성에게는 ' 평강하다'는 마취제를 놓아 망하게 하였으며, 뒤로는 갖가지 우상숭배를 행하면서도 성전에 나아와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하고 부르짖던 자들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집을 맡은 자들이 사단의 종이 될 때 다스림을 받는 백성 전체가 먼 이방 나라로 쫓겨남을 당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못한 자들의 설교로 인해 많은 양 떼가 '후 3년 반'으로 쫓겨들어가 멸망케 될 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찌 불타는 마음으로 다시 예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망하게 될 자들을 향해 나팔을 불지 않으면 그들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값은 파수꾼에게서 찾겠다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자(겔 3:18,20, 33:6,8).

겔 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아멘, 그렇게 하겠습니다.

『 3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4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남은 자"란 바벨론의 포로기간 70년이 차면 돌아올 『스룹바벨 단체』를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남은 자'에 대한 예언은 인간 종말에 '3대 화'를 면하고 새 천년 안식세계를 차지할 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3대 절기> 중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의 축복을 받을 자들이다. 이 거대한 초막절 역사에 있어 선구자로 불려와 쓰임받는 종이 '스룹바벨'이요, 그가 받은 인권(印權)과 머릿돌과 다림줄에 연합된 세계적인 종들이 144,000명이다(학 2:23. 슥 4:7,10). 이들의 역사로 수많은 양떼가 큰 환난에서 나와 새 시대로 들어간다(계 7:9~17).

"두려워 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목자(牧者)란 양 떼에게 꼴을 먹여 평강과 안식으로 인도하는 자인데, 참 목자장(벧전 5:4) 예수님께서 붙들어 쓰시지 않는 이상은 모두 교권과 재물에 얽혀 사단의 종이 되고 말 것이다. 구약 종말을 알리기 위해 예수님이 보내신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다니엘을 비롯한 모든 소선지자들이 받은 말씀들이 이제 신약 종말에 와서 다시 예언되는 것이니(계 10:7~1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하신 것은 주 재림기를 당한 이 때의 종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거짓 선지자가 판을 치는 것은 구약 종말과 같은 영계적 흑암이 온 지구 땅을 덮었기 때문이다. '빛'은 '밤'에 필요하다. 고로 '영적인 밤'에는 '영적인 빛'이 필요한 것이다. 사단이 내어보낸 흑암을 뚫을 만한 빛은 예언의 등불뿐이다(마 25:1~10). 그러므로 '기름'을 예비하라는 교훈을 주신 것(마 25장)은 예언서를 깨닫게 하시는 '일곱 영'의 성령과 동행하라는 뜻이 된다. 9가지 은사의 자랑으로는 누구도 종말의 흑암을 뚫을 수 없다.

 
신랑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다 지쳐 졸며 자던 열 처녀(기독교)!  왼편의 다섯이 쓰러진 것은 '예수님의 피'가 없어서란 말인가? 아니다! 예복을 입고 신랑을 기다린 것을 보면 저들도 분명 예수 피로 거듭나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던 자들이다. 그런데 어이하여 잔치문 밖으로 쫓겨났단 말인가? 바로 예언의 등불(벧후 1:19)을 밝힐 충분한 기름을 준비치 못했기 때문이다. 마태~유다서까지는 밝았으나, 계시록과 예언서에 무지했다는 것이다.

구약을 추억하자! 문설주에 피 바르고 홍해를 지나갔던 이스라엘! 그들이 양의 피로 죽음의 신을 이기고 홍해를 갈라 출애굽하고도 어찌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받아 온(계 5장의 인권인수를 예표) 율법(법궤)에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자(구약)를 살펴보면 실물(종말)이 보인다. 오늘날의 성도들이 예수님 피 바른 것에 만족하여 그분이 피로 산 법궤(계시록)를 무시한다면 새 시대(가나안)에 갈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 율법과 시편과 선지자의 글(눅 24:44)을 타서 꿀같이 먹으면 여호수아, 갈렙과 같은 영계가 되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의 영계로 떨어져 출애굽을 하고도 다시 애굽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종말을 비추어놓은 율법서의 교훈이다. 광야에서 멸망한 그들도 모두가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이었음을 기억하라.

말세에 두 증인의 계통인 144,000명은 계 14:4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적하는 지도자, 성도들은 민 14:4 "한 장관"(=작은 뿔)을 따라가게 된다. 영적으로 애굽행을 택하는 것이다. <평화공존, 탈냉전, 세계정부, 종교단일화> 등의 모토는 하나같이 애굽을 사모케 하는 뱀 혓바닥에서 나오는 소리들이다. 요약컨대 오늘날 예수 믿는 20억의 인구 중에 144,000명과 그들이 인도해 들이는 흰무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련한 5처녀가 되고 만다는 결론이다.

지금은 은사로써 역사할 때가 아니다. '남은 꼴', '남은 물'(겔 34:18)인 새 일을 무장한 자들만이 역사할 수 있는 시대이다. 예수님처럼 "기록되었으되"(마 4:4,7,10)라고 외치지 않으면 마귀의 미혹을 이길 수 없는 때이므로 은사의 효력은 점점 걷히우게 된다. 기록되었다는 건, 인간 종말에 되어질 일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 10:7)에 빠지지 않고 적혀 있다는 뜻이다(사 34:16).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이 바로 지혜로운 처녀들만이 예비했던 '여분의 기름'인 것이다. 아멘!

『 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

다윗의 족보에서 "한 의로운 가지"이신 예수님이 탄생하시어 세계적인 영적 이스라엘을 일으켜 천년왕국을 이루신다는 예언이다. 초림의 예수님은 십자가로 승리하시고 승천하셔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 지금은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영광의 몸으로 다시 오실 때이니, 그분이 피로 사서 열어주신 말씀에서 진액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포도나무 가지라 할 수 없다. 구약 때와 같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활동하는 때가 지금이다. 고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뿌리로 하여 돋아난 '한 가지'에서 거짓 선지자들과 싸워 이길 '순'이 돋아나게 하시는데, 이것이 스룹바벨 순의 역사이다. 택한 종들(144,000)은 모두가 '순'으로서 양 떼를 살려 1,000년 안식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인도한다.

하나님은 구약 때 스룹바벨 총독 휘하에 약 5만 명의 순과 같은 백성들을 붙여 고토(故土)로 인도하셨다. 이 모습 그대로 신약 종말에도 스룹바벨 총독의 역사로 전 세계의 남은 자들을 모아 새 시대로 이끄실 분은 하나님이시다(다시 예언함으로 학개, 스가랴서 대폭발). 이 일의 성취를 위하여 스룹바벨의 손에 맡겨주신 축복(福)이 3가지 있으니, 곧 다림줄(슥 4:10)과 머릿돌(슥 4:7)과 하나님의 인(印)이다(학 2:23). 이 역사는 현재 성취-진행 중에 있으며 대한민국 땅으로부터 구김살 없이 이루어져 전 세계로 확장될 것이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 하신 역사는 대한민국의 스룹바벨 역사로부터 일어나는 백마 2차 승리의 영광을 뜻한 것이다. 예언서에 무지하여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미련한 5처녀>와 같이 주님을 기다리다가 쫓겨나는 비극을 당하게 될 것이다(마 25:1~).  

