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3일 수요일

가족 구원 : 창 7:1~ 노아 가정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가족 구원 




1, 창 7:1~  노아 가정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7-노아가 아들들 아내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2, 창 13:15  아브람 가정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3, 창 19:12  롯의 가정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4, 사 49:2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5, 사 54: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6, 사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7, 사 66: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8, 슥 10:7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준행했기 때문에
가족이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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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림을 맞이할 자의 생활 방침

- 눅17:22-37 -


가복음 17: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 음) 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사람이라면 합법적인 생활을 하여야 된다. 왜냐 하면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은 말씀대로 판단하려고 오시기 때문이다. 초림의 주는 용서하러 오시는 주님이시니 아무리 죄인의 생활을 하던 자라도 영접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용서하되 회개하는 자는 얼마든지 너그러이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가 되려면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말씀에 굳게 서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 (22-24)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말씀대로 오신 예수를 믿으므로 죄사함을 받아서 말씀대로 오실 예수를 기다리되 조금이라도 말씀에 가감된 일에는 치우치지 않고 말씀에 굳게 서서 나가는 생활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큰 이적이 일어나며, 기사가 일어나고, 만민이 놀랄 일이 일어난다 하여도 거기에 따라갈 필요가 없고 말씀에 굳게 서야할 것이다. 왜냐 하면 다시 오시는 주님은 번개같이 오시되 온 세계가 다 영접할 수 있도록 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이미 이루어진 말씀도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며, 재림의 주가 오시는 것도 세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지방에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것을 중심하여 따라갈 필요도 없고 그리스도의 재림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에도 따라갈 필요가 없고 오직 그 날에 설 수 있는 인격을 갖추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할 것이다.

주 재림이 온다는 것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해야할 일을 충실히 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필요 없는 일에 공연히 따라갈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다만 재림의 주를 맞이하는 준비가 있어야 그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인격적인 무장을 갖추는 일에는 전력을 두지 않고, 어떤 신비적인 일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끌려간다는 것은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의 생활에 완전히 섰다고 볼 수 없다. 신앙 생활을 어떤 흥분이나 감정이나 신비에 기준할 것이 아니고 자신이 말씀의 법에 굳게 서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격과 생활과 사업에 체험적인 생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주님 다시 오실 때에는 인격, 생활, 사업에 의하여 보응을 받기 때문이다.


2. 예비하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 (25-30)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자는 먼저 그 날이 어떠한 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26절을 보면 주님께서 재림의 날을 두고 말씀하실 때에 “노아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고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는 예비가 없는 자는 감히 설 수가 없다. 노아 홍수 때에도 방주를 예비한 노아의 가정외에는 다 전멸을 당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 다시 오실 때에도 예비가 된 자 외에는 다 환란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 예비하는 생활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 : 말씀을 그대로 믿는 동시에 순종해야 된다.
둘째 :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여야 된다.
셋째 : 합심하는 가정을 이루어야 된다.

노아의 가정은 합심이 되므로 구원을 받았고소돔, 고모라에서 나오는 롯의 가정은 합심이 되지 않았으므로 큰 실패를 가져오는 일이 되었다. 재림의 주가 오실 때의 구원은 영, 육이 아울러 받는 것이니, 이것은 반드시 예비가 있는 자라야 받게 될 것은 사실이다. 노아는 물이 샐 틈이 없이 방주를 지었으므로 구원을 받았고 우리는 말씀에 조금도 가감 없이 무장이 되어야 흑암을 뚫고 나가서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예비가 있는 생활은 무엇보다도 해산의 수고를 다하는 것이 있어야만 된다.

  
3. 순교적인 생활이 있어야 된다 (31-35)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자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생각하지 말고 돌진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원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용기있게 나가는 생활이 있는 자라면 주님을 맞이할 인격이 갖추어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주님 재림의 날은 무서운 시험이 닥쳐오는 날이니 조금이라도 세상의 것을 생각하는 자는 남을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안에 있는 것이나 모든 물건을 가지려 하는 생각을 버리고 재림의 주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일에 전력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33절에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고 한 것은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 바치고 강하게 나가는 사람이라면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재림의 날은 순교의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바로 증거하던 종들만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는 순교자의 인격을 가져야 된다. 이날까지 순교를 당한 종들과 주님 재림할 때까지 순교적인 생활을 한 종들이 주님께서 올라 오라 하실 때에 들림을 받게 된다. 이것은 왕권을 받을 수 있는 사람만 재림의 주를 영접하기 때문이다.


