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마태복음 26장 36~46 설교 : 승리의 기도



승리의 기도

- 마 26:36~46 -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서 론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독생자라도 기도로써 승리하도록끔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하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승리를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신 일은 세계 인류의 대표적인 기도가 되는 동시에 기도의 표본이 된다. 기도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타협이 있을 때는 필요가 없고, 완전 승리를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이제 승리의 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마음에 고민이 심한 중에 하는 기도 (36-38)

승리의 기도라는 것은 아무런 고민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큰 문제를 앞에 놓고도 마음에 고민하는 것이 없고 오히려 태만하게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양심이라고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인간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기 전에 마음에 큰 고민이 온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간 죄악의 고통을 느끼는 마음이다. 죄값으로 수많은 영들이 죽는 것을 생각할 때에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고민을 가지게 된 것이다. 수많은 양떼가 쓰러져 죽게 되는 것을 보고도 마음에 고민이 없는 목자라면 참으로 양을 사랑하는 목자라고 볼 수 없다. 남이 망하는 것을 볼 때에 마음에 고민이 없이 오히려 비웃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떠난 마음을 가진 것이다.

둘째는 인간 죄악 고통을 짊어지는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일을 행하였을 때에 책임을 그 사람에게만 지게 한다면 마음에 아무런 고민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된 일을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할 형편이라면 마음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공의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공의의 법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용서가 없는 것이다. 어떠한 잘못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묵인해 버린다면 이것은 공의라고 할 수 없고 그 법을 파괴시키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고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은 인간의 모든 잘못을 짊어지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참된 기도라는 것은 잘못된 일을 바로 잡기 위하여 애원하는 것이다. 자기 잘못을 고치기 위하여 애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야할 기도이다. 그러나 전 세계 인류의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심히 안타깝게 부르짖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은 자가 다른 사람이 망하는 일을 보고 고민하는 마음이 생겨 눈물 흘려 기도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응답이 내려오는 것이다. 누구든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애쓰는 종은 남보다도 마음에 고민하는 것이 많게 되므로 건전한 기도를 하게 된다.

  
2.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 (39)

기도라는 것은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는 것 보다도 내 소원을 없이 하고 아버지의 소원만 이루어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치 않고 자기의 소원만 이루어달라고 한다면 오히려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없이 하고 자기의 뜻을 내세우려고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괴로워도, 수치스러워도, 죽어도 순종한다는 것이 참된 충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만 순종한다는 것을 목적하고 아무리 쓴 것이 내게 와도 오히려 이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때에 승리의 기도가 된다.

우리의 승리 기도라는 것은 먼저 "나"라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에게 인간의 죄악을 짊어지게 해서 죽게 하시고 그 의로운 행실로 말미암아 세계 인류가 다 하나가 되는 나라를 이루자는 것이 소원이다. 제일 높은 영광도 독생자에게 있게 하시고 제일 높은 의도 독생자에게 있게 하셔서 우리에게 그 안에서 세세 영광을 누리도록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어 만민의 죄를 대속하는 일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의도, 독생자의 의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아버지의 의와 아들의 의가 세상에 나타나는 일이다. 세상에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도덕적 의는 될지언정 세계 인류를 살리는 의는 될 수 없다. 세계인류를 살리는 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이것이 세계 통치권을 가질 수 있는 만왕의 왕이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승리의 기도라는 것은 십자가의 의를 완성하는 것을 목적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십자가 의를 이루기 위한 것만을 목적하면 승리의 기도가 될 것이다.

  
3. 남을 동정하는 기도 (40-46)

주님께서 밤새도록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은 그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신 것은 제자들에 대하여 동정하는 마음이다.

언제나 승리의 기도를 하는 사람은 약해서 쓰러지는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많은 기도를 한다고 해서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동정하지 않는다면 승리의 기도를 할 만한 자리에 들어간 자라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도 예수님은 항상 대언 기도하시면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쓰러지는 사람을 동정하여 쓰러지지 않도록끔 해 주시는 응답을 내리신다.

언제나 양떼를 인도하는 종이 되려면 마음에는 원이로되 실천을 못하는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라고 한 것이다(롬 7:24-25).

  
결  론

기도 생활이라는 것은 위와 같은 세 가지가 항상 있어야 한다. 자기를 위한 기도가 승리할 수는 없고, 남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는 제물이 된 기도라야 승리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하시되 참된 기도를 통하여 승리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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