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성경 : 요나 4 : 제목 : 하나님의 완전역사와 어리석은 종


성  경:요나 4장

제  목:하나님의 완전역사와 어리석은 종






  1. 니느웨 성의 회개를 보고 불평함:1~4

『1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

●1∼4절:요나는 왜 니느웨 백성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 싫어서 불평을 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원죄이다! 아담으로부터 선악과의 죄질이 유전되었으므로 모든 사람은 질적으로 타락했다. 바로 인간의 이 패역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고쳐 주시려고, 먼저는 구약을 들어서 보여주시고 종말에는 인간 원죄를 뿌리 채 뽑아내는 애굽 땅 중앙제단(사 19:19∼22)을 세워서 말씀으로 신창조된 인간으로 하여금 재림 주님을 영접시켜(사 19:1∼) 에덴동산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새 일의 역사다(사 42:9∼25).

사 57:1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그의 탐심(貪心)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悖逆)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하심같이 요나도 고기 뱃속에서 철저히 회개했는데 그 속에 살아 있는 “패역”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여 불평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이 새 일의 역사다. 인간은 패역한 본질을 고쳐야 된다.

사 57:18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2. 초막과 박 넝쿨 준비:5~6

5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니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하는 요나 - 패역! >

요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요나가 처한 육체의 불편을 보시고 박 넝쿨을 준비해 주셨으나 요나 속에 자리한 근본적인 원죄의 원한은 없애주시지 않으셨다. 아직 새 일을 행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아도 영적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뿐이지 육체 속에 있는 원죄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오늘날까지의 모든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히 9:27). 육체의 사망은 아담의 범죄, 선악과의 죄 값이다(창 3:19).

●5∼6절:그런데 요나는 자기 속에 자리한 죄의 본질은 문제삼지 않고, 당장의 고통을 감해주는 박 넝쿨이 좋아 기뻐했다. 우리는 요나같이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을 삼지 말고, 멀리 내다보며 진리의 말씀을 거역치 않는 순종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 넝쿨이 문제가 아니고 ‘뼛골 속에 박힌 원죄’가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이기고, (재림 때 새 일의 교훈으로) 또 이기시는 것이다(계 6:2). 이 ‘또 이기는 역사’를 성취함에 있어 우리를 택하시어 다시 예언하라고 부탁하신 것이니 순종할 뿐이다(계 10:11).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는 누구든지 육체에 재앙이 온다(계 22:18∼19).



  3. 벌레와 동풍을 준비하여 책망하심:7~11

7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昏困)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

●7절:하나님은 영적 문제를 깨우쳐 주시려고 벌레를 준비하셨고, 또한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셔서 요나를 깨우쳐 보셨다. 사명감을 일깨워 주고자 하심이다. 요나는 동풍 때문에 또 다시 죽기를 원하였다.

●8절:“스스로 죽기를 구하였다” 함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취하여 가기를 기원함이다. 죽도록 충성치 못한 죄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교육하시기 위하여 그들로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라고 시편에서 교훈하셨다.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를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신 말씀으로 후세에 많은 종들이 깨우치도록 다윗을 통하여 크게 교훈하셨다(시 51:1∼17).

●9절: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저지른 또 한번의 합당치 않은 분노를 지적하시며 그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나 요나는 이번에도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라며 하나님 앞에서 항변까지 한다. 요컨대 요나의 행위에서는 인간의 부패성(원죄의 질)이 표본적으로 나타난다.

오늘의 모든 교회가 이 부패성을 해결치 못하고도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줄로 알고 있는데 큰 착각이다. 사 42:9절에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하셨고 :21∼여호와께서 새 일의 교훈을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종들이 도적을 맞아 육체가 불타도 깨닫는 자가 없다고 하셨다(사 42:22∼25).

단 10:8∼의 다니엘 선지도, 계 1:13∼20절의 사도 요한도, 재림 주님의 모습을 보는 즉시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유는 아담으로 부터 물려받은 원죄의 부패성 때문이다. 이것은새 언약의 피로서는 해결이 안 되고 피로 사신 여호와의 책에 기록된 『새 일의 교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오늘까지 2,000년 동안 영혼의 기쁨은 충만하여도 육체의 구원이 없는 이유는 아직 새 일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말에 마땅히 될 일이 하나님의 새 일 역사이다(사 43:19∼). 새 일의 교훈을 통과하지 않고서도 새 시대, 새 땅을 밟을 수 있다면 성경은 거짓된 책이 되며 하나님은 불법의 신이 된다.

●10∼11절:박 넝쿨은 요나의 수고와는 상관없이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시든 것인데 요나는 왜 불평했는가?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도 분변(分辨) 못하는 귀염둥이들과 수많은 생명과 육축들이 있는데 요나는 이를 생각지 못하고 자신만을 아꼈기에 실수를 범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며 하나님의 참된 종이라고 자부하는 믿음 좋은 ‘우리들’... 혹시 이 시대의 요나는 아닌지...? ....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범사에 조심하며 예언의 등불을 높이 들고 산순교의 제물이 되자!

할렐루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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