결  론

주의 날에 설 자는 중생을 받은 자가 아니요, 중생 받은 사람 중에서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있는 생활을 한 자이다. 그러므로 순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일한 사람은 왕권 반열에 들게 되어 세세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재림의 주를 맞이할 자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함부로 따라가지도 말고 깨어서 예비를 하되 노아 때와 같이 될 것을 알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생활이 있어야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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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내에 부흥케 하는데 대해 (합3:2)




하박국 3 : 2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은 악의 세력을 먼저 높여 놓는 것은 악의 세력을 멸망하도록 하는 역사의 징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부흥이라는 것은 어떤 개인적이나 교회적인 심령 부흥을 말한 것이 아니고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되도록금 각성시키는 역사를 말한 것이다. 이제 부흥 운동의 3대 요소를 다음과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1) 시대적인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될 뜻이 있는 것이니 만일 시대적인 나팔 불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순교자의 동무가 될 수 없고 진노의 날에 긍휼함을 받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아모스와 같은 용사가 된 자라야 긍휼함을 받게 된다.


2) 자기를 하나님께 완전히 제물로 바치고 나서는 자라야 된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니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씀과 동일하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 때에 자기의 사적 행동을 취하는 자는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 없다는 뜻으로 가르친 말씀이다.


3) 급한 사정을 만난 주인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종이되어야 할 것이다. 수년 내라는 것은 어떤 년.월.일.시에 정한 뜻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급한 때라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계6장에 잠깐이라는 말이나 7장에 하나님 종들에게 인치기까지라는 말이 동일한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히 급했다는 경고의 나팔을 들고 나가서 모든 사람을 깨우치라는 뜻이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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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악화와 가정 문제



사회와 가정은 떠날 수 없는 일이다. 사회가 없이 가정이 없고 가정이 없이 사회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사회가 도덕 부패 인심 악화를 따라서 가정에 큰 영향을 주는 때를 만났다고 본다. 그러면 사회가 도덕이 부패하고 인심이 악화되었다고 해서 가정이 거기에 물이 들고 지배를 받게 된다면 그 가정은 성도의 가정이라고 할 수가 없고 성도가 사회가 이렇게 되었다고 사회를 떠난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가정을 돌아보지 않고 개인 신앙을 지킨다는 것도 성도의 일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가정에 대한 문제가 이 사회 부패와의 관계를 바로 해 나갈 것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가정이 이 시대를 잠깐의 시련기가 왔다는 것을 알고 이 시국을 어떻게 하든지 돌파하고 나가려면 좀더 가정에서부터 정신을 차리고 모든 일에 합심해서 무슨 일이든지 사단의 세력이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각성이 있되 위치를 택하여야 될 것이다. 땅에 사는 성도의 가정 생활에서 위치를 잘못 택하면 앞으로 크게 문제되는 점은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길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선지는 성도의 안정처를 말했던 것이다.

우리의 위치라는 것은 롯과 같이 소돔 고모라의 물질이 풍성하다고 찾아가는 그런 생활을 하지 말고 아브라함 같이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것을 따라서 위치를 택해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위치를 정할 때에 불탈 물질을 따라가는 것도 실패요 또는 임시적인 편리를 따라간다는 것도 잘못이요 잠깐의 어떤 쾌락이 있다고 그 쾌락을 따른다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위치를 택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위치냐 아니냐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또는 그곳에 있으므로 내 가정의 신앙 상태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도 생각하고 과연 그곳에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을 사람들이냐 하는 것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우리의 살길은 개인적인 영혼 문제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고 단체적으로 보호를 받고 단체적으로 싸워 나가는 것이 없다면 도저히 난국을 돌파할 수 없는 시기가 올 것이니 언제나 알곡은 알곡끼리 모이듯이 하나님은 역사할 것이니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나가는 것을 목적하고 현실을 보지 말고 미래의 것을 깊이 생각하는 점이 있어야 될 것이다.


(2). 예언의 말씀을 온 가정이 다 따라서 움직이되 우리의 갈 길은 어떻게 하여야 새 시대를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온 가정이 마음에 두고 아무리 세상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와도 거기서 압력을 받지 않고 더 정신을 차려 분명히 새 시대가 가까운 때라는 것을 알고 더 힘을 얻는 가정이 되기 전에는 시대가 변천되는 세속주의에 끌리게 될 것이다.

왜냐할 때에 날마다 사는 생활이 이 세상에 과학적인 문명을 무시할 수 없고 또는 그 문명을 따라서 나날이 변천되는 인심의 변동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이때에 객관적인 하나님 편에서 오는 새로운 힘을 받는 것이 없이 한 주관적인 자아를 중심하여 인본주의적인 사상에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세상의 세속주의 문명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대적인 조류를 인간의 몸으로서는 거스려 나가기가 어렵지만 이 시대가 변천되는 징조를 성서에 의하여 심판기의 징조로 알고 진노의 날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각성이 있다면 어려운 풍조가 부딪칠수록 더 힘을 말씀에서 가지고 나가는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초자연적인 역사가 오게 될 것이다.

