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3일 수요일

요한1서 4장 - 성도의 영계 분별

4장   성도의 영계 분별

(요절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1~3)  우리는 영계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는 데는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고 속하지 않는 것을 바로 분별해야 한다. 아무리 믿는다 해도 영을 분별치 못하고 믿는다는 것은 거짓선지에게 미혹을 당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적 활동이 있다 해도 예수님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나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한 몸으로 오시어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을 완전히 믿는 자라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온 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근본적인 구원의 진리는 여기서부터 완전한 진리가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을 확실히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닌 것이다.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4)  기독교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은 이것이 근본 대적이 되는 것이다. 사도시대에 시작된 영적 싸움은 오늘까지 계속 되어 말세에는 심판의 대상자가 되는 것은 소위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인본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인간 학적으로 진리를 해석하며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누가 참으로 신앙을 지키나 보기 위한 방법으로서 사용하는 것이니 필연코 승리는 사도적인 신앙에 있다.



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5~6)  누구든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자는 세상적인 마귀 일에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는 그 말에 따라갈 것이로되 하나님께 속한 자라면 사도적인 교훈을 따라갈 것이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하고 힘을 초월하는 진리를 믿는 것이 사도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7~8)  하나님을 아는 자는 남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 속에서라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 왜냐 하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목적에서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약속하신 말씀이니 그 영이 사랑의 신의 감동을 받은 자 외에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9~11)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을 살리기 위한 목적에서 독생자를 주었다는 사랑이니 이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첫째 열매이다. 그러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과 죽기까지 그 뜻에 순종한 우리 주님의 사랑의 심정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분명히 체험한 자라면 자동적으로 그 사랑에 녹아지는 동시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이 되므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것에 목적을 두고 일하게 된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2)  누구든지 하나님을 육안으로 보고서 알았다는 것보다도 그 사랑의 신의 역사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온전함을 이루어 주는 것을 체험할 때에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을 육안으로 보았다 하더라도 사랑의 역사가 그 마음에서 온전함을 이루어 주는 역사가 없다면 이것은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생명적인 완전한 체험의 종교라는 것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3~15)  하나님은 사랑의 신이시니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것은 당신의 거룩한 뜻을 세상에 이루시되 당신의 할 일을 할 수 있는 대행자로 쓰기 위한 목적이니 남을 살려 보려는 심령이 없다면 그 사랑을 증거하는 종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으니 조금도 변할 수 없는 절개를 자동적으로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자라면 하나님과 일체된 관계에서 역사하는 종이 된다.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6~18)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역사하다가 그 사랑 속에서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때에 담대함을 가지게 되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은 심판날에 가서 완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는 것이니 누구든지 그 사랑 속에서 역사하던 종이라면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자로서 환란과 재앙의 날에 남은 종이 될 것이다.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9~21)  우리는 이 사랑을 알아 완전한 인격을 이룬 자라면 도저히 형제를 미워할 수 없다. 형제를 미워한다는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서 떠났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는 맘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미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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