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100.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예배를 보아도 역사가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문) 100.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예배를 보아도 역사가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답) 예배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가 부합되어야 응답의 역사가 내리게 됩니다.  

첫째 :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있어야 하며,
둘째 : 신앙 사상이 하나님의 말씀과 합리화되어야 하며,
셋째 : 실천 생활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가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역사가 없는 것은 이 세 가지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에게는 조금도 보이려고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려는 마음에서 조금도 형제를 판단한다든지, 멸시한다든지, 무시를 하는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불쌍히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택한 자가 잘못된 일이 있다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보는 마음으로 그를 대하시는 것이니, 우리도 항상 형제를 불쌍히 보고 아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있어야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체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배를 보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조금도 가감이 없이 말씀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있을 때에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체험을 날마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살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 희생적인 생활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양심, 사상, 생활이 하나님과 연합된 자라야 예배가 상달되며, 그 예배를 통하여 날마다 새로운 역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를 보아도 아무런 응답의 역사가 내리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이에 무엇이 막혀 있는 증거라고 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항상 열린 문이 있는 것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계 3:8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생활이 양심, 사상, 실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내려야만 할 형편이 될 때에 언제나 예배를 통하여 그 응답의 역사를 나리게 됩니다. 지금 이때에 드릴 예배는 시국 난제 해결을 목적하고,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나 모든 것이 앞으로 오는 큰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는데서 맹렬히 부르짖는 것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시국의 난제를 등한히 여기는 일이 있으므로 아무런 응답이 내리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이 시국 난제를 어떻게 하여야 돌파할 수 있겠느냐 하는 불타는 마음에서 예배를 드려야 앞으로 큰 역사가 나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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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29.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예배에 대하여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답) 예배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한다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찾아 그에게 믿음을 주고 은혜를 주어서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받으시고 은혜 위에 은혜, 믿음 위에 믿음을 더 주는 동시에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총을 축복으로 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사람 편에서 예배를 하니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먼저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성신으로 역사해 주시므로 써 이루어지는 것을 기독교의 신령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1. 자기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한다는 마음으로 합심되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자기 주관이나 자기 이익이나 자기의 어떤 사적 욕망을 바란다면 그 예배는 우상적인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먼저 아시고 내가 구하는 것밖에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는 그 사랑을 믿고 내게 어떤 핍박이나 혹은 물질의 손해가 되는 일이나 내 몸에 불리한 점이 있는 일이 있다 하여도 여기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만을 생각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에 뜻밖에 홀연히 이루어지는 역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핍박과 환란 중에서 그들이 생명을 바쳐 예배할 때에 큰 역사가 임했던 것입니다(행 4:23-31).


2. 위에서 오는 것을 받겠다는 마음이 불타야 합니다.

예배라는 것은 습관이나 의식에 따르는 것보다도 그 시간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흡족히 받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강단에 서는 종이 어떤 자기의 무엇을 나타내려는 것이 있으면 이것은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는 미운 물건이 될 것입니다. 또는 대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바라지 않고 그 사람의 인격이나 어떤 학설이나 웅변이나 그 위협을 따라서 움직인다면 이것은 인물 숭배의 우상적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단에 서는 종도 자기가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전부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보내는 것만을 기다리고 입을 열 때에 그 기도나 찬송이나 설교는 전부가 여호와의 신의 응답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중은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를 기다릴 때에 예배 시간마다 정상적인 응답이 내리므로 그 예배를 통해 모든 심령들은 나날이 소성하고 발전하므로 신령한 교회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큰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행 10:30-48).


3. 성경을 조금도 가감 없이 믿는 신앙으로 뭉쳐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자가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마음으로 예배할 때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열매를 체험케 됩니다. 예배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하나님 말씀이 가감된 신앙을 가진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역사하는 신이신데 그 말씀이 즉 생명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찬송과 기도와 설교를 할 때에 하나님은 그 예배에 응답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진리대로 역사하려고 해도 말씀대로 믿는 자들의 예배를 통하지 않고는 그 말씀을 인간에게 알도록 역사할 수도 없고 또는 그 말씀대로 복을 나릴 수도 없고 그 말씀대로 싸워 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사 6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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