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6일 금요일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彼得)와 한글 구약성경 번역 이야기

알렉산더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彼得)와 한글 구약성경 번역 이야기 
김중은(장로회신대학교 총장)


구약성경은 언제 누가 처음으로 우리 한국어로 번역했을까? 특히 한글개역 구약성경은 언제 누가 어떻게 우리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을까? 구약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하여 출판한 역사는 1898년, 알렉산더 피터스(이하 피터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터스는 러시아 에카테리노슬라브 (Ecaterinoslav, 지금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상업을 하는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향에서 1888년에 고전 인문고등학교 (Classical Gymnasium)를 졸업한 후, 그 당시 심한 경제난과 미래에 대한 좌절감 때문에 그는 고향집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외국으로 향했다. 


당시 일본에 주재하던 미국 성서공회 루미스 (Henry Loomis, 1839-1920) 총무는 유대인 청년 피터스가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실을 알고 그를 만났다. 4월 21일 시베리아로 다시 돌아가려는 피터스에게 루미스 총무는 미국 성서공회가 파송하는 권서 (勸書, colporteur)로서 피터스가 한국에 가서 일하기를 제안했다. 이 제안을 기쁘게 수락하였고, 피터스는 영어를 배우면서 그해 5월 16일 부산과 제물포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한 만 24세의 미혼 청년 피터스는 곧장 한국어를 배우면서 서울 근교에서 권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권서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시편을 번역하여 한국인들에게 구약의 말씀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 결과 피터스가 시편 중에서 발췌하여 한국어로 번역한 시편 촬요가 1898년 말에 출간되었다. 

시편촬요가 구약국역의 효시로서 출간된 경위에 관해서는 한국에서 첫 성경번역에 관해 피터스 자신이 쓴 글에 잘 나타나 있다(Alex. A. Pieters, "First Translations", The Korea Mission Field, May 1938, 91-93쪽). 그 글에서 시편촬요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섭리로 예수를 믿게 되고, 미국성서공회의 권서로서, 나는 1895년 한국에 오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성서위원회가 신약을 번역하고 있었고, 구약이 앞으로 번역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을 알았다. 어려서부터 정통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매일 히브리어 기도서를 읽고 시편의 아름다움과 영감을 맛보면서 암송할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최소한 시편 중에 얼마라도 번역해 주고 싶었다. 저주시편을 빼고 시편의 절반정도의 분량을 번역하는데 약 1년이 걸렸다. 한국어를 잘하는 네 분 선교사에게 번역원고를 보여드리고 인정을 받았다. 1898년에 출간된 시편촬요는 8년 동안 유일한 한국어 구약역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게 되었다.


한편 피터스는 시편촬요를 출간한 이후 성경(특히 구약) 번역자로서 선교사들의 격려와 주목을 받았다. 그는 1899년 대영성서공회 서울 지부에서 일하던 자리를 사직하고, 1900년 1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맥코믹 신학교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에서 신학을 공부하러 떠났다. .피터스가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루미스는 한국에서 구약번역을 하는데 그가 적임자라고 판단해 미국성서공회본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피터스야 말로 구약번역에 필요한 자질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라는 의견이 중론입니다...나는 그가 구약번역을 완성하도록 허락되기를 희망하며, 어떤 다른 사람이 수정하거나 통일하여 그 일이 방해받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 피터스야말로 구약번역에 필요한 자질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라는 의견이 중론입니다... 

나는 그가 구약번역을 완성하도록 허락되기를 희망하며, 어떤 다른 사람이 수정하거나 통일하여 
그 일이 방해받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터스를 준비시켜 오신 듯 보입니다. " 

그 동안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구역시대 초기부터, 특히 구약을 번역할 때 히브리어 원전을 읽는 실력이 무엇보다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임성서실행위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구약 히브리어에 능한 적임자를 찾아 구약개역의 책임을 맡기려고 했다. 여기서 피터스가 적임자로 선택되어 1926년 1월부터 구개위에 참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피터스는 동년 2월 1일 대영성서공회 규칙서를 수령하였고, 3월 26일에는 구개위의 “평생위원(permanent member)”으로 위촉되었다. 이 때 민휴는 피터스에 관해 킬구어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히브리어 학자로서 그는 한국에서 그 어느 사람보다 훨씬 앞서 있으며 그의 한국어 지식도 매우 탁월합니다.”(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 상게서, 43쪽). 1926년에 구약개역 평생위원으로 선출되는 것이 계기가 되어, 피터스 부부는 1927년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피터스는 오전과 오후에 번역 일을 하며 원전(the original text)을 앞에 놓고 세심하게 대조하여 개역을 하고 있다고 선교부에 보고했다. 1930년까지 레이놀즈, 베어드, 그리고 피터스 세 사람이 중심이 되고 이원모가 조수가 되어 구약개역 작업이 계속 이루어졌다.


