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일 수요일

90. 지금은 기독교에서 대부분이 생각하기를 그다지 열성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문) 90. 지금은 기독교에서 대부분이 생각하기를 그다지 열성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답) 오늘날 기독교가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에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를 믿을 때에 마음에 새로운 것을 체험하게 되니 너무나 기뻤던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새로워지는 단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새로운 체험을 받지 못할 때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새로워진 것은 중생을 받은 것인데, 중생받은 자로서 나날이 새로워지는 발전을 보지 못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을 이기고 나가야 처음보다도 더 새로운 것이 있는데 시험이 올 때에는 열심히 나가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후퇴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위 이지적이라는 학적을 따른다는 것인데 진보가 아니요 퇴보라고 봅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학적이라는 것으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신비를 체험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한 지식으로 삼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식이라는 것은 과학과 철학을 초월한 신의 세계에서 오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는 것으로 신앙의 지식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이지적인 학적으로 흐를 때에 이 학이라는 것은 인간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처음에는 약간의 새로움이 있는 것 같지만 마른나무와 같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자들이 신비적인 산 체험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독교 안에 있는 성신의 역사를 자기 주관에 맞추어 분석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교회는 속화되는 것입니다.


2.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서 모든 것이 급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기독교에서는 과학을 초월한 새로운 역사가 없게 되므로 과학을 지도하는 신학이 못되고 오히려 과학에 눌리는 신학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앙으로 이루어진다는 신의 능력을 부인하고 오히려 기독교를 한 문학의 과정으로 아는 폐단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무엇이나 전부가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진리를 말하게 되어야 합니다. 기독 신자의 인격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과학을 초월한 세계에서 오는 새로운 것이 없게 되면 자동적으로 열심을 낼 수도 없고, 열심을 낸다 하여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따르는 열심이 아닌 한 기분, 감정, 흥분에 머무르게 되는 폐단이 있게 됩니다.
우리의 기독 신앙은 생명적인 영적 문제이므로 기도할 때나 예배할 때나 언제든지 물질계의 밖에서 오는 것을 먹고 마시는 산 체험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시험이 와도 후퇴하지 말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 나가는데서 이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새일성가 16장 4절)


3. 신앙의 법을 떠날 때에 믿음이라는 것은 열심을 낸다 하여도 아무런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열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귀란 놈은 언제나 신앙으로 살아 보려는 사람에게 신앙의 법에 어긋나는 신비를 끼고도 역사하하고, 법에 어긋나는 흥분을 끼고도 역사하고, 법에 어긋나는 사람의 방법을 끼고도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은 언제나 합법적으로 나갈 때에 그 법에 따라서 새로운 것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항상 진리의 법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모든 사도들은 진리의 법을 가르칠 수 있는 대표의 사람으로 우리가 가르친 교훈 그대로 그 안에 거하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요일 2:27).

나의 신앙 체험에 의하면 성경을 읽은 지 40년에 25년간은 새로워지는 체험을 받지 못하였고 15년간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체험을 받게 되었는데 성경 본문 그대로 읽어서 얼마든지 만족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데서 점점 정상적인 힘을 얻게 되므로 기독교는 법의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그대로 읽어서 이 시국 난제를 돌파하고 나갈 수 있는 새 힘을 받아야만 한다고 담대히 말하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요, 성경을 법대로 깨달아 믿게 될 때에 여호와의 열심이 날마다 강하게 오므로써 열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을 낸다는 것보다도 열심이 객관적으로 온다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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