  
(3). 모든 일이 잠깐이라는 생각에서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고 잠깐인 고난도 영화도 다 이것으로 우리의 사명이 아니요 우리의 사명은 이것을 초월해서 새 시대를 목적한 것이니 잠깐인 고난을 참아야 되는 동시에 잠깐의 바벨론의 영화를 따라갈 필요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남은 가정이 되는 것만이 축복 인줄 알고 가정의 모든 일을 믿음으로 움직일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같이 하므로 모든 일이 초인간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체험케 될 것이다.

인간이 볼 때에 실패같이 보이나 실제는 실패가 아닌 것이 나타나고 인간이 볼 때 확신 있는 것 같으나 가고 보면 허사가 되는 것을 체험할 때 지금 이때에 성도의 가정은 모든 일을 영적이나 육적이나 그 생활을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신다는 것을 더욱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이 자기 계획과 방법을 취한다는 것은 변화 성도에게는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할 때에 모든 일이 하나님의 보호 없이는 생계를 보존할 수 없는 재앙이 오는 때이니 만큼 모든 일을 인간의 힘을 초월한 하나님의 간섭이 같이 한다는 것을 믿어야 될 것이다.


(4). 일상생활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악한 자들의 피해를 두려워하지도 말고 또는 그런 자에게 도움을 얻어 보려고 타협하지도 말고 조금도 불의와 동참치 않는 성별된 생활에서 나가야만 될 것이다.

만일 인간의 방법으로 재앙 받을 악인들에게 무엇을 의탁하고 나간다는 것은 불의와 동참하는 일이 될 것이니 어떻게 하든지 악자와의 관계를 가지지 않도록끔 방법을 취해서 악한 자의 주권이 내게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취해 나가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까지도 성별된 교회가 있어야 될 것이고, 사업도 성별된 사업이 있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예배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성별이 있어야 하고, 사업에는 신비적인 새로운 축복을 받기 위해서 사업에 성별이 있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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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 문제



심판의 종으로서 금전 관계가 명랑해야 될 것이다.


왜냐 할 때에 종말의 큰 화는 물질에 치우친 자에게 임한다는 것이 예언서의 전편 대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것은 물질 문제에 대하여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다. 물질이 없다고 낙심해서 세상 염려에 마음이 둔해진다는 것은 주의할 일이요, 물질을 많이 쌓아두고 거기에 마음을 두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물질을 아끼고 심판의 역사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쌓아 두기를 좋아한다면 이 사람은 심령이 흑암으로 떨어진 자라고 볼 수 있다. 사명자로서 물질에 관하여 "있고 없는데" 뜻을 둘 것이 아니고 자기의 할 사명을 위하여 최후의 노력을 하는데 정신을 두고 싸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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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의 날에 아끼는 백성
 
- 말 3:16-4:3 -


  
서  론

하나님은 진노의 날이 올 때 당신이 기뻐하는 사람은 특히 더 아껴주는 것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려운 무서운 시험이 올 때 부모가 자녀를 더 보호하고 아끼는 것과 같은 심정이다. 노아 홍수 때에도 진노의 날에 그 가정을 더 아꼈고 소돔 고모라성이 불탈 때에도 롯의 가정을 구원했던 것이다. 이제 어떠한 자가 아끼는 백성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1. 시련 중에도 의로운 제사를 드리는 자 (3:3)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는 시련을 시키면서 믿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시련을 시키면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다. 만일 어떤 종이 기분이 좋으면 연보도 하고 기도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그만 둔다면 아끼는 백성 될 자격이 없다. 예를 든다면 친구에게도 기분 좋으면 가까이 하고 기분이 나쁘면 박차버린다면 그 친구는 사귀는 것이 불리할 것이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아낄 사람을 아무나 그대로 두고 아낄 수 없다는 것이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 (3:8-12)

십일조라는 것은 축복 받은 백성의 해야할 의무적인 한 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로 할 문제가 아니고 첫째: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것, 둘째:하나님의 집에 드릴 것, 셋째:순수한 수입에서 드릴 것. 이것을 온전한 십일조라 하는 것이다. 만일 마지못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있고 어떤 교회의 체면으로 드린다든지 또는 이단적인 사단의 회가 되는데 드린다든지 또는 십일조를 순수한 소득이 아니고 자기의 어떤 이익을 붙여 놓고 드린다는 것은 온전한 십일조가 못된다.


   
3.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이다 (3:16)

이것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되 이름을 더립힐까봐 조심하고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존중이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말 한마디를 해도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 한다(시34:11-13).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훼방하고 모략한다면 이 사람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존중히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라 할 것이다(마6:14, 마5:24).


