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마태복음 27장 27~46 설교 : 버림 받은 예수



버림 받은 예수

- 마27:27-46 -




하나님은 공의의 신이시니 공의의 죄 대가를 아들에게서 받으실 적에 사정없이 아들을 버리셨다. 이것을 본다면 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제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는 예수의 고난을 우리는 본문으로 깊이 생각한다.


  1. 머리의 괴로움 (27-31)

가장 괴로운 것은 머리가 괴로운 것이라고 본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갈대 몽둥이로 머리를 칠 때에 그 괴로움은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어찌하여 하나님은 아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주셨는가! 무엇보다도 인간이 머리의 정신작용을 죄 되게 사용하면서 간사한 죄를 많이 진 대가를 친히 받으신 것이다. 가장 큰 죄는 짐짓 머리 속으로 연구하므로써 지은 죄가 너무 큰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목이 잘린다든지 간단한 사형을 한다는 것보다도 갖은 괴로움을 당하게 할 때에 먼저는 머리에 괴로움을 당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머리의 정신 작용으로 죄를 짓는 일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기독교 안에서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머리에 생각으로 악한 계획을 하는 자들도 있다고 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책잡기 위하여 갖은 모략의 방법을 쓴 일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


  2. 입의 괴로움 (33-34)

인간들이 입으로 지은 죄라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에 신자라 하면서 심지어 주의 종이라 하면서 입으로 하지 못할 말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

우리 주님께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은 입술로 지은 죄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이다.


 
3. 수족의 괴로움 (35)

가장 무서운 죄는 손과 발로 지은 죄인 것이다. 손과 발에 못박혀 장정된 몸이 허공에 달려 있을 때에 못자욱은 찢어지고 쓰라리고 아픈 그 고통은(시22:16)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가장 괴로운 것은 사정없는 쇠못으로 힘줄을 뚫어 나무에 못박은 그 자리 얼마나 쓰라릴까.

나는 1953년 5월에 조용한 산을 찾아가 기도할 적에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된 모양이 똑똑히 나타났다. 못자욱에서 흐르는 피는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못자욱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뼈마디가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주님이 고통 중에 시달리는 모양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는 너를 인하여 이렇게 고난을 받았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하는 음성이 거듭 들려왔다. 이러한 광경을 약 3시간 동안이나 나타나 보일 때에 그때에 나는 작정하기를 아무리 괴로운 일이 오고 억울한 일을 만난다 해도 나는 원망치 않고 강한 마음으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 후로부터 이날까지 20여년 간 이상하게도 사람에게 버림을 당하는 것과 같은 원망스러운 일을 계속으로 당하게 될 때에 십자가 앞에서 작정한 그 마음 잃지 않고 나오는 중에 십자가를 통하여 오는 은총을 너무나 많이 받을 때에 더욱 감사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억울함을 당한다 하여도 우리 주님의 당하신 고난에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참을 자격은 없지만 억울함을 당할 때에 십자가를 바라만 보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4. 귀의 괴로움 (39-44)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싫어하고 마귀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 인간이 많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극도로 괴롭히는 모욕과 훼방을 받게 되었다.

지나가는 자마다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하는 말이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는 말이 남은 구원을 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가 없도다 하면서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하였다.

인간이 볼 때는 이러한 자리에 들어간 것이 십자가이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누가 이 때에 인간의 죄를 위하여 죽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자가 있으리요, 사정없이 매를 맞고 사정없이 쓰라림을 당하고 사정없이 버림을 당한 십자가였다.


  5. 고통의 큰 소리 (45-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이 슬픈 소리, 고통의 소리, 천지가 캄캄하고 산천이 슬퍼할 고통의 소리였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할 때에 조금인들 죄를 용납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조금이라도 죄를 용납한다면 죄 값으로 고통을 당한 예수님의 저주가 되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버림당한 그 일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는 열매가 되었다.


  결  론

공의로우신 하나님 공의의 죄 대가를 아들에게 짊어지우고 사정없이 버린 하나님의 사랑 절대로 택한 자를 버리지 않는 사랑이 되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아들을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에게 무엇을 아낄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넉넉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는 그 능력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버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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