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4일 목요일

요한1서 2장 - 성도의 생활



2 장 성도의 생활

(요절 10)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1)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사는 생활이 아니고 항상 그리스도의 대언 기도와 연결된 생활이다. 우리는 죄의 권세 잡은 마귀와 싸우는 것이 성도의 생활이니 아무리 중생을 받은 자라도 고의적이 아닌 실수가 있을 때에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항상 대언 기도 함으로 그를 붙들어 주고 인도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자기의 양이요, 종이니 책임지고 항상 기도하는 주께서 그를 다스리는 것이다.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2~4)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온 세계 인류를 위한 것이니 누구든지 속죄를 받은 자는 남을 살리기 위하여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을 전하게 된다. 내가 용서를 받았으니 남도 용서를 받도록 해 보려는 것이 없다면 이 사람은 성도의 생활이 아니요 거짓선지의 생활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대언 기도하는 목적이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자기가 용서를 받은 것같이 남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구원해 주고자 하는 자를 들어 쓰기 때문이다.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5~6)  누구든지 참으로 남을 살려 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히 역사해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니 주님이 행한 일을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주님은 대언 기도의 목적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들어서 쓰시되 완전한 사랑의 능력으로 역사하기 때문이다. 살려 보려는 예수님께서는 남을 살려보려는 사람을 들어서 완전히 구원해 주는 일을 하시기 때문이다.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7~8)  하나님은 자체가 사랑이시니 죄인을 구원하는 목적은 당신의 사랑의 법을 세상에서 진행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에게는 참된 사랑이 없으므로 그 사랑을 먼저 주시고 사랑 받은 자로서 남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9~11)  그러나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자가 아니다. 왜냐 하면 사랑을 그 마음에 받았다면 마음이 밝을 것이로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 심령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마귀가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이것을 흑암이라 하는 것이다.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12~13)  성도라는 것은 그 죄를 완전히 사함을 받고 조물주 하나님은 사랑의 자체이신 것을 알며, 또는 악한 마귀와 싸워서 승리의 생활을 하는 것을 성도라 하는 것이다.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4~17)  또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말씀이 그 속에 있는 자는 흉악한 마귀를 이기는 생활이니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따라가는 타협적인 사랑을 가질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정욕을 따라서 오는 것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도저히 정욕적인 방면으로 흐를 수가 없고 그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남을 살려 보려는 거룩한 진리의 사랑이 아니고는 그 밖의 소위 사랑이라는 것을 따라서 얼마든지 죄를 짓게 되는 마귀의 미혹이 있는 것이다.


강 해 : 요 3:16 하나님이 세상 사랑하겠다는 것은 세상 구원하겠다는 것이지 세상 따라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것이지 어떻게 세상에 끌려가겠느냐 ?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면 세상을 끌어 당겨야지 ! 산 물고기 바닷물에 살아도 짜지지 않는다. 세상이 꼴보기 싫어 산에 들어가 있다면 죽은 믿음이요, 세상살이 재미나서 기도도 안하는 것 죽은 믿음이다.


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18~19)  그러므로 소위 거짓선지라는 것은 말세 교회를 망치는 타협적인 신앙노선에서 사도적인 거룩한 신앙노선을 대적하는 행동을 말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사도시대에도 사도의 교훈을 순종치 않고 탈선된 생활에서 나갔던 것이다. 오늘에는 이 거짓선지가 큰 세력을 잡고 교회를 망치는 것이 심판기라 하는 것이다.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20~21)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이니 이 진리라는 것은 성신이 가르치는 아래서 성경을 기록한 것이요. 또는 그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믿게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만 되는 것이니 여기에는 조금도 가감할 수 없는 정확 무오한 진리이다.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2)  적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기의 주관이나 지식을 따라 판단하는 것은 고의적으로 진리를 부인하는 것을 가르쳤다.


강 해 : 아버지와 아들 부인하면 적그리스도다. 부인이라는 것은 말씀 그대로 믿지 않으면 부인이다. 하나님 말씀 글자 그대로 안믿을 바에야 교회 나가서 뭘 해요 ? 절대 우리는 하나님 말씀 일점 일획도 가감할 수 없다. 가감하면 부인이나 다름없다. 우리 주님은 죄를 몽땅 없애는 예수님, 십자가는 마음과 행동으로 지은 죄를 사해 주는 진리. 뢰자 중심성결 목적 안하고 중심성결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없이 25 년 간 지냈다.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23~24)  우리 성도의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절대적으로 시인하되 처음부터 가르친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니 이러한 자라면 아버지 안과 아들 안에 있는 성도의 생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이 없다는 것을 믿는 동시에 조금도 변지 않고 나가는 것을 성도의 참된 신앙노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앙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약속을 믿는 동시에 절대로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싸움이라는 것은 육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싸우는 것이니 성령을 받은 자로서 어떤 세상의 학적인 인간 지식에 끌리지 않고 완전한 진리의 신의 가르침을 받아 거짓이 없는 진리 안에서 사는 생활이다.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5~28)  만일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의 어떤 두뇌에서 난 학적으로써 진리를 분석한다는 것은 거룩한 사도신앙의 대적이 되는 것이니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말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이라면 누구든지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담대히 서게 되고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끝까지 지켜 나가는 자를 위하여 오시기 때문이다.



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29)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줄 알고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라야 참으로 하나님께로 난 자라고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난 자가 그 진리를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인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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