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0일 화요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미가 3:11~12, 7:7~13)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 

(미가 3:11~12, 7:7~13)

미가 3: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12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되실 것임이로다 9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10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11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하수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3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심이 있다 하여도 진노의 날에 남은 자가 될 수도 있고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화를 받을 일 (3:11~12)

하나님을 의지하여도 진노의 날에 화를 받을 자는 소위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선지자라 하면서 돈을 위하여 점을 치는 생활을 하면서 그것을 양심에 거리끼게 생각도 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를 의지하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하는 신념을 가진 자이다. 이들의 신앙 상태는 어떠한 것이냐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성직을 직업화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자들은 성직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것보다도 성직을 이용하여 자기 생활의 무대를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을 가진 자는 사람에게 삯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목적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마6:1이하를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할 때에 벌써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되므로 이러한 자의 기도나 예배는 하나님께서 도저히 받을 수 없고 사단의 회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되지 못하고 삯꾼을 위하여 한 직업화되는 단체가 될 때에 거기에 있는 양 떼들은 오히려 이용을 당하는 일 밖에는 되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내리지 않는다면 그 교훈은 오히려 말씀을 이용하는 일 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자들이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님의 아무런 응답이 없게 되니 그 교회는 진노의 날에 황폐화되고 마는 것이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될 수도 있고  삯꾼을 위한 한 단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삯꾼을 위한 단체라는 것은 거기에 따라가는 무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사람을 경외하여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도 인물을 섬기고 진리를 위하여 싸운다는 것보다도 말씀을 한 학과에 불과한 것으로 말씀의 아무런 역사를 체험치 못하고 정통이라는 관념에서 그 신앙이 의식화되고 한 고질화된 형편에서 그것을 신앙 정로로 아는 데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단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를 중심하는 것보다도 교권과 물권과 인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둘째:이러한 자들은 양심이 마비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영적 문제보다 육적 생활의 한 방편으로 이모저모로 유익을 보는 것을 중심한 것이다. 과거의 발람이가 하나님을 찾았지만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보다도 자기의 명예와 안락을 따라가는 교훈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할 수가 없을 것이로되 이런 무리들은 하나님의 종을 대적하면서도 이것을 오히려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종을 받드는 것보다도 그 종의 역사를 시기하여 막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을 바라보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리들은 반드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할 일 (7:7~13)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할 사람은 조금이라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생활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나가는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러 가지 난관을 당해도 하나님의 완전 역사를 의지하고 싸워 나가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첫째:엎드려져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나는 일이요,
둘째:흑암이 온 땅을 덮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빛을 찾는 일이요,
셋째:범죄가 있다 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용기 있게 싸워 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자는 대적을 진흙같이 밟고 나가는 용사가 되어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되므로 많은 대중을 구원하는 일이 있게 된다. 이러한 용사의 영계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이, 넘어졌다는 것은 용기 있게 마귀와 싸우는 생활에서 돌진의 걸음을 걸어 가다가 넘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쟁이 일어났을 적에 어떤 군대는 자기가 위험하다고 도망을 가서 숨은 자도 있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 나갈 때에 부상을 당한 자도 있을 것이다. 이때에 용사는 부상을 당했다 하여도 용기 있게 싸운 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삯을 받아먹고 평안히 지내는 자보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는 사람이라면 강한 원수에게 쓰러지는 일이 있다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들어서 쓰는 것이다.  

흑암을 뚫고 나가는 종으로서 흑암의 세력이 그 종을 덮고 나온다 하여도 그 자체가 흑암에 빠진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종에게 흑암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의 역사를 주시는 것이요,  사람이 볼 때에 실수하는 범죄가 있다하여도 중심과 사상이 바른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버리지 않고 더 강하게 들어 쓰므로 대적을 짓밟고 나가는 완전 승리를 이루게 하신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완전케 하시는 당신을 바라보는 자를 들어 쓰되 조금이라도 자기의 몸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라면 중심을 보시고 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과거에 아무리 베드로가 원수들 앞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모든 성직자보다도 더 강하게 들어 쓴 것이다.

 
결    론 

어떤 종이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여도 자기의 안락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무런 역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나가기 위한 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서 새 시대를 이룬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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