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마태복음 7장 1~21 설교 : 열매의 심판



열매의 심판

- 마 7:1~21 -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서  론

하나님은 열매 없는 심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어떤 농부가 열매 맺기 전에 추수한다면 이것은 완전한 정신이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랑의 심정이요, 열매 맺은 다음에 심판하는 것은 공의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열매 맺기를 기다리는 것이 있는 다음에 심판이 온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 좋은 열매가 맺혀 지느냐에 대하여 본문 성경에서 알 수가 있다.


1. 양심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5)

회개란 입에 있는 것도 아니요, 어떤 도덕 의식 수양이 아니라 이것은 양심속에 감추인 죄를 청산하는 것이다. 아무리 바리새교인의 교리가 옳고 도덕이 높고 수양이 높다 하여도 네 눈에 들보를 빼라고 주님은 책망했던 것이다. 예수님을 안식일 범죄자로 보는 바리새교인 마음속에는 근본적인 죄의 보장이 되는 욕심이 꽉 찼던 것이다.

들보란 정욕을 말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했으니 근본적 야욕 이것을 들보라 한다(요 8:44). 만일 어떤 종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보려는 양심은 있으나 사람 앞에 열매가 좋지못한 문제보다도 사람 앞에 모든 것이 옳은 것 같으나 마음속에 야욕이 있다면 양의 옷을 입고 이리의 마음이 있는 거짓 선지일 것이다


2. 양심적인 봉사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12)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대접하는 마음이 없이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은 바리새교인의 기도다. 아버지의 심정은 양심적으로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양심을 가진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먼저 주고 싶어하는 심정을 가졌다는 것을 비유로 주님은 말씀할 때 아들이 생선을 달라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하라고 하셨다.

만일 어떤 종이 양떼가 기갈을 당할까 봐 안타까운 심정에서 눈물겨운 심정을 가지고 강단에 선다면 이 종을 통하여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누구든지 중심에 남을 잘되게 유익하게 해 보겠다는 마음만 간절하다면 이것은 열매맺는 나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남이 대접하면 화평을 말하고 대접하지 아니하면 불평을 둔다는 것은 거짓 선지의 행동이라고 미 3:5에 말한 것이다.


3. 항상 조심하는 마음이 있는 자다 (13-14)

이 조심이란 소망이 확실한 빛의 양심에서 적은 일 하나라도 잘못이 있을까봐 삼가는 신앙노선은 좁은 길이라, 험한 길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신앙노선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험해도 가고 좁아도 간다는 이것이 없이 자기 멋대로 한다는 것은 방랑적인 넓은 길이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잘못될까봐 조심하는 사람에게 지혜도 주고 또는 인도하기도 하고 붙들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눅21:34). 만일 어떤 종이 은혜를 받고 사명을 맡고도 항상 삼가고 조심 하는 것이 없다면 이 사람은 생명길을 걸어가는 생활을 도저히 갈 수가 없을 것이다. 진보란 항상 조심하는 그 마음과 바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은 넘어지지 않도록 인도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길이 협착하다고 가르치셨다.

열매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에서 있을 수 없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본질만 가진 자라면 필연코 열매 맺도록 하나님은 역사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나무라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친 것이다(17). 우리는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다고 낙심말고 좋은 나무가 되는 양심적인 생활이 있느냐 하는 것을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결  론

주님은 영안이 밝으시고 무소부지하신 신이시니 금일에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은 경솔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은 주님께서 중심적인 회개와 중심적인 봉사와 중심적인 조심하는 일이 있는 자라면 열매를 맺도록 역사해 준다는 것이 본문성경에 지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과 뜻을 살피신다는 것은 마음과 뜻을 보시고 역사해주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농부가 못된 나무인줄 알면서 가꾼다면 실패중 실패일 것이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라면 하나님은 열매맺도록 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요 15:1). 심판이란 좋은 열매를 거두어서 새로운 시대를 이루기 위한 목적 밑에서 행하는 것을 심판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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