 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8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

여기에 나온 맹세(언약)는 두 가지이다.

 유월절로 치고 나온 
모세의 출애굽 역사! -
이 역사는 400년 연대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신 18:15절에 예언한 것처럼 말라기 때 성전 문을 닫고서 400년 만에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영혼 구원을 이뤄주실 것을 예표하였다. 마태복음에서 유다서까지의 내용은 모두 유월절 양 예수님(고전 5:7)의 영혼구원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히 10:1).

 출바벨론 역사 -
B.C. 536년에 스룹바벨이 바벨론으로부터 '남은 자'를 데리고 가나안 고토로 귀국한 역사로서 70년 회복의 역사이다.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돌아온 구약의 출바벨론 역사는 인간 종말에 가서 새 일(렘31:22) 역사 전 세계의 남은 자가 에덴동산(천년왕국)을 차지할 것을 예표하였다(사 46:10).

모세 때의 출애굽 역사가 예수님의 유월절 역사(고전 5:7)로써 참되게 형상화되므로 죄로 죽은 우리(이방)가 살아 값없이 "이스라엘"이 되었다(영혼구원). 이제 "이스라엘" 된 우리에게 구약 때와 같은 출바벨론 역사가 다시 한 번 참되게 이루어져 지상천년안식의 완전한 영육구원을 얻게 되면 성경 기록의 목적이 달성된다. 7~8절 본문에서 출애굽 역사보다 출바벨론 역사가 강조된 것은 예레미야 서책은 죄인 불러다 이스라엘 만드는 책이 아니라, 이미 영적으로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된 성도들에게 "고토(천년왕국)에 들어가라"는 목적으로 주신 책이라는 것이다. 영혼구원의 출애굽 역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사건이나, 이제는 그 피로 사신 말씀이 이루어질 때라는 것이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5~46) 하신 것은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그 엑기스인 "요한계시록"을 다시 전하는 자들이 주님과 함께 새 땅에서 왕권의 축복을 차지한다는 말씀이다. 이 때가 되면 사악한 종교지도자가 많이 나와 다시 예언하는 일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2.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의 사악 : 9~22

『 9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 』 

9~22절까지는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이다(5:31, 14:13~18, 26:7~11, 28:1~17, 29:20~32, 37:18~21). 이 경고를 행하면서 예레미야의 마음이 "상하며 뼈가 떨리며 취한 사람 같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예레미야에게는 거짓 선지자들의 죄행(罪行)에 분노하신 하나님의 진노 영감이 임해 있다(10절).
둘째, 그들로 인해 미혹된(사 9:16) 자기 백성이 당하게 될 수난(受難)이 너무도 비참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 
10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 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

구약 때와 같이 종말에도 영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 곧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라가는 배교의 무리가 기독교 내에 많아질 것을 예언했다(약 4:4, 계 17:1~6).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이것은 한재로 인하여 초목이 말라 버린 비참한 사실을 가리키는데(14:1~9 참조), 인간 종말에 판치는 거짓 목자들로 인해 교회에 이슬 단비가 그치며 푸른 수목 같은 생명의 활동이 수그러 들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들의 행위"란 그들이 달음질하는 향방(向方), 곧 활동하는 목적을 가리킨다. "그들의 힘 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셨으니 그들이 악행하기에 용감했다는 뜻이다(9:2). 교회의 영계가 이러하므로 하나님의 벌을 면하기 어렵다는 이 심판선고는 예레미야를 대하던 당대의 교회에나, 예레미야서를 대하는 현재의 교회에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

이 시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직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사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 안에 사단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요 8:44 "너희(유대인 및 교권)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예레미야 때나, 예수님 때나,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현 시대나, 사단의 교회침투는 계속되다가 
아마겟돈 때에 가서야 용이 잡히므로 선악 간의 영적 대전쟁은 종결되게 된다(계 20:1~3). 예수님 당시 하나님의 성전이 사단의 앞잡이들로 꽉 차게 되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을 도적의 소굴로 만든 장사꾼들을 책망하시며 성전을 청결케 하셨다(요 2:13~).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또 요 12:12절과 마 21:1~ 내용과 같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사 두 번째로 성전을 성결케 하시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시어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셨다.

기도하는 집(사 56:7)인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탐심)이 들어와 판을 치게 된 것은 지도자들의 타락에 그 원인이 있다. 지금도 무신론 정권의 앞잡이가 된 거짓 목사들이 버젓이 강단에 서서 설교하고 있으니 이 기괴한 모습은 구약 때와 다를 바 없다. 명동 성당에는 중이 와서 설교도 하며, 순복음교단 조목사는 불교대학에 초청받아 다음과 같이 강연하기도 하였다.

강연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들

1) 토론이라는 것은 정반합을 이루는 것이지만 대화라는 것은 서로 상호 간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서로 이해를 돕고 화해하고 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기독교와 불교 혹은 카톨릭교, 이슬람교라도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화해하고 협동하고 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종교는 불교나 기독교나 마호멧트 교나 평등합니다> 저는 불교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목사로 있으니까 선불교랑 같은 것이 너무 많아요. <내 마음이 부처>라는 것도 <예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마라 예수님은 네 마음에 있다> 저 죽어서 서방정토세계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 속에 천당이 이루어져야지 죽고난 다음에 천당을 바라지 마라 또 계율과 율법을 가지고 하면 전부 죄밖에 드러나지 않는데 믿음으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엔 그 다음엔 자동적으로 믿음에 따라서 마음이 뜨거워지면 율법과 계율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원효사상을 좋아하는 것은 나무아미타타불 네 글자를 외움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다음에 계율을 지켰으니 계율도 지키고 신앙생활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통하는 점이 많아요

3) 저는 불교 TV를 굉장히 좋아해요, 왜냐하면 불교를 내 친정집같이 생각이 되기 때문에 그 강의를 들으면 굉장히 마음속에 유익을 많이 얻어요그래서 불교강의를 들으면 어떤 때는 너무 난해하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굉장히 힘들게 강의하는 어른들도 있었어요. 복잡하게 철학적으로 계율적으로 하시는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안타까운 적이 있었어요. 내가 듣기로도 이렇게 복잡한데 일반 중생이..., 이걸 깨달은 저는 정병조 교수님의 전 시리즈를 다 들었습니다. 책으로, 텔레비전으로 다 들었는데 그분 강의를 내가 왜 좋아하냐면 쉽게 해요. 제가 왜 불교강의를 열심히 듣냐면 불교강의를 들음으로 비추어볼 때 내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깊이를 더 깨달을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종교간의 대화가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참석자들 박수...)  

질문 1)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구요, 소망이 있으시다면?

조용기 목사 :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가 더 열심히 전도해서 우리 한국의 불교나 기독교의 지배종교가 지배한다면 지배문화를 만들어서 그 문화 속에 윤리, 도덕이 서고 인생관과 철학이 서고 생활가치가 설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지배종교가 없어서 아무리 정부에서 어떤 시책을 세워도 국민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불교가 왕성해야 되겠고 기독교가 왕성해야 되겠고 불교와 기독교간에 긴밀한 대화를 해야 하겠습니다. 상대의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화를 통해서서로 화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 저는 하나님이 긴 생명을 주신다면 해외로 나가서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더 많은 토론, 대화 문화를 형성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생각에 '한 박사님'도 기독교모임에 모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부처님의 자비 하나님의 사랑, 말이 자비고 사랑이지 실천에서 보면 자비나 사랑이나 똑같은 맥락에 하나로 통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대화를 통해 대화와 협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질문 2) 제가 한 20년 전에 당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학생이 예수밖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길래 너희 목사님한테 물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물어봤다구 와서는 그 얘기를 또 합니다. 