   
결  론

심판의 목적은 아낄 자는 아끼고 없앨 자는 없애는 것이 심판인 것이다(4:1-3).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불탈 때 초개같다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기뻐 뛴다는 것이다. 모든 악인은 불에 살라져 재가 되고 의인은 땅에서 새 나라를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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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복된 가정 
- 창 18:1∼33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은 왜 복된 가정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가정 (1∼5)

아브라함은 비록 자녀가 없는 쓸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있는 정성을 다해 손님을 대접하는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그는 부지중에 하늘의 천사를 손님으로 대접한 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를 대접하는 것을 당신이 대접을 받는 것과 같이 갚아준다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다. 그러므로 손님을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천사를 보냈던 것이다. 인생의 가치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대접을 받는 것보다도 대접하는 생활이 가장 물질을 바로 쓰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도둑의 생활이요, 남을 대접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종의 생활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사람에게 주는 것은 서로 대접을 하며 살면 더 좋은 것을 얼마든지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므로 "너는 복의 근원"이라는 거룩한 이름을 받게 되었다.


2. 합심된 가정 (6∼8)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해도 가정에서 합심이 안되면 복된 가정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은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코자 할 때에 합심하여 급한 요리를 제조했던 것이다. 가정의 미라는 것은 남을 대접하는 일이라면 전 가정이 합심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름다운 복된 가정을 이루는 요소가 될 것이다. 합심이라는 것도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어떤 가정은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자기네 가정만 잘 살아 보려는 데서 합심된 가정이라는 것은 아무런 가치를 발휘할 수 없을 것이로되 남을 살리고 대접하기 위하여 합심된 가정에는 얼마든지 하늘에서 남을 살리고 대접할 수 있도록 공급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3. 이적으로 되는 가정 (9∼15)

아브라함의 가정은 세계적인 사명을 갖되 거룩한 씨를 전하는 사명이 있는데 인간의 무엇으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가정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라는 다시 자기에게 거룩한 씨가 될 자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고 단념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난 천사는 말하기를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낳으리라"고 할 때에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면서 "내가 나이 늙었고 경수가 끊어졌고 노쇠한 사람이 이제 와서 어린애를 낳는다"고 하면서 코웃음을 쳤던 것이다. 그 때에 천사는 네가 왜 웃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은 능치 못한 일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며 기한이 이를 때에 네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 말대로 노쇠한 몸에서 이적으로 거룩한 씨가 될 이삭을 낳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복된 가정에는 모든 일이 이적적으로 되게 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이라는 것은 과학에 국한된 생활에서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과학을 초월한 이적으로 되는 일이 있으므로 복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4. 강대한 나라를 이루는 가정 (16∼18)

가정은 국가를 이루는 본부가 되는 것이니 강대국을 이룰 수 있는 인격은 복된 가정에서부터 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과학을 초월한 이적으로 시작된 거룩한 씨는 악의 세력을 이기고 세계를 통일하는 강대국을 이루게 될 것을 성경은 가르쳤다. 아무리 자녀가 많아도 멸망의 자식이 된다는 것은 불행 중에 불행이요 아무리 작은 겨자씨 같은 이삭 한 사람을 낳은 가정이라도 그 씨가 새 시대를 이루는 열매를 가져왔다는 것은 복된 가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참된 미라는 것은 결말이 좋아지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의 씨가 세세 왕국을 이루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이라는 것을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다.


5. 의를 위하여 택한 가정 (19)

가장 복된 일은 하나님이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택함을 받은 일이라고 보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어리석은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들어서 당신의 의를 이루기 위한 사람이라면 누가 그 세력을 막을 자는 전혀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택할 때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일을 개척한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그 일의 열매가 되는 사람이 될 때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누구든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대 주재 하나님이 그 가정을 통하여 당신의 할 일을 행하게 하신다는 것이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말씀했던 것이다.


6. 급한 비밀을 알려주는 가정 (20∼33)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그들은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짓고 오락하고 춤추다가 한 시간에 멸망을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천사가 와서 그 비밀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소돔 고모라를 염려하여 "의인이 그 성에서 열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하는 데까지 물어 볼 때에 하나님은 열 사람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을 생각하여 의인 열 명이 되지는 않겠는가 생각한 일도 있은 것이다. 그러나 의인 열 명이 없으므로 그 성은 망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복된 가정은 급한 비밀을 하나님께로 알려주는 일을 받게 될 것이다.


결    론

천하에 복된 가정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게 되는 가정일 것이다. 우리가 받는 축복은 전부가 복된 가정인 아브라함의 집에서 시작된 그 축복을 받게 되는 가정이니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아서 복된 가정의 시발점이 무엇인 것을 알아 끝을 맺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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