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일 토요일

말씀의 칼 : 환란 때 영화롭게 되는 자 - 시편91:1~16


환란 때 영화롭게 되는 자  

-시91:1~16-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2 내가 여호와를 가르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  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9 네게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서    론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환란이 없으므로가 아니고 어려운 환란이 부딪쳐올 때에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완전하고도 공의로운 신이시니 환란이 오게 하는 동시에 여기서 의로운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환란을 당해 보아야 하나님은 당신이 영화롭게 하는 인격을 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환란 중에 영화롭게 할 인격은 어떠한 자라는 것을 본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1.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통하는 자이다 (1)
하나님은 평안할 때 은밀한 곳을 살핀다. 은밀한 곳을 살필 때는 잠잠히 계셔서 고요히 숨어 계신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은밀한 곳에서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한다고 한 것이다(계2:23). 지금은 하나님은 고요히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를 살피고 있지만 환란이 올 때는 누가 은밀한 곳에 계신 하나님과 사귀었느냐 하는 문제가 들어나게 될 것이다.

  

2.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다 (2)
하나님은 어느 정도까지 당신을 의뢰하는가를 달아 보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 같으나 어려운 일이 올 때 의뢰하는 힘이 약하다면 영화롭게 될 수 없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영화롭게 된 것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힘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인 만인이 쓰러지는 염병과 재앙이 와도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3~10).

  

3.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14상반절)
우리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영화롭게 되고 못되는 것이 달려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는 있으면서도 부분적에 불과하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건져주는 정도에까지 사랑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사랑할 때 건져주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있다.

  

4. 하나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다 (14하반절)
이 안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증거하는 뜻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높여 주리만큼 안다는 정도가 무엇이냐 라는 것을 양심적으로써 판단할 일이다. 하나님은 양심을 보고 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니 조금도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는 일이 없고 날마다 일구월심의 양심 속에서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여기에서 움직이는 자라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높여줄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위신을 높이려고 하는 중심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진실한체 한다면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악자의 행동일 것이다. 바리새교인의 행동이 즉 그것이었던 것이다.

  

5. 간구하는 사람이다 (15)
이 간구는 사생을 결단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되면 되고 라는 그 정도가 아니라 꼭 안되면 나는 죽는 일이다 라는 각오를 가지고 올리는 기도가 간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영화롭게 해주는 인격이 아니고는 환란 가운데 남을 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환란은 종말에 오는 환란을 말한 것이니 이 환란에서 영화롭게 된 자는 장수함으로 만족하게 되리라고 말한 이것은 육체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 중에도 큰 영화는 종말에 환란가운데 남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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