조용기 목사 : 그렇습니다. <불교가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로서 장자종교입니다>불교가 만약에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독선주의로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사님들이 그 종교의 특수성 그 차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유아독존적으로 생각하므로 많은 분쟁이 생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은퇴를 하고 나서는 더 많은 대화를 통해서 이해와 화해의 길을 모색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종교는 평등합니다. (참석자들 박수)

질문 3)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목사님의 말을 기독교외 예수님, 하나님 외에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로 생각해도 되겠는가? 


조용기 목사: 저는 그 차별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교는 불교의 구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불교도 뛰어 넘을 수 없고 기독교도 뛰어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차별성을 인정을 하고 대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불교가 주장하는 것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권한이 없어요. 불교는 불교대로 존중을 하고, 인정을 하고, 기독교는 기독교대로의 구원의 방식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종교라는 평등한 공통분모에서 <차별성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 가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집안에서도 우리 집안 식구들 중에도 아직도 불교를 믿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서로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서로 차별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생은 불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확신을 믿기 때문에 존중하고 인정하고>, 나는 기독교 목사니까 기독교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을 인정하고 <내 것만 절대 진리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너는 죽이고 나는 살겠다 그렇게 되면 상생(相生)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것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의 직분을 가진 자가 구원 문제를 전함에 있어 '부처가 원하는 바'를 창조주시며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원하시는 바'와 동일선상에서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부처는 자기 죄 중에 죽은 자요, 예수는 죄없는 분으로 죄인을 위해 대신 죽어주신 분이 아니던가? 75만 성도를 먹이는 교회 목사의 발언수위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우리는 대한민국 교회의 영계를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국 교권에서 조 목사의 이러한 발언을 지켜보고도 누구 하나 공개적으로 따끔한 충고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솔로몬 성전을 심판하신 주님이 초림주로 오셨을 때 헤롯 성전의 유대교권을 심판하셨다. 유대교권을 심판하신 초림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심판의 원리는 동일한 것이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어 있찌 못한 자들은 잘라내어 불에 태운다는 것이다(마 3:12. 요 15:6. 사 5:4~6. 겔 15장). 아무리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라도 선지서를 통해 "이러한 자들은 망하리라" 하고 알려주신 이상, 그대로 행하지 않는 교회는 가차없이 심판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교권이나 특정 목자를 의지할 때가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예언서만을 바라볼 때이다! 예언의 말씀으로 이쁘게 단장하고 신랑을 기다리지 않으면 이전에 갖춘 치장(은사열매)이 아무리 화려하다 하여도 '후 3년 반'에 떨어져 짐승에게 실컷 강간당하고 그 치마가 들려 벌거벗겨진 채 불태움을 당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마귀의 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겁한 음녀신앙을 가진 자들의 최종 운명임을 우리는 현실 기독교계에 목숨바쳐 전하자(렘 4:39, 13:26. 애 1:8~9. 계 17:16). 그것이 진정한 파수꾼이다!

 12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흑암 중에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침을 받아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거짓 선지자의 앞길은 흑암의 길이 되리라고 예언하셨다(사 59:9~15). "흑암"은 사단의 역사인데 종말에는 계 13장 예언대로 1,260일(42달)간의 어두운 수정통치(獸政統治)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일단 이곳에 빠지면 육체구원이 없게 된다. 짐승 앞에 경배하지 않으면 몇이든지 죽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계 13:15). 구약이라는 것은 무엇이든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역사이므로(롬 15:4), 바벨론 포로기간의 비참함은 인간종말의 수정통치 세계의 비참함을 앞당겨 보여준 것으로 보면 된다. '후 3년 반'은 마귀가 극도로 발악을 하며 주인이 되어 버린 내놓은 흑암세계이지만, 지금은 마귀가 빛을 가장하여 활동하고 있는 영적 흑암기이다. 때문에 교회는 마귀의 이중적인 혀를 분별 못하고 심히 놀아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졸며 잔다"고 말씀하셨다(마 25:5). 이러한 흑암(미혹)을 분별하라고 '다림줄'을 스룹바벨의 손에 맡겨 주셨으니, 순종하면 빛의 세계로! 불순종하면 "그들을 벌하는 해"로 정하신 '후 3년 반'에 떨어지는 것이다.  

 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

사마리아와 유다의 부패 실상을 지적하고 있다. 북쪽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의 그릇된 종교 운동(왕상 12:27~33)을 위시하여 협상주의의 길로 탈선해 바알신과 타협했다. 남쪽 유다도 동일한 죄악을 범하다가 북방 칼을 맞고 이방 땅에 잡혀갔다. 이와 같이 인간 종말 21세기에도 세계의 영적 이스라엘이 이방과의 협상노선을 걷고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평화공존, 세계단일화정부> 운동이요, 종교적으로는 <에큐메니칼, 종교일치운동>이다(W.C.C.와 로마가톨릭 노선). 구약 교회가 우상과 간음할 때마다 여지없이 북방환난을 당하게 된 것을 볼 때, 종말에도 마귀가 이용하는 교회(음녀)의 설교(쑥물)를 따라가게 되면 이 시대의 심판도구(북방 러시아)에 의해 철저히 매를 맞을 것이다. 고로 창세이래로 없던 대전쟁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후 3년 반'을 지배할 주체세력은 북방임을 알 수 있다(마 24:21, 욜 2장 , 단 12:1~2). 그곳에서 표를 받으면 '3년 반'은 살 수 있으나 파리 목숨에 지나지 않는다. 주의 재림날(아마겟돈)에 한줌의 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

"쑥과 독한 물을 마시우리라" 이는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 미혹의 영을 허락하셔서 쑥물을 내뱉게 하시겠다는 것인데, 이처럼 사악을 내뿜는 종말의 거짓 선지자의 활동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옛 뱀(사단)을 창조하여 에덴에서부터 각 시대별로 적절히 들어 쓰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공의의 하나님께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자기 선수를 씨름판 위에 올려보낸 코치가 상대 선수가 강하다 하여 자기 선수를 붙잡아 주려고 씨름장에 올라간다면 공의(公義)가 아니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었다면 코치는 지켜볼 뿐이다. 씨름판에 한 발자국이라도 올려놓으면 그 순간 선수는 코치에 의해 실격을 당하고 만다. 하나님은 홍샅바를 맨 거짓 선지자들과 청샅바를 맨 예레미야를 붙여 놓으시고는 예레미야가 쓰러져도 예레미야를 응원한 자들을 승리자로 인정하겠다는 법을 세우셨다. 그를 응원했던 자는 '바룩'과 구스인 '에벳멜렉' 등의 한 두 명뿐이었고, 다수는 홍샅바 편에 서서 예레미야를 조롱하였다. 
모세 때에도 '거짓 선지자'를 일으켜 믿음의 여부를 알아 보신다고 하셨고(신 13:1~5), 사 51:17절 이하에도 예루살렘에 '분노의 잔'(=쑥물)을 마시운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동일하다. 다섯째 나팔이 불리우면 무저갱에서 흑암의 연기가 나와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하는데(계 9장), 연기 가운데서 황충 떼가 일어나 하나님의 인(印)을 맞지 못한 종만 해한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법이다. 즉 종말의 싸움승패는 '하나님의 인'을 소유하였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쭉정이는 거짓 선지자를 따라 바벨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인'을 반대할 것이고, 알곡들은 계시록과 예언서로 척량받아 이마에 인을 맞고 스룹바벨과 함께 진리 편에서 승리할 것이다. 분노의 잔(쑥물)은 쭉정이를 모으는 악의 타작기계요, 하나님의 인은 알곡을 모으는 의의 타작기이니, 스룹바벨과 영적으로 친구가 되느냐 마느냐로써 마지막 타작마당의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것이다(학 2:23. 슥 4:7~10절을 참조하라).