 피터스는 1933년 11월부터 1934년 8월까지 미국에 가 있었다. 피터스가 미국에 있는 동안 그가 속해 있던 미북장로회선교부는 재정난을 이유로 피터스를 한국에 재 파송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는데, 당시 63세의 피터스를 결국 다시 한국에 파송한 것은 그가 한국에서 구약개역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휴는 이러한 사정을 파악하고 런던에 있는 본부에 미리 알렸다: “구약개역을 위한 핵심 인물로 우리가 피터스를 얻지 못한다면, 개역작업이 곧 끝날 수 있는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김중은, “구약성서국역사”, 상게서, 47쪽).


1935년 새해부터 레이놀즈와 피터스가 다시 구약개역에 함께 박차를 가했다. 동년 3월에는 이원모(李源謨)가 개역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해 여름 내내 레이놀즈, 피터스, 이원모 세 사람은 지리산에 있던 레이놀즈의 별장에 모여 남아있는 구약개역에 전력을 다 했다. 이러한 강행군의 결과로 피터스에 의하면 1936년 3월에 드디어 구약개역작업이 일단 끝이 났다. 1936년 12월에 이 구약 개역 전서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 1936년 판 개역 구약전서는 피터스가 본격적으로 개역작업에 관여하기 전에 개역되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 (예컨대, 문체의 통일성과 번역의 정확도 등)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특히 오경, 수, 삿, 룻, 삼상, 잠, 사, 렘, 합과 단 등이 지적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 1936년 판 개역 구약본문을 피터스와 이원모가 맡아서 다시 작업(수정과 필요한 경우 재번역)을 하였으며, 레이놀즈의 승인을 받아 1937년 8월까지 재개정을 마쳤다. 1937년 9월22일 상임성서실행위원회에서는 마침내 신구약 개역위원회의 개역완료 보고가 있었다. 이렇게 하여 최종 확정된 개역 구약본문이 개역 신약본문과 함께 1938년 9월3일에 개역 성경전서로 출간되었다. 그 동안 구약개역은 1912년에 시작되었지만, 1922년에 방향재조정을 거쳐 새로운 출발을 했으며, 1926년부터 피터스가 “평생위원”자격으로 구개위에 본격적으로 참여함으로써 1937년에 그 완결을 보았고, 1938년에 드디어 한국교회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피터스는 그가 1941년 그의 나이 70세에 한국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고 미국으로 되돌아갔다.


알렉산더 피터스는 우리나라 구약 국역사에서 선구자이며 또한 구약 구역에 참여한 일과 함께 특히 개역시대 구약 개역의 주역으로서(1926-1938년에 집중적으로 공헌함) 오늘까지 한국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의 성경”으로서 강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1938년 판 개역성경의 구약본문을 완결한 장본인이다. 무엇보다 피터스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구약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탁월했다. 피터스는 1901년 미국 장로회 해외선교부에 제출한 선교사 지원서 5번 항목에서 “영어 외에 어떤 언어들들 공부했는가?”라는 물음에 자필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었다: “라틴어, 희랍어, 고대 슬라브어, 히브리어, 불어를 공부했으며, 영어, 러시아어, 이디쉬어(yiddish), 독일어, 한국어로 회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어서 “언어들을 습득하는 데 나에게는 어려움이 없다(Languages are not difficult for me to acquire.)”고 했다(피터스의 1901년 선교사 지원서:Reproduction from original in the collections of the Presbyterian Historical Society, 425 Lombard St., Phila., PA.). 성경번역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무엇보다 영적인 것이며,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 원어 지식 및 그와 관련된 어학 능력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구약 국역사에서 피터스는 어느 선교지 성경번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약번역자로서는 독특하고도 탁월한 자질을 구비하였고, 하나님께서 섭리하여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겠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은 특히 구약의 경우 처음부터 히브리어 원전 성경에서 번역하지 않고, 한문성경이나 영어성경에서 번역한 ‘선교사 역’으로서 오류가 많다는 설이 있었다. 이제 우리는 구약 국역사에서 피터스의 역사적인 위치와 그의 국역 활동의 의의를 조명해 볼 때, 그러한 주장은 사실과 다른 낭설일 뿐 아니라 무책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 

한국어로 번역된 구약은 정통 히브리어를 기초로 번역되었으며 가장 원어에 가까운 세계에 유래를 찾아 볼수 없이 오류없이 번역된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성경에 제이콥이 아니라 원히브리어로 야곱이 맞습니다. 인명이나 지명이 오히려 가장 원어에 맞게 번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구약학교수가 강의중에 미국의 영어성경에 구약을 잘못 번역한 곳이 많다고 지적을 할 때 한국에서 유학간 신학생이 한국의 성경에는 교수님이 지적하신곳에 번역이 바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아 한국의 성경이 가장 원어에 맞게 잘 번역되어있네요하고 인정할 정도로 구약성경은 가장 원문에 가깝게 번역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한국을 사랑하셔서 히브리어에 정통한 유대인을 한국의 선교사로 오게하시고 40여년동안 번역에 전념하게하셔서 구약을 번역하게 하셨습니다.

세계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관된 번역으로 오류가없게 말씀을 번역하게 하셨습니다.

외국의 번역을 맹신하고 한국어 성경을 경시하는 잘못된 경우가 종종 있기에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이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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