『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평화공존(6:14, 8:11)을 외친다. 하지만 이들의 "평안"은 헛된 것이다. 그들의 말이 헛됨은,

① 사단에게 속한 
인본주의 사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16절).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라(렘 17:9) 하셨으니 인간의 말은 믿을 바가 못된다.

② 예례미야를 대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더욱 죄짓도록 조장하는 자들이었으며(17절), 하나님 뜻에 반대되는 길로 백성을 인도했다. 예레미야는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전쟁의 화를 당하리라" 하며 북방환난을 외친데 반해, 그들은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도리어 예레미야를 옥에 가두고 때렸다(20:2~3, 32:5, 37:15). 악(惡)에게 속한 자들은 언제나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압박하는 편이나, 의(義)에 속한 자는 매를 맞고 조롱받으며 끝까지 인내하는 편이므로, 나타나는 열매를 보아도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거짓 평화임이 분명하다..

③ 거짓 선지자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22절). 이들은 사단의 회의에 참예하는 마귀의 앞잡이다. 계 13:11절을 보면 
"땅에서 올라온 뿔 달린 새끼양"이 용처럼 말을 하고 있는데, 이는 양처럼 교회 안에 섞여 들어와 용(사단)의 말을 대언하는 거짓 선지자의 정체를 폭로한 것이다.

『 
19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

거짓 선지자들이 받을 벌에 대한 예언이다.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고 하셨으니 거짓 선지자의 교만은 반드시 파쇄(破碎)될 것이다. 옛날이건 지금이건 평화를 외치는 자는 100% 거짓 선지자이다. 끝까지 전쟁이 있으므로(단 9:26), 또한 심판이 있고 평화가 있다 하셨으므로(사 2:4, 32:14~19) 심판과 화(禍)를 말해야 참 선지자이다. 참 선지자란 이스라엘이 율법에서 어긋난 길을 갈 때 그 잘못을 깨닫게 하려고 하나님이 당신 대신 보내신 대언자이다. 고로 그 사명상 평안을 말할 수 없다. 즉, 유다 민족에게 평안함이 보장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지자가 왔다는 건 심판을 경고하기 위함이며, 듣기 싫은 소리를 하기 위함이다. 선지자는 언제든지 조건부 재앙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자이다. 선지자들이 나타난 시대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이며 큰 환난을 앞둔 시대이다. 2,000년 기독교의 역사상 선지서가 이처럼 밝아진 때는 없었다. 지금은 큰 환난을 앞둔 시대라는 뜻이다.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리라" 기록된 대로 외칠 사명자에게는 읽으며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비밀이 밝아지겠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회리바람에 날아가고 그 머리가 깨질 것이다. 평화로운 새 시대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 땅의 거짓 선지자의 교만을 완전 심판하시겠다는 뜻이다. 거짓 선지자는 진리를 반대하지만 강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쉼 없이 이루신다 (사 7:10~15. 렘 30:24).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인간은 어리석어서 영계적으로 작정된 경영을 모른 채 제 멋대로 살아왔지만 진노의 날이 오면 완전히 깨닫는다는 것이다."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3:37)" 노아 때에도 방주건축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업임을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비 오기 전까지는 모두 조롱, 멸시만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노아가 하나님이 쓰신 참 선지자였음을 완전히 깨닫고 사망하였다.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3대 화의 재앙이 터져야만 신,불신 세계가 다 함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된다(계 8:13). 우리 앞에 갈림길이 있다. 크게 얻어 터지고 깨닫는 '후 3년 반' 행을 선택할 것이냐? 매맞기 전에  깨닫고 증거하다 순교하는 '전 3년 반' 행을 선택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이다. 죽기까지 증거하는 것은 승리하고 올라가는 길이요(계 11:1~12, 12:5), 올라가진 못하지만 새 시대를 차지하는 길은 증거자의 말을 듣고 예비처로 들어가는 길이다(계 12:6).

 21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지를 지적하는 동시에, 그들의 노력이 헛된 것임을 예언하셨다(22절).


3. 거짓 선지자가 받을 형벌 : 23~32

『 2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 데 하나님은 아니냐 (KJV 23 주가 말하노라. 내가 가까이에서만 하나님이요, 멀리서는 하나님이 아니냐?) 2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夢事)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 

계속하여 거짓 선지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신다(딤후 3:13). 거짓 선지자는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하며 사람들을 속이는 자이다. 이는 기록된 말씀만이 진리이지 몽사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신 13:13~ ).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예수님이 이 길을 가셨으니 우리 역시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대로 걸어갈 뿐이다. 그길만이 3대 화를 피하여 새 시대까지 이르는 길이다(고전 4:6 참조).

『 
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그들의 "마음의 간교한 것" "몽사"로 성립된다. 그들의 특성을 살펴 보면,

① 그들은 몽사를 얻지 못하고도 몽사를 얻었다며 속여서 증거한다. 이러한 고의적인 속임은 거짓말로서 사단의 열매이다(요 8:44). 
② 혹 그들이 실제로 몽사를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 탐심에서 나온 그들 "마음"의 산물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일이 많아 생각이 복잡해지면 몽사를 얻게 된다(전 5:3).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 받기를 지나치게 원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완전계시와 완전영감으로 남겨주신 '성경'을 등한히 여긴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습성은 재앙을 받을 조건이 된다(계 22:18~19). 우리가 확실히 알 것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잊게 하거나 등한히 여기게 하는 '새로운 운동'들은 모두가 다 진리에 속하지 않는 '헛된 것'이라는 점이다(렘 26:2~ , 고전 4:6, 계 22:18~19).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던 율법시대(1,500년간)가 끝나고(눅 16:16), 
새 언약(렘 31:31)의 빛이 비추어져 나갈 때 많은 영혼들은 죄를 사함받아 '하늘 시민'이 되었다(2,000년간). 이제 '하늘 시민'이 된 자들이 새 언약의 바탕 위에 새 일(렘 31:22)까지 순종하여 예언의 등불을 세계적으로 증거하면 많은 양 떼가 큰 환난으로부터 육체를 보호받고 재림 예수님이 통치하시는 '지상에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그러나 기록된 이 말씀을 거절하고 배반한다면 칼에 죽는다 하셨다(사 1:19~20). 앞으로는 "기록된 말씀"대로 하자는 노선과, "몽사"의 노선이 크게 충돌할 것이다.

『 
2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

몽사는 쭉정이 "겨"요, 하나님의 말씀은 성실한 알곡 "밀"에 비유되었다. 말씀은 모든 악을 소멸시키는 권세의 "불"이며, 견고한 반석이라도 쳐서 부수는 철장권세의"방망이"이다.

『 
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거짓 선지자가 받을 벌에 대한 계속적인 예언이다. 여기서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란 말씀이 3번 나오고 "치리라"란 말씀이 3번 나왔다. 이렇게 힘주어 말씀하심을 보아서도 우리는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가감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참 선지자가 받은 말씀을 (친구들을 통하여 비밀히) 얻어가지고 자기의 거짓된 사상(거짓말)과 섞어서 제 것인 양 사용하는 무리들은 "치리라"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이뢰자 목사에게 밝혀 주신 요한계시록 해석과 동방역사 새 일의 비밀을 자기가 기도하다 받은 듯 속이고 있는 목사들이 많은 줄 안다. 회개치 못하면 예레미야서가 권세로 나가는 날 하나같이 거꾸러지고 말 것이다.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 제 생각에는 "그가 말씀하셨다"고 하면 권위가 설 줄 알았던 게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직하지 못한 이런 자들에 대해 "내가 치리라" 말씀하셨다.

  
4. 참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는 자가 받을 형벌 : 33~40

『 33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34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에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그 당시의 방백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 습관처럼 묻던 무시와 조롱 섞인 말이다. 선민이라는 자들이 말씀 받은 선지자의 마음을 이토록 괴롭게 했던 것이다. "엄중한 말씀"이란 '무거운 짐'이라는 뜻이다(히브리 원어로 '맛사'). 이 말에는 "오늘은 또 무슨 재앙을 선포하나 보자" 하는 그들의 관심 반, 조롱 반의 태도가 배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는 않으나 어수선한 시국에 장래와 민족의 앞날이 궁금하니 선지자를 점쟁이 정도로 취급하여 묻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라는 단호한 말씀이었다.

『 
35 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 하고 37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예레미야를 대할 때 취했어야 할 올바른 태도를 알려 주신다."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 속에 섞인 조롱의 태도를 버리고 물으려거든 겸손한 자세로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강퍅한 마음으로 예레미야를 미워하며 묻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할 것이 아니라, 회개와 순종의 태도를 보여 하나님의 긍휼을 얻으라는 것이다. 만일 이 경고를 듣지 않고 계속하여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라고 말하면 그들의 말대로 중벌을 당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 종 선지자를 망령되이 대하는 것을 주께서는 용납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 
38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보내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지 말라 하였어도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39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어버려 40 너희로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케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

만일 그들이 회개치 않고 계속하여 조롱하는 태도를 취할 경우 당하게 될 결과를 예언하셨다. 그리할 때의 결과는
 "그 민족을 온전히 잊어버리며", "그 성읍을... 내어 버려",
② 그 민족으로 "영원한 치욕과 잊지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케 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이다. 끝내 유대인은 겸손치 못하고 강퍅했으므로 이 글자 그대로 북방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고 말았던 것이다.

지의 말을 무시하다 잡혀가는 교회 - 종말에 예언서를 무시한 기독교의 모습이로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6 내가 이 집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다 하라"는 것은 이 말씀을 다시 외쳐야 할 자들은 이 시대의 '우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레미야와 같이 목숨바쳐 외칠 때, 듣지 않는 걍팍한 자는 '후 3년 반'으로, 자세를 낮추어 귀를 기울이는 겸손한 자는 '새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 주님 저희에게 양 떼를 살려주기 위한 순교자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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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4장
제 목 : 하나님의 징치와 복종


1. 두 가지 무화과의 비유 : 1~3
유대민족을 상징하는 무화과 열매와 잎사귀

『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

유다 왕 "여고냐(여호야긴)와 방백과 목공들과 철공들"의 바벨론 포로유배는 이미 앞에서도 예언된 바다(22:24~30). 여호야긴은 B.C.598.12~597.3.16까지 석달간 왕위에 있다가 잡혀갔다. 느부갓네살 7~8년에 된 일이다.

유다 백성은 북방환난에 대해 여러 해 동안 들어왔으며, 직접 당하였다(1~2차). 이제 B.C.587~6년에 걸친 3차 멸망만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다. 백성은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을 당대(當代)에 직접 체험하면서도 끝까지 회개치 않았던 것이니, '악한 무화과'란 바로 이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이다. 회개치 못하면 잘려나가는 것이다.
"무화과"는 가나안땅의 특산물로서(신 8:8), 6월에 열매가 익고(사 28:4) 늦은 열매는 8월부터 익기 시작한다. 무화과는 실생활에서 매우 가치 있는 식물로 인정된다(렘 5:17. 욜 1:12). 본장에서의 무화과는 유대민족(교회)을 상징하는 의미로만 쓰였다(마 21:18~22, 24:32~35).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 』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 6월에 나타나는 것으로 '첫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귀한 열매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처음 익은 열매를 중히 여겼으며 얼른 따 먹는 것이 관례였다(사 3:14. 호 9:10. 나 3:12).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북방에 포로되어 잡혀감을 하나님의 징계로 알고 얼른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귀히 여기신다. 이들은 북방환난이 선조들과 자기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온 것을 일찍이 깨달은 자들이다. 다니엘은 좋은 무화과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차 북방환난 때 잡혀가 전 생애를 바벨론에서 보내다가 '70년' 연수를 깨닫고 금식하여 회개할 때 <70>와 <3>의 큰 비밀을 깨달은 대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회복'의 비밀과 기쁨은 '처음 익은 무화과'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적 축복이다.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 이들은 70년을 불신한 자들로, 바벨론을 피하여 유다 땅이나 외국으로 흩어진 자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잡혀간 자를 비방하고 업신여겼으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잡혀간 자들보다 더 똑똑하여 재앙을 받지 않았다고 오해하던 자들이며 자만한 시드기야 왕과 한 패를 이룬 사람들이다. 이들은 70년 후 스룹바벨이 귀국하여 성전을 재건할 때, 악한 무화과인 것을 증명하듯 주께서 원치 않는 금식기도만 하다가(슥 7장) 무서운 책망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세계교회와, 특히 한국 교회 내에는 하나님의 뜻도 모른 채 무조건 금식기도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이들이 많다. '금식기도'는 하늘이 원하는 목적에 부합될 때만 인정된다. "금식은 왜 하는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이 하늘에서 인정돼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는 기도는 밤새도록 해본들 "무효"라 하셨다(사 16:12). 오늘날 교회 안에 모압의 기도, 모압의 사상이 만연하고 있으니 회개치 못하면 이 시대의 악한 무화과가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의 계시가 이상으로 임하는 것은 영상으로 나타나야만 그 받는 자의 심령속에 확실하게 인쳐지기 때문이다. 또한 계시내용을 문답식으로 전개하시는 것도 계시 받는 자가 확실히, 그리고 자세히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2. 좋은 무화과의 상징 : 4~7

『 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했고(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라" 했다(5절). 이 같은 증언체(證言體)는 계시가 진실한 것임을 강조하는 역설(力說)이다. 하나님은 사로잡혀 간 유다 포로들이 회개할 때 그것을 좋게 보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종말에는 '후 3년 반'에 잡혀가 회개하는 것을 좋게 보시지 않고, '전 3년 반'에 회개하여 '후 3년 반'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좋게 보신다. '후 3년 반'은 순교도 상급도 없는 저주의 세계요, 미련한 자들이 들어가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

"돌아본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히 여겨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징계가 없다. 그러나 징계를 달게 받는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는 법이다(렘 31:20). 본 예언은 70년(단 9:1~3, 렘 25:11, 29:10)이 지나면 스룹바벨 단체를 돌려보내 시온산에 성전, 성곽을 건축케 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되도록 친히 주관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 내용은 인간 종말에 학개(2:18), 스가랴(1:12)서로 탄생한 유다(한국)의 스룹바벨 9.24 제단에 하나님의 印(학 2:23. 계7:3~8)을 맡겨 주시므로 '택한 종들'을 격동시켜 스룹바벨 머릿돌 역사로(슥 4:7) 순금등대 촛대교회를 건축(144,000)하고 바벨세계에서 남은 자들을 모아들여 초막절(슥 14:16)을 지켜 세계적인 통일을 이루시므로 완전히 성취된다(성경기록의 궁극적 목적은 '구약 다윗 왕조'의 부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곧 메시야 왕국의 건설이다 - 계 11:15). 구약 모든 예언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고 메시야 왕국에 결부되어 다시 예언될 살아있는 말씀이다.

『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구약 때에 스룹바벨을 격동시켜(에스라 1~4장) 귀국하여 성전건축을 이루게 하셨듯이, 인간 종말에 일어날 출바벨론 역사에서도 슥 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神)으로 되느니라" 하신 대로 머릿돌(재림주의 권세)을 받아 내어 놓는 9.24 제단을 세우시어 종말의 엘리야 제단으로 쓰신다. 이 제단의 사명이 스룹바벨 총독의 사명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거짓 선지자 850명을 무찌르던 갈멜산의 불제단 역사와 같은 것이다. 고로 인간의 힘과 능이 낄 자리가 없고 오직 하늘에서 택한 자들만 학개서의 9.24 제단으로 모이게 된다.

전도라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요, 사람은 도구가 될 뿐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4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 10:27). 이 말씀대로 하늘이 연합시켜 주신 종들은 철장권세를 받는 그날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기록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부를 따르게 된다.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들은 슥 1:12 "칠십년 회복"에 연합되어 좋은 무화과 대열에 합류되나 나머지는 악한 무화과가 되어 '후 3년 반'에 떨어지게 된다.

  
3. 악한 무화과의 상징 : 8~10

『 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

"악한 무화과"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고집쟁이들 및 바벨론이 두려워 애굽 땅으로 도망간 비겁자와 겁쟁이들이다(렘 43장). 유다인은 1~2차에 걸쳐 바벨론에 잡혀간 자들을 바라볼 때 마땅히 겸손히 내려 앉아 두려워 떨며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도리어 교만한 맘으로 자기들이 더 의로워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착각하였다(눅 13:1~5). 죄값으로 몽둥이가 왔다면 매를 맞고 우는 것이 축복이다. 악한 무화과 뺀질이들에게는 더 크고 돌이킬 수 없는 몽둥이가 예비될 것이다.

"악한 무화과"들은 그들이 어디로 도망가든 간에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할 것이다(9~10). 그것은 
①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짐" 
② "환난을 당함" 
③ "치욕을 당함" 
④ "말거리가 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됨" 
⑤ "칼과 기근과 염병을 당한다"는 예언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재앙들은 이들이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할 쭉정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아끼시어 한 없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패역을 행하는 자들은 '악한 무화과'로서 더 큰 환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일제 몽둥이와 6.25 전란을 겪은 한국 교회가 이만한 성장을 거둔 것은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와 은혜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회개치 못하던 그 무리가 결국 W.C.C.라는 통합대열에 합류했던 것이 아닌가? 이제 이들이 '악한 무화과'가 받을 저주의 예언으로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백성은 왜 여호와의 말씀인 '70년 회복'(렘 25:11)을 불신했던가? 그것은 당대의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말, 즉 "2년 내에 회복되리라"(렘 28:3)는 거짓말 때문이었다. 인간 종말에도 다시 예언하라는 예수님의 계시가 교회 중에서 무시당하고 있다. 오히려 인본주의 노선을 걷는 거짓 선지자의 말! 곧 평화 공존만이 환영을 받고 있다. 이 쑥물이 21세기의 선악과요, 오메가의 미혹임을 아는 자가 심히 적다. 전 세계 교회가 이 같은 미혹에 처해 있어 살려볼 마음으로 예레미야와 같이 외치는 제단이 본 제단 <스룹바벨 선교회>이다. 여기서 그대로 읽어 전하는 이 예레미야서를 무시하는 자들은 정녕 이 시대의 "악한 무화과"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예언서의 연대(슥 1:12)를 무시한 연고로 3대 화를 통하여 모조리 북방 칼에 잡혀갈 것이다.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좋은 무화과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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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25장
제 목 : 유다의 심판


1.백성의 강퍅과 불순종 : 1~7

『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

"여호야김 4년"이라 하고 "느부갓네살 원년"(B.C.605년 9월7일)이라고도 했으니 이것을 보면 성경이 비역사적인 공환(空幻)도 아니며 추측도 아닌 정확무오한 말씀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영적 진리를 선포할 뿐 아니라 동시에 객관적 역사성(歷史性) 또한 그 생명으로 지니고 있는 책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자들이므로 상고해 보면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다.

『 
2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고하여 가로되 』

"모든"이란 말이 한 절에 두 번이나 나왔다. 곧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편파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과 교회에게 공명정대하게 전파될 세계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재림 직전, 세계적인 종들에게 계 10:11절처럼 "다시 예언할" 말씀에 예레미야서가 포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곱째 나팔이 불리우기까지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계 10:7)은 한 절도 빠짐없이 다시 예언되야만 한다. 이 천국복음(마 24:14)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되었다면, 주 재림 때 모든 선지자에게 전한 말씀이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되야 한다고 부탁하셨으니 그 부탁대로 행하는 종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 이러한 종은 예레미야가 했던 것처럼 임한 모든 말씀을 부지런히 전해야 한다.

 3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삼 년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4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

유다인에게 전함에 있어 철저히 경고하여 전하셨건만, 전혀 회개하지 않았던 백성의 강퍅함을 지적하셨다. 철저하게 전했다 함은
① 23년 동안 전파했다.
② 부지런히 전했다.
③ 모든 종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내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백성은 듣지 않았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심령과 행위가 너무도 부패했기에 진리를 멀리한 까닭이다. 본 선교회도 예레미야 형님을 본받아 계시록과 예언서를 1995년부터를 문서와 테잎에 담하 전도하고 있으나 한국 교회가 잠든 까닭에 들으려 하는 자가 심히도 적다.

『 
5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

"이르시기를" 이르신 말씀들은 그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대언(代言)한 말씀들을 뜻한다. 그 내용은 비록 백성이 패역하나 악행에서 돌이키면 본토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나 죄인의 회개는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제물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신이신 고로(삼상 15:22~23) 회개치 않는 죄인이 아무리 제사하여도 그 제사는 결코 상달될 수 없는 것이다.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유다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엿볼 수 있다. 택민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은 "옛적"부터 "그 조상"과 계약을 맺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을 주려 하신 큰 사랑이었으므로 일시적 사랑, 우연적 사랑이 아니었다. 신실한 계약에 의한 이 약속은 비록 그들이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만 하면 흔들림 없이 견고한 축복(약속의 땅)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히"란 말은 영원부터 영원까지를 이름이나 택민이 계약을 파기하고 변질된다면 그 "영원한 축복"은 순종을 잘하는 이방민족이 차지하게 된다고 하셨다(출 19:5~6. 마 8:11, 21:43, 23:38. 말 1:11). "돌이키라"하신 악행은 우상숭배를 뜻한다.

 6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

그들의 악행은 하나님을 버리고 사신우상(邪神偶像)을 섬기고 따라간 죄이다. "다른 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이 모두 우상을 가리킨다. 돌비석에 십계명을 명백히 기록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율법을 버리고 이방신을 따라갔던 것은 하와가 뱀의 미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결과로 얻은 죄의 체질이 아직 개조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원죄).

 7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유다가 북방칼에 잡혀감은 스스로 만든 재앙이란 뜻이다.
지구의 역사이래로 시대마다 하나님의 법이 있는 것이니
① 율법시대는 신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② 은혜시대는 갈 1:8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③ 환난시대는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하신 말씀이 곧 시대적인 법이다.
하나님만이 창조자요, 입법자요, 주권자요, 심판자요, 만왕의 왕이시니 오직 법을 세우신 그분께 복종해야만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 ☞ 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사 61:1~2)

  
2. 바벨론에게 포로 될 것 : 8~14

『 8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9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10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

8~11절은 이 백성이 큰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① 바벨론 왕이 침략한다는 것(9절) -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을 "내 종"이라 하신 것을 통해 우리는 계 17:7 "일곱머리 짐승"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악한 종으로 쓰임받는 오메가의 적기독 국가임을 알 수가 있다. 마지막 7째 짐승에서 나오는 8째 왕은 아마겟돈을 치르러 강림하시는 예수님께 잡혀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계 17:11, 19:20). 빛과 어둠, 환난과 평안은 모두가 하나님의 장중에 있을 뿐이다(사 45:7).

사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택민)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가로상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늘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같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라도 하나님은 당신 손에 붙들고 막대기로 쓰신다. 하나님은 신 28:49절에서도 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이 율법을 범하면 원방에서 흉악한 민족을 불러와 징계하시겠다고 모세를 통하여 예언하셨다.

② 유다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함"(9절) - 유다 민족은 예로부터 이웃 나라들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일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의뢰하는 이웃 나라들까지도 "진멸"하시겠다는 것이다(사 3:1~ 참조).

③ 유대인들로 자기가 저지른 죄악의 참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그 민족의 당할 화를
 "놀램", "치소거리", "영영한 황무지" 등에 비유하셨다(9~11절).

④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모든 활동을 끊쳐지게 함(10절) -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 "끊쳐지게" 하겠다고 하셨으니 그 이유는 그들이 세상에 도취되어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약 4:4).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 역시 끝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성(聖)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을 섬기는 부부생활을 함으로써 영화롭게 되실 분인데, 도리어 그 신랑, 신부, 자녀, 돈이 우상이 되므로 세상으로 기울어져 하나님을 잊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참다운 가정생활에 대하여 -> 신앙문답 81번)."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먹고 살기 위해 움직이던 세속적 생활이 이제 종말을 맞이하게 되며, 그들이 원치 않던 이방 나라에서 포로민의 신세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다가 생각 밖에 짐승 국가에 잡혀간 것이 구약 선민의 종말이었다. 특히 부자들에게는 화가 더 컸다. 렘 39:10절에 보면 북방환난이 났을 때 부자와 유명인사는 다 죽거나 잡혀가고,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貧民)이 유다 땅의 주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종말에도 동일하다. 계 4:11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만물을 주의 뜻대로 사용하면 예레미야와 같이 1차부활에 참예하여 만물과 백성을 다스리는 왕권을 받을 것이요, 내 뜻대로 사용하면 '후 3년 반'으로 떨어져 재앙을 받는다. 학 2:8 "은도 내(하나님)것이요 금도 내(하나님)것이니라" 하셨으니, 돈을 위해 밤낮 쉬지 않고 돌리며 켜두었던 맷돌과 등불 빛을 스스로 청산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하지 못하면 제3자가 와서 대신 청산해 줄 것이니 곧 '후 3년 반'이다.

『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13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14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

유대 민족을 징벌하던 하나님의 도구(道具) 바벨론이 다른 나라에 의해 징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다니엘 2장을 보면 일곱 머리 우상 국가(짐승)는 자기 사명을 다하면 차례차례 망하고 공중에 "뜬 돌"(재림역사)이 우상의 발(철과 진흙)을 치면 우상은 없어지고 돌이 태산을 이루므로 6천년 죄악세계는 마무리된다고 하셨다. 제7천년기는 <천년안식세계>로서 머릿돌이신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땅 위의 세계이다. 에덴동산 때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역사는 한 치의 착오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왔으며 또한 진행될 것이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3).

당시 바벨론의 수한은 
70년으로 정해져 있었다. 70년이 차면(29:11) 메데파사가 일어나 바벨론을 쳐 부수고 200년 간 나라를 계승한다는 예언이다(금머리는 바벨론, 목과 가슴은 메데파사 나라인데 은이라 칭하셨다 - 단 2:32). 종말적으로 보면 메대 바사군과 같은 동방의 종들이 일어나 증거를 마치고 1차부활하여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이 죄악 세상 바벨론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이다.

  
3. 멸망의 상징인 진노의 잔 : 15~29

『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16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시기로 』

유다 민족부터 시작하여 수 많은 나라들이 바벨론에게 정복당할 것을 가리킨 예언이다. 나라의 이름들은 18~26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다.

"진노의 잔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술'이란 그 근본이 취하게 하는 것으로서 사단의 궤휼(마력)에 비유된다. 멸망할 죄악을 행하고도 회개치 못하는 민족은 이처럼 주님이 보내신 진노의 잔(사단의 미혹)에 취해 환난이 임하는 그날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비틀거리다가 잔인한 심판도구가 내려오는 날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사단의 미혹 끝에는 필경 패망이 뒤따른다. "진노의 잔"이란 표현은 성경 여러 곳에 기록돼 있으니 상고하시기 바란다(사 25:15, 51:17~22, 렘 49:12, 51:7~, 겔 23:31~34, 합 2:16. 계 14:10, 16:19, 18:3).
"칼을 보낸다"는 말씀은 북방 바벨론을 내려보내겠다는 뜻이다. 계 6:3절에 붉은 말이 큰 칼을 가지고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한다는 계시대로 1917년 10월부터 북방 공산주의 정권이 일어나 아시아 전역을 혁명의 불로 태워 버리고 유토피아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세계적화를 꿈꾸고 있으니, 구약 종말과 동일한 형편에 처한 기독교를 심판하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전에 악의 세력을 높이신다(합 1:12). 지금 교회들이 구약 솔로몬 성전 때와 같이 협상주의 우상사상에 끌려가고 있으니(W.C.C. 및 로마가톨릭의 길) 이러한 교회를 심판하기 위하여 북방 러시아가 위장의 옷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모습 붉은말로 나타나 세계를 치는 일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 17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18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방백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치소와 저주를 당함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

이것은 장차 모든 나라의 멸망을 선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렘 1:10절대로이다. 계 9:1~12절까지 '첫째 화'가 올 때 해와 공기가 어두워진 것은 전 세계적으로 영적 흑암이 덮일 것을 예언한 것인데, 예언대로 1958년 3월부터 지금까지 흑암 덮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세계로 하여금 "평화공존"에 취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진노의 잔'인데, 이는 '미혹시켜 보는 흑암'으로서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든 자를 갈라내기 위해 임하는 모략적 흑암이다(이기고 나아가는 자에게는 왕권을 주기 위한 시험이나, 걸려든 자에게는 사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마귀의 올무이다).

18절은 유다나라가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패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멸망과 놀램과 치소와 저주"라는 네 가지 단어는 유다 민족이 저지른 죄악과 비례됨을 연상케 하는 무서운 말씀들이다.

"오늘날과 같으니라" 일절 가감없이 현실 역사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말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진실한 말씀이다.

『 19 또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방백들과 그의 모든 백성과 20 모든 잡족과 우스 땅 모든 왕과 블레셋 사람의 땅 모든 왕과 아스글론과 가사와 에그론과 아스돗의 남은 자와 21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子孫)과 22 두로의 모든 왕과 시돈의 모든 왕과 바다 저편 섬의 왕들과 23 드단과 데마와 부스와 털을 모지게 깎은 모든 자와 24 아라비아 모든 왕과 광야에 거하는 잡족의 모든 왕과 25 시므리의 모든 왕과 엘람의 모든 왕과 메대의 모든 왕과 26 북방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

19~26절은 위에 말씀한 멸망할 국가들을 열거한다.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세삭 왕은 바벨론 왕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들어서 세계를 심판하시고, 최후로 바벨론 정권을 심판하신다(계 19:11~19). 종말의 러시아가 많은 나라를 열파하지만 결국은 예수님과 144,000 에게 멸망하고 말 것이다. 구약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이 술판을 벌이다가 동방 연합군(메데-페르샤)에게 패망한 것을 볼 때, 우리는 극도로 교만한 바벨론(러시아)이 동방 말세종들의 철장권세 앞에서 하룻밤에 멸망할 것을 내다볼 수 있다(렘 51:11~. 사 13:17~19).

 화려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권세 앞에 하루아침 멸망한 것 = 이것이 종말의 동방역사이다!

『 
27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28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반드시 마시리라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27~29절에는 열국이 진노로 임하는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 없음이 예언되었다.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패망할 나라들의 멸망 직전의 취한 모습을 비유적으로 말씀했다.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교회에서부터 심판이 임한다는 예언이다 (벧전 4:17~. 렘 24:1~7, 39:1~10. 사 43:28, 66:6~. 겔 9:4~8. 마 23:37~. 계 11:1~12).

  
4. 만국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 30~38

『 30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부르시며 그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발하시며 그 양의 우리를 향하여 크게 부르시며 세상 모든 거민을 대하여 포도 밟는 자같이 외치시리니 31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열국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심을 인함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30~31절에서 또 다시 선지자에게 모든 국가들에게 그들이 당할 진노에 대해 예언하라 하신다. 이렇게 거듭 거듭 명령하시는(15, 27~) 이유는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높은 데서 부르시며 그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발하심" 이것은 모든 나라가 심판받게 되는 것이 인간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천지를 주재(主宰)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양의 우리를 향하여... 부르신다" 함은 유다민족(현 교회)을 향하여 심판을 선고함이다. "포도 밟는 자같이 외치시리니" 이 말씀은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을 가져오는 무서운 세계적 심판을 가리킨다.

『 
32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대풍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불의로 인해 보응 받는 일이 한 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 일반적으로 임한다는 예언이다. "대풍과 땅 끝"은 북방 바벨론으로부터 오는 환난다(1:13~18, 10:22. 겔1:4). 21세기에 대풍을 일으킬 땅 끝은 당연히 북방 땅 끝이며, 그 나라는 10뿔을 거느리고 내려올 러시아다.

『 
33 그 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륙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구약 때는 바베론을 통하여 중동 일대에서만 이루어졌으나, 인간 종말에는 러시아를 통하여 지구 전체를 계시록 13장같이 42달간 다스리게 되니 "땅 이 끝에서 저 끝"이라는 예언의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된다."염습함을 입지 못하며"란 시체를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 누구도 시체를 처리할 수 없는 대 환난이라는 것이다.

『 
34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떼의 인도자들아 재에 굴라 이는 너희 도륙을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의 떨어짐같이 될 것이라 35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 떼의 인도자들은 도피할 수 없으리로다 36 목자들의 부르짖음과 양 떼의 인도자들의 애곡하는 소리여 나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으로 황폐케 함이로다 37 평안한 목장들이 적막하니 이는 여호와의 진노의 연고로다 』

"목자들", "양떼의 인도자"란 말이 6번 나온다. 지도자들이 그 권세와 지위를 가지고 세도할 동안에는 그 권력이 영원할 것만 같았을 것이다. 경만한 치리는 이러한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던 권세는 잠시뿐이고 이제 그들에게는 영원한 불행이 오고야 만다(사 9:16. 약 3:1). 지도자들이 장차 받을 참상에 대하여 "애곡하라", "굴라", "도망할 수 없음"이란 표현들로 알려주셨다. "기한이 찼음인즉" 곧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다리시던 기한이 찼다는 의미로 이제는 용서 없는 심판뿐이다. "평안한 목장들"은 그들이 말하던 "평강하다, 평강하다"(렘 6:14, 8:11)에 속아 취했던 어리석은 교회들이다(렘 5:30~31).

예언서가 말하는 공통된 주제는 인간 종말에 큰 환난이 온다는 것인데(단 9:26~), 거짓 선지자는 사단의 꾀임에 빠져서 전쟁은 종식되었고 평강만 있다고 말한다. 시드기야 정권이 거짓 선지의 말을 듣다가 눈알이 뽑혀 북방에게 잡혀간 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지도자 및 정치 방백들이 당할 경고의 청사진이다.

『 38 그가 사자같이 그 소혈에서 나오셨도다 그 잔멸하는 자의 진노와 그 극렬한 분으로 인하여 그들의 땅이 황량하였도다 』

하나님이 "사자"로 비유된 것은 회개치 않던 자들이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이 남김 없이 쓸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때까지 회개치 않는 자는 결국 죄악과 일체된 자이다. 하나님은 죄의 세력에 대하여는 사자와 같이 무서운 심판주로 임하신다(창 49:8~11, 계 5:5).

"그들의 땅이 황량하였도다" 죄악의 도성 및 교회들은 가증한 짐승들이 새끼치는 멸망의 처소가 될 것이다(사 34:5~15).  그 날에는 포도나무가 천 그루 있어 그 값이 은 천 냥이나 되던 땅이 온통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인다는 사 7:23절의 예언도 유다(교회)가 받을 심판을 뜻한 것이다. 불순종자들은 이와 같은 심판으로 끝을 맺지만, 순종자들은 아무리 큰 박해가 와도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가 임하므로 승리한다는 것이 26장의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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